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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박명규 백지운 엮음 『양안에서 통일과 평화를 생각하다』, 진인진 2016

양안관계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김연철 金鍊鐵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 dootakim@daum.net

 

 

172_568중국과 대만, 곧 양안()은 한때 남북관계를 부러워했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이 열릴 때만 해도 그랬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양안의 교류와 협력은 2000년대 들어 눈부시게 달라졌다. 서로 오가고, 우편과 통신이 이루어지고, 경제협력이 이루어지는 삼통(통항通航, 통우通邮, 통상通商)의 시대가 관계를 급변시켰다. 이제 가다 서다를 반복하다 마침내 멈춘 한반도가 양안을 부러워한다. 양안관계는 남북관계가 지향했던 ‘통일이 된 것과 마찬가지의 상태’, 즉 ‘사실상의 통일’을 이룬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2014년 대만의 대학생들이 중국과의 서비스협정 체결을 반대하며 우리의 국회에 해당하는 입법원을 점거했다. 젊은 세대가 주도한 이 ‘해바라기운동’은 양안교류의 그늘을 드러냈다. 늘어나는 중국의 영향력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과 제조업 공동화에 따른 실존의 위기 앞에서 젊은 세대는 우선은 속도를 늦추자고 외쳤다. 그리고 2016년 대만 독립을 내세운 민진당의 차이 잉원(蔡英文) 후보가 총통선거에서 승리했다. 국민당 집권 8년 동안 쉬지 않고 달려온 양안관계에 대한 피로감이 선거에 영향을 미쳤다. 양안관계는 한반도가 바라보듯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이 책은 해바라기운동 이후 양안에서 벌어진 다양한 문제의식을 포괄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양안관계를 바라보는 한국, 중국, 대만 연구자들의 다양한 주제에 관한 다양한 시각의 논문이 수록되었다. 먼저 이 책은 양안관계의 명암을 다룬다. 해바라기운동과 대만의 정권교체에서 성찰의 지점을 지목한다. 백지운(白池雲)은 “정치 문제를 뒤로 미루고 경제 문제를 앞세워 온 기존 양안관계 패러다임이 임계점에 도달”했음을 지적하고, “실용주의, 그것으로 부족하다”라고 주장한다. 정치와 경제를 분리하고, 결국 경제가 정치를 움직일 것이라는 쉽고 편한 생각은 확실하게 한계를 드러냈다는 지적이다.

쉬 진위(徐進鈺)는 교착의 지점을 민족과 대국을 추구하는 중국몽()과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추구하는 소확행(小確幸)의 갈등으로 해석한다. 그는 평화배당금 문제의 불균형을 지적한다. 대만 내부에서 양안교류의 혜택이 불균등하게 분배되어 그에 따른 불만이 폭발한 것으로 해석한 것이다. 그리고 8년 만에 이루어진 민진당의 재집권이 “그동안 풀리지 않던 매듭을 풀어 오히려 양안의 평화적 대화의 가능성을 열 것”이라 전망한다. 8년 전에 비하면 차이 잉원의 민진당은 훨씬 성숙하지만, 고민도 깊을 수밖에 없다. 근본적인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속도조절과 관계조정을 능숙하게 해낼지 지켜봐야 할 것이다.

오승렬(吳承烈)은 양안통상의 구체적인 구조를 보여주면서 “정치 판단에 의해 양안관계를 조율할 수 있다는 정치결정론적 입장”을 비판한다. 양안의 통상확대가 통일을 이끌 것이라는 ‘축복’의 시각이 아니라, 거래의 비대칭성과 구조적 의존의 심화로 오히려 양안통상이 ‘독배’가 될 수 있음을 지적한다. 과연 대만은 중국 의존도에서 탈피해서 새로운 제3의 대안을 찾을 수 있을까?

관계가 달라지면 당연히 ‘상대에 대한 기억’도 변한다. 냉전은 차이와 적대를 강조하지만, 탈냉전은 이해와 협력을 요구한다. 김민환(金玟煥)은 중국과 대만의 대표적인 박물관 전시를 비교한다. 중국 푸젠성(福建省) 취안저우(泉州)의 중국민대연(閩臺緣)박물관은 ‘대만이 중국의 일부’임을 증명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대만에 박물관이 대대적으로 세워진 2004년은 민진당 천 수이벤(陳水扁) 정부의 두번째 집권 시기로 그 자체가 정치적이다. 당연히 대만의 국립박물관들은 ‘대만은 중국과 별개’라는 점을 강조했다. 다만 국민당 마 잉저우(馬英九) 총통이 집권한 2008년 이후 전시내용에서 ‘대만민족주의’ 내용이 축소되었다. 박물관의 정치가 관계의 변화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이 흥미롭다.

이 책 2부는 중국 샤먼(厦門)과 대만 진먼()의 관계변화를 다룬다. 냉전시기 접경은 대결의 전방이지만, 탈냉전이 되면 접촉의 공간으로 변한다. 샤먼과 진먼의 관계는 얼마나 극적인가. 냉전의 섬·열전의 섬에서 평화의 섬·교류의 섬으로 변한 진먼다오(門島)는 그 자체가 양안관계의 상징이다. 장 보웨이(江柏煒)는 진먼다오의 전쟁역사관에 주목한다. 수많은 중국 관광객이 진먼다오에서 과거 중국 인민해방군이 비처럼 쏟아부은 포탄으로 만든 기념품을 사지만, 중국 당국은 진먼다오의 전쟁역사관 참관을 금지하고 있다. 교류가 일상처럼 이루어지는 탈냉전의 섬에서 전쟁역사관은 ‘한물간 어정쩡한 존재로 전락’했다. 애국주의를 고취하던 ‘냉전시대 전시의 정치학’은 유효기간이 지났고, 달라진 환경에서 전시내용도 달라져야 할 것이다.

샤먼과 진먼의 구체적인 생활공동체에 대한 분석도 흥미롭다. 우 쥔팡(吳俊芳)은 역사적으로 진샤(金厦) 생활권의 변천을 다뤘다. 형제의 섬에서 냉전의 섬으로, 그리고 다시 양안교류의 교두보로 변한 샤먼과 진먼은 ‘삼통’이 이루어지면서 그야말로 과거의 생활공동체를 복원했다. 진먼 사람들이 샤먼으로 가서 대학에 다니고 부동산에 투자하고 쇼핑을 하는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가 도로, 수도, 전기의 연결로 이어지는 신삼통시대로 전환하고 있다.

그리고 이 책의 3부는 양안과 남북을 대비하면서 성찰의 계기를 제공한다. 진먼다오의 바닷가에 설치된 용치(龍齒, 적함의 상륙저지를 위한 구조물)를 연평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는 냉전경관의 유사성을 지적하는 글(정근식), 남북관계와 양안관계를 엇갈려서 비교하는 글(박명규), 삼통의 시각에서 양안과 남북을 대비하는 글(정은미)과 진먼다오와 서해5도를 비교하는 글(장용석) 등이 많은 시사점을 준다.

양안관계는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다층적이고 복잡하다. 냉전에서 탈냉전으로 혹은 분단에서 통일로 가는 길 자체가 단순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로에 선 양안관계는 한반도에 익숙하지 않은 질문을 던져준다. 교류에도 그늘이 있고 혜택은 불균등하다는 점을 우리는 경험해보지 못했다. 교류와 협력이 이루어지면 저절로 통일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생각은 얼마나 상투적인가. 통일은 훨씬 높은 성찰과 훨씬 깊은 과제를 던져준다.

양안관계는 남북관계의 과거이면서 동시에 미래이자 현재일 수 있다. 양안과 남북의 차이 역시 분명하게 전제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언제나 다른 사례는 인식의 지평을 넓힌다. 길을 잃었을 때 잠시 멈추어서 생각하라는 말이 있다. 남북관계가 어디로 갈지 예측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이 책은 양안관계를 통해 우리가 미처 생각해보지 못한 질문을 던진다. 지금이 남북관계에서 도약을 위한 움츠림이라면, 양안이 던진 질문의 답을 찾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