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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과 시선

 

우리시대 문학은 어떻게 발언하는가

2009 용산참사 헌정문집 『지금 내리실 역은 용산참사역입니다』

 

권여선 황현산

 

 

당신이 다음 내리실 역은

권여선(權汝宣)│소설가

 

 

용산참사 헌정문집인 이 책 앞머리에는 ‘다시, 이것은 사람의 말’이라는 네단락짜리 짧은 글이 놓여 있다. “우리가 괴물이었으므로 괴물 같은 정부가 탄생한 것”이라는 반성과 참회의 글이다. 그런데 ‘다시’라니? 이전에 첫번째 ‘사람의 말’이 있었다는 얘기다.

2009년 6월 9일, 작가들 190여명이 모여 ‘이것은 사람의 말’이라는 최초의 선언을 했다. 그들이 소위 ‘작가선언6·9’ 또는 ‘6·9작가’다. 반년 남짓 지난 2009년 12월 8일, 6·9작가는 용산 현장에서 ‘다시, 이것은 사람의 말’이라는 두번째 선언을 했다. 신의 말도, 짐승의 말도 아니고, 하다못해 작가의 말도 아닌, 그저 사람의 말이다. 사람이 말을 하면서 자꾸 이건 사람의 말이라고 강조한다. 용산참사 르뽀집인 『여기 사람이 있다』도 번연히 사람이 있는 곳에 자꾸 여기 사람이 있다고 주장한다. 사람의 말임을 거듭 선언하고, 사람이 있음을 절박하게 주장하는 데는 반드시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사람의 말을 사람의 말로 들어달라는, 사람이 있는 곳을 사람이 있는 곳으로 보아달라는, 간곡한 호소와 절박한 분노와 가없는 슬픔이 있을 것이다. 당신이 그 사연을 궁금해하면 좋겠다.

개인적인 얘기를 조금 하자면, 나는 첫번째 6·9선언에는 참여하지 못했다. 뒤늦게 그 선언이 나온 걸 알고, 자신의 저서가 나찌의 분서(焚書) 목록에서 제외된 것에 분노와 경악을 감추지 못하던 브레히트 시에 등장하는 늙은 시인처럼, 왜 아무도 내게 선언 참여를 권유하지 않았는지 당혹해하면서 허둥지둥 6·9작가 온라인까페에 가입했다. 나처럼 뒷북치는 작가들이 많았던지, 첫번째 선언 당시엔 190여명이었던 참여 작가 수가 이제 300명을 넘는다.

내가 6·9작가를 통해 용산과 관련을 맺은 계기는 극히 사소하고 충동적인 결단에 따른 것이었다. 한 소설가가 용산문제 해결을 촉구하기 위해 하루씩 릴레이 단식을 하자는 제안을 했고 많은 작가들이 참여하겠다는 댓글을 달았다. 하루 정도 굶는 것은 일도 아니라는 생각에 나 또한 이번에도 늦을세라 참여의사를 밝혔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그 당시 용산에서 신부님들이 이미 단식투쟁을 하고 있었다. 그분들은 줄기차게 굶고 있는데 우리가 하루씩 돌아가며 굶는 게 별 의미가 없다는 의견이 제기되었고, 차라리 하루씩 현장에 나가 사태를 알리는 릴레이 시위를 하자는 쪽으로 방향이 바뀌었다. 작가들이 직접 피켓을 만들어 용산 남일당 건물 근처에서 2인 1조로 피케팅을 하고 전단지를 배포했다. 작가들이 만든 피켓 중에는 놀랄 만큼 참신하고 창의적인 내용이 많았다. 그것들을 모두 사진으로 찍어놓지 못한 게 아쉽고, 지면의 압박으로 여기서 열댓개쯤 예시하지 못하는 건 더욱 아쉽다. 하나의 예만 들자면, 윤예영 시인이 손수 제작한 피켓 문구인 ‘지금 내리실 역은 용산참사역입니다’이다. 헌정문집의 제목은 여기서 따온 것이다.

6·9작가들은 릴레이 시위와 더불어 용산참사를 알리기 위한 북콘써트를 열었고, 여러 지면에 용산을 테마로 한 글쓰기 릴레이를 이어갔다. 6·9작가들이 용산과 관계 맺으면서 쓴 글들과, 여기에 연대한 다른 문화예술인들이 쓰고 그린 글, 만화, 그림 들이 한권의 책으로 묶여 나왔다. 모든 이들이 댓가 없이 자발적으로, 통일된 지침 없이 자율적으로, 쓰고 그렸다. 앞서 말했듯이 책이 출간된 직후인 12월 8일, 작가들은 용산 현장에 모여 두번째 선언을 하고 책을 유족들에게 헌정했다. 따라서 이 책은 용산의 책이고 책의 수익금 또한 그렇다.

다시 개인적인 얘기를 하자면, 나는 용산과 처음 관계를 맺은 여름 이후 가을 그리고 겨울 내내 두려워하고만 있었다. 처음엔 그것이 나의 이기심과 무력함과 의지박약 때문에 생겨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곰곰이 따져보니 내 두려움의 근원엔 더 큰 공포가 자리잡고 있었다. 그것은 만일 용산이 이렇게 고립된 채 망각된다면 머지않아 이보다 몇백배 더 무시무시한 참화가 휘몰아쳐와 우리 모두를 내려찍고 말리라는 공포였다. 내 좁은 소견머리로는 이 책은 그 귀환, 그 도래를 어떻게든 막아보려는 나지막한 주문과 우렁찬 외침, 주저하는 속삭임과 벼랑에 선 절박함, 축축한 슬픔과 성마른 분노의 혼합물이다. 고인과 유족 들을 제외하고 아무도 용산의 내부라고 참칭할 수 없다. 어쩌면 전국철거민연합과 몇몇 신부님들만이 그 내부에 살짝 속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용산을 드나드는 활동가 사진가 화가 음악가 작가 들은, 아무리 용산을 속속들이 이해하고 그 고통에 뼛속깊이 공감한다 할지라도 결국 외부인이다. 이 책은 그 외부인들이 실반지처럼 가느다란 선으로 용산을 둘러싸고 있음을 알리는 위험 표지판과 같다. 그 선은 너무 위태롭고 범람은 예비되어 있다. 범람이 시작되면 내부와 외부는 더이상 구별되지 않는다. 그때엔 우리가, 당신이, 내가 망루에 올라 불탈 차례다.

다행히 해를 넘기기 하루 전인 작년 12월 30일, 참사 345일 만에 유족과 정부 간에 최소한의 협상이 타결되었다. 장례식이 치러졌고 유족들은 남일당 건물을 떠났다. 하지만 지금도 참사의 진실은 밝혀지지 않았고, 곳곳에서 용산을 방불케 하는 야만적 철거가 진행되고 있으며, 우리도 망루를 짓고 올라가야 하느냐고 울먹이는 철거민들이 있다. 그래서 부탁한다. 당신이 이 책을 사줬으면 좋겠다. 이 책은 일단락된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기록이다. 이 책은 용산의 책이자 앞으로 생겨날 모든 철거민의 책이다.

당신은 어쩌면 이 책에 실린 글들이 마음에 들지 않을지 모른다. 어떤 글은 다소 성급하고 어떤 글은 지나치게 수줍다고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각기 다른 스펙트럼의 글들 중에서, 내가 절대적으로 확신하건대, 당신 평생에 손꼽을 수 있을 정도의 심도와 열도로, 깊고 절절하게 공감할 수 있는 대목이 적어도 한군데 이상은 분명히 존재한다. 만약 당신이 바쁜 일상 때문에, 사소한 속물적 욕망 때문에, 혹은 자기도 모르는 감당 못할 죄의식 때문에, 최소한의 애도나 추모도 없이, 어떤 반성이나 고통도 없이 그대로 편안하게 용산참사역을 지나친다면, 당신이, 내가, 그리하여 우리 모두가 다음에 내리게 될 곳이 얼마나 끔찍한 이름의 역이 될지 상상만으로도 두렵다. 여기서 그치게 해달라. 아직은 사람의 말이다. 다시 거듭 사람의 말이다. 우리 내부의 저 아득한 심연에서 더이상 짐승의 울부짖음과 악령의 종소리가 울려나오지 않도록 도와달라. 부디 당신, 용산참사역을 잊지 말아달라.

 

 

문학다움과 문학의 책무

황현산(黃鉉産)│문학평론가

 

 

‘문학이 무엇인가’라고 물었던 사람은 어느새 제 질문이 ‘문학은 무엇이어야 하는가’라는 비슷하지만 다른 질문으로 바뀌어 있는 사태를 자주 경험한다. 거기에는 가능한 한 간결하고 명확한 대답을 얻어내려는 질문자의 성급함도 있겠고, 또 그가 문학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제가 하는 일에 흔들림 없는 가치를 확보해두려는 야심도 있겠고, 또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가볍든 무겁든 간에 문학에 대한 불신이 그 이유라면, ‘문학하는’ 그를 위해서나 문학을 위해서나 자못 불행한 일이다. 첫번째 질문을 두번째 질문으로 쉽게 바꾸려 하지 않는 사람은 그 첫 질문이 다음 질문에 담긴 야심을 도와주기에도, 저 불신을 해소하기에도 더 유용하다 느낄 때가 많다. ‘작가선언6·9’에서 묶어낸 『지금 내리실 역은 용산참사역입니다』와 그 출간의 성립과정도 그 예증이 될 만하다.

우리시대의 작가들이 용산에 관심을 가질, 또는 가져야 할 이유는 여럿이지만 결국 하나이다.

무엇보다도 먼저 그 비참한 정황이 있다. 용산의 철거현장에서, 제 삶의 터전을 지키려고 망루에 올라 몸을 떨며 시위를 하던 다섯 사람과 경찰 한 사람이 불에 타서 숨졌을 때, 정부가 그 책임을 회피하기만 했던 것이 아니었음은 우리가 다 아는 바이고, 경찰은 거의 동일한 상황을 연출하여 진압훈련을 했으며, 검찰은 시위자들 가운데 불에 타 숨지지 않은 사람들을 찾아내어 기소했으며, 판사들은 그들에게 이 참사의 책임을 물어 중형을 선고했다. 그래서 1년이 다 되도록 산자들이 고인들(이 말이 오히려 불경하다)에게 마지막 인사도 할 수 없었던 비정한 정황은 시인 이영광에게 “계획적으로/즉흥적으로/합법적으로/사람이 죽어간다//전투적으로/착란적으로/궁극적으로, 사람이 죽어간다”(69면)고 쓰게 하고, 비평가 신형철에게 거의 같은 생각에서 “정치학이 아니라 정신병리학의 소관”(161면)이라고 해야 할 사안을 보여주어 “이제 문학은 법과도 싸워야 한다”(167면)고 말하게 하며, 이 생각은 소설가 공선옥의 다급한 권유로 이어진다. “정녕 당신은, 우리는 그런 나라를 원하는가? 원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당장 용산으로 가야 한다”(177면).

공선옥 자신은 그런 나라가 “돈으로 이루어진 사막”이라고 했고, 다큐멘터리 사진가 노순택은 “한심하고 비열한 나라”이며 “도대체가 이해가 안되는 나라”(377면)라고 했다. 사막은 이해할 수 있지만 사막이 되려는 나라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공선옥이 말하는 ‘사막’은 비유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시인 진은영이 말하는 것처럼, 개발업자들과 그 후원세력이 꿈꾸는 나라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죽음도 시신도 슬픔도 전혀 없었던 것처럼 완벽하게 청소되어, 다른 비슷한 사연을 지닌 동네와 거리들이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세련된 빌딩과 고층 아파트들의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그 번들거리고 말쑥한 표정으로 치장”(267면)된 나라, 아니 그렇게 치장되지 않은 곳이 없는 나라다. 우리는 이 땅의 한조각 한조각이 그 나라로 되어가는 과정을 알고 있다. ‘사람들’이 희로애락을 나누며 희망을 붙이고 살던 터전이 어느날 개발업자에게 넘어가 사람들과 그 삶은 쫓겨나고, 어떤 삶의 내력도 감정도 필요로 하지 않는 “세련된 빌딩과 고층 아파트들”이 들어선다. 수많은 생물이 살고 있고 어민들의 생계가 걸려 있는 개펄을 어느날 한 업자가 차지하여 그 생물의 생명과 어민들의 삶을 빼앗는다. 그러고는 거기에 삶을 비웃고 외면하는, 그 자체가 사막인 건축물이 들어선다. 수많은 생명의 터전이 한 사람의 소유가 될 때 더욱 고통스러운 것은 그 자리에 온갖 삶의 형식을 대신하는, 정확하게는 압살하는 단 하나의 삶의 형식만 허용된다는 것이다. 노순택에게 이런 무모함이 “도대체가 이해가 안되는” 것은 당연하다. 삶의 온갖 자유를 모멸하고, 단 하나의 삶만이 우리의 운명이라고 선언하고 세뇌하는 이 신자유주의의 생각, 또는 생각 아닌 것 속에서는 정신의 온갖 복잡하고 섬세하고 까다로운 조건은 말할 것도 없고, 가장 소박한 삶의 요구도 허용되지 않을뿐더러, 그 까닭을 ‘이해’하려는 노력조차 비웃음의 대상일 뿐이기 때문이다.

조르주 바따유는 젊은날에 썼던 짧은 평문에서 지난 19세기에 백인 남녀들이 “인간의 본디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 사용했던 코르셋이나 종아리에 덧붙인 작은 쿠션의 운명에 대해 말한다. 그것들은 지금 시골 다락방 같은 데 버려져, “개미와 진드기의 먹이”가 되고 “거미의 사냥터”로 바뀌어, 어떤 미친 사람들보다 더 “귀신들려”(『전집』 1권, 185면) 있다. 귀신들려 있다는 것은 수많은 생명의 서식처가 되었다는 뜻이기도 하고, “인간의 본디 모습”이라는 협소한 사고에 의해 억압되었던 (그래서 어떤 정신병을 유발했던) 인간다움과 생명다움이 이제 가지가지 혼령이 되어 거기서 창궐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바따유가 일개 코르셋으로 체험했던 “병리학적 소관” 현상을 우리가 다시 여섯 사람의 죽음과 그 뒤에 따르는 긴 고난으로 확인하는 고통이 또한 크다.

삶을 용납하지 않는 저 억압의 끝에 문학이 ‘있다’. 어떤 방식으로건 생명의 본질적 요구와 결합되어 있는 문학이, 그리고 예술이, 그 억압을 가장 먼저, 가장 많이 느낀다는 뜻에서도 그렇고, 그 억압에 끝까지 저항하여 그보다 더 오래 살아남으며, 그것을 창작의 조건으로까지 삼는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우리시대의 절박한 언어, 그래서 그만큼 아름다운 언어를 담고 있는 『지금 내리실 역은 용산참사역입니다』는 문학하는 사람을 문학하게 했던 열정과 문학의 사회적 책무의식을 결합한다는 점에서, 문학이 자기 앞에 떨어진 문제를 통해 이 시대의 비극을 가장 깊이 체험한다는 점에서 역사적으로 중요하다. 역사가 높은 평점을 줄 것이라는 뜻에서보다는 한 역사가 글 한줄 한줄에 한개 씨앗으로 맺혀 있다는 점에서 더 그렇다. 사와 산문이 모두 그 정성으로 극진하여 끝내는 하나의 형식을 창출한다. 나희덕의 시 「신정6-1지구에서 용산4지구까지」는 15년 전에 시인이 자신의 눈과 귀로 듣고 보았던 철거현장의 비정함에 대한 생생한 묘사 뒤에, 용산 4지구까지 17개의 ‘지구’를 나열하여 “지상의 어떤 방도” 마침내는 그 지구가 되어 “그 전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음을 확인한다. 홍일선의 시 「그날, 붉은 달이 장엄하셨다」는 삶의 터전이 어떻게 가까스로 형성되어 어느날 무지한 폭력 앞에 던져지는가를 소름끼치도록 나직하게 말한다. 한우진의 시 「찔레나무」는 투쟁현장의 빠삐에꼴레를 시연하면서 시인과 우리가 함께 희망하는 ‘불타는 가시덤불’ 하나를 키워낸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작가들이 자신의 형식을 이렇게 들고 온다.

김수영은 “사물의 우매와 사물의 명석성”을 “이제 나는 바로 보”겠다고 시 「공자의 생활난」에서 썼다. 사물의 우매는 삶과 문학을 허용하지 않으나, 바로 보겠다는 의지에 끝까지 버티는 우매는 없다. 문학은 우매함을 명석함으로 타개하고, 상상이 거부당하는 자리에서 상상을 시작하고, 비루한 사물에서 너그러운 말을 발견하는 정신작업의 선두를 양보한 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