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구독 회원 전용 콘텐츠
『창작과비평』을 정기구독하시면 모든 글의 전문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구독 중이신 회원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소설
금희 錦姬
1979년 중국 지린성 주타이시 출생. 2007년 『연변문학』 주관 윤동주신인문학상으로 작품활동 시작. 소설집 『슈뢰딩거의 상자』 『세상에 없는 나의 집』이 있음. jinjinji79@naver.com
촌장선거
샴푸 세트 마흔개가 출고되기로 한 아침, 중민은 광철이 안민촌 촌장으로 당선되었다는 전화를 받았다.
추석을 열흘가량 앞둔 늦가을이었다. 좋고 궂기를 여러날 반복하던 하늘에서는 신새벽부터 애꿎은 빗방울들이 부슬부슬 흩뿌려 내렸다. 한달 전쯤 갓 중학생이 된 아들애를 학교까지 데려주고 집에 들어서는 중민에게 아내가 그랬다. “린스 있는 거 말고 수건 들은 거야, 마흔개 전부.” 중민은 우산을 접어 현관문가에 세워놓은 뒤 빗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있는 쪽파단을 주방으로 가져갔다.
아내는 한창 화장대 앞에 앉아 주름살이 패기 시작한 이마며 볼 위로 퍽퍽 퍼프를 두드리는 중이었다. 왜 또 바꿨대? 하고 물으려다가 중민은 그만두었다. 마흔개 전부라면 일전에 알고 있던 바와 달리 여섯개의 모듬 세트는 취소되었다는 얘기고, 샴푸린스 세트가 샴푸수건 세트로 바뀌었다는 것은 예상한 총금액에서 600위안가량이 줄어든다는 뜻이다. ‘내사 매년 주는 콩기름보다야 이게 낫다 싶은데……’ 하면서 샴푸 박스를 가리키던 여자의 매끈한 손가락과, 손톱 위에 칠해진 빨간 매니큐어가 생각났다. 여자한테 이러니저러니 토를 달 상황은 아니었다. M시 통계국에서 출납으로 일하는 여자는 아내가 대형마트에서 ‘서울생활관’이라는 매장을 오픈한 뒤 갑자기 늘기 시작한 손님 중 지금까지 남아준 의리 있는 단골이었다. 춘절이나 단오 또는 추석 같은 명절을 당하여 직원들한테 배급해줄 선물을 고르기 위해 여자는 특별히 아내의 가게를 찾아왔고 가끔은 본인이 쓰려는 것으로 보이는 그릇 세트와 커피잔이며 냄비 들을 구입해가기도 했다. 샴푸수건 세트로 전부 바뀐다 하더라도 마흔개면 2000위안이 넘는 매상, 요즘처럼 경기가 좋지 않은 세월엔 크게 힘이 되는 주문이었다.
화장을 끝낸 아내는 식탁 위에 올려둔 만두와 좁쌀죽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면서 열심히 핸드폰만 들여다보았다. 여자보다 겨우 두살 위라지만 마흔 줄에 들어서면서부터 급속히 살이 찌기 시작하여 어느덧 중민의 두 팔 안에 온전히 들어오기 힘들 정도로 허리가 굵어진 아내였다. 의자에 퍼더버리고 앉아 죽을 퍼먹고 있는 아내의 상반신을 보면서 중민은 그 이미지가 밭고랑에 물앉은 늙은 호박, 것도 가을걷이가 끝난 밭에 버려진 상한 호박 같다고 생각했다. 그놈의 타오바오(淘寶, 중국의 대형 쇼핑몰) 때문에 아주 그냥 미칠 것 같다고 아내는 툴툴거렸다. 가방을 찾아 들고 신발을 꿰신다가는 기어이 문어귀에 세워둔 빈 맥주병을 쨍그랑 걷어찼다. 맥주병은 깨지지 않았고 남은 맥주 같은 것이 흐르지도 않았지만 중민의 신경을 묘하게 거슬렀다. “아니, 마셨으면 제때제때 병을 물리든가……” 아내는 슬쩍 곁눈질로 남편의 안색을 훔쳐보며 서둘러 집을 나섰다.
문이 닫히고 엘리베이터에 아내가 들어가는 소리까지 들은 다음 중민은 숟가락을 탁 내려놓았다. 흥, 저러니 내가 잘해줄 수 있을까,라는 욕지기가 입 안에서 뱅뱅 돌았다. 아들애가 먹다 남긴 죽그릇은 물론, 아내는 지어 자기의 죽그릇이며 수저마저 치우지 않았다. 가정의 경제를 다년간 감당해왔다고 저 유세인가. 아니면 한때 호황을 누리던 장사가 연 3년 내리막길을 걷다 못해 점점 더 지지부진해져서일까. 개수대 안으로 그릇들을 텀벙텀벙 집어넣고 쏴— 물을 뿌리다가 중민은 전날 저녁 그의 넓적다리께에 비비적거리던 아내의 푼더분한 엉덩이를 떠올렸다. 아들애는 자기 방에서 잠이 들었고 중민과 아내는 안방 침대에 누워 티브이를 보고 있었더랬다.
기름을 발라 반질반질한 머리를 중분으로 가르마 낸 일본군 앞잡이가 허술한 행색의 인력거꾼(지하당원)을 숨가쁘게 추격하고 있는데 벌써 잠이 든 줄 알았던 아내가 꿈지럭꿈지럭 중민 쪽으로 다리를 옮겨온 것이었다. 지하당원은 골목 모퉁이에 인력거를 버리고 인파 많은 시장통 속으로 달려들어갔고 눈치 빠른 변절자는 어느새 뒤쫓아와서 그의 덜미를 잡아챘다. 그때 아내의 육중한 다리가 중민의 다리 위에 올려졌고 중민은 비로소 그녀 엉덩이에서 뿜어지는 야릇한 열기를 느낄 수 있었다. 중민은 다리를 툭 털어 무거운 아내를 밀쳐냈지만 지나가는 행인과 옷을 바꿔 입은 지하당원이 아슬아슬하게 빠져나가는 것을 보고는 손을 뻗어 아내의 가슴을 더듬기 시작했었다.
설거지를 끝내고 청소기를 돌리다가 중민은 국휘의 장거리전화를 받았다. 작년 춘절휴가 때 고향 동네에서 만난 뒤로는 따로 연락이 없었는데 사정이 별로 좋지 않아졌다는 풍문이 들렸으므로 중민도 딱히 자세한 상황을 물어보지 않았었다. 시시껄렁한 잡담 몇마디 나누다가 국휘가 말했다. “인마, 너도 들었지? 걔 결국 됐다더라, 촌장.” 전화기 저쪽에서 국휘가 입꼬리를 사선으로 끌어올리며 쓰게 웃는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다. 같이 후보에 올라서 치열한 선거전을 치렀던 국휘의 삼촌을 생각하면 그럴 수 있겠다 생각도 되었지만 그래도 중민은 국휘의 꼬장꼬장한 말투에 슬그머니 반발심이 들었다.
“그래? 잘된 거지 뭐. 이젠 촌에 광철이만한 인물도 없지 않은가?” 하고 중민은 대꾸했다. ‘그만큼 젊은이가 없으니까’ 혹은 ‘너처럼 똑똑한 친구들은 다 도시로 나와버렸잖아’라고 한마디 곁들일까도 생각했지만 모른 체 있었다. 국휘는 “그런가? 그렇겠군” 하면서 하하 너털웃음을 웃었다. “그래도 말이야, 너한테 하는 얘기지만 광철이 그놈은 아직 안 돼, 이제 봐라, 걔……” 국휘는 거기까지 지껄이다가 그만 말을 멈추었다. “암튼, 사람들 얘기 들어보니까 그 자식도 많이 큰 것 같더라……”
청소를 대충 끝내고 빨 옷가지들을 세탁실에 꾸려넣은 뒤 좀더 두꺼운 잠바를 찾아 걸치고 중민도 집을 나섰다. 여자가 주문한 샴푸 세트를 비롯하여 이미 주문된 물건들은 점심 먹고 가지러 온다고 했으니 그전에 창고에서 매장으로 옮겨두어야 했다. 비는 계속 내렸다. 줄 끊어진 구슬같이 빗방울들은 바람에 날려 멋대로 후드득후드득 차 앞유리에 부딪쳤다. 고가도로 진입로를 앞에 둔 사거리까지 왔을 때에는 빗줄기가 제법 굵어져 시야가 온통 뿌옜다. 고가도로를 5분가량 달리고 나서 다행히 빗줄기는 가늘어졌지만 또 예상외로 차가 밀리기 시작했다. 길고도 구불구불 굴곡진 도로 위에 차들이 장난감처럼 빼곡히 붙어 서 있었다. 출근시간이 빠듯한 이들은 연속 빵빵 경적을 울려댔으나 그 소리를 동력 삼아 움직일 수 있는 차량은 한대도 없었다. 중민은 라디오를 켜고 볼륨을 높였다. 중민이 즐겨 듣는 음악 채널에서 한창 정 즈화(鄭智化)의 「수부〔水手〕」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90년대 초반, 중국대륙을 휩쓸 정도로 인기 있었던 천재 장애인 가수의 노래였다.
그는 말했지, 인생의 풍랑 중에 이만한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눈물을 닦고 두려워 말라고, 우리에겐 최소한 아직 꿈이 남았으니까
(他说风雨中这点痛算什么 擦干泪不要怕至少我们还有梦)
오랜만에, 그러니까 어림잡아 20여년 만에 다시 듣는 노래였다. 여학생들도 좋아했지만 특히 남학생들이 좋아해서 다른 중학교 애들이랑 무리싸움을 하고 돌아올 때나 기차를 타고 소풍 갈 때, 그리고 졸업시험을 치르고 교실에서 마지막 파티를 열었을 때 모든 남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목 터지게 불렀던 노래였다. 국휘도 불렀고 광철도 불렀었다. 국휘는 전교 1등 성적으로 중학교를 졸업하게 된 흥분 때문에, 광철은 인생에 다시없을 졸업파티에 참석하게 된 감격 때문에 불렀을 것이다. 이제는 세월이 참 많이 흘렀다고 생각했는데 방금 전의 국휘 목소리를 되새겨보니 그 녀석은 지금도 여전히 그때처럼 이 노래를 부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내식당에서 저녁을 먹은 뒤 선생님들과 학부모들은 눈치껏 자리를 피해주었다. 체육위원인 리성주와 몇몇 열성분자들이 맥주박스를 교실에 들여놓고 누군가의 집에서 들고 온 녹음기를 틀었다. 그 시절 웬만한 인라이트장(롤러스케이트장)에 가본 애들이라면 모두 들어보았을 익숙한 디스코곡이 곧 이별을 앞둔 애들의 분위기를 들뜨게 했다. 책상은 둥그렇게 벽을 따라 바싹 붙였고 의자는 그 앞에 지그재그로 놓였다. “야들아, 컵이니 뭐니 귀찮고 한 사람이 한병씩 들고 마시기다! 누구든 빼기 없기! 오늘은 그저 실컷 마시고 재밌게 놀기! 우리 중학 시절의 마지막 날이니까 뭔 짓을 해도 좋다. 그동안 못했던 고백을 해도 좋고 억울했던 거 하소연해도 좋고 얄미웠던 거 얘기하고 풀어도 좋고 책상 위에 올라가서 춤을 춰도 좋다!” 맥주병을 아이들에게 한병씩 돌리면서 리성주가 소리쳤다. 누군가 녹음기 볼륨을 쑥 높여버렸고 애들은 약속이나 한 듯 “우—!” 하고 환호를 질렀었다.
몇몇 ‘문제아’들을 빼면 사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처음 마셔보는 맥주였다. 첫 모금을 넘긴 여자애들은 얼굴을 찡그리며 혀를 내밀었으나 뜨거운 분위기에 힘입어 계속 마시기에 도전하였다. 그리하여 얼마 지나지 않아 교실 안은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쿵쿵 심장을 두드리는 음악에 맞추어 춤추는 아이들, 맥주병을 연신 부딪치며 꿀꺽꿀꺽 술을 마시는 아이들, 벌써 술기운이 돌아 벌게진 얼굴로 누군가와 옥신각신 말씨름을 하는 아이들, 정신줄 놓고 허수아비처럼 실없이 웃으며 돌아다니는 아이들…… 그 속에서 중민은 어떤 모습으로 있었던가……
차량 행렬은 서서히 움직이고 있었다. 중민이 잠시 여유를 부린 사이, 옆차선의 택시 한대가 날렵하게 차머리를 그의 앞쪽으로 들이밀었다. 워낙 빼곡히 모여 있었던 터라 간격이 아슬아슬했다. 젠장, 빌어먹을! 하고 욕이 저절로 나왔다. 여느 성깔 있는 운전자들처럼 차문을 내리고 머리를 내밀어 욕설을 퍼부을까 하다가 중민은 그냥 경적을 빵빵 새되게 울리는 것으로 경고를 대체했다. 아직도 중민은 그게 잘 되지 않았다. 정당한 분노를 내고 당당하게 자신의 권리를 지키며 자기욕구를 표현하는 것. 중민의 상태를 보고 ‘학습된 무력감’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 말에도 일리가 있다. 그날, 졸업파티에 불쑥 나타난 광철을 보고 너무 반가웠지만 결국 국휘의 까칠한 표정 때문에 마음껏 표현해내지 못했던 것만 봐도 그랬다.
물론 중민은 ‘안민촌파’ 애들 가운데 끼여 앉아 호방한 척 웃으며 다른 남학생들처럼 권커니 잣거니 어른 흉내를 냈었다. 안민촌 소학교 시절, 아니 동네 유치원 시절부터 중민과 친구였던 국휘는 늘 반장에 3호학생(三好學生, 학습·신체·사상 면에서 모두 우수한 학생을 가리킴), 학교와 동네와 집에서 인정받는 ‘믿음직스런’ 아이이자 P중학교에서 머릿수가 가장 많고 세력이 가장 큰 안민촌파의 리더였다. 국휘는 공부도 잘했지만 허우대도 크고 성깔도 사나워서 여학생들에게는 식을 새 없는 인기를 누렸고, 남학생들에게는 쉽게 타고 넘을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파티가 시작되어 어느정도 분위기가 무르익어갈 때 ‘안파’ 다음으로 강한 세력을 가진 ‘홍파’(홍성촌)의 원호가 몇몇 멤버들과 함께 맥주병을 들고 건너왔다. “어이 김국휘, 김반장! 끝까지 전교 1등! 축하한다!” 성적이나 선생님들로부터의 신망은 국휘에 비해 떨어졌지만 학교 축구대 대장이었고, 매사에 명령조인 국휘보다 친근한 스타일로 암암리에 인기가 꽤 높은 아이였다. 원호가 P중학으로 전학해오면서 ‘홍파’는 눈에 띄게 똘똘 뭉쳤고 교내에서 유일하게 ‘안파’를 견제할 수 있는 세력으로 성장했다. 될수록 서로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 조심스레 지내왔지만 원호와 국휘 모두 서로를 탐탁지 않게 여긴다는 것을 알고 있으므로 중민을 비롯한 남학생들은 다소 긴장했다. 국휘는 애써 웃음을 지으며 자기의 맥주병으로 원호의 맥주병을 가볍게 부딪쳤다. “고맙다, 선풍퇴(旋風腿)! 그동안 지지해줘서 감사하다!” 국휘는 오랜 반장답게 숙련된 관방(官方)의 멘트로 받아넘겼다. 원호는 껄껄 웃으며 “지지? 내가 뭘 지지했는데? 다 김반장 능력 덕분이지. 안 그래?” 하고 나서 주위 애들에게 같이 술병 굽내기를 권하였다.
주변에 앉았던 남학생들이 일제히 술병을 들고 고개를 뒤로 젖히며 맥주를 들이켜던 시각, 갑자기 문어귀에서 애들이 술렁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수군거리는 애들 너머로 중민은 다부진 몸매에 텁숙한 파마머리를 한 앳된 청년 대여섯, 그리고 그 속에 끼어 있던 광철을 보았다. “쟤, 광철이 아니야? 몰라볼 뻔했다야, 1년뿐이 안됐는데……”라고 말하는 소리도 들렸다. 학교를 떠날 때보다 키가 더 크고 옷차림도 달라졌으며 거뭇한 수염도 많아진 광철, 그를 제외한 다른 애들은 모두 낯이 설었다. 그중 주먹이 가장 세 보이는 아이가 날카로운 눈매를 번뜩이며 말했었다. “놀랄 거 없고, 놀던 거 계속 놀지. 오늘 우리는 트집 잡으러 온 게 아니고 같이 즐기러 왔을 뿐이다. 우리 중에도 이 학교 다녔던 꺼멀(哥們儿, 단짝친구)들이 있고 계속 다녔더라면 오늘 니들이랑 같이 졸업했을 게다. 그러니까 이 파티 함께 즐겼으면 한다. 술은 넉넉하겠지? 모자란 건 우리가 얼마든지 쏘겠다!” 이 근방에서 소문 자자한 양아치들이라고 여자애들이 소곤거렸다. 중하등의 성적에 국휘의 수하인 ‘안파’ 내에서도 서열이 많이 처져 늘 자신감이 떨어졌던 광철, 중민이 기숙사에 들어가면서 고향 동네와 떨어져 지내온 동안 그런 광철에게 많은 변화가 일어난 것이었다.
“야 자슥들아, 나, 림광철이다! 옛 동창이 왔는데 앉을 자리도 없냐? 술도 좀 내와봐라!” 좀전 그 유명한 양아치의 연설에 힘을 얻었는지 이번엔 광철이 좌중을 둘러보며 호기롭게 소리쳤다. 차림새야 어찌 변했든 중민은 반가웠다. 광철이 이 자식, 잘 왔다…… 하면서 술병을 들고 달려가려던 중민은 순간 본능적으로 국휘 쪽을 슬쩍 쳐다보았다. ‘안파’ 다른 애들도 국휘의 눈치를 흘끔흘끔 보고 있었다. 국휘는 잠시 경직된 얼굴 근육을 가까스로 풀었다. “그래, 여기는 사회가 아니라 학교다. 이 자리에는 그저 학우들만 있을 뿐이다. 그런 신분으로만 참석하겠다면 같이 즐기지 못할 이유도 없지. 잘 왔다, 림광철.” 그제서야 누군가 잽싸게 의자들을 권하였고 누군가는 술병들을 챙겨와서 건네주었다.
음악이 다시 틀어졌고 아이들은 곧 긴장을 풀기 시작했다. 원호와 홍파 몇몇 멤버가 술병을 들고 광철한테 다가가 사람 좋게 그의 어깨를 툭 쳤다. 흥, 하고 누군가 나직이 코웃음 치는 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다시 소란스러워진 애들 가운데 허리를 곧게 펴고 앉아 있는 국휘가 눈에 들어왔다. 중민이 먼저 다가갔는지 광철이 중민에게로 왔는지 기억은 나지 않았지만 그들은 서로의 만남에 대해 진심으로 기뻐했던 것 같았다. 중민은 국휘의 까칠한 시선을 잠시 못 느낀 척, 술에 취해 말이 헤퍼진 척하며 광철과 이야기를 나눴다. 퇴학처분이라는 경고를 받았지만 광철은 교도주임 선생님 앞에서 더이상 다른 애들의 비행을 불지 않았었다. 광철을 특별히 반갑게 맞이해준 네댓명의 애들(중민을 포함하여)은 모두 그 사건의 내막을 잘 알고 있었다. 사춘기 소년들이 충동적으로 저지른 일이었고 그들에게는 사실 계획도 동기도 주모자도 없었다. 그러나 그들을 충동질하여 밤중 매점 유리를 깨고 현금과 담배와 고급술을 ‘가져오게’ 한 사람, 그들의 ‘능력’을 테스트해보겠다고(그 ‘능력’은 안파의 새로운 서열순위가 될 수 있었다) 한 사람은 아무 처분도 받지 않았을뿐더러 계속하여 선생님들의 신망을 받는 반장으로 살았음을 그들은 알고 있었다. 매점 주인이 우연히 그 자리에 있은 탓으로 다치지만 않았더라면 학교에서 그다지 추궁하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어쨌든 국휘의 ‘협조’로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은 모두 일거에 검거되고 말았던 것이다.
자정이 넘어 파티가 끝날 무렵 녹음기에서 정 즈화의 「수부」가 흘러나왔다. “쓰디쓴 모래가 얼굴을 때리는 이 느낌은, 아버지의 책망이나 어머니의 흐느낌처럼 영원히 잊히지가 않네…… 언제나 상상했지, 바다 저쪽에는 새로운 세계가 있지 않을까고. 언제나 생각했지, 용감한 수부야말로 진정한 남아라고. 그러나 나는 항상 유약한 겁쟁이. 사람들한테 업신여김을 당할 땐 늘 그 수부의 말이 들렸지. 그는 말했지, 인생의 풍랑 중에 이만한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 노래가 흘러나오자 애들은 본능적으로 마지막 시간이 다가왔음을 느꼈다. 여자애들은 서로 손을 잡고 팔짱을 끼고 삼삼오오 붙어 섰고 남자애들은 한줄로 길게 늘어서서 서로의 어깨를 걸었다. 이 밤이 지나면 그동안 한 공간에서 같은 교육을 받았던 학우들은 곧 뿔뿔이 흩어져 자신만의 인생을 걸어가야 할 것이었다. 국휘는 중민의 왼편 두 사람 건너 섰고 광철은 중민의 바로 오른편에 섰다. 아이들은 아직 제 앞의 운명이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지, 한순간의 실수나 선택 때문에 운명이 얼마나 엇바뀔지 알지 못한 채 막연히 서서 노래를 불렀다. 노랫소리는 전에 없이 우렁찼고 아이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불그스레 격앙되어 있었다. 모든 억울함과 미움과 분노는 일시에 사라진 듯싶었고 그 순간만큼은 모두들 순수한 마음으로 오로지 아름다운 미래만을 기원하는 것 같았다.
이제, 꿈같은 학창시절이 지나고 현실에 뛰어들어 일을 하고 돈을 벌고 결혼하여 아이를 낳아 키워온 20여년이란 세월 뒤, 중민은 문득 옛 노래를 들으며 그날 자신의 어깨를 굳게 감싼 채 파르르 떨던 광철의 팔뚝을 생각해냈다. 전심전력으로 노래를 부르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는 국휘의 싸늘한 표정 때문이었을까. 중민은 그날 광철의 어깨를 좀더 따뜻하게 껴안아주지 못했었다.
20분 가까이 거북이걸음을 하고서야 정체는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다. 지린대로로 내려가는 출구에서 3중추돌 사태가 일어난 것이었다. 마루자재를 가득 채워 실은 봉고차와 금방 면허를 딴 것으로 보이는 앳된 여자의 빨간 토요따와 흙탕물이 가득 튀어 있는 검은색 아우디가 한 줄에 꿰인 물고기들처럼 비스듬히 도로 가운데 줄서 있었다. 고가도로를 내려서부터는 교통상황이 괜찮아졌다. 창고에 도착해서 시계를 보니 9시 40분, 여느때보다 한시간 가까이 늦은 시각이었다. 비가 오는 날이어서 예전 지하 주차장으로 쓰였던 창고의 공기는 더욱 습했다. 백열전구 불빛 아래에서 한줄 한줄 높이높이 쌓아올린 박스들은 그늘진 얼굴로 중민을 맞이했다. 사오년 전만 같았어도 이렇게 오랫동안 한자리에 쌓여 있을 박스들이 아니었다. 중민은 몸을 사리고 가재걸음으로 박스들 사이의 비좁은 길을 걸어들어갔다. 샴푸린스 말고 샴푸수건이라, 여자가 요구한 물건을 꺼내기 위해 중민은 한식경의 시간을 들여 박스들을 이리저리로 옮겼다. 그외 다른 손님들이 주문한 비누며 치약, 화장품 세트와 찬합 세트 등 물건들도 차례차례 꺼내어 차 뒷좌석에 실었다. 언제 시간이 나면 이 박스들을 다시 정리하든지 해야겠다고 중민은 생각했다. 구석 쪽 맨 뒤 아래에 묻혀 있는 눅눅한 비누박스에서 파란 곰팡이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여자가 바꾸기로 한 모듬 세트와 샴푸린스 세트도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았다.
트렁크를 열어젖히고 물건을 옮겨 싣는 다른 차들을 이리저리 피하여 중민은 가까스로 주차장을 빠져나왔다. 10시 25분, 가게까지는 보통 이삼십분가량이 걸렸으니 시간이 급하지는 않았다. 금방 골목길을 벗어났는데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디까지 왔어? 아무래도 오늘 세무국에 갔다 와야겠는데 오후에 물건 다 보낸 다음에는 늦을 것 같고……” 주문한 품목을 바꾸면서 여자가 ‘점심 먹고 오후에, 퇴근 전에는 가지러 갈게요’라고 했으니 두세시쯤 오지 않을까, 혹시 세무국서 돌아오기 전에 온다 해도 좀 기다려달라면 될 거라고 아내가 말했다. 쑈리가 있기에 아내가 없더라도 물건을 가져가지 못할 여자가 아니었지만 중요한 것은 영수증이었다. 원 물품금액, 즉 가게 장부에 남아 있는 금액이 아니라 여자가 원하는 만큼 써줄 수 있는 영수증, 그것을 조작해야 하는 일에 직원을 시킬 수는 없었다. 아내가 그렇게 말한 이상, 중민으로선 빨리 가야 할 수밖에 없었다. 점심 먹을 시간이 애매해진 것이다.
나야, 뭐. 가게주인인가? 운전기사지 하고 중민은 입속으로 중얼거렸다. 고중(고등학교)을 졸업하고 읍내 국영 사이다공장에 비정규직 직원으로 취직했었는데 국영기업들이 대거 파산을 맞았던 90년대 말 중민의 첫 직장도 문을 닫았다. 중민은 여느 조선족 친구들처럼 개혁개방의 바람을 타고 칭다오, 옌타이 등 연해도시에 나가서 외국 중소기업을 다니다가 우연찮은 기회로 다기탁자를 도매하는 사장을 만났고 그로 인해 난생처음 목돈을 만져보게 되었다. 싸이판 옷공장에 출근하다 국내로 돌아온 아내와는 그 무렵부터 만나 사귀었으니 M시에 작은 중고 아파트를 사고 한국상품 가게를 오픈할 때 들어간 원금은 대부분 중민이 번 돈으로 충당한 것이었다. 물론 가게가 한창 호황일 때 벌어들인 돈으로 지금의 새 아파트를 바꾼 이는 아내였다. 나라경제가 비약적으로 발전하던 시절만큼의 눈먼 돈을 더이상 벌 수 없게 되면서부터 중민보다는 그의 아내가 가정경제를 감당하기 시작했고 지금에 이르러선 거의 모든 주도권이 아내 수중에 들어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부부 사이라 해도 경제능력이 강한 쪽이 목소리도 큰 법, 아들 앞에서나 집안 대사를 결정할 때에 아내는 아직 중민을 티나게 무시하지 않았지만 이 시점에서 아내와 별도로 다른 사업에 도전할 용기를 잃은 중민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꾸 위축되는 것 같았다. 어린 시절, 국휘의 뒤꽁무니만 따라다니던 그 약골 소년의 비겁한 모습처럼.
잠깐 멈췄다가 다시 쏟아지기 시작한 비는 와이퍼로 걷어내도 걷어내도 줄기차게 앞유리를 덮고 있었다. 앞에서 달리던 차들의 속도가 눈에 띄게 늦어졌다. 입체교차로로 올라가는 삼거리 언덕길에서 빨간 신호에 막힌 차들은 뒤죽박죽으로 줄서 있었다. 뿌연 수증기에 시야가 가려서 중민은 히터를 켰다. 안전띠 아래로 손을 넣어 점퍼의 지퍼를 옷깃까지 재웠다. 파란 신호를 받고 기어를 넣어 출발하려고 하는데 앞차가 스르르 미끄러져 내려오는 것이 보였다. 줄줄 쏟아지는 빗물 때문에 간격 확인이 더디 되었다. 중민은 빵빵 경적을 급하게 눌렀다. 잠시 멈춰 서서 재차 출발 시도를 하던 앞차는 또다시 주르륵 미끄러져 내려 기어이 끼익— 중민의 차머리에 자기 꽁무니를 박고 섰다. 노랗게 머리를 물들인, 푸석푸석한 얼굴의 여자가 운전자였다. 우산을 쓰고 내려와서 상황을 살핀 후에 여자는 얼굴을 찡그리며 짜증을 냈다. “그러게 아저씨, 왜 그렇게 바싹 따라오셔요?”
한참 동안의 실랑이 끝에 150위안의 배상금을 받아낸 중민은 아내에게 전화를 넣었다. 가벼운 접촉사고였다고 알리고 급하면 택시라도 타고 가라고 일러주었다. 예상하지 못했던 건 아니지만 아내가 듣고 날카로운 목소리로 “아니, 뭔 남자가 대체 제대로 하는 일이 없어? 나 참……” 하고 비난했을 때엔 울컥 화가 났다. 그 순간의 마음 같아선 ‘야, 김화자! 너 말 다했냐? 이게 지금 누굴 보고 씨벌이는 거야? 그래, 나 지금 돈도 못 벌고 오늘은 사고도 냈다, 그러는 넌? 넌 얼마나 잘났는데? 너도 지금 자꾸 밑지잖아!’라고 맞받아치고 싶었지만 그렇게 내뱉고 나면 자신은 더 초라해질 것이 뻔했다. 흥, 내가 제대로 하는 게 없다고? 누구처럼 몸매관리 잘만 했어봐라, 오죽이나 잘해줬을까…… 중민은 순간적으로 반발이나 하듯 머릿속으로 통계국 여자를 애써 떠올렸다. 그러나 남자라면, 화 같은 건 제 집 마누라가 아니라 국휘 같은 녀석한테 내는 편이 옳았다.
작고 유약한 성격의 중민과 가난한 알코올중독자의 아들 광철과 다른 두명의 칠칠치 못한 애들한테 번갈아 자신의 책가방을 들게 하고, 같이 도랑을 막아 물고기를 잡았어도 으레 큰 놈만 골라가며, 콩서리를 하든 매점을 ‘습격’하든 언제나 명령만 내리고 자신은 체벌에서 쏙 빠져나가던 그 국휘에게 말이다. 아침마다 등교 시간에 맞춰 중민네 앞마당에서 기다려주고 때로 중민이 멘 국휘의 책가방을 같이 들어주던 광철은 또 어떻게 국휘의 사주를 받은 동네 애들로부터 따돌림을 받았던가. 중민은 라디오를 다시 켜고 채널을 돌렸다. “어느날 대, 대병이가 말, 말이유……” 둥베이 사투리가 짙은 억양의 남자 방송원이 하나도 웃기지 않는 유머를 들려주고 있었다. 미리 녹음된 방청객들의 웃음소리가 썰렁한 유머 중에 기계적으로 흘러나왔다. 바보 같은 자식, 하고 중민은 스스로에게 한숨을 내쉬었다. 도무지 이길 수도 없고 따로 독립해 나갈 수도 없었던 조무래기 시절, 국휘에게 붙어야만 살 수 있다고 판단한 중민은 애들과 같이 광철을 따돌리는 댓가로 국휘의 ‘절친’이 되었으며 매점 습격사건 때에는 광철의 퇴학 처분을 보면서도 함구한 덕에 그나마 무난히 중학 시절을 마칠 수 있지 않았던가.
그러니까 그날, 중민은 광철한테 한표를 찍어줬어야 했다. 능력으로 보나 재력으로 보나 나이 또는 패기를 놓고 보더라도 9년째 촌장 자리를 지키고만 있는 옛 치보주임(治保主任, 마을의 치안담당위원)의 동생, 국휘의 삼촌은 광철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안민촌 건립 이래 한번도 있어보지 못한 뜨거운 경선 열전의 나날, 양꼬치집에서 오래도록 술을 마셨지만 지난 일에 대한 유감을 한마디도 비치지 않은 광철에게 중민은 처음으로 친구로서 부끄러움을 느꼈다.
광철을 지지하는 자원 홍보위원들이 곁 테이블에서 왁자지껄 떠들어대고 있었다. 그들은 투표가 이뤄지기 한달 전부터 팀을 이루어 계획을 짜고 자금을 모아 어깨띠를 두르고 전단지를 돌리며 집집마다 들러 중화(최고급담배)를 두갑씩 뿌렸다. 광철과 비슷한 또래거나 좀더 나이 어린 그들은 인터넷으로 소위 민주주의 국가들의 뉴스를 보고 따라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따라했다. 그들은 마을에서 입김이 센 사람들—노인회 회장이나 아직 살아 있는 옛 촌간부 위원들, 주변 이웃들을 선동하는 능력이 뛰어난 아줌마들—을 따로 불러 식사를 대접하며 우의를 돈독히 다지는가 하면 현 촌장이자 지금 경선의 상대가 된 이의 허점과 실수 들을 파헤쳐 공공연히 떠들어댔고 거기다 창의력을 발휘하여 외지에 나간 ‘믿음직스런’ 촌민들에게 투표 전날로 맞춘 기차표를 끊어 보내주기도 했다. 그들의 활약 덕분으로 중민이 고향마을에 머물렀던 며칠 동안 보고 들은 거의 모든 화제가 촌장경선이 되었다. 타인의 일에 관심도 없고 더구나 투표 같은 일이라면 누군가 어련히 알아서 해주겠지 식으로 이제껏 살아왔던 중민의 부모님마저 광철과 김형식(국휘의 삼촌)을 두고 아무개가 낫네 입씨름을 할 정도였다. 마을길에서 마주치기만 하면 ‘식사하셨으까?’ 묻던 안부 대신 ‘누굴 찍을 거나?’라고 떠보는 촌민들, 중민은 난데없이 이상한 열기에 푹 빠진 마을이 너무 낯설어서 꼭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것이 만약 좋은 현상이라면 그것은 광철이 몰고 온 게 틀림없었다. 아직도 급할 때에는 말 더듬는 증상이 있고, 양복을 입고 쉐보레를 운전하고 다님에도 촌티가 다 벗겨지지 않았지만 광철은 이제 구치소에 들락거리던 중퇴생이나 중민과 같이 상표를 붙이던 사이다공장 견습공, 내륙도시에 나가 벽돌을 나르거나 주차원 노릇을 하다가 배를 탄 적도 있는 그 초라한 노총각이 아니었다. 중민이 M시로 옮겨와 지금의 가게를 열었을 즈음부터 광철은 고향으로 돌아와 지금까지 쭉 농사를 지으며 살았는데 일손이 잽싼 아내를 만나 살림을 늘리며 애도 둘씩이나 낳고 키웠다.
광철이 고향으로 돌아온 무렵만 해도 중민을 비롯한 친구들은 모두 농사란 그들 아버지 세대의 직업, 그들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최하층계급의 사람들이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농촌에 살긴 살았으되 평생을 촌‘간부’로 지내온 아버지를 둔 국휘는 더욱 그러했다. 학교와 동네 사람들의 기대를 버리지 않고 중점대학을 졸업한 국휘는 잠시 M시 담배공장에 출근하다가 상하이로 나가 이름만 대도 모든 국민이 알 만한 대기업에 취직했었다. 승진에 승진을 거듭하던 국휘는 이태 건너 한번씩 춘절을 쇠러 고향에 들러서는 거창하게 동창모임을 주선했다. 동창들을 가장 많이 모이게 할 수 있는 사람은 단연 국휘였지만 자신만의 인생관·가치관으로 사람들에게 암묵적인 순위 매김을 하기 좋아하는 이 역시 국휘였다. 말할 나위도 없이 국휘식의 저울질이라면 농촌으로 내려와 농사를 짓는 광철의 처지가 하위 중의 하위였다.
“야, 광철아. 넌 젊은 놈이 그게 뭐니? 아무리 가정환경이 그렇고 배운 게 모자라도 그렇지…… 지금 세월이 어떤 세월인데, 바깥에 나가봐라, 요즘 사람들 다 어떻게 사는가. 넌 그냥 여기서 이렇게 한평생 살 거냐? 하긴 뭐, 사람마다 뜻이 다르니……” 국휘가 국제도시의 문명과 번화에 대해 도고한 견해를 늘어놓다가 광철의 답답한 현실에 혀를 끌끌 차노라면 광철은 말없이 고개를 수굿한 채 술잔만 만지작거렸었다. 가게가 한창 잘돼가던 중인지라 어느 한번은 중민이 국휘의 과분한 ‘충고’를 막아나선 적이 있었다.
“그만해. 농사가 어때서? 젊은 사람이 귀한 농촌인데 여기서 농사 하나만 딱 부러지게 해도 뭔가 길이 있을지 모르잖아. 여기 일이 싹수가 있는지 없는지는 모내기도 하지 않는 너나 내가 아니라 광철이 이 자식이 더 잘 알 거라고. 넌 왜 항상 니 생각으로 다른 사람 견주려고 그래?” 그것이 여태 중민이 국휘에게 해보았던 가장 용기있는 따짐이었다. 중민은 사실 이런 말도 하고 싶었었다. ‘가정환경? 넌 돈이고 뭐고 부러울 것 없이 살았으니 그따위 흰소리나 치지, 니가 만약 광철이 얘처럼 살았다고 해봐, 너라고 과연 얘보다 낫게 살았을까? 그리고 광철이 얘가 누구 땜에 퇴학받았는데…… 양심이 있으면 너 이 자식 그렇게 함부로 말할 수 있냐?’
같이 술을 마시던 친구들은 모두 놀라워했다. 중민처럼 말을 하지 않았을 뿐 그들도 늘 생각했던 일이었다. 그러니까 사실 중요한 것은 농사나 성공, 책가방이나 퇴학이 아니라 이제껏 국휘가 독점해온 ‘절대위치’, 친구들 중에 가장 우수하고 가장 능력있고 지어 가장 친구를 위할 줄 아는 이마저도 반드시 국휘 그 자신이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문제였다. “야야, 그만하자, 술이 과했나부다……” 잠시 어색해진 술자리를 이번에는 친구들이 의도적으로 화제를 바꾸면서 분위기를 풀었다. 살아가면서 그날처럼 속 시원한 적이 몇번 없었다.
어떤 선견지명에서 뱉은 말은 아니었지만 신기하게 그뒤로 중민의 말이 들어맞기 시작하여 광철의 농사는 규모가 점점 커지면서 잘돼갔다. 땅을 버리고 외지로 나가는 사람들이 대폭 늘어나면서 그 사람들의 땅을 모두 거두어 부치는 광철의 몫도 어마어마하니 많아졌다. 주위 빈집을 여러채 사들여 크게 울타리를 치고 2층 새집을 지어 올린 광철은 안민촌의 명실공한 땅부자가 되었는데 지난해부터 마을을 개발한다는 정부 공식선언이 있고 나서는 그가 보상받을 거액의 돈에 마을 모든 사람들이 입을 딱 벌렸다. 광철은 이제 읍내에서도 엔간히 소문난 인물이 되어 정부 사무실에도 자주 들락거렸고 읍의 유지들과도 가끔 술자리를 같이하곤 했다. 촌장경선의 상대가 국휘가 아니라 국휘 삼촌이어서 유감을 표하는 광철에게는 바로 그러한 배경이 있었던 것이다. 더욱이 광철이 승승장구할 때 중민의 가게는 점점 내리막길을 걸었던 한편, 직장에서 나와 창업을 시작한 국휘는 한술 더 떠 빚더미에 올라앉아 아파트마저 잃어버렸기 때문이었다.
투표가 있기 전날, 광철이 양꼬치를 먹으며 그랬다. “야, 박중민. 넌 날 찍어야 된데이. 나 찍어줄 거지?” 중민은 그의 술잔에 맥주를 그득 채워주었다. “왜 날 찍어야 되냐? 첫째, 안민촌의 발전을 위하여. 둘째, 아직 안민촌에 있는 너그 부모님의 이익을 위하여. 이제는 인마, 아무렴 내가 령감들보다야 낫게 하지 않을까. 셋째, 김형식은 9년 동안 해처먹었고 나는 한번도 못해봤으니까. 그만큼 먹었으면 내려갈 때도 됐지, 그 뭐냐, 등소평도 그랬잖냐, 눌 똥도 없으면서 괜히 변소만 차지하고 있지 말라고. 크크…… 넷째, 그 사람은 김국휘 그 잘난 녀석 집안사람이고 나는 가난뱅이 무식쟁이 알코올중독자 애비 대부터 찌질한 림광철이니까……” 손가락을 꼽으며 숫자를 세다가 광철이 웃었다. 그래, 이젠 림광철을, 광철이 같은 사람을 찍어줄 때도 됐다고 중민은 생각했었다. 그런데 며칠 뒤 정장을 차려입고 단상에 올라서서 촌민들한테 공약을 선포하는 광철한테 왜 중민은 표를 던져주지 않았을까. 국휘는 다시 중민을 조종할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없었고 국휘의 삼촌 역시 늙고 나이들어 기운이 약해졌는데 말이다.
가게로 물건들을 들여놓을 때 아내는 이미 세무국으로 가고 없었다. 빨간 유니폼을 입은 쑈리가 중민을 도와 박스들을 매대 뒤쪽으로 쟁여놓았다. “사장님 오셨어요?” 하고 쑈리는 중민을 보고 생글생글 웃었다. 나이 어리고 발랄한 그 아이는 통계국 여자의 은근한 매력과는 달리 상큼하고 톡 쏘는 시원한 예쁨이 있었다. 화장은 한 듯 안한 듯, 머리는 신경을 쓴 듯 안 쓴 듯 자연스럽게 묶은 쑈리의 얼굴은 매끄럽고 탱글탱글했다. 쑈리가 있는 가게는 음침하고 주눅든 중민의 창고와 달리 환한 불빛에 반들반들 바닥마저 거울처럼 매끄러웠으며 진열장 위의 찻잔과 그릇 세트는 더욱 반짝반짝 윤이 났다. “사장님, 아직 점심 안 드셨죠? 저 이거 다 먹을 때까지만 가게 좀 봐주세요……” ‘사장’한테 하는 부탁인지 ‘오빠’한테 부리는 애교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로 쑈리의 목소리에는 달착지근한 비음이 들어가 있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마라탕국수를 먹으면서도 다른 손으로 열심히 채팅하는 쑈리의 핸드폰은 중민이나 아내의 것보다 훨씬 비싼 최신형 아이폰이었다.
중민은 가게에 앉아 가끔씩 매장 안으로 들어와 가격을 묻는 손님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쑈리나 아내가 바쁠 적이면 중민이 들어와서 잠깐씩 봐주던 가게였다. 이 시간대에, 아니 ‘생활관’을 찾는 손님들은 거개가 여자였으니 중민은 그 안에서 뚱뚱한 여자, 날씬한 여자, 짧은 파마머리를 한 여자, 긴 생머리의 여자 등을 원없이 바라볼 수 있었다. 중민과 아내가 기다리는 그 여자는 오지 않았다. 쑈리가 마라탕을 다 먹기를 기다린 다음 중민도 가게를 나와 마트 지하에 있는 분식 코너로 갔다. 일주일 내내 점심을 면으로 때웠던 탓으로 이번에는 도시락을 시켰다. 돼지고기찜과 매운 닭내장볶음, 녹두나물과 오이무침이 하얀 쌀밥 위에 수북이 올려졌다. 자리를 잡고 앉아 중민은 한술 크게 밥을 떠 입안에 넣었다. 도시락밥치고 맛이 괜찮았다. 윤이 좌르르 흐르는 돼지고기찜 한덩어리를 떠 먹으며 중민은 생각했다. 왜 그랬을까. 중민은 왜 광철을 찍어주지 않았을까. 광철이 입은 정장과 그가 뽑은 새 차와 곧 보상받게 될 거액의 돈에 혹시 질투가 났던 것일까. 찌질이 광철이었을 때는 동정도 하고 무시도 하고 자기이익을 위해 팔기도 하고 그래서 죄책감도 느끼고 용기 내어 지켜주기도 했지만 새로운 리더로 곧 부상할 지금에는 오히려 불편하고 못마땅하고 꼴사나웠던 것이었을까.
중민은 도시락 안의 밥을 박박 다 긁어 먹었다. 기름기가 둥둥 떠 있는 국물과 마른고추 밑동아리 같은 것만 남겨두었다. 물을 한병 사서 들이마시는데 아내에게서 여자가 왔느냐는 전화가 왔다. 쑈리에게서 아무 연락이 없었으므로 중민은 아직이라고 대답했다. 한시가 좀 넘은 시각이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1층에 있는 매장으로 가보았지만 역시 가게 안엔 쑈리밖에 없었다. 얼핏 붉은 매화꽃무늬가 그려진 원피스를 입은 여자가 매장 진열대 앞에 서 있는 것이 보였지만 곧 통계국 출납이 아니란 것을 중민은 알아보았다. 쑈리한테 손을 흔들어 보이고 나서 중민은 가게 맞은편에 설치해놓은 간이의자에 걸터앉았다. 그곳에서는 마트의 입구와 매장이 동시에 잘 보였다.
광철과 헤어져 집으로 돌아오니 어머니와 아버지는 티브이 앞에서 옥신각신하고 있었다. “아니, 지금이 언젠데 맨날 총 쏘는 드라마래?” 하고 어머니는 아버지를 비난했고 아버지는 “그럼 종일 눈물이나 질질 싸고 사랑타령이나 하는 드라마 보련?” 하며 퉁명을 놓았다. 본인들이 즐겨 보는 드라마 시간이 되면 매일 되풀이하는 실랑이였다. 결국 중민의 중재로 아버지가 양보하고 어머니의 한국 일일드라마를 보기로 했지만 그동안 중민 모르게 쌓인 것이 많았던지 노부부는 드라마 보는 내내, 그리고 9시 뉴스가 끝날 때까지 끝없이 티격태격했다. 야당 어쩌고 여당 어쩌니 하는 뉴스를 보고는 “그봐라, 그래도 근본 있고 뭔가 해먹던 집안 사람들이 나은 거야”라고 아버지가 운을 떼면 “하이고, 나은 게 저따위로 일처리하남? 그래봤자 맨날 그 모양 그 꼴이지. 이젠 저런 사람들이 아니라 젊은 사람들이 신식으로 해야 한다고요”라고 어머니가 비죽거렸다. 이튿날이 마을의 선거날이라 자연히 화제가 그리로 흘렀고 거기에 관해서도 부부는 의견이 서로 갈렸다. “함 봐봐요, 형세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다들 젊은 사람 찍겠다고 난리던데요. 그게 맞지요, 이젠 그렇게 해야 될 때가 됐어요.” 어머니는 당연히 광철한테 표를 던져야 한다 했고 아버지는 그게 아니라고 완강히 머리를 흔들었다. “광철이 갸가 뭘 안다고 촌장을 시켜? 형세가 뭐 어쩌고 어째? 사람들 모아놓고 북적북적하는 거 그런 건 다 쇼지. 갸는 막말로 배운 게 있나 가정교육을 제대로 받았나? 지금은 돈 좀 벌었다지만 그게 어디 제 능력으로 번 건가? 운이 좋아 땅 팔아 번 거지. 그래도 김형식이는 군대도 갔다 왔고, 속에 먹물도 들었고, 여태 별탈 없이 잘해왔잖는가……” 부부는 더이상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한 채 티브이를 끄고 이부자리에 들었다. 중민은 작은방의 침대에서 잠을 잤다. 어둠 속에서도 흡사 무슨 축제를 앞둔 듯한 마을의 들뜬 분위기가 강하게 느껴졌다. 반평생 넘는 세월을 계획경제와 집체식의 생활방식으로 채워온 부모님께도 이렇게 분명한 자신의 생각들이 있었는지, 더욱이 자신들의 리더를 선택하는 데 이렇듯 확실한 소신이 있었는 줄 중민은 미처 몰랐다. 늦도록 꿈을 꾸며 개운하게 자고 싶은 밤이었다.
이튿날 아침, 플래카드를 걸고 간이투표실을 만들어 공식선거장이 된 학교 운동장으로 새카맣게 촌민들이 모여드는 모습을 중민도 보았다. 광철 쪽의 홍보위원들이 미리 길목에서 북을 두드리며 “1번 찍어주세요, 1번이에요”라고 소리치며 마지막 홍보활동으로 티슈를 나눠주었다. 선진 민주주의 나라들의 뉴스를 잘 보지 않는 노인네들은 지난날의 마을정부에서도 ‘민주’라는 표어 아래 사실 이미 정해진 룰에 따라 거수 표결하던 일만을 기억하고 이번에도 1번이 누구인지 모른 채 새로운 룰이겠거니 얼떨결에 광철을 찍어주었다. 촌장 외에 부녀주임과 치보주임 등 다른 촌간부의 선거도 같이 진행되었는데 광철 쪽의 홍보위원 속에 그 후보들이 모두 있었다. 어머니의 말처럼 대세는 이미 기울어져 있었다. 중민의 한표는 광철의 당선에 별 영향을 끼치지도 못할 것이었다. 주변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앉은 새 양복의 광철과 달리 회색잠바를 입고 혼자 의자에 앉아 순서를 기다리는 김형식—국휘의 삼촌이 멀리서 보였다. 퇴역군인답게 60대가 다 된 나이에도 단단하고 곧은 허리를 가진 그는 노련한 말단 정부인사로서 유창한 중국어와 조선어로 9년째 해온 틀에 박힌 연설을 했다. 그는 자신의 취임 기간 거둔 성과를 약간 과장하여 발표하였으며 스스로 ‘온건한 발전을 도모’했던 덕분에 ‘공이 없더라도 수고는 있었다’고 총화를 지었고 만약 자신이 촌장으로 선출된다면 앞으로도 마을을 위해 계속 노력할 것이라고 마무리했다.
그리고 중민은 광철이 단상으로 올라가 연설하는 장면을 바라보았다. 생전 처음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연설하게 된 광철은 얼굴이 벌게지며 말을 더듬었다. 연설원고는 누가 대신 인터넷에서 다운받아 프린트해줬는지 손에 들고 있었다지만 성조도 틀리고 발음도 혹간 틀렸다. 그는 지금은 새로운 시대라고, 자신은 안민촌을 멋지게 개혁할 것이라고, 이런 일에 처음이지만 한번 믿어달라고 약간 붕 뜬 어조로 애매모호하게 짧은 연설을 마쳤다. 투표가 시작되어 사람들이 간이 투표실 앞에 줄서서 대기하고 있을 때에 중민은 아내의 전화를 받고 그곳을 떠났다. 집에 돌아가면 누가 연설을 더 잘했느니, 연설이랑 실제 능력이랑 상관이 있느니 없느니, 누가 올라가든 결국 마찬가지라느니 아니 그래도 다를 거라느니 등의 문제를 가지고 부모님은 의견이 엇갈린 채 점심 밥상을 마주할 것이었다. 그러나 오랫동안 무기력에 빠져 있던 중민까지 흥분시켰던 안민촌의 대선거는 중민이 차를 운전하고 마을을 떠나는 순간 다시 그와 상관없는 일이 되었다.
여자는 오지 않았다. 무료하게 앉아서 트럼프 게임을 놀고 있는 중민에게로 전화를 걸어온 사람은 아내였다. “아직 가게지? 밥은 먹었고? 나 지금 가게로 들어가는 중이야. 당신 피곤하면 집에 먼저 들어가.” 점심은 챙겨 먹었는지 말았는지 아내의 목소리는 아까보다 힘이 없었다. 그 샴푸수건 마흔 개는 몽땅 물렸다고, ‘위’에서 그런 명절선물 이제 더는 못하게 한다고 여자에게 연락 왔었다고 했다. 여자에게 뒷돈을 더 준다 해도 이제는 정말 그런 시대가 아닌 것 같았다. 아직도 비는 계속 부슬부슬 내리고 있어서 물건들을 매장 안 구석 쪽에 쌓아둔 채 중민은 가게를 떠났다. 냉장고에 있는 반찬으로 저녁을 때우려고 마트 안에 있는 식품코너에 들르지도 않았다. 이태 전부터 가끔씩 시큰거렸던 경추, 요추가 뻐근했다. 집에 돌아가면 아들 녀석의 하교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소파에 엎드려 뜨거운 팩으로 찜질이라도 하고 싶었다.
아파트 대문 입구에 와서 주황색의 스포츠카를 바투 따라 들어가다가 가늠대가 내려오는 바람에 하마터면 중민의 차가 눌릴 뻔했다. 중민은 창문을 내리고 경위실에 새로 온 듯한 낯선 얼굴에게 소리쳤다. “사람이 거 좀, 융통성 있게 조절하면 안 되나!” 주차를 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으로 올라가면서 중민은 왠지 미지근한 분노를 느꼈다. 통계국의 오랜 공무원인 여자와 안민촌은 아무런 상관도 없었지만 중민은 차라리 그날 왜 김형식을 찍어주지 않았던가 후회하고 있었다.
아들 녀석을 데려오고 돼지고기고추볶음으로 저녁을 먹은 다음 전날의 혁명드라마를 이어서 보고 있는데 광철한테서 전화가 왔다. “야, 박중민. 내가 씨바, 촌장이라네……” 술을 좀 마셨는지 광철의 목소리는 약간 풀려 있었다. 콧수염을 세로 일자로 기른 일본군 장교가 흰 장갑을 낀 손을 들자 지하당원이 몸을 숨긴 덤불숲을 향해 총소리가 펑펑 울렸다. “그래, 촌장이 됐다며? 잘됐지 뭐.” 중민은 심드렁하니 대답했다. “자식아, 그게 아니라, 내가 촌장이고 김형식이가 당지부서기랜다. 크크, 웃기지? 표는 내가 엄청 많았는데……” 함께하던 홍보위원들과 같이 술을 마시고 있었던지 광철의 주변은 시끄러웠다. 이번에 지하당원은 어느 집 낟가리 속에 숨어 있었고 그 집 아낙과 아이들은 마당에 앉아 와들와들 떨고 있었다. 이게 어찌된 일인가, 나랏법으론 촌장과 당지부서기가 서로 다른 자리였지만 사실 안민촌의 역대 촌장은 모두 당지부서기까지 혼자 겸하지 않았던가. 그제야 중민은 광철이 ‘아직 안 된다’던 국휘의 말이 생각났다.(광철은 당원은커녕 공청단원에도 들지 못했으니까.)
티브이 안에서 지하당원은 또 한번 아슬아슬하게 일본군의 추적에서 벗어났다. 아내가 현관문 열쇠를 돌리는 소리가 철컥 들렸다. 중민은 침대머리에 베개를 세워 비스듬히 기댄 채 연출 인원들의 이름이 뜨고 있는 자막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불을 켜지 않은 방 안에서 푸른빛 번쩍이는 모니터는 중민의 무력하고 식상한 얼굴을 기묘한 분위기로 비추고 있었다. 티브이에서는 드라마 종영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지만 중민의 귓가에서는 난데없이 90년대의 대만 가요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언제나 상상했지, 바다 저쪽에는 새로운 세계가 있지 않을까고.
언제나 생각했지, 용감한 수부야말로 진정한 남아라고.
그러나 나는 항상 유약한 겁쟁이.
사람들한테 업신여김을 당할 땐 늘 그 수부의 말이 들렸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