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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마강래 『지방분권이 지방을 망친다』, 개마고원 2018

균형발전론의 귀환

 

 

이일영 李日榮

한신대 사회혁신경영대학원장 ilee@h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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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정부가 3년 차에 접어들며 정책의제를 전환하고 있다. 정권 출범 시의 과도한 자신감은 거둬들이고 가시적 성과를 내기 위한 정책들로 관심을 돌렸다. 그렇게 해서 꺼낸 카드 중의 하나가 ‘균형발전’이다.

정부는 설 연휴를 앞두고 국가균형발전 명목으로 24조원 규모의 국책사업에 예비타당성조사(예타)를 면제하기로 발표했다. 야당·언론·시민사회의 이런저런 비판이 있었지만, 일단 얼마간의 성과는 거둔 것 같다. 그간 동네북이던 최저임금과 소득주도성장 정책으로부터 관심을 분산하고, 수혜지역에서는 우호적 분위기를 이끌어냈다. 문재인정부는 ‘균형발전’의 이름으로 인프라 투자 프로젝트를 꺼내들었다. 이는 아마 후일 문재인정부를 대표하는 정책의 하나로 기억될 것이다. 그간 성장지상주의로 일관하던 보수언론이나 야당은 대규모 경기부양을 비판하는 모순을 보이고 있다. 시민사회가 토건경제를 비판하는 것은 그럴 만하다. 그러나 사람과 복지에 투자하자는 구호만으로는 지방소멸의 위기감을 겪는 주민들에게는 호소력이 떨어진다.

이러한 점에서 『지방분권이 지방을 망친다: 지방분권의 함정, 균형발전의 역설』은 문재인정부의 ‘균형발전’에 대한 비판과 대안의 전범이 될 만하다고 본다. 저자는 현실주의적 공간전략을 추구하는 효율적 균형론자라고 부름직하다. 평자 역시 그러한 관점의 상당 부분을 지지한다. 우선 저자가 펼치는 주장을 따라가보자.

저자는 확신에 찬 어조로 책을 시작한다. “연방제에 버금가는 지방분권! (…) 이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 머릿속을 맴맴 도는 말이 있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 (…) 가난한 도시를 더욱 가난하게 하고, 심지어는 망하게 만들기까지 할 수 있다.”(5면) 그리고 주장하는 바를 딱 두 문장으로 요약하겠다고 말한다. “지방분권, 지금 이 상태로는 안 된다! 권한을 받을 공간단위를 먼저 조정한 후 분권이 진행되어야 한다!”(7면)

‘지방분권이 지방을 망친다’라는 제목이 저자의 확신을 잘 드러내주는 것처럼, 책 속의 소제목들도 그 자체로 선명한 주장을 펼치고 있다. 현실을 진단하는 1부는 세개의 장으로 구성되는데, 그 제목이 ‘지방분권은 지방을 살릴 수 없다’이다. 1장 ‘지방분권이 지방을 살릴 수 있을까’에서는, 현재의 226개 기초지자체 사이에 격차가 너무 크기 때문에 재정분권이 국토 전반에 빈익빈 부익부를 심화한다는 주장이 담겨 있다. 이어 2장은 ‘지방분권은 불평등을 키운다’이다. 몇가지 데이터를 통해 지금까지 지방 중소도시들이 더욱 가난해져왔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현재 조건에서 지방세를 확대하고 국세를 축소하는 재정분권화는 지금까지의 격차를 더 확대시킬 것이라고 한다. 3장에서는 ‘일본의 지방분권은 균형발전을 위한 게 아니었다’며 일본의 사례를 제시한다.

저자의 대안을 제시한 2부의 제목은 ‘균형발전, 어떻게 할 것인가’이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4장 제목을 ‘100년 묵은 행정구역, 다시 설계하자’로 잡았다. 조선시대부터 행정구역 체계가 거의 변하지 않았다는 점, 1995년 단체장 직접선거 이후 행정구역 개편이 어려워졌다는 점을 지적한다. 5장 제목은 ‘국토를 도시 중심으로 뭉치고 연결해야 한다’이다. 전세계적으로 대도시권화라는 메가트렌드가 진행 중이고 국토 전체를 하나의 거대도시, 즉 메갈로폴리스로 바꾸는 형태로 가져가야 한다는 것이다. 6장에서는 ‘지방을 살리기 위한 세 가지 공간전략’을 말한다. 세가지 전략은 ‘광역적 시각을 가져야 한다!’ ‘초광역권 내에서 뭉치고 연결해야 한다!’ ‘거점을 중심으로 연계협력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이다. 요지는 수도권 2500만명, 부울경권(부산-울산-경남) 800만명, 대경권(대구-경북) 510만명, 호남권 510만명, 충청권 550만명 규모의 초광역 지자체를 결성하고 중앙정부의 권한을 이양하자는 것이다. 초광역 지자체는 압축과 연계전략을 행사하고 그 내부 격차는 상생발전 프로젝트로 축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 몇가지 논평을 해보자. 저자의 논지는 자신감에 차 있으며 현실을 꿰뚫는 명료함이 있다. 왜 그럴까? 저자가 도시계획학 연구자라는 장점이 크게 작용하는 것 같다. 도시는 근대로 향하는 운명 같은 존재였고 탈근대로의 여정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도시의 관점에서 보면 글로벌화, 저성장, 4차산업혁명, 인구전환 같은 메가트렌드를 더 민감하게 포착할 수 있다.

대세를 거스르는 정책이나 계획은 성공하기 어렵다. 저자가 주장하는 공간압축은 피할 수 없는 대세라 할 수 있다. 초광역권 중심의 압축 전략은 노무현정부, 이명박정부 때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형성된 흐름이기도 하다. 박근혜정부가 소지역주의로 회귀한 것이나 문재인정부가 공간 규모에 대해 무관심한 것은 트렌드를 보는 안목에서 아쉬운 대목이었다. 저자의 지역공간 문제에 대한 진단은 탁월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현실적 대안이 나올 수 있을까? 저자는 ‘지방의 대도시권’을 키우는 것이 필요하다고 한다. ‘행정구역 통합’과 ‘거점개발’만이 마지막 카드라고 한다. 그런데 이를 마지막 카드로 상정하는 것이 적절한가? 이 카드가 현실에서 작동할 수 있을까? 가능하다 하더라도 문제가 얼마나 해결될 수 있을까?

공간 차원의 관점은 분권 전략을 구체화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저자 역시 초광역권 지자체 결성의 필요성과 함께 행정구역 개편의 어려움을 이야기하고 있다. 단체장 선거 이후 형성된 지방 관료(단체장과 공무원)들의 이해관계, 깊어진 지역 간 감정의 골, 풀뿌리 차원을 중심으로 한 분권 논의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조건들을 모두 고려해 다시 생각해보자. 초광역 차원의 공간압축은 필요한가? 그렇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지방 전체가 무너진다. 그러면 전국을 초광역 지자체로 개편하는 것은 가능할까? 당장은 어려울 것 같다. 저자가 상정한 다섯개 초광역 권역의 사정은 각기 다르다. 수도권을 하나의 행정권역으로 묶는 것이 적절한가에 대해서는 다른 생각이 있을 수 있다. 권역 내부의 연결과 협력을 행하는 것도 여러 측면에서 접근해야 할 리더십과 권력의 문제이다.

‘균형발전’은 다양한 범위의 지역 간 문제이며, 국가 안에서의 중앙-지방 간 문제이고, 세계체제 차원의 문제이기도 하다. 문제를 푸는 실마리를 초광역 지역계획으로만 설정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 공간구조를 규정하는 것은 체제 전반의 작동방식이다. 높은 산업화 수준과 편중된 공간 배치는 산업체제의 특징이다. 기존 정치엘리트의 경쟁과 협상에 의한 제도적 지속은 정치체제의 특징이다. 남북 간 적대 속에서 갖가지 정치적·경제적 왜곡은 공고해진 체제적 요소가 되었다. 다차원의 현실에 대한 ‘체제’적 인식과 대응이 필요하다.

‘체제’적 인식이란 현실의 문제를 제대로 풀기 위한 것이다. 공연히 문제를 애매모호하고 복잡하게 만들자는 것이 아니다. 가장 효과적인 체제혁신 전략을 구사하려면 전체적이고 종합적인 인식이 필요하다. 어떤 국면에서는 행정체계 개편 방안을 제기하는 것이 적절할 수도 있다. 그보다 먼저 중앙정부가 앞장서서 도농복합의 도시연합 모델을 실험하는 것이 효과적일 수도 있다. 또 남북이 함께 혁신과 공유를 실험하는 스마트 세계도시를 건설하는 것도 꿈꿔볼 수 있다. 체제 전체를 개선하는 현실적 방안을 찾고 배치하는 것이 중요하다. 세계체제, 분단체제, 국가체제는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전체를 이루고 있다. 도시전략은 체제를 변화시키는 수단이다. 어떤 수단을 선택할지는 체제를 누가 어떻게 변화시킬지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