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구독 회원 전용 콘텐츠
『창작과비평』을 정기구독하시면 모든 글의 전문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구독 중이신 회원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촌평
셸던 크림스키 『부정한 동맹』, 궁리 2010
현대과학은 누구와 손을 맞잡는가
김상현 金湘顯
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 교수, 과학사회학 shkim67@hanyang.ac.kr
지난해 국내에 소개된 『청부과학』에서 역학(疫學)을 전공한 과학자이자 미국 오바마 정부의 노동부 산업안전보건 차관보인 데이비드 마이클스(David Michaels)는 기업의 이해관계에 발목 잡힌 과학이 어떻게 공중보건과 환경을 위협하는지를 신랄하게 고발한 바 있다(2009년 여름호 촌평 참조). 과학에 대한 기업권력의 개입이 공익을 침해한다는 우려와 비판은 미국에서 특히 2010년 부시 정권의 등장 이후 더욱 활발히 제기되어왔다. 『청부과학』과 같은 해에 출판된 법학자 토마스 맥개리티(Thomas McGarity)와 웬디 왜그너(Wendy Wagner)의 Bending Science(과학의 굴절)는 또 하나의 예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의 흐름은, 논자에 따라 다소 차이를 보이기는 하지만, 대체로 일부 기업과 그에 고용된 과학자 및 미디어 전략가들이 이해득실에 따라 연구결과를 왜곡하거나 특정 내용을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있음을 폭로하는 데 초점을 맞춰왔다. ‘청부’ 혹은 ‘굴절’ 등의 표현은, 부당한 외부 개입만 없다면 최선의 결과를 가져다줄 수 있는 과학이 부도덕하고 무책임한 집단에 의해 유린되고 있다는 인식을 함축한다. 그런데 이러한 인식은 정작 과학에 대한 기업권력의 광범한 개입을 가능케 한 제도적 배경, 즉 지난 수십년간 돌이킬 수 없는 수준으로 전개된 과학의 상업화와 지식의 상품화에 대한 비판적 검토를 소홀히하게 만든 측면이 있다.
그런 점에서 미국 터프츠대학 도시환경정책 및 계획학과와 공중보건 및 가정의학과 교수로 재직중인 셸던 크림스키(Sheldon Krimsky)의 『부정한 동맹』(Science in the Private Interest, 김동광 옮김)은 『청부과학』이나 『과학의 굴절』보다 몇년 앞서 출간되었음에도 내용면에서는 한발 더 나아간 책이라고 하겠다. 저자는 과학연구 결과를 왜곡하려는 일부 기업의 노골적인 시도들에 대해 앞의 두 책과 마찬가지로 강한 비판을 제기하지만, 사적 이해관계가 과학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이 훨씬 다양하고 복잡할 수 있다는 점을 짚어준다. 실제 과학과 자본의 긴밀한 연계는 산학협력 혹은 지적재산권 등의 형태를 띠면서 바람직한 것으로 주창되고 적극적으로 추구되어왔는데, 『부정한 동맹』은 그같은 과정이 일상적인 과학활동에 어떠한 파급효과를 가져오는지 주목할 것을 촉구한다.
총 13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생명과학 및 의과학 분야의 사례들을 중심으로 과학의 상업화, 지식의 상품화와 관련된 다양한 주제를 다룬다. 대학이 점차 영리기구화되고(3장), 대학 소속 과학자들이 기업에 임원으로 관여하는 등 이중소속이 증가하며(7장), 연구기법과 결과물에 대한 사적소유권이 확산되는(4장) 과정을 추적한다. 다른 한편 과학의 상업화와 지식의 상품화가 진전됨에 따라 발생하는 이해의 상충(8장)이 과학자사회의 규범(5장), 학술지 운영과 출판(10장), 정부의 정책자문(6장), 나아가 연구문제의 설정, 연구의 진행 및 결과 도출(9, 11장)에 어떻게 반영되고 있는지를 고찰한다. 이를 통해 저자는 오늘날 과학이 일반적인 인식과 달리 사회로부터 독립되어 존재하는 공평무사한 활동이 아니며, 기업권력의 포괄적인 영향하에 정치적・경제적 이해관계를 그 일상적 활동에 반영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처럼 과학의 상업화, 지식의 상품화가 공고히 뿌리내렸다는 인식은, 그 자체로는 문제가 없는 가치중립적인 과학이 다만 기업 등 외부 압력에 의해 왜곡되고 오용되고 있다고 파악하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물론 이러한 인식차가 있다고 해서 완전히 다른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다. 과학연구, 평가 및 정책자문에 참여하는 전문가들이 재정적 이해관계를 공개하여 각자의 이해가 대립할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해야 하며 또한 외부 압력으로부터 과학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보호하고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한 법제도적 개선이 필요함을 지적한다는 점에서(12~13장) 『부정한 동맹』의 시각은 『청부과학』이나 『과학의 굴절』의 대안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이 책은 사적 이해관계라는 ‘오염’을 거둬냄으로써 상아탑 과학의 이상을 옹호하고 실현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거꾸로 공익적 가치를 명시적으로 우선시하는 과학을 제도화하고 장려해야 한다고 역설한다(11, 13장).
아쉬운 것은 지난 30여년간 과학과 위험에 관한 역사학・사회학・인류학 연구가 제시해온 중요한 성과들이 검토되지는 못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많은 과학사・과학사회학 연구들은 ‘오류’만이 아니라 공유된 기준에 따라 엄격히 진행된 ‘객관적’ 과학도 사회문화적 속성을 지니고 있음을 설득력있게 보여주었다. 즉 위험평가에서 의도적 왜곡을 걸러낼 수 있다 해도 의식하지 못하는 편견과 정상적 과학에 내재하는 사회문화적 가정은 어떻게 구분해낼 것인가, 사실-가치의 경계는 어떻게 구성되는가 같은 질문들에 결코 쉽게 답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과학 자체가 그러할진대, 과연 무엇이 ‘공익’이며 그것이 성취되기 위해 어떠한 경로가 필요한가를 둘러싸고 서로 다른 해석과 제안들이 충돌하리라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안타깝게도 『부정한 동맹』은 이러한 경계의 모호함과 맥락의존성에 별다른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그 결과, ‘공익 과학’(public-interest science)을 주장하는 것에서처럼 주류적 통념과 다른 입장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논리는 주류적 논의의 한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한계는 의외인데, 애초 물리학과 철학을 전공한 저자는 1970년대 후반 재조합 DNA 기술에 관한 사회적 논쟁에 참여하면서 일찍부터 과학기술과 사회의 상호관계, 위험의 사회문화적 이해 등을 연구해왔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점들이 있긴 하지만 『부정한 동맹』은 과학에 대한 기업권력의 개입에 비판적인 다른 많은 입장들과 달리 행위자의 부도덕성에 집중하지 않고 과학의 상업화와 지식의 상품화라는 폭넓은 맥락에 주의를 환기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는 한국의 진보진영이 과학 관련 사안들에 어떻게 접근할지 고민하는 데도 유용한 시사점이 될 것이다. 미 쇠고기 수입, 4대강사업, 천안함사건 등 최근 이슈들에 대한 진보진영의 시선은 ‘과학은 진실을 가리키고 있으되 이를 의도적으로 왜곡하는 보수세력이 문제’라는 단순한 해석틀에 상당부분 의존하고 있다. 이는 과학의 사회적 맥락을 도외시하고 정치를 기술적 이성에 예속시킬 수 있다는 차원에서도 문제이지만, 과학의 올바른 사회적 위상과 역할이라는 논쟁점 자체를 간과하게 만든다는 점에서도 위험하다. 사실 과학기술에 대한 군사정권의 개발주의적・국가주의적 전유를 적극 계승하고 신자유주의 요소들을 도입해 대학의 산업화와 과학의 상업화를 추진하는 데 매진한 것은 소위 ‘민주정부’의 10년간이었다. 좀더 보수적인 세력에 맞서야 한다는 압박은 이 시기 ‘부정한 동맹’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지체시켰고, 결국 과학기술의 진보정치를 사유하는 것도 가로막고 있다. 『부정한 동맹』이 제공하는 통찰이 그러한 문제점을 명료하게 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