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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총선 이후, 시민정치의 길을 묻다
정현곤 鄭鉉坤
정치학 박사. 세교연구소 선임연구원,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정책위원장. 공저 『천안함을 묻는다』가 있음. jhkpeace@empas.com
바야흐로 다시 정당의 시대인가. 4·13총선 이후 온통 ‘기—승—전—정치’로 드러나는 소란스러움이 이 시절의 특징을 증언한다. 정당정치의 가벼움이 그리 미더울 수 없기에 우리는 시민들이 복원시킨 이 정치현상을 두려운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번 총선을 놓고 모두들 뜻밖의 결과라고 말했다지만 시민들의 가슴에 응어리진 아픔과 분노를 생각하면 그리 놀라운 결과만도 아닐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겪고 또 겪고 속고 또 속고 있다는 심정으로 정당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정치변화를 향한 시민들의 아우성에 비해 대책없는 시민사회를 질타하는 것이 먼저가 아니겠는가.
‘뭐라도 하는 사람.’ 이번 4·13총선을 준비하면서 시민사회단체가 스스로를 표현한 말이다. 이 말에는 두가지 의미가 들어 있다. 하나는 절박감이다. 실정을 저지르고도 약체 야당과 언론장악에 기대 선거에서 압승을 거두는 정부와 여당을 상상하는 것은 너무 괴로운 일이었기에, ‘뭐라도’ 해야 했다.1) 무력감도 있었다. 박근혜정부를 심판해야 한다는 과제를 내걸었음에도 도대체 선거판에서 정당에 영향을 미칠 방법이 없는 것이 답답했다. 그래도 ‘뭐라도’ 해야 한다면 그 말은 곧 뚜렷한 그 ‘무엇’이 없음을 실토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에 반해 정당체계는 그 지리멸렬함에도 불구하고 이번 선거를 통해 다시금 살아났다. 만약 정부여당이 스스로 호언장담하던 수준의 의석을 얻었다면, 우리의 정당체계는 균열을 넘어 파괴 수준으로 갔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정부를 견제하고 국민의 목소리가 수렴되는 의회공간의 위축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그런데 뜻밖에도 시민들은 정당체계를 살려놓았다. 국회는 다시 유의미한 민주정치의 제도적 역할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지금의 정당들이 민주정치를 향한 시민들의 바람에 부합할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그간 수없이 혁신을 부르짖었지만 취약한 정당구조를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스스로는 답을 찾기 어려운 것이 또한 정당이다.
시민사회 정치기획의 전환
이명박정부 집권 2년차, 민주의 위기가 민생의 위기를 부추기던 2009년 무렵 시민사회는 정부의 횡포를 물리치기 위해 일련의 정치기획을 준비한다.2) 이 정치기획은 창당을 목표로 삼는다거나 또는 정치를 대상화하는 데서 나아가 시민사회의 직접적인 정치 개입력을 구성한다는 점에서 새로웠다. 이 기획의 1차적 목표는 2010년 6·2지방선거였고 그 이후 2012년 총선과 대선도 염두에 두었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담은 정치담론이 시민정치와 연합정치였고 유력한 도구로 ‘희망과대안’이 그해 10월에 창립된다. 당시 논의에서 시민사회가 내세운 논점은 세가지로, 기존 정당 속의 정치블록을 지향하지 않는 독립적인 기획이라는 점, 기존의 정치적 중립 테제를 넘어선다는 점, 그럼에도 새로운 정당을 도모하지는 않으며 오히려 새로운 비전과 세력, 미디어, 정치와 사회조직을 재구성할 여러 공간을 생성한다는 것이었다.3) 여기서 ‘희망과대안’은 정당과 시민사회를 엮는 일종의 거멀못 기능을 수행하는 기구로서 정책연합, 가치연합이라는 좀더 의미있는 정치연합을 꾀했다. 이같은 정치기획은 2010년 지방선거에서 1:1 여야 구도라는 후보단일화의 기제로 작용, 선거승리를 이끌게 되면서 빛을 보았다.4)
한편 2011년 8월 오세훈(吳世勳) 서울시장이 무상급식 거부를 주민투표에 부치는 무리수 끝에 시장직에서 물러나면서 박원순(朴元淳) 변호사가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한다. 당시 시민사회 인사인 박원순이 민주당의 박영선(朴暎宣) 의원을 누르고 서울시장 야권단일후보가 되는 과정은, 안철수(安哲秀)로 대표되는 새정치에 대한 바람과 맞물려 기존 정치와 정당체계에 대한 시민들의 강한 거부감이 드러난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박원순의 서울시장 당선은 시민사회의 이니셔티브에 기초한 연합정치라는 정치기획이 하나의 정점에 이르렀음을 알렸다.
당시에는 시민사회의 정치기획과 별개로 시민사회와 정당의 통합을 모색하는 ‘시민정치’ 활동도 활발했는데, 그들은 국민의명령, 진보통합시민회의, 민주통합시민행동, 시민주권, 내가꿈꾸는나라5) 등의 이름을 내걸었다.
2009년부터 이어진 연합정치 노력은 두가지 흐름으로 마무리된다. 하나는 2012년 1월 시민사회 일부와 제1야당이 합친 민주통합당 창당, 제2야당과 시민사회의 또다른 일부가 합쳐진 통합진보당의 창당이 그것이다. 민주당 내의 정치블록이거나 새로운 정당의 도모라는 점에서 이 결과는 시민사회의 정치기획에 부합하는 것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시민사회의 원로·중진과 ‘시민정치’ 단체의 대표들로 구성된 ‘희망2013·승리2012 원탁회의’이다. 이 원탁회의는 야4당 대표와 함께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공동대응 합의를 도출하고 그 여세를 몰아 야당과 시민사회 공동의 2013년 비전 작업을 이끌면서 ‘희망과대안’ 이후 연합정치의 교두보로 활약했다. 그러나 2012년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의 야당체계가 선 이후에는 그 활동영역이 주로 메시지 발신에 머무르게 된다.6)
당시 시민사회의 정치기획은 절반의 실패라 할 수 있다. 시민들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공간을 만들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2012년 안철수 후보의 캠페인 단위까지를 정당 영역으로 이해한다면 적극적인 시민사회운동세력이 정당 속으로 빠르게 흡수되는 흐름이 보인다. 게다가 그렇게 형성된 정당들은 자신의 정치이익과 정치공학에 치우쳐 2012년의 중요한 두 선거에서 시민들에게 큰 실망만을 안겼다. 결국 정치 행위자로서의 시민은 시민정치의 부재 속에서 여전히 개인으로만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7)
지방정부와 시민자치의 성장
2009년 시민사회의 정치기획에 절반의 성공이 있다면 그것은 2010년 지방선거에서 야권이 거둔 승리였다. 이 선거에서 충남과 경남, 강원에서 정부 교체가 이루어졌다. 이명박정권이 보여준 민주주의 역주행의 대항적 성격이 컸기에 당시 지방선거에는 시민의 주권적 행동의지가 강하게 새겨졌다. 시민의식의 성장과 지방정부의 민주적 구성을 더 뚜렷하게 보여준 것은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였다. 무상급식 의제의 정치화가 지방정부의 쟁점으로 재점화된 조건에서 시민의식이 크게 고양되었던 것이다. 2012년에 경남도지사 김두관(金斗官)의 돌연한 대선 출마로 경남도민 자치의 길이 후퇴하는 아픔을 겪었지만,8) 지방정부에 참여하며 책임도 진다는 시민자치의 의미는 2014년 선거에서도 유지되었다. 2014년 지방선거는 안희정(安熙正) 충남지사, 박원순 서울시장의 재선도 주목할 일이지만 여권인사인 남경필(南景弼) 경기도지사와 원희룡(元喜龍) 제주도지사가 연정·협치를 거론하면서 시민자치 형성에 유리한 환경이 조성된 점이 눈에 띈다.
지방정부 차원에서 시민자치의 의미는 지역공동체운동과 복지운동의 결합 현장에서 나타났다. 경기도를 예로 들면 ‘따뜻하고 복된 공동체’, 일명 ‘따복공동체’를 행정과 시민이 공동책임으로 구성해가는 움직임이 돋보인다. 따복공동체는 시민 삶의 터전인 지역공동체의 지속 가능성을 지향하면서, 그 핵심요소인 복지문제를 놓고 국가 혹은 지방정부의 재원 투입이라는 전달체계에 국한하지 않고 지역 스스로의 생활경제를 창출하는 데 관심을 둔다. 2015년 12월에 개최된 경기 따복공동체 한마당은 31개 시·군의 마을활동가와 사회적경제 관계자 1004명이 모여 일명 ‘천사 네트워크’를 구성했는데, 정부행정에 참여하면서 책임을 나눠 지는 시민자치의 한 형식을 보게 된다.
이에 비해 서울의 경우는 근린 단위로서의 동(洞)과 복지의 연결성이 상대적으로 강조된다. 여기에는 이른바 국가공공성 위기의 대안으로 생활공공성 또는 마을공공성이 부각된다. 생활공공성은 사적 생활영역을 억압하거나 해체하는 국가권력과 시장권력에 대한 방어벽으로서 시민사회와 지방정부의 공동성을 구축하는 새로운 프레임으로 제안되었고,9) ‘마을’이 그 실현단위가 된다. 그리하여 서울은 ‘찾아가는 동 복지센터’와 ‘마을계획’, ‘마을총회’를 내세운다. 여기서 마을총회는 개인의 필요와 욕구를 바탕으로 공통의 의제를 합의하고 메타의제를 도출하는 마을 ‘공론장’이 되는 셈이다. 이 마을 공론장을 통해 주민은 국가공동체의 주권자인 시민으로 거듭난다는 것이다.10)
시민이 정부운영에 직접 참여하고 책임을 질 때 시민의식이 더욱 성숙되리라는 점은 분명하다. 특히나 주택, 보건, 교통, 교육 서비스 같은 주요한 공적 일상이 국가보다 지방정부를 통해 더 많이 좌우된다면 지방은 이미 그 자체로 정치공동체로서 기능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시민은 지방에서 정치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정당과 시민사회 관계의 재구성
시민사회와 정당은 실체로서의 정치공백과 제도로서의 정치회복이 반복되는 형국에서 서로 관계해왔다고 할 수 있다. 거리의 정치와 의회정치의 순환은 확실히 불안정하다.
시민사회와 정당 간 공동기획은 1986년 발의된 직선제 개헌운동이 하나의 모범이다. 1980년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군부세력이 대부분의 정당을 해산시키고 자신들의 민주정의당과 무늬만 야당인 민한당으로 구색을 맞추었을 때 온전한 여야 정당체계는 운영되지 못했다. 1985년 2월 총선을 계기로 김대중(金大中) 김영삼(金泳三)이 이끄는 신민당이 야당으로 재구축되고 이들 세력은 직선제 개헌을 주창했다. 직선제 개헌은 말 그대로 시민적 권리로 대통령을 선출하자는 것이므로 당시 억눌린 시민의 정치동력을 끌어내는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었다. 실제 직선제 개헌으로 정치화된 이슈는 거리투쟁으로 실현되었다. 전두환정권은 박종철(朴鍾哲) 학생을 고문살해하고 4·13호헌으로 겁박했지만 시민사회와 야당은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를 결성, 이에 대항했고 끝내 승리를 거두었다. 대통령직선제라는 절차적 민주주의의 기초 형식이 시민항쟁에 의해 수립되었다는 점에서, 한국은 1987년 6월에 와서야 비로소 본래적 의미의 선거와 정당제도가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러나 이 시기 정당구조는 정치학자들이 이상적으로 그리는 유형, 예컨대 “사회의 균열 기반 위에 위치한 여러 집단들의 이익과 열정을 복수의 정당들이 경쟁적으로 동원하여 자신들의 지지기반을 확대하고자 하는 파당적 경쟁의 효과”11)가 작동하는 그런 정당구조와는 거리가 멀었다. 따라서 자본주의의 경제구조에서 소외된 약자들의 요구가 활성화된 정당정치를 통해 국가의 정책결정에 반영되기 어려웠다. 여전히 정당은 정치를 직업으로 하는 엘리트들의 과두체제에 머물렀다. 이러한 정당이 관료화하는 것은 필연이었다. 여기다 한반도의 분단체제가 작용하면서 수구 우위의 보수구도가 정당구조에도 내재되어 여야의 대등한 양당체계가 자리잡지 못했다. 정당구조의 이러한 취약점은 1991년에 야당 당수 김영삼이 이끄는 통일민주당이 노태우(盧泰愚)의 민정당과 합당하여 민주자유당을 창당한 데서 잘 나타난다. 당시 민주자유당의 창당은 엘리트에 의한 사당(私黨)적 성격의 정당이 대중의 선택을 거역하며 정치인 개인의 이익을 찾아가는 형태를 잘 보여준다 하겠다. 결국 1987년 이후 민주화의 확장으로 성장한 시민사회운동이 정치와 조우한 현장은 2000년 총선 때의 낙천·낙선운동이었다. 부정과 부패로 대상화된 존재, 그것이 시민사회가 정당을 바라보는 뚜렷한 관점이었다.
역설적이게도 정당과 정치에 대한 시민사회의 질타는 일종의 권력이동을 불러왔는데 그것은 2004년 17대 총선을 계기로 뚜렷해졌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에 대한 탄핵에 맞서 시민들의 투표권 운동이 들불처럼 일어난 2004년은 당시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과반 의석을 획득하고, 노동조합이 중심이 된 시민사회 주축의 민주노동당이 마침내 원내에 진출한 특별한 해로 기록되었다. 민주정부와 더불어 새롭게 완성된 국회의 민주정당 우위 구도는 사회의제가 주로 국회를 통해 논의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시민사회 인사의 국회진출 러시도 이때 주를 이루었다. 일종의 세력이동이 동시에 이루어졌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흐름이 정당구조의 취약성을 극복해낸 것은 아니었다. 사당적 성격, 관료정당의 문제점은 여전했다. 그것은 열린우리당이 2007년 8월 소속의원들의 연쇄적 탈당 형식으로 대통합민주신당에 흡수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이합집산에서 확인된다. 2004년 당시 국회로 진입한 시민사회 인사들도 독재에 맞섰던 용기와 헌신, 도덕성에도 불구하고 정당구조의 후진성을 넘어서지는 못했다. 민주노동당은 당직자들이 불철주야 노력하며 만들었던 진보적 정책 아젠다들이 공중에 흩어지고 당내 패권주의 행태와 대북 추종적 이념편향을 제어하지 못하면서 시민과 멀어졌고 좌초하기에 이르렀다.
여기서 시민사회운동은 여전히 정치가 부재한 와중에 정치를 일으키는 역할을 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2008년의 촛불시위다. 당시 촛불시위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협상 과정에서 정부가 국민을 속인 데 대한 항의에서 시작되었지만, 앞서 같은해 18대 총선에서 정부여당이 과반을 얻은 이후 정부 앞에 무력한 정치무능에 대한 반발이라 할 수 있다. 2010년 지방선거와 2012년 총선은 그래도 조금 나아진 면이 있었는데, 시민사회와 정당의 연합정치가 부분적으로는 작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리더십 부재에 따른 대선 패배 이후 야성은 희미해졌고, 결국 2014년 세월호의 눈물은 정치실종과 대비되어 시민들의 기억 속에 아로새겨졌다. 김한길·안철수 공동대표 체제의 2014년 7·30선거 패배, 박영선으로 이어진 새정치민주연합 비대위 체제의 혼란, 2015년 문재인(文在寅) 당대표 체제까지 모두 이 책임의 당사자다. 그렇게 쌓인 2년, 놀랍게도 시민들은 다시 정치를 만들어내는 기적을 보였다. 2016년의 정치복원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전략적인 선택을 한 결과라는 점에서 오히려 정당과 시민사회의 각성을 촉구한다 하겠다.
우리는 향후에도 제도권 정치의 실종과 거리의 정치를 많든 적든 겪게 될 것이다. 선거와 정당제도는 앞으로도 국가공동체 운영의 제도적 형식에서 핵심을 차지할 것이므로 정당을 혁신할 진보적 대안을 찾아야 한다. 시민들이 정당에 대한 개입능력을 강화할 수 있는 방법, 그리고 그것이 정당민주주의로까지 연결되는 접점을 찾아야 한다. 여기에 시민정치의 길이 있다.
담론, 지역 그리고 연합정치
시민사회의 정치기획이 성공하기 위한 필수요소로 담론, 지역, 연합정치 세가지를 제안한다.
시민사회는 이해관계자 집단으로서의 실행력보다 담론능력 면에서 더 뛰어나다. 물론 이해관계자 집단은 정치력을 발휘한다. 대표적으로 한국노총 등 노조가 그러하다. 그러나 시민사회운동은 참여연대, 환경운동연합, 나아가 여성단체연합조차 이해관계자라기보다는 특정의 가치집단, 또는 전문가집단이라는 이미지가 강하고 강점도 담론능력에서 더 잘 살아난다.
하지만 2016년 총선에서는 이런 시민사회의 담론능력이 잘 살아나지 못했다. 20대 총선의 정당 영역에서는 ‘정권심판론’과 ‘정치심판론’ 사이에 ‘양당심판론’이 각축하는 담론 투쟁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 담론들은 일종의 증거목록이 연결되는 수준에서 구사되었고 투표행동의 기준이 되는 선거담론은 ‘자파 정당 지지’라는 선에 고정되었다. 여기에 비해 시민사회의 경우는 ‘총선넷’의 낙천·낙선운동으로 대표되는 일종의 ‘개별후보심판론’ 내지 ‘아웃(out)목록’ 외에 원로인사 백낙청(白樂晴)의 선거담론이 좀더 완성도가 높았다.12) ‘다시민주주의포럼’이 내놓은 후보단일화 주장의 경우 ‘단일화를 하지 않는다면 야권 단일화에 대해 소극적이고 정략적 태도로 거부해온 당과 후보를 낙선시키도록 국민에 촉구’할 것을 천명했다는 점에서 담론적 효력은 약했다. 이는 사실상 국민의당 사퇴운동으로, 각 정당들이 전개한 자파 정당 지지와 같은 뜻을 지니기 때문이다. 왜 시민사회의 전통적인 우위 영역인 담론능력이 20대 총선에서는 위축되었는지 진지한 복기(復棋)와 평가가 이루어져야겠고, 담론능력을 복원할 필요가 있다.
두번째는 지역이다. 자치의 경험을 통해 성장하는 시민은 지역 속에서 스스로를 정치세력으로 만들어간다. 이것은 특정 단체장의 정치적 성향 문제가 아니라 필요에 따른 선택들의 결과이다. 그 필요는 주택, 교육, 의료, 보육, 복지, 일자리, 교통, 안전 문제 등에서 발현된다. 모두 시민의 생활문제라는 점에서 당사자인 시민들의 의사결정 참여가 문제해결의 열쇠가 되는 영역이다. 참여의 수준도 예산결정권으로까지 나아가는 중이다. 여기서는 지방정부와 시민의 협력이 문제해결의 핵심 철학이자 방법이 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과반수 이상의 공통된 지지를 형성하는 ‘정치세력으로서의 지역’이 될 수 있는가이다. 만약 지역이 정당들의 영향력이 나뉘는 대로 구획된다면 지역은 정치세력이 아니라 단순한 공간에 불과해진다. 적어도 자본의 도시개발과 부의 축적 영역을 둘러싼 이해갈등을 제외한다면 지역은 생활영역에서 공통된 정책합의를 도출하기가 중앙보다는 수월하다.13) 지역에 존재하는 제반 정당세력들이 협력할 가능성도 증진된다. ‘정치세력으로서의 지역’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이런 문제의식이 지역정당(local party)을 지향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상대적으로 평등하며 고른 영향력하에서 다양한 사회세력, 정치세력이 공동의 정치목표를 만들 수 있다는 의미이다.
세번째는 연합정치이다. 연합정치는 공동의 가치를 가진 세력연합을 의미한다. 그 기초는 민주주의라 할 수 있는데 다양한 집단의 다양한 이해관계가 다양한 사회세력, 정치세력으로 반영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지금 연합정치의 과제는 선거 때가 아닌 일상 시기에 작동되는 모델을 만드는 것이다. 선거 정국에서는 이미 다수와 소수가 정해진 구도라서 마치 주주총회처럼 의원수나 지지율 등에 따라 차별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일상의 연합정치는 아젠다를 통해 발현될 수밖에 없고 그것은 일상의 삶과 정치를 연결하는 지점에서 형성된다. 그런 점에서 일상의 연합정치 아젠다는 지역현안의 생활력이 전국적 정치현안으로 성장하며 나아가 한반도적 맥락까지를 담지할 필요가 있다. 특히 한반도 문제는 우리 안에 성큼 다가온 북한 이슈와 연결되어 마을 단위에서 국가 단위에 이르기까지 세력연대의 준거틀이 되고 있다.
연합정치에서 공동선에 밀착된 시민사회의 이니셔티브가 관철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정당의 ‘셀프’ 혁신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시민사회의 이니셔티브는 내용적으로는 민주·민생·평화에서 형성되고 이것이 정당의 민주적 토대를 강화하게 해준다. 정당의 혁신에서 한반도 평화가 더불어 강조되는 까닭은 한국사회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 주로 분단체제를 매개로 하여 증폭되어왔기 때문이다.14)
이제 시민사회단체들은 성장하고 있는 시민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시민적 감수성 속에서 담론을 연마해야 한다. 시민이 사는 지역에서 운동에너지를 충전해야 한다. 지역과 전국, 한반도가 연결되는 아젠다를 통해 연합의 실험을 계속해야 한다. ‘함께 행복한 김해’ ‘자연과 공존하는 강원’ 등이 ‘평등 대한민국‘ ‘평화의 한반도’와 씨줄과 날줄로 엮이는 구도이다. 그 각각의 구조에 사회운동의 촉진자들이 스스로를 조직하여 관계를 네트워킹할 것이다.
지역민들의 생활에 뿌리박되 한반도 문제까지 사유하는 시민정치, 정당에 진입하는 통로라기보다 정당과 함께하는 시민정치를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할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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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민들을 실망시킨 대표적인 선거는 2014년 7·30재보선이다. 그해 4월 16일 세월호참사가 일어났고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의 책임이 매섭게 추궁되었기에 여당의 참패가 예상됐지만 결과는 반대로 11대4, 여당의 승리였다. 이 선거 이후 정부여당은 세월호사건에 대해 반성 없는 비협조와 뻔뻔함을 더욱 노골화했다.
2) 이남주는 진보개혁세력이 정치적 민주화와 경제민주화를 구분함에 따라 이명박정부의 민주주의 역진을 간과했음을 지적하면서 위기극복을 위해 ‘진보적 정치세력, 자유주의적 개혁세력, 시민운동’ 사이의 정치연합을 제안했다. 이남주 「정치연합, 진보개혁세력 상생의 길」, 『창작과비평』 2010년 봄호 참고.
3) 2009년 시민사회의 정치·사회적 기획의 문제의식에 대해서는 하승창 「재보선 이후 진보진영의 전략적 과제」, 『창작과비평』 2009년 여름호 참고.
4) 당시 시민사회와 정당 사이의 연합정치 동력에 대해서는 백승헌 「연합정치 논의, 이제는 성과를 보일 때다」, 『창비주간논평』 2010.2.24(http://weekly.changbi.com/?p=873&cat=5) 참고.
5) ‘내가꿈꾸는나라’는 다른 ‘시민정치’ 그룹과 달리 시민사회 내에 위치한 독립적이고 지속 가능한 시민정치 영역을 추구했다. 싱크탱크와 진보미디어, 그리고 메시지센터가 연계된 시민정치 조직이 그것인데, 이들의 네트워크가 온라인 플랫폼을 구성한다는 설계였다. 그러나 ‘내가꿈꾸는나라’는 수권적 혁신정당 건설을 통한 정권교체와 시민정치 기반 구축 과제를 동시에 올렸고, 힘의 균형이 정당 쪽으로 쏠려가는 한계를 겪는다.
6) 원탁회의가 발신한 메시지 중 주목할 만한 것으로 2012년 8월 23일에 발표한 안철수 후보의 출마 관련 성명과 11월 1일에 내놓은 문재인—안철수 후보 간 정치혁신 대화촉구 논평이 있다. 예지를 보였다는 점에서 선거담론의 의미를 드러내는 메시지 활동의 좋은 사례라 할 것이다.
7) 2012년 대선 시기에 생활현장의 운동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것이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을 위한 국민운동본부’의 활동, 제주 강정에서부터 시작된 만민공동회와 쌍용, 용산 등 사회적 피해자들의 농성촌(村) 운동이다. 그외에 안철수 문재인 후보 간 연대를 사회세력연대의 의미로 확장시키려는 새로운 노력의 일환으로 ‘반특권연합’을 실현시키려는 활동도 진행되었다. 그러나 모두 양 후보 진영과 연계되지 않으면서 정치기획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8) 당시 경남의 협력시정에 대해서는 임근재 「지방연합정부 실험과 그 평가」, 『창작과비평』 2010년 겨울호 참고. 정당과 시민사회 상생, 행정과의 파트너십이라는 화두를 붙들고 새로운 모델을 실험하고 있었는데 도지사의 느닷없는 사퇴로 무산된 셈이다.
9) 조대엽 「공공성의 사회적 구성과 공공성 프레임의 역사적 유형」, 『아세아연구』 제56권 2호(2013) 참고.
10) 유창복 「마을공동체 정책과 지역사회 시민생태계」, 『창작과비평』 2015년 겨울호 참고.
11) 박상훈 『정치의 발견』, 폴리테리아 2012, 124면.
12) 백낙청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이 글은 언론에 보도되거나 ‘공유’되는 방식으로 SNS에 확산되었다. 이 글에는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에 대한 선택을 놓고 고심하는 광주·전남 유권자에게 필요한 논리, 선호정당에 대한 비례 선택과 당선가능 야당에 투표하는 지역구 전략 논리가 담겼다. 백낙청 「편안한 마음으로 투표합시다」, 2016.4.6(http://www.facebook.com/Paik.Nakchung/posts/1066711833388500).
13) 물론 시민자치가 특정 의제 프로젝트에서 드러나는 상이한 세력들의 연결과 연대만으로 성립되는 것은 아니다. 지역에서도 토건의 논리는 최대의 정책쟁점이다. 토건은 여야를 가리지 않는데 강원도에서 가리왕산 개발을 둘러싸고 최문순도정과 환경단체가 크게 갈등한 사례가 있다. 시민의 정치화는 적어도 정책 수준의 대립을 관리할 민주주의 운영 능력까지를 포함한다.
14) 2012년에 통합진보당이 연합정치의 참여세력이었다가 해체되어간 과정도 그러하거니와 ‘이석기 사건’을 계기로 정당을 해산시키겠다고 헌법재판소까지 나서서 대법원의 결정에 반하는 행위를 한다거나 테러지원법을 통해 국정원의 시민감시가 강화되는 현상들이 그 사례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