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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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한아 鄭漢娥

1975년 울산 출생. 2006년 『현대시』로 등단. 시집 『어른스런 입맞춤』이 있음. crookcrony@hotmail.com

 

 

 

미모사와 창백한 죄인

 

 

너무 예민한 것들 앞에서는 죄인이 된다

숨만 크게 쉬어도 잎을 죄 닫아걸고 가지를 축 늘어뜨리는

미모사

순식간에 나는 난폭한 사람이 되어

사랑해서 미안한 폭력배가 되어

젠장, 알았다고, 너 혼자 푸르르라고

공주병 걸린 년, 누가 죽이기라도 한다니?

내버려두면

어느새 정말 죽어 있는

미모사

순식간에 나는 정말로 나쁜 사람이 되어

화분째 쓰레기통에 처넣고선

너무 예민한 것들을 다시는 상종을 말아야지

다짐했는데

십년 전에 죽은 미모사

그 어떤 미모사와도 바꿀 수 없는 미모사

모든 미모사의 대명사가 된 미모사

이제는 이름도 떠올리기 싫은 미모사

연약한 주제에 까다로운 년

나는 나를 만나지 말기를

부디 네가 나를 마주치지 말기를

나는 내가 없는 우리 집에 놀러가고 싶고

그래도 남보다는 내 손에 죽었으면 한다

사랑하면 미안한

미모사

방금 내린 눈

잘못 날다가 나뭇가지에 가슴을 관통당한 울새

방금 본 그 눈

녹아버린 것들

날아가버린 것들

자기를 잠가버린 것들

자기를 영원히 잠가버린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