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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최정화 崔正和

1979년 인천 출생. 2012년 창비신인소설상으로 등단.

소설집 『지극히 내성적인』 『모든 것을 제자리에』 장편소설 『없는 사람』 『흰 도시 이야기』 『메모리 익스체인지』 등이 있음.

daysmare@hanmail.net

 

 

 

벙커가 없는 자들

 

 

지구에 재앙이라고 할 만한 폭설이 퍼붓고 있다. 밤새 대기 그물 오천만장을 설치해 얼음알갱이들을 팔백보(vo)나 걷어냈지만, 오분 만에 모든 그물이 파손되었다. 더이상은 통제 불가능한 상황이다. 현재 시각 2029년 7월 15일 오후 1시 12분. 날씨통제센터는 대기 순환 조절능력을 완전히 상실했다.

날씨통제센터의 경비호는 대류권을 벗어나 대류권계면으로 일시적 이탈상태를 유지하기로 했다. 탑승자는 열다섯. 그리고 지금 막 열둘이 되었다. 통제 불가 상황을 보고하기 위해 결재창 입력 버튼을 누르기도 전에, 내부 모니터를 통해 대장과 소장, 팀장이 황급히 비상용 소형 비행선으로 갈아타는 모습을 확인했다. 그들은 아마 우주 벙커로 대피할 거다. 그것이 상관들과의 마지막이라는 건 씁쓸한 일이었지만 그런 감정을 느낄 여유조차 우리에게는 없었다. 화면에서는 거대한 소용돌이가 우리가 살아온 삶을 통째로 집어삼키고 있었다.

날씨를 예측할 수 없는 날들이 이어지고, 무더위와 폭설이 이삼일 간격으로 반복되어왔다. 기상 현상을 관측하고 예보하는 것이 아니라 그 흐름에 맞서 대기를 인위적으로 조정하는 일이 날씨통제사인 우리의 역할이었다. 그리고 업무는 이제 종료되었다. 더이상은 인위적인 방법으로 대기 상황을 통제하는 것이 불가능해진 것이다. 언젠가는 그런 날이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왔지만 막상 그 상황에 처하자 알몸으로 세상에 태어난 처음의 순간처럼 내게 아무런 준비가, 몸을 움직일 최소한의 근육 같은 것조차 준비되어 있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온몸이 덜덜 떨릴 정도로 두려웠다. 그 두려움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겪었던 크고 작은 일들, 어린 시절에 빈집에 혼자 남아 어둠 속에서 온갖 상상을 하면서 겪었던 공포나 사랑하는 연인과 헤어진 다음 날 뭘 해야 할지 몰라 느낀 당혹스러움, 센터의 입사시험에 세차례 낙방하면서 통장 잔고 부족으로 며칠간 굶어야 했을 때 겪은 수난 같은 것들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저 살고 싶었다. 대체로 무덤덤하고 심드렁한, 느리게 뛰는 내 심장에서 거칠고 앙상하고 억척스러운 손이 비집고 나와 그게 무엇이건 붙들겠다며 사방의 허공을 휘저었다. 그게 나를 살게 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붙들겠다고.

우리는 일단 대류권계면에 머물면서 경비호에 먹을 것과 마실 것이 얼마나 남아 있을지 추측해보았다. 그걸로 며칠이나 버틸 수 있을까? 폭설의 기세가 누그러들면 경비호에서 내릴 수 있을까? 여기서 내릴 수 있다고 해도 당장 갈 곳이 있을까? 집은 일찌감치 폭풍에 날아가버렸을 텐데. 마음을 다잡을 만한 희망의 단서를 찾기도 어려웠다. 이제 어떡해야 하지? 이번 달 월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감사해야 하는 건가? 나는 가끔 집값이 밀리는 것을 눈감아주던 집주인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는 신도시의 재개발 구역에 투자를 하려고 적금을 붓고 있었다. 거주민들을 내쫓고 지어 올리던 신축 아파트도, 거래 중이던 은행의 건물도, 만기일이 두달 남은 적금 통장도 모두 날아가버렸을 것이다. 그가 꿈꾸던 안락한 노후도, 고질병이었던 관절염도, 종합 암보험을 든 몸뚱이도, 인기가수를 모델로 새 광고를 찍고 있던 보험회사와 보험회사의 직원들, 그들의 소중한 가족도 다 함께 폭설에 파묻혀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경비호에 남은 이들은 나처럼 벙커가 없는 자들이다. 운 좋게 재난 현장을 피할 수 있었지만 이후의 일은 보장할 수 없었다. 허공에서 떠돌다 굶어 죽을지도 모른다는 방정맞은 생각이 들자 갑자기 며칠을 굶은 듯이 배가 고파오기 시작했다. 그 생각을 떠들어대자 옆 좌석에 앉아 있던 아영이 조종석 아래쪽 서랍을 열어 토스트용 식빵 한덩어리를 보여주었다. 당장 굶어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두툼한 빵 덩어리의 실체 앞에서 일시적으로 사그라들었다. 진정이 되자 트림이 나왔다. 배가 고픈 게 아니라 소화불량이었다. 허기가 사라지자 목이 말랐다. 생수병을 꺼내 목을 좀 축이려다가 이제는 마실 물도 귀하다는 것, 한모금이라도 아껴야 버틸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미래가 없음을 직감하자 과거의 기억들이 물밀듯 밀려오기 시작했다. 발목을 다쳐 아버지의 등에 업힌 채 등교하던 날들의 하늘, 교회에서 받은 사탕을 친구의 수첩과 바꾸고 들떴던 마음과 그 수첩을 물웅덩이에 떨어뜨려 통째로 젖어버렸을 때 막연하게 느꼈던 희로애락의 기미들, 날씨통제사가 되려면 기후에 대한 정보도 풍부해야 하지만 침착을 유지하는 심리 훈련이 기본이라던 기후중학교 선생님의 말씀, 오로지 공부에만 매진했던 고등학교 시절과 대기통제학과를 전공으로 선택할 때 느꼈던 환경에 대한 사명감. 센터에 입사하고 부딪혔던 이상과 현실 간의 괴리와 그것들을 조율하면서 성숙하고 성장해온 날들. 날씨통제센터로 면접을 보러 간 날도 떠올랐다. 착각을 하는 바람에 근처의 날씨통제협의회로 잘못 찾아간데다가 내 차림새는 갑자기 불어닥친 한파에 맞지 않게 터무니없이 얇았다.

팀장은 내가 장소를 잘못 찾은 것이나 그래서 십분 정도 지각한 것에 대해서 탓하지 않았다. 센터를 찾아오는 사람들 중 간혹 그런 경우가 있다며 내가 마음을 편히 가질 수 있도록 배려했다. 팀장은 완벽을 추구하기보다는 배려심이 많고 인간미가 있는 사람이었다. 거기까지 기억나자 그가 날씨통제센터에서 자기가 맡은 역할을 완수하는 것보다 위험한 상황에서 벗어나는 것을 더 높은 순위로 두고 회사를 나간 것, 즉 경비호를 탈출한 것에 대한 배신감을 중화시킬 수 있었다. 한순간 불어닥친 폭설처럼 전혀 예상할 수 없는 일은 아니었다. 대기 불안정 상황은 점점 더 심해졌고, 날씨가 기후센터의 통제권을 슬슬 벗어나기 시작한 건 벌써 십년 전의 일이었다. 모두가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상황을 바꾸기 위해서 삶 전체를 바꿔야 한다는 데에 엄두를 내지 못했던 건 우리 인간들이다. 날씨는 인간들이 중대한 결정을 내리기를, 자신들의 삶을 통째로 바꾸기를 아주 오랜 세월 동안 기다려왔다.

나는 팀장과 나누지 못한 인사를 보고서로 대신하기로 했다. 팀장이 근무 지역을 임의로 이탈했다는 내용이었다. 보고서 입력 화면에서 기안자는 원래 소장이었고 팀장이 이탈하기 전에 소장도 나갔지만 일단 계속 써보기로 했다. 그건 고프지도 않은 배를 불려 불안감을 떨쳐내겠다는 것만큼이나 어리석은 짓이었다. 하지만 내게는 그 짓이라도 하지 않고는 버틸 재간이 없었다. 그걸 끝내는 일은 더 두려웠으니까. 그 무의미한 과정이 계속 이어지기를, 끝나지 않기를 바라는 것, 그게 무지한 내가 그 순간에 바랐던 전부였다. 그다음에 내가 할 일이 뭔지 잘 몰랐으니까……

보고서를 완성하지는 못했다. 나는 어리석었지만, 다행히도 어리석은 일을 지속할 정도로 뻔뻔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때로는 그저 형식에 머무는 정도로 만족할 수 있었다면! 스스로를 내가 맡은 일과 동일시하지 않았다면! 그런 측면에서 내 상관들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기도 했다. 이 삶을 살면서도 다른 삶을 준비하고, 하루아침에 다른 방향으로 돌아서는 뻔뻔스러운 경쾌함. 직업은 그저 역할일 뿐이라고 여기는 가벼운 태도 같은 것들을…… 아니다, 아닐 수도 있었다. 내가 이런 감정들에 시달리는 것은 어쩌면 단순히 그들에게 주어졌던 대안의 삶이, 벙커가 내게는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만약에 내게도 그들처럼 갈 곳이 있었다면 나는 그것을 축복처럼 받아들고 그들보다 더 먼저 경비호에서 뛰쳐나갔을지도!

 

동료인 재원은 제법 침착했고 불필요한 에너지를 소모하는 게 지금의 상황에서 사치스러운 낭비라는 걸 일깨웠다. 이런저런 충동으로 바삐 움직이는 내게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 있는 편이 더 도움이 될 거라고 조언했다. “호흡을 가다듬고, 피스, 피스.”재원의 목소리는 나지막하고 침착했다. 그가 평소에 요가를 수행하면서 심신을 수련한다고 했을 때 비웃었던 것을 반성했다. 평소와 비슷한 정도의 감정 사이클을 유지하는 그와 달리 나는 뭔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호흡이 가빠졌다. 호흡을 가다듬기도, 생각을 멈추기도 어려웠다. 재원이 가르쳐준 대로 심호흡을 몇번 하고 난 뒤에 잠을 청하기로 했다. 최소한으로 움직일 것. 불필요한 일은, 생각조차도 하지 않을 것. 그게 당시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잠깐 졸며 꾼 꿈에서 지구는 폭설이 닥쳐오기 전의 기후 이상현상 기간이었고 나는 여전히 날씨통제 업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잠에서 깼을 때의 허망감이란. 도로 그 꿈속으로 기어들어가고 싶을 뿐이었다. 침대 2층에서 들려오는 재원의 숨소리를 들으며 다시 가빠지는 호흡을 잠재웠다.

 

다음 날 오전에는 경비호에 남은 열두명이 모여 회의를 했다. 일단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데 의견이 일치했다. 언제가 좋을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했고, 외출의 목적과 방식에 대해서도 각양각색의 이야기들이 나왔다. 최종적으로 합의된 내용은 밖에서 식량을 구해 와야 한다는 거였다. 그다음을 생각할 여유는 없었다. 우리는 오늘 당장 먹을 음식이 없었다(연료는 일주일 분량밖에 남지 않았는데 그 문제는 이후로 미뤄졌다).

착지 지점을 정하고 그 주변 지역의 날씨를 조정하기로 했다. 식량이 없고 연료가 부족한 것과 마찬가지로 기후재료들도 모자랐다. 우리는 합성물질의 비율을 높여서 대기 순환을 시도하기로 했다. 합성물질로 대기를 순환시킨다는 건 비상사태에 사용하는 전략이다. 교과서의 맨 마지막 단락, 그것도 작은 네모칸 안에 대여섯줄로 적혀 있었던 팁으로, 시험 문제에 나올 리도 없었고 실제로 실행할 일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경우였다. 이 결정이 지구 전체적으로는 상황을 더 악화시킬 수 있음은 물론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했고, 합성물질의 비율을 높인다는 것은 위험 수위가 더 높아진다는 뜻이었다. 그래도 이대로 밖에 나가는 것은 죽음을 뜻했다.

우리는 매주 월요일에 그랬듯이 날씨를 계획했다. 그즈음의 날씨는 예보가 아닌 결정이었다. 영화관의 상영시간표를 짜듯이 날씨통제사들은 날씨를 짰다. 매일매일의 미세먼지와 이산화탄소 분량을 확인하면서 남아 있는 기후재료들의 양을 고려해 적절한 온도와 습도를 계산했다. 물론 기후재료는 언제나 부족했다. 쌀은 늘 부족하고, 아이들은 늘 굶주리고 있다. 그래도 감자와 고구마와 옥수수를 섞어서 한그릇 분량의 밥을 식탁에 올리는 가난한 부모가 된 기분으로 우리는 날씨를 구상하곤 했다.

고백건대 우리는 기후재료에 플라스틱으로 된 합성물질을 섞었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이미 몇년 전에 지구의 대기는 순환을 멈추었을 것이다. 당시 우리 사이에서 유행하던 농담이 있다. “바셀린의 개발자가 매일 한 스푼씩 바셀린을 먹었는데 백살까지 살았다고 해. 그리고 만약 그가 바셀린을 먹지 않았더라면 그보다 더 오래 살았을 거라지.” 기후재료에 합성물질을 섞는 일의 안전성에 대해서 아무도 확신할 수 없었다.

합성물질의 폐해는 곳곳에서 나타났다. 성인뿐만 아니라 신생아들의 신체에서 미세합성물질이 검출되었을 때 센터에서는 긴급회의가 열렸고, 일주일을 넘기는 긴 토론 끝에 시민들에게는 신종 바이러스로 인한 것이라고 알리기로 했다. 우리는 그보다 나은 대안을 찾지 못했고, 대기의 순환을 그렇게 가까스로 지속하는 동안 또다른 대안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은 합성물질을 이용해서 얼어붙은 땅을 녹여야 했다. 보유하고 있는 기후재료를 전부 쏟아부으면 일부 지역이나마 선택적으로 온도를 높이고 습도를 낮추는 것이 가능했다.

 

폭설이 초토화시킨 건물들의 잔해 위로 얼음이 녹기 시작했다. 재원이 함께 그 모습을 지켜보며 하품을 하며 온몸을 길게 늘였다. 그의 몸에서 오랫동안 씻지 못한 냄새가 올라왔다. 내 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아무 상관 없었다.

“이틀 뒤면 외출이 가능할 것 같지?”

“아마도.”

우리는 피크닉을 앞둔 사람들처럼 무덤덤하게 그런 대화를 주고받았다.

경비호에서 불과 이삼 미터 정도 떨어진 길에는 한파에 쓰러진 채 죽음을 맞은 사람들이 쌓여 있었다. 그들의 시체가 서서히 썩기 시작할 거고, 시체를 처리하는 것은 아마 우리의 몫이겠지만, 지금은 일단 외출에 집중하기로 했으므로 그들의 주검을 앞에 두고 잠시 고개를 숙인 채 눈을 감는 것으로 간단하게 의례를 대신했다. 그보다 우선인 것은 식량 사정이었다.

“마트에서 식량을 구할 수 있을까? 물론 그 식량도 언젠가는 바닥이 나겠지. 하지만 그사이에 또 무슨 일인가가 일어나지 않을까? 이제 먼 미래에 대해서는 전혀 상상하지 않게 되었어.”

재원이 나를 비웃었다.

“여진아, 정신 좀 차려. 마트가 어디 있어?”

나는 밖으로 나간다는 것에 몰두한 나머지 바깥에 마트나 식량을 보유하고 있는 어떤 건물도 남아 있지 않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렇구나. 헛웃음이 나왔다. 식량을 찾는 게 아니라, 무엇이 식량이 될 수 있을지를 찾아야 했다.

“무슨 생각 해? 벙커라도 습격할 기세네.”

재원은 농담을 했지만 그 순간에는 그게 더 현실적인 대안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는 팀장의 벙커에 침입해서 그의 냉장고 안에 든 것을 빼앗고 싶었다. 그의 것을 내 배낭에 옮겨 담고 있는 모습을 떠올리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일주일 후에 1차 외출이 진행되었다. 진행 요원은 모두 여섯명으로, 나와 재원도 참여하게 되었다. 근방의 상황을 살피는 것 정도를 목적으로 간단하게 끝내기로 했다. 혹시 에너지원이 될 만한 것들을 발견한다면 가지고 오지 않고 리스트를 작성하기로 했다. 우리는 방독면을 쓰고 방한복을 착용했다.

걷기 시작한 지 오분도 채 되지 않아 여섯명 모두 온몸이 얼어붙었다. 추위 때문이 아니라 소름이 끼치는 오싹함 때문이었다. 기온을 높였기 때문에 시체들이 부패되어야 했는데 방부 처리를 한 듯 사망 당시의 모습 그대로였다. 의문은 곧 풀렸다. 아영이 내 방한복에 들러붙은 육식곤충을 발견했던 것이다. 그가 내 허리께에 손을 대고 뭔가 떼어냈다. 그게 육식곤충의 변종이라는 것을 알아본 것은 한주였다.

육식곤충은 시체곤충이라고 불리기도 했는데, 유충이 시체를 먹이로 삼기 때문이었다. 성충이 분비물을 시체에 뿌리면 시체는 썩지 않고 유지되고 유충이 양분으로 삼을 수 있는 물질로 바뀐다. 성충은 시체 안에 알을 낳고, 알에서 유충이 깨어나 사람의 시체 안에서 양분을 먹으며 자라난다. 그게 우리가 본 인류의 미래였다. 겉은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들의 내부는 곤충의 유충으로 우글거리고 있었다.

한주는 육식곤충에 대해서 자기가 알고 있는 바를 간단히 설명한 뒤에 머리가 긴 어떤 성인 남성의 시체를 끌어내 피부를 절개했다. 얇은 피부를 벗겨내자 과연 동그랗고 작은 크기의 하얀 알들로 빼곡히 채워져 있었다. 나는 헛구역질이 나왔고 재원은 고개를 떨어뜨렸다. 지천으로 널린 인간의 시체가 변종 곤충의 무리로 바뀌는 건 시간문제였다.

우리는 계획을 무기한 연기하고 1차 외출에서 설치한 카메라를 통해서 바깥 상황을 살폈다. 새로운 변종 곤충이 얼마나 위해한지에 대해서는 몇시간 지나지 않아 알 수 있었다. 알에서 빨갛고 작은 벌레가 날개를 달고 깨어났다. 그다음 날에는 몸집이 몰라보게 커졌고 럭비공이 튀듯이 이리저리 튀어오르기 시작했다. 육식곤충들은 시체 위를 뛰어다니면서 알을 낳았고, 알들은 먹이를 먹고 부화했다.

“모두 사라졌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네.”

재원은 상황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려고 노력하는 것 같았지만 이마는 잔뜩 찡그린 채였다. 재원이 그 말을 하고 나서 일분도 지나지 않아 아영이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우리는 모두 놀라 기겁했는데, 그는 바닥에 쓰러진 상태로 잠에 들어버렸다.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기면이 발생한 것이다. 아영을 침대로 옮기고, 한주가 곁을 지키기로 하고 나머지 인원은 다시 회의를 진행했다.

“만약에 온열효과를 계속 이용하다가 땅속에 잠들어 있던 육식곤충들이 모두 깨어나면 어떻게 되는 거야?”

“시체는 모두 사라지고, 지구상에 인류는 우리만 남는 거야.”

“벙커 사람들을 잊지 마. 그들과 뭔가 할 수 있지 않을까?”

“시체가 눈앞에서 수백마리의 벌레로 바뀌어버리다니 말도 안 돼.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지?”

“그들이 우리와 뭔가 할 생각이었다면 벙커를 설치하지 않았을 거야. 그 사람들이 우리에게 문을 열어줄 것 같아?”

“육식곤충으로부터 시체를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다른 생명을 해친다는 건 영 찜찜한 일이지만 가만히 있는 것은 자살 행위이기도 했다. 한 종의 생명체를 떼로 죽인다는 상상만으로도 나는 얼굴이 붉어졌다. 현규가 표정을 찌푸렸다.

“무슨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낮은 기계음이었다. 육식곤충이니 시체를 파먹는 유충이니 하는 이야기를 하던 중이라 우리 집단 외에 다른 무엇이 움직인다는 게 좀 겁이 났다. 하지만 분명히 뭔가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소리를 따라 내려갔다.

소리는 기계실에서 새어나오고 있었다. 분명히 최소한의 유지 시스템 외에 불필요한 작동을 정지시켰는데 작동하고 있는 기기가 있었다. 지구에 착지할 때 고장이 난 모양으로 기기는 불연속적인 음을 내면서도 묵묵히 작동하고 있었다.

“이게 대체 뭐야?”

재원이었다. 그는 고민할 것 없다는 듯 기기의 전원을 껐다.

“기다려봐.”

그리고 잠시 뒤에 전원 버튼을 눌렀다. 기기가 돌아가도 경비호 안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잘은 모르겠지만, 전력이 어디론가 흘러가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해.”

“어디로?”

“그걸 아는 것보다, 작동을 멈추는 게 우선인 것 같아.”

재원이 버튼을 눌러 기기의 전원을 껐다. 우리 중 누구도 알지 못하는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었다. 그걸 누가 고안해서 작동시켰는지, 그리고 그 사실이 왜 공유되지 않았는지 알 수 없지만 에너지를 끌어다 쓰고 있는 누군가의 공간이 존재한다는 것은 언뜻 희망적인 상황처럼 다가오기도 했다.

얼마 뒤 그게 누군지 밝혀졌을 때 나는 그들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조금 실망했다. 기기가 연결된 곳은 우주 벙커였다. 지구에서의 삶을 포기하고 우주로 날아간 사람들 말이다. 그 장치는 일종의 블랙박스로 내부 음성 녹음과 실시간 송출에 쓰이는 것이었다. 그들은 우리에게 남은 연료로 이곳의 상황을 전해 듣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들을 향했던 그리움과 연민을 모두 내려놓았다.

“이렇게까지 하면서 살아 있다면 스스로에게 변명할 어떤 이유라도 대야 하지 않을까?”

“너같이 생각하는 사람은 세상에 많지 않을걸. 더군다나 벙커로 이동한 사람들 중에서는 한명도 없다고 장담한다.”

“만약에 여분의 에너지가 있다면 무엇을 위해서 쓰여야 할까. 우주로 도망친 소수의 몇명이 자신의 수명을 늘리는 일에? 아니면 벙커가 없어서 목숨이 위태로워진 또 몇명의 사람들을 위해? 그 두 집단에 어떤 차이가 있을까?”

나는 객관적으로 생각하려고 애썼다. 큰 차이가 있다는 생각도 들고 어떤 면에서는 같은 일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지구 전체에 더 이로운 일은 무엇일까? 그리고 만약에 지구에 이로운 일이, 나 자신에게는 해가 되는 일이라면 나는 기꺼이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지구에 여분의 에너지가 없다는 건 분명해.”

재원이 등을 살짝 때렸다. 멸종된 북극곰이 인류의 미래를 걱정하는 꼴이라며 그는 나를 놀렸다.

“다시 말하지만, 지금으로서는 꼭 필요한 일이 아니라면 하지 않는 것이 가장 현명해. 쓸데없는 생각을 할 에너지가 있다면 잠을 더 자두는 편이 나아. 내가 왜 요즘 게임을 하지 않는지 알려줄까? 바둑을 두는 데도 신체에서 이십 와트의 에너지가 사용되기 때문이야.”

“개체가 살아남는 게 목적이라면 네 말이 맞겠지.”

“너는 마치 너 자신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듯이 말하는구나.”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재원이 어깨를 으쓱했다.

“이런 논쟁이 무슨 소용 있겠어? 너와 내가 사이좋게 지내는 것이 또 지금 시기에는 가장 현명한 길이라고. 네 기분을 건드릴 의도는 전혀 없었어. 미안해.”

나는 그의 사과를 받아들였다. 다만 그게 에너지를 절약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는 말을 덧붙이고 싶었다. 나는 그처럼 현실적인 사람은 아니었다. 내게는 지키고 싶은 가치가 있었다. 재원은 그 가치라는 것이 단지 과거의 특정 시점에 유용한 도덕률에 불과하다고 비웃었고 나도 그 말에 동의했지만, 그게 내가 잠시나마 누린 사치라도 해도 좋았다(이 말은 나도 그 가치를 머지않아 내버렸다는 뜻이기도 하다).

“아직도 벙커가 마음에 걸려? 소장이? 팀장이? 그들은 여길 버렸어. 우리 목숨을 내주면서까지 그들을 보호해야 하는 이유가 뭔데?”

재원의 말이 맞았다. 우리에게는 시간이 없었다. 벙커에 있는 자들을 생각할 여유 같은 건. 어떻게 하면 다시 대기를 순환할 수 있을지, 얼음에 갇혔다가 이제는 벌레의 먹이가 된 시체를 어떻게 해야 할지를 서둘러 결정해야 했다.

 

우리는 시체와 함께 육식곤충들을 불태우기로 했다. 팀을 나누어 절반의 인원이 2차 외출을 진행했다. 방독면을 쓰고 방한복을 입었지만 사방에서 날아드는 육식곤충으로 인해서 정신이 혼미해지곤 했다. 곤충들은 번식력이 왕성하여 시체뿐 아니라 땅 위를 완전히 뒤덮었다. 산 사람인 우리를 공격하는 것이 아닌데도 그들에게 적대감이 생겼고 나도 모르게 곤충들을 향해 팔을 휘젓지 않기 위해 몇번이나 팔을 몸에 감았다.

그래도 우리는 매일 2교대로 나누어 그 일을 했다. 처음에는 전혀 줄어들지 않는 것으로 보였지만 일주일 만에 1구역의 시체들을 모두 화장할 수 있었다. 화장을 하기 전과 후에는 모두 함께 기도를 올렸다. 우리에게는 공통의 종교가 없었지만 그 순간에는 신이 있든 없든 신의 이름이 무엇이든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어떤 존재에게 고개를 숙이고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을 고하고 그 일을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간절한 마음을 전했다. 신의 이름이 중요하고, 존재를 증명해야 했던 시절은 좀더 여유가 있었던 셈이었다.

처음에는 끔찍하고 두려운 일이었지만 어느새 익숙해졌고, 나중에는 귀찮은 일이 되었다. 간절한 마음은 차차 가라앉아 귀찮아지기도 했다. 그래도 그 일을 계속했다. 폭탄을 던져 얼음을 가르고 시체를 태우고 나면 흙을 덮었다. 가도 가도 계속해서 부서진 건물의 잔해와 사람의 시체, 그리고 육식곤충의 향연만이 이어졌다.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그 일을 다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저녁이 되어 건물로 돌아오면 얼음을 녹여 몸을 씻었다. 깨끗이 씻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저 오물을 닦아내는 정도로 만족해야 했다. 몸에 들러붙은 것들을 물로 떼어내고, 수건으로 몸을 닦아서 위생상의 문제가 생기지 않을 정도로만이었다. 먹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정도였다. 맛은 따지지 않았다. 영양소가 될 만한 거라면 무엇이든 먹었다. 배불리 먹는다는 건 하루, 혹은 몇시간의 생명을 줄이는 것과 같은 뜻이었다.

우리 열두명의 몰골은 흡사 영화 속에 나오는 고난받은 성자의 모습을 닮아갔다. 그래도 서로에 대한 신뢰는 높아지기만 했다. 근무를 할 때와는 다른 종류의, 동료들에 대한 믿음과 존경심은 내면의 기쁨을 만들어주었다. 아무것도 삶을 위협하지 않았던, 풍족하게 먹고 마시던, 안락한 삶 속에서 느꼈던 불평과 자조 같은 것은 완전히 사라졌다. 그것이 삶이라고, 그저 해야 할 일을 해나갈 뿐인 우리에게는 소박하고 건전한 마음이 싹텄다. 달라진 건 겉모습뿐만이 아니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전혀 다른 사람이라고 해도 좋을 내면의 변화가 일어났다.

우리는 미래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날 소각하면서 있었던 사소한 일들에 대해서 이야기할 뿐이었다. 맛이 없는 음식에 강한 양념을 뿌리듯, 서로를 즐겁게 하기 위해 애썼다.

그리고 이전의 삶에 대해서는 어느새 잊어가기 시작했다. 가끔 지난날의 사진을 보면서 그게 불과 십년 전의 일인데도 과거의 삶이 얼마나 불필요하고 지나친 낭비와 쾌락에 물들어 있었는지를 깨닫고는 어처구니가 없어지곤 했다. 우리는 단 한번 사용할 경기장을 짓기 위해 오백년 된 나무들을 베어냈다. 오분마다 햄버거나 커피 체인점을 만나기 위해서 기꺼이 숲을 파괴했다. 봉우리마다 전선을 매달고 케이블카를 설치했고, 남의 영역이니 책임질 것 없다며 국경선과 해안선 너머의 땅과 바다에 독극물을 몰래 흘려보냈다. 건강에 좋다는 약재를 얻기 위해 곰들을 비좁은 우리 속에 가두었고, 약재의 인기가 떨어지자 그들에게 사료 대신 음식물 찌꺼기를 먹였다. 더 부드러운 살코기를 먹기 위해서 삼십년을 살 수 있는 돼지의 수명을 삼년으로 줄였다. 인간이 바다생물들의 주식량인 크릴을 휩쓸어오는 바람에 굶주린 물범이 펭귄을 잡아먹는 일까지 일어났다. 더 호화롭고 고급스러운 주택이 들어서면 길고양이들은 한순간에 터전을 잃어버렸다. 북극의 얼음이 녹으면서 북극곰의 거주지는 사라졌다. 그래도 인간들은 삶의 방식을 바꾸지 않았다. 우리는 계속해서 건물을 지었다가 예쁘지 않다는 이유로 허물고 다시 지었다. 날씨가 나쁘면 집에 있으면 되지. 추울 때는 난방을 했고, 더울 때는 에어컨을 돌렸다. 티브이에서는 계속 더 맛있는 음식을 먹으라고, 그걸 먹지 않으면 불행해질 거라고 경고했다. 일회용 쓰레기를 먹고 죽은 새들의 사체를 보고도 플라스틱을 포기하는 일은 없었다. 버려진 옷이 넘쳐서 더 묻을 수 없는 상황인데도 계속해서 새 옷들을 만들기 위한 용도로 물을 끌어올리느라 크기가 사분의 삼이나 줄어든 해역도 있었다. 그래도 인간은 멈추지 않았다.

당시의 삶을 떠올리면 지금 우리에게 닥친 재앙을 탓할 수만은 없었다.

그날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나는 근래에 느끼지 못한 이상한 불안감에 사로잡혔다. 뭔가 피부에 닿는 느낌이 들어 소스라치게 놀랐는데 어깨 위에서 머리카락이 스르르 미끄러져 이불 위에 떨어졌다. 예민해졌을 뿐이라고 스스로를 도닥이고 얼음을 녹인 물로 목을 축였다. 정수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너무 많이 마시면 안 되었다.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와 머리칼을 흩날렸다. 경비호가 지구에 착지한 뒤로 전기기기를 사용한 기억이 없으니 선풍기나 에어컨이 작동할 리 없었다. 무심코 고개를 돌렸을 때 나는 경비호의 모서리에 난 틈을 발견했다. 틈을 통해서 바람이 안으로 불어 들어오고 있었다. 틈을 통해서 육식곤충이 알을 밀어넣고 있었다. 나는 일단 덮고 있던 이불로 틈을 막으며 조종석 의자를 개조한 침대에 잠든 재원을 깨웠다.

“어서 일어나! 육식곤충이 경비호를 뚫고 들어왔어!”

 

센터의 1층 로비에서 팀장을 만나기로 했다. 마중 나와 있기로 한 그가 없어서 전화를 걸었다. 그도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나를 찾을 수 없다고 말했다. 로비에는 이십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어떤 젊은 남자가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여자와 커피를 마시고 있을 뿐이었다.

“혹시 잘못 찾아간 것 아닙니까?”

나는 건물의 입구에 걸린 간판을 확인했다. 거기에는 날씨통제협의회라고 쓰여 있었다.

“그러네요. 제가 잘못 왔어요.”

“다행히 그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어요. 지도를 보내드리죠.”

팀장이 보내준 지도 파일을 보면서 다시 찾아간 날씨통제센터는 십분 거리에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날씨통제와 관련한 다양한 업무를 맡는 기관들이 모두 모여 하나의 도시를 형성하고 있었다. 센터에서 무사히 면접을 보고 나오니 비가 개어 하늘이 맑았다. 날씨가 급작스럽게 추워졌다. 불과 어제까지만 해도 반팔 티를 입어도 춥지 않을 정도의 날씨였다. 일기예보를 듣고 가을용 점퍼를 입었는데도 추워서 턱이 덜덜 떨렸다. 근처 마트에서 할인가격에 파카를 사 입었다. 길고양이 한마리가 골목 사이로 쏜살같이 지나갔다. 저들은 어떻게 겨울을 버티지? 그 생각은 금세 스쳐 지나갔고 나는 연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어.”

“정말 그러네. 어제까지는 여름이었는데, 오늘은 겨울 날씨야. 어라, 이게 뭐야? 창문에 벌써 결로가 생겼어.”

그의 말에 내가 뭐라고 대답했던가? 결로에 대해서 농담을 했고, 그 말에 크게 웃음을 터트리던 그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기억난다. 바람이 부는 날이면 가볍게 두 눈을 감고 속도와 촉감을 느끼던 모습도. 그날 우리가 날씨에 대해 농담을 해서는 안 되었다는 것을, 그 일들이 그저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었음을, 작고 사소하게 여겼던 그 일들이 모두 지금 우리의 눈앞에 닥친 이 거대한 재앙의 전조였음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