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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초점
십오 초, 위태롭고 평화로운
심보선 시집 『슬픔이 없는 십오 초』
김종훈 金鍾勳
문학평론가. 주요 평론으로 「장자(長子)의 그림, 처남(妻男)들의 연주」 「카멜레온의 시들」 등이 있음. splive@chol.com
격정과 침묵, 긴 우울과 짧은 웃음, 정체성을 찾으려는 시도와 그것의 예정된 실패. 14년 동안 축적된 시들의 어조가 다양하고 감정기복이 심해 보여도, 심보선(沈甫宣)의 첫시집 『슬픔이 없는 십오 초』(문학과지성사 2008)에 담긴 정념을 파악하는 것은 비교적 쉬운 일이다. 이들은 동시다발적으로 등장하여 혼란을 초래하기보다는 지적인 통제에 의해 적절히 배치되어 있다. 짧은 웃음은 긴 우울을 모면하고자 마련한 일시적인 방편이고, 격정은 끝없는 침묵을 인식한 뒤 나타나는 고통의 흔적이며, 정체성 찾기의 시도는 표류하는 운명을 인식한 자가 치르는 힘겨운 싸움이다.
‘웃음’의 경우를 예로 들자면, 시집에 웃음이라는 어휘는 많이 보이나 웃음을 자아내는 구절은 적다. 웃음이 드러난 싯구도 “그 웃음, 소리는 크지만/냄새는 무척 나쁘다는 걸”(「우리가 소년 소녀였을 때」) “나는 정확히 해석하고/마지막에는 반드시 큰 소리로 웃어야 한다”(「웃는다, 웃어야 하기에」)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대조되는 말이 덧붙거나 당위적 요청의 형식으로 제시되어 그 영역이 제한되고 있다. 시집의 웃음은 구체적으로 슬픔을 도려내는 화해의 웃음이 아니라 슬픔을 일순간 가리는 아이러니적 웃음인 것이다.
그는 친절히 자신이 겪는 우울함의 외적 원인을 명시하여 독자에게 이해의 편의를 제공하기도 한다. “자본주의의 존재”(「엘리베이터 안에서의 도덕적이고 미적인 명상」), “복잡하고 냉혹한 거리”(「전락」), 잃어버린 “정치적 노선”(「미망 Bus」) 등은 그가 파악한 우울과 슬픔의 외적 원인들이다. 이들은 언어로 등재되어 우울이 증상으로 도지는 것을 막는 동시에 독자에게는 시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
매일 밤 치욕을 우유처럼 벌컥벌컥 들이켜고 잠들면 꿈의 키가 쑥쑥 자랐을 때 그림자가 여러 갈래로 갈라지는 가로등과 가로등 사이에서 그 그림자들 거느리고 일생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았을 때 (…) 그때 꽃피는 푸르른 봄이라는 일생에 단 한 번뿐이라는 청춘이라는
-「청춘」 부분
우울과 슬픔의 내적 원인을 가늠하는 일 역시 어렵지 않다. 인용한 시는 그것의 한 단면을 드러낸다. 여기서‘청춘’은 꿈이 가득 찬 오늘의 청춘이 아니라 꿈이 좌절된 어제의 청춘을 뜻한다. 예전에는 꿈에 빨리 도달하려 우유를 마시며 성장을 재촉했으나, 현재는 그 모든 일이 “치욕”으로 규정되어 있다. 예전에는 여러 가로등에 비쳐 산재한 자기 그림자에서 미래에 자신이 이룰 다양한 모습을 예감했으나, 현재는 단지 갈라진 자아를 확인하는 데 머물고 있다. 시집에서는 희망찬 과거와 우울한 현재로 이분법적 구도가 설정되는데, 인식의 바탕을 이루는 것은 우울한 현재이다. 과거의 희망은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을 인식하는 데서 생긴 우울을 더욱 부각하는 임무를 맡을 뿐이다.
그는 이 우울한 현재를 “심연”으로 인식하고(「먼지 혹은 폐허」), 자신을 필연적 존재가 아니라 우연, 혹은 “나는 나에 대한 소문이다”에서처럼 “소문”으로 치부한다(「어찌할 수 없는 소문」). 21세기의 시인들이 느꼈던 그 감각, 갈라지고 쪼개진 자아의 감정을, 그도 느끼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는 1990년대 시인들이 골몰했던 주제로 이 인식에 맞서기도 한다. “제 그림자를 정확히 찾아 앉는 낙엽”(「불어라 바람아」)을 직시하는 것처럼, 자기 정체성 찾기를 에둘러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돌이킬 수 없는 시간과 자본주의의 냉혹함 같은 우울의 원인을 파악했다고 해서, 심보선 시의 개성이 온전히 드러났다고 판단하기는 힘들다. 그것이 심보선의 시에 대한 이해를 돕기는 하지만 정작 그의 시적 매력은 이를 바탕으로 채색된 섬세한 표현에 있다. 앞의 인용시 「청춘」에서도 과거에서 소외되고 미래를 불신한다는 의미 파악이 시 감상의 전부라고 할 수는 없다. 시의 미덕은 “치욕”을 “우유처럼 벌컥벌컥 들이켜고 잠들면 꿈의 키가 쑥쑥 자랐을 때”로 체화한 구절에서 확보된다.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이 시집의 또다른 매력은, 우울과 슬픔이 쌓아올린 구절과 대비되는 곳에서 나타난다.‘슬픔이 없는 십오 초’의 순간이기도 한 진공의 시간을 배경으로 들리는 목소리는 고요하다. 슬픔과 기쁨, 웃음과 울음의 간섭이 여기에는 없다. 이때의 목소리는 “아내가 종이 위에 적어준 장거리들처럼/인생의 세목들이 평화롭고 단순했으면 좋겠다”(「장 보러 가는 길」)는 바람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건조하지만 평화로운 상태에서 우러나온다. 시집 제목에서는 이 순간을‘슬픔이 없는’이라고 했으나, 정확히 말해서 그것은 슬픔이 밀려오기 전이 아니라 슬픔이 가라앉은 후의 고요한 시간과 상응한다.
오늘은 휴일입니다
오전에는 평화로웠습니다
조카들은 「톰과 제리」를 보았습니다
남동생 내외는 조용히 웃었습니다
여동생은 연한 커피를 마셨습니다
어머니는 아주 조금만 늙으셨습니다
(…)
오늘은 휴일입니다
이토록 평화로운 날은
도무지 다시 오지 않을 것 같습니다
-「휴일의 평화」 부분
휴일의 상태는 평화롭기도 하지만, 위태롭기도 하다. 연한 커피를 마시고 만화영화를 시청하지만 같은 문장 층위에서 어머니는 조금씩 늙고 있다. 이 늙음의 인식은 되돌릴 수 없는 시간에서 생겨나는 우울의 감정과도 연관되어 있다. 단순한 평화의 유지에 어느덧 균열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때의 감정은 우울에 요동치지 않는다. 휴일의 평온함 덕분이다. 슬픔과 우울로 점철되는 시간 사이에 무연히 떠오르는 짧은 시간, 우울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나 그것을 웃음으로 가장하기 전의 시간, 그는 이 시간을 단순함과 평화로움으로 요약한다. 14년 동안 심보선의 시적 여정을 일일이 확인하지 못했으나, 이 시편들이 그의 최근작이었으면 좋겠다. 비록 위태롭게 보이더라도, 현재 그가 마련할 수 있는 최선의 안식처가 이 짧은 순간의 단순한 평화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