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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김종태 『선진국의 탄생』, 돌베개 2018
발전의 ‘블랙박스’를 열어야 할 필요성
김상현 金湘顯
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 교수, 과학사·과학사회학 shkim67@hanyang.ac.kr
‘발전’(development)은 근현대 한국과 관련해 가장 자주 언급되는 키워드의 하나이지만, 정작 그에 대한 문제화는 좀처럼 이루어지지 못했다. ‘발전국가’나 ‘식민지 근대화’를 둘러싼 논쟁이 보여주듯이 발전에 관한 근대화론과 주류 경제학의 통념은 끊임없이 도전받아왔다. 그러나 발전을 촉진, 저해 혹은 왜곡하는 조건에 대해서는 질문이 제기되었으되 그 내용, 논리, 성패 기준과 이들을 지탱하는 지식과 실천은 다분히 자명한 것으로 전제되어왔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으로 박정희시대 이래 한국사회를 지배해온 발전(주의) 패러다임이 종언을 맞이했다는 진단이 많지만 발전 자체의 맥락적인 검토를 찾아보기 쉽지 않은 것은 이 때문이다.
1990년대 이후 구미에서 전개된 ‘비판발전학’(critical development studies)과 ‘발전과 근대화의 역사’ 연구들은 이처럼 발전을 일종의 ‘블랙박스’로 취급해온 우리 학계와 지성계의 인식적 한계를 반추하게 하는 유용한 통찰을 제공한다. 인류학, 사회학, 지리학, 지역학, 지성사, 국제관계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학제적으로 진행되어온 이 연구들은 세부적 관점의 차이를 넘어 발전을 구체적인 역사적·정치적·사회문화적 맥락에서 구성된 담론, 지식과 실천의 아상블라주(assemblage)로 재개념화할 것을 주창해왔다. 나아가 식민지/탈식민지 시기 아시아,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 각국의 발전 담론과 실천, 냉전시기 미국, 유럽, 국제기구의 개발원조를 비롯한 국제개발사업, 그리고 그 사이의 상호작용과 이를 통해 구축된 지식/권력 레짐을 비판적으로 해부해왔다.
안타깝게도 이상의 연구들은 근현대 한국의 이해를 한층 심화할 수 있는 적실성을 지니고 있음에도 우리 학계와 지성계에서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다행히 최근 들어 발전의 ‘블랙박스’를 열고 한국의 발전 담론, 지식과 실천이 어떻게 역사적·정치적·사회문화적으로 구성되었고, 어떠한 내용과 특성을 지니며, 또 어떠한 권력의 효과를 창출했는지 등을 더 세밀히 추적하고 분석할 필요성을 제기하는 연구자들이 꾸준히 늘고 있다. 김종태의 『선진국의 탄생: 한국의 서구 중심 담론과 발전의 계보학』은 사회학 분야에서의 이같은 흐름을 반영하는 연구서라 할 수 있다.
저자가 올해 초 영국에서 출판한 영문저서 Eurocentrism and Development in Korea(Routledge)의 한국어판에 해당하는 『선진국의 탄생』은 발전에 관한 특정한 가정을 바탕으로 사회변화를 설명하는 기존의 발전사회학 연구와는 달리 발전에 대한 당대의 이해를 사회학적 분석의 대상으로 삼는다. 본문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제1부는 문명 담론이 조선에 등장한 19세기 말에서부터 일본 주도의 문명 담론이 널리 유포된 식민지시기를 거쳐 구미의 발전 담론이 남한에 유입된 1950년대 중·후반까지 지배적인 담론틀의 양상을 검토한다. 제2부는 그같은 발전 담론이 1960~70년대 남한사회에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이후 2000년대 후반 이명박정권에 이르기까지 그 근간은 유지하면서도 변형되어가는 과정을 ‘선진국’의 담론적 구성을 중심으로 고찰한다.
이 책은 먼저 한성순보, 한성주보, 독립신문, 조선일보 등 1880~1930년대의 주요 매체를 분석하고, 이들에 나타난 문명 담론이 서구의 물질적 힘을 인정하면서도 동양의 정신적·도덕적 질서에 더 가치를 부여했다는 점에서 탈서구중심적 성격을 지니고 있었음을 주장한다. 저자에 따르면 이는 1910년 창간된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의 문명 담론이 서구중심의 문명적 위계를 설파함으로써 조선에 대한 일본의 식민지배를 정당화한 것과 대척점에 서 있는 것이었다. 저자는 또한 이승만의 연설문과 조선일보를 위시한 신문·잡지 기사에 근거하여 산업화와 경제성장을 ‘선진/후진’의 기본 척도로 인식하는 구미의 발전 담론이 점차 영향력을 획득하기 시작한 1950년대 남한에서도 탈서구중심적 문명 담론의 헤게모니가 상당 기간 유지되었다고 강조한다.
1950년대까지 한국의 지배적 담론틀이 탈서구중심적이었다는 저자의 독창적인 주장은 1960년대 이후 발전 담론의 부상과 전개에 관한 고찰에서도 이어진다. 산업화와 경제성장을 핵심 내용으로 하는 발전 담론이 남한사회에 뿌리내린 때는 주지하다시피 박정희정권기다. 이 책은 이러한 점을 재확인하되, 한국 발전 담론의 특성을 보여주는 전형으로 ‘선진국’ 담론을 제시하고 그에 초점을 맞춘다. 저자는 박정희의 연설문과 조선일보 등의 매체 분석에 기초하여 산업화된 서구를 보편적 기준으로 상정하는 선진국 담론의 확산이 탈서구중심에서 서구중심으로의 단절적 전환을 의미하는 것이었다고 주장한다. 이어 전두환, 김영삼 및 이명박 정권 시기의 대통령 연설문과 언론보도를 중심으로 선진국 담론이 어떻게 남한사회에서 지속적으로 지배력을 행사해왔는지를 살펴본다.
전술한 바와 같이 발전의 ‘블랙박스’를 열기 위한 시도가 아직까지 미흡한 우리 학계와 지성계의 상황에서 한국 발전 담론의 역사적 계보를 추적하고자 한 『선진국의 탄생』의 출간은 반가운 일임에 틀림없다. 다만, 제시된 분석이 지닌 한계들로 인해 책이 지닌 잠재적인 학술적 가치가 온전히 발현되지 못하는 점은 상당한 아쉬움으로 남는다.
우선 담론 분석 대상의 문제를 들 수 있다. 한 세기가 넘는 시기를 다루는 연구인 만큼 선별된 신문·잡지와 대통령 연설문에 분석을 집중하는 것은 큰 결함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메이지유신의 영향을 받은 대한제국의 식산흥업(殖産興業) 정책, 물산장려운동 등 1920~30년대의 실력양성운동, 사회주의운동의 대두, 중일전쟁 이후 식민지 공업화의 본격화와 총동원체제 구축, 많은 조선인이 거주했던 만주국의 국가주도 경제개발, 해방 정국의 경제건설 관련 논의 등 한국 발전 담론의 기원을 논함에 있어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지점들이 제대로 다뤄지지 않은 것은 의외다. 『사상계』를 비롯한 1950년대 남한 지성계의 근대화에 대한 강한 열망, 이승만과 장면 정권의 경제개발계획 수립 논의 등이 충분히 검토되지 않은 것도 그러하다.
이들에 대한 선행연구는 1950년대까지 한국의 지배적 담론 틀이 동양의 정신적·도덕적 질서를 서구적 산업화보다 우위에 있는 것으로 파악했고 따라서 탈서구중심적이었다는 저자의 주장과는 다른 해석을 제공한다. 이 연구들은 또 박정희정권 시기 발전 담론의 역사적 기반을 보여줌으로써 이를 이전 시기 담론으로부터의 단절로 규정하는 저자의 논리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한다. 더욱이 정신문명과 물질문명을 분리하고 전자를 강조한다고 해서 탈서구중심적이라 단정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한 분리는 후자와 이를 지탱하는 힘의 논리를 용인하는 것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산업화의 추진을 곧 서구중심적 지향의 강화로 등치시키는 것도 곤란하다. 사실 굳이 따지자면 미국을 문명의 이상으로 삼았던 이승만이 강한 동도서기(東道西器)적 입장을 지녔던 박정희보다 더 서구중심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 외에 미국발 발전 담론의 지구적 확산을 강조하고 있음에도 그러한 담론이 미국 국제협조처(ICA)의 기술원조 프로그램이나 주한미공보원(USIS)의 활동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남한사회에 어떻게 전파되었고 또 번역·변형되었는지에 대해 별다른 언급이 없는 것도 아쉽다. 발전에 관한 특정한 이해에 인식적 권위를 부여하는 남한의 지식/권력 레짐이 어떠한 모습을 띠었는지 살펴보지 못한 것도 마찬가지다. 마지막으로 군사독재에 저항한 민주화운동 세력과 이들이 주축이 된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발전에 관한 인식을 공백으로 비워둔 채 전두환, 김영삼과 이명박 정권 시기만을 다룬 것도 한국의 발전 담론을 좀더 비판적으로 해부하는 데 제약이 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여러 문제와 논쟁점에도 불구하고 한국 발전 담론의 형성, 전개와 그 특성을 긴 호흡으로 조망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이 책의 의의를 높이 평가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