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
후꾸시마 문제, 원전사고부터 오염수 방류까지
남상욱 南相旭
인천대 일본지역문화학과 교수. 공저서 『지금, 여기의 극우주의』 『일본, 상실의 시대를 넘어서』 등이 있음.
송기호 宋基昊
변호사. 더불어민주당 후꾸시마 오염수 원내대책단 부단장. 저서 『송기호의 밥과 법』 등이 있음.
오은정 吳殷政
강원대 문화인류학과 교원. 공저서 『오늘을 넘는 아시아 여성』 등이 있음.
이헌석 李憲錫
에너지정의행동 정책위원. 공저서 『탈핵』 『에너지 민주주의, 냉정과 열정 사이』 등이 있음.
남상욱(사회) 이번 『창작과비평』 가을호 대화에서는 ‘후꾸시마 문제, 원전사고부터 오염수 방류까지’라는 제목으로 얘기를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지난 7월 12일 한일정상회담이 열렸고 그 이후 한일 국장급 오염수 협의회에서 방류 관련 논의가 오갔습니다. 일본에서는 어찌됐건 8월 말에 오염수를 방류하는 걸 기본 원칙으로 삼은 채 현재 사태가 진행되고 있는데요, 2011년 3월 11일 동일본대지진의 여파로 후꾸시마 발전소가 핵분열을 일으키면서 그때부터 벌어진 문제가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오늘은 후꾸시마 원전사고부터 오염수 방류 문제까지 두루 얘기를 나눠보겠습니다. 우선 세분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송기호 반갑습니다. 저는 변호사로 일하고 있고요, 더불어민주당 후꾸시마 오염수 원내대책단에 소속되어 있기도 합니다. 법 공부를 하는 사람이다보니 이 문제를 한 사회가 위험성을 어떻게 규정하는가 하는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습니다. 우리 법률공동체는 오랫동안 위해성평가, 위험성분석 등 여러 방법으로 위험과 불확실을 평가하고 관리해왔어요. 환경정책기본법, 식품안전기본법 등, 법조문 제목에 ‘위해성평가’가 붙는 법령의 숫자가 54개입니다. 그런데 후꾸시마 오염수 문제에서는 갑자기 논의가 무척 퇴보했습니다. 이런 퇴행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우려하고 있습니다.
오은정 저는 히로시마와 나가사끼에서 원폭 피해를 당한 재일조선인들이 해방 이후 한국으로 돌아온 역사에 대한 박사논문을 썼습니다. 그때 제가 특히 관심을 두었던 부분은 피폭자를 규정하는 여러 조건들이었어요. 과학적, 행정적, 그리고 정치적 측면에서 어떤 사람을 피폭자로 인정하는지 혹은 인정하지 않는지 연구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논문을 쓰던 와중에 후꾸시마 사태가 터졌어요. 그때까지도 히로시마와 나가사끼에서 피폭을 당한 사람들이 여전히 그 피해를 인정받지 못해 일본정부를 상대로 굉장히 많은 소송을 진행 중이었고 심지어 지금까지도 이어져오고 있고요. 후꾸시마 사태 역시 이처럼 오랫동안 지속되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후꾸시마 연구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최근에는 지역주민이나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피폭 문제가 어떻게 다가가고 있는지, 그리고 후꾸시마 사태 이후 지역의 부흥이라는 이름으로 투입된 상당한 예산이 어떤 방식으로 지역을 변화시키고 있는지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사실 직접행동보다는 주로 연구를 통해서 이 문제를 바라보고 있는 셈이죠.
이헌석 저는 탈핵운동을 하고 있고 정의당에서 후꾸시마 오염수 TF의 자문위원으로서 역할도 하고 있습니다. 탈핵운동이라는 말은 후꾸시마 이후에 생겼는데요. 그 이전에는 반핵운동이라 불렸고, 저는 이 사회운동을 반핵운동 시절부터 계속해왔습니다. 2009년 이명박정권 당시 아랍에미리트(UAE)에 핵발전소를 수출했는데요. 그즈음 진보진영 내에서도 탈핵이라는 문제를 외면하는 분위기였고 이 주제는 소수의 환경운동가만 꺼내는 얘기로 완전히 축소된 상태였습니다. 이처럼 탈핵운동이 위기를 겪고 있던 중 후꾸시마 사고가 발생했고, 그러다보니 지금까지 이어지는 오염수 문제 역시 탈핵운동의 입장에서 보고 있습니다.
남상욱 마지막으로 제 소개를 드리자면 저는 일본문학 연구자입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이자 최근 타계한 오오에 켄자부로오(大江健三郎)는 소설 『만년양식집』(晩年様式集, 2013)에서 3·11대지진이 일어난 날 서고가 무너져내리는 걸 보며 우리의 지식이 무너졌다는 생각을 하고 반원전시위에 참석했다는데, 이렇게 문학작품에 드러나는 관련 내용을 추적하기도 했습니다. 최근에는 여러 소설을 통해 후꾸시마 지역주민의 입장, 피폭당한 동물 처분 문제, 후꾸시마 출신 작가가 쓰는 지역의 변화 양상 등을 읽어내고 있습니다.
후꾸시마 원전사고,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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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상욱 어떤 사건이 발생하면 관련된 문학작품은 나중에 쓰이니 아마 제가 가장 뒤에 서 있지 않을까 싶은데요. 후꾸시마 원전사고의 의미를 직접행동이나 법률 혹은 역사적인 축적 등 각 학문분야나 관심사에서는 어떻게 보고 계신지요? 이 사고를 단순히 일본 국내 문제로 환원해도 되는 건지, 아니면 동아시아적인 사건으로 봐야 하는지 논의할 수도 있을 듯합니다. 혹은 지구문명에 대한 성찰을 요구하는 하나의 큰 사건으로 볼 수도 있을 테고요. 다들 각자 후꾸시마 원전사고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이헌석 탈핵운동을 하는 입장에서 이 사건은 사실 핵산업계가 오랫동안 해오던 관행에 맞서 싸우는 운동의 연장선입니다. 1945년 미국 트리니티 핵실험과 히로시마, 나가사끼 원자폭탄 투하 이후 지구상에서 대기권 핵실험만 2천번 넘게 진행됐습니다. 핵실험 이외에도 전세계 핵시설에서 배출한 방사성 물질이 지금 대부분 바다에 들어가 있어요. 그 때문에 전세계 어느 바다의 물을 떠도 플루토늄이 나오고 전세계 어느 내륙지방 지층을 검사해도 삼중수소가 나오는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죠. 라파엘 그로씨(Rafael M. Grossi) IAEA(국제원자력기구) 사무총장은 이번 후꾸시마 오염수 해양방류가 국제 관행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사실 IAEA나 핵산업계 입장에서 보면 지금까지 수십년을 그렇게 해온 것처럼 이번 결정 역시 매우 자연스러운 거예요. 저는 구소련이 원자로와 고준위 핵폐기물을 동해에 버렸던 사실이 밝혀진 1993년 일본정부가 바다에 핵폐기물을 버리지 말자는 국제적 운동을 벌였던 걸 강조하고 싶어요. 당시 일본이 중심이 돼서 모든 핵폐기물 해양투기를 금지하는 결의문을 채택하고 국제협약(런던협약)을 강화했는데, 이번 오염수 방류 문제는 그 상황을 다시금 일깨워주는 사건입니다. 한때 구소련의 핵폐기물 해양투기를 규탄했던 일본정부가 이제는 오염수 방류를 추진하고 있고, 인근 국가인 한국이 이를 옹호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2023년 지금 벌어지고 있습니다.
남상욱 사실 일본은 세계에서 유일한 피폭국인데요. 피폭국이 원자력발전소를 만들고 진흥정책을 펼치는 데 대해 일본의 학자와 연구자들도 많은 지적을 하고 있습니다. 1993년 런던협약을 보강하며 모든 방사성폐기물의 해양투기를 금지했음에도 최근 아사히신문 조사에 따르면 일본 국민의 51%가 오염수 방류에 찬성하고 있습니다. 굉장히 모순적이죠.
오은정 일본이 어떻게 세계적인 원전 국가가 됐는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일본은 1950년대에 원전개발을 시작하면서 유일 피폭국이니 오히려 무기로서의 핵을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평화적인 원전을 발전시킬 수 있다며, 일본에서 제대로 원전을 개발하면 다른 나라를 안심시킬 수 있다고 선전했습니다. 1952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의 발효로 기존 연합군이 금지해왔던 일본의 원자력 연구가 개시되려고 했을 때 일본학술회의의 젊은 과학자들 중에는 이를 반대하는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정치권은 원자력 연구가 핵무기 개발과 관련한 잠재적 이용가치가 높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예산을 편성하고 연구를 적극 장려했죠. 그런 점에서 보면 태생적으로 원전과 핵무기는 긴밀하게 연결돼 있는데, 1980, 90년대 들어 원전이 상업적으로 이용 가능한 저렴한 에너지라는 이유로 점점 원전과 핵무기가 서로 다른 체제라고 여기게 되는 이데올로기적인 분리가 일어난 것 같아요. 실제 진보진영에서도 핵무기와 원전은 서로 다른 논리를 따른다는 주장을 펼치며 이 문제가 꽤나 축소됐었죠. 그런데 실상 원전과 핵무기산업은 다르지 않다는 것을 후꾸시마 원전사고가 보여줬고, 저는 그런 면에서 후꾸시마 원전사고 그 자체가 20세기 핵정치에 있을 수밖에 없었던 일, 다만 일본에서 일어나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던 일이라고 봅니다.
송기호 2011년 후꾸시마 원전사고가 일어났을 때 사실 저는 ‘탈핵’ 감수성이 없었어요. 제가 주목했던 것은 그 당시가 일본 자민당의 장기집권 이후 민주당이 집권한 시기라는 점입니다. 사고 이후 토오꾜오전력이 사실을 은폐하고 또 그것을 일본 민주당정권이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모습을 지켜봤어요. 일본이 민주화되었다고 여겨지던 그 시점에, 민주주의가 국민의 안전과 보호에 실패했지요. 큰 실패와 좌절을 겪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떻게 해야 민주주의가 가능한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오은정 일본에서 사고를 수습하고 지역을 재생시키는 모습을 보면 말씀하신 대로 사실 민주적인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지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우선 재난피해를 복구하는 과정에서 예산, 정보, 인력이 톱다운(top-down) 방식으로 운영될 수밖에 없었는데, 지역현실과 무관한 방식이 많았어요. 예를 들어 일본 부흥청(3·11대지진 이후 일본사회의 피해복구를 목적으로 임시 설치된 일본의 중앙기관)의 재난복구 예산은 주민들이 돌아오지 않는 마을의 도로, 방조제, 교류회관, 스포츠 시설 등을 짓는 데 쓰였습니다. 주민들에게는 ‘피폭의 위험은 없다’ ‘피폭을 걱정하는 마음이 더 위험하다’고 이야기했고요. 토오꾜오전력이나 일본정부의 대응을 보면 정보통제의 양상이나 규모가 조금 다를 수 있지만 원전사고와 그로 인한 피해는 핵무기 폭발 이후의 피해와 본질적으로 유사한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보입니다.
남상욱 일본 같은 경우 홍수 등 자연재해가 자주 발생하는데, 어떤 재해가 일어나면 그 사건을 계기로 재난방지법이 생겨왔습니다. 재난방지법에는 사후 대응만이 아니라 사전 대책도 포함되는데, 거대 지진과 이로 인한 원전사고는 들어 있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상정 외의 사건’이라고 얘기할 수밖에 없어요. 법과 재난이 분리되어 있는 듯 보이지만 오늘날에는 재난이 정치를 만들기도 하기에 법제화 같은 노력도 진지하게 생각해야 하는 시점이 아닌가 합니다.
원전사고 이면, 핵산업의 본질적 성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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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상욱 코앞에 닥친 오염수 방류도 물론 문제이지만, 원전사고와 원전의 본질적인 성격도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일본에서는 후꾸시마 사고 이후 2010년대 중반까지 탈원전 논의가 이어졌지만 서서히 옅어져 지금은 거의 없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오은정 후꾸시마 원전사고가 터졌을 때 일본 지식인들 사이에서 호들갑스러울 정도로 많은 반성과 성찰의 말들이 나왔지만 이런 목소리가 순식간에 사라져버렸습니다. 일본 원자력산업계는 원전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았고요. 오히려 후꾸시마 제1원전의 폐로를 확실하게 끝내고 원자력에너지를 재생에너지로 홍보하겠다는 의지가 강했습니다. 2021년 스가 총리는 화석연료를 줄이고 재생에너지 비율을 끌어올리겠다, 원전을 이용하면 탄소배출을 줄일 수 있다고 하며 원전가동률을 2019년 6%에서 2030년에 20% 이상으로 올리겠다고 했거든요. 재생에너지라는 명목하에 단계적으로 원전을 정상화시키는 과정에서 오염수 방류는 이들이 보기에 반드시 해결하고 넘어가야 하는 문제인 거죠.
이헌석 사실 핵사고가 터졌다고 그 나라가 탈핵이 되는 사례는 오히려 별로 없습니다. 대표적인 핵사고인 체르노빌 사례만 보아도 우끄라이나에서는 여전히 핵발전소가 돌아가고 있어요. 또한 체르노빌 사고 당시 피해를 크게 입은 벨라루스 역시 지금 신규 핵발전소를 짓고 있고요. 일본도 마찬가지라는 거죠. 오히려 독일이나 이딸리아, 오스트리아, 스위스 같은 나라들이 탈핵을 했는데요. 차이는 핵산업·핵무기를 대하는 정치경제적인 맥락에서 온다고 봅니다. 단순히 환경문제로 접근하거나 시민들의 요구 또는 사고로 인한 피해만으로 산업이 없어질 만큼 핵산업은 취약하지 않습니다. 이 강고한 카르텔을 무너뜨리려면 정치의 영역이 중요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어요. 대표적으로 독일이 사회민주당과 녹색당 연정을 수립하면서 변화가 있었고 결국은 메르켈 총리 같은 보수 정치인들까지도 그러한 흐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죠. 후꾸시마 사고가 발생했을 당시 일본 민주당정부가 좀더 유능하게 잘 수습했더라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었겠지만 그러지 못했고 그 이후로 일본의 야당은 지리멸렬한 상태이지 않습니까? 그러다보니까 기회를 놓친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송기호 한국 원자력산업계 문제도 짚어야겠습니다. 원자력안전위원회라는 명칭 자체에 ‘규제’가 아니라 ‘안전’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것부터 문제입니다만, 일본에 요청한 자료를 공개하라는 요구를 제가 다섯차례 이상 하면서 많이 느꼈습니다. 어떤 자료를 일본에 요구했고 받았는지 일체 공개를 거부한 원안위를 보면서, ‘이들은 원전사고가 나더라도 오염수를 바다에 버리면 그만인 세상을 만들려고 하는구나’ 하는 것을 실감했어요. 어떤 비장감까지 느껴졌습니다. 원자력산업을 반드시 살려야 한다, 그런 것이라고 할까요?
오은정 중요한 것은 일본의 정재계가 핵융합 등과 같이 선진국에서 이미 폐기한 핵개발 시설에 반세기 넘게 집착해오고 있다는 거예요. 이러한 상황이 현재의 문제와 모두 연결되어 있고요. 한때 후꾸시마 사태로 사람들의 반성적이고 성찰적인 움직임이 있을 거라고 예상했지만 오히려 지금 그에 대한 반동이 훨씬 강한 상태죠. 보수주의 진영의 근저에는 핵개발, 특히 핵에너지의 군사적 이용에 대한 열망이 여전하고 일본도 겉으로 드러내진 않지만 사실은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무기와 발전체계가 계속 연결되는 상황에서 현재 사태가 진행되고 있는 거고요.
남상욱 짚어주신 대로 핵무기와 발전체계 역시 문제인데요. 이 두 문제가 에너지 전환이라는 큰 이슈와 맞물려 있는 것 같아요.
이헌석 일본 핵산업의 입장에서 본다면 후꾸시마 사고 때문에 산업의 문이 닫히게 생긴 셈이에요. 사고가 난 일본의 핵발전소를 누가 사겠어요. 그러니 일본의 핵산업은 완전히 괴멸상태에 빠져버렸던 것이고 그런 상태를 그나마 자국 내에서 극복해보려고 원전 재가동 정책을 펼치고 있는 겁니다. 플루토늄을 생산하는 롯까쇼무라 핵연료 재처리시설을 가동하는 문제도 마찬가지예요. 1990년대 말 가동 목표였던 핵연료 재처리시설이 2012년에야 준공되었고, 아직도 제대로 가동을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본 핵산업계 입장에선 멈출 수 없는 과제가 되어버렸죠. 저는 핵산업계가 인정하든 그렇지 않든 핵산업 자체가 정체되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핵산업은 다른 재생에너지산업과의 경쟁에서 완전히 밀려버렸는데, 저는 이것이 에너지산업 자본의 흐름하고도 굉장히 밀접하다고 생각해요. 글로벌한 수준에서는 이미 재생에너지와 2차전지라는 새로운 전환으로 자본이 움직이고 있어요. 핵산업으로 끝까지 살아남으려고 하는 건 러시아, 프랑스, 한국 정도거든요. 저는 지금 핵산업계가 마지막 외침 단계라고 생각해요. 여기서 밀리면 정말 더 갈 데가 없는 거죠.
남상욱 그 말을 들으니까 한편으로 마음이 놓이기도 하네요. 사실 독일 같은 국가가 탈원전할 수 있었던 건 유럽엔 인접한 다른 국가가 많고 서로 에너지를 공급해주기도 하기 때문인데, 동아시아는 서로 이익을 공유하거나 에너지를 나눌 만한 정치적 여건이 받쳐주지 않으니 늘 자국 내에 뭐가 없으면 안 되는 거죠.
오은정 영국의 국제정치학자 도미닉 켈리(Dominic Kelly)가 일본이 왜 그렇게 원전을 열광적으로 도입했느냐 하는 이유를 분석했는데요, 그 뿌리가 상당히 깊습니다. 일본은 섬나라이기 때문에 메이지유신 당시부터 다른 나라와 교류하거나 외부에서 자원을 가져오기 어렵고, 또 자국 내 자원도 부족하기 때문에 이것을 과학기술을 통해 극복해야 한다는 이데올로기가 강했다는 것이죠. 실제로 근대화시기 과학기술을 통한 혁신과 진보라는 이상은 일본이라는 국가의 민족적 취약성 담론과 결합하면서 특히 원전에 대한 열광적인 지지로 이어졌습니다. 핵에너지의 잠재적인 군사적 이용가치를 알고 있었던 정치 지도자들이나 원자력산업계는 그러한 열광과 지지를 만들어내는 데 적극적이었고 실제로 이를 실현한 것이죠.
송기호 그런 점에서는 한국도 마찬가지죠. 원전을 다시 살리고 오염수를 바다에 투기하는 데 한국이 동의하는 배경에는 정치군사적 동기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과정에서 한국의 사회 시스템이 완전히 고장 났다는 점도 분명해졌습니다. 불확실이나 위험성을 관리하는 시스템은 세 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요. 1단계에서는 객관적·과학적으로 위험을 규정하고 평가합니다. 과학자의 일이죠. 2단계는 규명된 위험을 사회가 어느정도로 수용할 것인지 정합니다. ‘제로 톨러런스(전면 차단)’인지, 이것이 아니라면 어느정도로 수용할 것인지 보호 수준을 정합니다. 이건 과학만의 영역은 아니고 사회가 합의해나가는 영역이고요. 그리고 이 모든 절차에서 관련 정보를 제때 공유하고 충분히 소통해야 한다는 원칙이 있습니다. 이 세 단계는 보편적 국제 규범입니다. 이번에 일본 토오꾜오전력이 오염수 투기 방사선 환경영향평가서라는 것을 여러차례 개정해서 냈는데, 그 내용에 많은 문제가 있긴 해도 일본의 위험평가 시스템 자체는 가동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어떤가요? 불확실성과 위험성에 대한 인식 자체를 부인하고 ‘괴담’이라고 억압합니다. 지난 7월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시찰단이 일본을 다녀와 보고서를 냈는데요(「후쿠시마 오염수 처리 계획에 대한 검토보고서」,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2023.7.7), 그런데 한국 스스로 실시한 위험평가에 대한 보고가 아니라 토오꾜오전력 보고서가 잘되었다는 내용뿐이에요. 법적 절차대로라면 규제기관인 대한민국 원자력안전위원회가 그 보고서를 검토하고 승인여부를 결정해줘야 돼요. 그런데 그런 절차가 아예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오염수 방류, 무엇이 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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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상욱 자연스럽게 오염수 문제로 접어드는데요. 일본은 후꾸시마 사고 이후 2011년 4월쯤 오염수가 생겨나자 저장고를 만들어 하나씩 채워나갔습니다. 2019년 8월 그린피스의 수석 원자력전문가는 당시 100만톤 규모의 후꾸시마 고준위 방사성 오염수가 2030년이면 200만톤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고요. 이러한 전망을 토대로 일본은 결국 오염수를 해양에 방출하겠다는 결정을 내렸고 스가 총리가 2023년에 방출하겠다고 발표하게 된 겁니다. 우선 오염수가 어떤 영향을 미칠지 확실히 알지 못한다는 문제가 있어요.
송기호 일본 토오꾜오전력이 수행한 방사선환경영향평가 보고서를 살펴보면 두가지 불확실이 언급됩니다. 하나는 방사성 핵종 조성에서의 불확실인데요. 우리가 이야기한 대로 이번 오염수 문제는 이전에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사고 때문에 발생했습니다. 문제는 이 사고로 조성된 오염수 안에서 어떤 핵종이 나오는지 알 수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다핵종제거설비를 사용해 ‘처리도상수’를 만들지만 이 처리도상수에도 어떤 핵종이 조성되는지 불확실하다는 것이 일본 측 보고서의 설명입니다. 어쨌든 설비를 통해 처리도상수를 계속 희석하다보면 자기들이 관심 갖는 특정 핵종이 일정한 기준치 이하로 검출되는 상태가 되는데, 그걸 ‘처리수’라고 부르고 이 처리수를 방류하겠다는 거죠. 두번째 문제는 농축계수에서의 불확실이에요. 얼마 전 후꾸시마 인근에서 잡힌 우럭에서 기준치의 180배를 초과한 세슘이 검출됐었잖아요. 통상적인 이론에 따르면 세슘은 축적될 수 없기 때문에 이 물고기 안에 기준치의 180배 세슘이 검출된다는 건 그 바다 안에서 무슨 작용이 있다는 의미잖아요. 예컨대 세슘 덩어리가 있다든지 할 텐데 그런 농축과정을 명확히 설명하지 못하는 불확실성이 있다는 겁니다.
남상욱 그렇다면 오염수를 해양에 방류하지 말고 저장고를 계속해서 만들어나가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까요?
이헌석 원래 후꾸시마 부지 안쪽에 있던 축구장이나 야구장 같은 시설을 모두 폐쇄하고 그 자리에 저장고를 설치한 건데요. 사고 이후 12년 동안 130~40만톤 정도의 오염수가 쌓였습니다. 처음엔 훨씬 많았지만 동토차수벽도 만들고 차폐막도 하면서 지금은 양이 많이 줄었어요. 인근 부지의 땅들은 출입이 통제되고 오염되기도 해서 사실상 쓸 수 없는 곳이기 때문에 그 땅을 매입해 활용할 수도 있어요. 그런데 토오꾜오전력은 여러가지 핑계를 대면서 매입을 미루고 있습니다. 일본정부와 토오꾜오전력의 입장에서 여러 생각을 해봤습니다. 이렇게 난리를 피우면서까지 굳이 방류를 해야만 하는 걸까? 과연 단순히 비용 문제일까? 처음 추산했던 것보다 오히려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데도? 저는 결국 지금 진행되는 오염수 방류는 앞으로 있을 여러 절차의 시작이라고 봅니다. 지금보다 농도가 더 높은 고준위 폐기물을 끄집어내야 하고, 그 과정에서 더 많은 액체·기체 핵폐기물이 나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일본정부의 후꾸시마 복원계획을 놓고 봤을 때, 일본정부는 현재 수준의 오염수도 방류하지 못한다면 더 큰 오염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보는 겁니다.
송기호 저도 동의합니다. 마치 오염수를 방출하면 문제가 해결되는 것처럼 말하지만 그건 정말로 어떤 거대한 비극을 여는 문고리에 지나지 않을 거라 생각해요. 앞으로 원전사고가 나더라도 원전 오염수를 버젓이 바다에 버릴 겁니다. 지금 일본은 자기들이 말하는 ‘처리수’에서 물고기를 키우는 실험을 하고 있거든요. 처리수에서도 물고기들이 잘 살고 있긴 하죠. 문제는 일본 스스로 불확실성이라고 인정한 농축계수입니다. 일본은 실험 물고기를 사료를 먹여 키우고 있습니다. 바깥의 사료를 가져다 먹이니 내부생태계의 먹이를 통한 농축이 일어나지 않는 거죠. 정보의 왜곡이죠. 그로씨 총장이 7월에 한국을 방문했을 때 직접 만나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최소한 일본의 해저토나 심층수, 오염수 데이터에 한국이 접근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럴 수가 없다, IAEA 안전규범에도 위반이다, 일본이 그런 객관적인 정보를 제공할 때까지 방출을 중단하도록 국제기구로서 요구해달라. 상황에 어떻게든 균열을 내기 위해서는 정보에 대한 끈질긴 요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남상욱 지금 말씀해주신 내용을 정리하면 오염수 방류는 시작에 지나지 않는다, 그 이후 더 큰 문제가 있을 텐데 그것을 대비하기 위한 정보가 전혀 공유되지 않는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정보가 공유되지 않는다는 건 결국 민주주의의 문제로 얘기할 수 있겠죠. 제 의견을 하나 덧붙이자면 1945년 히로시마와 나가사끼에 원자폭탄이 떨어졌잖아요. 그런데 1963년에 오오에 켄자부로오가 히로시마를 방문해요. 원자폭탄이 떨어지고 향후 100년 동안은 풀 한포기 자라지 않을 거라고 했는데 직접 방문해보니 여전히 사람이 살고 숲도 울창한 거예요. 그런데 그즈음부터 백혈병 환자들이 다수 발생하기 시작했습니다. 14년이나 지난 후에요. 일본 NHK의 다큐멘터리 「피폭의 숲」(被爆の森, 2018)을 주의 깊게 봤는데요, 취재원이 여러 학자를 불러 숲의 피폭 상태를 조사했습니다. 그 지역사회는 목재를 팔아서 생계를 이어가는 곳인데 숲은 이미 피폭되었고 반감기가 100년이라고 합니다. 지역주민들이 모두 망연자실하죠. 오염수 해양방류도 마찬가지로 객관적인 평가를 내리기엔 시간이 무척 부족한데다 환경 그 자체를 평가해야 하는 상황에서 수명이 짧은 물고기 한마리만 보고 안전하다고 판단하긴 성급한 것 같습니다.
이헌석 히로시마와 나가사끼에 원자폭탄이 투하되고 난 다음 일본정부가 피해자들에게 ‘피폭자 건강수첩’을 나눠줬어요. 그것이 오랜 시간이 흘러 인간에게 방사선 피폭이 실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아주 탄탄한 데이터가 된 거거든요. 반면 지금 해양에 방출된 방사성물질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한 연구는 아직 충분하지 않아요. 그러다보니 세슘 기준치의 180배를 초과하는 물고기가 나오는 이유를 설명하지 못하는 거고요. 기본적으로 어떤 상황이 위험한지 아닌지 알기 어렵다면 사전 예방한다는 원칙이라는 게 필요하잖습니까. 지금 오가는 여러 논의에는 그런 위험을 피하기 위한 노력이 없는 거죠.
오은정 IAEA는 이번 방류수는 기준치 이하이기 때문에 인체에 영향이 없다고 주장하잖아요. 이런 IAEA의 주장은 ICRP(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의 자료에 근거하는데, ICRP의 기초자료가 되는 게 말씀하신 히로시마·나가사끼의 원자폭탄 이후 상해 조사 및 방사선영향연구 자료거든요. 그런데 역사적으로 보면 이 자료는 여러 문제가 있습니다. 먼저 ICRP의 토대를 마련한 미국 NCRP(미국방사선방호위원회)는 기본적으로는 히로시마와 나가사끼에 투하된 핵무기 공장의 노동자들에게 일정한 선량까지는 방사선에 노출되어도 안전하다는 기준인 허용선량을 정하기 위해 만들어진 단체입니다. 하지만 유전학적 측면에서 피폭은 아주 적은 선량이라도 일단 노출되면 유전자에 변이를 일으킵니다. 결국 NCRP나 ICRP는 비용 대비 편익 개념을 도입해 핵시설 운용으로 인한 사회·경제·정치적 이익이 방호안전 비용이나 건강에 미칠 위험보다 클 때 방사선 피폭이 ‘정당화’될 수 있다는 입장에서 방사선방호 기준을 세워나갑니다. 한편 방사선방호를 위한 실제 인체영향 데이터를 제공하는 히로시마와 나가사끼 조사의 경우 기준이 되는 피폭선량은 원자폭탄 폭발 당시에 직접 측정한 수치가 아니고 미국 학자들이 추계를 통해 계산한 결과에 따른 수치인데요, 피해의 내용이 상당히 과소평가되어 있습니다. 미 군부는 처음에는 폭탄이 떨어진 지점에서 반경 2km 안에 있는 사람들만 급성 방사선 영향을 받을 거라고 예측했어요. 하지만 2020년 현재 폭심지로부터 4km 넘게 떨어진 지역의 사람들까지 포괄하고 있고, 10~20km 바깥에서 ‘검은 비’(원자폭탄 구름에서 생긴 비)를 맞은 이들까지로 확대되었어요. 또 초기의 선량추계도 다양한 핵종과 방사선을 과소평가했다는 지적에 따라 여러번 수정되었습니다.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 때문에 검은 비 피해를 입었지만 일본정부로부터 피폭자로 인정받지 못한 사람들이 2015년 소송을 제기했고 최근에야 피폭자로 인정받게 되었는데, 피해 이후 거의 70년이 지난 시점이죠. 현재 오염수 방류로 인한 피해 문제는 IAEA가 단언할 수 있는 수준의 문제가 아닐뿐더러 히로시마와 나가사끼 사례에서 보듯 그 안정성을 현 시점에서 확언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입니다.
송기호 형식적으로나마 IAEA가 제기하는 안전규정이 있는데, 이 규정에서 중요한 원칙은 ‘기존의 방사성 위험이 존재하면 그걸 감소시켜야 한다’는 겁니다. 문제는 이번 사건은 기준치 이하라 할지라도 오염수가 바다로 방류되리라는 것인데, 그것이 결코 안전하지 않다는 지적들이 있는 거잖아요. 기존의 위험을 감소시키라는 IAEA의 안전규정에 반하는, 즉 위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염수를 방류하는 결정인데 이 자체가 모순입니다. IAEA가 자기들이 세워놓은 최소한의 안전규제마저 지키지 않는 것이죠.
남상욱 스스로 세워놓은 안전규제를 어기는 일이 오염수 방류의 의미라는 지적을 정말 무겁게 받아들여야 할 것 같습니다. IAEA의 주장을 근거로 오염수 방류를 용인하고자 하는 정부에도 문제가 있을 수밖에 없으니까요. 더불어 비단 후꾸시마 오염수만이 아니라, 좀더 큰 틀에서 환경재난에 대한 종합적인 데이터 공개와 평가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망가진 재난 대응 시스템과 민주주의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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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상욱 2010년대 한국사회에 여러 재난이 터지며 정치환경을 바꾸거나 큼직한 변동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는데요. 이번 정부 같은 경우는 마치 재난이 아예 없었던 것처럼 만들려고 애를 쓰는 것 같아요. 비단 오염수 문제만이 아니라 이태원참사도 그렇고 이번 홍수 피해 사고도 그렇고요. 지금의 정치가 재난을 규정하고 평가하고 논의하는 데 미숙할 뿐 아니라 피곤해하기까지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재난을 감추는 데 급급하다는 생각을 저로서는 안 할 수가 없네요.
송기호 정부의 대응은 당장 후꾸시마 수산물 수입금지 조치부터 문제입니다. 오염수를 바다에 내보내는 건 괜찮지만 그 바다에 사는 물고기는 수입하지 않겠다는 거거든요. 이 논리는 과학적으로뿐만 아니라 국제법적으로 모순이에요. 자유무역체제에서 수산물 수입을 금지할 때는 안타깝게도 그 금지의 과학적 근거를 금지하는 나라에서 가지고 있어야 하거든요. 우리가 후꾸시마 수산물 수입금지를 주장할 수 있는, WTO(세계무역기구)에서 인정하는 유일한 논리는 일본의 바다에 문제가 있을 때뿐입니다. 그런데 오염수 방류에 찬성해놓고 어떻게 그 바다가 문제라고 지적하며 수산물 수입금지를 하겠냐는 거예요. 그런데도 우리 정부는 후꾸시마산 수산물을 수입하지 않겠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죠.
남상욱 코로나19 때도 경험했지만, 오늘날 일어나는 재난은 한 나라에서 발생했다 하더라도 그 나라 안에서 끝나지 않죠. 한편으로 우리가 과학을 감시해야 하지만 또 방류 이후에는 환경이나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확인하기 위해 과학을 필요로 하기도 하는 그런 딜레마가 있는 것 아닌가 합니다. 원자력이라는 과학 카르텔을 비판해야 하지만 그걸 감시하는 과학적인 시스템은 받아들여야 하고요.
오은정 민주주의를 이야기할 때 과학의 문제를 꼭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이번 오염수 논쟁에서 반대 측이든 찬성 측이든 모두 ‘과학적으로 내가 옳다’는 식으로 말하고 있어요. 정치적인 타협이나 제도적인 체계가 아닌 과학으로 주장을 하면 다른 모든 의견을 무시할 수 있다는 듯 무기로서 과학을 가져온 거거든요. 하지만 과학은 그 자체로 반박과 반증에 열려 있는 민주주의적인 지식 생산과 소통의 체계입니다. 문제가 너무 정치적일 때 오히려 논쟁에 과학을 끌고 오는데, 저는 이 사태가 그걸 잘 보여준다고 생각해요. 사실 방사선 피폭의 인체영향 문제는 단시간 내에 그 결과를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히로시마와 나가사끼의 방사선영향연구소에서 진행하는 원자폭탄 피해자들의 생애수명조사는 아직도 진행 중이고요. 원자폭탄 투하 후 100년이 지나서야 그 결과가 나올 겁니다. 후꾸시마 원전사고로 인한 피폭의 인체영향 연구는 더 오래 걸리겠죠. 폭탄은 이론상 수만분의 1초에 모든 핵종이 붕괴하지만, 원전사고로 인한 피폭은 수만년이 지나도 계속될 테니까요. 그 영향을 우리 세대 내에 완전히 파악하기란 불가능합니다.
송기호 저도 위기를 느낍니다. 박성훈 해양수산부 차관이 “오염수 문제는 과학과 미신의 대결”이라고 했는데 무척 위험한 말입니다. 자기가 주장하는 것은 과학이고 그것과 달리 생각하는 사람은 미신이라는 건가요? 과학은 위험성과 불확실성을 합리적으로 파악하는 도구입니다. 그러나 해수부 차관의 주장처럼 과학을 잘못 들먹이면 오히려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불확실성을 억압할 위험이 있습니다. 상대편을 미신이나 괴담을 퍼뜨리는 집단이라 폄하하면서 사회공동체의 일원으로 생각 안 한다는 거죠.
오은정 과학이 이런 논쟁에서 참조 가능한 지식을 제공할 순 있어요. 하지만 그것이 다른 모든 의견에 앞서는 단 하나의 기준이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오염수 방류 여부에 관한 의사결정을 한다고 했을 때 그 위험에 관한 과학적 지식뿐 아니라 방류 문제가 제기하는 윤리적·외교적·사회적·지역적·경제적 영향을 살필 수 있어야 합니다. 오염수 해양방류처럼 논쟁적인 사태는 더욱더 정치의 영역에서 이 결정이 가져올 영향에 대해 다양한 측면에서 살펴보고 여론을 수렴하고 민주주의적으로 신중하게 의사결정을 해야 해요.
이헌석 이번 오염수 문제는 그동안 우리 정부가 위험을 다뤄왔던 방식을 너무 잘 보여줍니다. 흔히 핵 문제를 다룰 때 ‘안전’과 ‘안심’은 다른 것이라고 말합니다. 참전 중인 군인은 수류탄을 가슴에 달고 잠을 자기도 해요. 안전핀이 빠지지 않는다면 수류탄은 터지지 않는다는 걸 알기 때문이죠. 현 상황은 일반 국민들에게 수류탄을 나눠주면서 ‘절대 안 터집니다’라고 말하는 것 같아요. 안전수칙만 지키면 수류탄은 터지지 않겠지만, 평시 일반인은 그런 위험을 감내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런 상황을 ‘무지’나 ‘미신’이라고 몰아세우는 것과 비슷합니다. 훈련받은 군인과 달리 일반인은 미숙하기도 하고, 게다가 불특정 다수가 수류탄을 지니고 있는 것만으로도 또다른 위험을 내포하는 셈이지만 이런 점은 고려하지 않는 거지요. 무엇보다 ‘왜 내가 굳이 이런 불확실성을 감내해야 하는지’가 설득되지 않는다면 국민들은 절대 동의하지 않을 겁니다.
남상욱 듣고 보니 오염수 문제에 과민 반응을 보이는 것은 국민보다는 정부인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재난에 더욱 큰 관심을 갖는 이유는 바로 인간의 취약성 때문인데, 정부는 이 점을 간과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재난이 사회적 약자에게 더욱 가혹하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고, 따라서 재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자연스럽게 약자에 대한 관심과 배려로 이어지게 됩니다. 민주주의는 이러한 연결고리를 중시하는데, 이것이 비과학적이라는 이유로 끊겨버리는 것은 아닐지 심히 걱정됩니다. 한편 인문학적으론 이미 우리가 새로운 세계를 살고 있다고 느껴지는 게, 후꾸시마 이전에 사람들이 전혀 모르던 단위가 시버트(Sv)였어요. 그런데 우리가 미세먼지 농도를 측정하고 오염지수를 보다보니 이제는 제법 이 단위에 익숙해졌죠. 지적해주셨듯이 과학을 근거로 드는 일이 이제는 보편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과학을 맹신하면서도 불신하는 이 문제의 균형점을 찾는 것도 시민교육의 하나로서 요청되고 있는 듯하고요.
이헌석 그런데 이 문제는 에너지 전환과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은 1978년 고리 1호기를 시작으로 1980년대에 핵발전소를 다수 지었어요. 현재 총 25기가 가동 중이고, 2030년에는 전체 운영되는 발전소가 30기 정도가 될 전망이에요. 지금도 우리나라는 전세계에서 핵발전소 밀집도와 단위면적당 핵발전 용량이 가장 높은데, 2030년이 되면 독보적인 1등이 될 겁니다. 윤석열정부는 원전최강국 선거 공약을 지키려고 별의별 방법을 다 쓰고 있다고 보여요. 저는 이러한 상황이 국내 재생에너지, 특히 에너지 전환 측면에서 굉장한 독이 될 거라고 봅니다. 과거 다른 정부에서도 핵발전 비중을 올리려 했지만 한계가 있었어요. 왜냐하면 핵발전소는 가동하고자 하면 0% 아니면 100% 출력밖에 안 되거든요. 일부 출력은 불가능해요. 그런데 우리가 하루 중 전기를 쓰는 패턴을 보면 낮에 많이 쓰다가 밤에는 덜 쓰는 식으로 들쑥날쑥하거든요. 그래서 비싸더라도 LNG나 양수발전 같은 것을 혼용해왔던 거죠. 마치 핵발전으로 완전한 에너지 전환을 이룰 수 있는 것처럼 설명하는데 이는 기술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산업적인 측면에서도 제대로 검토가 필요해요. 전세계 태양광 패널을 만드는 10대 회사 중 중국이 아닌 업체는 대한민국밖에 없어요. 한국은 원래부터 반도체를 잘 만들기도 했고, 여러 제반조건 덕분에 재생에너지 분야에서 성장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정부는 재생에너지가 아닌 핵산업을 지원하겠다고 나서는 꼴입니다. 전세계적으로 핵발전을 줄이고 태양광이나 풍력 위주로 나아가는 상황에서, 이렇게 큰 재생에너지 시장을 버리고 핵산업으로 간다? 이런 게 과연 적절한지 사회적인 토론과 논의가 있어야 된다고 봐요. 단순히 찬핵·반핵의 논의가 아니라 산업적인 측면, 에너지 공급 측면에서 논의가 필요합니다.
송기호 결국 이런 사태의 배경에 핵산업이 있고 또 정치군사적인 동인이 작용을 한다고 봅니다. 한국 민주주의의 급작스러운 퇴보와 고장을 시민의 힘으로 신속하게 극복해야 할 텐데요. 지금 우리의 국제적 영향력이 얼마나 위축되고 쇠퇴하고 있는가는 단적인 예로 윤석열 대통령과 키시다 총리의 회담에서 찾을 수 있어요. 우리나라 대통령이 일본 총리를 만나 요구했던 조건 중 하나가, 애초에 설정된 기준치가 넘어서는 이상치가 나오면 오염수 방류를 중단해달라는 거였어요. 그런데 이런 식의 중단 절차는 이미 일본 국내법에 따라 진행되고 있는 프로세스예요. 일본 규제당국의 장관급이 역할하는 부분을 한국 대통령이 요구했다니, 한국의 국격을 급속히 격하시킨 사건입니다.
남상욱 방류를 지연하거나 늦추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겠으나 더 중요한 건 앞으로 우리가 원자력이라는 산업과 에너지원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고장 난 대응 시스템을 어떻게 복구하고 민주주의의 위기를 타개할 것인가, 나아가서는 지역들과 어떻게 연대할 것인가 하는 부분인 것 같은데요. 이러한 부분을 생각하면 단순히 오염수 문제, 수산물 문제뿐 아니라 좀더 깊은 논의가 필요해 보입니다.
함께 맞설 국제사회연대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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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상욱 만약 방류가 시작된다면 그 이후에는 어떤 실천이 필요할까요?
이헌석 마치 방류가 되면 모든 것이 끝장나고 상황이 급변할 것처럼 이야길 하는데, 저는 그렇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일본정부가 밝힌 내용에 따르면 30년 동안 하루에 최대 500톤 정도를 희석해서 내보낸다고 하는데요. 매일 약 200~300톤 정도를 천천히 내보낼 수도 있고, 중간에 설비를 유지보수할 일들이 생기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방류를 중단하기도 하는 일들이 벌어질 거예요. 확신할 순 없지만 1차 방류, 2차 방류 같은 식으로 나뉠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그런 측면에서 이 방류는 한꺼번에 130만톤을 버리는 게 아니라는 점이 중요한 포인트이고요. 따라서 방류를 시작했다 하더라도 관련 수치가 한꺼번에 확 올라가거나 하지는 않을 거예요. 그런 걸 안 보이게 만들려고 희석도 하는 거고요.
남상욱 그럼 그런 상황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지요.
이헌석 우리는 당연히 사법재판소 제도도 활용할 거고요, 유엔에 제소도 할 거예요. 현재 런던협약을 바탕으로 한 런던의정서는 핵폐기물의 투기(dumping)는 금지하지만 배출(discharge)은 인정하고 있어요. 선박이나 항공기, 해양인공구조물에서 버리는 것을 투기로 규정하는데, 오염수 방류터널이 이에 해당하는지는 법적인 검토가 필요합니다. 즉 오염수 방류를 명시적으로 막는 규정이 없으니 이걸 고치는 작업도 같이 들어가야 하죠. 방류하고 끝이 아니고, 심지어 30년에 걸쳐 방류한다고 하니 이에 대해 고민하고 계획을 세우는 작업이 병행돼야 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방사성물질을 액체로 바다에 내버리는 일을 막기 위한 일련의 과정과 절차를 누가 밟을 수 있겠느냐. 어쨌든 바로 인접국가인 대한민국이 국제사회에 그런 얘길 본격적으로 해줘야 되는 타이밍이 올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고민들이 시민사회나 국가 차원에서 더 있어야 될 것 같고요.
송기호 일본정부가 예상했던 것보다 일본 내부에 강한 반대와 반발이 일어나고 있는 것처럼 보여요. 그래서 일본사회와 우리 사회 간의 국제연대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오염수가 방류된다면 그 이후의 문제에 대한 계획이 필요하겠지만 어쨌든 방출을 막아내는 지금의 단계에서는 우리 역량과 민주주의를 확장해야 한다는 과제가 있고, 그런 점에서 국제연대가 필수적이죠.
이헌석 맞습니다. 일단 당장 방류를 막기 위해서 싸워야 되는 건 당연한 일이겠고 이 문제는 국제연대로 풀어야 된다는 데 적극 공감합니다. 오염수 문제 초기에 저도 시민사회에 문제제기 많이 했습니다. 실제로 방류반대 집회현장에서 욱일기를 태우는 퍼포먼스도 있었잖아요. 한국에서 탈핵운동을 하는 일본인들이 마음이 불편해서 저한테 몇번이나 따로 얘기하기도 했어요. 오염수 사건은 일본이라는 국가의 문제가 아니라 국제연대를 통해 우리가 같이 풀어야 되는 문제입니다. 설령 오염수 방류국가가 일본이 아니라 미국, 중국이나 러시아 등 다른 나라여도 같은 식으로 반대해야 된다는 거죠. 본질은 달라진 게 없으니까요. 그런 측면에서 저는 이 이후를 준비하는 과정은 좀더 차분했으면 좋겠어요. 지금은 너무 격앙돼 있습니다.
남상욱 관련해서 한가지 여쭙고 싶은 게 사실 에너지 전환의 실질적인 주체가 국가잖아요. 탄소중립도 국가가 배당을 받는 거고요. 그런데 이렇게 국가, 정부 단위로 이루어지니까 오히려 에너지 전환을 어렵게 만드는 건 아닌가 싶어요. 미국이 엎어버리면 끝나버리고요. 국가 단위를 넘어서는 에너지나 핵 같은 문제와 관련해서는 어떠한 네트워크가 가능할까요?
이헌석 에너지, 특히 전력 문제는 기본적으로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는 산업입니다. 심지어 재생에너지조차도 일정 규모가 되어야 효율이 높아지고 그 과정에서 굉장히 많은 자본이 투입될 수밖에 없어요. 개인이 할 수 있는 영역에 제한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기후정치나 녹색정치의 영역이 중요한 겁니다. 국가나 테크노크라트들에게 맡겨놓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감시하고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전략이 만들어지지 않으면 자본, 이윤, 국가 간 논리들에 끌려가게 되겠죠. 시민들이 개입하는 방법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고, 개입 과정에서 국제연대가 중요한 매개라고 봐요. 오염수 방류도 초기 국면에서는 국제연대가 거의 없었지만, 최근에는 상황이 많이 나아졌습니다. 다만 실제 현장에서는 일본 시민단체와 연대하다보면 어려움을 느끼는 지점이 하나 있는데요. 한국과 일본의 운동 스타일이 완연히 달라서요.
남상욱 일본 연구를 하시는 분들은 알겠지만 ‘나는 고기잡이가 생업이니 오염된 물고기더라도 잡겠어’ 하는 게 또 일본인들의 가치관이거든요. 한국 사람들로선 전혀 이해가 안 될 거예요. 오염된 고기를 왜 잡느냐고 하겠죠. 그런데 나는 이렇게 살아왔으니까, 하고 생각하는 것이 일본 사람입니다. 오염된 곳에서 왜 사냐고 물으면 내가 살아온 동네를 왜 떠나야 되냐고 반문하죠. 시민사회의 분위기가 우리와 완전히 다르니 연대의 과정에서도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이헌석 맞습니다. 사실 연대라는 것은 서로에 대한 인정과 존중으로부터 오는 거잖아요. 일본은 정말 집회 하나 잡기도 힘든 나라이고 특히나 1인시위를 한다는 건 엄청난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입니다. 한국사회에서처럼 준비된 투사들이 일본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다가 그렇지 않은 걸 보고 실망하고 언쟁이 오가기도 하는데요. 아직까지 한국의 시민단체가 국제연대를 위한 준비나 이해 수준이 부족한 면도 있는 거죠.
오은정 한국에서 오염수 방류에 대한 반대 여론이 반일감정에 지나치게 기대면서 진행되다보니 이런 문제점이 생겼다는 생각이 들어요. 송기호 변호사님이 말씀하셨듯 오염수 방류 그 자체가 가진 문제를 체계적인 원칙에 따라 해결해가는 게 필요한데 일본이 하는 모든 일에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여기다보니 국제연대를 할 때도 갈등이 생기는 거죠. 한국의 오염수 방류반대 운동은 단지 반일감정에만 근거해서는 안 되고, 거기 살고 있는 주민들의 삶에 대한 이해, 원전이라는 에너지체계의 비대칭적이고 희생적인 구조들에 대한 이해를 동반하면서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을 추구하는 국제연대 형태로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송기호 저는 이 시점에서 동아시아 비핵지대를 계속 강조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오염수 방류 문제를 떠나 아시아에서의 원자력 밀집에 대한 시민들의 우려가 굉장히 높습니다. 사실 각 나라나 지역별로 비핵지대체제라든지 비핵지대화 시스템이 모색되기도 하고 일부 돌아가기도 하거든요. 그걸 동아시아에서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 고민해야 합니다. 핵발전소가 밀집되어 있고 또 핵발전을 필요로 하는 아시아의 경제구조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포함해 방출 문제 하나에만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아시아에서의 탈원전, 나아가서는 안정적인 비핵지대화라는 구상을 체계화하려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헌석 보통 비핵지대라고 하면 핵무기에 대한 비핵지대를 뜻하는데, 지금 말씀하신 건 발전소를 포괄하는 것이죠?
송기호 네, 무기와 발전소가 냉정하게는 구분될 수 없으니까요. 10년 전만 하더라도 일본의 변호사들과 동아시아 비핵지대 이야길 했단 말이죠. 이 지역에 이렇게 많은 핵발전소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공감대를 갖고서, 국제법적으로 동아시아 비핵지대를 만들 방안을 논의했어요. 지금은 오히려 상황이 악화되어 방사능 오염수 해양투기를 걱정하는 형국이잖아요. 회복을 위한 계기들을 다시 고민할 때인 것 같습니다. 저는 핵무기 비핵지대 개념을 핵발전소 비핵지대로 확장하고 싶어요. 동아시아에서 핵무기뿐만 아니라 이렇게 많은 핵발전소를 후손에게 남겨주어도 되는지, 모두가 가슴을 열고 이야기하면 좋겠습니다.
여전히 후꾸시마에 살고 있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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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상욱 우리가 후꾸시마라는 지역을 잘 이해하고 있는가도 짚어볼 문제인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우리는 고리 원전이라고 얘기하지 경상남도 원전이라고 말하지 않잖아요. 후꾸시마 사람들 대부분은 원전에서 떨어진 내륙도로 주위에 살고 있어서, 원전만으로 후꾸시마 전체의 이미지가 고착되는 것을 내켜하지 않는 경우도 있는 듯합니다.
이헌석 실제로 방사능이나 사고를 논할 때 그 지역사람에 관해서는 의도적으로 피하거나 생각을 아예 안 하게 되거든요. 특히 체르노빌의 경우는 훨씬 더 극단적인 것 같아요. 체르노빌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기형아나 기형가축 같은 사례를 떠올리지만 실제로 발전소 사고를 기록해둔 국립박물관에 가보면 그런 건 거의 없어요. 사고를 수습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소방관이 희생됐고 주민들이 어떻게 살고 있고 고향을 떠난 사람들은 누구인가, 이런 것이 주된 내용이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사고 지역을 사람과 분리시키는, 타자화하는 경향이 굉장히 큰 거죠.
남상욱 원전사고가 발생하고 일본 내에서 ‘제2의 패전이다’ 같은 말이 나오면서 그 당시에 쓰나미로 죽은 7천여명의 사람들은 망각되었어요. 경제적 이익이 되는 ‘부흥’의 목소리가 커지는 가운데 작가들과 인문학자들에 의해 2010년대 중후반쯤 본격적인 추모 움직임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오히려 후꾸시마 문제가 후경화된 거예요. 흥미로운 건 재일교포인 유미리 작가가 후꾸시마 동부의 미나미소마시에 서점을 열고 거기 들어가서 살고 있는데요. 자신이 일본사회에서 소수자로서 살았기 때문에 후꾸시마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었던 거죠. 이러한 움직임이 조용히 일어나고 있기도 합니다.
이헌석 한국에서는 동일본대지진이 발생한 3월 11일 즈음에 탈핵집회를 합니다. 반면 일본에서 그날은 추모하고 묵념하는 날이에요. 지진과 쓰나미로 엄청난 희생자가 발생한 날이기 때문에 소란스럽게 집회를 하지 않아요. 타자화를 경계하고 국제연대를 이루기 위해서는 그런 정서를 이해하려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남상욱 후꾸시마 원전사고와 관련하여 자주 언급된 이야기 하나는 결국 토오꾜오의 전력을 위해 지방이 희생된 것 아니냐 하는 점입니다. 수도권의 공장들을 돌리기 위해, 자본주의 발전을 위해 지역공동체가 희생된 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이른바 인류세의 어떤 임계점을 얘기해주는 사건이라고 볼 수도 있는데요.
오은정 후꾸시마 원전에서 생산하는 전기는 후꾸시마현 주민이 쓰는 것이 아니라 토오꾜오에서 사용해요. 어쨌든 후꾸시마 사람들은 수도권 에너지 공급을 위해 희생해왔고, 원전사고로 인해 이제 일부 지역에서는 살기도 어렵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 지역 사람들에게는 원전사고는 여전히 진행 중이라고 할 수 있고, 오염수 방류는 여러 문제 중 하나일 뿐이죠. 여전히 그곳에 사는 사람들 중에 시민과학 활동을 하는 이들이 있어요. 후꾸시마 원전 바로 아래 이와끼라는 지역에서는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 만든 ‘따라찌네’라는 시민과학단체도 있고요. 이이따떼 지역에는 ‘후꾸시마재생모임’이라는 단체가 생기기도 했어요. 이 지역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굳이 힘들게 피난을 가야 하느냐며 그 지역에서 여전히 농사짓고 사시거든요. 지역사람들은 시민과학을 통해 지역의 안전을 점검하고 농사도 짓고 아이도 키우고 음식도 만들어가면서, 식품이나 바닷물 등에 대해 측정활동을 합니다. 이들의 작업을 따라가보면 정부가 제염작업을 한 공공부지나 도로, 논밭 등은 확실히 방사능 수치가 낮습니다. 반면 산이나 골짜기는 제염을 못했는데, 그 때문에 지역 분들이 산에 들에 다니며 산나물 따던 원래의 생활을 지속하지는 못해요. 이런 상황에서 주민들은 재생에너지 전환이나 재생농업을 시도하는 등 새로운 삶을 만들기 위한 작업들을 해나갑니다. 이런 지역성, 그리고 지역주민들에 대한 이해가 국제연대를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고 봅니다. 후꾸시마현은 원전사고 이후 재생에너지 100%를 목표로 에너지 전환을 착실히 이행해나가고 있기도 해요. 사고를 직접 겪으며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지 몸소 체감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남상욱 아이러니하게도 원전에 비상전력을 공급해주는 발전소가 쓰나미에 의해 침수되어서 사고가 나지 않았습니까. 지구가 계속 흔들리고 뜨거워지고 쓰나미가 발생하는 등 기후위기 차원의 문제 역시 열어놓고 생각해야 하고요. 에너지 전환이나 다양한 시민운동과 어떻게 결부할 수 있는가 하는 과제가 계속 남을 듯합니다. 희생된 분들, 지역사회와 주민의 정서를 이해해가면서 오염수 문제도 함께 생각했으면 합니다.
오염수 방류가 끝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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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상욱 이제까지 후꾸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를 20세기 후반 핵사용의 역사, 에너지 전환 운동, 민주주의의 위기, 그리고 현지 주민의 삶과 국제연대 가능성까지 관련지어 두루 살펴봤는데요. 우리가 앞으로 살아갈 21세기는 20세기에 형성된 부(負)의 유산을 어떻게 처리하고 관리할 것인지에 달려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오은정 20세기 핵의 역사를 돌아보면 핵이라는 것을 정치권력이나 경제적인 측면에서 바라봐왔던 것 같아요. 오염수는 위험하다면서 극단적인 반응을 보이지만 막상 피해자들에 대해선 막연히 저 사람들은 재난의 피해자라고 여기면서 나와 분리시킵니다. 그렇게 타자화할 게 아니라 우리도 이 체계 안에 속한 구성원으로서 언제든 유사한 사고를 겪게 될 수 있음을 자각해야 해요. 저는 히로시마 원자폭탄 피해자나 후꾸시마 지역 연구를 하면서 무기로서의 핵이나 원전으로서 핵에너지라고 하는 것은 결국 동일한 선상에 있다는 점을 계속 확인하게 됩니다. 결국은 발전이라고 하는 영역을 포함하는 형태의 동아시아 비핵지대로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이헌석 한국사회가 오염수 방류를 계기로 더 큰 문제의 입구에 서 있는 것 같아요. 이 문제에는 핵무기 발전 같은 지금까지의 핵산업 역사가 다 얽혀 있습니다. 오염수 방류를 둘러싼 찬반 논란, 여러 쟁점이 지금 한국사회의 하나의 시금석같이 느껴지고, 여기서 한발 떨어져서 볼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누구 말이 맞느냐, 과학적으로 수치가 맞느냐 틀리냐, 이건 이것대로 논쟁이 필요하겠으나 그외에도 많은 쟁점이 이 문제 안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일련의 사태를 지켜보고 있으면 2020년대 우리는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세상에 사는 것 같아요. 오염수 방류를 둘러싼 여러 논란을 우리 사회의 다양한 이면을 보는 계기로 삼고 이 문제를 조금 낯설게 보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송기호 저는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근거 없는 희망을 품기보다는 문제가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해보자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우리가 비록 경제적으로 상당한 수준에 올랐을지 모르지만 민주주의 측면에서는 갑작스러운 퇴행과 퇴보를 겪고 있거든요. 이 고장 난 시스템이 단순한 오류나 잘못으로 생긴 걸까요? 막연한 희망보다는 바닥에서부터 근본적인 논의가 필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왜 한국의 시스템 자체가 멈추었는지, 어째서 이러한 모순이 대한민국에서 가장 크게 부각되는지, 이 부분을 뼈저리게 돌아봐야 합니다.
남상욱 후꾸시마 오염수 문제는 단순히 수산물이 안전한가 안전하지 않은가의 문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를 계기로 민주주의의 문제, 에너지 전환의 문제, 그리고 거기 살고 있는 지역주민들을 타자화하지 않고 나와 같은 삶을 사는 사람으로 이해할 수 있는가까지 나아가는 것 같습니다. 여러 지점이 복잡하게 얽혀 있네요. 어떤 의미에서 ‘오염수의 시기’라고 할 수 있는 지금 우리한테 요청되는 건 무엇인가 고민이 듭니다. 한국 민주주의 위기는 물론 그 위기를 허용하는 국제적인 질서들도 망가진 것 같은데요. 이를 계기로 앞으로 우리는 어떤 부분에 집중해야 하는가, 특히 생활세계의 차원에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해 저도 열심히 고민을 해보겠습니다. 오늘 수고 많으셨습니다. (2022.7.25. 창비서교빌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