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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이장욱 李章旭

1968년생. 2005년 문학수첩작가상을 받으며 작품활동을 시작함. 소설집 『고백의 제왕』 『기린이 아닌 모든 것』 『에이프릴 마치의 사랑』, 장편소설 『칼로의 유쾌한 악마들』 『천국보다 낯선』 등이 있음.

oblako@hanmail.net

 

 

 

유명한 정희

 

 

정희 중에서 제일 유명한 정희는?

물론 박정희다. 유신시대의 저 유명한 박정희 말이다. 두번째는 추사체의 김정희고 세번째는 배우 윤정희다. 그뿐인가. 소설가 오정희도 있고 시인 고정희 문정희도 있고 통진당 이정희에서 아이돌 그룹 페이버릿의 멤버 정희까지…… 그리고 세상에는 또 수많은 정희들이……

하지만 열서너번째쯤에는 분명히 내 친구 곽정희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곽정희는 한때 포털 검색어 순위 상위권에 오른 적이 있는 유명인이고 나는,

정희의 오랜 친구다.

 

오랜 친구.

그렇다. 정희와 나는 초등학생 때부터 절친……이라는 단어만으로는 부족한 사이였다. 우리 집은 주인집에 딸린 단칸 셋방이었고 정희는 주인집 아들이었다. 셋방에는 밖으로 난 쪽문이 따로 있어서 나는 아침마다 쪽문을 박차고 나가 학교로 달려갔고, 정희는 자기 집 철제 대문을 박차고 나가 학교까지 달려갔다. 우리는 매번 지각이었기 때문에 변소 청소를 도맡다시피 했는데, 그런 곳에서 함께 묵념을 하기까지 했으니 어떤 면에서는 정신적 교분을 나누었다고도 할 수 있다.

묵념을 함께한 사이라고 해서 정신적 교분을 나눴다고 할 수 있나? 나는 의아해서 물었지만 정희는 확신에 찬 표정으로 그렇다, 이것은 확실히 정신적 교분이다,라고 말했다. 초딩이 어떻게 ‘정신적’이라거나 ‘교분’ 같은 딱딱한 단어를 알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정희가 그 단어를 쓴 것만은 기억에 남아 있다. 그런데 나는 또 어떻게 그 단어들을 알아들은 거지?

어쨌든 그날도 우리는 청소를 하다 말고 잠수놀이를 하고 있었다. 잠수놀이란 정희가 개발한 아주 간단하면서도 재미가 오진 놀이인데, 빨간 물통에 물을 가득 받아놓고 얼굴을 집어넣어 누가 오래 견디는지 내기를 하는 것이다. 정희는 대개 이겼고, 나는 대개 졌다. 나는 어린이답게 사소한 패배에도 실의에 빠졌고, 정희는 이제 막 삶이 시작되어 모든 게 신선하게 느껴지던 그 나이에도 건조하고 무뚝뚝한 표정을 지을 줄 알았다. 그런 정희가 나는 좋았다.

그날도 정희와 나는 수돗가에서 고무 물통에 고개를 처박고 있었다. 물속에는 물고기도 없고 해조류도 없고 그저 빨간 바닥에 잔물결이 보일 뿐이지만 확실히 그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신비로움이 있었다. 그 신비로움 사이로 갑자기 아아, 마이크 시험 중, 마이크 시험 중, 하는 소리가 들려온 것이다. 교내 스피커를 통해 학생주임이 방송을 시작한 모양이었다. 학생주임은 자꾸 갈라져서 듣기 거북한 목소리를 갖고 있는 데다가 언제나 같은 말을 두번씩 반복하는 버릇이 있었다.

학생 여러분. 직원 여러분. 학생 여러분. 직원 여러분. 지금부터 묵념을 시작하겠습니다. 지금부터 묵념을 시작하겠습니다.

물속이었기 때문일까? 목소리는 어디 멀리 다른 세계에서 날아온 것처럼 느껴졌다. 학생주임의 목소리라는 건 단박에 알 수 있었지만 평소와 다르게 떨리고 있었다. 그는 반복해서 외쳤다.

묵념을 시작하겠습니다. 묵념을, 묵념을 시작하겠습니다.

묵념을 해야 하니까 정희가 좋아하겠구나 하고 나는 물속에서 생각했다. 정희가 좋아하니까 나도 좋겠구나 하고 나는 물속에서 생각했다. 정희가 나에게 그렇게 말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 난 묵념하는 것을 좋아해……라고.

묵념하는 것을 좋아한다구? 묵념하는 것을?

응.

묵념을? 묵념이? 왜? 어째서? 뭣 때문에 묵념 같은 것을 좋아해?

내가 어쩐지 다급해져서 물으면 정희는 순진하고 맑은 눈빛으로 대답했다.

묵념을 하고 있으면, 나는 혼자가 아니다.

나는 정희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묵념을 하면 왜 혼자가 아닌 거지? 눈을 감고 말없이 생각을 하는 게 묵념이라는 것인데, 눈을 감고 말없이 생각을 하면 오히려 더 혼자가 되는 게 아닐까?

정희는 알 듯 모를 듯한 표정으로 너는 안 그런 모양이지?라고 반문하면서 말을 이었다.

묵념을 하면, 묵념하는 동안 무언가가 내 곁에 있다는 느낌이 든다. 나는 그게 좋다.

정희는 덧붙여 말했다.

그래서 나는 구름에 대해 묵념을 한 적도 있고 우리 집 마당의 사철나무에 대해 묵념을 한 적도 있고 배가 터진 비둘기 시신 앞에서도……

나는 그렇게 말하는 정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나도 알고는 있었다. 묵념이란 무언가를 깊이 생각하고 추모하는 행위라는 걸. 죽은 사람이라든가 순국선열이라든가 역사적인 위인이라든가 그런 것을. 하지만 구름이라든가 사철나무라든가 비둘기 같은 것을 향해 묵념을 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강아지라든가 호박넝쿨 또는 죽은 귀뚜라미의 시신 앞에서 묵념을 하는 정희를 생각하면 나는 마음이 아파지곤 했다. 마음이 아팠기 때문에…… 정희가 또 나는 좋았다.

하지만 내가 정희의 말에 다 동의한 것은 아니다. 묵념을 하면 혼자가 아니라니 거짓말. 묵념은 물속 같아서 나는 아무래도 혼자라고 느끼는데. 묵념을 하면 할수록 내 안의 물속으로 점점 빨려 들어가는 것 같은데.

나는 그런 말을 입 밖에 내지는 않았다. 말을 하기도 전에 내 말에 설득력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고, 그런 말을 하든 안 하든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나저나 학생주임은 뭘 위해 묵념을 하라는 걸까? 순국선열일까? 독립투사일까?

학생주임의 목소리가 교내 스피커를 통해 다시 울려 퍼졌다.

대, 대통령 곽하께서 서거를 하시었습니다. 대, 대통령 곽하께서 서거를 하시었습니다.

각을 곽으로 발음하는 게 그의 말버릇이었다. 학생주임은 곽설탕을 정육면체로 된 설탕이라고 설명했고 내곽의 합을 계산하지 못하는 학생들의 손바닥을 때렸으며 곽자가 맡은바 교실 청소에 열과 성을 다하라고 명령했다. 당연하게도 나는 삼곽형을 싫어했고 곽도기는 매번 빼먹고 등교했으며 종곽이 서울의 어디 붙어 있는지 알지 못했다.

학생주임은 대통령 곽하가 서거하시었다고 반복해서 말했다. 나는 방금 들은 이야기가 무슨 뜻인지 잠시 생각했다. 곽하는 뭔지 알겠는데 서거라는 건 대체 무엇일까? 서거라는 걸 하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서거라는 곳에 갔거나 서거라는 사람을 만났다는 뜻인가? 대통령 곽하는 왜 그런 곳에 가거나 그런 사람을 만난 것일까?

물통에서 머리를 빼고 우리는 귀를 기울였다. 정희가 말했다.

서거를 위해 묵념을 하자.

나는 정희의 각진 턱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그래, 묵념을 하자. 서거를 위해.

그날 종례를 하러 들어온 젊은 담임은 채변봉투를 안 낸 사람을 혼내지 않았고 폐지 수집량을 체크하지도 않았다. 어제의 일기도 검사하지 않았다. 반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차렷, 경롓, 하고 인사를 하기도 전에 담임은 서둘러 입을 열었다. 얼굴은 상기돼 있고 뭔가 잔뜩 흥분한 표정이었다.

여러분, 대통령께서 돌아가셨습니다. 모두들 곧바로 집으로 돌아가세요. 오늘은 산에도 가지 말고 운동장에서 축구도 하지 마세요. 골목에서 놀아도 안 됩니다. 집에 가서 라디오를 들으세요. 텔레비전을 보세요. 텔레비전이 없으면 텔레비전이 있는 친구 집에 가서 보세요. 역사가…… 역사가 바뀌고 있습니다.

담임의 상기된 얼굴을 바라보며 나는 멍하니 중얼거렸다. 아, 대통령 곽하가 돌아가셨구나. 서거라는 것은 대통령 곽하께서 죽었다는 뜻이구나. 대통령 곽하가 죽었다니. 그런데 그건 대체 무슨 뜻일까?

나는 대통령 곽하가 죽을 수 있다는 것을 한번도 생각해본 일이 없었다. 대통령 곽하가 바뀔 수 있다는 것도 상상해본 일이 없었다. 태어난 뒤부터 대통령 곽하는 오직 한분뿐이었다. 그것은 나에게도 정희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총에 맞아서 죽었다는 것은 나중에 알았지만, 그날 우리는 진심으로 슬프고 비통한 마음으로 하교를 했다.

 

정희에게는 나 외에 친구가 없었고 정희의 집에는 형제들이 많았다. 4남 2녀의 막내였기 때문에 정희는 집에 들어가고 싶어하지 않았다. 정희는 종종 우리 집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밤이 이슥해져서야 쪽문을 열고 나가 다시 철제 대문을 밀고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우리는 대개 방구석이나 골목에서 놀았는데, 땅따먹기를 하고 찐뽕을 하고 딱지를 쳤으며 아톰과 로보트 태권브이를 오려서 허공을 날아 다녔다.

그런 시간이 쌓이자 정희는 나에게 얼마간은 형제 같았다. 삶이란 무엇일까? 그런 질문을 하지 않던 시절에, 이제 막 삶이라는 것을 처음 느끼기 시작하던 그 시절에, 하지만 어린 마음에도 세상이 깊은 물속처럼 느껴지던 그 시절에, 나는 거울을 보듯 정희를 바라보았다. 정희의 표정을 보면 나는 정희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고, 정희는 내가 무슨 말을 꺼내기도 전에 내가 할 말을 먼저 하곤 했다.

하지만 정말 그랬을까? 우리는 단지 어린이답게 단순한 대화만을 나누었던 게 아닐까? 그것이 너무 단순했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를 닮았다고 착각했던 게 아닐까? 단순한 대화만으로도…… 단순한 놀이만으로도…… 우리가 친구가 될 수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나는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다. 단지 그런 시절이 있었다는 것만을 어렴풋이 기억할 뿐.

 

인생이란 강물처럼 흘러가는 것 같다가도 어느 순간에 툭, 끊어지기도 하는 것이다. 정희와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정희와 내가 갈라서게 된 데에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다만 하나의 이미지만이 내 머릿속에 남아 있다.

우리는 그날도 고무 물통에 머리를 담그고 잠수놀이를 하고 있었다. 여름이었고 하늘이 높았던가. 가을이었고 낙엽이 지고 있었던가. 하늘이 높거나 낙엽이 지는 그런 오후에 청소를 하다가 빨간 물통에 고개를 처박는 것, 그게 나에게는 초등학생의 삶이었다.

여느 때처럼 잠수를 하다가 고개를 들었을 때, 정희는 여전히 물통에 머리를 넣고 있었다. 역시 정희의 승리였지만 어쩐지 그때는 승리니 패배니 하는 생각이 들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정희는 물통에서 고개를 빼지 않았다. 아니, 이렇게 오래? 나는 처음에는 놀랐고 3분이 지난 다음에는 의아했으며 5분이 지난 다음에는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죽었나?

물론 정희는 죽지 않았다. 그런 것은 직감으로 알 수 있다. 정희는 단지 물속에서 묵념을 하거나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왜였을까?

그런 생각이 드는 순간, 나는 정희를 남겨두고 그 자리를 떠났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정희에게서 멀어졌다. 정희를 혼자 두고 정희를 버려두고 정희에게서 다급하게 도망쳤다. 여름이었고 저녁 무렵이었던가. 가을이었고 낙엽이 지고 있었던가. 내 친구는 빨간 물통에 고개를 넣은 채 숨을 참다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고, 나는 그런 친구에게 갑작스럽고도 격렬한 반감과 적의를 느껴 그 자리를 떠났다. 대체 어떤 반감? 어떤 적의? 지금도 나는 그걸 설명할 수가 없다.

 

우리 가족은 반지하이긴 하지만 방이 두칸인 데다 입식 주방이 있는 집으로 이사를 했다. 정희와 나는 각각 다른 중학교에 배정받았다. 자연스럽게 우리는 더이상 만나지 않게 되었다. 나는 그것이 서운하지 않았다. 악머구리들이 끓는 듯한 중고등학교 시절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그때는 새로 이사를 해서 내 방이 생긴다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나에게 삶은 햇볕이 들지 않는 작은 방과 그 작은 방에서 보이는 골목만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나는 내 방에 물속처럼 잠겨들었다.

그 시절에 나는 놀라울 정도로 정희를 생각하지 않았다. 내 방과 내 방에서 보이는 골목과 그 골목을 나가면 보이는 어지러운 전깃줄과 전봇대와 쌀집과 방앗간과 솜틀집과 그 앞에 주차된 포니와 브리사를 지나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를 졸업했을 뿐이다. 고독 외에 다른 것이 내게는 필요하지 않았다.

그 시절에 계통 없이 읽은 대여섯권의 책 때문에 나는 스스로를 비범한 인간으로 착각하고 있었다. 그 책들은 이상의 시집이었고 니체의 『선악의 저편』이었으며 까뮈의 『전락』이나 카발라에 관한 오컬트 책자들이었다. 그것들을 읽은 나는 나 자신을 동년배들보다 우월한 인간으로 느끼고 있었는데, 이런 느낌이 얼마나 유치하고 어리석은 것인지는 그때도 이미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머리로 안다고 해서 진정으로 자각하고 있는 것이 얼마나 되겠는가?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 모두를 진실로 깊이 자각한다면, 이 세상은 벌써 천국이 되었거나…… 지옥이 되었을 것이다. 우리 자신의 어리석음에 대해 우리가 아는 모든 것을 진실로 깊이 자각한다면, 사랑과 욕망과 자유에 대해 우리가 아는 모든 것을 진실로 깊이 자각한다면……

당연한 일이지만 그 시절의 나는 장군이나 대통령 또는 선생님이 되겠다는 식의 장래희망을 경멸하고 있었다. 치기만만한 청춘답게 나에게 매력적인 인간은 예술가와 혁명가밖에 없었다. 세상의 모든 악습에 대항하고 인간의 고통을 예술로 껴안는 우울한 영혼이 나의 장래희망이었다.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도 물론 예감하고 있었다. 나의 부모는 서울 변두리에서 하위 30퍼센트에 해당하는 가정을 이루고 있었다. 아버지는 파견 노동자로 중동에 나가 사막에서 일했고, 어머니는 온갖 삯일을 받아다 하루 종일 푼돈을 벌어야 했다. 당시 막 인기를 얻고 있던 영화과에 입학하고 싶었지만, 어차피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게 인생이라는 것 정도는 나도 알고 있었다. 중동에서 돌아온 아버지는 근엄한 표정으로 나에게 의대를 가라고 명령했다. 사지선다에 능하기만 하면 하위권 의대 정도는 진학이 어렵지 않던 시절이었다. 나는 순순히 수긍했다. 의사도 나쁘지 않지. 특히 정신과 의사는.

나는 금방 나 자신을 정당화했다. 그건 내가 당시 프로이트의 『쾌락원칙을 넘어서』를 읽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실은 프로이트가 아니라 이름 모를 외국 저자가 쓴 저급한 해설서였지만, 그 책 가운데 이런 내용이 있었던 것만은 기억한다. 인간은 쾌락원칙에 지배된다…… 인간은 쾌락을 추구하면서도 현실의 조건을 감안하여 적절하게 수위를 조절하는데, 그 조절이 언제나 가능한 것은 아니다…… 일정한 선을 넘어서면 더이상은 쾌락이라고 부를 수 없는 그것에 사람이 사로잡혀버린다…… 그것에 사로잡히고 나면 멈출 수 없게 되고 멈출 수 없게 되면 미친 듯이 끌려가고 그렇게 끌려가다가 종국에는 죽음에 이른다……는 얘기였다.

이 설명이 정확한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 설명에는 무언가 섬뜩한 데가 있었고 섬뜩한 데가 있었기 때문에 나를 충분히 매료시켰다. 쾌락만 그런가. 술, 도박, 마약 같은 것만 그런가. 종교도 그렇고 믿음도 그렇고 선악이라는 관념도 그렇고 수많은 이데올로기도 그렇고…… 심지어는 사랑을 하는 일조차도…… 그런 것이 아닌가. 그것에 한번 빠져들어 모종의 한계선을 넘으면, 사람이 그것에 멱살을 잡힌 채 끌려가서, 사로잡혀서, 포로가 되어서, 자기 자신을 잃고, 잃고, 또 잃어버리고, 종국에는, 죽음에 이른다. 죽음이란 생물학적인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자기 자신이 소멸되어 평정에 이른 모든 것이 바로…… 죽음이다. 그것은 대체 얼마나 매혹적인가.

 

나는 수도권 외곽에 위치한 의대에 진학했다. 대학에 가서도 나는 정희를 궁금해하지 않았다. 언젠가 다시 만날 운명이니까……라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나는 이미 정희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정희에게는 정희와 동갑인 조카가 있었다. 정희의 어머니가 정희를 낳을 때 노산이었기 때문에, 정희의 어머니의 딸인 정희의 누나가 결혼을 해서 낳은 아들이 마침 정희와 동갑이었던 것이다. 복잡한가? 당연하다. 나도 처음에는 이게 무슨 말인지 단번에 이해하지 못했으니까. 간단히 말하자면 삼촌과 조카가 같은 해에 태어났다는 뜻이다.

그래도 이상하지? 심지어 조카가 나보다 생일도 빨라.

정희는 그렇게 말한 적이 있다. 바로 그 정희의 조카가 대학 시절 동아리에서 만난 친구였기 때문에, 원하든 원하지 않든 나는 정희의 소식을 듣게 된 것이다.

그 친구의 말에 의하면, 즉 정희의 조카의 말에 의하면, 정희는 중고등학교 시절을 평범하지만 우수한 학생으로 보냈다고 한다. 평범하지만 우수하다는 이상한 표현에는 근거가 있는데, 성적은 중하위권이었지만 언제나 반장을 도맡아 했다는 것이다. 반장을 하려고 부모를 동원한 것이 아니라……라고 말하면서 정희의 조카는 믿기 어려운 얘기를 덧붙였다. 정희가 교실에서 혈서를 쓴 적이 있다는 것이다. 대체 왜, 뭘 위해서, 무슨 이유로 그런 끔찍한 짓까지? 내가 다급하게 묻자 정희의 조카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면서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그건 나도 모르지. 뭐 공약 같은 걸 적은 종이에 지장을 찍으려다가 손가락에 피가 난 게 아닐까. 아니면 학교 교훈이 ‘충성 신의 헌신’이었으니까 그랬을지도 모르고. 어쨌든…… 피의 이미지가 정희의 아우라가 되었고, 정희의 주위에는 추종자들이 모여들었다.

그렇게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낸 뒤 정희는 곧바로 결혼을 했다. 집안끼리의 언약 때문에 기연가미연가하는 와중에 식을 올렸지만, 정희와 정희의 아내는 얼마 지나지 않아 갈라섰다. 성격이 달랐다거나 사랑을 하지 않았다거나 하는 이유 이전에, 그냥 서로에게 무관심한 듯 보였다는 것이다. 시대가 어느 시댄데 아직도 그런……이라고 말한 쪽은 내가 아니라 그 이야기를 들려준 정희의 조카였다.

 

정희를 더 궁금해할 여력이 내게는 없었다. 의대를 졸업하기도 전에 나는 충동적으로 입대해버렸다. 학교생활에는 적응이 되지 않았고, 첫 연애는 차가운 감정만 남긴 채 끝이 났다. 니체니 프로이트니 하는 것에는 관심도 가지 않았다. 주위의 모든 것이 나를 바늘로 찌르는 것처럼 느껴질 무렵이었다.

공릉동에 위치한 사관학교에 배치된 것을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할까. 다른 곳보다 여러모로 근무 여건이 나았다. 서울 시내이고, 가까운 곳에 전철역이 있으며, 전철역 근처에는 포장마차들이 있어서 혼자 아무데나 들어가 한잔 걸칠 수도 있었다. 휴가를 받고 그곳까지 걸어가는 한적한 길을 나는 좋아했다. 서울에도 이런 조용한 길이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아마 지금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뀌어 있겠지만.

사관생도들은 거의 예외 없이 정신적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제복과 규율에 대한 믿음이 강하면 강할수록 내면에서 억압기제가 작동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실은 그런 것 자체가 군대의 목적이자 훈련의 일종이라고도 할 수 있다. 내적 억압 자체가 정상적인 프로세스랄까, 그것에 익숙해지도록 만드는 것이 곧 조직의 목적이랄까. 심리적 왜곡현상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오히려 뭔가 특별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내가 정희를 다시 마주친 건 바로 그 사관학교 교정에서였다. 아니, 마주쳤다는 것은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먼발치에서 내가 그를 발견했을 뿐이니까. 실은 발견했다는 표현에도 어폐가 있다. 지금도 죄책감을 갖고 있지만, 먼발치에서 그를 관찰했다고 말하는 편이 옳았다.

사관학교 교정은 민간의 어느 대학 교정보다도 쾌적한 분위기다.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한다. 교내의 인구밀도가 낮고 모두들 제복을 갖춰 입고 절도 있는 자세로 움직인다. 군무원들만이 사복 차림으로 오가는데, 수가 적고 특정 루트로만 다니기 때문에 교정의 분위기를 해치지 않는다. 나는 교수부 조교로 일했기 때문에 각종 서류 및 학습자료를 도맡고 있었다. 석사학위를 가진 장교이자 교수가 내 선배여서 그를 돕는 것이 업무 중 하나였다.

어느 볕 좋은 날, 나는 복사물을 들고 강의실로 향하고 있었다. 교수부 건물을 나오는데 저 앞쪽에서 생도 하나가 걸어오고 있었다. 어딘지 자세가 특이해 보였다. 사관학교에서 걷는다는 것은 행진한다는 것이다. 오와 열을 맞추어 이동한다는 뜻이다. 발까지 정확히 맞추어 걷는 것은 아니지만 어수선한 느낌은 전혀 없다. 모든 생도들은 모자에 단정한 제복을 갖추어 입고 사각형의 검은색 가방을 들고 절도 있게 움직인다.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는 사람은 딱히 어딘지 알 수 없지만 그런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았다. 모자는 머리에서 살짝 들뜬 듯이 보였고 옷은 몸과 따로 노는 것처럼 느껴졌으며 걸음걸이는 휘적휘적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였다. 제복이 저렇게 어울리지 않는 사람은 처음 보는군. 생도라기보다는 옷을 잘못 입힌 인형처럼 느껴져.

가까이서 보니 그게 바로 정희였다. 정희는 나를 보지 못했지만 아마 봤어도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모자를 깊이 눌러쓴 채 정희를 지나쳤다. 정희야,라고 부를 수도 있었는데 왜 그러지 않았을까. 정희가 정희답지 않은 옷을 입고 정희답지 않은 걸음걸이로 걷고 있기 때문은 아니었는데. 어쩌면 나는 정희를 마주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는지도 몰랐다.

정희에 대한 또 하나의 이미지가 남아 있다. 사관학교 도서관에서였다. 미시마 유키오의 『금각사』를 감명 깊게 읽은 뒤 책을 반납하기 위해 도서관을 찾았을 때였다. 800번대 서가 사이의 바닥에 주저앉아 울고 있는 생도가 눈에 띄었는데, 그게 정희였다. 정희가 들고 있는 책은 기형도의 『입 속의 검은 잎』이었다. 그 시집이 나온 지 얼마 안 된 때였는데, 나로서는 요령부득의 난해한 책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시집을 읽으면서 눈물을 흘리다니 역시 정희답군. 새로운 군인상이야. 감성적이고.

나는 약간 냉소적으로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뒤에 나는 정희가 앉아 있던 서가를 일부러 찾아가서 『입 속의 검은 잎』을 읽어보기까지 했다. 다시 읽은 시집은 난해하지 않았다. 알 수 없는 뜨거운 것이 내 안에서 치미는 것을 느꼈다. 좀 민망한 고백을 하자면, 정희가 눈물을 흘리던 그 서가 사이에 주저앉아서, 나 역시 달콤한 고독의 눈물을 흘렸던 것이다.

그해 열린 생도들의 열병식에서 목격한 정희는 또 달랐다. 열병식은 아주 긴 훈련 과정을 필요로 한다. 오와 열을 맞추어 행진하는 것은 물론 집총제식과 경례 동작까지 모든 것이 일사불란해야 한다. 거대한 일체감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열병식은 열병식이 아니다. 정희는 키가 작았기 때문에 맨 뒤의 열에 배치되어 있었다. 나는 연병장 근처의 나무 아래 서서 훈련 과정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나무 그늘은 서늘했지만 연병장에는 뜨거운 기운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다.

정희가 열병과 분열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은 먼발치에서도 분명하게 느껴졌다. 그게 나의 착각이었을까. 절도 있게 행진하는 정희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자기 자신은 의식하지 못하는, 몸의 깊은 곳에서 흘러나오는, 무언가가 피부를 뚫고 나와 자신을 드러내는 듯한, 그런 미소. 오와 열을 맞추어 집총과 제식을 수행하는 정희는 거의 쾌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정희의 그런 표정을 나는 이미 오래전에 본 적이 있다. 초등학생 때의 매스게임에서였다. 운동장과 계단에 전교생이 모여 서서 카드 섹션을 했던 기억이 있다. 먼 곳에서 보면 무슨 구호나 그림이 보인다고 했지만 그게 뭔지는 알지 못했다. 내 옆에 서서 제법 커다란 카드를 단호하게 들어 올리고 힘차게 내리고 하는 정희의 눈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그 눈에 눈물이 고여 있다고 생각한 것은 나의 착각이었겠지만,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 있었던 것만은 확실히 기억한다. 필시 자신은 자각하지 못할 희열이 느껴졌다는 것 역시.

 

나는 제대를 했고, 제대를 했을 뿐인데도 인생은 말 그대로 미친 듯이 흘러갔다. 이를 갈며 견뎌낸다는 말이 비유가 아니었던 인턴 시절, 사회적 포지션에 익숙해지면서 안락한 미래를 그리게 된 레지던트 시절, 그리고 얼마간의 페이 닥터 생활을 거쳐 정보업체를 통해 만난 사람과 결혼을 하고, 결국 처가에서 돈을 빌려 신경정신과 의원을 개업하기까지.

그때의 나에게 인생은 과거에서 미래로 흘러가는 게 아니었다. 삶은 노선도에 따라 운행되는 전철처럼 느껴졌다. 다음 정차할 역은, 다음 정차할 역은…… 노선도를 외우고 있는 사람처럼 나는 살아갔고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미래가 정해져 있다고 느꼈으므로 십년 후나 이십년 후의 내 모습을 거의 오차 없이 예상할 수 있었다. 얼굴, 표정, 옷차림, 게다가 출퇴근 시간까지. 자정 무렵에는 거실에 혼자 앉아 위스키를 홀짝이고 있겠지.

나에게는 메워지지 않는 공허감이 있었다. 병원 수익이 예상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아내는 애초부터 나에게 애정이 없었다. 아내는 단지 의사라는 이유로 나를 선택했던 지난날을 후회하고 있었다. 나는 나대로 결혼이라는 형식이 나와 맞지 않는다고 느꼈다. 우리는 예의 바른 외계인을 보듯이 서로를 대했다. 정중하게 서로를 대할수록 서로의 먼 곳에서 살아가는 느낌이랄까. 섹스를 할 때조차 경건한 침묵 속에서 제의를 치르는 기분이었다. 그런 것이 나빴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것이 또 당연하달 수는 없는 것이다. 인생에는 그렇게 흘러가는 시간이 고이는 웅덩이가 따로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무렵, 그러니까 웅덩이에 빠져 멍하니 앉아 있던 어느 날, 나는 아내에게서 이런 말을 들었다.

내게는 사랑했던 사람이 있어요. 뜨거운 사람이었죠. 나는 화상을 입듯 사랑을 했고, 그 뜨거움을 견딜 수 없었고, 어느 순간 모든 감정이 소진되었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당신과 결혼했어요. 그 사람이……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났다는군요. 소식을 듣는 순간, 갑작스럽게 모든 것을 깨달았어요. 나는…… 이런 생활을 견딜 수 없어.

아내는 나를 소파에 앉혀놓고 조용한 어조로 말했다. 술을 마시지도 않았고 흥분한 것도 아니었다. 눈물을 흘리지도 않았다. 나는 그것이 좋았다.

아내의 말을 해석하는 데는 시간이 좀 걸렸다. 들은 말을 해석하고 감추어진 심층의 의미를 찾아내는 것이 좋아서 택한 직업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반대의 경험을 하고 있었다. 환자의 말은 곧이곧대로 들어야 한다. 감추어진 의미 따위는 없다. 꿈은 해석에 저항하지 않는다. 해석할 맥락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아내의 말을 해석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했다. 어두운 밤의 거실에서 나는 마침내 아내를 이해했고, 조용히 모든 것을 수긍했다.

우리는 법적 분쟁 없이 헤어질 수 있었다. 겉으로나마 서로를 존중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병원에서 나오는 수익의 대부분을 처가에서 빌린 돈을 갚는 데 썼다. 아내는 나로서는 요령부득인 어느 시민단체에 들어가 일을 시작했다. 부유한 그녀가 어째서 봉사활동에 가까운 그런 일을 하는 것인지 나는 알지 못했다. 실은 알고 싶지도 않았다. 밤마다 병원 근처의 루프탑 바에 가서 가능한 한 값비싼 위스키를 마셨다. 여자는 다시 만나지 않았고 재혼 같은 것을 할 생각도 없었다.

정신적 트러블이 있어 병원을 찾아오는 환자들에게 적절한 투약 처방을 하면서도, 나는 나 자신에 대해서는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시시때때로 정체를 알 수 없는 파괴적인 욕망에 시달렸을 뿐이다. 하지만 페라리를 타고 시속 200킬로미터로 달리는 게 진정한 인생이라고 착각하는 테스토스테론의 노예가 아니었으므로, 내가 달리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다양한 향정신성 제제를 나 자신에게 투약하는 것 외에는. 그리고 나 자신을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경멸하는 것 외에는.

 

정희의 조카에게 들은 바에 의하면, 정희의 인생 역시 빠르고 격렬하게 흘러간 모양이었다. 표현이 이상하긴 하지만, 단지 빠르고 격렬하게 흘러가버리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실감할 때가 있다. 정희는 사관학교를 졸업한 후 전방부대에 임관하자마자 군복을 벗었는데, 어쩐 일인지 군복을 벗고 민간인이 된 뒤 다시 군무원 신분으로 군대생활을 계속했다는 것이다. 복잡한가? 당연하다. 나도 처음에는 이게 무슨 말인지 단번에 이해하지 못했으니까.

엘리트 코스를 거쳐서 장교로 임관했는데 장교가 되자마자 군복을 벗었다는 것도 이해가 안 가. 그런데 군복을 벗은 뒤에 다시 군대에서 근무하는 공무원이 되다니 제정신일까?

정희의 조카는 나를 보며 그렇게 말했지만, 정희의 이상하고 복잡한 경력은 그 뒤의 드라마틱한 반전을 위한 준비였는지도 몰랐다. 정희는 군무원 생활 역시 금방 그만두고 돈을 벌기 시작했다. 군대에 식재료를 납품하는 업체를 차렸다는 것이다. 얼마 후에는 군무원을 대상으로 하는 구내식당 운영권을 따냈는데, 사관학교 출신에 전직 장교이며 군무원이었던 정희의 경력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한다.

돈을 모은 뒤 정희는 민간 부문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동업자를 구해 프랜차이즈 식당을 차렸는데 그게 기대 이상으로 성공적이었다. 트렌드를 잘 읽은 것도 있지만 그때는 마침 전국적으로 외식업이 다변화하던 때였다. 정희는 메뉴를 차별화한 프랜차이즈 식당을 늘리고 키웠다. 경험이 별로 없는데도 열정만으로 모든 것을 해내더라고, 정희의 조카는 말했다.

그런데 무서웠어. 어딘지.

정희의 조카가 덧붙였다.

눈이 벌겋다는 말이 비유가 아니야. 정말 눈이 빨갛더라니까. 새벽부터 밤까지 직원들을 닦달하고 알바들을 후려친다는 거야. 악명이 높더라고.

정희가 주식과 부동산에 뛰어든 것은 예정된 수순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무렵 정희는 이미 사모펀드와 헤지펀드의 유력한 자금줄이 되어 있었다. 부동산 쪽으로도 승승장구를 이어갔다. 부동산에 한번 맛을 들이면 정상적인 월급쟁이들이 다 바보로 보이지. 이런 말을 한 것은 정희 자신이라고 했다. 주택은 안 돼. 빌딩이어야 해. 그게 정희의 지론이라고도 했다. 사업체를 매개로 정부와 은행에서 돈을 빌려 빌딩을 산 뒤에 주위가 개발되면 되팔아 차익을 남기고 다른 지역의 더 큰 빌딩을 사고…… 그런 전형적인 프로세스가 반복되었다.

그즈음 정희의 조카, 즉 나의 친구는 정희와 다시 만나기 시작했다. 정희의 소식을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 재정립을 했다는 것이다. 정희 쪽으로 자금을 넣어 재산을 불려보려는 의도였는데, 친구 입장에서는 삼촌을 통해서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 것 같았다. 정희의 조카는 이 대목에서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이미 수익이 꽤 돌아온 모양이었다.

그후에도 정희에게는 몇가지 신상의 변화가 있었다. 정희는 두번째 결혼을 했는데, 이번에는 연애결혼이었고, 사랑을 했다는 것이다. 사랑을 했다……고 말하면서 정희의 조카는 어쩐지 아련한 얼굴로 이렇게 덧붙였다. 사랑이라는 단어를 발음하는 삼촌 표정이 잊히질 않아. 뭐랄까, 처음으로 인간의 어휘를 발음해보는 외계인 같았다고나 할까. 그게 인상적이었던 모양이야. 어느 날 밤에 나 혼자 내 집 소파에 앉아 있는데, 사랑……이라고 조용히 중얼거려보게 되더라니까.

게다가 정희는 어느 결엔가 독실한 기독교 신자가 되었다. 원래 불교 신자였던 아내까지 설득해서 교회에 다니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정희는 사실 신이니 구원이니 종교니 하는 것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고 아는 것도 없었지만, 우연한 기회에 발을 들이고 나서는 거기서 새로운 세계를 발견한 것처럼 굴었다. 정희는 자신이 가진 재산의 많은 부분을 교회에 쏟아붓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 특유의 강박이 느껴질 정도였다고 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교회에 다니기 시작한 이후 정희는 심신의 안정을 찾은 것처럼 보였다. 눈도 붉어지지 않았고 직원들을 괴롭히지도 않았다. 다만 누구를 만나도 교회에 다니도록 강권하는 바람에 대화가 어려울 지경이었다고 한다.

 

내가 정희를 다시 조우하게 된 것은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지난 뒤였다. 인생은 언제나 자신의 방식으로 흘러간다. 누군가에게 인생은 수십수백가지의 다채로운 얼굴로 보이고, 누군가에게 인생은 단 하나의 얼굴만으로 떠오른다. 어느 편이 좋은 것인지는 아무도 단언할 수 없겠지만.

나는 서울 외곽으로 병원을 옮긴 상태였다. 간호사가 둘뿐인 작은 병원이었다. 신경정신과는 사회적 인식이 변하면서 환자가 늘어나는 추세였지만 나는 병원을 키울 생각이 없었다. 대개 이런 개인병원에 오는 사람들은 불면이나 일시적 우울감 같은 상대적으로 가벼운 장애를 호소하게 마련이었다. 스트레스 등 다양한 요인에 의해 뇌 신경전달체계에 화학적 불균형이 발생한 케이스들. 다정하게 환자를 맞이하고 다정하게 질문을 하고 다정하게 상담을 해주지만, 결국 모든 것은 약물치료로 수렴된다. 조금이라도 감당하기 어려운 환자는 인근 대학병원으로 보낸다. 별다른 특이질환 없이 정기적으로 처방전을 받아가는 고객들을 확보하는 게 병원 운영의 관건이었다.

그 무렵에…… 실은 나 자신이 약물로 지쳐가고 있었다. 나는 병원에서 빼돌린 오피오이드를 스스로에게 투여했다. 그게 아니면 지탱이 되지 않는 날들이었다. 어째서? 무엇 때문에? 나는 그것을 알 수 없었다. 나는 경제적으로 상류층이었으며, 고향에 내려가 지내는 부모 외에는 부양해야 할 가족도 없었다. 외로움? 그런 것에 시달리는 성격이었다면 애초에 이런 삶을 택하지도 않았다. 의식의 심층을 헤집으며 보낸 인생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사실 내가 한 일은 시상하부와 뇌하수체의 특정 부위를 마비시키거나 활성화시키는 것뿐이었다. 또는 세로토닌과 도파민과 에스트로겐과 테스토스테론의 적절한 비율이 중요한 삶. 나는 중얼거리곤 했다. 의식의 심층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곳에는 텅 빈 물질덩어리가 있을 뿐이다……

깊은 웅덩이에 빠진 채 한치도 움직이지 못하는 느낌이었다. 어쩌면 여전히 물속에 머리를 들이밀고 있는 기분이었는지도 모른다. 잔물결들이 보이고 빨간 물통 바닥이 보이는 곳에서 살아온 것인지도.

그리고 어느 순간, 그 바닥에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멀고 깊은 바닥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다. 불안한 목소리, 흔들리는 목소리. 이해할 수 없는 목소리. 무서운 목소리. 여러분…… 여러분…… 묵념을 합시다…… 묵념을 합시다, 여러분.

 

어느 날 나는 익숙한 이름의 환자를 맞이했다. 모니터에 뜬 환자의 이름과 생년이 내가 아는 사람과 겹쳤다. 설마 이 곽정희가…… 그 곽정희일까. 나는 나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문을 열고 들어온 환자는 키가 작았다. 키는 작았지만 왜소해 보이지 않았는데 아마도 짧은 목과 다부진 어깨 때문인 듯했다. 얼굴이 갸름하면서도 각이 진 느낌이었다. 표정은 무표정. 얇게 다문 입술. 어디선가 낯이 익은, 아니 실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바로 그 얼굴.

나로서는 사관학교에서의 조우 이후 무려 20여년 만이었다. 정희로서는 초등학교 이후이니 30여년 만일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정말 20년, 30년 만의 만남인 걸까. 나는 어제 본 사람을 다시 본 듯 단박에 그를 알아보았다. 순식간에 세월의 흐름을 잃고 영영 흐르지 않는 시간 속에 들어와버린 기분이랄까.

정희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정희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정희 쪽이 정상이겠지. 30년이라면 사실 어느 것도 확신할 수 없게 된다. 게다가 나는 백 킬로그램이 넘을 만큼 몸이 비대해졌으며 고급 금테 안경을 쓴 얼굴에는 이제 중년 남성 특유의 어두운 빛깔이 드리워져 있었다. 게다가 두어차례 보톡스를 맞은 뒤였다. 30년 전의 나를 데려와 지금의 내 옆에 세워놓는다 해도 동일인이라고 생각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었다. 나는 짐짓 모니터를 바라보며 덤덤하게 물었다. 어떻게 오셨나요.

정희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 표정은 불안정했고 눈빛은 흔들렸다. 근육을 통제하지 못하는 듯 간헐적으로 얼굴을 씰룩거렸다.

그게, 나 자신이 자꾸 이상하게 느껴져서 말입니다.

나는 가만히 다음 말을 기다렸다. 오른쪽 눈가의 근육이 떨리는가 싶었는데, 정희의 입에서 문득 과격한 단어가 튀어나왔다.

자꾸 살의를…… 살의를 느낀다 말입니다. 사실 나에게는 살의 같은 걸 느낄 이유가 없어요. 나는 돈이 많습니다. 돈을 많이 벌었지요. 식당도 하고 공장도 하고 주식도 하고 부동산도 하고, 말 그대로 미친 듯이 벌었으니까. 이제 내가 가진 돈으로 이 나라를 바로 세우고 싶은데, 지금 이 나라가 어디로 가는지 걱정이 돼서 잠이 안 온다 말입니다. 잠이 안 올 뿐만 아니라, 자꾸 살의를 느껴요 살의를. 이게 비정상이라는 건 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만……

나는 심상한 어조로 물었다.

나라 걱정은 비정상이라고 할 수 없는데…… 살의를 느끼신다는 건 어떤 건가요?

그게, 그게 좀 불분명하다 이겁니다. 살의를 느끼기는 느끼는데, 그 살의가 뭘 어떻게 하려는 살의인지 모르겠다…… 대통령인가? 국회의원들인가? 가족이나 지인들인가? 젊은 것들인가? 그런데 내가 그런 것에 살의를 느낄 리가 없잖아. 나는 돈도 많고 아쉬운 게 없는 사람인데…… 그런데 내 안에서 무언가가 자꾸 그러라고 말하는 것 같은……

말을요? 말을 합니까? 무언가가?

아니, 말을 한다고 해서 무슨 환청 같은 게 아닙니다. 나는 환청이나 환상을 보는 나약한 사람이 아니니까. 불분명하지만 명확한 무언가를 느낀다 말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혼자가 아니다……

내가 혼자가 아니다.

그렇지요. 혼자가 아니다. 내가, 매일 기도를 합니다 기도를. 기도를 하면 마음이 편해지거든요 확실히.

기도를 하면 마음이 편해지신다. 그렇지요. 그건 대개가 그렇습니다.

그래서 내가 기도하는 걸 좋아합니다. 아주 좋아합니다. 기도로 하루를 시작해서 기도로 하루를 끝낸다 말입니다.

그때 내 입에서 엉뚱한 말이 튀어나왔다.

묵념은 어떻습니까?

네? 묵념이요? 묵념? 묵념 말입니까?

정희가 나를 바라보며 되물었다. 나는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웅얼거리듯 말했다.

아, 꼭 묵념이라기보다는……

갑자기 흥분한 표정이 되어 정희가 급하게 내 말을 끊었다. 그의 말이 빨라졌다.

맞습니다. 맞습니다. 묵념을 좋아하는 것이죠. 기도든 묵념이든 그런 걸 하고 있으면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이 드니까. 내가 이렇게 한 사람으로서 살고 있지만 한 사람이 아니다. 개인이 아니다. 그런 걸 깨닫게 되는 거거든요 그게. 그런데 파업을 해, 파업을.

네? 파업을요?

그렇습니다. 파업을 하지요. 파업을 말입니다 저것들이. 집단으로. 단체로. 자기들 한달 임금이 적다고 파업을 하는 거야. 최저임금도 올랐는데, 토요일도 쉬고 일요일도 쉬는데, 더 올려달라고, 더 쉬게 해달라고 파업을 하는 거야 이 새끼들이. 그렇게 놀아서 일본을 어떻게 이기려고 해. 미친 듯이 일을 해도 모자랄 판에. 이제 중국한테도 지고 일본은 저 멀리 가고. 내가 이 나라를 어떻게 키워놨는데.

……그래서 살의를 느끼신다?

그게, 나는 그러고 싶지 않은데, 자꾸 그러라고 부추기는 느낌이다 그 말입니다.

누가 부추기나요? 누가? 구체적으로?

아니, 구체적으로 누가 딱 그런다는 게 아니라, 그런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 말입니다. 미친 듯이 일을 하고 일을 감독하고 그러다가 문득 고개를 들면 여기가 어딘가 싶고 누가 나를 대신하는 것 같고 그런 느낌이……

거기까지 말하고 정희는 갑자기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나도 정희를 바라보았다. 정희가 뭔가 의아한 표정으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런데 우리, 어디서 만난 것 같지 않습니까?

나는 모니터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 그런 얘기 많이 듣습니다. 제가 흔한 얼굴이라서요. 모두들 어디서 본 것 같다고들 하죠.

그렇군요. 흔한 얼굴이시다. 그렇습니다. 사람이란 참으로 다양하면서도 단순한 얼굴을 갖고 있기 때문에……

정희는 그렇게 말했다. 그 순간 또 엉뚱한 말이 내 입에서 튀어나온 것은 왜였을까. 무언가가 나를 콕 찌른 듯한 느낌 때문이었을까.

혹시…… 물에 머리 넣는 걸 좋아하시지 않습니까?

그렇게 말하자마자 나는 나도 모르게 얼굴을 찌푸렸다. 정희는 무슨 소리냐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평정심을 되찾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나는 더듬거리고 있었다.

아, 제 말씀은…… 약물, 약물 치료를 하면 좋아질 수 있다…… 그런 말씀입니다.

나는 다급하게 치료방법과 기대효과를 주절대기 시작했다. 환청에 대해서는 정밀검사를 해봐야 알겠지만 지금 얘기한 정도로는 특이질환이 의심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스트레스 때문에 생긴 일시적 증상일 거라고 나는 정중하게 설명했다. 정희는 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런 표정이 없는 얼굴이었다.

 

그후 정희는 다시 병원을 찾지 않았다. 안정제 몇알로 치료가 되었을 리는 없었다. 하지만 누구든 병원을 다시 찾지 않는다면 그것으로 좋은 것이다. 완쾌가 되었다고 병원을 찾아 감사를 표하는 환자는 없으니까.

정희를 다시 마주친 건 병원이 아니었다. 어느 주말, 나는 하릴없이 광화문을 걷고 있었다. 목적 없이 걷는 것만이 나를 견디는 방법이었다. 혼자 도심 산책이나 하다가 교보에 들러 새로 번역돼 나왔다는 미시마 유키오의 자서전을 구해 올 요량이었다. 그리고 또 술을 마시러 가겠지.

토요일이었기 때문에 도심에는 형형색색의 깃발과 팻말을 든 시위대들이 눈에 띄었다. 세종문화회관 쪽에서는 무슨 문화제가 열리고 있었고, 조선일보 사옥 근처에도 시위대가 있었다. 나는 시위하는 사람들 사이를 유영하듯 앞으로 나아갔다. 그런데 어느 시위대였던가, 단상에 올라가 있는 사람의 얼굴이 낯익었다. 조선일보를 지나 교보 쪽으로 걷던 나는 얼어붙은 듯 걸음을 멈추었다. 정희였다.

정희는 마이크를 들고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전국 무슨 연합회 회장이라는 것 같았지만 무슨 연합회인지는 들리지 않았다. 단상 앞에 모인 사람들 사이로 십자가도 보이고 태극기도 보였다. 나는 정희를 먼발치에서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정희가 뭐라고 외치는지는 들리지 않았다.

정희는 단상이라는 공간에 잘 어울려 보였다. 표정도 목소리도 제스처도 바로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처럼 자연스러웠다. 그러던 어느 순간, 정희와 나의 눈이 마주쳤다. 거리가 꽤 멀었기 때문에 어쩌면 나의 착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정희가 내 쪽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나도 정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우리는 서로를 오래 바라보았다. 노려보았다고 해도 좋았다. 주위의 소음이 천천히 가라앉았다. 낙엽이 지고 있었다. 석양이 드리우고 있었다. 이윽고 깊은 침묵이 시작되었다.

정희의 사망 소식이 들려온 것은 그로부터 며칠 뒤였다. 나는 놀라지 않았다. 정희의 조카, 그러니까 내 친구가 정희의 부고를 알려왔다. 정희가 청와대 앞에서 분신을 했다는 것이다. 정희의 이름은 포털의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서 몇시간 동안이나 수위에 올랐다. 여러가지 사연이 화젯거리가 되고 정치적 쟁점도 있었던 모양이지만 나는 그런 것에 관심이 가지 않았다. 나는 정희의 몸에 불이 붙었다는 사실만을 실감하고 있었다. 나는 뉴스가 떠 있는 컴퓨터 화면을 끈질기게 노려보았다. 정희가 없다. 정희가 죽었다. 정희가 영영 사라져버린 것이다. 나는 그것 외에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얼마 후 나는 병원을 처분하고 고향으로 내려갔다. 고향이라고는 하지만 아주 어릴 때 떠난 곳이라 낯선 서해안의 소도시일 뿐이었다. 서울 생활에 지친 부모님이 해안가에 새로 집을 지어 거주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로서는 몸만 옮겨가면 되었다. 어째서 의사 일까지 그만두고 고향에 내려왔는지는 아무도 묻지 않았다. 그런 걸 물어볼 만한 사람이 없기도 했지만, 누가 묻는다고 해도 딱히 대답할 말이 있는 건 아니었다. 내가 나 자신에게조차 이유를 댈 수 없었으니까.

모친과 부친은 이제 정신줄을 깜빡깜빡 놓고는 했다. 두분은 서로를 돌보면서 말년을 보내고 있었다. 나는 입주도우미를 들이는 것으로 간병을 대신해왔다. 몸과 마음이 성치 않아도 서로를 위하면서 살면 견딜 만한 모양이었다. 뇌에는 안개가 끼어 있고 몸의 기관들은 낡고 녹슬었지만 두분은 서울에서 살던 시절보다 더 행복해 보였다. 전직 의사로서 할 말은 아니지만, 그건 어쩌면 바다 덕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깊고 너른 물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영혼의 무언가가 치유되는 것인지도.

어느 날, 휠체어에 앉아 바다 쪽에 시선을 두고 있던 모친이 문득 입을 열어 나에게 말했다. 내가 옛 시절을 추억하던 와중이었다. 나 역시 모친 옆에 쭈그려 앉아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었다.

기억하니? 어렸을 때는 네 이름도 원래 정희였다. 그런데 네가 초등학생 때 그 양반이 죽고 난 뒤에 이름을 바꿨지. 어쩐지 그래야 할 것 같아서.

나도 알고 있었다. 이름 때문에 비슷한 운명을 반복할까 두려워한 부모님은 사건 이후 내 이름을 전혀 다른 것으로 바꾸었다. 나는 이름에 운명이 각인되어 있다는 성명학의 원리 같은 것은 알지도 못하고 믿지도 않는다. 하지만 때로 이름이 우리의 전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내 이름이 정희였을 때를 생각하면, 정희였던 내가 거울처럼 바라보던 내 친구 정희를 생각하면, 그리고 두 정희가 함께 머리를 물속에 넣고 있던 시절을 떠올려보면 말이다.

지금도 나는 그날 나를 사로잡았던 갑작스럽고 이해할 수 없는 감정에 대해 생각할 때가 있다. 30여년 전 그날. 나와 정희가 초등학생이던 그날. 그러니까 물통에서 먼저 머리를 꺼낸 내가, 여전히 물통에 머리를 담그고 있던 정희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던 그날.

너는 망령이 들 거야.

나는 나직하지만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정희는 물속에 고개를 박고 있었기 때문에 나의 말을 듣지 못했을 것이었다. 나는 정희에게 다시 말했다.

너는 망령이 들 거야.

나는 반복해서 말했다. 어쩐지 화가 난 목소리라고 해도 좋았다. 이 말은 꼭 해야 한다는 다급한 마음에 시달리고 있었지만, 정작 나 자신은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초등학생이 어째서 ‘망령’ 같은 이상한 단어를 썼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건 마치 ‘정신적’이라거나 ‘교분’ 같은 단어처럼 이상한 순간에 이상한 방식으로 내 입에서 튀어나왔다.

그렇게 말한 뒤에 나는 물속에 머리를 담그고 있던 정희에게 한발 한발 다가갔다. 지금 생각해도 의아한 일이다. 내 영혼의 어디에 그런 감정이 숨어 있었던 것일까. 나는 정희의 머리를 붙잡고 더 깊은 곳으로 밀어넣어 그대로 숨을 못 쉬게 하고 싶다는 무서운 감정에 휘말려 있었다. 그것은 갑자기 내 몸속에서 솟아오른, 완강한, 명백한, 살의였다.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거칠게 나를 사로잡아 도무지 거역할 수 없는……

내가 그런 감정에 사로잡힌 채 한발 한발 다가가던 순간, 정희가 홱, 물통에서 고개를 꺼내 들었다. 정희의 턱에서, 정희의 귓불에서, 정희의 머리카락에서, 물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 지금도 나는 그 물방울들 하나하나를 눈앞에서 보듯 정확하게 떠올릴 수 있다. 정희는 숨을 몰아쉬며 나를 바라보았다. 나도 얼음처럼 굳은 채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정희를 바라보았다.

이윽고 정희가 입을 열었다. 심상한 어조였다.

망령……이 뭐야?

나는 손을 천천히 들어 올려 내 입을 막았다. 비명이 터져 나올 것 같았다. 나는 정희를 그대로 두고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쳤다. 몸을 돌려 정희에게서 미친 듯이 달아났다. 이곳에서 멀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화급한 감정만이 나를 지배하고 있었다. 무언가가 내 머릿속에서 소리를 지르는 느낌이었다. 의미가 사라진, 단지 소리를 지른다는 느낌만 남은, 급기야 악을 쓴다고 해도 좋은……

나는 그날 나를 사로잡았던 살의에 대해 제법 오래 생각해왔다. 거의 평생을 생각해왔는지도 모른다. 때로는 그게 어떤 종류의 것인지 알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가 머리로 안다고 해서 진정으로 자각하고 있는 것이 얼마나 되겠는가?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 모두를 우리가 진실로 깊이 자각한다면, 이 세상은 벌써 천국이 되었거나…… 지옥이 되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