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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세월호 이후 한국사회 무엇을 바꿀까

 

불확실한 삶에서 움트는 신군사주의

 

 

김엘리

이화여대 리더십개발원 특임교수,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공동대표. 평화를만드는여성회 공동대표 역임. 주요 논문으로 「초남성공간에서 여성의 군인되기 경험」 「동맹의 젠더정치학」 등이 있음. ellikim@ewha.ac.kr

 

 

1. 신군사주의

 

일반적으로 군사주의란 군사적 가치를 찬양하고 지향하는 이념을 말한다. 전쟁과 전쟁준비를 당연하다고 여기며 정상적인 사회활동으로 보는 태도이자 행위이며, 이를 지속시키는 제도이다.1) 군사주의라는 용어는 모호하여 학자마다 쓰임새가 다르다. 그것은 군()·()·() 복합체 같은 사회체제를 뜻하기도 하고, 상징과 이미지를 통한 문화현상이기도 하며, 정치집단의 통치기술이기도 하다. 씬시아 인로(Cynthia Enloe)의 어법으로 풀자면, 누구든 군사적 가치를 취하고, 군사적인 해결방식을 매우 효율적이라 생각하며, 약육강식의 세상에서 군사적 태도만큼 확실한 것은 없다고 믿으면 군사화되었다고 본다.2) 군사주의는 사회가 특정한 방향으로 흐르는 경향성, 혹은 사람들의 행위와 사유를 특정한 방향으로 이끄는 사회적 에토스라고 말할 수 있겠다.

한국의 군사주의는 역사 속에서 구성되고 계승되는 과정에 있다. 피식민, 분단, 한국전쟁, 한미동맹, 남북한의 오랜 군사대치 등을 거치며 군사주의는 생성됐고 지속됐다. 남한 사람들은 분단체제에서 남북한의 군사적 대치를 60여년간 겪으면서 특정하게 조직된 전쟁공포 속에서, 그리고 국민이 아닌 좌익으로 배제될 수 있다는 불안감 속에서 국민정체성을 구성해왔다. 이러한 감정은 일시적인 파동이 아니라 오랜 시간 역사적·정치적 혼란 속에서 만들어진 일종의 관성이다. 군사주의는 이 관성에 깊이 스며 있다.

탈냉전의 시대를 열고 문민정부가 들어선 1990년대 이후 군사주의는 비판과 성찰의 대상이 되곤 했다. 비민주적 사회, 권위주의적 관료사회, 폭력적 사회, 성차별 사회를 만든 구성요소로서 군사문화는 해소되어야 할 사회적 걸림돌로 지목됐다. 군사주의는 단순히 정권을 쥔 집단의 통치방식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 만연한 현상이며 규율이라는 자기반성적 논의도 성행했다. 거대담론 안에서는 재현할 수 없는 정치적 언어 부재를 지적하며 일상적 삶에서 경험하는 군사주의를 논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군사주의는 폭력과 억압의 정치를 뜻했다.

그런데 오늘날 군사주의는 전체주의적 결연함보다는 사안별로 그 결을 달리하며 때로는 즐거움을 동반한다는 점에서 그 성격을 다시 보게 된다. 1960~80년대에는 군사주의가 준전시체제의 유사 군사조직을 기반으로 국민을 국가 차원에서 동원하는 방식으로 발현됐다면, 2000년대 이후로는 자유민주주의 정치체제를 훼손하지 않고 자기계발이라는 신자유주의적 통치성 안에서 작동한다. 최근 군대 이야기가 미디어를 통해 즐거움과 추억거리로 소비되고 유사 군사훈련이 극기체험으로 차용되면서 군사적 가치는 개인의 삶에 친밀하게 관여한다. 인터넷이나 SNS를 통해 홍보 동영상을 간편하게 파급할 수 있게 되자 군은 일찌감치 여자 아이돌 가수 등 연예인을 홍보대사로 삼고 군대문화와 병영생활을 매우 친밀한 것으로 만들고자 했다. 몇년 전 배우 현빈의 해병대 입대는 그 자체로 홍보효과를 톡톡히 냈는데, 군대를 가야이왕이면 해병대를 가야진짜가 된다는 ‘진짜 사나이’의 판타지를 강화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 정치적으로는 유신체제의 회귀를 논할 정도로 이념공세가 전개되는 상황에서 전통적 의미의 군사주의의 결도 선명히 살아나고 있다. 남북이 군사적으로 대치한 상황이 여전히 우리의 삶을 조직하고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국외적으로도 미국이 ‘아시아 회귀’(Pivot to Asia) 정책을 강화하면서 아시아의 군사화가 심화되고, 일본이 재무장을 시도하여 동북아 정세도 긴장되는 현실이다. 이러한 주변국의 군사적 전략은 한국에서 안보와 군사주의를 강화하는 근거를 제공한다.

이제 군사주의는 막무가내식이 아니라 한층 교묘하게 작동한다. 군사주의는 여전한 분단체제하에서 항시적인 적을 상정함으로써, 싸워야 할 대상이 분명하고 그 대상에 대한 적대감을 일으키는, 탈냉전시대 냉전상황의 지속성이라는 맥락에서 발현한다. 그러나 동시에 일상의 삶에서 신자유주의와 결합하여 단순히 자기희생이 아닌 자기이익과 부합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반공규율사회에서 국민에 대한 훈육적 동원 차원으로 군사주의가 발현했다면, 신자유주의 통치사회에서 그것은 자기계발의 개인적 성취와 만난다. 이 글은 이러한 현상을 신()군사주의라고 표현한다. 신군사주의라는 말은 ‘군사적 성장주의’와 ‘군사화된 근대성’3)을 넘어서 신자유주의 통치의 맥락에서 작동하는 군사주의를 포착하려는 시도이다.

신자유주의 통치원리란 사회적인 것을 경제적인 것으로 치환하여 시장원리 혹은 경쟁원리로 전환하는 것과, 시장원리에 맞춰 자신의 삶을 관리하는 자기경영의 주체를 형성하고 그 주체 형성 모델에 적응할 수 없는 개인을 사회 바깥으로 배제하는 것을 말한다.4) 양극화된 사회와 그 속에서의 불안정한 삶은 불안감을 증대시킨다. 이 불안정성을 ‘안전사회’로 해결하려는 국가권력과 우익 보수주의자들은 군사주의적 질서를 재생한다. 그래서 탈냉전과 냉전의 연속선상에 있는 한국사회에서 반공규율권력은 신자유주의에 의해 소멸하는 게 아니라, 통치관리와 함께 상호보완적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신군사주의는 시대착오적인 요소와 현시대의 특성을 함께 지닌다.

여기서 굳이 신군사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군사주의가 더 강화되었는가 약화되었는가를 가늠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지금의 군사주의가 작동하는 방식이 신자유주의의 결을 따라 유동적으로 변모한다는 점을 말하기 위해서다. 이 글의 취지는 군사주의가 단순히 폭력과 억압의 형태라든가 국민정체성 안에서만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이익을 확장하는 지점과 만나는 맥락을 고려하는 데 있다.

 

 

2. 소비와 체험으로

 

한국 자본주의가 그동안 추진해온 신자유주의화는 단순히 훈육이 아니라 스스로 자기를 계발하는 주체를 생산했다.5) 여기서 자기는 주관적인 존재로 자율성을 추구하는데, 여러 선택지 사이에서 스스로 선택하며 자신의 삶을 만들어감으로써 존재의미를 찾을 뿐 아니라 그 삶의 현실과 과정을 개인의 책임이라고 여긴다. 자기를 계발하는 주체는 자신의 삶을 하나의 기업으로 여기며 자기를 기업가로 주체화한다. 개인의 선택은 자유롭고 자율적으로 보이나 실은 시장규범에 맞춰 자신을 조율하고 전문가의 권위에 점차 의존하며, 모든 것은 개인의 능력 여하에 좌우된다는 담론으로 자신을 구성하게 된다.6) 그러나 누구나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은 사회경제적 구조의 문제를 고려하지 않은 신화에 불과하다. 만약 실패했다면 자신을 잘못 경영한 탓이다. 따라서 고용은 불안정하고 복지는 축소되는 상황에서 개인의 불안감은 가중된다.

신자유주의가 표방한 자유와 작은 정부의 기치는 실제적인 안전 시스템을 제공하지 못한 채 개인에게 선택과 책임을 맡긴다. 어떤 이는 이 불안감을 개인연금과 사설 경비에 기대어 해소하려 한다. 개인의 안전한 삶은 민영화된 상품을 통해 확보되고, 개인은 공론의 장에서 사회적 실천을 행하는 시민이라기보다는 소비자로 전이한다. 자신에게 투자하고 자신을 관리하며 계발하는 행위는 특정한 제품을 선택하고 소비하는 행위와 연관된다.

심지어 병영체험마저 자신을 관리하고 계발하는 체험적 소비의 하나로 자리잡고 있다. 남성만의 병역의무 사회에서, 군대에서 축구하는 이야기나 최전방에서 귀신 잡는 이야기는 여성에게 지겨운 영웅담이었지만, 이제 군은 호기심과 도전을 자극하는, 그래서 한번쯤은 고개를 내밀고 둘러보는 곳이 됐다. 내친김에 군인이라는 직업을 생각해보는 여성도 꽤 많다. 군은 나의 한계를 확인해볼 수 있고 남성과의 평등성을 헤아릴 수 있는 곳이 됐다. 이 남성중심 조직에서 적응하고 살아남으면 어디서든 못할 게 없는 실험장이 된 것이다. ‘남자’라는 성별 자체가 취직에 유리한 ‘스펙’인 경쟁사회에서 여성은 “남성들과 비슷한 위치에서 평가받을 수 있”7)다는 기대감으로 병영캠프의 극기체험을 지원한다.

여기서 눈길을 끄는 것은 군과 여성 그리고 체험적 스펙이라는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여성은 병역의무가 없으므로 안보교육의 대상으로 지목되지만, 최근의 열기는 색다르다. 항간에는 여성의 시청률이 높았던 MBC 예능 프로그램 「진짜 사나이」의 영향 탓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물론 예능 프로그램으로 관심이 집중되는 효과도 컸겠지만, 여성이 군사활동에 노출되는 정도는 좀더 과감해졌다. 군대에 갈 아들을 이해하기 위한 정도가 아니라, 자기를 계발하는 직접적 체험으로 군사활동을 인식하게 됐다.

여성의 병영체험이 성평등이라는 맥락에서 언설화된다면, 학생의 경우는 창의력을 위한 교육훈련으로서 거론된다. 인내력과 정신력, 집단성을 키우면서 리더십과 창의력을 고양하기 위해 교육기관들은 체험학습으로서 해병대캠프를 활용한다. 교육과학기술부는 2009년 교과과정의 하나로 창의적 체험활동을 도입했는데, 그 체험학습이 병영체험캠프에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한 사설 해병대캠프 업체에서 고객의 20% 정도가 기업체고 학생이 80%를 차지한다고 말할 정도로8) 병영캠프는 교육의 과정으로 자리잡고 있다. 정의당 정진후(鄭鎭珝) 의원이 발표한 바에 따르면, 2009년부터 최근 5년간 병영체험캠프에 참여한 학생은 207,434명으로, 단일연도로 보면 2009학년도에 비해 2012학년도에 4배 증가했다.9) 이렇게 급증하는 현실의 이면에는 조직적 동원과 지속적인 협력체제가 작동한다. 각 시·도 교육청은 일선 학교에 공문을 보내 학생과 교사 참가를 권유한다. 일부 시교육청은 군부대나 해병대전우회와 협력약정을 맺고 군··관 협력체제에서 병영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프로그램에는 유격훈련, 행군훈련, 각개전투, 화생방, 수상훈련 같은 군사훈련이 포함돼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2013718일, 해병대캠프 교육 중 고교생 5명이 익사한 사건이 발생했다.

군과 군사업체들의 안보교육도 대중성을 가지기 위해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체험적 형식을 취한다. 체험적 소비는 즐거움을 주는 한편으로 자기 이미지를 만들고 자기를 표현하는 장이다. 특정한 제품의 소비를 통해 그 제품이 갖는 상징적 의미를 자기의 이미지로 전유하는 것이다. 그래서 병영체험은 신자유주의 경쟁사회에서 스펙이 되는 ‘능력 입증서’가 된다. 여성뿐 아니라 유약하게 보이는 남성 회사원도 병영캠프를 다녀오면 강한 리더십을 습득한 사람으로 입증되고, 고교생에겐 공동체의식과 인내력, 리더십을 갖추었다는 기록이 생활기록부에 기재되면서 대학입시 과정에 참조가 된다.

그렇게 군사활동은 특정한 군대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자기계발의 일환으로 확장된다. 사람들은 군사훈련 프로그램을 통하여 자신을 관리한다. 자기계발은 소비와 체험을 통해 몸으로 느끼는 감정을 동반한다. 병영캠프는 고통과 무서움, 낯섦에도, 이를 하고 나면 ‘해냈다’는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갖게 한다. 경쟁에서 낙오하면 실패할 수 있다는 일상적 두려움과 불안을 이 ‘해냈다’는 자신감을 통해 순간 해소할 수 있다. 이로 인한 보람과 쾌감은 자신을 바꾸고 북돋으려는 의지를 강화한다. 무엇보다 ‘함께 해냈다’는 집단적 지지와 동지애는 개인화된 사회에서 느끼는 단절감을 집단성으로 극복하는 듯한 든든함도 준다.

무한경쟁 속에서 단절과 불안감을 가졌던 개인은 병영캠프를 통해 유사 공동체성을 느끼면서 위안을 받는다. 몸을 부대끼고 함께 작업하면서 얻는 협동심과 단결성에서 안정감을 느낀다. 그러나 체험적 소비는 순간의 감정이다. 체험사회는 후기 근대사회의 개인이 주관적으로 삶의 보람과 즐거움을 찾으려는 생활양식10)이지만 불안한 삶의 조건을 심층적으로 변화시키진 않는다. 오히려 개별적 몸은 유순한 몸이 되어서 국가와 기업이 조율할 가능성을 더 열어놓을지도 모른다.

 

 

3. 안전사회가 안보국가로

 

개인의 자유와 선택, 자기이익, 능력주의 등의 특징을 갖는 신자유주의는 국가기능을 쇠퇴시키고 개인성을 강조한다는 면에서 군사주의와 대립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신자유주의는 시장경쟁을 활성화하기 위한 조건을 만들어 시장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오히려 국가를 필요로 한다. 이 가운데 개인주의가 만연한 혼돈을 질서로 되잡기 위해 국가의 강제성이 요구된다. 하비(D. Harvey)는, 신보수주의자들이 개인적 이해관계의 혼돈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군사주의를 강화하면서 내외부적으로 국가의 통합성과 안전성을 위협받는 상황을 강조한다고 말한다.11)

박근혜정부는 국민의 불안감을 해소하고 창조경제를 통해 고용을 창출함으로써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안전사회의 구현을 정부 운영과제로 제시했다. 그러나 곧 그것을 4대 사회악의 근절이라는 일탈적이고 범죄적인 차원으로 축소시켜서 그 이해를 단순화했을 뿐 아니라 안전한 사회를 수호한다는 명분으로 국가의 관료주의적 집행권을 강화했다.

그리고 안전사회는 안보국가로 치환된다. 국가기능의 각 부분이 민영화를 통해 기업으로 이전되고, 국민을 소비자로 변화시킨 상황에서 국가의 통치성은 안보에 대한 강조에 의존한다.12) 국가가 복지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자 통치 정당성을 확보하는 수단으로 안보언설을 강화하는 것이다. 이는 개인의 ‘인간안보’가 이루어지지 못하는 체제에서 개인의 불안감을 국가의 군사안보로 수렴하는 효과를 낸다. 개인은 안전하지 못한 삶에서 오는 불안감을 국가정책과 시스템으로 해소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법과 군사력에 의존하여 특정한 정치성으로 환원한다.

미묘한 것은 탈냉전시대에 냉전의 잔여가 여전히 ‘감정’의 발목을 잡고 안보언설의 핵심을 이룬다는 점이다. 때로 미국의 ‘테러리즘과의 전쟁’ 전략과 배치되어 한미동맹에 갈등이 불거진다 해도 한국은 북한과의 군사적 대척점을 붙잡고 있다. 반공주의는 일차적으로 북한을 겨냥하는 것 같지만, 내부의 적을 만들고 선별하는 정치적 도구이자 ‘국민’으로서 총화단결의 긴장성을 자동적으로 유발하는 회로판으로서 기존의 질서를 지속시키는 효과적인 언술로 작동한다.13) 흥미로운 점은 반공주의가 보수주의자와 기독교 근본주의자의 만남에서 열정을 태우며, 민간 극우집단 활동의 핵심을 이룬다는 점이다. 이는 헨리 지루(Henry A. Giroux)가 기술하는 미국의 상황과도 닮아 있다. 그는 신자유주의가, 미국정부가 추진하는 정치적인 의제와 맞지 않을 때 비관용과 증오를 부추기며 군사주의와 기독교 근본주의, 애국주의를 통해 권위관료주의를 키운다고 말한다. 국가는 기업, 신보수주의 비전, 기독교 근본주의와 동맹을 맺고 국가안보를 이유로 공포문화를 조장하며 시민사회를 재조직한다는 것이다.14)

조갑제(趙甲濟) 전 월간조선 대표는 한 기독교 목회자 모임에서 우익 보수주의와 교회의 공통점을 반공주의로 지적하며 교회의 인적자원과 물적자원이 반공주의를 위한 힘이 되어야 한다고 강연하여 열렬한 박수를 받았다.15) 이 강연이 반드시 매개가 되었다고 할 순 없다 해도, 이를 전후로 기독교계는 한국 보수주의 운동에 활동력이 되었다. 기독교 근본주의는 미디어법, 사학법, 차별금지법 등의 법개정 운동과 퀴어축제를 극렬하게 반대하는 운동을 전개하며 보수주의 극우파로 부상한다.16) 그런데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의 프레임은 십자군전쟁 같은 것으로, 군사주의의 특성을 보여준다. 선과 악이라는 이원화된 체제를 바탕으로 반기독교세력, 말하자면 좌익진영을 악으로 규정하고 정복하는 영적 전쟁을 치르는 것이다. 그들은 진보적 세력들로 인해 사회혼란이 오면 공산주의에 이로움을 주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는 불안과 두려움을 표현하는데, 이들이 강조하는 선과 악, 적, 적대감, 공격, 박살 같은 언어와 논리는 군사적 가치와 깊이 맞닿아 있다.

이러한 기독교 보수주의자들이나 ‘일베’(일간베스트 저장소) 같은 민간 극우집단은 국정원, 검찰, 언론 못지않은, 박근혜정부의 권력장치이다. 정부가 외부의 적인 북한만이 아니라 일련의 정치적 스캔들17)을 통해 우익과 좌익을 가르고 국민 내부의 적을 만들면서 국가주의를 행사할 때 그들은 사회적 관리를 담당한다. 불안이라는 감정을 고조시키며 전쟁위기의식을 조장하는데, 이때의 불안감은 위험의 대상이 명확하지 않고 불확실한 상황에서 일어나는 감정으로, 개인적인 심리현상이라기보다는 사회적으로 구성되고 공유된 집단감정이다. 이것은 혼란, 무질서, 분열에 대한 두려움의 다른 이름으로, 정부와 우익 보수주의자들은 이 불안감을 해소한다는 명분으로 군사주의를 불러낸다. 반공주의는 이렇게 해서 군기를 잡으려는 군사주의적 질서관을 재생시킨다. 여기서 군사주의는 우익 보수주의자들의 사유체계이자 통치기술이다.

 

 

4. 군사화된 남성성의 변화와 균열

 

분단사회에서 남성이 된다는 것, 여성이 된다는 것은 군대를 둘러싼 담론 속에서 특정한 방식으로 사유하고 행위하도록 한다. 군대에서 유격훈련시 교관이 훈련병에게 던지는 레퍼토리가 있다. ‘애인 있습니까?’ ‘없습니다!’ ‘엄마를 부르면서 힘차게 나간다, 뛰어!’라는 레퍼토리18)는 보호자-피보호자, 안보행위자-정서제공자라는 젠더 문법 안에서 반복되고, 그 반복적 수행을 통해 ‘남성’이 만들어진다. 남성징병 제도는 남성과 여성으로 하여금 성별분업 틀에 맞추어 남성다움과 여성다움을 행하도록 한다. 문승숙은 남성의 정체성이 경제와 군사 활동의 결합 속에서 구성됐다고 분석한다. 경제적 보상으로 이어지는 병역 이행을 통해 남성은 경제권과 가장으로서의 권한을 가진 반면, 여성은 가정주부와 어머니로서 자리매김 됐다는 것이다.19) 말하자면, 군사화된 근대화는 국방과 산업현장에서의 전사 같은 남성과, 모성으로서 안보국가에 기여하는 여성을 젠더화된 방식으로 분리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헤게모니를 지닌 남성성은 병역의무를 한 이성애 남성으로서 경제력을 갖춘 생계부양자의 모습을 띠게 됐다.

그런데 이러한 전통적인 남성성이 변화하고 있다. IMF를 겪으면서 남성성을 받쳐준 경제력이 약화되고 군가산점제가 폐지되어 남성성을 상징적으로 보증한 보상체계도 사라지면서, 가장으로서 그리고 안보주체자로서의 남성성을 구성한 물적 조건들이 흔들리고 있다. 소비자본주의가 확산되면서 터프한 남성성은 퇴조하고, 연애와 결혼을 미루며 자기 취미활동에 충실한 ‘초식남’이 등장한다. 감정을 다루는 데 낯선 남성은 감정자본이 부족한 탓에 창조력을 발휘하거나 상호관계성을 기반으로 하는 일에 유연하지 못하여 앞으로 각광받기 힘든 세상이 왔다. 인간의 얼굴을 하고 눈물을 흘리는 군인의 모습은 ‘울지 말아야 진짜 사나이’라는 통설을 깬다.

이제 남성도 폼생폼사의 사나이를 가장하여 연기하기보다 실속있는 자기관리를 한다. 20대 대학생들이 데이트 비용을 누가 내는가에 예민한 것도 교환원리로 조율되는 사랑의 현실을 보여준다. 표면적으로는 평등이라는 이름으로 낭만적 사랑을 퇴조시키는 것처럼 보이지만, 연애도 이익을 가늠하는 투자의 하나이다. 신자유주의 시장경제가 개인을 무한경쟁 속에 놓음으로써 지속적인 자기계발을 하지 않으면 불안감을 느끼는 시대에, 징병제도는 남성에게 생애연속성의 단절을 가져온다는 원망을 듣게 됐다. 그러나 남성은 병역이라는 국민적 의무를 놓고 국가와 협상하지는 못하고, 병역의무에서 제외된 여성을 향해 ‘남성만의’ 병역의무를 문제 삼는다. 병역의무가 남성으로서 당연한 의례라고 여겼던 아버지 시절과는 달리, 신세대 남성은 군복무로 인한 생애단절을 불평등이라는 언어로 설명한다.

그러나 군복무 기간을 억울함으로 토로하기보다 자기계발의 시간으로 변용하는 이들이 등장했다. 몸짱 만들기, 외국어 마스터하기 등 군대생활을 알뜰하게 보낸 이야기를 군대생활 지침서로 쓰면서 그들은 군을 새롭게 사유한다.20) 이러한 흐름은 변모하는 군의 통치방식과도 조응한다. 군은 동아리활동, 외국어학습, 학점교환 등의 프로그램을 통해 남성에게 이익이 되는 인적계발을 도모한다. 국방부는 지적탐구와 경력개발이 필요한 현역병을 국가의 미래를 이끌 인적자원으로 양성하기 위해 전경련과 함께 ‘군 자기계발 시범사업’을 하겠다고 발표한 바도 있다.21)

그런가 하면 신자유주의 문화논리에서 성장한 일부 남성들은 끊임없이 관리하고 경쟁하지만 생애전망이 불확실할 뿐 아니라 자신이 잉여인간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불안감을 자발적 ‘루저’의 정서로 확산시킨다. 그중의 하나가 헤게모닉 남성성의 허구성을 인지하고 규범화된 남성성과 거리를 두는 문화이다. ‘루저문화’의 사례로 꼽히는 만화 「예비역 깨구리중사 캐마쵸」는 군생활의 억울함과 군가산점 폐지, 여성에 대한 분노를 드러내는 ‘예비역 마쵸중사’를 통해 ‘마쵸부대’의 비합리성, 남성의 찌질함과 한심함을 비꼰다. 표준화된 남성성과 자신이 일치하지 않는 현실을 웃음거리로 드러내는 루저문화에 관해 남성을 다시 정의할 수 있는 실마리로 보는 견해도 있다.22) 반면, 자기계발 주체모델에 상응하지 못하는 위기에 있는 일부 남성은 경쟁원리에서 오는 버거움과 외로움을 마초적 남성 에토스로 풀어낸다. 상처받은 피해의식은 자본과 국가권력으로부터 오는 것임에도 그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만회하기 위해 여성, 이주자, 성적 소수자, 특정 지역출신 같은 공격대상을 찾아 저격한다. 그중 일베는 종북세력을 대항한 애국세력으로 자처한다. 그들은 전쟁을 하면서 정치를 하고, 전사의 정체성을 획득한다.

남성성의 변화는 균질적으로 보였던 남성들 내부의 차이를 드러내는 것으로 나타난다. 군사화된 남성성으로 묶였던 남성들이 그 고리를 변형하거나 해체하면서 화석화된 군사주의 논의의 물꼬를 열기도 했다. 남성성과 군사주의, 신자유주의의 연계성을 인지하면서 자신의 남성성을 성찰하는 병역거부자가 그 예다. ‘진짜’ 사나이의 허구성을 ‘가짜’ 사나이의 모습을 통해 폭로하는 그들은, 폭력적이고 위계적인 문화에 길들여지면서 남성성을 생산하는 사회시스템을 거부한다. 이들의 병역거부 소견서는 폭력성과 권위-위계성에 대한 민감함이 나약한 겁쟁이로 해독되는 사회의 역설을 드러낸다.23) 적과 아()의 분리를 경쟁과 정복으로 맺지 않고, 취약한 자들의 상생적 의존성과 연결성으로 재조직하려는 그들의 존재감은 규범화된 남성성에 균열을 낸다.

 

 

5. 탈군사화를 상상하는 일

 

전쟁준비를 하거나 군비증강을 하는 과정은 순수하게 군사영역 안에서만 일어나는 제한된 실행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글로벌하게 구조화돼 있다. 오늘날의 스마트폰이 우리 손에서 사랑받기까지는 통신기술의 진화 덕이 큰데, 고기술의 발원지가 바로 컴퓨터와 관련된 군사무기의 개발이라는 역사는 상식적인 이야기다. 정보통신기술은C4I24) 체계를 효과적으로 수행하는 네트워크 중심의 전쟁을 준비하는 바탕이 되고, 전략방위구상(SDI)과 전역미사일방위구상(TMDI)은 군··학 복합체의 고기술 진화가 낳은 산물이다.

군사활동은 경제분야와 학계만이 아니라 문화, 영화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와 유기적 관계에 있다. 이른바 군··학 엔터테인먼트 복합체는 백악관 및 펜타곤과 정치적 관계에 있는 할리우드 영화산업에서 볼 수 있다. 탈냉전 후 미국 자본주의가 군수산업의 재생산에 의존하는 것처럼, 문화산업은 9·11 이후 테러와의 전쟁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정보 유통 시스템을 미국정부에 제공하고, 애국심을 일으키는 호전적인 영화들을 제작한다. 또한 할리우드 영화제작에서 컴퓨터그래픽에 의한 특수효과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자, 이를 토대로 군은 록히드마틴(Lockheed Martin), 씰리콘그래픽스(Silicon Graphics), 웨스팅하우스(Westinghouse) 같은 군수산업체가 참여하는 연구조직에 의존하여 21세기 전사들이 다양한 상황에 대비하는 전쟁 씨뮬레이션 시스템을 제공받는다.25) 여기에는 대학과 군, 정부, 기업, 엔터테인먼트의 네트워크가 함께 움직이고 있다.

탈냉전 이후 군이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민간인 전문가와 밀접히 결탁하고, 퇴역한 군인과 방위산업체가 양성한 민간 군사기업이 증가하여 전쟁수행에 필요한 분야에서 군사영역과 시민영역은 더 긴밀해졌다고 할 수 있다. 민간 군사기업은 정보수집, 군수물자 보급, 군사훈련, 작전 전략지원, 무기관리, 지뢰제거 등 전쟁과 관련된 전문적인 서비스를 제공한다. 마침 국가예산을 감축하려는 한 방법으로 국가는 일부 군사활동을 민간 군사기업에 용역을 주어 군의 민영화가 가속됐다.26) 스트랫포(Stratfor)와 블랙워터(Black Water) 등 9·11 이후 민간군사기업의 활약은 잘 알려진 바 있다. 한국 국방부도 전투지원업무 영역을 민간 사업자에게 아웃소싱하며, 국방관련 업무도 전문성을 높인다는 명분으로 시민과 군인이 함께 운영하는 형태로 전환하는 것을 추진하고 있다.27)

전쟁도 사고파는 시대에 이렇듯 군과 시민영역이 매우 밀접해진 상황에서 신군사주의는 너무나 당연해진 나머지 어디에도 부재하거나 혹은 모든 영역에 편재하는 요물이 된다. 군사주의는 국가주의와 결합하기도 하고, 신자유주의, 식민주의, 경제발전주의, 가부장제, 젠더 등과 얽혀서 혹은 그에 기대어 등장한다. 더욱이 군사주의가 일차적 폭력과 훈육이 아니라 신자유주의적 통치의 결을 따라 움직이면 잘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군사적인 것에 관한 좀더 예리한 사회적 공론이 필요하다. 적과 아의 이분화된 거리를 경쟁과 전쟁으로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개인의 이야기가 오가는 공론장으로 바꾸는 의식적 행위가 필요하다. ‘우리’와 적 사이에 경계를 지어 ‘우리’의 동일성을 강조하는 군사주의적 속성은 타자에게 의존하면서도 타자를 부정함으로써 자기를 구성하는 논리를 바탕으로 한다. 극우 보수주의자들의 반공주의나 파시즘적 경향성, 마초적 남성 에토스도 이 속성으로 구성된다. 특히 병영체험을 문제 삼는 것은 타자와의 상호연결성을 자각해야 하는 윤리적 요청 때문이다. 자기계발이란 바짝 군기를 넣어 자기를 극복함에서 오는 게 아니라, 몸을 움직여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그들의 경험에서 삶의 지혜를 배우며 자신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탈군사주의를 상상하는 일은 이원화된 사유와 체제로부터 탈주를 기획하는 일이다. 자기를 구성하는 패러다임을 다르게 구성하는 일도 그중의 하나이다

1990년대초 평화운동에서 즐겨 썼던 ‘죽임의 문화를 살림의 문화로’라는 모토가 그리운 요즘이다. 그동안 신자유주의 국가의 무능력과 군대폭력, 사람들의 안타까운 죽음, 생명경시 등에서 비롯된 많은 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들을 구성하는 여러 모순과 갈등의 사회적 요소들이 복잡하게 얽힌 사회체제 어딘가에 군사주의가 도사리고 있다. 신군사주의를 포착하는 능력은 자기계발 주체를 생산하는 메커니즘을 읽는 의지에서 시작한다. 그러면 불확실한 삶에서 오는 불안감을 국가권력이 어떻게 조직하고 배치하는가라는 감정의 정치학이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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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군사주의 개념에 관해서는 졸고 「군사화와 성의 정치」, 『민주법학』 제25호(2004) 참조. 군사적 가치 혹은 군사주의적 속성으로는 호전성, 물리적 폭력성, 군기, 적과 아군을 구분하는 집단 경계성과 정복 추구 등을 들 수 있다.

2) Cynthia Enloe, Globalization and Militarism, Rowman and Littlefield 2007, 3~6면.

3) 홍성태는 군사적 성장주의라는 용어를 통해 ‘일제의 군사주의를 바탕으로 정치적 목적을 위해 외형적 성장을 추구하는 박정희식 근대화 노선’을 강조한다. 군사적 성장주의는 빠른 속도로 큰 외형적 성과를 단기간에 내는 효율성을 추구하는데, 90년대 이후 성수대교나 삼풍백화점의 붕괴로 그 허점을 드러냈다(홍성태 「군사적 성장주의와 성수대교의 붕괴」, 『20세기 한국의 야만』 2권, 이병천·이광일 엮음, 일빛 2001). 문승숙은 군사주의를 사회체제로 보고 군사화된 근대성을 개념화하는데, 국가가 자신을 반공국가로 정의하고, 국가 구성원을 충성스러운 국민으로 만들며, 징병제를 산업경제조직으로 통합했던 점을 그 특성으로 짚는다(문승숙 『군사주의에 갇힌 근대』, 이현정 옮김, 또하나의문화 2007).

4) 사토 요시유키 『신자유주의와 권력』, 김상운 옮김, 후마니타스 2014.

5) 서동진 『자유의 의지 자기계발의 의지』, 돌베개 2009.

6) Rose Nikolas, Inventing Our Selves, Cambridge University Press, 151~57면.

7) 김관진 「병영캠프가 취업용 스펙? 여성참가자 늘어」, 한국일보 2013.8.14.

8) 박현정 「병영체험의 이름은 ‘창의력 캠프’」, 『한겨레21』 2013.7.29(제972호).

9) 참여한 학교는 2009학년도부터 2013학년도까지 5년간 1,375개교에 달한다. 2009년과 비교하면 2012학년도에 6.1배가 증가했다. 초등학교의 참여율이 가장 급증했는데, 같은 기간 학교 수는 11.7배, 학생 참여는 10.6배 늘었다(정진후 의원실 발표자료 2013.7.31).

10) 우테 폴크만 「아름다운 삶의 프로젝트」, 『현대사회를 진단한다』, 박금혜 외 옮김, 논형 2010, 92면.

11) 데이비드 하비 『신자유주의』, 최병두 옮김, 한울 2007, 108면.

12) 김현미 ‘이화여대 리더십개발원 NGO 여성활동가 리더십교육 강의’(2014.4.16).

13) 권혁범 『민족주의와 발전의 환상』, 솔 2000, 137~74면.

14) Henry A. GirouxCultural Studies in Dark Times: Public Pedagogy and the Challenge of Neoliberalism,” Fast Capitalism, 2~3, 6~7면(http://www.uta.edu/huma/agger/fastcapitalism).

15) 김지방 『정치교회』, 교양인 2007, 64~65면.

16) 이승훈은 기독교 보수주의 운동의 등장 요인을 민주화 이후 정부권력의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 보수교회의 박탈감과 피해의식, 보수와 진보세력의 갈등 틈새에 생긴 정치영역의 힘의 공백을 자신이 채울 수 있다는 우월감, 그리고 이른바 종북-진보세력에 대한 도덕적 분노에서 찾는다. 이승훈 「사회운동과 감정: 한국 기독교 보수주의 운동의 사례」, 『한국사회의 사회운동』, 다산출판사 2013, 167~86면.

17) 근자의 사례로 역사교과서 논란, 통진당 해산, 전교조 법외노조화, 시민단체 강제해산법 추진 등을 들 수 있다.

18) 엄옥순 『군대는 여자다』, 지구촌 1999, 65면. 2014년 8월 3일자 MBC <진짜 사나이>의 유격훈련 장면은 이 레퍼토리를 변형해 보여주었다.

19) 문승숙, 앞의 책.

20) 이와 관련한 책으로 박수왕·정욱진·최재민 『나는 세상의 모든 것을 군대에서 배웠다: 군대 2년을 알차게 보낸 사람들』, 다산라이프 2010.

21) 국방부 ‘군 인적자원개발사업 추진계획(안)’, 2004.11.25; 전국경제인연합회 보도자료 ‘재계, 군과 손잡고 군 인적자원개발에 함께 나서’, 2004.10.14.

22) 안상욱 「한국사회에서 ‘루저’의 등장과 남성성의 재구성」, 서울대 대학원 여성학협동과정 석사논문, 41~45면(2011).

23) 오정록과 조정의민의 소견서. 임재성 『삼켜야 했던 평화의 언어』, 그린비 2011, 211~12면.

24) 지휘(command), 통제(control), 통신(communication), 컴퓨터(computer), 정보(intelligence)의 영문 머리글자를 활용한 말로, 컴퓨터와 유·무선 통신을 통해 군의 모든 전력을 유기적으로 통합하여 작전을 지휘·통제하는 시스템을 가리키는 군사용어.

25) 주은우 「문화산업과 군사주의」, 『진보평론』 2002년 겨울호.

26) 군의 민영화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피터 싱어 『전쟁대행주식회사』, 유강은 옮김, 지식의 풍경 2005; 강미연 「탈냉전 자본주의: 전쟁도 상품이다!」, 『친밀한 적』, 이후 2010.

27) 우제웅·이혁수 「민간군사기업의 성장과 활용 방안」, 『주간국방논단』 제1158호, 한국국방연구원 2007.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