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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강상중 『고민하는 힘』, 사계절 2009

무엇을 어떻게 고민할 것인가

 

 

김현미 金賢美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hmkim2@yonsei.ac.kr

 

 

고민하는힘표지이 책의 저자 강상중(姜尙中) 교수는 일본사회의 문화적 소수자인 재일한국인으로서 토오꾜오대학 교수가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어느정도 스타성이 예견되어 있었다. 그는 수많은 고정 팬이 있는 흔치 않은 지식인이다. 그러나 콘텐츠 없이 충실한 팬을 갖기는 어려운 일이며, 『오리엔탈리즘을 넘어서』나 『세계화의 원근법』 등의 저서를 통해 그의 사유의 진지함과 비판정신은 익히 알려져왔다.

“일본 100만 독자를‘일으켜 세운’베스트쎌러”라는 출판사의 습관적인 과대포장은 접어두더라도,‘고민하는 힘’이라는‘힘있는’제목(원제 惱む力, 이경덕 옮김)은 정말 매력적이다. 이 책은‘나는 누구인가’라는 정체성의 문제를 고민했던 저자의 경험에 근거하여 현재의 젊은 세대에게 주는 격려성 에쎄이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오십대 중반의 재일한국인 남성학자의 인생론 앞에 애써 반박하거나 승인할 주장을 찾으려는 논평자 같은 내 태도는 언뜻 무의미해 보인다.

21세기 일본의 경제불황과 고실업 상황에서 철저히 고립되고 무력해진 개인들을 바라보는 강상중의 시선은 한 세기 전‘근대의 입구’에서 비슷한 고민을 했던 문학가 나쯔메 소오세끼(夏目漱石)와 사회학자 막스 베버(Max Weber)에 의존한다. 재일한국인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심문하던 저자에게 “그 우울한 청춘의 시대, 내 옆에서 늘 속삭이듯 말을 걸어준 것은 나쓰메 소세키와 막스 베버였다.”(7면) 20대의 청년 강상중은 이들에게서‘고민하는 힘’을 보았다. 소오세끼가 제멋대로 전진하는 세상과 거리를 유지하며 인간의 내면세계를 깊이있게 파고든 것처럼, 베버 또한‘합리화’를 원리로 한 근대문명의 발달과 인간고립의 문제를 “시대를 꿰뚫어 보겠어”(21면)라는 태도로 직면했다. 이들을 통해 강상중은 사회적 고립과 자기연민에 쌓여 있던 현실에서 벗어나 타자를 승인하는 지혜를 얻고 사회적 관계성을 회복해갔다. 강상중은 나쯔메 소오세끼와 막스 베버가 근대의 입구라는 혼돈과 좌절 앞에 왜소해지지 않고, 그 거대한 의미에 직면해 끝까지‘고민하는’힘을 보여줌으로써 자신을 일으켜 세웠다고 말한다. 저자는 한국과 일본의 젊은이들을 위해 두 대가의 현대적 번역자가 되기를 원한다. 그는 글로벌머니의 폭주, 고실업과 히끼꼬모리(은둔형 외톨이)의 증가, 사회안전망 부재 등 일본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는 100년 전 근대의 입구에서 발생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 계속 성장해온 결과라고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소오세끼와 베버의 사유방식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믿는다.

이 책은‘나는 누구인가’‘돈이 세계의 전부인가’‘제대로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청춘은 아름다운가’‘믿는 사람은 구원받을 수 있을까’‘무엇을 위해 일을 하는가’‘변하지 않는 사랑이 있을까’‘왜 죽어서는 안되는 것일까’‘늙어서 최강이 되라’라는 아홉가지 주제로 젊은 세대가 고민하는 근본적인 문제들을 잘 풀어나간다. 그는 “바짝 마른 건조한 청춘”을 보내는 젊은이들에 대한 연민의 시선으로 타자와 소통하는 것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돈, 사랑, 일 등 욕망하는 모든 대상들과 간헐적이고 피상적인 관계밖에 맺을 수 없는 세대, 불안과 고립의 시대적 기운에 잠겨‘루저’(loser)처럼 사는 세대에 강상중 같은 기성세대의 메씨지는 갈망해오던 것이었으리라 생각된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편을 가르는‘입장이 강한’목소리를 내기보다 젊은 대중에게 힘을 주고 격려하는 스타 지성인의 시대적 요구에 부응한 기획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강상중의 지적대로 고민의 힘은 어중간함을 버리고 진지하게 사유하고 어떤 입장을 갖고자 할 때 생겨난다. 고민이‘힘’이 되기 위해서는 사유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모든 시간은 유용되어야 하고 거래되어야 한다는 자본주의적 시간개념을 내재화한 현대인은 외연화된 수치로 자신의 존재가치를 설명하는 데 익숙해지기 쉽다. 젊은이들은 취업을 위해‘스펙’을 쌓고, 기성세대는 자산가치를 높이느라 진지한 고민을 할 여유도, 남의 고민을 경청하거나 서로 소통할 의지도 상실해가고 있다. 고민하는 인간은‘낭비’하는 인간으로 비치기 십상인 시대인 것이다.

그럼에도 이 책은 소오세끼와 강상중의 언어의 아름다움에 이끌려 잠시 실존의 고민을‘멈출 때’가장 편안하게 읽을 수 있다는 느낌이 든다. 다시 말해 『고민하는 힘』은 철저하게 파고들 고민의 대상을 비껴가고 있다는 것이다. 소오세끼와 베버에게 회피하지 않고 대면할 고민의 대상은 근대적 주체를 태동하는 정치경제적 구조였고, 그에 따른 변화는 억압, 비인간화, 에고이즘, 소외를 만들어내며 파편화된 개인을 탄생시켰다. 저자는 오늘날 일본 젊은이들의 문제를 자아의 병리적인 비대화나 과도한‘자유’때문에 타자와 연결되는 회로를 잃어버린 것으로 바라본다. 그런 점에서 무기력한 젊은이들이 자신의 위치를‘고민하면’‘일으켜 세워진다’는 주장을 펴는데, 이는 대중심리학의 요법과 맞닿아 있다. 근대의 미완성적이고 파생적인‘괴물’인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구성해내는 탈인격화의 강압적 과정에 맞서 어떻게 고민하고 어디서 전선을 만들어낼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다소 아쉽다.

사소한 것 같지만 나를 심하게 불편하게 만든 문장도 있다. 마지막장‘늙어서 최강이 되라’에 쓴 이런 문장이다.“미국의 바이크클럽인‘헬즈 엔젤스’처럼 해골 아이콘을 달고 가죽장화를 신고 뻔뻔한 모습으로 할리데이비슨 위에 걸터앉아 뻔뻔한 태도로 김정일의 머리에 알밤이라도 먹이고 싶습니다. 이런 정도는 충분히 생각할 수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169면)

60세 이후의 두번째 인생에서 무턱대고 이런저런 일에 도전해보고 싶다며 쓴 문장이다. 젊은 시절 자아에 대한 철저한 고민을 거친 일본 주류사회의 비판적 남성지식인의 제2의 인생에 관한 상상력이 좀 상식적인 차원에서 물신적이라는 느낌 때문이었을까? 무엇보다도 재일한국인으로서 경계인의 정서를 지녔던 진보적 지식인이 미국 자본주의의 화신인 할리데이비슨을 타고 김정일에게 알밤을 먹이다니? 2000년대 이후 납치, 실종문제나 미사일 발사 등으로 북한을‘악’으로 캐릭터화하는 네거티브 캠페인이 폭발적으로 일어나는 일본에서 대북의식이 좋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이런 발언은 누구의 이해와 욕망에 복속하는 것인지 의아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