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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권여선 權汝宣
1965년 경북 안동 출생. 1996년 장편소설 『푸르른 틈새』로 등단.
소설집 『처녀치마』 『분홍 리본의 시절』 『내 정원의 붉은 열매』 『비자나무 숲』 『안녕 주정뱅이』 『아직 멀었다는 말』 『각각의 계절』, 장편소설 『레가토』 『토우의 집』 『레몬』 등이 있음.
puruntm@empas.com
안반
혜영에게서 전화가 왔을 때 혜진은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언제부턴가 혼자 술 마시며 그림 그리는 버릇이 들었다. 술을 먹고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보람찬 일 중 하나였다. 손으로 스케치를 하고 색을 입히는 건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했다. 프로그램에 익숙하지 않아 도구나 색감을 다양하게 사용하지 못하고, 취기 탓인지 밑그림을 끼워넣는 데 실패하거나 공들여 그린 밑그림을 몇번 날려먹기도 했다. 아직 제대로 완성한 그림은 없지만 이것저것 그리다 만 것들은 좀 있었다.
“엄마가 암일지 모른대.”
혜영이 그렇게 말했을 때 혜진은 안주로 먹고 있던 미역줄기볶음을 그리던 손을 멈추었다.
“무슨 암?”
“위암. 위내시경을 찍었는데 암일지 모른다고 큰 병원에 가보라고 했대.”
“엄마 작년에도 위내시경 찍지 않았어?”
“응. 그랬을 거야.”
“일년 만에 암이라고?”
그러게,라며 혜영은 예약한 종합병원의 진료 날짜와 시간을 알려주었다.
“뭐?” 혜진이 놀라서 물었다. “아침 아홉시 십오분?”
“거기는 거의 다 오전 진료야. 엄마는 의사 만나고 바로 내시경을 찍어야 할지도 모르니까 더 일찍 잡힌 거고.”
“그럼 도대체 몇시에 출발해야 하는 거야? 출근길이라 또 얼마나 막힐 거고.”
“엄마 모시고 가야 하니까, 엄마네까지 한시간 잡고, 거기서 병원까지도 막힐 테니까 거의 한시간, 수속하고 그러려면…… 일곱시에는 출발해야 한다고 봐야지.”
혜진이 말이 없자 혜영이 그날은 나 혼자 엄마 모시고 갔다 올게, 둘이나 갈 거 뭐 있니, 했다. 그럴래? 혜진이 말했고 그러자, 하고 혜영이 전화를 끊었다.
전화가 끊긴 후 혜진은 그래도 언니에게 같이 가자고 했어야 했나, 밤을 새우고라도 같이 가겠다고 할 걸 그랬나, 생각하며 그리다 만 미역줄기 그림을 바라보았다. 수채로 그린 투명한 연녹색 줄기와 진녹색 잎사귀의 어우러짐이 참 싱그럽기도 해서 혜진은 징그럽게 싱그럽네, 싱그러워, 하고 중얼거렸다.
신숙의 조직검사 결과를 들으러 가는 날에는 혜진도 같이 병원에 갔다. 세 모녀가 진료실에 들어서자 의사는 좀 놀란 듯했다.
“두분 다 보호자?”
혜영이 그렇다고, 딸들이라고 하자 의사는 굳이 나가라고는 하지 않았지만 보호자는 한분만 들어오셔도 되는데, 했다. 혜진은 나갈까 하다 그냥 구석에 서 있었다. 의사는 이게 암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암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는 샘종이 다수 발견돼서 제거수술을 해야 한다고, 내시경으로 하는 수술이라 간단하다고, 사흘 정도만 입원하면 될 거라고 했다. 혜진은 다행이라고 생각했고, 신숙을 내려주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혜영에게도 그렇게 말했다.
“다행은 다행인데,” 하고 한동안 전방만 주시하며 운전하던 혜영이 말을 이었다. “그래도 수술은 수술이잖니?”
무슨 말을 하려나 하고 혜진은 기다렸다.
“엄마 연세도 여든이 넘었고 수술하고 회복하는 동안 뭘 제대로 드시지도 못할 텐데.”
“그건 그렇지.”
“그래서 말인데,” 다시 뜸을 들이던 혜영이 말했다. “내가 사흘 동안 병원 들어가서 엄마 병간호하려고.”
혜진은 자신이 뭘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코로나19 시국은 지나갔지만 병원은 여전히 엄격했다. 입원 안내문에는 입원병동은 간호 간병이 통합된 병동이라 따로 개인 간병인을 쓸 수 없고 가족 면회도 금지된다고 적혀 있었다. 다만 위중한 수술을 한 경우에 한해, 수술 후 삼분에서 오분가량, 가족 중 단 일인에게만 면회가 허락된다고 되어 있었다. 삼분에서 오분, 단 일인, 그런 대목에서 혜진은 참 인색도 하다 생각했던 기억이 났다.
“병간호? 그거 안 되는 일이잖아?”
“내가 아까 의사한테 얘기해서 다 허락을 받아놨지.”
이렇게 말하며 운전대를 톡톡 치는 혜영의 목소리에 조용한 결단과 자부심이 흘렀다. 진료가 끝난 후 혜진이 신숙과 함께 진료실을 나올 때 혜영이 잠깐 남아서 의사와 무슨 얘기인가를 나누는 것 같았다. 신숙이 화장실에 가겠다고 해서 혜진이 같이 다녀와보니 혜영이 접수대의 간호사와 또 무슨 얘기인가를 나누고 있었는데 그때 언뜻, 선생님이 허락하셨거든요, 하고 말하는 걸 들은 기억이 났다. 그게 그거였나 싶으면서 혜진은 오래된 우려와 의구심이 동시에 몰려오는 것을 느꼈다. 혜진은 안내문의 예외조항을 기억해내려 애쓰면서, 엄마는 그, 거동불능도 아니고 치매, 아니 그, 인지장애, 그런 것도 아닌데 어떻게 간병을 허락받았느냐고 물었다.
“엄마 무릎 아파서 잘 못 걸으시잖아? 그래서 의사한테 엄마가 거의 못 걸으신다고, 혼자 다니다 낙상하실 위험이 크다고 했지. 또 치매기도 약간 있으시다고 했어.”
“왜?”
그런 거짓말을, 하는 뒷말을 혜진은 삼켰다.
“그래야 의사가 허락해줄 거 아냐?”
“거긴 간병인 침대도 없다던데?”
“그래서 통합병동 말고 특실이나 일인실로 배정해달라고 신청해놨어.”
침대는 그렇다 쳐도, 언니나 나나 불면증에 낮밤이 바뀌어들 사는 주제에, 엄마가 뭐 그리 위중한 환자라고 사흘 동안 거기 들어가서 병간호를 하느냐는 말이 튀어나오려는 걸 혜진은 꾹 눌러 참았다. 아마 혜영은 혜진이 무슨 말을 해도 거기에 맞는 적절한 답변을 할 준비가 된 것 같았고 그래서 혜진은 더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잘못하다간 혜영이 기다리는 말 대신 다른 말들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참 가지가지, 사서 고생한다, 못 말리는 효도충동, 같은 말들.
집에 돌아와 혼자가 되어서야 혜진은 혜영에게 그런 나쁜 말들을 쏟아놓지 않은 게 얼마나 잘한 일인가 생각했다. 엄마 연세도 여든이 넘었고, 수술하고 회복하는 동안 뭘 제대로 드시지도 못할 텐데, 무릎 아파서 잘 못 걸으시는데, 혼자 다니다 낙상하실 위험도 큰데, 치매기는 없으시지만, 아니 인지장애는 없으시지만 평소에도 인지능력이 의심스러운 말과 행동을 잘하시니까, 언니가 큰 결심 했다, 장하다, 효녀다, 그렇게 생각하기로.
참 가지가지, 사서 고생한다, 못 말리는 효도충동, 같은 차마 하지 못한 혜진의 말들은 비틀린 예언처럼 실현되었다.
일요일 오후에 입원한 신숙은 월요일에 수술을 받고 화요일에 퇴원할 예정이었지만 의외의 변수가 생겨 수술을 받지 못한 채 하루하루 입원을 연장해야 했다. 입원 전부터 신숙은 감기 기운이 있어 그런지 오슬오슬 춥고 열이 나서 해열진통제를 복용해왔는데, 입원한 후에도 열은 떨어지지 않았고 혈액검사 결과 염증 수치도 높았다. 의사는 열과 염증을 잡지 못하면 수술을 할 수 없다고 했고, 그때부터 원인을 찾는 검사가 진행되었다.
신숙이 입원한 날부터 혜영은 하루에 서너번씩 혜진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알려주었는데, 수술이 하루씩 미뤄질 때마다 초조하고 불안한 기색이었다. 신숙이 만성신우신염에 걸렸다는 진단이 나온 화요일에는 혜진과 통화하면서 짜증을 참지 못했다. 의사가 만성신우신염은 위 샘종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위험한 병이라고, 까딱 잘못하다가는 신부전으로 갈 수도 있다고, 그러면 투석까지 해야 하는 병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신숙이 그런 위험한 병에 걸려서 혜영이 짜증이 난 건 아니었고, 앞으로 신숙이 이주일 동안 매일 항생제 주사를 맞아야 하는데 이주일이 지나도 증상이 나아지지 않으면 삼주일, 그래도 깨끗이 낫지 않으면 한달까지 맞아야 할 수도 있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그럼 도대체 언제까지 입원해 있어야 하느냐고 혜영이 묻자 의사는 일단 일주일은 더 입원해서 오전 오후 각각 한시간씩 두번 주사를 맞고 일주일 후부터는 매일 통원으로 다니며 한시간씩 주사를 맞으라고 했다는 것이다.
“일주일이래!” 혜영이 한숨을 쉬었다. “원래대로라면 오늘 퇴원했어야 하는데, 오늘부터 일주일을 더 입원해 있어야 한대. 혜진아, 나는 그렇게는 못 있는다!”
“못 있지.” 혜진은 동의했다.
“내가 여기서 정말…… 혜진아, 우리 엄마 있잖니,” 하고 혜영이 긴 이야기를 할 듯 운을 떼었고 혜진은 응, 하고 대답했다.
“그 잘나고 똑똑한 우리 엄마께서 병원에서는 아주 애기 짓을 한다.”
안 봐도 눈에 선했지만 혜진은 어떻게? 하고 물었다.
“누가 오면 나만 쳐다봐. 의사가 와도 간호사가 와도 나만 쳐다보고 있어. 의사가 엄마한테 오늘은 어떠시냐 괜찮으시냐 물어보지? 그래도 나만 쳐다봐. 한국말 못 알아듣는 사람처럼. 내가 엄마 오늘은 어떠시냬 괜찮으시냬 그렇게 통역을 해줘야 얘기를 해. 그것도 의사한테가 아니고 나한테. 엄마가 어젯밤에 잠을 못 잤잖아 혜영아, 계속 열이 나서 잠을 못 자서 뭐 그렇게 나한테 얘기를 하면 의사가 듣고 아 잠을 못 주무셨어요 열이 나셨어요 하는 식이야.”
혜진은 혜영의 얘기를 들으면서, 그때 언니가 통역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보지, 그럼 엄마가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을 했다. 혜영도 그런 혜진의 생각을 알아챈 듯 이렇게 말했다.
“그래서 나도 안 되겠다 싶어가지고 누구 있을 때 그러기는 망신스럽고 엄마랑 둘이 있을 때 어디 해보자 했지. 엄마가 혜영아 엄마 수액 다 맞아간다 하기에 엄마 거기 빨간 버튼 있지 그거 눌러서 간호사한테 수액 다 맞아간다고 얘기해 했지. 근데 우리 엄마 아예 못 들은 척하고 가만히 있는다. 그전에도 내가 간호사 부를 땐 빨간 버튼 누르고 말만 하면 된다고 수십번 얘기했거든. 근데 한번도 안 해. 빨간 버튼 거기 엄마 침대 바로 위에 있네 그거 눌러 해도 가만히 있어. 내가 어이가 없어서 엄마 그건 할 수 있잖아 그건 좀 엄마가 제발 해봐 해도 안 해. 그래서 나도 안 했지. 내가 하나 봐라 모른 척 책만 봤어. 좀 이따 슬쩍 보니까 엄마가 수액 봉지를 쳐다보고 한숨을 푹 쉬더니 나더러 들으라는 듯이 뭐라는지 아니? 아휴 뭐 다 맞고 그냥 있어도 별일은 없겠지 그런다. 다 맞고 그냥 있으면 어떡하느냐고? 혈관에 공기 들어가면 큰일 나는데? 내가 책을 탁 덮고 일어나서 엄마 대신 빨간 버튼을 누르는데 손이 다 부들부들 떨리더라. 여기 수액 다 맞아간다고 간호사한테 얘기하는데 목소리도 부들부들 떨리는 거 있지. 근데 엄마가, 세상에, 우리 엄마가 그걸 보고 슬그머니 웃고 있더라. 내가 똑똑히 봤어. 웃고 있더라고. 니가 나를 무슨 수로 이기니, 무슨 수로 이겨, 그거지.”
혜영에게 보이지 않을 텐데도 혜진은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우리는 엄마 못 이겨. 엄마를 무슨 수로 이겨?
“그렇게 애기처럼 나한테 기대면서도 내가 하는 말은 또 안 믿고 이상하게 우긴다. 내가 무슨 말만 하면 의심부터 하면서 언제 의사가 그랬냐고 자기는 기억이 안 난다고 그래. 내가 의사가 분명히 그렇게 얘기했다고 엄마 그럼 그때 우리가 의사를 왜 만났는데 그거 물어보려고 만난 건데 그걸 안 물어봤을 리가 없잖아 그래서 의사가 이런 얘기를 했잖아 해도 계속 고개만 쌀쌀 흔들면서 자기는 기억이 안 난대. 만약 엄마가 정 의심스러우면 다음에 의사 만났을 때 물어보라고 하잖아? 그럼 자기가 물어보겠다는 말은 죽어도 안 하고 새초롬해가지고 아니 언제 의사가 그런 말을 했다는 거니 난 들어본 적도 없는데 이러고 있어.”
엄마가 기억이 안 난다고 우기면 그쯤에서 그런가보다 하고 말면 될 일을, 엄마가 우기는 걸 얼마나 잘하는 사람인데 거기에다 대고 언니도 저렇게 끝까지 우길 일인가 싶지만 혜진은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평생 엄마를 못 이기고 앞으로도 절대 못 이길 텐데, 그걸 알면서도 때로는 마음이 뒤틀려서 어떻게든 작은 일 하나에서라도 한번 이겨보려고 맞서지만 그래봤자 결국 또 못 이기고 더 만신창이가 될 뿐이라는 걸, 언니는 번번이 당하면서도 왜 모를까. 엄마가 언니에게 하는 짓이 어쩌면 딱 할머니가 엄마에게 하던 짓일까 싶어 혜진은 자기도 모르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 진짜 사람 울화통 터지게 하네.”
잠시 조용하던 혜영이 아, 나 정말 왜 이러냐, 내가 원래, 아, 내가 아픈 엄마 두고 이게 뭐 하는, 하더니 갑자기 전화를 끊어버렸다. 휴대전화를 들고 가만히 앉아 있던 혜진은 문득 혜영이 왜 허둥지둥 전화를 끊어버렸는지 알 것 같았다. 자신이 버럭 내지른 말이 할머니가 늘 입에 달고 살던 말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할머니의 말을 했네, 할머니 말을 했어, 혜진은 그렇게 오래 중얼거렸다.
다음 날 오후에 전화를 걸어온 혜영은 신숙이 금요일에 퇴원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어제부터 일주일은 더 입원해 있어야 한다며? 그럼 다음주 화요일 아니야?”
“내가 의사한테 얘기해서 다 허락을 받았지. 어차피 엄마가 하루 종일 병원에서 하는 일이라고는 주사 맞는 거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데 차라리 빨리 퇴원해서 통원으로 주사 맞으러 다니겠다고 했어.”
“그래도 된대? 일주일 동안은 하루 두번씩 맞아야 한다며?”
“그러니까 지금 바로 퇴원 못하고 금요일까지는 하루 두번씩 맞고 나가겠다는 거 아니야? 병원비도 그렇고 너무 오래 입원해 있는 게 우리 입장에선 경제적으로 힘들다고 했어.”
혜진은 어리둥절했다. 병원비는 자기가 낼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장담했던 혜영이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특실이라 보험도 안 되고 입원비가 만만치 않을 터였다.
“언니, 내가 좀 보탤까?”
“아니, 혜진아, 언니 얘기가 지금 그런 얘기가 아니잖아. 그래야 의사가 허락을 해줄 거 아니니? 여기 특실이라고 해봤자 병실이 얼마나 좁은지 엄마 침대 옆에 간이침대 하나 놓고 내가 거기 하루 종일 앉고 눕고 한다. 밤새 못 자고 새벽에 겨우 잠들만 하면 간호사가 와서 엄마 체온 재고 뭐 하고 하느라 잠이 다 달아나. 여기 들어와서 내가 낮이고 밤이고 잠을 한숨도 못 잤어.”
그러게 내가 뭐랬어, 왜 거짓말로 엄마를 거동도 못하는 중환자를 만들어 억지 간병을 들어가 그 개고생을, 하는 말을 혜진은 하지 않았다.
“금요일까지 버틸 수 있겠어?”
“그럼 어떡해? 버텨야지 다른 수가 있니?”
그 말 속엔, 내가 못 버티면 네가 들어올 거야? 하는 뜻이 숨어 있었다. 그러니 언니만 나오라고, 어차피 엄마가 병원에서 하루 종일 하는 일이라고는 주사 맞는 거밖에 없다며, 엄마 혼자 일주일 더 입원해 있으면서 하루에 주사 두번씩 맞고 의사 말에도 혼자 대답하고 빨간 버튼도 혼자 누르고 하게, 언니 너만 그냥 나오면 되는 거라고, 하는 말을 혜진은 하지 않았다.
결국 사흘 간병하러 들어갔던 혜영의 일정은 딱 두배인 엿새로 연장되었다.
신숙이 퇴원하는 날 혜진이 병원에 가보니 평소에 그렇게 다정한 척하던 모녀가 거의 원수지간이 되어 서로를 제대로 쳐다보려고 하지도 않고 있었다. 차 트렁크에 짐을 싣고 혜영은 운전석에, 혜진은 조수석에, 신숙은 뒷자리에 탔다. 신숙의 집까지 가는 동안 차 안에는 내비게이션의 안내 음성만 들렸다. 신숙의 집 앞에 차가 섰을 때 신숙이 준비된 말을 읊조리는 배우처럼 말했다.
“우리 맏딸, 혜영이, 우리 효녀 딸, 엄마 때문에 그동안 고생 많았다.”
혜영이 마지못해 고개를 조금 돌리고 억지웃음을 짓자, 그걸 본 신숙의 인상이 구겨졌다.
“짐은 내가 들어다드리고 올게.”
혜진이 짐을 들어 신숙의 집에 가져다놓고 돌아왔을 때 혜영은 헤드레스트에 머리를 기대고 눈을 감고 있었다. 차에 탄 혜진이 벨트를 매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출소를 축하해.”
“축하는 무슨.” 혜영이 신경질적으로 눈을 비비며 말했다. “어느 세월에 또 엄마 주사를 다 맞히러 다니니?”
“언제까지 맞아야 된다는 말 없어?”
“없어. 보름이 될지 한달이 될지 모른대.”
“어쩌냐?”
“그거 다 맞고 또 정작 위 수술 받을 때는 어쩔 거냐고? 그땐 내가 죽어도 병간호 못해.”
“당연하지. 언니 하지 마.”
“그럼 혜진이 니가 할래?”
“내가 왜?” 혜진은 깜짝 놀랐다. “난 안 해. 병원에서 통합으로 간호 간병 해주는데 왜?”
“아, 그래. 그렇지. 병원에서 다 해주는데 내가 미쳤지.”
그걸 이제 알았니 언니야, 그런 말을 혜진은 하지 않았다. 다만 혜영과 얼른 헤어지고 싶은 생각을 떨치기 위해 어제 사놓은 시금치로 무얼 만들어 먹을까 하는 생각에 골몰했다. 보랏빛 그러데이션이 아름다운 겨울 섬초 뿌리를 다듬어 절반은 나물을 무쳐 김밥을 말고 절반은 된장국을 끓여 곁들여 먹자, 아무도 안 주고 나 혼자 먹자, 그런 생각을 하며 혜진은 혜영과 차를 타고 오는 시간을 버텼다. 혜영이 혜진의 집 근처에 차를 세워주었고 혜진은 내렸다. 골목에서 조심조심 우회전하는 혜영의 차 뒷모습을 바라보다 혜진은 갑자기 울 뻔했다. 안도해서도 미안해서도 한심해서도 아니었고, 왜 그런지 모르지만 그저 눈에 눈물이 고였다 말라가며 눈 주변이 뻑뻑해졌다. 언니도 환갑이 다 돼가는데, 그런 생각도 들었다.
신숙이 퇴원한 다음 날부터 혜영은 매일 신숙을 데리고 병원에 다니며 주사를 맞혔다. 혜진은 그 동선에 따른 시간을 계산해보았다. 차가 별로 안 막힌다고 가정하고, 언니 집에서 엄마 집까지 사십분, 엄마 집에서 병원까지 삼십분, 접수하고 수납하고 주사실에 가서 대기하는 시간 이십분, 엄마가 주사 맞는 시간 육십분, 다시 병원에서 엄마 집까지, 엄마 집에서 언니 집까지 돌아오는 데 칠십분. 총 이백이십분, 세시간 사십분이 걸리는 일이었다.
닷새째쯤 되는 날 신숙이 혜진에게 전화를 걸어 혜영을 한껏 원망하는 소리를 했다. 주사 맞고 신숙의 집에 도착하면 그때가 딱 점심때라 신숙이 같이 밥을 먹자고, 밥을 먹고 가라고 해도 혜영이 번번이 거절한다는 것이다.
“어떻게 한번을 안 먹고 간다?”
“같이 먹으려면 언니가 밥 차려야 하니까 그런 거 아냐?”
혜진의 말에 신숙이 펄쩍 뛰며 모르는 소리 말라고 했다.
“엄마가 아침에 병원 가기 전에 미리 다 준비해놓고 가지. 냉장고에서 반찬만 꺼내고 찌개만 데우면 된다는데도 먹자고 하면 안 먹고 그냥 간다. 저 좋아하는 김치찌개 끓여놨다고 해도 두말을 못하게 하고 차에서 내리지도 않고 가버려. 혜영이 걔가 사람이 아주 차졌다. 찬 사람이 됐어.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그리고 며칠이 지난 후 혜영이 혜진에게 전화해서 주사실이 일요일에도 쉬지 않는다고 하소연을 했다.
“어떻게 하루를 안 쉬니?”
“하루도 안 빼놓고 주사를 맞아야 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렇겠지. 엄마도 그렇다며?”
“이제 열흘도 안 됐는데 지친다 벌써.”
“지치지? 내일 하루만이라도 내가 엄마 모시고 갈까?”
“넌 차도 없는 애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아직도 언제까지 맞으란 말 없어?”
“일단 두주까지는 맞고 보자는 식이야. 의사도 아니고 주사실 간호사 말이 그래. 거기에 주사 맞으러 오는 사람들 중에 어떤 할머니는 지금 한달 넘게 주사를 맞으러 다니고 있대.”
“무슨 병인데?”
“그건 안 물어봤어. 무서워서 물어보지도 못하겠더라고.”
“근데,” 하고 혜진은 은근히 떠보았다. “엄마가 언니 밥 안 먹고 간다고 서운해하시더라.”
“하, 참!” 혜영이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 “내가 그것까지는 못하지. 할 필요도 없고. 엄마는 바랄 걸 바라야지.”
오, 그렇지, 하는 말이 튀어나오려는 걸 삼키며 혜진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언니도 제법인데.
혜영과의 통화를 끝내고 멍하니 앉아 있던 혜진은 언젠가 이런 비슷한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싶어 가만히 기억을 더듬어보았다. 아마 십여년 전쯤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직전이었던 것 같은데…… 그때 유재가 입원해 있던 지방의 요양원에서 신숙에게 연락이 왔다. 심유재 환자분이 식음을 전폐하고 눈 딱 감고 누워만 계시니 얼른 보호자가 와보셔야겠다고. 신숙이 부랴부랴 혜영의 차를 타고 혜진을 대동해 요양원에 내려갔다. 신숙이 유재를 붙들고 엄니, 엄니, 숙이 왔어요, 하며 뭐라고 얘기를 하는데도 유재는 자는지 못 듣는지 눈을 감고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저녁 무렵 혜진이 어디 나갔다 병실로 들어서는 중에, 둘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신숙이 유재에게 뭔가를 격렬히 호소하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엄니, 바랄 걸 바라셔야지. 내가 그것까지는 못해요. 아무리 치매에 걸리셨어도 엄니, 그 얘기는 꺼내지 마셨어야지. 그 얘기는 나한테 안 하셨어야지.
앞도 뒤도 없이 그 부분만 엿듣고도 혜진은 오싹 무서워져서 얼른 다른 데로 몸을 피했던 기억이 있다.
하, 참! 내가 그것까지는 못하지. 엄마는 바랄 걸 바라야지.
혜진은 혜영이 한 말을 천천히 곱씹으며, 그때 엄마 나이 일흔쯤이었는데 언니는 환갑도 안 되어 이런 말을 하니 이건 발전이다 했다가, 아 그때 엄마는 할머니 면전에서 했는데 언니는 엄마 면전에서는 못하니 아직 발전은 아니다 했다.
혜진의 몸속에는 ‘안반’이라는 말이 깊숙이 박혀 있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혜진은 ‘암반’으로 잘못 알아들었다. 혜진이 중학생이고 혜영은 고등학생일 때였다. 방학이었는지 휴일이었는지 그날 혜영과 혜진은 대낮에 학교도 가지 않고 건넌방에 나란히 엎드려 책을 보고 있었다. 그때 유재가 건넌방 문을 열고 들어오려다 무엇 때문인지 엎드려 있는 그들을 보고 기분이 잡친 듯했다.
니들은 기집애들이 안반만 한 궁뎅이를 내놓고 뭐 하고 있는 짓이냐.
유재는 이렇게 말하고 혀를 쯧쯧 차며 문을 쾅 닫았다. 그 말을 듣고 혜진은 당연히 기분이 안 좋았는데 혜영도 그런 것 같았다. 왜 또 저러셔? 혜영이 조그맣게 말했다. 그때 유재가 왜 그렇게 부아가 나 있었는지 몰라도, 혼자만 부아가 난 게 분해 그랬던지 손녀들 꼴이 뭐가 마음에 안 들어 그랬던지 옜다 너희 기분까지 더러워져라 하고 아무 잘못도 하지 않은 자신들에게 분풀이를 했다는 걸 자매는 분명히 알았다. 그런 분풀이는 신숙도 딸들에게 자주 하는 일이었다. 혜진은 자신의 엉덩이가 정말 암반만 한가, 암석 덩어리만큼이나 커 보이는가 생각하고 조금 부끄러워졌다. 그때 언니는 안반이 무슨 뜻인지 알고 있었을까. 혜진은 지금껏 그걸 혜영에게 물어본 적이 없다. 언니가 그때 그 뜻을 알고 있었다면 자신보다 훨씬 더 기분이 나빴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중에야 혜진은 안반의 뜻을 알고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보다 더욱 기분이 나빠졌다. 떡을 치는 넓적하고 두꺼운 판. 중학생 고등학생 손녀의 엉덩이를 보고 할머니가 그게 할 소리인가, 떡을 치는……
신숙은 그런 말을 서슴없이 내뱉는 유재 밑에서 외동딸로 자랐다. 그러니 엄마의 몸속에는 안반 같은 말들이 수십, 수백개쯤 박혀 있을지 모르겠다고 혜진은 생각한다. 당신 몸속에 깊이 박힌 그런 말들이 얼마나 흉하고 독한 줄 모르고 엄마는 그걸 또 언니와 내 몸속에 그대로 박아넣었을 것이고 그 곁에서 할머니는 틈틈이 그 일을 돕고 부추겼을 것이다. 유재는 늘 신숙에게 딸년들 너무 오냐오냐 키워봤자 소용없다, 시집가면 그뿐이다, 사근사근 간 쓸개 다 빼줄 듯 굴다 간 쓸개 다 빼가는 도둑년들이 딸년들이다, 딸 많은 집 어미는 속곳도 벗고 산단다, 오죽하면 아들 밥은 앉아 받아먹고 딸 밥은 서서 얻어먹는다니, 그런 말들을 자주 했다. 그러면서 정작 할머니는 시집간 엄마 옆에 찰싹 달라붙어 평생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유재에게서 안반이라는 말을 들은 후부터, 정확히는 그 뜻을 알게 된 후부터, 혜진은 자신의 엉덩이에 민감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여자들의 엉덩이에도 민감하게 되었다. 전철이나 버스에 앉아 있다 옆자리가 비었을 때 엉덩이부터 들이미는 여자들을 보면 혜진은 여지없이 안반을 떠올렸다. 아니, 떠올리는 게 아니라 저절로 튀어나왔다. 짧은 윗도리 아래 레깅스를 입은 여자가 앞서 걸어갈 때, 골프나 당구 채널에서 공을 줍거나 치기 위해 깊숙이 허리를 구부린 여자 선수의 엉덩이를 카메라가 당겨 잡을 때, 혜진의 몸 깊은 곳에서는 안반이라는 말과 ‘떡을 치는’ 이미지가 피에 젖은 탐폰처럼 한 끈에 묶여 볼끈 튀어나온다. 제어하려고 노력한들 제어되지 않는 말이다. 생각이고 나발이고 하기도 전에 이미 두둥실 현전해 있는 무엇이다. 살 속에 박힌 쇠붙이를 빼내지 않고 그대로 두었을 때 그 언저리가 건드려지면 기어코 느껴지는 이물의 고통처럼.
혜진은 죽기 전에 이 말을 온전히 자신의 몸에서 빼내고 죽을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다. 아마 그럴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이 말을 그대로 몸속에 묻고 죽는 것, 아무에게도 박아넣지 않고 전수하지도 말고 자기 안에서 고요히 소멸시키는 것뿐이라고 생각한다.
일주일에 두어번은 가서 백반을 시켜 먹는 단골식당에서 혜진은 오늘 백반이 아닌 회덮밥을 시켰다. 식당 주인이 마침 회가 딱 일인분밖에 남지 않았는데 혼자인 손님이 오셔서 다행이라고 했다. 회덮밥이 나왔고 혜진은 양념장을 뿌리기 전에 광어 한조각을 들어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이런 불투명한 투명, 싱그러운 반투명의 질감이 요즘 혜진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미역줄기볶음을 수채로 그린 후부터 그 비슷한 느낌을 찾아내 열광적으로 그리고 있는 중이다. 화채 그릇에 담긴 동치미라든가 놋그릇에 막 깨트려놓은 달걀 같은 것. 혜진은 유리 접시에 놓인 얇은 회를 상상한다. 그 질감을 살리기 위해서는 아주 연한 크림빛을 섞어야 할 것이다.
잠시 뒤 한 여자 손님이 식당에 들어와 벽에 걸린 메뉴판을 한참 들여다보더니 저는요, 음, 회덮밥, 아니, 회덮밥 말고, 음, 했다. 주인의 눈썹이 불길하게 치솟았다 내려앉는데 여자가 마침내 회덮밥, 회덮밥 주세요, 했다. 주인이 회가 다 떨어져서 회덮밥이 안 된다고 하자 여자는 회덮밥이 안 된다고요, 그럼 뭐가 돼요, 하고 물었다. 주인이 메뉴판을 가리키며 회덮밥만 빼고 다 된다고 하자 여자는 음, 음, 하며 주저하더니 저 백반이라는 건 뭐예요, 하고 물었다. 주인이 백반이 백반이죠, 하며 반찬 여섯가지에 국과 밥이 나온다고 하자 여자는 아, 제가 회사에 들어가기 전에 점심을 먹고 들어가긴 해야 하거든요, 밥을 먹고 들어가긴 해야 하는데 어쩌나, 했다. 주인은 말없이 여자를 보았고 여자는 한숨을 푹 쉬더니 그럼 백반이라도 주세요, 했다.
저 여자는 회사에 점심을 먹고 들어가야 하는구나, 밥을 먹고 들어가긴 해야 하는데 마지막 남은 회덮밥을 내가 먼저 채 먹었구나, 그래서 어쩌나, 마지못해 백반이라도 달라고 하는구나, 그런 생각을 하며 혜진은 회덮밥을 먹었다. 여자는 백반이 나올 때까지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며 혼자 뭐라 뭐라 중얼거렸다.
식당에서 계산을 마치고 나올 때 휴대전화가 울렸다. 드디어 오늘로 엄마 주사 맞는 일이 다 끝났다고 혜영이 힘없이 말했다. 오, 하고 혜진이 뭐라고 축하의 말을 하려는데 혜영이 나 너무 허기진다, 이만 끊자, 하더니 전화를 끊었다. 혜영이 걔가 사람이 아주 차졌다, 찬 사람이 됐어, 하던 신숙의 말이 떠올랐고 혜진은 그 말이 맞긴 맞는다고 생각했다. 언제부턴가 혜영은 차졌다. 그게 냉철하다는 뜻은 절대 아니고, 오히려 냉철하지 못해서 그랬다. 혜진이 보기에 혜영은 해야 할 일과 안 해도 될 일을 냉철하게 구분하지 못해서 안 해도 될 일을 공연히 떠안고 그 일 때문에 지치고 울화가 쌓여 상대방에게 싸늘해지는 상황으로 자신을 몰아넣는 식이었다. 혜진은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은 되도록 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할 수 있는 일도 종종 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혜진은 언니가 효도충동을 조절하지 못해서 자꾸 엄마를 미워하고 자신을 비난한다고 믿는다. 혜진은 그런 언니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언니가 언니이기 때문에, 자신처럼 동생이 아니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는지 모른다는 생각도 가끔 한다.
집에 돌아오는 내내 혜진은, 엄마가 외동딸이 아니고 언니도 맏딸이 아니었으면, 나도 둘째 딸이 아니었으면, 외동딸 맏딸 둘째 딸, 그 딸들은 다 어떻게 다른가, 할머니는 몇째 딸이었나, 할머니도 몇째 딸이긴 했겠지, 그 몇째 딸이 아니었으면, 그랬다면, 그런 뜨문뜨문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렇게 중얼거리다보니 식당에서 본 백반 여자가 떠올랐다. 물이 가득한 항아리를 품고 있는 것처럼 누가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생각과 말을 찔끔찔끔 쏟는 사람들이 있다. 때로는 확 엎지르기도 한다. 스쳐 지나가는 사람의 팔을 붙들듯 스쳐 지나가는 말을 붙잡아 자기 말을 주렁주렁 얽고야 마는 사람들. 그 말들은 언제나 조금씩 어긋나고 위태롭다.
혜진은 요즘 낯선 이들에게서 무서운 것을 자꾸 발견하는데, 그건 어쩌면 자신이 무서운 존재로 변해가는 증상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자신이 그들에게서 환상적 유사성을 보는 것만 같다. 기회만 되면 좋지 못한 생각과 혼잣말을 쏟아놓고 상대가 듣지 못하니 괜찮다고 자위하는 자신이나, 상대가 듣든 말든 상관없이 자기 사정만 쏟아놓는 백반 여자나, 그 오연함은 얼마나 닮아 있는가. 얼마나 깊은 단절과 고립에서 다져진 것일까. 어쩌면 나의 정신적 자매는 그 여자가 아닐까, 혜진은 그런 생각을 하고 그런 혼잣말을 하며 걷고 또 걸었다.
한동안 연락이 없던 혜영이 전화를 해서 혜진더러 근처 술집으로 오라고 했다. 예전에는 두 자매가 그곳에서 제법 자주 만나 술을 마셨던 것 같은데 요즘엔 그런 일이 드물었다. 혜영이 택시비 줄 테니 택시 타고 오라고 했지만 혜진은 전철을 타고 갔다. 언니와 술 마실 때 엄마 얘기를 먼저 꺼내지 않도록 하자고, 언니가 엄마 얘기를 해도 제발 토 달지 말고 그저 듣기만 하자고, 정 대꾸를 해야 되는 경우라면 가급적 긍정적인 답변과 반응만 보이도록 하자고, 혜진은 집에서부터 단단히 결심을 하고 전철을 타고 가는 내내 그 결심을 다졌다.
혜영은 미리 와 앉아 있다가 혜진을 보자 웃으려고 했다.
“오랜만이네.”
혜진도 오랜만이라고, 잘 지냈느냐고 물었다.
“언니가 우울증이 왔었어. 이명도 오고.”
“그럴 만도 해. 지금은 좀 괜찮아졌어?”
“괜찮지는 않고 좀 나아졌다면 나아졌지.”
처음엔 안주를 뭘 시킬까 하는 얘기를 했고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우선 그 집 최고 메뉴인 두부김치를 시키기로 하고 한가지 더 뭐 시킬까 하다 혜영이 혜진에게 너는 국물 있어야지, 하면서 어묵탕을 시키자고 했다. 안주와 술이 나왔다. 혜영은 맥주를, 혜진은 소주를 마셨다. 두부김치는 여전히 맛있었고 어묵탕은 칼칼하고 시원했다.
“내가 정말 엄마 퇴원하고 당분간은 엄마 안 보고 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는데, 그 신우신염 주사인지 뭔지 안 맞으면 큰일 난대고, 매일 엄마 얼굴을 안 볼 수도 없고. 그때 보름 동안 내가 미치는 줄 알았다.”
일요일도 안 빼고 다니느라 정말 고생했다고 혜진이 말했다.
“흐음, 근데 혜진아. 일요일의 병원은 이상하게 좀 쓸쓸하더라. 일요일이라고 병원에 사람이 없지도 않거든. 근데 이상하게 휑하고 쓸쓸해. 거기 주사실에도 예약된 환자들이 다 주사 맞으러 와. 근데도 평일하고 다르게 어딘가 고적하고.”
혜영은 얘기하고 혜진은 들었다.
“근데 참,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니? 두번째 일요일인가에 엄마 주사 맞는 옆 침상에, 커튼이 쳐져 있어서 얼굴은 안 보이는데, 거기 주사실이 조용하거든, 일요일이라 더 조용한데 옆 침상 남자가 너무너무 큰 소리로 자기 엄마한테 계속 뭐라고 소리를 지르는 거야. 처음엔 저 엄마가 귀가 잘 안 들려서 그러나 했는데 들을수록 거슬리더라고. 완전 반말에 윽박지르는 말투에 막 나중엔 분노가 배어 있는 고성으로, 됐다고오오오! 됐다고 했잖아 이 노인네야! 왜 사람 말을 못 알아먹어어! 막 이렇게 소리를 질러. 그러다 어느 순간 갑자기 조용해지더니 존댓말로 간절히 사과하는 말이 들리는 거야. 죄송합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정말 죄송해요 용서해주십시오. 뭐야 왜 저래 했는데 그게 자기 엄마한테 하는 말이 아니라 조용히 해달라고 온 간호사한테 하는 말이더라고. 자기 엄마한테 하던 목소리랑 영 딴판이야, 딴사람이야 아주. 그러고 엄마 주사 다 맞고 1층 로비에서 다음 날치 미리 수납하는데 어디선가 됐다고오오 이 노인네야 하는 들어본 목소리가 들려오는 거야. 커튼 너머 그 남자다 싶어서 돌아봤지. 아주 키가 작은 오십대 중반 남자더라고. 남자는 서서 소리를 지르고 그 앞에는 늙은 부모가 야단맞는 애들처럼 앉아 있어. 누가 주사를 맞았는지는 모르겠는데 둘 다 완전 늙은 부모야.”
혜진은 그 장면을 상상해보았다. 일요일의 병원, 이상하게 고적한 느낌이 드는 로비에서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러대는 중년의 작은 남자와 다소곳이 앉아 견디고 있는 늙은 부모를. 그 장면을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 주사 맞히는 일을 끝내고 한동안 엄마에게서 걸려오는 전화를 안 받았어. 누가 뭐라고 욕을 해도 그때 내 마음이 도저히 안 받아지더라고.”
혜진이 잘했다고, 나는 평소에도 엄마 전화 안 받는데 뭐, 하자 혜영이 알지, 했다.
“내 몸도 마음도 다 지쳤나봐.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집에 와서도 거의 잠을 못 잤어. 자려고 누우면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서 팽팽 돌아. 이를테면 갑자기 그런 생각이 난다. 검사받으러 가서 기다리고 있는데 엄마가 자꾸 접수대에 가보라고 해. 아직 순서 안 됐다고 엄마 이름 부르지도 않았는데 왜 그러느냐고 해도 불렀는데 못 들었을 수도 있지 않느냐고 십분마다 가서 확인하고 오라는 거야. 그런 생각의 실마리가 뇌의 어느 지점에 심기잖아? 그러면 거기서 수십갈래 생각의 실뿌리들이 뻗어나가면서 미미한 두통이 시작돼. 아 그만하자 생각하지 말자, 하는데 어느새 나도 모르게 또다른 생각을 하고 있어. 뇌의 다른 지점에 또다른 생각이 뿌리를 내려. 저번에 엄마가 내가 점심 안 먹고 간다고 이거라도 가져가서 먹으라고 귤을 한보따리 차에 싣더라고. 나 귤 잘 안 먹는다고 이렇게 많이 필요 없으니까 도로 가져가라고 해도 너랑 나눠 먹으래. 내가 혜진이를 언제 만나서 귤을 주느냐고 매일 엄마 병원 모시고 가는 것도 힘에 부치는데 하니까 너더러 가지러 오라고 하래. 혜진이가 와서 가져가면 되지, 천연덕스럽게 그런다.”
“내가? 잘도 가져가겠다.”
“그러니까! 이건 정말 주고 싶어서 주는 게 아닌 거야. 먹이고 싶어서 그런 것도 아닌 거야. 자기가 주려고 작정했으니까 주는 거고 주면 무조건 받아야 하는 거야. 안 받아? 그럼 아주 굴복시키려고 갖은 수를 써서 떠안겨.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하지? 그럼 그게 뇌에 꽂혀서 또 뿌리를 내린다. 그렇게 나중에는 뇌 속에 온갖 생각의 뿌리들이 얽히고설켜서 엉망진창이 되어버려. 내가 생각들에 포획돼서 서서히 갉아먹힌다는 느낌이 와. 열이 올랐다 내렸다 하고 가슴이 답답해지고 가려움증이 도지고 이명이 들려. 어떤 자세도 어떤 호흡도 오래 유지할 수가 없어. 그럼 결국 일어나자, 차라리 일어나 앉아야겠다, 생각하지. 근데 일어나려고 하잖아? 안 일어나져. 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안 움직여져. 그러면 속수무책으로 누워서 이대로 죽었으면 싶은 마음이 드는 거야.”
혜진은 어둠 속에 꼼짝 못하고 누워 안반 같은 생각들에 갇혀 있는 혜영을 상상해보았다. 언니는 왜 저렇게까지 자기를 궁지에 몰아대나, 가엾으면서도 화가 났다. 혜영이 조용히 맥주를 마시고 먼 데를 바라보았다.
“언니!”
혜영이 혜진을 보았다.
“언니도 화를 내. 그 남자처럼. 됐다고오오오! 됐다고 했잖아 이 노인네야! 왜 사람 말을 못 알아먹어어! 막 이렇게 소리를 질러.”
혜영이 헉 하고 웃었다.
“혜진아, 내가 그렇게까지는 못해도 나도 엄마한테 짜증도 내고 화도 내고 했어. 내가 정말 엄마를 가엾게 여기자고 골백번이나 다짐하면서도 그게 잘 안 되더라. 감정이 폭발하고 엄마를 미워하게 되고 피하고 싶고 자꾸 그렇게 되더라고.”
“그러지 마, 언니.”
혜영이 의아한 얼굴로 혜진을 보았다.
“그러지 말라고. 짜증내고 폭발하고 엄마를 미워하고 피하는 걸 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애초에 엄마를 가엾게 여기자고 골백번 다짐하는 걸, 그걸 하지 말라고. 그러면 나머지도 자연히 하지 않게 된다고.”
이렇게 말하고 혜진은 혜영의 눈치를 살폈다. 혜영은 목이 탄 듯 맥주를 마셨다.
“혜진이 너도 참,” 혜영은 잠시 침묵하더니 싸늘하게 말했다. “엄마 딸 아니랄까봐 옳은 말만 한다.”
혜진은 벌떡 일어나 집으로 가버릴까 하다 그냥 앉아 있기로 했다. 빈 소주병을 물끄러미 보며, 언니 말이 맞는 말이다, 언니도 엄마 딸 아니랄까봐 옳은 말만 한다, 생각했다. 우리 세 모녀는 어쩌면 이렇게 닮았을까. 서로가 싫어하는 말과 짓을 어떻게 그렇게 잘 알고 어떻게 그렇게 잘해낼까. 나도 언니도 그렇게 골백번 다짐하고도 왜 그 다짐을 지키지 못해 머리를 쥐어뜯는 지경에 이르고 말까. 나는 왜 언니에게 그런 말을 했나. 왜 또 토를 달았나. 어떤 결심도 다 깨버리는 현실은 어찌 이리 다채롭게 잔인한가. 혜영이 남은 맥주를 다 마시고 잔을 내려놓으며 감정이 휘발된 사무적인 말투로 말했다.
“오늘 만나자고 한 건, 엄마 위 샘종, 그거 제거하는 수술 날짜가 잡혀서야.”
“언젠데?”
“다음주 화수목.”
“얼마 안 남았네.”
“그래서 말인데, 이번에도 내가 들어가서 병간호하려고 해.”
그래서 말이라니? 뭐가 그래서 말이야? 응? 왜? 이번엔 또 왜? 유난도 유난도…… 혜진은 그런 말들을 묵묵히 삼키며 가방을 챙겼다. 이번엔 진짜 삼일 만에 퇴원할 수 있으려나, 하는 말도 당연히 하지 않았다. 그리고 돌아오는 내내, 오늘은 뭘 해서 혼자 먹을까, 아무도 주지 않고 나 혼자 맛있는 거 뭐 해 먹을까, 그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런 야박한 혼잣말을 하면 마음이 덩달아 야박해져 눈물이 덜 났다. 혜진은 이제 누구 앞에서도 울고 싶지 않았다.
봉지를 열어 시장에서 사 온 데친 나물을 찬물에 담갔다. 나물을 파는 여자가 가져가서 바로 무치기만 하면 된다고 했지만 혜진은 그 말을 믿지 않는다. 채반에 담가 두번 정도 헹구다보니 딱딱한 뿌리와 억센 줄기가 손에 걸렸다. 혜진은 채반에 양재기를 받쳐놓고 방석을 깔고 앉아 나물을 다듬기 시작했다. 언제부터인지 시간이 좀 걸리는 일은 바닥에 앉아서 하는 게 편했다.
신숙은 환갑이 다 되어가는 혜영과 혜진에게 지금 니들 나이가 한창때라고, 어디 엄마 앞에서 아프다는 소리 하지 말라고 나무라지만 신숙이 그들 나이였을 때엔 딸들 앞에서 온갖 노인네 행세를 다 했다. 그러면서 온갖 군데가 다 아프긴 하지만 그래도 언제 죽을지 모르니 지금 온갖 군데로다 여행을 다니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런 말과 논리들은 유재에게서 전수받은 것이어서 이십여년의 세월을 격해 되풀이되는 돌림노래 같았다.
나물은 한가지가 아니라 여러 종류가 섞여 있었다. 혜진이 아는 것만 해도 참나물, 취, 유채, 두릅 순, 엄나무 순, 연한 호박잎에 고사리도 서너줄기 들어 있다. 혜진이 잘 알지 못하는, 거친 쓴맛이 날 것 같은 나물도 있다. 혜진은 말들이 내는 지독히 쓰고 아린 맛은 좋아하지 않지만 나물들이 내는 쌉싸름한 맛은 좋아했다. 잘 다듬어 꼭 짜서 국간장에 고추장 기운을 조금 더해 무쳐놓으면 언니도 엄마도 좋아할 맛일 거라고 혜진은 생각한다. 돌아가신 할머니도.
“혼자 먹을 거야, 아무도 안 주고 나 혼자 다 먹을 거야.”
혜진은 소리 내어 혼잣말을 했다. 나중에 그들이 미워져 힘이 들 때 이 순간을 기억하면 기운이 날 것이다.
요즘엔 그러지 않지만 예전엔 혜영도 혜진에게 쓰디쓴 말들을 많이 했다. 유재와 신숙이 하는 말보다는 덜 아리지만 쓰기는 써서 삼키기 힘든 말들을. 혜진이 넌 아주 내 속을 홀딱 뒤집어놓아, 하고 혜영은 말했다. 그 말이 ‘전복적’이라는 의미가 아닌 건 분명했다. 혜진이 넌 아주 내 속을 호벼 파놓는다,고도 했으니까. 그 말 또한 ‘예리하다’는 뜻은 아니었듯이. 유재와 신숙에게서 들은 말을 혜영은 아무 생각 없이 따라했을 뿐이겠지만, 그러나 언니에게서 그런 말을 들으면 혜진은 할머니나 엄마에게서 들을 때보다 더 서럽고 서운했다. 그때마다 혜진은 혼잣말을 했다.
“그건 엄마 닮아서 그래.”
서럽고 서운할 때마다 혜진은 주문처럼 혼잣말을 했다.
“엄마는 할머니를 닮고 언니랑 나는 엄마를 닮고, 그래서 그런 거라고. 그런 걸 어쩌라고.”
몸을 작게 웅크리고 앉아 웅얼웅얼 못되고 독한 혼잣말을 하면 기운이 났다. 몇년 있으면 환갑이 될 나이에도 이렇게 꽁한 여자애처럼 앉아 있으니, 죽을 때도 꽁한 여자애로 죽게 되겠구나 싶지만, 안반이라는 말도 꽁하니 품고 죽어야지, 혜진은 다짐한다.
그건 그렇고, 혜진은 중얼거린다. 내가 언젠가 실제 안반을 그릴 수 있는 날이 올까. 여자 엉덩이를 생각하지 않고, 실물 그대로의 안반을, 떡을 만들 때 사용되는 하나의 도구로서의 안반을.
그건 그렇고, 혜진은 또 중얼거린다. 할머니는 어떤 엄마와 할머니 밑에서 자랐기에 안반 도둑년 어미 속곳 같은 말을 그렇게 술술 염불 외듯 외며 살게 되었을까. 얼마나 자기 삶에 지독한 증오를 품었기에, 자신의 딸에게도, 그 딸의 딸들에게도 시시각각 경계하듯 그런 말들을 전염시키며 살았을까. 자신이 딸인 게, 자신이 딸을 낳은 게, 그 딸이 또 딸들을 낳은 게 그렇게 부끄럽고 두려웠던 것일까. 그 수치와 공포가 너무 크고 무거워서 딸과 그 딸들에게 나눠 지게 해야만 간신히 버텨낼 수 있었던 걸까.
신숙이 위 샘종 제거수술을 받기 위해 다시 입원했다. 혜영이 전화를 걸어, 지난번처럼 특실이나 일인실이 없어 간호 간병 통합병동에 입원할 수밖에 없었다고, 다인실이라 공간이 좁고 시끄럽다고 했다. 환자인 신숙에겐 소음이 괴롭고 보호자인 혜영에겐 좁은 공간이 문제였다. 쪽잠이나 잘 수 있을까 싶은 좁고 딱딱한 장의자에 침구류도 특실 때와 달리 거칠고 낡았다고 했다.
“담요를 깔아놔도 얼마나 배기는지 몰라.”
“응, 그렇구나.” 혜진이 말했다.
“새벽에 간호사가 올 때마다 내가 번번이 일어나서 의자를 빼야 해.”
“아, 그렇구나, 번번이.”
“식대는 똑같이 내는데 특실 때보다 식사 질도 떨어지는 것 같아.”
그건 정말 언니의 기분 탓인 것 같았지만 혜진은 그런 말은 하지 않았다.
혜영의 전화를 받기 전에 혜진은 휴대전화를 바라보며 심호흡을 했다. 똑 부러지는 말은 말 그대로 똑 부러지고 만다. 곧고 단단한 말이 아닌, 부드럽게 휘는 말, 바람에 살랑대는 가볍고 유연한 말을 하자. 꼬챙이 같은 말을 아무 데나 박아넣고, 그래도 내 말이 맞지, 봐, 내 말이 맞잖아, 맞았잖아, 그렇게 모질게 독야청청하지 말자, 골백번은 다짐했다.
혜진만 그런 게 아니라 혜영도 무슨 큰 결심을 했는지 몇번 불평불만을 말하더니 이후로는 꿋꿋이 버티는 모양새를 보였다. 아니, 모양새는 그랬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는지 병원에 들어간 첫날부터 방광염에 걸려 근처 병원에서 약을 지어 먹었는데 이틀째까지 증세가 낫지 않다가 사흘째에야 겨우 약이 듣기 시작했다고 했다. 방광염이든 장염이든, 혜영이 무언가로 아플 것 같기는 했다. 신숙도 그런 걱정이 있었던지 혜영이 방광염에 걸렸다고 하자 대번에, 혜영이 니가 그럴 줄 알았다, 안 그래도 엄마 힘든데 더 힘들게 니가 하필 아프고 말 줄 알았다고 했다고 한다.
이번에도 신숙의 입원은 사흘로 끝나지 않고 이틀 더 늘어났는데, 한번의 수술로 샘종이 깨끗이 제거되지 않아 재수술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혜영은 샘종을 한번에 제거하지 못한 게 의사의 과실이라고 확신했지만 감히 의사에게 그런 말을 꺼내지는 못했다고 했다.
그래도 내일이면 퇴원이네 싶어 혜진이 안심하고 있던 나흘째 오후에 혜영이 전화를 걸어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혜진아, 내가 정말 이런 무서운 말 하기 그런데, 할머니도 말년에 치매 왔었잖아? 우리 엄마도 이제 그게 오는 것 같아.”
“그게 무슨 소리야?” 혜진이 놀라 소리쳤다.
“몇번 이상하긴 했는데, 내가 너무 무서워서 모른 척했어. 근데 오늘 점심에 엄마가 뜬금없이 그런다. 새벽에 대신동 고모가 왔다 갔지? 처음에 나는 무슨 말인가 했어. 대신동 고모가 언제 적 대신동 고모니?”
“대신동 고모라면 부산 살 때 그 대신동 고모 말이야?”
“응.”
그 고모는 돌아가신 지 오래되었다. 삼십년도 더 전인데, 하고 생각하다 혜진은 갑자기 퍼뜩 깨달아지는 게 있었다.
“언니! 엄마 그거 섬망이야!”
“섬망?”
“나도 작년에 수술받고 섬망 왔었어. 마취 깨고 나서 한동안 현실하고 꿈하고 상상하고 막 뒤섞여서 이상하게 생생한, 그런 망상증 같은 게 와. 난 엄마처럼은 아니고 그보단 약했던 것 같은데, 잠자는 내내 계속 옆에서 누가 떠들고 왔다 갔다 하고 그랬어.”
“맞아! 엄마가 그렇대. 밤새 의사랑 간호사들이 발밑으로 지나다닌다고 계속 문으로 들어와서 창문으로 나간다고 그래서 시끄러워서 잠을 못 자겠다고. 그래서 내가 그게 말이 되냐고 막 뭐라 했지.”
“응, 그래. 그거 섬망이야. 나이 든 사람은 섬망이 더 세게 온다고 했어.”
“어머, 이게 웬일이니? 혜진아, 이제 언니 마음이 좀 놓인다. 근데 마음이 너무 아프다. 엄마가 섬망이었구나. 혜진이 너도 작년에 수술받고 섬망 왔었구나.”
“응, 그거 별거 아니야. 시간 지나면 나아져. 엄마한테도 섬망이라고 얘기해주면 엄마가 더 잘 극복할 수 있을 거야.”
“알았어. 난 괜히…… 그래, 알았다. 고마워, 혜진아.”
전화를 끊고 혜진은 갑자기 환기된 대신동 고모와 오래전 부산에 살았던 시절을 생각했다. 그때 유재는 경기도에 살아서 부산에 자주 오지 못했다. 말년에 치매로 요양원에 입원하기 전까지 아마 그때가 유일하게 유재가 자신의 딸과 떨어져 산 시기였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 시절의 신숙은 사납지 않고 부지런하고 상냥했던 것으로 혜진의 기억에 남아 있다. 그 당시에 신숙은 가까이 사는 손위 시누인 영선과 친하게 지냈는데 영선에게도 딸만 둘이었다. 그 집 딸들은 늘 공주처럼 하고 다녔고 집에서 피아노를 치고 개인과외를 받기도 했다. 신숙은 형편상 딸들을 공주처럼 꾸며주거나 피아노를 사주지는 못했지만 딸들이 아프면 연탄불에 소고기도 구워주고 납세미라 부르는 말린 가자미도 조려주었다.
그들 세 모녀가 살던 집 부엌은 비가 오면 아궁이 옆 좁은 홈통에 빗물이 고였다. 고인 물이 아궁이로 흘러들어가 연탄불이 잘 꺼졌으므로 비가 온 뒤엔 그 물을 국자로 퍼내야 했다. 홈통이 아궁이만큼 깊어서 바닥의 물을 퍼내기 위해서는 엎드린 자세로 홈통 구멍에 작은 쇠국자를 쥔 손을 똑바로 집어넣어 한국자씩 곧게 들어 올려 퍼내야 했다. 어느날 혼자 집에 있던 혜진은 무슨 착한 마음을 먹었던지 아궁이 옆에 엎드려 그 물을 다 퍼냈고, 집에 돌아온 신숙은 혜진을 칭찬하며 시장에 데려가 뭔가 달콤한 주전부리를 사주기도 했다. 그 시절을 생각하자 혜진은 세상에, 우리 세 모녀도 한때는 최선을 다해 귀엽게 살기도 했었구나, 하는 낯선 마음이 들었다.
그때 혜진은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이었으니 예닐곱살 정도였을 것이고 혜영은 여덟아홉살 정도였을 것이다. 신숙은 서른이 좀 넘었고 영선은 신숙보다 열살 정도 많았으니 마흔 좀 넘었을 것이다. 혜진이 듣기로 고모 집에는 자가용도 있긴 하지만 고모가 차멀미가 심해 자가용이고 버스고 타지를 못한다고 했다. 그래서 신숙과 영선은 어디든 걸어 다녔다고 했다. 둘이 팔짱을 끼고 걸어 다니면 사람들은 둘의 관계가 아리송해 무슨 사이냐고 자주 물었다고 했다. 전혀 닮지 않았으니 자매도 아니고 친구라기엔 나이 차가 많고. 신숙이 뽐내듯이 시누올케 사이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아 하고 납득을 하는 동시에 앗 하고 놀라기도 했다고. 아니 세상에 이렇게 정다운 시누올케 사이가 어디 있느냐며.
그건 그렇고, 혜진은 생각에 잠겨 중얼거렸다. 그 이후에 우리가 서울로 이사를 오지 않고 계속 부산에 살았더라면 엄마는 할머니 대신 고모의 영향을 받아 우리를 딸이어도 귀애하며 키웠을까. 고모도 공주 같은 딸들을 외국으로 조기유학 보내고 외로움에 시달리다 자살하는 일이 없었을까. 너무 오래전이고 미처 살아보지 않은 날들인데도 혜진은 그날들이 그리웠다.
저녁 무렵에 혜영이 톡을 보냈다. 낙엽색깔 원피스 사진과 함께 ‘이거 어때? 사줄까?’ 묻는 내용이었다. 혜진이 어이가 없어 ‘이 와중에 쇼핑을?’ 하고 보내자 ‘그러게 이 와중에 쇼핑을. 네가 그림 그릴 때 입으면 좋을 것 같아서’라는 답이 왔다. 그걸 읽고 혜진은 어리둥절했다. 내가 언제 언니에게 그림 그린다는 말을 했던가. 모르겠다. 혜진은 충동적으로 ‘그래 그거 나 사줘라’ 했고 혜영이 ‘오케이’ 했다.
혜진은 그 낙엽색 원피스를 입고 안반이나 그려볼까 하고 안반의 실물을 검색했다. 당연히 둥근 모양일 줄 알았는데 예상과 달리 안반은 도마처럼 길쭉한 직사각형의 나무판이었다. 네모난 안반은 아무리 봐도 여성의 엉덩이와 닮은 면이 없었다. 그려놓으면 관 같겠다 싶었다. 혹시 할머니가 살던 시절에는 안반이 둥글넓적했던가.
그건 그렇고, 혜진은 궁금했다. 할머니는 돌아가시기 전에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와중에 엄마에게 무슨 말을 했기에 엄마가, 아무리 치매에 걸리셨어도 엄니, 그 얘기는 꺼내지 마셨어야지, 그 얘기는 나한테 안 하셨어야지, 하며 격하게 원망하도록 만들었던 걸까. 언제나 아이고, 우리 엄닐 내가 어떻게 이겨, 무슨 수로 이겨, 하며 할머니 말을 따르던 엄만데 도대체 할머니가 무엇을 바랐기에, 바랄 걸 바라셔야지, 내가 그것까지는 못해요, 하며 엄마 평생에 드물게 할머니의 뜻을 거절했던 걸까.
그 방문 이후 열흘인가 보름쯤 지나 심유재는 아흔한살의 나이로 죽었다. 요양원에서도 쉬쉬했고 신숙도 결코 인정하지 않았지만 사인은 아사였다. 무언가를 강력히 고집하며 시위하듯 시작한 단식 때문에 식도가 협착해 음식물을 넘기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고 주사만으로 버티다 기진한 것이었다. 과연 할머니다운 죽음이라고 혜진은 생각했다. 장례가 끝나고 신숙은 며칠 앓아 누웠지만 얼굴은 더없이 평온하고 행복해 보였다. 그런 엄마에게서 할머니 생전의 어떤 바람을 들어드리지 못했다는 자책은 전혀 찾아볼 수 없어, 혜진은 자신이 그때 무엇을 잘못 들은 걸까, 꿈속에서 들은 말인가, 생각할 정도였다. 이제 혜진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어떤 딸에게는 평생 처음 맞이하는 엄마 없는 날들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는 것을. 때로는 평온하고 행복할 수도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