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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과 현장
이명박정부 이후의 대북정책 구상
최근의 논의들에 대한 검토
이승환 李承煥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공동대표. 통일맞이 사무처장, 민화협 정책위원장 등 역임. 「문익환, 김주석을 설득하다」 외 여러 글이 있음. peaceleesh@daum.net
*이 글에서 주로 다룰 책은 다음과 같다. 홍석률 『분단의 히스테리』(창비 2012), 이종석 『한반도 평화통일론』(한울 2012), 조성렬 『뉴한반도비전』(백산서당 2012), 박명규 『남북 경계선의 사회학』(창비 2012). 인용시 출처는 저자명과 면수만 표기한다.
남북관계를 둘러싼 지난 4년의 복잡한 현실은 정치적 입장 여하를 떠나 통일문제를 한국사회의 장기적 발전전략 속에서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전 10년의 대북정책과 대비되는 이명박정부의 대결적 대북정책은 역설적이게도 대북정책과 담론에 대한 여러가지 성찰적 문제의식을 심화시켰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명박정부 말기에 대북정책과 통일담론을 다룬 책들이 쏟아진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한반도 데땅뜨의 흥망과 분단체제의 얼굴
홍석률(洪錫律)은 1968년 1·21사건에서 1976년 판문점 도끼살해 사건까지 ‘위기→긴장완화→위기’를 반복하는 남북관계의 첫 순환주기 분석을 통해, 분단체제의 숙성과 작동 과정을 생생히 그려낸다.
그는 먼저 미중 데땅뜨가 남북관계의 위기와 분단의 내재화로 귀결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미중관계의 개선은 남북한으로 하여금 직접 대화에 나서도록 만들었고, 이는 1972년 7·4남북공동성명 발표로 이어졌다. 당시 미·중 두 나라는 모두 한반도 분단문제를 국제적 분쟁사안으로 만들지 않고 한반도화·내재화하는 정책을 추구했기 때문에, “남북이 ‘자주’를 표명한 것은 ‘외세’로부터도 충분히 환영받을 이유가 있었다.”(홍석률 199면)
7·4공동성명은 미중관계의 맥락에서 분단문제가 한반도화하는 전환점이었고, 이는 분단을 유지하는 주된 책임과 부담이 남북한에 전가되는 것을 의미했다. 결국 데땅뜨는 동서 진영대결보다 남북의 체제경쟁 논리가 분단을 유지하는 주요 동력이 되는 과정이었다. 격화된 체제경쟁 속에서 남북은 ‘적대적 공모’라도 한 듯이 유신체제와 유일체제·후계체제를 성립시켰다. 이에 따라 남북대화는 경색되었고 판문점 도끼살해 사건으로 한반도의 데땅뜨는 몰락하고 말았다.
이처럼 가다서다를 반복하며 변덕을 부리는 분단체제의 얼굴은 한반도 특유의 ‘이상한 공식’과 연결된다. 푸에블로호사건에서 처음 출현한 이 공식은 ‘위기가 고조되어야 대화에 나서는’ 현상을 말한다. 이 공식이 지배하는 조건에서는 적대감의 고조로 협상을 성사시킨다 하더라도 상호신뢰를 구축하기 어렵고, “그러니 대화는 쉽게 중단되고 어쩌다 유의미한 합의가 나와도 끊임없이 그 실행을 둘러싸고 갈등이 재연”되는 것이다(홍석률 79면).
또한 홍석률은 한반도의 분단상황이 휴전상태로 장기 지속되고 있는 이유를 분단의 내재화에 내포된 모순성에서 찾는다. 그 모순성은 미·중이 분단의 내재화를 통해 한반도 분단 유지의 책임을 남북한에 떠넘겼지만 그와 별개로 자신들의 영향력은 그대로 유지하려는 데서 발생한다. 이 모순은 관련 주체들의 갈등 방치와 책임 전가, 권력의 무책임성과 식민성의 원인이 된다. 즉 한반도 분단체제는 관련된 여러 주체들이 문제해결을 방치하거나 그 책임을 서로에게 전가하는 구조 속에서 유지되는 양상을 보이는 것이다.
탈냉전 진행의 비동시성과 포용정책
홍석률이 그려낸 이러한 분단체제의 작동방식은 세계적인 탈냉전 이후에도 여전히 지속된다. 그 이유는 이종석(李鍾奭)이 말하는 ‘탈냉전 진행의 비동시성’ 때문이다. 이 비동시성은 홍석률이 지적하듯이, 세계체제와 남북 두 분단국가의 체제 사이에서 양자의 연동을 매개하고 왜곡시키는 ‘분단체제’의 존재로 인한 것이다(홍석률 404면). 이 ‘분단체제’ 때문에 세계적인 탈냉전에도 불구하고 한반도의 냉전은 해소되지 않았고, 그로 인해 국제적으로는 탈냉전 지향의 중국과 냉전 고수적 북한 사이의 균열, 대북문제를 둘러싼 한국과 미국의 불협화가 일어나고, 한반도에서는 이명박정부하에서의 남북간 적대성 강화 등이 발생하고 있다.
이종석은 ‘냉전해체의 비동시성’과 함께 탈냉전 이후 한반도에서 발생한 중요한 정세변동의 하나로 북중관계의 변화를 강조한다. 북중관계의 변화는 북한경제의 위기해소 방식과 북핵문제 처리방식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즉 “북중관계의 전략적 유대가 정치안보적 분야에서 경제 분야까지 확장됨으로써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서방이 북한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경제제재를 채택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진 것으로 보인다”(이종석 88면)는 것이다. 또한 그는 북중경협이 남북경협 축소로 발생하는 문제를 보완하는 대체재 역할을 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남북경협을 통제하는 남한정부의 대북조처는 북한에 고통을 주기보다는 한국경제의 기회의 창으로 남아 있던 북한 시장만을 상실케 하는 모순덩어리가 되었다”(이종석 317면)고 진단한다.
이런 문제인식의 당연한 귀결로서 이종석은 ‘한반도 냉전구조의 해체’와 ‘북한문제의 주도적 해결’을 강조한다. 이를 위해서는 북한을 설득할 수 있는 독자적인 통로, 즉 상설적인 남북대화와 협력이 필수적이다. 이는 ‘햇볕정책’이라 불리는 대북정책 구상의 전형이다.
이종석은 햇볕정책의 입장을 확고히 견지하면서, 변화된 정세를 반영하여 대북정책이 진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우선 북중관계의 변화로 한・미가 경제적 압박수단을 상실했기 때문에, 북핵문제 해결과 남북관계 개선,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동시에 추진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한다. “남북관계를 북핵문제와 동시 발전시키되, 북핵문제가 지체될 경우에도 일정한 독립성을 가지고 발전해갈 수 있는 새로운 대북전략이 필요하다”(이종석 319면)는 것이다. 이는 ‘경제-안보 교환’의 접근법에서 평화체제와 북핵을 주고받는 ‘안보-안보 교환’을 포함하는 포괄적 접근법으로의 변화를 의미한다.
이어서 그는 백낙청(白樂晴)의 ‘포용정책 2.0’의 문제의식을 수용하여 기존 포용정책의 진화를 제안한다.1) 이종석이 말하는 포용정책 2.0은 참여정부의 대북정책 추진 당시에는 제대로 관심을 쏟지 못했던 요소(시민참여의 제도적 확대)나 새롭게 제기되는 관심들(남북연합의 구체적 프로그램, 환경・생태 등을 고려하는 남북협력)을 포괄하는 업그레이드된 구상이다(이종석 320면). 이종석의 이러한 입장은 지난 정부의 포용정책 추진세력을 대표하는 성찰로 이해된다.
‘포괄적 안보-안보 교환’의 접근법
조성렬(趙成烈)은 많은 부분에서 이종석과 유사한 지점에 서 있다. 그는 중국의 부상과 미국의 쇠퇴로 낡은 질서가 붕괴하고 있는데도 한반도에는 아직 새로운 질서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면서, 이러한 위기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한반도 평화체제의 구축과 북핵문제의 해결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북핵문제의 해법과 관련하여 기존의 ‘경제-안보 교환’ 접근법이 한계에 봉착했다고 판단한다. 잘 알려져 있듯이, 9·19공동성명은 포괄적 합의였지만 그것의 단계적 이행 서약인 2·13합의와 10·3합의는 ‘경제-안보 교환’의 성격을 지녔다. 그런데 이 합의를 통해 북한은 핵시설 불능화의 댓가로 겨우 중유 100만톤을 얻었을 뿐이고, 또 이명박정부의 등장으로 ‘경제-안보 교환’ 접근법이 계속 작동할 수 있을지도 불투명해졌다. 그래서 6자회담이 재개된다 하더라도 북한은 ‘경제-안보 교환’ 접근법에 대한 불신을 쉽게 버릴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조성렬 123면).
이에 그는 새로운 대안으로 ‘포괄적 안보-안보 교환’ 접근법을 제안한다. 이 접근법의 핵심은 한반도 평화체제와 기타 안보 및 경제 인센티브와 북핵을 교환하는 것이다. 그리고 북핵-평화체제 병행 논의, 남·북·미·중 4자포럼의 중심적 역할, 인권문제 등 비안보적 현안의 분리 접근 등을 그 추진방향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런 포괄적 접근법은 보수진영에서도 주장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만큼 그 타당성을 인정받고 있다.
그는 지금까지 제시된 대북정책 구상을 한반도문제 접근법(경제-안보 교환론 대 안보-안보 교환론)과 한반도문제 주도권(남북관계 우선론 대 동북아 국제관계 우선론)의 틀로 구분한 후, 햇볕정책은 경제-안보 교환론과 남북관계 우선론으로 구성된 입장인 반면, 자신의 입장은 안보-안보 교환론과 남북관계 우선론에 근거한 새로운 화해·상생의 통일 프로세스라고 차별화한다(조성렬 308면). 물론 이는 인위적인 구별에 지나지 않는다. 앞에서 보았듯이, 이종석의 진화된 포용정책 접근법은 조성렬과 사실상 같은 궤도에 위치해 있다.
남북관계의 비대칭성과 구성성(構成性)
탈냉전 세계정세의 한반도적 맥락에서 출발하는 이종석, 조성렬과 달리, 박명규(朴明圭)는 남한사회 내에서 진행된 다원적 변화와 그로 인한 ‘남북관계의 비대칭성’ 확대에 주목한다. 그는 분단체제의 작동에 영향을 주는 이런 변동요인의 발생으로 남북관계는 기존의 민족관계와 적대관계라는 이중성과 함께 준(準)국가관계라는 차원이 새로 확장되고 있다고 진단한다. 비대칭적 변화의 확장에 따라 북한은 이데올로기 공세의 차원에서나 이야기하던 ‘2체제 용인론’을 사실상 북한체제의 존속과 관련된 관건적 원리로 강조하게 되었고, 남한 또한 북한을 준국가적 실체로 인정할 여유도 생겼으며, 북한에 대해 인권, 핵 문제 등에서 국제 레짐(regime)의 작동을 주문하는 요구도 확대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흔들리는 분단체제의 현단계를 ‘비대칭적 분단국체제’로 개념화한다.2)
박명규가 주목하는 남북관계의 비대칭성은 단지 경제력 격차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는 기업이나 비정부기구 등 남한의 시민사회가 남북관계의 질적 차이를 가져오고 있다고 보고, 남북관계에 이런 민간의 자발적 참여가 커질수록 비대칭성은 계속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리고 이 시민사회적 공간이나 시장상황 등은 시간적 차원에서 ‘구성성’이라는 새로운 특성을 보인다고 주장한다. “구성성은 항구적인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일시적인 것도 아닌 일정한 제도화의 힘을 의미한다”(박명규 83면).
민간부문에서 형성되는 다양한 차원의 관계와 상호보완성은 그 관계의 불안정성에도 불구하고 매우 유용한 융통성과 자발적 구성능력을 지닌다. 박명규는 백낙청이 말하는 ‘한반도식 통일과정’의 특징이 바로 이런 구성성에 바탕을 둔 논의라고 본다. 동시에 그는 “유연성 자체가 초래하는 어려움과 난관을 과소평가할 우려”(박명규 84면 각주)도 언급하는데, 이는 “민간영역의 여러가지 사업도 정치상황에 크게 좌우될 뿐 아니라 간혹 한순간에 약화될 수도 있음”(박명규 97면)을 강조하는 것으로 보인다.3)
박명규는 남북관계의 비대칭성 심화가 통일과정에서의 주도성, 책임 및 부담 문제와 연결될 수밖에 없다고 판단한다. 흡수통일을 의도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비판되어야 하나, 남한은 통일과정에서 나타날 주체적 개입 권한과 책임 문제를 충분히 인식하고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그는 한국 시민사회의 다원화가 통일의식의 약화와 통합방식의 변화를 초래하고 있고 또 동북아 지역통합의 가능성 등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통일론을 이전처럼 국민국가건설 프로젝트의 완수라는 수준에서 접근하는 것은 세계사의 시간성과 괴리를 불러올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문제의식에서 그는 기존의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개선한 ‘연성복합통일론’을 제시한다. 그의 연성복합통일론은 민족공동체 통일방안과의 연속성 위에서, 기능주의·긴장관리·신뢰구축이 결합되는 통일과정의 재구성과 함께 비대칭성에 따른 남북간의 차등적 책임 부여, 그리고 다중적 연대와 복합적 제도화로서의 남북연합의 재구성 등을 업그레이드하려는 시도로 이해된다.
포용정책 이후의 포용정책
지금까지 검토한 논의들은 모두 이명박정부하에서 진행된 포용정책 폐기와 압박정책으로의 선회가 결코 적절한 대안이 아니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홍석률의 지적처럼 이명박정부의 선(先)북핵포기 정책이 북핵 매듭만 세게 잡아당긴 결과 남북관계 매듭이 경색되었고, 이 과정에서 미중관계, 한미관계, 한중관계, 북중관계의 매듭도 더욱 꼬여만 갔기 때문이다(홍석률 39면). 또 이종석, 조성렬, 박명규는 압박정책의 부적절성과 함께 포용정책이 변화·발전할 필요성도 지적하고 있다. 대북정책을 직접 다루고 있는 이들의 논의는 모두 민족공동체 방안이나 포용정책의 업그레이드 내지 재구성을 목표로 두고 있다. 그러나 이런 공통성에도 불구하고, 포용정책 이후의 대북정책 방향과 관련된 몇가지 문제에서는 이들 사이에 강조점의 차이가 있고, 또 그중에는 약간의 검토가 필요한 대목도 있다.
이종석은 지난 정부의 포용정책을 보완하는 ‘진화’의 관점에서, 조성렬은 북핵문제의 포괄적 접근에 기초한 새로운 통일 프로세스를, 그리고 박명규는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연성복합통일론으로 재구성하려는 입장을 보인다. 이들 각자가 강조하는 문제들은 하나같이 중요하여 그 경중을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지만, ‘포용정책 이후의 포용정책’의 출발지점이 어디인지는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포용정책 2.0을 처음 제기한 백낙청의 핵심 논점은 이종석의 지적처럼 “시민참여의 획기적 강화와 남북연합의 의식적 실천”이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교류협력이 통합과 통일의 충분조건은 아니라는’ 좌우 양쪽의 기능주의 비판을 의식하여 주로 ‘통일의 현실적 프로세스로서의 남북연합’에 관심을 집중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포용정책 2.0의 핵심은 오히려 ‘시민참여’에 있다고 생각된다. 그것은 ‘점진성과 공존’을 특징으로 하는 한반도식 통일과정과 민주주의의 진전에 따른 시민사회의 확장 추세 등을 고려할 때, 시민참여형 통일과정에 대한 의식적 실천, 그리고 통일 논의와 시민적 가치의 결합을 통한 대북정책의 재구성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남북연합도 이런 시민참여형 통일과정과 결합하여 추진될 때 비로소 ‘업그레이드’로서의 온전한 의미를 지닌다.
그래서 시민참여의 문제를 민족구성원의 동의 또는 남한주민의 공감과 지지라는 차원에서 접근하거나,4) 지난 정부 시절 미처 관심을 쏟지 못한 부분을 보완하는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은 아무래도 미흡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점에서 시민참여의 문제가 “당위나 정치적 제스처로 제기되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며, 추상적인 국민 일반의 심정적 지지나 동의가 아니라 “남북관계에 다양한 사회주체의 자발적 영역과 활동공간을 수용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박명규의 지적은 매우 적절하다(박명규 78~79면). 그러나 이런 지적도 남북 양 정부와 함께 시민사회라는 제3당사자를 포괄하는 통일과정과 담론의 재구성이 ‘구체적으로’ 제시될 때 더욱 의미가 살아날 수 있다.
남북연합론의 재구성
또 하나 살펴볼 점은 ‘남북연합’에 관한 것이다. 특히 남북연합 단계와 통일국가 단계를 구분하는 민족공동체 방안의 ‘단일국민국가건설론’의 적실성이 비판적으로 검토되어야 한다.
남북연합을 과도적 정치연합으로 보는 것은 단일 국민국가 건설을 ‘완전한 통일’로 보는 시각의 연장이다. 그러나 완전통일이란 의미의 통일국가 단계를 공식화하는 것은 필경 ‘흡수통일론’으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높을 뿐 아니라, 한반도식 통일과정을 시민참여에 의해 다중적으로 진행되는 ‘복합적 정치공동체’의 수립 비전과 연결하는 상상력을 근본적으로 제약할 개연성이 크다. 남북연합은 낮은 수준에서 출발하는 ‘느슨한 통일’이지만 그 자체가 높은 수준으로 상승해가는 ‘통일의 한 형태’다. 따라서 남북연합은 과도적 단계가 아닌 “최종적인 통일국가 형식이 될 수도 있다.”(박명규 325면) 그런 점에서 남북연합을 북한의 연방제 구상과 마찬가지로 ‘복합국가’ 형식의 통일 실현형태로 인정하는 시야의 확장이 필요하다.5)
남북연합과 관련해서는 평화체제와의 관계도 약간의 검토가 필요하다. 우선 정전체제가 평화체제로 전환되면 다른 요소들은 불충분해도 낮은 단계의 연합부터 실현해갈 수 있다는 주장은, 남북연합의 추진과정이 북핵문제 해결과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의 중요한 계기가 된다는 인식과 쌍을 이뤄야 한다. 이는 남북연합 프로세스의 ‘상대적’ 독자성과 관련된 문제다.
더불어 남북연합의 수립과정에서 평화협정이라는 계기도 중요하지만, 남북연합을 실현하려는 남북 민중의 합의와 이를 집합적 의지로 구체화하는 노력이 오히려 더 중요할 수 있다는 점이 강조되어야 한다. 그래서 정부간 협상도 중요하지만, 남북연합 수립단계에서부터 정당과 시민사회가 참여하는 플랫폼이 반드시 고려되어야 한다. “낮은 형태의 남북연합에서 시작하여 시민사회와 정당이 결합하고 북한의 최고인민회의가 결합되는 남북연합”으로 발전해가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시민참여형 플랫폼을 통해 추진되어야 하는 점이 중요하다.
이와 관련하여 북한이 ‘연방제’를 합의·추진하는 플랫폼으로 ‘정당사회단체연석회의’ 같은 것을 제기하고 있다는 점도 고려사항이 될 수 있다. 물론 북한의 정당이나 단체가 실제로는 당국이나 마찬가지고, 또 북한 당국이 시민참여의 통일과정을 지향하리라 보기도 어렵다. 그러나 남북연합은 북과 함께 수립해가는 것이라 그들의 주장을 일정하게 감안하지 않을 수 없고, 또 남북관계의 비대칭성 확대로 인해 ‘정당・사회단체 연석회의’ 같은 방식을 다원화된 남쪽이 한결 부담 없이 수용할 수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6) 이제는 그런 주장도 편견 없이 검토하면서 한반도 실정에 맞는 발전된 대안을 찾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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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포용정책 2.0’과 ‘2013년체제론’에 대해서는 백낙청 『2013년체제 만들기』(창비 2012)를 참조하라.
2) 준국가적 관계의 확장에 주목하는 박명규가 남북기본합의서와 민족공동체통일방안에 관심과 논의를 집중하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6·15공동선언의 의미가 과소평가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박명규는 6·15공동선언과 ‘6·15시대’ 인식의 기저에 적대성과 민족성의 관성적 이분법이 존재하는 것으로 보고 있는데, 이는 ‘특수관계론’의 진화가 분명한 6·15선언 제2항의 의미를 과소평가하는 것일 수 있다. 또 북한이 사활적으로 강조하는 6·15선언을 제쳐두고 사실상 사문화된 기본합의서만 강조하는 것은, 이명박정부의 실패에서 보듯이, 실천적으로도 실용적인 태도가 아니다.
3) 백낙청은 시민참여로만, 혹은 정부 주도로만 분단이 극복될 수 없으며, 당국간 대립의 완화와 ‘남북연합’ 등의 제도화가 진전되면 시민참여가 획기적으로 증대될 것이기 때문에 ‘시민참여형 통일’을 처음부터 부정적으로 대하는 일도 일종의 타성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백낙청, 앞의 책 99면.
4) 조성렬은 이른바 ‘코리안 거버넌스’를 주장하는데, 이는 북이 남에 ‘자발적으로’ 편입되는 통일을 전제로 남북한 주민의 동의를 강조하는 입장이다. 조성렬 272~73면.
5) 이에 대해서는 졸고 「‘남북연합’ 논의의 발전을 위하여(2)」, 한반도평화포럼 회원발표문(http://koreapeace.co.kr/xe/4529, 검색 2010.7.10)을 참조하라.
6)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는 1998년 출범 이후 여러차례 북한에 ‘남북 정당・종교・시민사회단체 공동회의’를 갖자고 제안했으나 북쪽의 호응을 얻지 못했다. 그후 민화협은 매년 남쪽에서만 ‘정당・종교・시민사회단체 공동회의’를 진행해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