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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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 신예시인 특집

 

박준 朴濬

1983년 서울 출생. 2008년 『실천문학』으로 등단. mynameisjoon@hanmail.net

 

 

 

동생

 

 

오른쪽으로 세번 왼쪽으로 세번 탕탕탕 뛰어 귓속의 강물을 빼내지 않으면 이마가 훤한 여자아이가, 밤에 소변 보러 갈 때마다 강가로 불러낸다고 했습니다 입 속은 껍질이 벗겨진 은사시나무 아래에서도 더러웠고요 먼 산들도 자주 귀울림을 앓습니다 강에 일곱이 모여 가서 여섯이나 다섯으로 돌아오던 늦은 저녁, 아이들은 혼나지도 않고 밥을 먹습니다 그때 여기저기 흘리던 밥풀 같은 걱정들은 금세 떠오르던 것이었지만요 한낮 볕들은 깊은 소(沼)의 위와 아래를 뒤섞습니다 물은 그곳에서 자신의 이름을 새로 지어가기도 하고 근처 밭머리의 수수들은 잔기침도 멈추고 일어섭니다 다시 붐비는 북쪽의 바위 위에는 봉분도 올리지 못한 누이 무덤처럼 그새 푸르러진 입술로, 오른손과 왼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강으로 뛰어들던 동생들도 여럿이었습니다

 

 

 

소매가 까매질 때까지 살았다 보증금도 없이 우리는 내려앉아 서로의 끝을 생각하느라 분주했다 잠에 가닿을 때까지 입술을 깨물던 당신의 귀에 광부들은 휘파람을 불지 않는다고 말해주는 일이 그날들의 전부였다 소리가 몰고 오는 소리는 갱 입구의 카나리아 소리를 닮았다가, 무너지는 갱도에서 새나오던 가스 소리를 닮았다가, 혼들의 울음을 닮아갔다

손이 찬 당신이 물컵을 내려놓았다 번진 입술이 새가 날아오르기 전 땅을 깊게 디딘 발자국 같았다면 살아남은 말들은 쉽게 날 줄을 알았다 가난하다고 말해왔다 또 아픈 나의 이(齒)를 만져오면서 내가 한번 먹어보지 못한 음식들을 맞추어보겠다고 말해왔다 가만히 먼 곳을 쳐다보는 일이 술을 깨는 데에 그만이라고 말해왔다 다시 가난하고 심심하다고 말해왔다 나는 그 말들에 연을 묶어 훠이훠이 당기며 살았다

사실 우리 아름다움의 끝은 거기쯤 있었다 나는 당신과 잠시 만난 공중(空中)을 내 눈에 단단히 넣어두고도 계속 허한 눈빛을 지으려는 것이었으니, 버스를 타고 나간 사람을 정류장에서 기다리듯 하늘로 나간 당신의 말들은 하늘을 보며 기다려야 했으니, 그러니까 소매든 옷깃이든 눈빛이든 여기보다 새카맣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