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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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 朴濬

1983년 서울 출생. 2008년 『실천문학』으로 등단.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가 있음. mynameisjoon@hanmail.net

 

 

 

겨울의 말

 

 

저쪽 밭은 그냥 두려고, 그이도 이제 세상모를 텐데 땅도 좀 쉬어야지, 망초든 개망초든 알아서 자라고 피다가 한 칠월쯤 되면 희고 희어져서 여기서 보면 꼭 메밀 심은 것처럼 보일 거야, 너 오려거든 지난번처럼 꽃 사오지 말고 술 사와라, 아니 빈손으로 와, 대신 꼭 와, 하는 말 흘러.

 

내가 원래 이렇게 잘 울어, 어려서부터 그랬어, 청계천 양복점에서 일할 때 손에 기름은 늘 묻어 있지, 슬픈 생각은 자꾸 나지, 무엇으로 닦냐, 팔뚝으로 쓱 문지르지, 그때부터 버릇이 됐어, 하는 말 흘러.

 

이름이 왜 수영이에요? 왜 수영인 것이에요? 제가 수영이라는 사람을 오래 좋아했었거든요, 그런데 죄송하지만 수영이가, 수영이가 그쪽 이름이 아니면 안 될까요? 하는 말 흘러.*

 

무주와 구천동 그리고 장계 흘러, 큰 바람과 높은 고개 흘러, 낯을 가리는 오랜 버릇 흘러, 불타 죽는 사람이 없던 새벽 흘러, 끼니를 거르고 맞이하는 정오 흘러, 해야 할 일과 미뤄둔 일도 흘러, 눈을 감으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난 이의 낯이 성큼 다가와 있고, 그마저도 흐르고 흘러,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가지런히 발을 모으고 있는 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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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의 말. 함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