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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구갑우 『비판적 평화연구와 한반도』, 후마니타스 2007
평화담론의 성취를 위한 비판적 제언
김연철 金鍊鐵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교수 dootakim@hanmail.net
평화, 한반도에서 가장 익숙한 단어다. 그러나 평화에 대한 우리의 상상력은 빈곤하다. 왜 그럴까? 그동안 한반도의 역사에서 안보의 시대는 너무 길었고, 평화의 미래는 너무 멀어 보였다. 어쩌면 상상력의 빈곤은 전쟁과 냉전시대가 그어놓은 금지선 때문일지도 모른다. 구갑우(具甲祐)의 저서 『비판적 평화연구와 한반도』는 선을 넘었다. 그래서 구체적인 부분에 대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틀의 제시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분단시대가 설정해놓은 안보담론의 경계를 넘어서, 평화담론을 본격적으로 펼쳐 보인다. 북핵문제가 산을 하나씩 넘고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가 활성화되고 있는 현재의 상황에서 평화란 무엇이며, 어떤 평화를 어떻게 이루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제기는 시의적절하다.
이 책에서는 무엇을 주장하고 있는가?
첫째는‘평화국가 만들기’이다. 평화국가론은‘군사적 방법에 의한 안보를 추구하는 근대국가’를 부정하고,‘평화적 방법에 의한 평화’를 추구하는 탈근대적인 기획을 말한다. 국가중심적 안보담론이 아닌 시민사회 중심의 평화담론이기도 하다. 이 새로운 국가 만들기는 선(先)군축을 통해 남한사회의 구조변화를 추동하고 그 변화를 토대로 한반도에서는 북한을, 국제적 차원에서는 동북아 국가들을 평화국가로 바꾸어가고자 하는 소망을 담고 있다. 부국강병을 추구하는 근대국가의 정체성이 아니라, 친선과 평화를 추구하는 평화국가의 정체성을 주장한다.
둘째는 평화담론의 새로운 대안을 제시한다. 2장에서는 평화담론의 역사와 이론, 3장에서는 남북관계에 관한 새로운 이론, 4장에서는 비판적 국제관계 이론을 논한다. 그동안 한반도 안보문제를 다루어왔던 주류적인‘신현실주의’에 대한 비판이 핵심이다. 이론의 성찰을 통해 제시하는 대안적 구상 역시 주목할 만하다. 저자는 힘에 의한 질서를 추구하는‘신현실주의’에 입각한 평화는 분단체제의 현상유지와 동의어라고 비판한다. 이에 비해 대안적인 국제이론은 질서의 종언 또는 질서로부터의 해방을 주장한다. 대안의 방향과 관련해서는 한미동맹에 대한 자발적 종속에서의 탈피, 역사적 냉전블록의 해체 필요성, 외교안보정책의 민주화, 공동안보를 통한 군축, 동북아 또는 동아시아 수준에서‘시민국가의 연합체’로서의 지역국가 구상을 포함한다.
셋째는 북한문제와 통일담론에 대한 비판적 접근이다. 7장에서 최근 외국의 북한연구들을 오리엔탈리즘이라고 지적하면서, 편향된 가정들을 비판하거나 북한연구에서의 이론의 부재를 문제삼는다. 물론 진보진영에서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합리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나, 남북한 주민의 삶이 민족의 신화보다 중요하다는 주장, 그리고 한반도 통일과 관련해서 국가 비판과 자본주의 비판이 동시에 요구되며 국가와 민족을 넘어서야 한다는 주장 등은 도전적인 문제제기가 아닐 수 없다.
넷째는 한국의 평화운동에 대한 성찰의 필요성도 제기한다. 공론의 장에서 평화운동이 헤게모니를 얻기 위해서는 시민에 대한 설득력, 재원, 인력, 평화교육이 중요함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 책은 평화에 관한 근본적 성찰을 담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많은 비판이 있었고 있을 것이다. 비판의 근거는 대안적 평화담론과 거리가 있는 한반도의 현실일 것이다. 그동안‘평화국가 만들기’에 대해 현실주의적 시각에서 너무 이상적이라는 비판이 제기된 바 있다. 물론 저자도 이러한 담론이 유토피아 혹은 미완의 기획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지만‘패러다임 전환’의 필요성이 더 크다고 주장한다. 평화담론의 구성요소들이 평화담론을 이끌어갈 정치사회세력의 그물망을 엮을 수 있는 소통의 매개체가 되기를 소망하고 있으며, 이상주의가 아닌‘새로운 현실주의’의 가능성을 역설하고 있다.
물론 평자도‘존재하지 않는 곳’이라는 어원을 가진‘유토피아’의 힘을 부정하지 않는다. 문익환 목사가 즐겨 인용했던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는 성경구절의 의미도 알고 있다. 그러나 평화담론의 확장을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점들에 대한 대답이 필요하다.
첫째, 평화담론이 시민적 공감대를 얻기 위해서는‘지금 이곳’에서 평화의 목표를 향해 어떻게 나아갈 것인지 보여주어야 한다. 안보담론에서 평화담론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시민들의‘관념의 변화’를 이끌어내기에는 당위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남한의 선군축이 남북한의 군비감축을 가져올 것이라는 주장이나, 한반도의 평화가 동아시아의 평화를 선도할 수 있다는 주장은 구체적인 설득력이 떨어진다. 군사적 신뢰구축에서 군비통제로의 단계적 전환이나, 한반도 평화와 동북아 평화의 선순환이 훨씬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둘째,‘평화국가 만들기’는 저자도 인정하듯이 모순적 개념이다. 시민중심의‘탈근대적 기획’이면서, 동시에 안보국가에서 평화국가로의 국가성격의 전환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시민중심적 기획보다는 국가 차원의 담론과 시민사회 담론의 조화가 필요한 것이 아닐까?
셋째, 북한의 변화에 대한 시각이다. 북한에는 시민사회가 없다. 남북한 시민사회 차원의 협력은 북한의 변화를 전제하는 것이다. 민주화와 시민사회의 남북한간 비대칭성을 인정하면서, 북한이라는 국가와의 협력을 통해 최소한‘소극적 평화’라도 얻어내는 것이‘적극적 평화’의 출발점이 아닐까? 그렇다면 통일담론과 평화담론의 현실적 타협도 불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전쟁과 냉전시대를 겪으면서 평화는 현실의 문제가 아니라 미래의 지향이었다. 그러나 현재의 한반도 정세에서 평화는‘현실의 과제’로 다가오고 있다. 저자의 주장처럼 냉전블록의 위기감도 구체화되고 있다. 평화담론이 필요한 때이다. 대안적 평화담론이 성찰의 기회를 제공하고 담론의 영역을 확장한 것에 대해서는 평가할 수 있지만, 평화 만들기의 현실적 동력을 위해서는 더 많은 시민들의 공감대를 얻을 수 있는 담론의 진화가 필요한 것이 아닐까? 후속연구를 기다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