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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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록 庾炳鹿

1982년 충북 옥천 출생. 201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목숨이 두근거릴 때마다』가 있음. qudfhrdb@naver.com

 

 

 

그랬을 것이다

 

 

불 끄고 누우면

어둠의 완력이 천천히 그러나 완강하게 윗도리와 아랫도리를 벗기고 속옷까지 아래로 내리는 느낌

 

꼼짝할 수 없어서

무서워서

 

눈 뜨지 못한 채

어둠이 물러가고 아침이 오기만 기다릴 때

 

차갑지만 부드러운 손길이 젖은 천으로 내 벗은 몸을 닦는 느낌

 

어둠이

눈동자에 머물던 풍경을 지우려는지 감은 눈을 다시 쓸어내리고, 세상의 소리를 막아버리려는지 두 귀를 막고, 누구의 이름을 부르지 못하도록 입을 막아버리고

 

그리고

정갈한 옷을 다시 입히는 느낌, 내가 더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느낌

 

무력한 나는

누가

차가운 침묵을 물리치고 와서, 두려움을 멀리 내쫓으며 와서, 내 머리맡에 와서 어둠의 팔목을 비틀며

 

눈을 떠라, 나쁜 꿈을 꾸었구나, 괜찮다, 이제 소리 내어 울어도 괜찮다

토닥여주길 기다리는데

 

아무도 오지 않는다

더 어두워진다 기다림이 차가워진다 대낮의 기억이 어두워진다 모든 게 얼어버린다

 

그랬을 것이다

너는 그 차가운 어둠 속에서 기다렸을 것이다

그 작고 어린 게

기다리다가

어둠처럼 차가워졌을 것이다

그랬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