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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김금희 金錦姬
1979년 중국 지린성(吉林省) 주타이시(九台市) 출생. 2007년 『연변문학』 주관 윤동주신인문학상으로 작품활동 시작. 소설집 『슈뢰딩거의 상자』가 있음. kimkemhi@naver.com
옥화
여자가 떠났다. 아니, 떠났다고 한다.
“언니, 정말이에요. 아까 기차 안이라고 제게 전화 왔더라구요.” 정아가 말했다. 오후나절의 해가 아직 남아 있어서 귀갓길의 그림자가 땅바닥에 길게 드리워 있을 때였다.
“갔으니까, 이제 됐어요 언니. 내일 기도모임 나오시죠?” 정아는 뭔가 칭찬이라도 바랐다는 듯 한참 들까불다가 이내 전화를 끊었다.
‘이제 됐어요’라니? 뭐가 됐단 말인가? 얘는 말을 참 이상스레 하네, 하고 홍은 생각한다. 아파트 입구가 가까워온다. 1층에 사는 리따예가 자기 집앞 뙈기밭에서 궁싯궁싯 걸어나오고 있다. 손에 들린 물조리 뒤로 금방 옮긴 듯한 오이모며 토마토모가 줄느런히 서 있는 것이 보인다.
“그냥 사서 드시지, 허리도 안 좋으시면서……” 그네 앞을 지나치며 홍은 알은체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잉, 밭이라구 있는디 그놈을 걍 놀리믄 워디 쓰겄나? 머라도 심궈 먹어야지.” 리따예는 구부정 구푸렸던 허리를 최대한 뒤로 곧게 펴며 벙싯 웃는다. “하여튼 간에, 한시름은 놓았겠네요 이젠.” 홍도 웃었다. 모처럼 만에 리따예의 펴진 허리를 보니, 홍 자신도 모르게 같이 허리를 쭉 펴며 숨을 들이마셨다.
겨우 여자가 떠났다는 말에 이리 시름이 놓이다니, 한심한 것. 홍은 금방 들이켰던 숨을 다시 훅 내뱉는다. 그렇다면 여자가 있었던 동안은 정말 짐스럽고 힘들었다는 얘기가 아닌가. 어두컴컴한 계단을 터덕터덕 올라가며 홍은 생각한다. 여자의 툭 불거져 나온 광대뼈와 꺼진 볼살과 찌르는 듯한 눈빛이 다시금 떠오른다. 여자 생각만 하면 마음속 어딘가 찝찝해지고 껄끄러워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왜? 여자가 불법체류 탈북자라서?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구제대상이라는 것 때문에? 아니면 그 까칠한 표정이며 진위를 가릴 수 없는 변명이 싫어서였을까?
철컥, 현관문을 연다. 거실바닥 소파 앞에서 마구 뒹구는 남편과 아들녀석의 옷가지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런 이유들이 전부는 아닌 것 같다. 신발을 벗고 들어서기 바쁘게 홍은 맥없이 널부러진 빨랫감을 주섬주섬 주워 모은다. 남편 바지주머니 안에서 뭔가가 만져진다. 꽤 빳빳한 푸른색 종이, 돈이다. 그래. 따지고 보면 이런 것 때문이 아니겠는가.
“미안해요, 점말 미안함네다.” 하고 여자가 홍을 불렀었다. 구역에서 수요 기도모임을 마치고 막 나오던 길이었다. 홍은 멈춰서서 그녀 뒤에 약간 처져 따라 나오는 여자를 바라보았다. 올백으로 념겨 묶은 머리 때문에 여자의 얼굴은 더 길고 눈꼬리는 더 찢어진 듯 보였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겐가? 여자가 가까이 다가오는 동안 홍은 슬금슬금 불안해했다. 교회에 나온 지는 2년 정도 되었다지만, 이 기도모임에 나온 지는 고작 2개월 남짓밖에 되지 않은 여자를, 홍은 잘 아는 편이 아니었다. 여자는 홍의 반응을 미리 예상이라도 하고 있었다는 듯 생각보다 차분한 어투로 말했다. “이땀에, 내 한국 가믄 절대 갚을 거니께, 돈 쫌 꿔주시라요?”
빨래를 돌려놓고 홍은 밥솥을 부신다. 싱크대 안에는 마른 밥알이 들러붙은 공기며 반찬을 담았던 그릇이며 찌개를 끓였던 냄비까지 꽉 차 있었다. 가게가 멀어서 매일 아침 일찍 나가야 하는 홍은 아침 설거지를 거의 하지 못하는 편이다. 오늘은 평소보다 먼저 들어온 까닭에 남편의 귀가는 물론 아들녀석의 하교시간도 한참 남았다. 작으나마, 남편과 함께 일궈온 건축자재가게 덕에 중고 아파트도 사고 봉고차도 한대 장만했다는 말은, 기도모임 중에 홍 자신이 얼결에 뱉었을 것이다.
“돈이요?” 하고 홍이 눈을 크게 뜨며 되묻자, 여자는 기계적인 웃음을 지어 보였다. “모도 다 바빠 하는 거 암네다. 기래도 상점 한다니께, 딴 사람들보다는 쫌 안 바빠 할 거 같아서요.” 어른의 손에 들린 과자봉투를 바라보는 아이처럼 여자는 홍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글쎄, 우리도 뭐, 외상장사라 늘 빚에 시달리니까. 우리 아저씨가 뭐랄지……” 홍은 여자의 집요한 눈길을 피하며 두서없이 주절댔다. 왠지 경찰로부터 심문받는 죄수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주여, 이런 난처한 일이 내게 오다니요,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홍은 당장 집 안으로 되돌아가 구들에 엎드러져 처음부터 다시 기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머 점말 없다먼야, 기래도 거저 한 4천원이래도 안되나요? 내 진짜 무신 궁리가 없어서 기래요. 집값은 석달치 못 줬구, 내는 허리가 아파서 일도 못 나가니께……” 말을 끝낼 즈음에 여자는 홍을 집사‘님’이라고 불렀다(여자는 목사님도 항상 ‘목사’라고 불렀었다). “쫌 방조(帮助)해줘요, 집사님……”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것을 주지 않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야고보서 2장의 구절이 머릿속에서 필름처럼 지나갔다.
그래서 홍은 그랬다. “4천은 힘들 거 같은데…… 암튼 주일날 봬요.”
4천이나 3천이나 기왕에 줄 것 같으면 사실 오십보 백보 아닌가. 그런데도 굳이 여자가 원하는 액수에서 얼마만큼이나마 깎아서 주고 싶은 심보는 무엇 때문일까?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마치면서 홍은 내일 있을 기도모임을 생각한다. 여자가 기도모임에 나오기 전에는, 아니 여자가 돈 얘기를 꺼내기 전에는 한번도 빠지지 않고 참석하던 모임이다. 가게에서 일꾼들과 점심을 해 먹고 바로 떠나면 시간이 얼추 들어맞아서 남편의 눈치가 덜 보여 딱이었다.
서로를 위로하고 하나님께 의지하는 기도시간도 좋았지만, 기도하기 전 커피 한잔씩 마시면서 사춘기에 들어선 아들 얘기며 무뚝뚝한 남편 때문에 속상한 얘기와 시집식구 친정식구와 있었던 에피소드를 두루 꺼내놓고 수다 겸 교제하는 시간이 홍은 참 좋았다.
여자가 홍한테 돈 얘기를 꺼낸 뒤, 홍에게는 이상스레 그 기도모임에 가지 못할 피치 못할 사정들이 생겨났다. “집사님, 요즘 많이 바쁘셔요? 통 얼굴 볼 새가 없네.” 무단결근한 직원 대신 전화통을 붙잡고 스트레스에 싸여 있는 홍에게 박사모님으로부터 두번인가 문안전화가 왔다. “그러게요.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자꾸 터지니 계속 빠지게 되네요. 기도해주세요.” 아무런 눈치도 못 챈 듯한 박사모님에게는 일단 그 정도로 얘기할 수밖에 없었다.
“언니, 혹시 말이야, 그 북한 자매님, 언니한테도 돈 꿔달라고 얘기했어?” “………” 여자를 보기로 한 주일 하루이틀 전에 정아에게 연락이 와서야 홍은 피해자, 아니 여자의 ‘자외선 망’에 걸린 이가 자기만이 아님을 알게 되였다. “그지? 그럴 줄 알았어. 그 자매님, 원래 장년1팀에 있었잖어. 알아보니까 거기서도 몇천원 모금했더라구. 그것두 이번에만. 한 2년 거기서 신앙생활 했었다니까, 그전에 찔끔찔끔 도와준 거는 숫자도 없고…… 이번엔 한국으로 간다고 교회측에서도 얼마 구제금으로 내놓은 모양이야. 주보에 광고가 나가서 그 자매님 앞으로 들어온 헌금도 있었다나…… 아 참, 그리고 박사모님이 제의해서 우리 기도모임 멤버들도 성의껏 했었는데……”
정아는 전화를 끊으면서 그랬다. “언니 말고도 개인적으로 부탁한 사람들이 또 몇명 있어. 나한테도 얘기하더라구. 나는 뭐, 원래 없으니까, 없다고 했어. 차비나 하라고 200원 쥐여주고. 그니까 언니도 알아서 해.”
가게 사장들이랑 한잔하러 간다는 남편은 늦어지고 있고, 아들녀석은 저녁 먹기 바쁘게 제 방으로 들어가서 숙제에 열중이다. 남편이 가져다둔 장부를 펼쳐 들고 홍은 거실에 있는 책상 앞에 마주 앉는다. 오늘은 배달이 세건 있었다. 반품도 두건 있었다. 물론 수금은 한 계절이 지나가거나 연말이 되어서야 일부분 가능하다. 수금할 기일이 다가오면 유난히 까탈스러워지고 무례해지고 연락도 쉽게 끊어지곤 하는 가게 사장들이 떠오른다. 생각 같아서는 좀 적게 벌더라도 현금치기 장사를 하고 싶지만, 이 바닥에서 외상은 이미 정해진 룰, 그게 싫으면 그만두는 수밖에 없다.
가게 덕에 먹고는 살지만 유동자금은 항상 딸리는 편이라 여자에게 주려고 마음먹은 그 돈도 사실 남편 몰래 저축했던 비상금이다. 4천원이라…… 기약에도 없는 먼 길을 떠나는 이에게 그것이 얼마나 도움이 되겠느냐마는 또한 온갖 수모 당해가며 수금해들인 돈 중에서 한푼두푼 남겨온 홍에게 있어 그것은 땀이고 심혈이었다.
여자를 만나기로 한 주일, 오전예배를 마치고 성가대 가운을 정리하다가 홍은 정아 얘기보다 더 찝찝한 소식을 듣게 되었다. “아니, 집세는 교회서 벌써 대줬다더라구. 재정부 최권사님이 그러던데?” 쏘프라노팀의 팀장 차집사랑 춘자가 그 여자 얘기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게요. 올봄에 나도 보모자리 하나 알아봐줬는데, 뭐 어디가 아프고 저쩌고 말이 많더라구요.”
같은 성가대에서 익히 아는 사이들이라 홍이 한마디 껴들었다. “몸이 아프면 할 수 없지. 아픈데 어떻게 해?” 정아 또래인 춘자가 그 말에 입을 삐쭉 내밀어 보였다. “나도 그런 줄 알았죠 뭐. 나중에 보니까 여기저기서 일자리 알아봐준 사람들이 꽤 있었나보더라구요. 보모는 힘들어, 그냥 밥만 하는 자리는 너무 멀어, 공장일은 위험해, 어느 회사 청소자리는 시간이 너무 길어…… 아니 요즘 세월 취직하기가 얼마나 어려운데, 이건 뭐 찬밥 더운밥 다 가리다 나니. 글쎄요, 여기저기 아프다고는 하던데 어느 집사님이 사준 쌀주머니는 잘도 메고 가더라니, 그 말을 어디까지나 믿을 수 있겠나요.”
들어서 덕이 될 것 하나 없는 얘기들이었지만 어쩌다보니 물은 이미 엎질러져 있었다. 탈의실을 나서며 차집사는 춘자랑 눈을 마주쳤다. “뭐, 북에서 온 사람치고 이자매님이 처음도 아니고, 그전에 있던 사람들도 다들 말이 많았잖아요.” ‘전에 있던 사람들’이란 말에 홍은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차집사는 알고 하는 얘기가 아니었겠지만, ‘전에 있던 사람들’ 중에는 홍의 남동생과 잠시 인연을 맺었던 여자, 옥화도 포함되기 때문이었다.
오후예배 내내 홍은 머릿속이 복잡했다. 설교 내용이 어느 성경구절인지는 적지도 못했을뿐더러 찬양시간에마저 혼자 엉뚱한 장을 펼쳐놓고 앉아 있었다. 교회 화장실에서 손을 씻고 있던 여자를 처음 봤을 때, 홍은 본능적으로 여자의 몸에서 풍기는 북한 냄새를 알아차렸다. 옥화랑 많이 비슷한 뒷태며 분위기에 홍은 그때 한참 동안 가슴이 벌렁거렸다. 여자가 옥화와는 다른 사람이라는 것, 장년부 1팀에서 이미 1년간 신앙생활을 해왔다는 것을 알고 나서도 홍은 가끔씩 여자와 스쳐지날 때마다 심장이 부르르 끓어오르곤 했었다. 그나마 여자랑 한소속이 아니어서 부딪칠 일이 없겠다 싶어 다행이라 생각했는데……
자잘한 숫자들이 굴을 파인 개미떼처럼 눈앞에서 오골거리고 있었다. 머릿속까지 개미떼가 천방지축 오글오글 기어다니는 것 같다. 장부를 덮으며 홍은 일어선다. 숙제를 마치고 어미 눈을 피해 컴퓨터 앞에 살짝 들어앉은 아들녀석을 닦달해서 씻기고 이불 속에 밀어넣는다. “아침 일찍 일어나야지. 깨울 때마다 더 자고 싶다고 투정 부리면서.” 몸만 컸지 철은 한참 없는 아들녀석의 엉덩짝을 찰싹 갈겨주고 나서 홍은 방을 나선다.
아직도 들어오지 않은 남편한테 홍은 자신이 모으고 있던 비상금의 존재를 비밀로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여자에게 준 3천원까지 일일이 얘기할 수는 없었다. 홍과 함께 옥화를 겪어본 남편은 과연 여자를 믿을 수 있을까? 홍 자신도 무슨 도깨비에 홀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예배가 끝나고 사람들이 흩어져갈 때에 홍은 문 어귀에서 서성이면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여자를 보았다. 홍은 짧게 숨을 들이켜며 은행카드가 들어 있는 가방을 집어 안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왕 도와주기로 한 거, 대답까지 한 거, 해야지…… 그러나 금방 머릿속에서는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아니, 내가 왜? 내가 뭐 빚이라도 졌나? 굳이 줘야 하게? 4천원이 누구 껌값이야?
사람들이 모두 문 쪽으로 우르르 밀려가서 예배당 안은 잠시 혼란스러웠다. 여자도 밀려나오는 사람들 때문에 하는 수 없이 문 바깥쪽으로 나간 것 같았다. 그때 누군가 홍의 팔꿈치를 쿡 찔렀다. “집사님, 혹시 그 북한 자매님 만나시려구요?” 훤칠한 키에 몸에 맞는 정장을 입은, 지긋한 나이의 기품있는 여인이었다. “아 네, 최권사님.” 하고 말하면서 홍은 어느새 그녀에게 끌려 대열에서 빠져나갔다. “물론 이웃을 도우라고 하나님이 그러셨지만, 우리가 모든 사람들 다 도울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그렇잖아요? 교회 안에도 도와줘야 할 사람들이 너무 많은데……”
홍은 그 말뜻을 금방 알아들을 수 없어서 벙벙하니 서 있었다. 페인트 회사를 운영하는 사장답게 최권사는 언제 봐도 카리스마가 넘쳤다. “내가 뭐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게 아니고, 혹시 그 자매님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을지 해서요.” 사장님이라지만 언제 한번 교회 안에서 그걸로 틀을 차려본 적 없고, 절기면 절기, 행사면 행사 때마다 헌금 가장 많이 내고 어려운 성도들 있으면 자기 호주머니 털어서 도와주는 최권사임을 홍은 잘 알고 있었다.
“어제 우리 목회자 운영회에서 그 자매님이랑 얘기했거든요. 이 상황에서 한국으로 떠나려는 게 무리가 아니냐, 여기서 합당한 일을 찾고 마음 맞는 사람 만나 사는 건 왜 안되느냐고. 참, 여태 그렇게 도와주고 해도 감사하는 마음도 없고,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도 없고 입만 벌리면 변명에, 돈 달라는 말뿐이니, 쯧쯧.” 최권사는 홍을 보며 머리를 저었다.
그리하여 그 여자는 성도로서의 믿음은커녕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도덕이나 정직한 양심 따위마저 있는지 여부가 의심스러운 사람이 되었다. 홍에게 있어서 사실 그 정보는 무슨 새삼스럽거나 받아들이지 못할 만큼 충격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거의 빠져나간 뒤 여자랑 만났을 때 머리가 한결 더 복잡해진 것은 사실이었다. 이제 홍의 머릿속은 도저히 실마리를 찾지 못할 정도로 뒤죽박죽이 되어 있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뭘 해야 옳은지 아무 결론도 내지 못한 채 홍은 운명에 떠밀리듯이 여자랑 교회 문을 나섰다.
대문 근처 도로변에는 주일이라고 도시 어딘가에서부터 꾸역꾸역 찾아온 거지 서넛이 제법 익숙하게 진을 치고 서 있었다. 거지들은 번화가에서 구걸할 때처럼 묵묵히 앉아 있거나 이마를 땅에 박고 절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세상 사람을 사랑합니다’라는 참신한 교회식 표현을 신도들에게 날리고 있었다. 다른 날 같으면 1원짜리 지폐라도 칠 벗겨진 컵 안에 넣어주겠건만 그날은 잔전도 없었거니와 그럴 마음도 일지 않아서 홍은 무표정한 얼굴 그대로 그들을 지나쳐버렸다. “씨발, 예수쟁이라는 게 동정심도 없어?” 적선 한푼 없이 지나가는 홍의 등뒤에서 거지들은 언제 처량한 거지 신세였나 싶을 정도로 험한 욕지거리를 질펀하게 퍼부어댔다.
여자는 한손으로 허리를 짚으며 주춤주춤 홍을 따라갔다. “집사님, 거기 쪼꼼 천천히 가시라유.” 공상은행 자동현금지급기가 저만치 보이는 골목에서 여자가 홍을 불렀다. 홍은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세시 반이 아슬아슬하게 넘어가고 있었다. 네시 전까지는 가게에 들어가기로 남편이랑 약속이 되어 있는데 허리를 두드리는 젊은 여자는 저만치서 기신기신 걸어오고 있었다.
“긴데요, 집사님. 점말 미안한데, 당장 바쁜 거 아니머는 그 돈 쪼꼼 더 해주시면 안되갔시요?” 허리가 정말 아픈 건지 얼굴을 찡그리고 간신히 홍 앞으로 다가온 여자가 그 말을 꺼내는 순간, 홍은 은행이고 뭐고 다 집어치우고 그길로 택시를 잡아 떠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불을 끈다. 빛으로 충만하던 공간은 순식간에 몰려든 어둠으로 전부 대체된다. 묵직하고 끈적한 어둠은 흡사 방 안의 소리까지도 뒤덮은 것 같다. 홍은 자리에 누워 눈을 감는다. 하루가 지나가고 있다. 하루 동안 있었던 일들도 지나가고 있다. 무엇이든지 간에 모두 지나가기 마련이고 지나간다는 것은 그리 나쁜 일이 아니다. 어쨌든, 여자가 떠났다고 하지 않는가.
그날밤, 홍은 이미 떠나가버린 여자와의 남은 감정을 끄잡아 안고 또다시 혼자 끙끙거리며 연 며칠 꾸었던 비슷한 꿈속을 헤매고 다녔다. “왜 내가 줘야 하지?” 홍이 묻자 “가졌으니께.” 하고 여자가 대답했다. 홍은 자꾸 옥화로 변하려 하는 여자를 붙들고 물었다. “그래서 줬잖아, 근데도 뭐가 불만이야?” 하면 여자는 매번 꿈속에서 볼 때마다 그랬던 것처럼 찢어져 올라간 눈으로 홍을 찌뿌둥하니 내려다보았다. “그 잘난 돈, 개도 안 먹는 돈, 그딴 거 쪼꼼 던재준 거 내 한나도 안 고맙다요.”
‘그딴 거’라니? 어떻게,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가…… 홍은 꿈속에서도 가슴이 답답하여 손으로 박박 내리 쓸어보았다. “내도 한국 가서 돈 많이 벌어바라. 내는 너들처럼 안 기래.” 홍의 몰골을 보고 피식 웃던 여자는 급기야 킬킬대며 배를 부여잡고 웃어대다가 옥화로 변하고 말았다.
사오년 전, 아직 생전이셨던 엄마가 비밀스럽게 데려온 여자가 있었다. “야야, 후딱 내래온나. 함 바바라, 아가 참말로 참하다.” 흔치 않은 백화점 쎄일을 만나 명품을 헐값으로 사온 듯한 흥분된 목소리였다. 간만에 톤이 활짝 높아진 엄마의 전화를 받고 홍은 퍼뜩 스치는 예감이 있었다. “아무개네도 북쪽 여자 데래왔다더라. 저그 둘이서 논밭 쪼매 부치고 시내 나가서 일도 허고, 얼라도 낳고 그래 살믄 되는 기제. 안 글나?” 그전에도 고향마을에 들렀을 적 엄마가 늘 노래처럼 부르던 말이 생각났었다.
지병으로 시름시름 앓던 남편을 잃은 지는 십년도 더 지났고, 요행 별 탈 없이 자라준 맏딸 외에 어려서부터 유약하고 어리숙해 제구실 한번 반듯하게 해내지 못하는 아들을 둔 엄마였다. 겨우 중학을 마치고 여기저기에서 알바나 견습공 노릇을 해오다가 ‘배 타는 바람’이 불기 시작해서부턴 줄창 배만 타오던 동생 두석은 그때 이미 서른 중반에 다다른 노총각이였으니 어미의 타는 심경은 더 말할 나위가 없는 일이었다.
“엄마는 참, 속 타는 건 알겠는데, 꼭 그렇게까지 해야 돼?” 하고 홍은 한마디 하려다가 그만두었었다. 여태 엄마와 자신이 소개시켜준 여자가 얼마나 많았느냐는 것이며 두석이녀석 본인은 한번도 사귀는 친구랍시고 여자를 데려온 일이 없었지 않았나 하는 것과 통장에 잔액 몇푼 없는 집안의 여건 등을 고려해볼 때 그 방법을 나무랄 수만은 없었다.
동생의 뒤를 따라 집 안으로 상큼 들어선 옥화는 비쩍 마른데다가 키도 작아서 아직 발육이 덜 된 중학생처럼 보이는 어린 여자였다. 자기 입으로 스물둘이라고 했지만 스물도 차지 않은 듯 보였다. 동생과는 같은 개띠, 옹근 한 돌림 차이가 났다.
“어떠냐? 맘에 드냐?” 하고 ‘선’을 주선한 아저씨가 물었을 때 두석은 그냥 헤헤 웃기만 했다고 하였다. “아이구 언니, 말도 말라요. 남자란 게 얼매나 비위가 없는지. 십분을 앉아 있는데두 암 말 못하는 기라요.” 나중에 옥화가 그랬다. 참다 못한 옥화가 먼저 “이름이 뭐이래요?” 물었고 동생이 “김두석이요.” 하고 대답했단다. 옥화가 “나이는 얼매래요?” 하면 동생은 “서른넷이요.” 했고 “식기는 누기누기 있어요?” 물으면 “내캉 엄마캉 누나 있어요.” 하는 식이었단다. 그리고 또 한 십분 지나서 대단한 용기를 낸 듯 동생이 쭈빗쭈빗거리다 물었단다. “이름이 뭐이요? ……나이는 얼매요? ……식기는 누기누기 있어요?”
동생은 옥화를 예뻐했다. 제대로 연애 한번 못해본 동생은 옥화가 들어오자 화색이 달라졌다. 불밤송이처럼 긴 머리도 깔끔하게 이발했고 사나흘 가도 엄마 잔소리 없으면 갈아입을 궁리 없던 셔츠도 이틀에 한번 꼴로 바꿔 입었다. 옥화랑 쇼핑 다니면서 보는 눈도 변했는지 값싸고 생기발랄한 티셔츠를 골라 둘이서 사이좋게 사 입고 오기도 했다. 친구들과 술자리에 가서는 예전보다 말도 많아졌고 생전 터뜨려보지 못한 너털웃음을 웃어서 친구들을 놀래키기도 했단다.
엄마도 옥화를 안쓰러워했다. 북쪽 어딘가에 있을 친척이 생각나서 그랬을지도 모르겠지만, 엄마는 마음으로 그 아이를 아파했다. “야는 머 먹고 요래밲에 몬 컸노? 갈비빼가 아룽아룽한 기 우야다 쓰갔나?” 처음부터 고깃국을 먹지 못하는 옥화에게 엄마는 미음으로 시작해 차차 쌀밥에 가물치에 사골에 우족까지 보신에 좋다는 것은 죄 구하여 먹였다.
물론 홍도 등한시할 수가 없었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이 집의 가장이나 다름없이 살아온 홍에게 엄마의 살덩어리인 동생과 같이 살아줄 여자였기에 잘해주고 싶은 마음밖에 없었다. 한번씩 고향에 내려갈 때마다 고기면 고기, 귀한 과일이면 과일, 옷이면 옷, 책이면 책, 용돈은 물론이고 최신형 휴대폰에 엠피스리까지, 해줄 수 있는 것, 옥화가 부러워하는 티라도 보인 적 있는 것이면 어떻게든 마련해보려고 애썼던 홍이다.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가 있지? 그 잘난 돈? 그까짓 거 해줬다고? 꿈속에서 여자는 그렇게 웃다가 갑자기 연기처럼 사라지고 홍은 혼자 갈대밭을 헤매고 걷고 있었다. 대체 뭐가 불만이야? 그렇게 해준 게 잘못이란 말인가. 얼마나 더 해줘야 한단 말인가.
“집사님, 내 아무리 궁리해두 집사님 얼굴 한번 보고 가야갔시요.” 돈을 준 뒤, 여자가 떠나갔다는 소식을 듣기 며칠 전의 어느날, 홍은 여자에게서 온 연락을 받았다. 그 정 떨어지는 듯한 까칠한 억양을 듣는 순간, 홍은 머리가 지끈거려왔다. 또 무엇인가. 받아 가졌으면 그만이지, 무슨 할 말이 또 남았는가. 어렵사리 돈을 주고도 고까운 책망이나 받을 것 같다는 예감에, 홍은 애써 정리한 옷장이 뒤집혔을 때처럼 속이 부글거리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아저씨, 한두번 해본 일도 아니면서 왜 그래요!” 하고 금방 배송 갔다 오는 기사 아저씨한테 노골적으로 화를 박박 내기도 하였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제가 어쩌면 그럴 수 있을까.” 한번씩 푸념삼아 철없는 옥화의 얘기를 꺼내는 엄마와 통화할 때 홍이 가끔 하던 말이었다. 엄마가 본 것처럼 그 아이는 똑똑하고 야무졌다. 몸을 추스리고 나서는 동네 산책도 다니고 동생이랑 시내에 쇼핑도 다니면서 식견을 넓힌 그녀는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는데 혼자 한문을 익히고 있었고 컴퓨터도 동생 등 너머로 찔끔찔끔 배웠다. 급기야 동생이 배 타러 떠난 뒤엔 엄마의 약값벌이를 핑게로 취직시켜달라고 이틀이 멀다 하고 홍에게 졸랐다. “내 이리 젊은 게 집에서 놀믄 뭐한대요? 내두 쫌 벌어 보태야디요.”
주위에서는 홍을 말렸다. “처음엔 취직이지? 그다음엔 가출이야. 동생 들어오면 애나 빨리 만들라고 해.” 홍도 걱정이 안되는 게 아니었다. 엄마가 늘 부러워하던 아무개네 며느리를 포함한 동네 몇몇 북녘여자들 태반이 어느날 갑자기 행방묘연해졌다는 소문이 퍼지고 있었는데 개중에는 돌을 갓 넘긴 핏덩어리를 내치고 떠난 이도 있다는 말을 전해들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옥화의 소행도 홍의 귀에 벌써 몇건 흘러들어와 있던 차였다. 절름발이 윤아저씨네 슈퍼에 엄마 이름으로 달아놓은 외상이며 국숫집 이아저씨한테서는 아르바이트비를 선불로 당겨써서 되려 빚만 쌓였다는 등등의 일은 심기가 언짢아지는 일이었지만 그때까지는 매번 엄마와 상의해서 좋도록 얘기하고 넘겼다.
그래도 설마 하는 마음에 결국 홍은 옥화의 청을 끝까지 뿌리치지 못했다. 하여 일년 가까이 옥화는 홍네 집에서 기거하며 식당이나 가게에서 두루 일했고 주일에 쉴 때가 있으면 홍을 따라 교회예배에 나가기도 했다. 어느날 갑자기 편지 한장 달랑 남겨놓고 떠나가기 전까지……
“내 솔찍히 여기서 좋은 사람들 많이 만났시요. 그만하믄 잘해줬디요. 모도 바쁘게 사는 사람들인데……” 전화로 여자가 말했다. 그러나 홍의 귀에는 그 말들이 진정 고맙다는 인사로 들리지 않았다. ‘그만하믄’이라니? 그럼 얼마나 더 베풀어주어야 한단 말인가. 왜 이 사람들은 베풂을 한낱 당연한 것으로 생각한단 말인가. 꿈속 여자의 말처럼 단지 ‘가졌다’는 것이 그 이유로 될 수 있단 말인가.
여자의 전화를 받으면서 홍은 옥화의 눈빛을 떠올렸다. 슈퍼집 외상이나 국숫집 빚이나 홍네 거실 책상 위에서 사라진 돈푼들을 물을 때, 옥화는 당당하게 대답했었다. “그거이요? 맞아요, 내가 그랬시요.” 옥화의 눈빛은 너무나 당당해서, 마치 그 돈의 행방을 묻고 있는 홍 자신이 천박하고 죄스럽게 느껴질 정도였다. 어처구니없어하는 남편의 불쾌감과 그까짓 것 가지고 힐문한다고 생각하는 듯한 옥화의 고까움 사이에서 홍의 스트레스는 점점 한계로 치달아올랐다. 자연 옥화에 대한 동정과 이해보다는 짜증과 미움이 날로 커져가서 무의식 중 그녀를 대하는 언행 속에 그 속마음이 나타났던 것도 사실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여자의 궁한 처지가 딱해서 같이 밥이라도 먹으며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알아보자고까지 마음먹었다가, 그날 자동현금지급기 앞에서 그만 그 마음을 온 데 간 데 없이 잃어버렸던 경우와 마냥 흡사했다. “자매님, 저 이런 소리는 정말 하지 않을려구 했는데요. 글쎄 자매님한테는 이 돈이 얼마나 도움이 될는지 모르겠지만, 저한테도 쉬운 일은 아니거든요. 사정 얘기 다 하면 뭐 끝도 없고, 이해도 잘 안되실 거고, 그래서 여하튼 4천은 안되겠고 3천만 해드릴게요. 갚으려고 생각지는 마세요. 제가 뭐, 이거 되받으려고 주는 게 아니니까.”
옥화의 모습이 자꾸 연상되어서일까, 홍은 그날 여자한테 울분 비슷하게 언성을 높여 그간 불편했던 속을 쏟아내고 말았다. 기계가 뱉어낸 빨간 지폐 30장을 세서 봉투에 넣어 건네주었을 때 여자는 구푸렸던 허리에서 손을 떼고 곧게 서 있었다. 여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봉투를 받아 가방에 주워넣었다. 홍은 그 얼굴을 슬쩍 훔쳐보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지만 그러면 또다시 마음이 약해질 것 같아서 꾹 참았다. 홍이 먼저 돌아섰던가, 여자가 홍의 등뒤에서 조그맣게 “고맙다요, 집사님.” 하고 인사하는 말은 들었다.
자존심이었을까? 그네들이 그렇게 사실적으로 도움을 받고도 결코 고맙다고 얘기할 수 없는 것은 혹시 상처받은 자존심 때문이었을까? “뭐 굳이 다시 볼 일이 뭐가 있겠어요. 자매님이나 무사하게 잘 가시면 되는 거죠.” 하고 홍이 극력 말리는 말에 여자는, “아니라요, 내 쪼꿈만 집사님 보고 올 테니께, 상점에서 기다리시라요. 내 집사님 안 보고 가는 날에는, 가도 내 속이 절대 안 내래갈 거 같아디요.” 하는 식으로 부득부득 우겼다.
그리하여 마지막으로 여자를 보았던 그날은, 마침 삼사년 족히 보지 못한 시형(媤兄)이 한국에서 돌아온 날이었다. 원체 농사만 짓고 살던 위인이라 까무잡잡했던 시형의 얼굴은 그새 거짓말처럼 땟물을 쑥 벗고 허여멀쑥하니 변해 있었다. “어쨌든 물은 그쪽이 좋은가벼.” 남편과 시형이 가게 부근의 식당에서 권커니 잣거니 술을 마시는 동안 홍은 이제 곧 들이닥칠 여자의 시답지 않은 방문을 기다렸다. “그래, 그쪽에서 영 눌러살던 사람들도 많던데, 형님은 어떻소?” 남편이 묻는 말에 시형은 독한 술을 한모금 들이켜고는 절레절레 손을 내둘렀다. 거개가 거기서 거기인 얘기들이었다. 힘든 노동, 사람들의 배척과 편견, 보장받지 못하는 인권…… 그리하여 그곳에서의 정착은 아직 미래가 명랑하지 못하다는 게 타국에서 일하는 모든 이국 노무자들의 결론이었다.
시형이 풀어내는 긴 이야기를 들어주는 동안에 여자에게서 버스터미널 이름을 확인하는 전화가 왔다. 옥화처럼 여자도 한문을 웬만큼 익히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에이, 못사는 게 죄지. 잘사는 나라에 살지 않는다고 대우가 이렇게 다르니…… 술에 약한 시형은 간만에 많이 마셔서 혀를 잘 굴리지도 못했다. 오랜만에 혈육을 만난 남편도 한마디 거들고 나섰다. “이제 우리두 잘살아보우. 그땐 형편이 영 달라집지.”
“그러게 속담에 용꼬리보다 닭대가리라 했나? 야, 이번 여름에 너 형수랑 같이 들어와선, 우리도 그 뭐냐 가족으로다 여행 가자, 응? 제수씨, 거 왜, 가난하고 멋있는 동네 많잖아요. 거기 가서 우리도 돈 한번 써보자요. 흐흐.” 말수가 항상 많지 않던 시형은 그날 갑자기 마셔버린 독한 술을 미처 소화하지 못해서인지 여느때보다 발랄하게 취해 있었다.
우체국 역에 도착했다는 여자의 전화를 받고 나오면서 홍은 시형의 벌겋게 취한 얼굴을 생각해보았다. 눈만 뜨면 일, 일 하는 것 외에 그 나라 일반 국민이 누릴 수 있는 어떤 것도 누릴 수 없는 돈벌이 기계 같은 생활들, 그곳에서 시형네는 몸뚱아리 하나와 불법체류자의 신분 외에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여자처럼? 옥화처럼?
아무도 알지 못하고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 시형네는 어디를 가나 누구를 만나나 자신들의 진실한 이야기를 꺼내놓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사람이 말이야, 그 상황에 들어가니까 그렇게 되더라고. 자기는 안 그럴 것 같지? 흐흐. 아니야. 사람은 다 같애.” 시형의 발랄한 웃음 속에서 홍은 자기편이 아닌 땅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불안함을 보았다.
“언니, 내두 알아요. 언니랑 어머이랑 내게 얼매나 잘했는지 알아요. 내는 머 암것두 한 게 없다는 거이두 알아요. 내가 가믄 원망 많이 듣겠다는 거두 알아요. 기래두 나는 가야 돼요.” 옥화는 편지에 자신이 반드시 떠나야 하는 이유를 명확히 적어놓지 않았다. 옥화는 그 동네에서 마지막으로 ‘떠나가버린’ 북녘 여자였다. 그 여자들 모두 옥화처럼 가야 하는 이유를 아무한테도 말해본 적이 없었다. 조국에서 중국으로, 중국에서 다시 한국으로…… 그저 떠나가는 게 그들의 바람이었단 말인가.
어쩌면, 하고 홍은 터미널에 서 있는 여자를 향해 손을 흔들어 보였다. 여자도 홍을 알아보고 행인들 속을 헤치면서 그녀에게로 다가왔다. 초행길이라 그랬을까, 낯선 중국인 무리에 끼인 여자는 가방을 두 손으로 부여잡은 채 온몸이 경직된 채로 걸어오고 있었다. 어쩌면 그런 불안감 때문에 그들은 떠날 수밖에 없었던 것인가. 다시는 불안하지 않을 곳으로……
홍은 여자를 데리고 부근의 대형 지하할인마트로 갔다. 간식거리도 사 먹을 수 있고 다리쉼도 할 수 있는 간이의자가 많이 놓인 공간이 거기에 있었다. “집사님, 미안해요. 바쁜데 우정 나오라구 기래서……” 맨입으로 앉아 있기 뭐해 과자나 주스라도 사오려는 홍을 향해 여자는 눈썹을 찌푸리며 완고하게 손을 내둘렀다. “아니라요. 내는 목도 안 마르고 안 먹어도 돼요. 씰데없는 돈 쓰지 말라요.” 여자가 주위 사람 보기 민망스러울 정도로 팔을 억세게 잡아끄는 바람에 홍은 하는 수 없이 겨우 일회용 플라스틱컵에 담긴 오렌지주스를 두잔 시켜놓고 여자와 소심하게 마주 앉았다.
“내 이제 낼모레쯤이믄 한국으로 떠날 거 같애요.” 한참 어색한 침묵이 흐른 뒤, 여자가 입을 열었다. “사람들은 여기서 일도 하고 맘에 맞는 사람 만나 살라디만, 긴데 기실 여기서는 하고 싶은 거 아무거이두 못해요. 거기 가므는 합법적으루 뭐이나 할 수 있대니, 가야디요.” 여자가 한모금 빨고 내려놓은 컵 벽에서 주스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물은 어쩔 수 없이 아래로 흐르는 법, 홍도 말없이 주스를 들이켰다.
“그날 집사님 얼굴을 보니께네 내 속이 속이 아니래서요.” 하고 문득 여자가 눈을 들어 홍을 쳐다보았다. 순간 그 눈에서 푸른빛이 번뜩 나오는 듯하여 차라리 쏘아보는 것처럼 느껴졌다. “내 집에 가서 자는디, 암만 해도 잠이 오디를 않았시요.”
홍은 휴지를 찾기 위해 머리를 수굿하고 가방 안을 들여다보았다. 여자의 집요한 눈초리가 자신의 이마 부근에 머물고 있다는 것이 느껴져서 심히 불편했다. 이제 시작인가. 왜 나인가. 왜 내가 이런 말들을 들어야 하는가.
“내 지금 집사님보구 머라구 하는 거 아니라요, 내는 그 기도모임에 나가서 집사님 알았디요. 말하는 거이랑 가마이 들어보니께네 하느님께 믿음도 좋고 사람도 참 좋은 사람이다 싶더라요. 기래서 집사님 정도믄 내를 쫌 이해해주시갔나 했디요.”
여자의 억양은, “언니, 맞아요. 그거이 내가 기랬시요.” 하던 옥화의 목소리처럼 정당하게 들리고 있었다. 홍은 그 말을 하는 옥화의 맑은 눈빛 속에서 그 아이가 자신에 대해 지나친 믿음 같은 것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보아내고 깜짝 놀랐었다. 옥화는 무슨 배짱으로 홍을 그렇게 믿을 수 있었으며 그렇게 믿었던 홍에게 힐문을 받고 고깝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을까.
“긴데 왜 집사님은 딴 사람들 말으 듣고 내를 기래 생각하는디, 속에 점말 안 내래갔시요.” 정말 밤잠을 설쳐서인지 여자의 목소리는 점점 갈리고 있었다. “내도 그만한 눈치는 있디요. 집사님 머라 안 기캐도 내 대하는 얼굴 보니께니 이거이 무슨 안 좋은 말으 들었다 싶었디요. 긴데, 그 사람들 누기 하나 내를 아는 사람이 있시요? 내 머, 이 교회 2년 다녔다 기캐두, 무스 하느님 그런 거이도 잘 모르고 사람들도 잘 모르고, 또 그 사람들도 내를 잘 몰라요. 기래, 머 쌀이나 김치나 그런 거이는 잘 갖다줬디요, 내 혼자 먹으므 얼매 먹는다고…… 좌우간 굶지는 않았디요. 일자리도 마니 알아바주고 했시요. 내가 이 허리만 안 아프믄 무스 그런 거이 가리고 하겠시요? 내 주제가 머 이거저거 가릴 주제나 되갔시요?”
열렬한 열변을 토하느라 여자의 시선은 홍의 이마에서 어느새 옮겨간 것 같았다. 그제야 홍은 슬쩍 눈을 들어 여자의 얼굴을 훔쳐볼 수 있었다. 여자는 매장의 구석, 아직 인테리어를 하지 않아 정전이 된 어두운 벽쪽을 쳐다보며 혼자 코웃음을 흥흥 치고 있었다. 그 어둠 속에서 마치 어떤 무리를 실제로 보아내기라도 한 듯이.
“집사님은 내가 어떠케래 여기까정 왔는디 모르디요?” 비어가는 컵을 쥔 여자의 손이 그 말을 할 때에 간간이 떨렸다.
“언니, 우리 집에는 아(兒)들이 너이 있었시요. 우에는 언니 둘이, 내 밑으루 남동생 한나.” 자매 둘만 있었다며 가족들 상황은 항상 어물어물 넘겨버리곤 하던 옥화는 마지막 남겨놓은 편지에 그리 썼다. “언니 둘이는 시집 갔디요, 먹을 거나 잘 먹고 사는디, 발써 굶어죽었는지도 모르갔고, 남동생은 아직 너무 작아서 머 일으 못 시켜먹고…… 기래서 내가 먹을 거 구해볼라구 나왔시요.”
여자는 이제 덤덤해진 눈길로 홍을 건너다보았다. 가장 신랄한 신세 얘기를 꺼낼 때, 여자의 눈빛 속에는 오히려 값싼 슬픔이나 비애 같은 것이 들어 있지 않았다. “……두만강 헤염채 건너와가지고 사람 장사꾼한테 붙잡했디요, 인자는 그 사람들도 이력이 나서 엔벤이나 조선족 동네에다 안 팔고 내를 저 하북성 산골 오지에다 팔더래요. 집이라고는 사방 벽에 지붕이라고 대수 걸채놓은데다가, 남자라고는 맨날 일도 못하고 헤벌써 죽채 있는 게…… 거기서 내 혼자 농사짓고 돼지 치고, 살림하고, 그저 죽게 일하고 살았디요. 애새끼도 하나 낳았시요.” 여자는 막 말을 배우기 시작한 두살배기 아들을 늙은 노파와 모자란 남정에게 남겨두고 신새벽 어둠을 타서 도보로 이틀길을 걸어 가장 가까운 기차역까지 나갔다고 했다. 기차에서 우연히 내린 곳이 이 도시였고 정처없이 걷다가 지쳐 쓰러진 곳이 교회 부근인 모양이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아시갔어요? 내는 내 뱃속으로 낳은 내 아새끼도 내삐리고 도망친 사람이라요. 더 말해 머하갔시요?” 이 말을 뱉고 나서야 비로소 여자는 눈에서 힘을 뺐다. 여자의 안확 안에서 맑은 액체 같은 것이 순간 조용히 솟구치려다 말았다. “어머이랑 언니랑 내한테 정말 잘해주셨다는 거 압니다. 그것도 모르는 사람은 아닙니다……” 옥화의 편지에서 그 구절을 읽으며 홍은 상처난 자리에 소금이 뿌려진 듯 마음이 쓰라렸었다.
“내는 머 목사가 맨날 말하는 믿음이란 게 어떤 거인디 그딴 거 잘 모르는데, 기래도 이거는 압네다. 한사람이 어떻다는 거이는 하느님만 아시디, 딴 사람들으는 다 모른다는 거이요. 안 기래요, 집사님?” 한 밀차 가득 물건을 실은 젊은 부부가 매장에서 나와 그녀들 곁을 지나쳤다. 젊고 건강하고 배울 만큼 배워 보이는, 가진 게 많아 보이는 사람들이었다. 시형 말처럼 다 같은 사람들이라면, 저 사람들이 소유한 그 많은 것들은 모두 어디서 온 것이란 말인가.
“내는 머 교회 사람들이는 머가 달라도 달른가 했디요.” 잠시 눈을 파는 사이, 여자의 목소리가 다시 홍의 귀를 때렸다. 교회 사람들이라니? 아니, 교회 사람들은 무엇을 가졌기에 다르다고 생각했을까? ‘믿음’을 말하는 건가? “……마지막에는 내를 중간에 앉해놓고 위원인가 머인가 하는 령도들이 쭉 둘러앉아서 죄인 심판하듯이 심판합데다. 너는 이래서 아이되고, 너는 이래서 어쩌고…… 그 최권산가 먼가 하는 할마이는, 기래, 그 할마이가 쌀도 웰 마니 주긴 줬디, 길쎄 나르 보고 하느님도 싫어할 사람이라고 합데다.”
젊은 부부의 묵직한 밀차가 한창 ‘없는 사람들’ 무리를 헤집고 있었다. 부유하고, 학식있고, 덕망있고…… 또 ‘믿음’있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죄인이 된 그날의 여자가 눈앞에 보이는 듯하였다. 그래서 여자가 받은 것들이 ‘그 잘란 것, 그딴 거’ 따위가 되었단 말인가? 텅 빈 주스컵이 결국 속 보이는 얇다란 플라스틱통이 되어 홍의 손안에서 푹 물앉아버렸다.
“집사님이 내를 방조한 거, 내 꼭 까먹지 않는다요. 내 이땀에 돈 많이 벌믄, 꼭 갚을 거라요. 기리구 나는 잘살믄……” 여자는 거기까지 얘기하고 더 하지 않았다. 애초부터 되돌려받으려고 준 돈이 아니라고, 진심으로 그저 여자가 무사하기만 바란다고 홍이 재차 말해주어도 소용없었다. 그같은 상황에서는 여자더러 갚으라고 하는 것이 오히려 그녀를 존중해주는 일인 듯싶었다.
여자는 자신이 오던 대로 우체국 역에 가서 반대방향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렸다. “내 여직꺼정 누기보구 이런 얘기 해보디르 않았는디, 집사님보구 내 얘기 다 하니께네 인자 내 속이 편안해요.” 버스에 오르기 전, 여자가 모처럼 잠깐 얼굴을 펴 보였다.
그러나 여자를 태운 버스가 기우뚱거리며 출발할 때 홍은 그 버스가 뿜어내는 검은 매연에 눈이 매워났다. “기리구 나는 잘살믄 당신들처럼 안 기래요……” 여자가 뿜어내고 싶었던 마지막 말은 그것이었을까? 그런데 그것은 정말 여자 자신이 말했던 것처럼, 하느님만 아시는 일이 아닐까? 차창 곁에 앉은 여자의 태연한 옆모습을 올려다보면서 홍은 혼자 남아 쿨럭쿨럭 기침했다.
아침이 밝아 눈을 뜨고 일어나 앉는다. 자정을 넘겨 들어왔는지, 새벽녘에 들어왔는지, 바로 곁에서 남편이 술냄새를 지독하게 피우며 쓰러져 자고 있다. 어제 또 기사 아저씨랑 같이 물건을 날랐는가, 이마를 짚고 있는 손등에 새로 긁힌 벌건 흔적들이 여기저기 보인다. 무거운 마루자재를 나르랴, 수금날 전에 미리 사장들을 접대하랴, 어지간히 피곤했을 것이다. 이 집의 가장이고 여남은 되는 직원들의 책임자가 아니던가.
남편 곁을 살그머니 떠나 거실에 있는 시계를 보니, 2013년 10월 27일 수요일이다. 오늘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기도모임에 가야겠다고 홍은 마음먹는다. 아들을 위해서 남편을 위해서 가게를 위해서, 그리고 길을 떠난 여자의 안전을 위해서.
서둘러 밥솥에 쌀을 씻어 안치며 된장국이나 끓일 요량으로 냉동실에 얼려놓은 시래기를 꺼낸다. 고향에서 먹던 맛이라며 옥화가 참 잘 먹었던 시래기 된장국이다. “혹시 운이 좋아서 한국까지 살아서 간다면, 이 집 사람들 절대 잊어버리지 않을 거라요. 거기서 벌어서 꼭 갚을 거라요.” 떠나가기 전, 옥화는 불쑥 홍에게 엄마가 보고 싶다며 고향에 내려가겠다고 했다. 엄마랑 아무렇지도 않게 평범한 이틀을 같이 보낸 뒤, 그 아이는 언제 있었던 아이냐 싶게 연기처럼 그들의 인생에서 사라진 것이었다. 엄마는 옥화의 편지를, 마을 이장 아저씨한테서 받은, 끝내 실체를 알 수 없는 그녀의 싸인이 적힌 5천원의 차용증과 같이 홍에게 보여주었다.
그해 늦가을, 옥화가 떠나간 집에 돌아온 남동생은 만취상태에서 오토바이를 타다가 사고를 당했고, 엄마는 아들녀석의 다리가 완쾌되는 것을 보기 전에 뇌출혈로 갑작스레 돌아가셨다. 홍한테는 5천원의 빚과 엄마를 보낸 슬픔 외에 짝을 잃은 남동생의 허전함을 달래줄 일이 덤으로 남겨진 셈이였다. 그리고 옥화는 여태 아무 소식이 없다. 이날 이때까지.
분주한 아침이 시작되고 있었다. 방문을 벌컥 열어 색색거리며 자는 아들녀석을 소리쳐 깨우고, 씻으라 닦달하고, 밥을 먹여 학교로 내보낸다. 집값이 싼 쪽을 택하다보니 후미진 도시의 변두리로 오게 되는 바람에 녀석의 학교까지도 버스로 한시간 거리다. 창고를 지키는 직원에게서 전화가 온다. 물건이 오는 시간이 앞당겨졌다고, 출근길 차들이 막히기 전에 당장 나와달란다. 말투를 들어보니 고집쟁이 기사 아저씨한테 무슨 불만이 가득 있는 눈치다. 접때처럼 또 어느 직원이 갑자기 그만두는 날엔 큰일이다. 홍은 부리나케 남편을 흔들어 깨우고 부부는 또다시 아침상을 그대로 놓아둔 채 아파트를 나선다.
잠이 덜 깬 남편이 부시시한 얼굴로 차문을 여는 사이, 홍은 두꺼운 장부를 안고 총총걸음으로 1층 리따예네 뙈기밭을 지나친다. 어제 금방 옮겨놓은 오이모며 토마토모가 훤칠한 키를 뽐내며 줄느런히 서서 아침햇빛을 받아 마시고 있었다. 그리고 밭 변두리 메마른 땅에서도 작년에 떨어졌을 배추씨 같은 것이 야위고 볼품없으나마 용케 싹을 틔워 자라고 있었다.
홍은 시동을 걸고 있는 남편의 옆자리 조수석에 올라가 앉는다. 햇빛은 언제나처럼 뙈기밭 구석구석에 골고루 비추고 있는데, 그 빛을 받은 모종들과 변두리의 싹들이 멀리서 보니 마치 땅에 씌어진 무슨 글씨처럼 보이고 있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