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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정승구 『쿠바, 혁명보다 뜨겁고 천국보다 낯선』, 아카넷 2015

인류학자는 쓸 수 없는 멋진 에스노그래피

 
 

조일동 趙一東

한양대 글로벌다문화연구원 연구교수 heavyjoe@hanmail.net

 
 

169촌평-조일동_fmt쏜(son)이라는 거친 음악장르에 매료된 얼치기 인류학도는 꾸바에서의 현장연구를 꿈꿨다. 한학기 동안 만났던 연구자료 대부분은 꾸바의 정치와 송금경제의 이중성, 친환경농업에 대한 것이었다. 포스트-사회주의 시대의 꾸바 정치·경제에 대한 글은 많았지만, 한국까지 날아온 쏜 아티스트의 음반과 꾸바가 맞이한 변화 사이의 관계를 설명해주는 연구는 도통 찾을 수 없었다. 음반에 적힌 음반사와 유통사의 소재지(주로 서유럽과 멕시코)를 통해 꾸바 예술계가 맞이한 변화를 얼추 짐작할 순 있었다. 그러나 송금경제의 구조와 상징정치에 마음이 간 지도교수 앞에서 쏜의 가치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 얼치기는 꾸바를 접었다. 정승구(鄭榺求)의 『쿠바, 혁명보다 뜨겁고 천국보다 낯선』을 읽으며 어느새 십여년 전 기억이 슬금슬금 떠올랐다. 어쩌면 나는 7장에서 달랑 한 페이지 조금 넘게 언급하고 넘어가는 ‘예술의 봄’ 절을 꾸바의 역사(특히 소련 붕괴 이후 1990년대 경제봉쇄기인 ‘특별시기’)와 엮어가며 한껏 부풀린 글을 쓰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잠시 불탔다 사그라진 꾸바에 대한 창피한 추억을 건드린 이 책은 장르부터 묘하다. 출판사에 따르면 ‘크리에이티브 논픽션’이란다. 소개를 들으니 더 알쏭달쏭해진다. 도대체 정체가 뭘까? 우선, 저자가 2014년 어느 순간 꾸바에서 보낸 기억에 대한 기록이라는 사실 하나는 분명하다. 사진도 풍부하다. 그럼 사진이 많은 기행문일까? 그렇게 퉁치고 넘기기엔 꾸바의 역사와 현실에 대한 저자의 고민이 남다르다. 그렇다고 연구서는 아니다. 그러나 연구서가 아니라고 못 박기도 애매한 게, 꾸바를 바라보는 저자의 태도가 웬만한 연구자 이상으로 진지하다. 여행만으로는 얻을 수 없는 역사적 사료와 자료를 뒤지고 정리하는 데 들인 품이나 이해의 깊이가 만만찮다. 꾸바에서 만난 인물들과 함께하는 여정 사이로 꾸바의 역사, 정치, 사회, 문화에 대한 소개와 저자의 분석 및 의견이 자연스럽게 치고 들어온다. 혁명의 나라 꾸바를 사랑하지만 꾸바의 오늘을 가감없이 담담히 써나간다. 그런 의미에서 에스노그래피(ethnography, 문화기술지文化記述誌)라 볼 수 있지만, 단정하긴 저어된다. 왜냐?

과음을 한 다음날 아침 저자의 오른쪽 무릎이 아프더니 헤밍웨이(E. Hemingway)의 유령이 어슬렁거리며 나타난다. 그냥 환영이 아니라 저자에게 말을 걸고, 웃고, 허탈해하기도 한다. 피델 까스뜨로(Fidel Castro)의 친구 가르시아 마르께스(G. Garcia Marquez)의 작품들처럼 ‘마술적 사실주의’(?)를 가미한 에스노그래피라 하면 책에 대한 설명이 되려나? 헤밍웨이의 유령은 책 속을 동동 떠다니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 전개와 유기적으로 엮여 있다. 어느샌가 헤밍웨이 유령이 언제쯤 다시 나타나 어떤 메시지를 전할지 기다려질 정도다. 장르를 정의하려는 시도는 미궁에 빠졌으되, 독서의 감칠맛은 끊어질 듯 이어지며 마지막 페이지까지 열어보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책 속의 꾸바 사람들은 저자를 ‘디렉또르 정’이라 부른다. 디렉또르 정, 정승구는 소설가이자 각본가 겸 영화감독이다. 아하! 전문 이야기꾼이 쓴 책이었구나.

인류학자는 이야기꾼이 되어야 한다는 얘기를 수업시간에 참 많이도 들었다. 개인적으로 소설처럼 술술 읽히는 에스노그래피의 매력에 빠져 인류학을 업으로 삼기로 맘먹었다. 창피하지만 전업 인류학자(인지 가끔 헷갈리지만)로 살고 있는 현실 속의 나는 그런 글을 써본 적이 없다. 부러움을 살짝 머금은 채, 나는 『쿠바, 혁명보다 뜨겁고 천국보다 낯선』을 ‘일종의’ 에스노그래피로 읽는다. 에스노그래피는 일견 모순돼 보이고, 이해하기 힘든 타문화의 현실을 총체적인 관점에서 바라볼 기회를 제공하는 글이다. 타문화의 오늘이 한층 광범위한 지구적 정치, 경제, 역사적 구조와 연결되어 있음을 밝히는 작업 또한 에스노그래피의 역할이다. 저자는 꾸바의 황금기에 성장했고 격변의 시대를 살아낼 방법을 모색 중인 가이드 ‘하비에’와 숙소 주인 ‘마그다’라는 두 기성세대와, 꾸바 최대의 침체기에 태어나 이제 막 성년이 된 두 젊은이, 마그다의 아들 ‘페페’와 그의 여자친구 ‘다리아나’를 등장시킨다. 선명하게 비교되는 네 사람(과 한명의 유령)의 말과 행동을 통해 “혁명보다 뜨겁고 천국보다 낯선” 꾸바의 맨 얼굴을 입담 좋게 풀어낸다. 인물에 초점을 둔 몇장을 제외하곤 심도가 깊은 현장사진은 독자에게 날것의 쿠바를 볼 수 있게 해준다. 단, 낡고 허물어진 동네 사진에도 어딘가 따스함이 묻어난다. 꾸바의 하늘과 건물의 색감 때문이 아니라 홀린 듯 꾸바로 떠나야만 했던 저자의 마음 때문이리라. 한계라면 한계지만, 덕분에 냉소적일 정도로 비판적인 기술(記述)조차 살갑게 읽히는 마술이 벌어진다.

에스노그래피는 독자의 여행심리를 자극하는 글이 아니다. 낯선 문화를 다각도로 이해해보려는 시도이기도 하지만, 저자가 속한 사회와 문화를 낯설게 볼 틈새를 얻기 위한 노력이기도 하다. 한국사회에 대한 저자의 깊은 ‘빡침’(이보다 적절한 표현을 못 찾겠다)이 느껴지는 꾸바 한인회 김선생과의 만남이 담긴 9장은 아주 노골적으로 20144월 세월호참사 이후의 한국을 직시한다. 직접 언급하지 않아도 저자가 만나는 꾸바의 현실은 결국 한국사회의 오늘을 낯설게 보기 위한 장치에 다름 아니다. 노동의 가치가 증발된, 상상력이 고갈된, 꿈을 꿀 여유가 없는 젊은이들, 구조를 바꾸기보다 현재를 깎아먹으며 미래를 접어버리는 관료들, 새로운 희망으로 부풀었던 변혁의 노력이 20년 후 망가지는 현실 앞에서 절망해야 했던 혁명세대. 과연 먼 나라에서 벌어진 우리와 아무 상관없는 얘기일 뿐일까? 저자가 꾸바를 “지구 반대편과 반대”라고 강조하면 강조할수록, 냉정한 듯 애정 어린 시선으로 꾸바를 이해하려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한국을 어떻게 “레쏠베르”(resolver, ‘문제를 해결하다’는 뜻으로 특별시기에 나온 구호, 18) 해야 할지 고민하는 자신을 발견하는 게 나만의 이상한 독법은 아닐 게다. 그래서 이 ‘일종의’ 에스노그래피는 성공적이다.

에스노그래피는 연구현장에서 작성하지 않는다. 장기간의 현장연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두툼한 필드노트, 연구자가 촬영한 사진과 녹음한 파일, 현장에서 수집한 여러 자료, 심지어 일기장까지 죽 늘어놓고 ‘기억’과 ‘기록’을 오가며 쓰는 글이다. 덕분에 딱딱한 사회‘과학’ 속에 인문학의 유연함을 담는 ‘척’할 여지가 생긴다. 그렇더라도 에스노그래피는 픽션이 될 수 없다. 다행히 저자는 학자가 아니라 이야기꾼이다. ‘과학’이라는 족쇄에서 자유롭다. 그래서 페페와 다리아나가 그토록 궁금해했던 하얀 눈을 아바나에 소복이 뿌려주며 책을 맺는다. 인류학자(적어도 현재의 나)는 절대 쓸 수 없는, 그래서 더 매력적인 에스노그래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