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창작과비평

정기구독 회원 전용 콘텐츠

『창작과비평』을 정기구독하시면 모든 글의 전문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구독 중이신 회원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소설

 

 

성석제 成碩濟

1960년 경북 상주 출생. 소설집 『그곳에는 어처구니들이 산다』로 작품활동 시작.

소설집 『내 인생의 마지막 4.5초』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지금 행복해』 『믜리도 괴리도 업시』, 장편소설 『왕을 찾아서』 『투명인간』 『왕은 안녕하시다』 등이 있음.

songsokze@hanmail.net

 

 

조정의 기술

 

 

아무런 설명도 없이 한시간을 연착한 미국 국적 항공사의 비행기에서 내려 워싱턴 덜레스 국제공항의 입국장으로 나갔을 때 내 이름이 적힌 피켓을 들고 있어야 할 ‘코디’, 곧 운전기사와 통역, 가이드를 겸한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서울에서 받아온 번호로 서너차례 전화를 걸었지만 통화연결음이 울리자마자 ‘지금은 전화를 받을 수 없으니 용건이 있으면 메시지를 남겨주세요, 좋은 하루!’라는 인사말이 흘러나올 뿐이었다.

“지금 우리한테 불리한 판세를 완전히 뒤집어엎고 대표님을 확고한 당선권에 올려놓을 전문가는 그분밖에 없어요. 이선배, 이번에 그분 만나면 사생결단하고 붙들어서 우리 편으로 끌고 와야 돼요.”

명색이 원내 제3당 대표이자 지지율 3위를 달리고 있는 대선주자의 비서실장인 김윤기가 한 말이었다. 그가 말한 ‘전문가’의 연락처가 있긴 했지만 코디를 통하지 않고 바로 연락을 하기도 어려웠다. 한국은 자정 가까운 시각이라 김윤기와 통화가 된다 해도 그가 해줄 일은 별로 없었고 그거 하나 혼자 해결 못하고 이 시각에 전화를 해대느냐고 핀잔이나 들을 가능성이 높았다.

입국장에서 미아처럼 방치된 채 삼십분이 지나자 머릿속에서 쐐애액, 하고 전투기가 공격대형으로 공기를 가르는 것 같은 소리가 났다. 워싱턴으로 오기 전 이틀 동안 밤을 새우다시피 했는데 비행기 안에서도 잠을 자지 못했다. 잠을 재우지 않는 고문에 시달린 사람이 이럴까 싶었다.

구개월 전 엄청난 대중적 인기를 등에 업고 정치 신인으로는 파격적으로 원내 제3당의 대표로 공식 추대된 손의선이 장악한 당내 기구는 당정책연구원 하나뿐이었다. 그나마 대부분의 조직이 비어 있었다. 김윤기가 내게 부원장 일을 맡아달라고 하면서 “사무총장이 겸임하는 원장은 어차피 병풍 역할만 할 것이고 정책개발, 여론조사, 선거전략 입안 같은 핵심 실무는 선배가 다 하는 것”이라고 했으나 문제는 그 핵심 실무를 같이 할 사람이 몇 없다는 것이었다. 원내대표를 비롯한 당직자들과 의원들은 대선과 관련된 일에는 얼렁뚱땅 책임 회피로 일관하고 있었고 여차하면 손의선이 아닌 당 바깥의 다른 말로 갈아타려고 한다는 게 내 눈에도 뻔히 보였다.

강의나 연구 등 대학 안에서의 본업보다는 방송 출연, 칼럼 기고, 대중강연 등 바깥에서의 잦은 활동으로 ‘폴리페서’라는 비난을 받다가 결국 한 정당의 정책연구원으로 자리를 옮긴 내가 애초에 기대한 역할을 할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연구실까지 찾아와 머리를 숙이며 자신의 당으로 와달라 간청했던 손대표나 손대표의 복심인 김윤기는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조차 하지 않았다. 오히려 악화된 여론과 지지율이 여론동향 조사를 맡고 있는 내 책임이기라도 한 듯 ‘일 좀 제대로 하라’는 압박은 여러차례 받았다.

손의선은 국내 최대 유기농 식품회사의 최고경영자이자 오너였으며 미국 명문대학의 철학박사 학위까지 가진, 김윤기의 말대로라면 ‘한국정치의 마지막 희망이자 빛나는 미래’였다. 그는 젊은 시절 ‘한양 손씨 12대 만석꾼’ 집안 대대로 물려 내려오는 거대한 농지를 기반으로 식품회사를 세웠고, 친환경 농업과 연계된 고부가가치 식품과 영유아용 식품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그의 회사는 안전성을 최우선으로 하는 품질관리와 윤리경영으로 소비자들에게 신뢰를 얻었고 높은 연봉과 최고의 복지시책으로 취준생들이 가장 선망하는 ‘꿈의 직장’으로 꼽히기도 했다. 조용하면서도 신망이 높은 사업가로 살아가던 그는 돌연히 정치판에 뛰어들었고, 초반에 신선하고 깨끗한 이미지로 예닐곱명의 대선 후보군 가운데 지지율 1위를 기록하기도 했지만 대선을 반년도 채 앞두지 않은 지금에는 지지율이 반토막이 났다. 시급한 정치 현안과 관련된 몇차례의 말실수가 현실을 모르는 ‘글방도련님’이라는 낙인을 찍게 만들었고 현실적으로는 지지율을 득표율까지 연결할 전략과 조직이 부실하다는 것이 문제였다. 가만히 있다가는 손의선이라는 존재 자체가 아예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힐 수도 있는 상황에서 긴급조치로 강구된 것이 미국에 있는 ‘선거 전문가’라는 자의 영입이었다.

결국 공항 앞에 서 있는 택시를 잡아탔다. 일분일초라도 빨리 잠을 자야 할 것 같아서였다. 몇주 전에 의사가 처방해준 수면제가 있었지만 약학대학원에 다니는 딸이 향정신성 약물의 부작용에 대해 여러차례 경고를 하는 통에 한번도 먹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일은 시차나 수면 부족으로 판단을 잘못하거나 실수를 하면 안 되는 중차대한 ‘사명’이었다. 국내에서는 극소수의 사람들만 알고 있다는 ‘선거 불패의 킹메이커’를 직접 만나 우리에게는 없는 그의 전문성과 첨단기술을 심층 평가하고 그 결과에 따라 손의선의 대선캠프에 신속하게 합류하도록 하는 게 내 임무였다.

공항에서 출발한 택시가 삼십여분 만에 다다른 워싱턴의 도심 거리는 오가는 사람이 별로 없이 한산했다. 차는 얼마 안 있어 오벨리스크 형태의 워싱턴 기념탑을 지나쳤고 그로부터 십분이 되지 않아 호텔에 도착했다. 방으로 올라와서 보니 여전히 워싱턴 기념탑이 바라다보였다. 워싱턴에서는 그보다 더 높은 건물을 지을 수 없다는 법률이 제정돼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났다.

워싱턴 기념탑만 높은 게 아니었다. 옷을 벗고 침대에 몸을 눕히려다보니 침대가 암벽 등반하는 자세를 취해야 올라갈 수 있을 정도로 꽤 높았다. 화장실의 변기 또한 ‘아메리칸 스탠더드’라면서 높기는 마찬가지였다. 미국에 십여차례 왔지만 한번도 의식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작고 길쭉한 수면제 한알을 먹고 침대에 눕자마자 잠이 쏟아졌다. 선입관 때문이지 싶으면서도 약발 하나는 마약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그런 참에 휴대전화의 몸통이 거세게 떨렸다.

“저는 아까 덜레스 에어포트로 마중을 나갔던 코오디네이터입니다. 오늘 디씨 시내에서 독립기념일 관련하여 여러 행사가 있었는데 그 때문에 차가 매우 막혀서, 유감스럽게도 약속시간에 늦었습니다. 제가 막 도착하니까 택시를 타고 떠나고 계시더군요.”

코디가 약속을 어긴 것도 모자라 거짓말까지 하는데, 그마저도 그리 능숙하지 않은 듯했다.

“아, 내가 지금 호텔에 막 체크인한 참이에요. 너무 피곤하고 졸려서 그러니까 앞으로 네시간 뒤에 호텔 로비에서 봅시다.”

“네, 좋습니다, 원장님. 그런데 저는, 지금 곧바로 원장님과 추후 스케줄에 관해 논의를 끝마치고서 다음 어포인먼트에 다녀와야 하거든요.”

자신이 미국 시민이라는 것을 강조하듯 [t] 발음이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약했다.

“그건 너무 일방적인 이야기 아닙니까? 제시간에 만나러 오지 않은 건 그쪽인데 이제 와서 자기 편한 대로 하겠다고요? 그걸 내가 왜 들어줘야 합니까? 이런 식이면 다른 코디하고 일하는 걸 고려해볼 수밖에 없어요. 그리고 뭘 잘못 알고 있는 모양인데 저는 원장이 아니고 부원장이에요.”

“저는 이 일 때문에 맡고 있던 여러 스케줄을 접었습니다. 이 일은 저보다는 부원장님한테 중요한 일이죠? 저 대신 다른 코오디네이터를 구하시려면 시간과 비용이 훨씬 더 많이 드실 텐데요.”

운전과 길 안내나 할 가이드가 스스로를 ‘조정자’(coordinator)로 거듭 칭하는 데 짜증이 치솟았다.

“알았어요, 맘대로 하세요. 시간에 늦으면서 전화를 안 받은 까닭은 또 뭐요? 계약조건을 먼저 위배한 것도 그쪽이에요. 내가 불편을 겪은 거나 예정에 없던 비용이 든 거에 대해서 사후에 청구를 하든 책임을 묻든 할 거요.”

“저는 평소에 셀폰 두대를 가지고 다니지만 운전 중에는 어떤 전화도 받지 않습니다. 또한 저는 의도적으로 계약에 위배되는 행위를 한 적이 없고 불가피한 트래픽으로 늦은 것이며 이를 충분히 입증할 수 있습니다. 매우 다급하고 갑작스러운 부탁을 받고 멀리서 왔지만 필요없다고 하시면 다른 사람과 일을 하러 가겠습니다. 덧붙여 말씀드리자면 다른 코오디네이터를 만나게 되실 경우에 제가 면밀하게 준비해둔 것은 포기하셔야 할 것이고 추가비용 또한 만만치 않을 것입니다.”

“도대체 그쪽에서 나를 위해 뭘 미리 준비했는데요?”

“본국에 알아보시면 됩니다.”

한국에서 치르는 대선에 외국의 선거 전문 기술자를 들여다 공작을 하는 것이 불법인지 합법인지 자세히 따져보지는 않았다. 김윤기가 알아서 했을 것이라 여겨서였다. 어쨌든 대놓고 자랑할 만한 일이 아니라는 것은 자명했다. 상대 역시 그 정도는 충분히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당신에게는 일말의 양심이나 책임감이라는 게 없소?”

더 무슨 욕을 하려고 해도 단어가 생각이 나지 않았다. 폭포수처럼 잠이 쏟아져 내렸다. 나는 전화를 끊자마자 오래도록 입에 올리지 않던 욕설을 중얼대면서 잠에 곯아떨어졌다.

네시간쯤 지난 후 나는 잠에서 깼다. 아주 깊이 자고 일어난 것처럼 개운했다. 현대의 의약기술이 놀랍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반드시 무슨 부작용이 있지 싶은데 그게 무엇인지 모른다는 데 대한 불안감이 엄습했다.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니 그새 예닐곱통의 전화가 와 있었다. 김윤기의 것만 세통이었다. 김윤기는 보안성이 뛰어난 메신저로 문자도 보냈는데 ‘이선배, 제발 전화 좀 받으십쇼’에서 ‘그 일 완벽하게 성사시키기 전에는 당에 나타나지도 마세요. 전화 제때 잘 받으시고’로 바뀌고 마지막에는 ‘이선배, 정말 이러기요? 아 정말, 그분 전화 좀 받으라니까!’로 끝났다.

김윤기는 내가 군대를 다녀와 복학했을 때 만난 동아리 신입 후배였다. 나를 보자마자 제가 태어나 그때까지 만난 사람 가운데 나를 가장 존경하게 되었다면서 굳이 저 혼자서만 나를 ‘형’이 아닌 ‘선배’로 부르겠다고 고집하다가—형과 선배는 존경의 정도가 다르다는 독특한 해석에 따라—다른 후배들에게 얻어터지기도 했다. 공자의 ‘정치〔政〕는 바르게〔正〕 하는 것’이라는 금언대로 정도를 걸어 나라의 미래와 역사를 바꾸겠다는 갸륵한 꿈을 가지고 정치권에 뛰어들었지만 그놈의 순진한 고집 때문에 눈에 띄는 결과를 보여주지는 못했다. 수삼년 전에야 땅속 깊은 곳에 숨어 있던 ‘다이아몬드 원석처럼 고결하고 희유한 정치적 자원’인 손의선을 발견하고 그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걸어보기로 작심했다. 그 뒤 일년 넘게 그의 집 앞에 가서 문안인사를 올리고 종일 쫓아다니며 설득한 끝에 결국 정치판으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으며 마침내 실세 비서실장이 되었다.

나는 김윤기에게 ‘알았네’라고 간단히 회신한 뒤 휴대전화의 최신 수신목록 가운데 ‘그분’으로 짐작되는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그는 이미 내가 투숙한 호텔 로비에 와 있다고 했고 내가 준비되는 대로 만나자고 했다. 첫 통화 때와 달리 그의 어조는 차분하고 예의가 발랐다.

“첫인사가 좀 거칠었지요? 대니얼 조라고 합니다.”

호텔 로비의 스타벅스에서 만난 남자는 값비싼 맞춤 양복에 실크 셔츠를 입고 있었다. 딱 맞는 옷에 감싸인 몸은 프로 운동선수처럼 탄탄해 보였고, 특히 가슴 쪽 몸통이 보통 사람보다 월등하게 굵어 보이는 게 인상적이었다.

“초대면에 무슨 인적성 검사라도 하시려던 건가요? 이영우라고 합니다.”

“그렇게 생각하실 줄 알았습니다. 보안문제 때문에 코오디네이터를 제가 소개해드리기로 했는데 찾다보니 믿을 만한 사람이 없어서 직접 나왔습니다. 제가 부원장님 얼굴도 익힐 겸 부원장님에 대해 사전조사를 좀 했습니다. 통계학을 전공하시고 대학교수로 오래 계셔서 시간관념이 철저하실 줄 알았죠.”

나는 “제대로 조사를 했다면 약속시간부터 똑바로 지켰어야죠” 하는 말을 삼키고 대신 “지금 말씀하신 성함은 본명인가요?” 하고 물었다.

“편한 대로 부르시면 됩니다. 대니얼이라고 하셔도 되고 어메리칸 스타일로 댄, 대니라고 부르셔도 됩니다.”

그는 탁자 위에 두꺼운 가죽수첩을 펼쳤다. 한국에서는 골동품처럼 보기 힘들어진, 생후 10개월 된 송아지 가죽으로 만들었다는 고가의 다이어리로 「섹스 앤드 더 시티」라는 미국 드라마에도 등장한 것이었다. 그 안의 일정표에는 한글, 영어, 한자, 숫자가 암호처럼 빼곡하게 적혀 있었고 여러가지 빛깔의 크고 작은 메모지가 붙어 있었다. 그는 가운뎃손가락처럼 굵직한 워터맨 만년필의 뚜껑을 돌려 뺀 뒤 사격 준비를 마친 사수처럼 내게 질문을 던졌다.

“권력과 시간의 관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말씀해보세요. 고견을 경청하겠습니다.”

내 비꼬는 어투에도 그의 흑갈색 눈동자는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한마디로 하면 권력은 사람을 기다리게 할 수 있는 힘이죠. 일반 사람은 권력자를 만나려면 무조건 기다려야 합니다. 권력자에게는 중요한 일이 많은데 권력자를 만나려는 사람은 스스로를 하찮게 생각하고 그를 방해한다고 생각하죠. 권력자는 그런 사람들의 생각을 잘 알고 있고 적재적소에서 활용합니다. 권력자의 시계는 일반인의 시계보다 훨씬 천천히 가죠. 같은 시간이라도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고 더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겁니다. 만일 부원장님의 어린 시절에 아버님이 다른 사람을 오래도록 기다리게 하는 것을 자주 보았다면 그 사실이 평생 부원장님의 인성을 권력적으로 만드는 데 영향을 끼쳤을 거라는 뜻입니다.”

그래, 떠들어라. 지금부터는 네 시간이니. 아주 마음껏. 나는 몸을 의자에 늘어뜨린 채 긴장을 풀었다. 의자의 좌판은 작고 등받이는 낮아서 오래 앉아 있기에 불편했다.

“다행이군요. 제게는 그런 권력적인 아버지가 없으셨으니까. 그래서 이런 쪼잔한 골샌님이 됐는지도 모르지만.”

그는 인터뷰를 하던 중에 인터뷰어 뒤에 숨어 있는 카메라를 발견한 사람처럼 미소를 지었다.

“골샌님이라는 표현은, 오랜만에 들어봅니다만, 자기비하적인 발언으로 상대를 안심시키려는 행동심리학의 사교술에서 나온 말씀 같습니다. 암튼 제 말의 요점은 권력을 쥐려고 하면 권력에 의해 지배되는 사람이 아닌, 권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관점에서 권력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 그게 공항에 마중 나올 때 시간에 한참 늦은 것과 무슨 상관입니까? 초대면부터 사람 욕보이자는 것도 아니고.”

나는 좀더 거칠어질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처음엔 제가 부원장님을 기다리게 했지만, 다음에는 부원장님께서 저를 네시간 동안 기다리게 하셨죠.”

그는 자신의 팔목에 있는 커다란 금제 시계를 보았다. 나는 수면제와 수면 부족의 협공으로 정신없이 잠에 곯아떨어졌다는 말을 굳이 하지는 않았다.

“오늘 저는 저보다도 권력적인 관점에서 시간을 편하고 자유롭게 쓰는 분을 아주아주 오랜만에 만났습니다. 그래서 스페셜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다음 어포인먼트까지 취소했습니다.”

결국 그는 자신이 들인 시간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억지를 쓰는 데는 모르는 척하는 게 상책이었다.

“일정 조정을 맡고 계신 분의 사적인 사정까지 제가 배려해드려야 될까요?”

“디씨 중심부는 한국의 평택 미군기지만 합니다. 평택 미군기지는 전세계 단일 미군기지 가운데 가장 큰 캠프죠. 시공간적으로, 또 전략적으로 보면 디씨도 거대한 군사기지와 같은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디씨에서 밥 먹고 사는 사람치고 한가하고 평범한 사람은 아무도 없죠. 같은 시간에 중요하고 많은 일을 빠르게 할 수 있는 곳입니다. 전세계 칠십오억 인구의 명운이 좌우되는 디씨의 도산검림에서 느긋하게 낮잠을 주무셨다니 저는 바로 그 통 큰 풍모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의 진의가 어떻든 약속시간 어긴 것 가지고 더이상 툭탁거릴 이유도 그럴 생각도 없었다. 수면제 한알 덕분에 난데없이 대범한 영웅호걸의 면모를 보인 셈이었다.

“이미 본국에서 프러포즈를 받으셨다니까 세부적으로 궁금하신 점이 있으시다면 제가 아는 범위에서 답해드리지요. 워싱턴에는 한국 언론사 특파원들이 많고 비행기만 해도 수많은 사람들 이목이 있어서, 이번 사안에 전권을 가지고 있는 대표 비서실장이 직접 오지는 못했습니다.”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는 물었다.

“손대표께서는 왜 대권을 잡으려 하십니까?”

그가 말끝을 길게 끄는 바람에 나는 뒷말이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 하지만 그는 내 눈을 빤히 바라볼 뿐이었다.

“전 정치인이 아니라 잘은 모릅니다. 개인적인 동기나 열망까지는 알 수가 없죠.”

“대선 승리를 도와달라는 것이라면 제 시간과 능력을 베팅할 만한 분인지 속속들이 알아야겠는데요.”

“베팅이 오고 가는 현금만을 의미하는 건 아니겠지요?”

내 양복 윗도리 양쪽 안주머니에는 100달러짜리로 1만 달러가 얌전하게 들어 있었다. 그와의 접촉이 성공적이라고 판단되고 선거전략 제안서를 받은 뒤 비밀 업무협약(MOU)이라도 맺게 되면 전체 보수의 일부를 지급하도록 되어 있었다. 이어 본계약을 하게 될 경우 손대표가 최대지분을 갖고 있는 ‘착한 기업’의 미국 지사에서 나오는 달러가 그에게 건네질 것이었다. 물론 눈도 입도 달리지 않은 현금으로.

“대선에서 승리할 확률이 낮으면 낮을수록, 또 권력에 대한 열망이 크면 클수록, 승리를 했을 경우에 몸값을 더 많이 받을 수가 있겠지요. 하지만 저는 돈보다도 성취와 승리의 기쁨을 더 큰 보수로 생각합니다.”

“저는 숫자와 통계를 다뤄온 사람이라 인간 내면의 추상적이고 감성적인 가치를 정량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믿습니다. 직감이나 화려한 언변보다는 수치를 신뢰하죠.”

“전공을 하셨으니 저보다 훨씬 잘 아시겠지만 숫자에는 그 숫자를 만들고 해석한 사람이 반드시 뒤따르게 되어 있죠. 숫자는 결국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어떤 의도적인 영향을 주기 위해 만들어낸 것이니까요. 예컨대 제가 최근에 읽은 옥스퍼드대의 심리학자 찰스 스펜스의 책에는, 어떤 와인에 대해 값이 비싸다는 정보를 전달받는 것만으로도 뇌의 보상중추에서 혈류량이 증가했다는 연구결과가 나와 있더군요.”

“저는 개인적인 선입관에 최근 각광받는 인지과학이나 뇌과학, 마케팅 이론을 결합시킨 유사과학적인 연구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런 연구라는 건 대개 실험집단이나 통제집단이 자신과 가까운 사람들이거나 명문대생들인 경우가 많지요. 사람들은 연구자나 표본집단의 명망성 때문에 결과를 쉽게 믿어버리고요.”

“꽤나 입장이 분명하시군요. 하지만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유권자들은 수학적이고 과학적인 정보나 자료, 재미없는 수치보다는 실체가 없는 공약이나 대세론, 심지어 가짜뉴스를 더 믿고 있죠. 여론이란 바람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기 쉽습니다. 그런 바람을 만들어내는 것이 저 같은 사람의 일이고요.”

“그래요? 저도 질문을 좀 드리고 싶군요. 지금 하고 계신 일은 어떤 내적 동기로 하게 되셨습니까? 성취의 기쁨이라는 것이 달러로는 어떻게 환산될까요?”

“저를 한낱 정상배(政商輩)로 취급하려는 사람이 드물게 있었습니다만 저는 전혀 개의치 않았습니다.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한다 해도 사슴이 말로 변하는 건 아니니까요. 좀 긴 이야기가 될지도 모르니 자리를 옮기는 게 어떻겠습니까?”

내가 동의하자 대니얼 조가 나를 데리고 간 곳은 워싱턴 중심부에 있는 백이십년 전통의 프랑스 식당이었다. 점심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빈자리가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사람이 넘쳐났다. 대니얼 조는 이미 약속이라도 된 듯 맨 안쪽 자리로 걸어가더니 식탁에서 ‘예약석’이라는 표지를 집어 들고는 지배인을 불러서 50달러짜리 지폐와 함께 건네주었다. 입구를 제외하고는 와인 셀러로 사방이 둘러쳐진 그 자리는 불필요한 사람과 마주칠 염려가 없는 특별석이었다.

“오브라이언이라는 저 친구, 이름대로 아일랜드계입니다. 아들이라는 뜻의 ‘O’가 이름의 맨 앞에 온 건 모계가 아일랜드계인 버락 오바마 대통령하고 같죠. 도널드 트럼프는 부계로는 독일계이고 모계로는 스코틀랜드계입니다. 모계로는 두 대통령이 연관이 있는 셈이죠. 게다가 저 친구는 전 인구의 5퍼센트 정도만 한다는 오른쪽 가르마를 하고 있네요. 오른쪽 가르마를 한 사람이 왼쪽 가르마를 한 사람보다 유명인사가 될 확률이 훨씬 높지요.”

나는 두 손으로 내 머리를 흩뜨리며 물었다.

“미국 같은 다인종국가에서도 저런 소수인종이 눈에 확 띄는 모양이군요.”

“관심이 있으면 사람들의 외모만 가지고도 정치적·심리적 성향을 쉽게 추측해낼 수 있습니다. 몽골반점 같은 인종적 표시가 이름이든 외모 어디에든 남아 있으니까요. 일례로 유대인은 미국 전체 인구의 2, 3퍼센트에 불과하지만 특정분야, 즉 학문·금융·언론·법률과 예술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엄청나지요. 놈 촘스키, 폴 크루그먼, 조지프 퓰리처, 마크 저커버그, 마커스 골드먼, 밀턴 프리드먼, 앨런 그린스펀, 벤 버냉키, 재닛 옐런, 스티븐 스필버그 등등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제가 한때 좋아했던 가수 폴 싸이먼도 있죠. 아까 오다보니 어느 자그마한 극장에서 공연이 있는 모양인데 바깥의 전광판에다 표가 하루 만에 매진됐다고 자랑해놨더군요. 그러고 보니 카를 맑스나 칼 포퍼, 샤갈, 카프카, 프로이트, 아인슈타인, 비트겐슈타인도 유대인이네요.”

공통으로 아는 것에 관해 이야기를 하는 중에 약간의 친밀감이 생겼다.

“그들 중 특히 법조계, 정계에 있는 사람들이 이 식당의 단골입니다. 부스러기 기사를 주우러 다니는 하이에나 기자들이 자주 가는 바는 근처에 따로 있습니다. 이 자리에서는 보안을 크게 염려 안 하셔도 됩니다. 식당 주인이 로비스트 출신이라 그런 면에서는 철저하게 챙깁니다.”

그 뒤로도 그의 달변은 거침이 없었다. 역사, 문화, 정치, 사회, 경제, 외교의 모든 이슈가 그의 머릿속에 요약·정리되어 있는 것 같았다.

“부원장님은 대학 시절에 무슨 운동을 하셨나요?”

“저야 그저 백면서생이라 숨쉬기운동하고 팔운동만 했죠. 그때는 막걸리집에서 진탕 퍼마시고 돌아가면서 노래나 부르는 게 전부였으니까요.”

“손대표께서는 어떤 활동을 하셨는지 아십니까?”

“대학 시절은 모르겠지만 지금은 틈나는 대로 자전거를 타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싸이클 선수들에 견주어도 많이 처지지 않는 수준이라고 알려져 있죠. 그외에도 수영이 취미라고 합니다. 그건 왜 물으십니까?”

“미국에서 엘리트가 되느냐 마느냐 하는 것은 대체로 대학 때 판가름이 납니다. 일단 아이비리그에 속하는 명문대학을 졸업해야 하는데 거기 출신들은 성적보다는 과외활동을 더 중시하는 경향이 있죠. 스포츠는 필수고 그중에서도 필드하키처럼 남들이 많이 하지 않으면서도 협동을 필요로 하는 종목을 선택하죠. 자전거는 운동효과와 자기만족은 크겠지만 고립을 자초하는 면이 있을 것 같네요. 저는 손대표께 당장이라도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단체운동을 하시라고, 수영을 하느니 수구를 하시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한국의 수구 인구가 얼마나 되는지 잘 모르시는 모양이군요. 수구를 혼자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상대 팀도 있어야 할 거고요.”

“손대표께서 수구팀 한둘 정도는 만들거나 후원할 능력이 있지 않나요? 정말로 수구를 하시게 된다면 정치적 파급효과는 수영보다 수십, 수백 배는 더 클 겁니다. 최소한 상대가 있는 테니스나 배드민턴을 하시는 편이 낫습니다. 한국이든 미국이든 역대 대통령의 취미를 참고해보시면 금방 알 수 있을 텐데 혼자만 하는 운동을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전세계의 파워 엘리트들은 자신들과 비슷한 스포츠, 취미, 매너, 언어습관, 의사소통 능력을 가진 사람을 신입 혹은 후임으로 뽑습니다. 엘리트 사회로의 진입 후에 주변과 부드럽게 화합할 수 있는지 봐야 하니까요.”

“태어날 때부터 중상류층이 아니고 명문대도 가지 못하면 그들과 비슷한 관습과 습관, 가치관을 가질 기회가 없으니 아예 엘리트끼리의 특권층 사회에 끼어들 수 없다는 것인가요?”

“가능성이 없지는 않지만 혹독한 어려움을 감내해야겠죠. 하바드대학 졸업생의 절반이 소득 기준 상위 4퍼센트 이상의 집안 출신이라는 연구결과가 나와 있습니다. 연봉이 높고 누구나 탐낼 만한 직위는 제한되어 있고 결국 소규모 최상류계층 출신의 특권층 사회와 연결된다는 겁니다. 이렇게 해서 배타적인 사회구조가 재생산되는 게 미국사회의 특징입니다. 손대표께서도 여기서 그리 멀지 않은 조지타운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으셨으니까 잘 알고 계실 겁니다.”

“그분이 파워 엘리트가 되려고 박사학위를 받은 것은 아닙니다. 한국의 현실을 고민하다보니 철학에서 돌파구를 찾으려 했던 거죠.”

“미국의 명문대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는 사실 중 가장 중요도가 낮은 것은 철학입니다. 미국, 명문대, 박사학위 같은 게 훨씬 중요한 고려사항이죠.”

“그렇지만 한국의 대선은 한국에서 치러지지요.”

“한국 대선에서도 미국의 영향력을 감안하지 않고서는 승리할 수 없죠.”

말끝마다 미국을 앞세우고 모든 것을 권력과 돈, 계급성으로 환산하는 그가 밉살스러웠다. 나는 그가 미국에 언제부터 거주했는지, 학위를 어디서 받았는지 물었다. 그는 거리낌 없이 자신에 관해 털어놓았다.

“고등학교 때 밀리터리 스쿨로 진학했습니다. 뉴햄셔의 시골마을에 있는 군사학교였어요.”

“뉴햄프셔? 밀리터리 스쿨? 고등학교 과정에 그런 게 있습니까?”

“여기서는 뉴햄프셔를 뉴햄셔라고 하지 않으면 잘 알아듣지를 못하죠. 밀리터리 스쿨은 군대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건 아니고 상류층의 자제들이 주로 군대식, 스파르타식의 수업을 통해 절제를 배우고 미래를 준비하는 학교입니다. 도널드 트럼프도 군사학교 출신이죠. 1973년 징병제가 폐지된 이후에 미국 청년들은 정신적·도덕적·육체적으로 스스로를 단련할 중요한 기회를 놓치게 됐지요. 그 이후로 미국에서 가장 우수한 인재들이 월스트리트나 법률회사로 몰려가서 개인적인 성공과 사리사욕을 추구하는 게 일반적인 현상이 돼버렸습니다.”

“저 또한 고질적인 위장병이 규칙적인 군생활로 낫기는 했습니다만 군대가 도덕 재무장에 심신 단련까지 공짜로 시켜주었을 줄은 몰랐네요.”

주문한 음식과 함께 포도주가 날라져 오면서 잠시 우리 사이에는 침묵이 흘렀다. 와인 잔이 각자의 앞에 놓이고 2013년산 샤또 무똥 로쉴드의 코르크 마개를 제거한 소믈리에가 잔에 와인을 따라주고 간 뒤 그는 병을 들어 두 사람의 잔에 포도주를 절반쯤 차게 따랐다.

“하우스 와인을 주문하면 원래 3분의 1씩 따라주는 법인데 이 집은 소믈리에들이 좀 인색하죠. 그래서 병으로 마시는 편이 오히려 저렴합니다.”

그의 언행 하나하나에서 그 자리의 주인공 같은 자신감이 풍겨났다. 나는 압박감을 벗어나기 위해 그가 어떻게 군사학교를 가게 됐는지 물었다.

“아버지가 직업군인이었죠. 전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임지를 따라다니면서 학교에 다녔는데 언제나 군대식 규율이나 태도, 체력단련, 사고방식을 강요받았습니다. 그 때문에 초등학교 때부터 유도를 하게 됐지요. 제가 열한살 때 몸무게가 60킬로그램이 넘었습니다. 온몸에 근육이 고루 퍼져 있다가 필요할 때 튀어나와서 제 역할을 한다고 헐크라고 했습니다. 소년체전에서 금메달도 여러개 땄고 비공식적으로 23연승도 해봤습니다. 초중고생 가리지 않고요.”

그가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는 인공지능을 연상케 하는 태도에서 일변해 인간적이고 감정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대니얼은 한병에 200달러가 넘는 포도주를 두잔째 벌컥벌컥 마시는 중이었다. 그런 태도는 아무리 잘 봐줘도 중상류층 출신 같지 않았다. 밑바닥부터 치고 올라운 신흥졸부에 가까웠다.

“제가 지옥 같은 그 시절에 배운 게 두가지 있습니다. 첫째는 참는 거죠. 인내, 극기, 견뎌내기, 자신과의 싸움…… 뭐라고 개소리를 하든지 간에 그 순간을 참아내지 못하면 더 지독한 고통이 밀려온다는 걸 몸으로 깨닫게 됐지요. 내가 코치 마음에 안 든다? 그러면 운동장을 돌게 합니다. 열바퀴, 스무바퀴가 아니라 한 이삼백바퀴를 밤새 돌아야죠. 집에서는 국내 최고의 유도 코치한테 최고의 훈련을 받으면서 합숙을 하고 있겠거니 하고 모두들 발 뻗고 자는 사이에 저는 똥오줌 쌀 시간도 없이 뛰고 또 뛰고 있었죠. 한번은 새벽 다섯시에 새벽기도 가는 여학생한테 집 전화번호가 적힌 쪽지를 주면서 ‘제발 나 좀 살려달라’고 한 적이 있어요. 그걸 본 코치가 여학생 보는 앞에서 나를 개 패듯 패는데, 솔직히 전 그게 나았어요. 맞는 동안에 좀 쉴 수가 있어서요. 그러고 나서도 결국 남은 바퀴 수를 다 채워야 해서 문제였지만. 그 여학생, 코치한테 붙잡혀서 합숙소 근처로 끌려갔는데…… 지금까지도 그 여학생에 대해서는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나 때문에 인생 망쳤을 수도 있으니까. 그 이후로는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하지 않았습니다. 그 코치는 정말 개새끼였죠, 한마디로.”

“그때는 운동을 한다 하면 모두 그런 식이었나요?”

“모든 운동선수들이 그런 건 아니죠. 진짜 군인이라는 자부심을 가진 아버지와 국내 유아청소년 스포츠에서 가장 유능하고 성적 좋은 코치가 결합한 결과가 그렇다는 거죠.”

“아까 지옥 같은 그 시절에 두가지를 배웠다고 하셨는데 참는 것 말고는 뭐가 있었나요?”

“아, 죄송합니다. 두번째는, 희망이었습니다.”

“2008년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버락 오바마가 ‘변화와 희망’을 슬로건으로 해서 힐러리 클린턴을 꺾었지요. 우리 손대표께서도 ‘한국정치의 마지막 희망’이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지옥 같은 그 시절에 저는 언젠가 이 지옥의 뚜껑을 열어서 밖에 나가기만 하면 이걸 다 때려 부숴서 가루로 만들어버리겠다고 희망했지요. 그런데 그게 암만 해도 혼자만의 힘으로는 안 되겠더라고요. 이루어지지 않는 희망은 고문일 뿐이고요. 결국 타협했죠. 그 결과로 미국 사람들도 잘 모르는 미국 군사학교로 간 거예요. 뉴햄셔의 밀리터리 스쿨 학생들 중 유색인종은 저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영어 전혀 못하지, 공부 안 돼, 통조림처럼 폐쇄적인 환경, 살벌한 인종차별에 금방 포기할 줄 알았을 거예요, 아버지는. 그럼 저는 다시 아버지 밑으로 기어들어가서 유도 코치 같은 놈 만나 개만도 못한 인생을 살아야 했어요. 그럴 수야 없었죠, 죽어도.”

대니얼은 내게 왼손을 내밀었다. 그의 왼손 엄지손톱은 원래 형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뭉그러져 있었다.

“이게 그때 남은 흉터예요.”

나보다 최소한 대여섯살 아래일 그의 말투는 어느새 형이나 선배의 것처럼 바뀌었다.

“아침 일곱시 기상해서 연병장으로 뛰어나가는데 앞에 가던 놈이 내 코앞에서 일부러 기숙사 문을 닫아버리는 거예요. 두께 5인치 철문 틈에 손가락이 끼었는데 겨우 빼고 나니 엄지손톱이 반쯤 찢겨서 너덜너덜하더군요. 다른 놈이 손톱 정리를 깨끗하게 해준다고 플라이어로 제 엄지손톱을 잡아서 뿌리까지 몽땅 뜯어내버렸습니다. 그날 나 때문에 우리 반은 지각을 해서 시궁창 속으로 10야드에 한번씩 잠수하면서 2마일을 낮은 포복으로 기어가야 했어요. 그런 식으로 제 손톱이 여섯개나 뽑혔습니다. 왼손 엄지만 두번 빠져서 결국 이렇게 된 거죠. 그때 제 손가락 이렇게 만든 놈은 지금 맥퍼린 컨설팅 그룹에 파트너로 있죠. 지금도 보스턴에 가면 만나서 싱글몰트 위스키 한두잔씩 마시는 사이고. 난 그따위식의 반인간적 교육에는 반대하지만 개개인의 부족한 점을 조직성으로 극복하고 개별적인 능력 이상을 이끌어내는 군대식 규율의 장점이나 통제의 효용을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나는 그의 왼손 엄지가 마치 주인과는 별개의 자의식이라도 가진 것처럼 까딱거리는 것을 보았다. 그의 나머지 손톱은 네일숍에서 관리를 받은 듯 깨끗이 손질되어 있었는데 왼손 엄지손톱만은 일부러 그냥 둔 것 같았다.

“사춘기 청소년에게 가해지는 비인간적인 혹독한 훈련과 통제가 과연 정당화될 수 있을까요?”

“십년 전 아프리카 씨에라리온의 사내아이들은 열두살이 징집연령이었죠. 우간다에는 다섯살짜리 소년병도 있었답니다. 그 아이들은 총을 잡고 마약에 절어서 사람 손목을 절단하며 다니다가 대부분이 열다섯살이면 죽었습니다. 2차대전 당시 히틀러 유겐트 기갑사단은 열네살에서 열여덟살까지 소년들로 편제되어 있었는데 이들은……”

“군사학교 출신이나 서부 아프리카 소년병들을 일반화할 수는 없지요. 군사학교를 졸업하고 아이비리그 정치학과를 졸업하셨다고 들었는데 그 역시 일반화할 수 있는 사례는 아닌 것 같습니다.”

“사실 백인 상류층 출신 사이에서 악바리로 사는 편이 한국에서 살던 것보다 훨씬 쉬웠어요. 밀리터리 스쿨에 들어가자마자 싸우기 시작해서 단 한놈도 예외 없이 유도 기술로 무릎을 꿇리고 나서부터 비로소 인정을 받기 시작했죠. 조직의 대장이 되니까 영어는 저절로 되더라고요. 군사학교를 최우등 성적으로 졸업하고 나서는 아이비리그 대학 포함 스무군데의 대학에서 합격통지서를 받았습니다. 장학금을 최우선으로 대학을 선택했고 대학 들어가면서부터는 아버지한테서 단 한푼의 도움도 받지 않았습니다. 부잣집 아들이나 들어간다는 라크로스 운동부 주장을 지냈고 3학년 때는 총학생회장으로 선출됐죠.”

“저도 기러기 아빠였고 큰애를 캐나다의 학교에 보냈는데 그때 유학 상담하면서 한국인 최초로 하바드대학에서 총학생회장으로 뽑힌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죠. 없는 돈 싸들고 자식 유학시키던 부모들에게 희망을 준 사건이었는데 나중에는 아이비리그 대학에서 한국 출신 총학생회장이 여럿 나왔었죠. 맨 처음 총학생회장이 된 사람이 그 뒤 어떻게 됐는지는 전혀 몰랐고 후속 기사나 인터뷰를 본 적도 없었고요.”

“그때는 일부러 한국 언론과 일절 접촉을 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한국인임이 드러나는 것 자체가 싫었어요. 총학생회장이 됐다고 제 정체성을 바꿀 수도 없는 노릇이었죠. 어쨌든 저는 밑바닥에서 출발해 미국 주류사회에서 누구한테도 꿀리지 않고 살 정도는 됐지요. 지금도 한국 사람들 많이 사는 지역에는 잘 가지 않아요. 한식도 보통 미국 사람들 먹는 정도만 먹죠.”

“그런데 왜 지금은 한국의 대선에까지 깊숙이 관여하고 있습니까?”

“돈 때문이죠. 달리 이유가 있겠습니까?”

그때쯤 그는 술에 약간 취한 상태였다. 대리운전이 있는 나라도 아닌데 차를 어떻게 운전해서 갈 것인지 궁금해졌다. 선거 전문가로서의 역량을 평가받는 인터뷰를 하면서 낮술을 마셔대는 행동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나는 내심의 의문과는 다른 질문을 했다. 이미 그의 드라마틱한 인생사가 더 흥미로워진 터였다.

“졸업한 뒤에는 뭘 하셨나요? 아까 말씀하신 월스트리트로? 혹시 국회의원 보좌관이나 CIA?”

“원더링. 한국식으로 말하자면 방황을 좀 했지요.”

“방황? 어디서, 얼마나요? 왜?”

“글쎄요, 개인적인 능력과 의욕만 가지고는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없는 현실에 지쳐서 그랬다고나 할까요. 컴퓨터공학으로 석사를 받고 나서 투자은행에도 잠깐, 하원의원 보좌관으로 잠깐, 로비스트 밑에서도 잠깐 있었는데 바위에 계란 치기 식으로 전혀 변화가 느껴지지 않은 탓에 무력감과 우울증에 시달렸습니다. 제가 정말 원하는 게 뭐고 잘하고 좋아하는 게 뭔지를 찾아보려고 여행을 떠났지요. 미국을, 전세계를 다니면서 탁발을 하듯 무임승차, 무위도식을 하면서 방황했습니다. 그러다 2002 한일월드컵 때,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새로운 세계에 대한 개안이랄지, 스스로와 세계에 대한 깨달음을 얻었다 할지, 그런 걸 얻은 느낌이 왔습니다.”

“뉴턴의 사과처럼 잔디밭을 굴러다니는 축구공을 보고 홀연 깨달음을 얻으셨다는 건가요?”

“축구경기가 아니라 붉은 옷을 입은 한국 응원단을 맞닥뜨렸을 때 거기에 엄청난 무엇인가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죠.”

“뭐가 있었습니까?”

그는 말을 하기 전 질질 끌거나 변죽을 울리는 법이 없었다. 그게 마음에 들었다.

“싸워서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직관적으로 알게 된 거죠. 축구는 어떤 스포츠보다 전쟁과 유사한 게임입니다. 축구경기는 아무리 날씨가 나빠도 강행하는데 날씨가 나쁘다 해서 전쟁을 중단하는 법이 없는 것과 같은 이치지요. 그런 축구경기에서 이기려면 실제의 전쟁과 마찬가지로 치밀한 전술과 전략이 필요합니다. 그라운드 위의 일은 거스 히딩크 소관이었고요. 저는 경기장 바깥의 전력을 극대화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한국의 친구들과 함께 조직한 단체가 ‘붉은 악마’였죠.”

“붉은 악마를 만들었다고요? 직접?”

“붉은 악마라는 명칭은 원래부터 있었죠. 모태는 PC통신 하이텔의 ‘축구동호회’인데 1995년부터 단체응원을 시작했고 1996년부터 붉은색 국가대표 팀 유니폼을 입은 응원단이 등장했지요. 붉은 악마라는 공식 이름이 최종 결정된 것은 1997년 8월입니다. 붉은 악마의 트레이드마크는 치우천왕인데 우리 고대사에서 환인이 다스리던 환국의 뒤를 이어 환웅천국이 건국했다고 하는 배달국의 제14대 천왕으로……”

“주류 역사학에서는 인정받기 힘든 이야기겠네요. 그때 구체적으로 뭘 했다는 거죠, 대니얼 씨?”

“경기를 앞두고 붉은 악마가 관중석이나 거리에서 응원을 할 때, 사람들이 텔레비전 화면 앞에 모여 앉았을 때 외칠 수 있는 구호, 노래, 깃발 같은 미란다와 크레덴다를 조직적으로 개발하고 정서적 파워를 유형의 에너지로 전환할 수 있도록 디자인했죠. 막연하고 무질서한 응원이 아닌, 그라운드에서 뛰는 선수들에게서 실제로 아드레날린이 분출되도록 태극기의 물결을 만들거나 ‘꿈은 이루어진다’ 같은 문장을 연출해냈습니다. 전 국민이 하나가 되어 응원을 하러 광장으로 뛰쳐나왔을 때 그 엄청난 정신적 에너지를 간단한 박수와 구호로 응축해서 선수들에게 전달했지요. 4강 신화의 기적을 이루게 한 최고의 무기는 바로 그거였습니다. 지금도 한국 대표팀이 나가는 웬만한 경기에서는 그날의 그 박수와 구호가 울려퍼지고 있습니다. 4강전이 끝나자마자 저는 그때 얻은 귀중한 경험을 자료로 만들어서 한 보따리 싸들고 한국을 떠났습니다.”

그는 낡은 휴대폰을 꺼내더니 몇번의 조작 끝에 동영상을 하나 보여주었다. 붉은 악마 한가운데 백팩을 멘 대니얼 조가 서서 뭔가를 외치고 있었고 주변에서 그의 구호를 따라하고 있었다. 화면이 바뀌어서 그가 초대형 태극기의 한 귀퉁이를 잡고 있는 모습이 나왔다. 곧이어 몇몇 사람을 핵심 축으로 한 열광적인 응원이 선수와 관중, 경기를 보는 사람들에게 엄청난 에너지를 불어넣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그는 전쟁터 최전방에서 총지휘를 맡은, 군번 없는 야전사령관처럼 보였다.

화면을 보는 것만으로도 속이 울렁거렸다. 그때 나 또한 거리 한구석에 서 있던 적이 있었다. 구호를 듣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뛰었고 나도 모르게 손바닥이 뜨겁도록 박수를 치고 있었으며 걸음이 빨라졌다. 붉은 옷을 입은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외쳐진 구호는 내가 몰랐던 찬란한 세계를 열었고 나는 곁에 있는 사람이 누구든 껴안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데이터와 수치, 과학적 증거 아니면 믿지 않는 내가 나를 믿을 수 없게도 그랬던 것이다.

“수소폭탄은 폭발 시 온도가 1억도에 달하는 원자폭탄을 기폭제로 핵융합을 일으켜서 원자폭탄의 수백배에 이르는 파괴력을 가지게 한 겁니다. 태양도 수소융합으로 엄청난 에너지와 열, 빛을 내지요. 2002 월드컵에서는 붉은 악마를 기폭제로 하여 전국민이 하나로 융합되어 엄청난 에너지를 만들어냈습니다. 방사성 폐기물과 온실가스, 미세먼지 없는 핵융합 발전은 2035년에나 가능하겠지만 그보다 훨씬 전에 한민족 공동체의 믿음, 마음이 핵융합 발전을 시작한 겁니다.”

“솔직히 마음의 핵융합 발전이라는 건 영구기관처럼 실현 가능성이 낮게 들리네요. 그 결과 실제로 조선생님한테 남은 건 뭐였나요? 돈이나 권력은 아니었을 테고.”

“제게 붉은 악마와 같은 기폭제를 발견하는 눈, 센서가 있다는 깨달음을 줬지요. 다수의 군중을 상대로 어떤 원리 아래 그들이 속해 있는 환경을 바꾸고 조직을 재배열하여 원하는 반응이 일어나도록 하는 것, 그런 것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알게 된 거죠. 그런 격렬한 정서적 체험을 통해 개개인이 역사적인 변화를 만드는 방식이 뭔지를 알게 됐다는 것이 더 중요하겠지요.”

그는 새로 주문한 생수 잔에 든 얼음을 손으로 꺼내 입안에 넣고 소리 내며 깨물어 먹었다. 그의 그런 행동이 이상하게 생각되지 않는 내가 이상했다.

“2002년 하반기에는 대선이 치러졌죠. 그때 한국에 계셨겠지요?”

“그때의 대선을 월드컵에 비유한다면 저에게는 대선후보 중 한 사람이 붉은 악마, 그러니까 아직 제대로 가공되지 않았지만 엄청난 가치를 지닌 원석처럼 느껴졌죠. 자원봉사자로 그쪽 캠프에 들어갔습니다. 군사학교 때처럼 한 사람씩 단계를 밟고 올라가 결국 후보와 대면할 수 있었고 전폭적인 신뢰를 얻어냈지요. 막연한 호감과 이미지를 구호와 공약, 실제의 득표로 환원시키는 전술, 전략을 채택하고 실행에 옮기도록 했습니다. 말과 행동 하나하나를 승리를 위해 재조정하고 모든 자원을 전력화하는 데 초점을 맞췄죠. 제 생애 처음 맞은 그 선거에서 혼자 힘으로 승리의 모멘텀을 일궈냈다고 주장할 생각은 없습니다. 후보 자신이 워낙 정치적 잠재력이 뛰어난 원석이었고 선거 하루 전에 역사에 남을 만한 극적인 반전도 있었고…… 선거가 끝나고 난 뒤에는 어떤 댓가도 자리도 받지 않았지요. 그런 게 두려워 금방 한국을 떴습니다.”

비로소 본론에 가까워진 느낌이었는데 그는 잠시 실례하겠다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화장실로 향하는 그의 걸음걸이가 다소 흔들렸다. 그는 기둥 뒤로 가서 누군가와 통화를 했다. 그리고 화장실에 다녀와 같은 장소에서 다시 통화를 했다.

“누구였습니까? 전화를 하신 분?”

자리에 앉아 냅킨에 손바닥을 문지르는 그에게 물었다.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제가 알아듣는 몇 안 되는 영어로 통화를 하시는 것 같던데요. 당신은 당신의 일에나 관심을 가져라.”

“첩보원은 거뜬히 하실 청력이시네요.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 잠시 혼선이 있었는데 이젠 완전히 정리됐습니다.”

나는 곧장 핵심으로 쳐들어갔다.

“당장 이번 선거를 필승으로 이끌 수 있는 정치공학이나 첨단의 기술, 전술 전략에 대해서 말씀해주신다면?”

“미국의 지난 대선에서는 SNS와 검색기능을 이용한 첨단기술의 선거기법이 전면에 등장해서 큰 성공을 거뒀습니다. 미국 유권자 개개인의 스마트기기와 컴퓨터 화면 너머에는 심리학, 인지과학, 행동심리학, 철학, 언어학, 정치학, 교육학 등 각 분야에 걸친 수천명의 과학자와 전문가들이 앉아서 개개인의 두려움, 욕망, 행동, 본성, 정치적 성향에 관해 분석하고 있죠. 이들로 이루어진 회사에서 특정 대선캠프의 의뢰를 받아 신경과학이나 디지털과학에 기초한 알고리즘으로 유권자를 특정 후보의 지지자로 만들어주는 일을 했습니다. SNS 플랫폼을 사용하는 유권자의 개인정보를 바탕으로 심리적 프로파일을 만들고 그에 맞도록 개인화된 콘텐츠, 블로그·구호·광고를 만들어서 정치적 견해를 바꾸게 한 겁니다.”

“첨단 IT기술과 과학적 도구를 이용해 유권자의 의식, 무의식에 의도한 변화를 만들어내는 거네요. 과거에 유권자들에게 뿌리던 막걸리나 고무신처럼 명백하게 눈에 보이는 건 아닌데, 법적 문제가 없었나요?”

“축구와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양극화된 현실세계에서는 선거에서 정권을 쟁취하는 것이 실제의 전쟁터에서 승리를 차지하는 것이나 비슷한 결과를 가져옵니다. 그냥 선거가 아니라 선거전이니까 과거 수많은 전쟁에서 효율성이 입증된 초법적이고 탈윤리적인 수단들, 심리전, 첩보전, 정보전, 인해전술, 물량공세, 허허실실의 전법, 초토화 작전 같은 군사적 개념이 충분히 동원될 수 있습니다. 전장에서라면 적을 격멸하기 위해 어떤 수단을 쓰든 불법이 되지 않죠. 오히려 승자의 영광을 누리게 될 겁니다.”

그러고 보니 그의 말과 태도에는 군인을 연상케 하는 점이 많았다. 아버지의 직업, 운동선수 시절 강압적이고 혹독한 훈련, 군사학교에서의 생존이라는 삶의 과정이 그의 마음과는 상관없이 체질과 사고를 바꿨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전쟁은 군사작전이지만 선거는 민간의 일이죠. 선거에 무력이나 군의 관여를 허용해서는 절대 안 되지요. 과거 한국에서도 댓글부대를 양성한다든지 군 조직, 경찰, 정보기관을 통해 선거에 개입한 사례가 있었습니다. 그 때문에 선거조작 시비가 일어났고 결국 정권이 무너지는 결과를 가져왔죠.”

“지금도 전세계적으로 매년 10여개 국가에서 대통령이나 총리를 선출할 때 눈에 보이지 않는 세력들이 정치 컨설턴트나 데이터 과학, 홍보 용역 같은 이름을 내세워서 첨단의 기술로 살아 있는 권력을 창출해내고 있습니다. 그들은 디지털 무기를 총동원해서 자신들에게 유리한 투표결과를 얻기까지 결코 멈추지 않습니다. 어떤 후보가 아무리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고 선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 한들 그들의 총공세 앞에서 무방비하게 앉아만 있다가는 당하고 말 겁니다. 윤리와 합법성은 선거결과가 승리로 나온 후에 따져도 됩니다. 승자독식의 선거에서 한번 선출된 권력은 무슨 일이든 수습할 수 있으니까 쉽게 무너질 리가 없지요.”

“민주적인 절차와 합법적인 수단을 통해 정권을 창출하는 선거가 첨단기술에 농락당하는 순진한 제도라는 건가요?”

“매일매일이 전쟁터 같은 현실에서 총알이 날아올 때 민주적인 절차를 밟고 발사된 것인지를 따지고 있을 수 없다는 거죠. 얼핏 보면 선거는 우주비행처럼 지나친 고비용의 이벤트처럼 보입니다만 우주비행이 전자레인지나 정수기, MRI처럼 생활에 밀착된 과학기술의 발전을 가져왔듯이 선거는 민주주의와 공동체의 역사, 사회의 발전에 다양하게 기여해왔습니다. 순수한 과학기술이 어떻게 응용되느냐에 따라 핵폭탄도 되고 발전소도 되는 겁니다. 그런 기술 가운데 아직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최첨단의 기법이 저 같은 코오디네이터의 밥줄이죠.”

나는 재빨리 물었다.

“그게 뭔가요? 아직 세상에 안 알려진 기법도 있나요?”

그는 웃으며 수첩을 덮었다.

“우리 사이에 일정한 합의가 성립되기 전에 미리 말씀드릴 수는 없겠습니다. 어쨌든 선거에서 한번 써먹은 전술 전략과 기법은 효과가 확 떨어집니다. 유권자들의 심리에는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이 적용되기 때문이죠. 저는 선거전에 한번 사용된 기술은 거의 쓰지 않습니다.”

“그럼 선거 때마다, 후보가 누구냐에 따라 다른 기술을 적용한다는 건가요?”

그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물을 마시고 나서 입을 열었다.

“사람들의 마음에 영향을 주고 행동방식을 바꾸는 첨단기법, 대중 설득 기술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바뀔 수밖에 없죠. 후보가 유권자를 만나는 방식도 대면 연설, 유세, TV 토론, 전화 여론조사, 정치 광고 등등으로 진화해 왔습니다. 처음에는 불법이었던 것이 합법화된 것도 많죠. 오바마 전 대통령이 슈퍼팩 1을 용인해서 선거후원금을 거의 무제한으로 모을 수 있게 한 것도 그런 예라 할 수 있죠. 그런 식으로 불법과 합법 사이에서 줄타기하면서 수위를 조절하는 것도 저 같은 사람이 할 일입니다.”

“하시는 일에 자부심이 무척 크신 모양이군요.”

대니얼 조는 만난 뒤 처음으로 이를 드러내며 활짝 웃어 보였다.

“제 인생 처음으로 선거캠프에 참가한 이후 다음 선거부터 한국에서 여야 할 것 없이 급한 사람들이 제게 먼저 접근을 해오더군요. 그전처럼 자원봉사가 아니라 프로페셔널한 작업이니 당연히 댓가가 따랐고요. 저는 실제 업무에 착수하기 전에는 여야, 중도 정치세력 그 어느 편도 들지 않습니다. 굳이 말하란다면 어느 편도 아니라는 편이죠.”

“대선, 총선이 끝나면 수많은 정치 모리배들이 바퀴벌레처럼 기어 나와서 떠들어대더군요. 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으로 만든 건 나라고.”

“정치판에서 한자리 차지하려면 조금은 더 점잖게 말해야겠지요. 멘토나 정신적 지주, 하는 식으로.”

그는 투샷 아메리카노에 원샷을 추가한 진한 커피를 주문했다. 설탕 세봉지를 뜯어서 몽땅 쏟아부은 뒤에 천천히 저었다.

“전 아마추어가 아니라서 일은 일로 확실히 합니다. 그래도 인간인지라 가슴이 없는 사람과 일하고 싶지는 않더군요. 가슴을 통하지 않고는 감정이입을 할 수가 없으니까. 지금 부원장님께서 대변하시는 분이 제 가슴을 뛰게 할 만한 점이 뭐가 있을까요?”

“가슴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살아서 걸어 다니면서 TV 토론하고 악수하고 유세를 할 수 있습니까? 유권자들이 무서워서 다 도망갈 것 같네요. 그분은 자기관리가 철저하고 주변도 깨끗하지요. 어릴 때부터 남에게 신세를 지지 않고 별다른 흠이 없이 살아왔기 때문에 가능한 거죠.”

“현재 한국의 다른 유력 대선주자들이 가진 장점은 그들의 단점을 상쇄하고 남습니다. 오래도록 정치판에서 굴러먹은 사람들은 숙명적으로 주변에 암종이나 시궁창 같은 인간들을 수반하게 되는데 진짜 정치인은 그런 약점을 가진 채로 권력을 쥐고 버티는 거죠. 경쟁자들을 하나씩 쳐내가면서 말이죠. 손대표처럼 마이너스 계정이 아니라고 해서 선거에서 쉽게 이길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런 깔끔한 사람 주변에 어설프게 서 있다가는 게도 구럭도 잃고 유탄만 맞을 수 있어요. 흔한 말로 줄을 잘 서야 한다는 거죠.”

나는 대학을 나온 뒤 내 행적을 잠시 반추했다. 휑했다. 한 일이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줄을 선 건지 안 선 건지도 확실하지 않았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미래에 대한 별다른 고려도 없이 정년보장까지 받은 교수직을 그만둔 것을 후회했다. 아니, 결국 그 자리에 앉아 있도록 처신한 스스로를 책망했다. 내가 침묵하는 동안 대니얼 조는 잔 가운데 티스푼을 세울 수 있을 만큼 진한 커피를 한모금씩 쉬지 않고 마셨다.

“어쨌든 선거는 단기전이고 결과가 눈앞에 펼쳐지는 구체적인 것이면서 실현 가능한 목표라는 점이 매력적이고 제 체질에도 맞습니다. 저는 선거에서 이기든 지든 후보나 후보 측근처럼 영향을 받지는 않습니다. 선거가 있는 한 일은 계속 들어올 것이고.”

“도박판에서 통하는 말이군요. 노름꾼은 계속해서 바뀌지만 하우스는 영원하다.”

자칫 가시 돋친 것으로 들릴 수 있는 내 썰렁한 농담에 그는 군인처럼 무표정하고 절도있게 답했다.

“한국의 이번 대선에서는 최선도 최악도 아닌, 차악의 무능한 인물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대로 그냥 둔다면.”

그때 내 품속에서 전화기의 진동음이 울렸다. 깜짝 놀랄 만큼 시끄러워서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화장실에서 가서 보안 메신저를 열어보니 김윤기의 문자가 들어와 있었다. 한국시간으로는 새벽 다섯시가 훌쩍 넘었을 시각이었다.

‘선배, 지금 그 사람 만나고 있죠? 좀 이상한 소리를 들어서 말인데 좀더 살펴보고 기다렸다가 내 디렉션 보고 진도 나가요. 절대 내 싸인 없이는 안 됩니다. 알겠습니까, 이선배. 빨리 회신하세요.’

마음이 좀 언짢았지만 바로 답신을 보냈다.

‘아직 의견 청취 중. 유의미한 성과가 보일 때까지 탐색 예정.’

내 답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손을 씻고 화장실을 나서기 전에 답신이 돌아왔다.

‘한국 여야당에 무슨 잠룡인가 하는 것들 끄나풀까지 해서 선거 전문 기술자 잡으려고 워싱턴에 건너간 팀이 셋이나 움직이고 있다는 걸 알아둬요. 철저하게 보안 유지하세요. 확실히 결정되기 전에는 우린 그 사람 모르는 거고, 선배도 거기 없는 겁니다. 절대로 흔적 남기지 말고 꼬투리 잡히지 마세요.’

말이면 다 되는 줄 아나.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할 줄 아나. 나는 궁시렁거리며 자리에 돌아와서 별스러운 일이 아닌 것처럼 대니얼 조에게 말했다.

“이건 여담입니다만, 남북관계를 어떻게 바라보고 풀어가는 게 좋을지 의견을 듣고 싶네요.”

대니얼 조는 기다렸다는 듯이 즉각 대답했다.

“남북관계는 어느 한편의 정략적 이익이나 막연한 민족주의적인 당위론으로 접근하면 안 됩니다. 사람들이 관심있어하는 경제적·실리적 관점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말로만 하는 평화, 관계 개선으로는 동력이 따라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핵부터 국제사회의 제재와 불신, 부족한 산업인프라, 인권 등 수많은 문제가 있지 않나요? 특히 모자라는 농기계, 농업기술과 자연재해로 발생한 심각한 식량부족 문제가 있죠. 1990년대에 수백만명이 아사한 것과 유사한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요?”

“2000년대 들어서 남한의 노무현정권 당시 감자종자와 재배기술 지원으로 북한에서 대량의 기아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은 완벽하게 사라졌습니다. 북한의 식량이 모자라다는 식량 관련 국제기구의 발표나 북한 중앙통계국의 수치는 상당히 과장되어 있죠. 자신들의 존립 가치를 입증하기 위한 정치가 수치에 작용한 겁니다.”

단정과 추정, 사실과 상상을 자유자재로 뒤섞어 논리를 펴는 그를 보며 감이 잡히기 시작했다. 그는 내가 가지고 있지 못한 어떤 마법을 가진 사람일 수도 있었다. 초등학교 운동회에서 응원단장을 자처하고 나서서 박수를 유도하던 아이부터 자신에게 어떤 소명이 있다고 확신하는 종교지도자에 이르기까지 공유하는 어떤 것. 사람을 들뜨게 하고 움직이게 하고 마침내 세상과 현실, 미래가 바뀌도록 하는 힘을 가진 사람. 물론 그들 사이에도 격차가 존재한다. 사이비에서 진짜 보석까지.

김윤기에게 오는 메시지가 내 휴대전화에 계속 쌓이고 있었다. 나는 다시 화장실로 향했다. 김윤기의 말투에서는 술 냄새가 풍겨났다.

‘형, 영호 형, 아, 이거 열라 웃기네. 지금 그 인간 짝퉁 아닌가 잘 봐봐. 미국 방문하는 정치인들 가이드 같은 거 하면서 어깨너머로 주워들은 지식에 말빨을 더해가지고 어벙한 호구 등치는 진드기 같은 놈들이 거기에 있다더라고. 진짜 선수들도 몇명 있긴 한데 하여튼 그 인간, 우리가 처음에 에이밍했던 그 사람 아닌지도 몰라. 내가 확인되면 다시 연락할 테니까 그때까지 절대로 돈 먼저 주지 마요. 아, 정말 이것들, 웃기는 짜장들이네.’

그때부터 나는 시간을 끌며 그에게 이것저것 질문을 던졌다. 그는 조금도 빈틈을 보이지 않았다.

“저는 팩트가 아니면 신뢰를 할 수 없는 체질이라 그런데, 지금 당장 북한에 관련된 믿을 수 있는 정보는 어떤 게 있습니까.”

“같은 수치라도 북한의 경제적 가치에 관한 것을 보면 세계인의 마음이 바뀔 수도 있죠. 북한의 부존자원과 잠재되어 있는 자산은 어마어마합니다. 북한의 금은 세계 6위, 마그네사이트는 세계 3위의 규모이고 우라늄도 4백만 톤가량 묻혀 있습니다. 특히 희토류는 세계 2위의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는데 현재의 경제가치가 약 50조 달러로 추산되니까 국내외 여러 기관에서 통일비용으로 내놓은 액수 400억 내지 2조 5000억 달러는 아무것도 아니죠.”

“북한의 부존자원에 관한 수치는 북한 쪽에서 나온 일방적인 발표라는 말도 있지요.”

“합리적이고 믿을 만한 외국 기관에서 나온 수치입니다. 실제로 확인할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이미 미국의 정보당국에서 정확한 정보를 확보하고 정책에 반영했고요. 북한이 희토류 공급을 시작하고 전세계 4차산업의 성장과 맞물리면 희토류는 곧 핵이나 식량만큼 중요한 전략무기가 될 겁니다. 북한 외에도 일본, 중국, 경제, 외교, 국방 등 대선에 영향을 끼칠 변수가 엄청나게 많지만 오늘 이 자리에서 더 자세히 말씀드릴 수는 없겠습니다.”

그는 갑자기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왜 시간을 끄는지 확실히 알겠다는 뜻 같았다. 그는 간단하고 정확한 동작으로 시계를 보고는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여담도 이쯤에서 마쳐야 할 것 같습니다.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질 뻔했군요. 제가 오늘 밤 내에 선거전략 제안서를 완성해서 내일 아침 호텔로 가겠습니다. 로비의 스타벅스에서 내일 오전 7시 20분에 미팅을 갖도록 하죠. 잘 주무십시오.”

그날 밤 김윤기에게서 온 마지막 메시지에 따르면 ‘진짜 킹메이커’는 미 의회에서 활동하는 식량 수출 분야의 로비스트로 오하이오주의 대두 주산지에 가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고 했다. 이어 상황이 바뀌었으니 모든 접촉을 중단하고 되도록 빨리 귀국하라고 했다. 술이 말끔히 깬 어조였다. 나는 대니얼 조가 가진 독특한 경험과 식견으로 미루어볼 때 그가 ‘진짜 전문가’임을 확신한다는 의견을 강력히 개진하고 대선에서 조력을 받도록 권유할지를 고민했다. 하지만 그게 메신저 대화로 간단히 결정될 사안은 아니었다. 손대표의 돈이 단 한푼이라도 정체가 불분명한 사람에게 넘어간 것이 알려지는 순간, 손대표의 운명은 스스로가 아닌 남의 손에 넘어갈 가능성이 컸다. 나는 귀국 항공편을 예약하고 다시 수면제를 먹고 죽은 듯 잠을 잤다.

다음 날 아침에 짐을 싸는 동안 폐기된 북한의 핵실험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지진과 대폭발이 일어났고 미세먼지 수준의 엄청난 연기가 바람을 타고 빠르게 남진하며 일본으로 향하고 있다는 뉴스가 호텔 방 안 텔레비전의 화면을 채웠다. 화산폭발설과 수소폭탄실험 실패설이 나왔지만 확인된 건 없었다. 일본 전역이 공황상태에 빠진 반면 한국이나 중국은 상대적으로 조용했다. 미 백악관이나 국무부에서는 계속해서 상황을 파악하는 중이라고만 하고 있었다.

나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지만 그는 정확하게 오전 7시 20분에 스타벅스에 나타났고 삼십분 뒤에 메모를 프론트에 남겼다.

“같이 지켜야 할 신뢰와 가치가 없는 사람들끼리는 그 무엇도 이룰 수 없습니다. 그럼 안녕히.”

그의 손글씨는 전날 밤 미리 준비한 듯 반듯하고 단정했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나는 몹시도 부끄러워졌다.

 

 

  1. 미국에서 정치자금을 지원하는 후원단체를 가리킨다. 캠프 외곽에서 선거 지지활동을 벌이는 조 직으로 합법적으로 무제한 모금이 가능해 광고 등으로 미국 선거 결과를 좌우하게 되었다. 금융자 본이 노골적으로 마음에 드는 대통령을 고를 수 있게 했다는 비난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