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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최성일 『어느 인문주의자의 과학책 읽기』, 연암서가 2011

열정적 탐독가, 탁월한 안내자의 기록

 

 

이필렬 李必烈

방송대 교수 lprlso@gmail.com

 

 

14809제목이 시선을 끈다. ‘인문주의자’와 ‘과학책’의 조합이 좀처럼 어울릴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어느 인문주의자’는 얼마전에 작고한 출판평론가 최성일(崔成一)이다. 그가 이 책을 내기 위해 읽은 과학책은 100권이 넘는다. 국문학을 공부한 저자가 그토록 많은 과학책을 읽었다는 사실 자체가 경이롭다. 비록 그가 책을 소개하고 비평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있었다고 해도. 다룬 책도 광범위하다. 『고사성어 속 과학』 같은 청소년 대상의 책부터 과학자의 전기뿐 아니라 물리학 전문서에 가까운 『최초의 3분』에 이르기까지 과학책의 세계를 종횡무진 섭렵한다.

단순히 소개만 하는 것이 아니다. 스티븐 제이 굴드의 『다윈 이후』를 “참 아름다운 과학책” “가장 잘된 과학책 번역”으로, 올리버 쌕스의 『뮤지코필리아』를 “독자로 하여금 지적인 충만함과 황홀감을 맛보게 하는 위대한 책”으로, 쁘리모 레비의 『주기율표』를 “위대한 책이란 게 있다면, 바로 이런 책일 것”이라고 극찬하는가 하면, 미국이 한국과 베트남에서 저지른 “반환경적인 작태”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비무장지대의 자연생태계를 잘 보전하라”고 말한 에드워드 윌슨의 조언을 고깝게 듣고, “이를 튼튼하게 해주는 불소”라는 내용 앞에서는 독성물질로 분류되는 불소를 수돗물에 섞는 일은 “매우 위험한 공중보건 정책”이라고 일갈하며, 생명공학의 위험성이 확인된 바 없고 증거도 없다는 과학사회학자 도로시 넬킨의 주장에 대해서는 1995년의 이야기라고 해도 “시대착오적”이라고 단호하게 비판함으로써 자신의 생태주의 시각을 확연하게 드러낸다.

번역의 잘못이나 내용상의 오류에 대해서도 매우 엄격하다. ‘망원경 발견의 중요성’이라는 번역문을 놓고 망원경은 발명품이라고 지적하고, 갈릴레이가 80년에서 2년 덜 살았다고 고쳐주며, 200612월에 출간된 『코스모스』 특별판에 이미 그해 여름에 “행성의 지위를 박탈당”한 “명왕성이 태양계의 일원으로 버젓이 등장한다”고 나무란다. 이쯤 되면 과학에 대한 저자의 교양은 수준급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니 ‘겁도 없이’ ‘인문주의자들이’ 기피하는 어려운 과학책을 읽고 소개하는 일에 달려들기로 작정할 수 있었으리라.

대다수 의례적인 서평과도 ‘격’이 다르다. 시간에 쫓겨 슬쩍 훑어보거나 서문과 출판사 책소개를 참조하며 쓰는 것이 아니라, 책을 통독하면서 쓴 것 같은 느낌이 물씬 난다. 게다가 세심하게 편집의 실수나 오역을 고쳐주고, 유사한 주제를 다룬 책까지 두루 참조하는 열성 앞에서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글 하나하나도 읽는 맛이 괜찮다. 코스모스, 오펜하이머, 갈릴레이, 원자폭탄 역사에 관한 글 등은 완결성을 지닌 훌륭한 과학에쎄이다. 코페르니쿠스를 ‘이론물리학자’, 갈릴레이를 ‘실험물리학자’로 비유하며 글을 시작하는 솜씨도 일품이고, 과학에 대한 저자의 이해가 상당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제 본격적으로 평을 해보자. 방법은 소개된 책 중에서 몇권을 골라 저자의 글과 평자의 독서감상을 비교해보는 것이다. 쁘리모 레비의 『주기율표』에 대한 소개는 책 전체가 깔끔하게 정리된 것 같은 느낌이다. 책 내용에 기대 유전자조작의 부당함이나 현실비판적 발언을 슬쩍 끼워넣는 것도 양념으로 제격이다. 소개글로는 최고 수준이다. 나는 『주기율표』를 꽤 오래전에 읽었다. 거의 몰입 수준에서 감탄하면서 읽은 기억이 있다. 이 책은 화학자이면서 문필가인 레비의 화학과 세상에 대한 자기고백이고, 파시즘에 희생된 친구들을 위한 진혼가다. 레비는 이 책을 통해서 화학과 글쓰기를 융합한다. 자연에 대한 화학의 설명력과 실험의 정직성에 찬탄했고 작가로 활동하면서도 끝까지 화학자로 남은 그로서는 아우슈비츠 경험 후 불가항력적으로 끌려가게 된 글쓰기와 화학을 화해시키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화학을 공부했지만 다른 곳으로 가버린 내가 『주기율표』를 읽으며 찬탄하는 것도 당연하리라. 물론 최성일도 “위대한 책”이라고 마무리함으로써 그가 받은 감동을 표시하지만, 그의 접근은 조금 건조한 편이다. 그래도 『주기율표』에서 화학자 레비는 무시하고 아우슈비츠 생존자 레비만 건져내서 보려는 여느 ‘인문주의자’들의 서평보다는 훨씬 좋다.

『부분과 전체』에 대한 평에서는 양자역학과 저자 하이젠베르크에 대한 지식이 꽤 돋보인다. 이 책은 닐스 보어를 비롯한 양자역학의 주역들이 남긴 기록 중에서 가장 뛰어난 것이다. 마지막 플라톤주의자로 평가받는 이의 저서답게 내용도 심오하다. 25년전쯤 나는 이 책을 거의 단숨에 읽었다. 최성일은 하이젠베르크의 최대 업적인 불확정성 원리를 설명하는 것으로 글을 시작한다. 그의 서술은 일반 독자들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평이하고 친절하다. 그리고 하이젠베르크가 독일 핵무기 개발에 협조하지 않았다는 주장에 논란의 여지가 있다는 최신 자료를 소개함으로써 글을 마무리한다. 과학사학자나 관심을 가질 법한 그런 자료까지 챙긴다는 점이 놀랍다.

올리버 쌕스의 『뮤지코필리아』, 도로시 넬킨의 『셀링 사이언스』, 폴 블랭크의 『생활용품이 우리를 어떻게 병들게 하나』, 스티븐 와인버그의 『최초의 3분』은 이 책을 통해 처음으로 읽었다. 최성일은 이들 책을 모두 충실하게 소개한다. 『뮤지코필리아』는 그의 지병인 뇌질환과도 연관이 있는 책이어서인지 더 애정을 가지고 대한다. 그러나 『최초의 3분』에 와서는 내용이 전문적이어선지 대부분 원저의 인용문으로 글을 채운다. 그래도 글의 연결에는 무리가 없다.

『어느 인문주의자의 과학책 읽기』는 평범한 서평 모음이 아니다. 고전으로 취급되는 과학책의 내용을 요약해주는 종류의 책도 아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과학책 읽기를 좋아했던 저자가 과학분야의 갖가지 양서를 자기 시각을 담아 충실하게 소개해주는 내용으로 가득차 있으니, 좋은 과학책 읽기 입문서라고 부르는 게 적절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