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창작과비평
문학초점

 

대화적 재치의 이면들

김학찬 장편소설 『풀빵이 어때서?』

 

 

윤재민 尹在敏

문학평론가. 주요 평론으로 「너무 많이 아는 아이들을 위한 가족 로망스」가 있음. yooonjaemin@gmail.com

 

  

161-문학초점-윤재민_fmt한국사회에서 좀체 찾기 힘든 가치가 바로 크라프츠먼십(craftsmanship)이다. 장인의식, 장인기질 정도로 옮길 수 있는 크라프츠먼십은 제아무리 소박하고 볼품없는 직분이라 할지라도 주어진 직업에 확신을 갖고 최선을 다하여 일가를 이루는 것을 일생의 목표로 하는 건강한 직업의식이다. 김학찬(金學贊) 장편소설 『풀빵이 어때서?』(창비 2013)는 닮았지만 같지 않은, 각각 붕어빵과 타꼬야끼를 굽는 부자(父子)의 크라프츠먼십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다. 제대 후 일본여행에서 접한 타꼬야끼를 평생의 업으로 정한 주인공과 그런 아들의 선택을 영 못마땅해하는 붕어빵 장인 아버지가 주고받는 소박한 재치가 담긴 대화는 실상 자기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 담긴 묘한 신경전이다. “오늘은 배터리가 있냐?”/“이상하게 곧 떨어질 것 같네요.”/“그놈의 배터리 성질머리하고는, 역시 모든 물건은 주인을 닮는 법이야.”/(…)/“아버지, 제가 타꼬야끼 구운 지가 언젠데 계속 시비 거실 거예요? 이제 인정해주실 때도 된 것 같은데요.”/“아버지의 충고가 담긴 말에 시비라고 하는 아들녀석이라. 인정은 아직 이른 것 같구나. 어서 눈을 뜨길 바라마.”/“잘못했어요.”/“그럼 다시 붕어빵으로 돌아올테냐?”/“아뇨, 시비란 말 쓴 것만 잘못했다구요.”(20~21면)

『풀빵이 어때서?』는 소박한 재치의 ‘말하는 입’과 자기 밥벌이라는 ‘먹는 입’이 일체화한, 대책 없이 건강한 도시 주변의 서민적 삶을 서사적으로 긍정하는 근래 보기 드문 소설이다. 자기 인생과 밥벌이에 대한 무모해 보이기까지 하는 풀빵 부자의 확신에는 도시 소시민만이 가질 수 있는 서민적 건강함의 미덕이 있다. 물론 이는 한국사회에서 갈수록 희귀해져가는 미덕이다. 뻥튀기를 튀기는 아버지에게서 벗어나려고 사법고시에 매진하는 철규와 그의 아버지 김영감의 관계야말로 오늘날 도시 주변부 서민 집안의 훨씬 핍진한 풍경이리라. 사실 풀빵 부자가 마주하는 세상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제아무리 여자 앞에서 번지르르한 말로 아버지와 자신의 직업을 포장해도 풀빵장수라는 실체를 알고 난 여자들은 자리를 뜬다. 준수한 성적을 가지고도 대학이 아닌 풀빵을 선택한 ‘나’에게 담임선생은 우려를 표한다. ‘나’는 자신의 선택에 의문을 표하는 세상의 편견에 대화적 재치로 맞서 이를 견딘다. 풀빵 부자의 이러한 화법은 얄팍한 말장난이 아닌, 자신의 삶을 세간의 편견으로부터 지켜내기 위한 삶의 방식 그 자체나 다름없다. 『풀빵이 어때서?』의 대화적 재치는 한국사회 서민적 삶의 일단면을 체현하며, 그 재치 뒤에 숨겨진 주변부 삶의 위상과 처지를 생각할 때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이 소설에서 또하나 간과해선 안되는 인물은 현지다. 현지는 풀빵부자와는 확연하게 다른 삶을 사는 인물이다. 학창시절 뛰어난 성적으로 항상 “개선장군”이었던 현지는 그러나 임용고시라는 장벽을 넘지 못하는 스스로를 끊임없이 책망하며 현실도피의 일환으로 ‘나’에게 타꼬야끼를 배우다가 하룻밤 짧은 로맨스 이후 더이상 ‘나’ 앞에 나타나지 않는다. 이 마주침은 그 자체로 우리시대 주변으로 밀려나는 이들의 만남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현실의 벽 앞에 방황하는 대학생과 도시 서민은 한국사회의 주변인으로 삶의 기로에서 잠시 마주하지만, 두 사람이 세상을 견디는 방식은 전혀 다르다. ‘나’는 언제나처럼 도시 주변부를 전전하며 타꼬야끼를 굽겠지만, 전공을 살릴 수 있는 일을 찾던 현지는 비정규직 한국어 강사 자리를 찾아 필리핀까지 밀려난다. 풀빵 부자의 경우와 달리 소설에서 현지의 대화적 재치에 연루되는 경우는 ‘나’와의 ‘밀당’ 상황에서뿐이다. 자신의 처지를 오롯이 드러내는 현지의 말은 그 어떤 웃음의 기미도 없이 현실에 부딪친다. 현지의 말이 직시하는 현실은 아직 자신의 말을 소유하지 못한 오늘날 많은 평범한 대학생이 마주한 현실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기간제 자리라도 얻으려 했는데 요즘 그것도 어려워요. 치열하게 경쟁하고 열심히 공부하는 목적이 비정규직이 되는 거라니. 예전에 대학원 다니던 친구가 사오년 열심히 공부하면 비정규직 시간강사가 될 수 있다고, 그 자리 때문에 모함까지 한다고 할 땐 농담인 줄 알았어요. 걔는 아직 공부한다는데, 얼굴 못 본 지 오래되었네요. 학교 도서관에 같이 있었을 텐데.”(183~84면) 언젠가 현지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올 것이다. 그때 그녀는 우리에게 어떤 말을 들려줄까. 문득 필리핀에서 현지가 가르칠 ‘한국어 강의’가 궁금해진다.

윤재민

저자의 다른 계간지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