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창작과비평

대화

 

위기의 한국, 전환의 과제

 

 

서복경 徐福卿

정치학자. 더가능연구소 대표. 저서 『한국 1세대 유권자의 형성』, 공저서 『한국 민주주의 100년, 가치와 문화』 『민주시민교육, 어떻게 할까』 『탄핵 광장의 안과 밖』 등이 있음.

 

양경수 梁京洙

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


이남주 李南周

정치학자. 성공회대 중어중국학과 교수. 저서 『중국 시민사회의 형성과 특징』, 공저서 『21세기의 한반도 구상』 『동아시아의 지역질서』 『중국, 새로운 패러다임』 『백년의 변혁』, 편서 『이중과제론』 등이 있음.

 

이태호 李泰鎬

시민운동가. 참여연대 운영위원장·평화군축센터 소장, 시민사회연대회의 운영위원, 4·16연대 상임집행위원장, 10·29 이태원참사 시민대책회의 공동운영위원장. 공저서 『변혁적 중도론』 『봉인된 천안함의 진실』 등이 있음.

 

 

이남주(사회) 안녕하세요. 오늘 사회를 맡은 저는 『창작과비평』 주간 이남주입니다. 최근 한국이 위기에 처해 있다는 데 폭넓은 공감대가 생겨나고 있습니다. 새 정부 출범 1년 만에 이런 위기감이 공유되는 것은 상당히 예외적인 상황이고, 이 위기를 어떻게 타개해가는가가 한국사회의 미래에도 장기적인 영향을 미칠 듯합니다. 이미 사회 각계각층에서 저마다의 요구가 다양한 방식으로 표출되고 있는데요. 오늘 대화는 이러한 시점에 노동운동, 시민사회, 그리고 정치 영역에서 활발히 활동하시는 세분을 모시고 한국사회의 현 상황을 진단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먼저 각자 활동을 소개해주시고 해당 영역에서 윤석열정부 집권 이후의 감회를 간단히 부탁드립니다. 먼저 바로 얼마 전 민주노총 위원장 재선 출범으로 위원장직에서 사임하신 양경수 위원장님부터 시작할까요.

 

왼쪽부터 이태호 양경수 서복경 이남주

왼쪽부터 이태호 양경수 서복경 이남주 © 이영균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 양경수입니다. 민주노총은 윤석열정권이 들어서고 가장 탄압을 받는 조직이다보니 사실 많이 어렵습니다. 현장 분위기, 사측의 교섭 대응 태도 같은 것들이 과거 일정 정도 원만한 합의를 추구하던 것과 달리 최근에는 굉장히 고압적으로 바뀌고 있어요. 특히 노사관계에서 마주하는 현장의 온도 차이를 확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더디지만 조금씩 조합원들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어서 한편으로는 긍정적인 시그널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서복경 저는 서복경입니다. 전공은 정치학이고요.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원으로 있다가 2020년 10월부터 더가능연구소라는 연구소를 만들었어요. 현 정부 출범 이후 개인적으로는 비교적 안전지대에 있긴 합니다만, 최근 정치학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일들이 실제로 벌어지는 상황을 지켜보며 사태를 조금이라도 이해해보기 위해 이런저런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이태호 저는 소속이 다양한데요. 일단 참여연대에서 상근자로 일하며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고 평화구축센터 소장이기도 합니다. 올해는 정전 70주년 종전평화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어요. 그리고 4·16연대 집행위원장, 10·29 이태원참사 시민대책회의 공동운영위원장을 하고 있습니다. 주로 재난참사 피해자들과 연대하고 그들의 권리를 옹호하는 활동을 합니다. 이 분야도 지금 엉망이에요. 세월호는 지우기로 일관하고 이태원참사에 대해서는 국가가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고압적인 자세를 계속 취하고 있죠. 특히 정부여당의 입장이 너무 답답했었는데, 많이들 비슷하게 느끼셨는지 이태원참사 1주년 들어서는 시민사회나 여론의 관심이 다시 생기는 것 같습니다.

 

이남주 과거 이명박정부가 출범한 이후 한국사회의 역진과 퇴행에 대해 김대중 전 대통령이 민주, 서민경제, 남북관계라는 3대위기를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는 그러한 퇴행이 본격적으로 진행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사전적 경고의 의미가 더 강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정부 출범 1년 만에 경제, 남북관계, 외교, 그리고 당연히 민주주의 위기가 이미 전면화되고 있어요. 작년부터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이 계속 하락했을 뿐 아니라 민생 부문 예산을 삭감하는 방식으로 세수 부족에 대응하고 있어 국민의 어려움이 더 증가할 것으로 보입니다. 외교적으로도 대미 편향적으로 일관하여 한국의 외교 발전 공간을 축소시키고, 한미일 군사협력은 이미 임계점을 넘어가고 있는 상황이에요. 그러면서 반국가세력, 공산전체주의를 운운하는데 민주주의가 안녕할 리 없겠습니다. 양 위원장님이 언급하신 현장 분위기도 이와 관련이 있겠지요. 이럴수록 위기의 표면적 측면만이 아니라 더 깊은 원인을 성찰하는 것이 필요하겠습니다.

 

위기의 원인을 어디서 찾을 것인가

이남주 몇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이 민주주의적 발전을 이루고 그것을 토대로 실험을 시도하며 국제사회에 새로운 가능성과 발전방향을 보여줄 수 있는 국가라는 인식이 있었는데요. 지금은 그때와는 너무나 다른 상황이 된 것 같아요. 여러 문제가 서로 연관되어 있겠지만 특히 위기에 직면했다고 느끼는 부분은 무엇인지, 현 위기상황을 어떻게 진단하고 규정하면 좋을지부터 이야기해볼까요.

 

서복경 저는 지금의 상황은 한마디로 아노미 상태, 즉 방향상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이탈했던 궤도에 다시 올라타면 되는 문제가 아니고 마치 기찻길이 뚝 끊어진 느낌이에요. 각 분야별로 보면 전반적으로 모든 구성원이 방향을 못 찾고 있는데, 특히 정부나 정치권이 가장 심각해 보입니다. 그나마 기존 궤도가 탄탄했던 분야는 아노미가 조금 덜하고, 궤도가 부실했던 분야는 이탈 상황이 심각하게 나타나는 거 아닌가 싶습니다. 시장 상황도 정치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단적인 예로 기후위기가 심각한 문제가 되면서 최근 EU에서는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시행하기로 했습니다. EU에 수출하기 위해서는 2026년부터 탄소국경세를 내야 하는 상황인데요. 얼마 전 중소기업중앙회 조사자료를 보니 국내 제조 중소기업의 78.3%가 이 제도의 내용을 ‘잘 모른다’라고 답했어요. 현 정부가 방향을 제대로 잡고 있었다면 국책연구소나 대학에서 관련 내용을 조사하고 이에 대한 가이드를 벌써 줬어야 하고, 정부와 기업계가 같이 체계적으로 준비를 했었어야 하죠. 근데 지금은 당사자인 제조 기업들의 8할 가까이가 ‘모른다’ 상태예요. 경제, 시장 쪽도 방향을 상실한 지 오래입니다.

 

이남주 현재 위기 양상을 보면 ‘이런 상태가 계속되면 우리가 회복할 수 없는 지점으로 가는 것 아닌가’ 하는 감각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아요. 이런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서복경

서복경

서복경 회복할 수 없는 지점이라기보다 그 궤도가 달라지는 거죠. 예컨대 우리나라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UNCTAD(유엔무역개발협의회) 기준으로 비선진 그룹에서 선진 그룹으로 들어간 유일한 나라예요. 그렇게 된 맥락을 생각해보면 우리가 글로벌 트렌드를 빠르게 읽고 캐치업을 해냈기 때문이거든요. 누가 잘했느냐와 무관하게 결과적으로 적응의 속도가 빨랐던 겁니다. 제가 생각할 때 글로벌 패권체제라든지 국제경제, 시장 시스템 자체는 앞으로 기후패권으로 옮겨갈 겁니다. 이러한 추세는 벌써 10년, 15년 전부터 이어져왔는데도 대한민국은 아무 준비가 안 되어 있어요. 이제까지는 시장 변화를 빠르게 따라가며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왔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과연 최근 변화를 따라갈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이미 기후경제 시스템에서 상당 정도 궤도를 이탈한 상태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남주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을 예로 드셨지만, 현재 위기의 근원은 여러 수준과 영역에서 제기되고 있는 시급한 전환의 요구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다는 데 있는 것 같아요. 양경수 위원장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현재 위기의 주요한 측면이 무엇이라고 보는지 궁금합니다.

 

양경수

 양경수

양경수 제 표현대로 하자면 ‘전망의 부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빨리 달리려고만 하지 어디로 달려갈 것인가에 대한 전망이 없어요. 이는 단순히 윤석열정부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노동 문제도 마찬가지거든요. 노동운동이 무엇을 지향할 것인가에 대한 전망이 여전히 87년체제에 머물러 있습니다. 빠른 경제발전 속도에 비해 사회적 거버넌스나 다양한 의제 수렴 구조, 노동 분담 등이 안정적으로 형성되지 못했고, 발전지향 일변도로 지속되어왔기 때문에 여러 고민이나 목소리 전체를 담을 그릇 자체가 마련되지 않았어요. 정부가 아닌 당 차원에서 보아도 문제인데요. 국민의힘이든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든 노동정책을 주요한 하나의 어젠다가 아닌 기업정책의 하위개념으로 보고 있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습니다. 경제정책, 기업정책을 만들어나가는 차원에서 노동계를 ‘어떻게 다독일까’ 정도의 고민만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경제정책이 제대로 수립되려면 노동정책이 그와 동등한 수준에서 함께 맞물려가야 합니다. 노동자들이나 국민들의 삶 자체가 시장임금에 매몰되고 사회적 안전망이나 사회임금이 뒷받침되지 못하면 결국 노사간 갈등은 극단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거든요. 이런 문제들이 한국사회의 노사관계를 전투적으로 만들었던 원인이기도 하고, 노동자 차원에서도 공생이나 노동권을 고민하기보다 당장 성과급이나 퇴직금 같은 것들에 집착하게 되는 이유이죠. 민주노총이 경향적으로 시장조합주의, 경제주의로 점점 더 기울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진단하고 있어요. 이대로 간다면 총노동단체의 존재 이유도 부정당할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이남주

이남주

이남주 민주노총 내부의 변화에 대한 지적이 중요한 의미가 있어 보이네요. 새로운 조합원의 유입도 세대간의 문제랄지 노동조합의 방향에 대한 논란을 만들어낼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양경수 특히나 젊은 세대가 들어오면서 가장 많이 묻는 질문이 ‘민주노총이 왜 정치에 개입하는가’ ‘우리는 왜 민주노총 활동을 해야 하는가’예요. 불과 10년 전만 해도 내부적으로 당연한 명제였는데 말이죠. 민주노총 조합원 내에서 여론조사를 해보면 “민주노총이 정치적으로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늘 가장 상위에 있는 대답은 “노동자는 정치에 관여하면 안 된다”입니다. 이런 전반적인 흐름이 결국 정부의 노동정책 부재를 불러일으키는 측면이 있죠. 민주노총이 그동안 사회적 의제로 제시했던 것이 사실 최저임금 정도를 제외하면 자기 문제에만 국한되어 있었다는 반성도 하게 됩니다. 결국 지향점이 확실해야 이 문제를 돌파할 수 있을 거예요. 현재 위기의 핵심 요인을 윤석열정부로 한정해서 보기는 한계가 있고, 정치도 노동도 시민사회도 전반적인 전망에 대한 숙의와 고민, 담론 형성을 위한 노력이 약화되었다는 점이 가장 주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서복경 덧붙이자면 저는 민주화 이후 약 35년간 대한민국을 어떻게 볼 것인가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가치를 합의하고 목표를 설정해본 적이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들어요. 능력의 문제라기보다 그런 능력을 개발할 기회조차 없이 발전해온 겁니다. 정부나 정치권 차원에서 보면 1960년대에는 일본을,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에는 미국을, 1990년대 초중반부터는 독일, 영국, 프랑스 같은 유럽 국가를 따라 하자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스웨덴 같은 북유럽 국가였고요. 우리가 산업화도 민주화도 모두 후발국가였다는 조건에서 이런 과정이 불가피한 면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남들이 시행착오를 거쳐서 이룩한 것을 위험요소를 제거한 채 따라 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습니다. 이런 방식이 2000년대까지는 어느정도 먹힌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은 더이상 우리가 캐치업할 모델이 없습니다. 특히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신자유주의 시장 모델이 사라졌고, 유럽에 정치·경제적 위기가 오는가 하면 미국에서는 트럼프가 등장하며 정치 모델 역시 없어져버렸죠. 그러고 나니 광야에 홀로 선 느낌입니다. 우리에게 가치를 정의하고 목표를 합의해낸 경험이 드물었구나 하는 자각을 처음 하게 되었어요. 어떻게 보면 박근혜정부도 국정농단이나 헌법 위법 문제가 있긴 했지만 방향상실이 가장 심각한 문제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문재인정부는 북핵위기나 코로나19 같은 위기에 대응해야 했던 정부였기 때문에 오히려 이 방향상실의 상태가 덜 드러나지 않았나 싶어요. 어쨌든 위기대응은 잘한 정부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런데 위기대응에 너무 집중하다보니 새로운 방향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나 공론 자체는 빠져버린 거죠. 지난 10여년 정도 이런 방향상실의 상태를 자각하거나 대처하지 못한 상황에서 윤석열정부가 들어서자 가장 나쁜 형태로 우리 내부가 드러나는 듯합니다.

 

이남주 이제 남을 따라가는 데 그치지 않고 무언가를 스스로 만들어야 하는 상황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런 과제를 수행할 수 있다는 근거가 없는 건 아니에요. 어쨌든 선행 모델을 따라가는 데 성공했다는 것도 잠재력의 표출이고요. 다만 그 잠재력에 대한 정확한 평가나 발전방향에 대한 지적인 논의가 잘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런 지점에서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부분에는 대개 충분히 공감할 듯합니다. 최근 창비에서 제기하고 있는 개벽담론도 그에 대한 모색이라고 할 수 있고요. 시민운동 쪽에서는 위기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습니까?

 

이태호

이태호

이태호 한국 시민사회를 ‘사회운동의 갈라파고스 섬’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갈라파고스 섬은 고립되어 있어 예외적이거나 특수한 사례가 많지만 진화론적 측면에서 보면 많은 학자들의 연구대상입니다. 한국도 마찬가지로 분단 문제 등으로 고립되어 있으면서도 전세계가 겪는 문제를 똑같이 겪고, 여기서 태동한 것들이 세계적 문제와 시대적으로 긴밀하게 연결되기도 합니다. 저는 한국이 단순히 다른 나라들을 캐치업해오기만 한 것은 아니고, 어떤 면에서는 세계사회 문제를 선취하는 부분도 분명 있었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냉전이 끝나고 공산주의권이 무너지면서 1990년대 초반 유럽에서는 냉전시대의 정당들이 다 무너지거든요. 그래서 정치 빅뱅이라고도 하고, 정권교체가 많이 일어나요. 이 시기, 1987년부터 1990년 초까지 한국에서도 기념비적인 민주화운동이 일어난 거 아닙니까. 말씀하신 2008년 이후의 국제적 복합위기 역시 한국도 공동으로 경험했지만 예외적인 민주주의 성장도 이루었죠. 특히 2010년부터 한국의 민주주의 역량은 굉장히 빠르게 성장합니다. 정치를 잘해서가 아니라 시민사회가 성장했기 때문인데, 영국 『이코노미스트』에서 발표하는 자유민주주의지수(democracy index)가 눈에 띄게 올라가죠. 촛불혁명기에 이르면 우리가 민주주의지수 8.00으로 미국(7.98)은 물론 프랑스(7.80)도 넘어섭니다. 세계가 겪는 문제들을 한국 시민사회 역시 늘 같이 고민해왔고, 때로는 분단이나 과거사에 발목 잡히기도 했지만 계속해서 가능성을 찾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지난하게 이어왔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겁니다. 방향상실이라는 진단에 동의하면서도 결국 전환이 지체되어서 오는 위기라고 봅니다. 제가 힘들 때마다 되새기는 구호가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입니다. 세상은 변한다는 거고, 그게 가능하다는 거죠. 다만 전환을 얘기할 때 지향점이 있어야 하는데 이 지향점이 아직 정립되지 않았다는 거예요. 시민사회에서는 특히 세월호 이후 구조적인 무언가를 바꿔보자는 운동이 일어났고, 그 에너지가 계속 모여 있었기 때문에 예외적인 민주주의의 진전이 있었다고 봅니다. 신뢰가 형성되고 연대가 형성돼서 촛불이 만들어졌던 거죠. 그러면 이 촛불의 힘을 어떻게 관리해야 되느냐, 당연히 위기에 대응하면서도 전환을 촉진해야 되는데 그게 누구 잘못이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한국사회의 고질적 문제인 역사적인 뒷심의 한계였을 수도 있죠. 물론 우리 시민사회가 활성화되어 있기도 합니다만 시민들이 주기적으로 촛불을 일으키는 건 시민사회가 대단히 성숙해서라기보다는 솔직히 말하면 정치가 일을 못해서이기도 하잖아요. 반란의 정치학 같은 것 아니겠어요? 참다못해 한번씩 나서서 진전시키고야 마는 거죠.

 

이남주 말씀처럼 우리가 처한 현실은 단순히 국내적인 문제가 아니고 국제적·사회적 차원에서의 다양한 위기들이 복합되면서 생겨났고, 특히 전환의 필요성을 강하게 느끼는 상황에 직면해 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이 위기를 감당하면서도 조금씩 성취한 바도 있었다는 측면을 이태호 위원장님께서 강조해주셨어요. 반면 노동 쪽에서 보면 그러한 위기에 대한 담론적 측면에서의 대응에는 전반적으로 부족한 점이 있었다고 양경수 위원장님이 평가해주셨는데요. 혹시 노동계 안에서는 이런 문제를 해결할 논의가 있었을까요?

 

양경수 민주노총이나 노동운동 전반은 결국 크게 보면 세가지 지향점을 주된 방향으로 삼고 있는데요. 정치세력화, 산별운동 그리고 미조직사회입니다. 단적인 예로 산별운동 문제만 놓고 볼까요. 노동운동 쪽에서 대산별노조를 만드는 것은 우리 사회 전반의 지향과 맞물려 있으며, 이를 위해 20여년간 쭉 노력해왔음에도 여전히 어렵습니다. 우리 노동조합의 기본 설계는 미국과 일본 같은 기업별노조체계인데 이를 어떻게 대산별노조로 대체할 것인가, 그리고 그것이 진정 우리 체제에 맞는가 하는 진지한 성찰이 부족했어요. 그러다보니 ‘산별노조 모델에 응하지 않는 재벌 대기업이 문제다’ ‘재벌 대기업과 유착된 정치가 문제다’ 하는 논리로 귀결되어온 거죠. 최근에는 대산별노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줄어들어 산별 교섭 제도, 단체협약 효력 확장 문제 정도로 오히려 논의가 축소되고 있습니다. 촛불항쟁이라는 그 역동적인 투쟁을 통해서 정권교체를 이룩했는데도 어떻게 여전히 제자리냐고 할 때, ‘왜’가 없었다는 거죠. 노동계 역시 발전적 전망을 세우지 못했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촛불혁명 이후 성취와 한계

무엇을 만들어갈 것인가

이남주 이미 있는 모델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것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도전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는 말씀들을 하고 계시는 것 같아요. 지금의 위기가 어떤 부정성만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의 실현에 대한 열망과 연결된 감각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활동공간이 조금씩 다르지만 이러한 절박감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한 징후로 보입니다. 여기서 촛불의 경험과 그에 대한 평가도 중요하겠지요.

 

서복경 결국 ‘만드는 힘’에 관련된 것이거든요. 저는 요즘 촛불 이후 과연 우리가 무엇에 합의했는가를 생각합니다.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해체해야 한다는, 제 언어로 얘기하면 ‘해체 합의’ 정도는 있었던 것 같아요. 문제는 그다음인 거죠. 해체에 대한 싸움은 참 많이 했고 성공도 꽤 했는데 그 해체 이후에 뭘 할 것인가 하는 논의나 합의 테이블이 없습니다. 예컨대 박근혜정부 탄핵 이후 문재인정부가 등장했잖아요. 그러면 그때부터 노동계, 시민사회 또는 정당이 모두 모여 이제부터 우리가 무엇을 만들지 논의하기 시작했어야 된다는 거죠. 결과적으로 이 ‘생성 합의’가 전혀 없었기에 과제가 고스란히 문재인정부에 위임되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정치세력이 촛불 이후에 모든 것을 책임지는 상황으로 방치된 거죠. 결국 우리 사회가 만들어본 경험이 약하다, 스스로 목표를 설정해본 경험이 약하다는 점이 문제이고, 더 나아가 해석투쟁도 부족한 것 같아요. 촛불, 경제적 성취, 또는 코로나19 대응 등을 해석하거나 의미를 부여하고 미래를 위한 생성 합의의 자원으로 만들지 못했어요. 이런 점에서 우리의 지적 자산이 부족한가 하는 생각도 들고요.

 

이남주 저는 그런 얘기를 할 때는 성취와 한계 그리고 잘못을 잘 구분하면서 논의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지금 상황을 보면 그런 구분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촛불에 대한 평가, 특히 그에 대한 회의론이나 부정론 등이 그에서 비롯되지요. 잘한 것은 제대로 평가해 발전시키고, 잘못한 점은 따가운 비판과 시정이 필요하며, 한계를 극복할 방안을 찾고 역량을 키워가는 것이 중요한데 말이죠.

 

양경수 동의합니다. 예를 들면 저희 내부에서 ‘민주노총이 경선에서 퇴행한다’는 평가를 내린 적이 있거든요. 분명히 잘한 것도 있는데 평가서에는 성과가 없어요. 사실 성과를 많이 내세우면 외부에서 지적을 받기도 하고요. 잘한 일, 공, 성과 같은 것을 드러내고 이야기하는 데 인색한 한국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와 맞물려 있는 듯도 합니다.

 

이남주 촛불항쟁 과정에서 민주노총이 한 일이 참 많거든요. 그런데 민주노총에서도 적극적으로 그 성과를 자기 것으로 만들지 못했고 외부에서도 나서서 평가해주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민주노총이 담론의 영역에서 자리 잡는 것을 어렵게 만드는 메커니즘 중 하나였다는 생각이 들어요.

 

양경수 그래도 변화는 있다고 생각해요. 이명박정부 당시 광우병시위에 나갔을 때는 민주노총 깃발 내리라는 비판이 많았거든요. 그리고 박근혜정부 초기만 하더라도 민주노총을 조롱하는 분위기도 있었고요. 반면 박근혜정부 규탄시위나 최근 윤석열정부 퇴진시위 광장에서는 그런 게 전혀 없었죠. 이명박부터 박근혜에 이르기까지 7, 8년 사이 민주노총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나 국민들의 눈높이에 변화가 있었습니다. 단적으로 작년 10월경 한국리서치에서 노동조합 활동에 대한 여론조사를 했는데 일반적인 노조 활동에 대해서 긍정적이냐, 부정적이냐는 물음에 긍정여론이 13%에 불과했지만, 지난 7월 저희가 총파업에 돌입했을 때 뉴시스에서 여론조사를 했을 때는 민주노총 총파업에 대한 찬성이 42.3 %가 나왔어요. 유례없는 수치거든요. 물론 최근 민주노총이 윤석열 퇴진을 요구하니 민주당 지지자들이 대거 동조했다는 분석도 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민주노총의 활동이 그렇게까지 긍정적으로 평가받은 적은 별로 없었죠. 작년부터 화물연대 투쟁, 건설노조 투쟁, 핵 오염수 투쟁까지 쭉 진행해오면서 거리의 눈빛, 시민들이 바라보는 시선이나 온도가 달라지는 걸 느낍니다. 서복경 선생님이 박근혜정권 해체 이후에 만드는 힘이랄지 생성 합의가 부재했다고 하셨는데 여러 시도는 있었다고 생각해요. 민주노총 내에서 보면 직선 1기가 한상균 위원장 집행부였는데 이때는 박근혜정권과 임기를 같이 끝내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민중총궐기나 촛불투쟁을 쭉 일으켜왔습니다. 그 이후 김명환 위원장 집행부의 최대 화두는 사회적 대화였고 이를 만들어가고자 하는 시도와 논의가 계속되었죠. 그래서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의 제도적 틀을 구축하는 것까지는 민주노총이 같이 했었단 말이에요. 결론적으로 참여를 하지는 못했지만요. 다만 말씀처럼 무언가를 만들어본 경험 자체가 부족하다보니 근시적인 시각에서 일을 도모하고 임기 내 결과물을 내는 데 급급해진 것 같아요. 저는 좀더 장기적으로 그리고 구체적으로 보면 노력과 시도는 분명히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그것이 사회 전체를 장악하는 담론이나 이슈로 자리매김하거나 거시적인 논의로 촉발되지 못하고 있을 뿐이죠. 개인적으로 아쉬운 의제가 최저임금 문제거든요. 촛불광장에서 이야기되면서 국민적 여론이 굉장히 높았고 결국에는 박근혜 퇴진 이후 대선에서 모든 후보들이 최저임금에 대한 공약을 냈어요. 유례없는 일이었죠. 최저임금이라는 가치에 대한 생각 자체를 바꿔버린 게 결정적이었다고 생각해요. 다만 공론장에서 만들어진 에너지를 끝까지 밀고 나가지 못했습니다. 담론투쟁을 해야 하는데 경제투쟁으로 전락하다보니 최저임금 1만원을 달성했냐 아니냐로 평가하게 되었죠. 훨씬 더 심각한 문제는 최저임금 논의가 소상공인들과 노동자들의 대립구조로 치환돼버린 점입니다. 문재인정부 이전까지는 최저임금은 열악한 환경에 처한 노동자들의 최후 생존수단이라는 인식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얼마를 올려주든 어쨌든 올려야 하는 것, 보장해야 하는 것이라는 합의가 형성되어 있었는데 문재인정부 들어서 급격하게 이념 논리로 전환되었고 산입 범위를 확대한데다가 코로나19라는 새로운 변수까지 생겨 윤석열정부 와서는 을과 을의 갈등을 전반화하는 흐름으로 이어진 점이 가장 아쉽습니다.

 

이태호 맞아요. 그래도 긍정적인 변화들이 있습니다. 실제로 민주노총 조직원도 늘었고요. 노동권 차원에서 보면 어느정도의 신장이 있었음은 분명한 것 같아요. 세월호 이후 ‘국가가 안전과 돌봄 문제에 해결책을 내놔야 한다. 여야를 막론하고 같이 책임져야 하는 문제다’라는 합의가 있었기 때문에 박근혜정부 당시 여당도 탄핵에 동의했던 것이거든요. 국가가 국민의 안전을 지킬 책무를 저버렸다는 걸 여야가 합의한 탄핵안에 올렸다는 면에서 방향타가 없진 않았습니다. 그 이후 문재인정부와 시민사회에서 사회서비스원이라든가 돌봄, 노동 문제를 개선하자는 논의가 다양하게 있었어요. 만드는 힘이 부족했고 그것이 우리사회의 한계라는 서복경 선생님의 말씀에 저 역시 동의하지만, ‘적폐청산’을 시도한 것이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촛불혁명이 일어난 배경에는 사람들의 불만, 시스템을 고치라는 요구가 강력히 자리했던 것이거든요. 물론 그에 대해 보수적 백래시가 생길 수도 있어요. 지금 윤석열정부의 출현은 고치고자 했던 의지에 대한 백래시라고도 볼 수 있는 거죠. 이 지점에서 두가지 문제가 있는데요. 민중이 고치려는 의지를 계속 이어나가면서 그 의지가 관철됐다는 효능감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그런 개혁을 지속하기 위한 정치적 연합을 만들어낼 수 있느냐, 한마디로 대항연합을 만들어낼 수 있느냐 하는 문제가 또 있고요. 문재인정부에서 실패했다면 그것은 디테일한 합의를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 대항연합의 가이드라인을 정하고 뚝심있게 밀고 나가지 못한 데서 생긴 것은 아닌가 합니다.

 

전환의 발목을 잡는 윤석열정부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이남주 지금까지 말씀하신 내용을 정리하면 우리 사회에 전환의 필요성이 분명하고, 그간 그에 감응하려는 나름대로의 움직임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한계에 부딪힌 부분도 분명히 있었다는 점을 짚어주셨어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비전을 만들고 이를 실현할 힘을 만들어가야 하는 시점에 윤석열정부가 출범한 것은 상당한 타격입니다. 현 정부의 행태는 지금 우리가 안고 있는 전환의 과제나 성숙해진 시민사회의 상황과는 너무나 대비됩니다. 이 정부의 출범과 그간의 행태는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요?

 

서복경 저는 윤석열정부를 이념적 좌우로 구분하지 않고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간지평을 기준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윤석열정부는 1970년대 내지는 1980년대에 머물러 있는 ‘과거’ 같아요. 1960년대에서 1970년대 초중반 ‘일본을 따라잡자’라는 지향을 가진 정치세력이 만연했는데 2020년대인 지금 그들을 용케 모은 거잖아요. 저런 정치세력 또는 사람들이 어떻게 정부를 장악하게 됐는가를 물어야 합니다. 예를 들면 프랑스 같은 경우 극우 정치세력인 르뺑이나 국민전선(현 국민연합)의 위협이 10년간 계속되었지만 그 위협을 막아내고 있습니다. 독일 역시 극우정당인 독일대안당이 세력을 확장하고 있지만 연정(코얼리션)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기독민주연합과 독일사회민주당이 막아내고 있어요. OECD 국가 중 극우 정치세력이 집권 중심부로 쑥 들어온 나라는 일본, 그리고 우리나라 정도입니다. 다른 나라와 달리 우리나라는 아무런 바리케이드 없이 정권의 중심으로 극우세력이 들어왔는데, 원인을 진단하고 대안을 만들지 않으면 이런 상황이 또 반복될 수 있는 거죠. 정치집단의 영역으로 한정해서 볼 때 이 퇴행적 집단이 정부를 장악하게 됐다는 것은 우리 정치 시스템에 필요한 삼중 바리케이드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입니다. 첫번째 문제는 국민의힘이 윤석열을 후보로 뽑았다는 거예요. 말하자면 의원 집단이 그들을 용인했고 국민의힘 당원들이 그자를 뽑았다는 거잖아요. 국민의힘이라는 가장 좁은 바리케이드의 최종 관문이 무력화된 겁니다. 두번째는 정당체제 차원의 대응이 없었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 후보자가 문제가 되면 그를 막기 위해 여야가 공동대응을 한다든지 시스템 차원에서 무력화시켰어야 해요. 마지막으로 그를 키운 책임에서 문재인정부 역시 자유롭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문재인정부 내에서 그자를 검찰총장으로 발탁했고 임기를 마치도록 두었죠. 전 정부 안에서의 자정도 안 됐다는 거예요. 그러면 이 삼중 바리케이드가 왜 작동하지 않았을까 하는 질문이 남습니다. 민주화 이후 역사적으로 가장 과거지향적 대안을 가진 정치집단이 지금 정부를 장악한 데 대한 평가와 대책이 꼭 필요합니다.

 

이남주 일단 지난 10월 치러진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민주당이 승리하면서 윤석열정부의 퇴행을 저지할 수 있는 상황은 마련된 듯 보이지만, 퇴행을 용인한 내부적 성찰이 뒤따라야만 상황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것 같습니다.

 

서복경 지금 민주당을 보면 걱정이 됩니다. 내년 총선에서 승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건 알겠는데, 그 이후에 무엇을 하겠다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기후위기 대응이나 연금, 노동, 안전 문제 등 중요한 사안들에 연대 파트너를 만들고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 합의해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민주당은 ‘윤석열정부를 응징합시다’와 ‘총선에서 승리하겠습니다’라는 두 구호만을 가지고 대응하고 있어요. 현재까지는 과거 박근혜정부 탄핵 이후 생성 합의가 없었던 시기의 경로와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이태호 그 점과 관련해서 조금 보태고 싶습니다. 우리나라는 2010년대에 이르러 민주주의지수가 굉장히 높아진 반면 출산율, 성평등 지수, 자살률 같은 사회적 지속 가능성과 관련된 지수들은 곤두박질쳐왔습니다. 한국에 이런 문제가 지속되는 이유는 전쟁정치가 계속되기 때문이에요. 이념이 다른 세력은 절멸시켜야 한다는 식의 정치형태이기 때문에 연합을 만들거나 합의에 이르지 못해왔다는 거죠. 윤석열을 검찰총장으로 임명한 것이 적절치 않았다는 데는 동의합니다만 그것이 촛불개혁을 중단시킨 결정적 이유라 할 수 없고, 그 결정 때문에 윤석열이 대통령이 되었다고 보는 것도 과도하다고 생각합니다. 촛불 과정에서 탄핵과 특검이 있었고 칼자루를 쥔 수사검사, 과거 혁명에 비유하면 단두대를 관리하는 자가 ‘빌런’으로 등장하는 것은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는 변수지요. 그 변수를 윤석열 집권이라는 상수로 만든 것은 정치개혁과 연합정치에 실패했기 때문이지 인사 실패 때문은 아니라는 거죠. 정치개혁을 위한 사회적 운동, 학계의 자각이 있었고 정치권에서도 문제의식이 있었거든요. 여당 일부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연동형비례대표라고 하는 정치적 연합을 이끌어낼 길이 열리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총선에서 민주당이 촛불정치연합을 깨고 연동형 도입의 취지에 반하는 방식으로 의석을 독점했잖아요? 총선에서 민주당이 대승을 거둔 직후 정권교체 여론이 급격히 들끓었습니다. 조국 사태 때가 아니고요.

 

이남주 우리가 한국사회 변화를 이야기할 때 그 본질적 특성을 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분단이나 정전이라는 특수한 상황하에 기득권을 형성한 보수집단이 여전히 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이 문제에 대한 인식이 불철저할 경우 정치적으로 잘못된 방향을 설정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민주당의 자만이 가장 큰 문제였지만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연대 혹은 연합과 관련해 진보정치의 대응에도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민주노총은 그동안 진보정당과 쭉 연대해왔는데 그런 부분은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양경수 검찰권력의 심각성을 사회적으로 너무 간과했기 때문에 윤석열정권이 들어선 것 아닌가 생각해요. 과거 군사독재 시절 군인들이 정치하겠다고 나섰을 때의 심각성과 비슷한 맥락이라는 비판이 있어요. 이에 대한 위기감이나 긴장감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우선 듭니다. 또 하나, 광장의 실종 역시 문제입니다. 문재인정부 5년간 태극기부대가 광장을 장악했습니다. 이것 또한 저 세력을 얕잡아봤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해요. 민주당이 자기반성을 하지 않은 채 안일하고 오만한 태도를 취한 탓도 분명히 있고요. 민주노총은 지금도 동화면세점 앞, 대학로 앞 광장에 집회신고를 못해요. 태극기부대가 1년 365일 24시간 집회신고를 냅니다. 촛불의 힘이 문재인정부하에서도 지속되고 미래 전망 또는 만드는 힘을 논의하는 사회적 공론장이 마련되었어야 하는데 안주해버린 바람에 광장을 빼앗긴 거죠. 그것이 결국 윤석열정권을 출현하게 했고요. 이 정권이 들어서게 되면서 노동, 민생, 민주주의, 평화 모든 영역에서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고 있습니다. 진보정당은 이를 뼈아프게 반성해야 합니다. 이념적 문제도 있겠습니다만 그동안 지엽적인 반사이익에 매몰되며 자기가 쥔 몇알의 쌀알을 놓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왔어요.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

이남주 현재 한국사회가 심각한 위기에 처한 것은 분명합니다. 모두가 힘을 합쳐 노력해도 전환을 이루기 쉽지 않은 마당에 윤정부가 들어서며 정치가 사태를 계속 악화시키고 있습니다. 이 문제를 돌파하려는 시도 중에는 정권의 퇴진을 외치는 움직임이 있고, 최근 관련 논의가 증가하는 듯합니다. 민주노총 역시 윤석열정권 퇴진이라는 구호를 제시했죠. 무슨 맥락에서 퇴진 구호가 나왔고 어떠한 정치적 효과를 기대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양경수 그간 민주노총은 내부적 문제로 고민이 많았습니다. 특수고용 노동자, 플랫폼 노동자들의 노동자성을 부정하는 조치에 대항해야 했고, 건설노조에 대한 정부의 부당한 탄압에 맞서 노동자 권리를 되찾기 위해 싸워왔죠. 모두 분배정의나 고용 문제까지 연결되는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무엇보다 윤석열정권하에서는 이런 투쟁이 계속될 수밖에 없겠구나 하는 문제의식이 있었습니다. 물론 민주노총도 탄생한 지 1년밖에 안 된 정권을 퇴진시키자는 구호를 드는 일은 무척 부담스럽고 그것이 과연 적절한가 고민도 했지만, 이 정권이 더 나아가서는 안 된다는 데 동의한 거죠. 바로 직전까지만 해도 기후위기, AI, 4차 산업혁명 등을 이야기하며 정의로운 전환이 무엇인지, 제조업이나 특수 플랫폼 영역은 어떤 대안을 준비해야 하는지를 고민했는데요. 새 정권이 들어서며 노동탄압을 막고 노동시간과 임금체계 개편을 막아내는 데 급급한 투쟁으로 퇴행해버렸습니다. 큰 흐름에서 보면 IMF 즈음부터 노동 영역은 뭔가를 막아내는 투쟁을 지속하다 문재인정부에 이르러 새로운 전망을 겨우 그리기 시작한 셈이었어요. ‘전태일 3법’이라는 이름으로 노동자의 포괄적 복지의 토대가 되는 중대재해처벌법 개정, 노조법 2·3조 개정, 근로기준법 개정을 세가지를 큰 지향점으로 삼았습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결국 만들어냈고 노조법 2, 3조를 개정하는 과정에 있었는데요. 거기에서 역행하여 다시 뭔가를 막아내는 투쟁으로 귀결되고 있습니다. 결국 새로운 전망을 그리는 투쟁을 계속해야 한다는 위기의식과 고민이 집약되어 퇴진이라는 구호를 내걸게 되었습니다. 퇴진이라는 것도 당장의 쟁취 목표라기보다는 투쟁광장에서 전선을 형성하고 흐름을 만들어내기 위한 하나의 매개로 고민한 측면도 있습니다.

 

이남주 퇴진이라는 구호가 전망으로 나아가기 위한 것이라는 지점이 흥미롭습니다. 2010년 지방선거 압승의 연장선에서 민주당의 2012년 총선 승리를 예측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당시 새누리당이 승리하고 같은 해 대선에서 박근혜가 당선되었던 사실도 다시 돌아봐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경험했듯 선거정치에만 매몰되어서는 전환을 이룩하기 어렵죠. 큰 비전을 가지고 힘을 만들어 결속해야 돌파가 가능할 것이고 윤석열 퇴진이라는 구호도 그러한 상상력을 만들어내기 위한 화두이겠습니다.

 

양경수 민주노총 내부도 내년 총선에 대해 치열하게 논의하고 있는데요. 민주당이 3분의 2 이상의 절대다수 의석을 확보해 탄핵국회로 가야 된다는 주장도 있어요. 여기에는 민주당과 적절히 연대해야 한다는 의견이 포함되어 있거든요. 그런데 후꾸시마 오염수 문제나 강제 북송 문제, 이태원참사 등만 놓고 보아도 광장의 대중적 반응은 싸늘합니다. 민주당과 왜 연합해야 하는지, 연합한다고 뭐가 달라질지 의심하는 정서가 격동하고 있고 심지어 민주노총 내부에서도 오염수 방류 반대 집회를 야4당과 공동주최하는 것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있기도 했어요. 윤석열 개인의 문제나 국민의힘, 보수진영으로 대표되는 집단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사회를 유지해왔던 양당에 공히 책임을 묻고 있는 것이 대중의 정서입니다. 퇴진운동본부 차원에서는 그것을 체제전환이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데요. 운동본부는 민중10대요구안, 사회개혁10대요구안 등의 논의를 시작했어요. 저는 단순히 윤석열을 끌어내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요구안과 같은 구체적인 내용을 중심으로 총선을 치러야 된다고 생각해요. 경제체제, 정치체제, 분단 문제 같은 낡은 체제에 대한 발전적 전망을 세우고 판단해야 합니다. 총선 결과를 가늠하기 어려울지라도 과정으로써 그런 지향점을 지니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남주 시민사회 쪽에서의 논의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요?

 

이태호 시민단체들은 전통적으로 퇴진 구호를 내거는 데 신중한 입장이에요. 권력을 무너뜨리는 것보다 의제 공론화와 정책전환에 관심이 더 많기 때문입니다. 이명박정부 때는 퇴진에 반대해서 광우병 촛불시민들과 불화를 겪었고, 박근혜정부 당시 세월호참사에도 불구하고 국정농단이 불거지기 전까지는 퇴진에 일관된 반대 입장을 취하기도 했어요. 윤석열정부하에서도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죠. 현 정부를 옹호해서가 아니라 너무 성급히 퇴진을 외치는 것을 경계하는 겁니다. 아주 현실적인 이유도 있습니다. 과거 박근혜 퇴진 촛불 때처럼 시민의 에너지가 모일 가능성이 없다는 겁니다. 윤석열정부에 대한 시민의 환멸감은 박근혜정부 시절에 못지않지만, 촛불혁명에 연대했던 결과로 등장했던 문재인정부에 대한 실망감, 특히 의석을 도둑질해 완승을 거두고도 제 역할을 해내지 못한 민주당을 심판하고 싶은 마음, 촛불 이후의 백래시에 대한 피로감 등이 아직 해결되지 않은 상태라고 봅니다. 윤석열정부 1년 반 동안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많았는데도 시민들이 거리에 모이지 않습니다. 최근에 와서 몇몇 이슈에 반응하고는 있지만,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의 반성이나 연합정치의 전망이 마련되지 않으면 현재의 추세를 넘어서기 힘들 것 같습니다.

 

이남주 정치권 전망을 만들어내는 데 시민사회가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요? 시민사회가 한국사회의 전환을 기준으로 활동방향을 설정하기보다 자기 의제에 갇혀 있다는 비판도 있을 수 있겠습니다.

 

이태호 시민사회운동이라고 왜 정치를 생각하지 않겠어요? 시민운동이 이권 카르텔로 매도당하고 있잖아요. 노동조합이든 시민운동이든 비판을 받을 건 받아야지요. 그래도 사회변화 과정에서 나름의 역할이 있는데, 아예 존재를 부정당하고 이권 카르텔로 몰리는 상황이라면 당연히 퇴진이 아니라 더한 주장도 할 수 있다고 봐요. 하지만 결국 퇴진이 가능한 환경을 만드는 데 중요한 키는 정치세력에 있습니다. 일반 시민들 입장에서는 윤석열이든 국민의힘이든 민주당이든 모두가 다 심판대상일 수 있거든요. 왜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거리로 나오지 않느냐를 묻기 전에 정치 쪽에서 이에 대한 답을 내놔야 하는 문제가 있는 거죠.

 

이남주 정치권을 심판하고 역행을 막고 전환의 계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윤석열정부를 빨리 끝내야 하는데 민주당에 대한 신뢰 문제도 분명 걸림돌이 되는 듯합니다. 결국 퇴진 구호가 민주당만 유리하게 해주는 것 아니냐는 식의 의심이 한편 있고요. 다른 한편으로는 사실 민주당을 배제하고는 상황을 바꿀 수 없다는 엄밀한 현실도 있습니다. 이 두가지 과제를 어떻게 결합시키고 해결할 것인가가 쟁점이 될 텐데요. 서복경 선생님은 민주당의 변화를 위해서 혁신위원회에 참여하시기도 하셨죠.

 

서복경 시민들의 정서와 요구 측면과 민주당이라는 정당, 시민사회 단체들을 분리해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시민 정서 측면에서 보자면 거리로 나오든 안 나오든 ‘선거 때 두고 보자’는 마음이 강화될 수밖에 없고 어떤 방식으로든 표출될 텐데요. 유권자들이 선거 때 찍을 수 있는 대안 집합을 구성하는 것은 정당들의 역할이란 말이에요. 그 대안의 집합을 구성하는 방법에 대해 시민사회 쪽에서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습니다. 선거법 개정이나 위성정당 문제도 정치권에 모두 맡겨둘 것이 아니라 시민사회가 개입할 여지가 있어야 하고요. 저는 일종의 ‘시국회의’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총선을 앞두고 지금 상황에서는 민주당이 핵심적인 도구가 될 수밖에 없는데요. 그렇다면 민주당을 어떻게 활용할지, 총선 이후에는 무엇을 하게 만들지, 2024년 이후 대한민국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무엇을 누가 할 것인지에 대해 시민사회 스스로가 화두를 던져야 한다고 봅니다. 특히 기존처럼 원로들만의 논의가 아닌 환경단체, 노동단체 등 단체 성격을 막론하고 현장을 뛰어다니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이런 회의 구조를 빨리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어요.

 

이태호 조금 보충해서 의견을 드리면 시민사회 역시 그런 문제의식이 없는 건 아니에요. 다만 노동운동도 시민운동도 한국사회와 함께 위기를 겪고 있고 또 전환의 몸살을 앓고 있는 거죠. 예컨대 민주노총은 조합원이 늘긴 했지만 노조에 속하지 않은 이들 역시 자력화되고 있죠. 노동자 권익에 대한 관심도 늘어나고 있어서 각자의 실험들을 하고 있고요. 시민사회도 예전보다 많이 위축됐다고 하지만 청년층을 중심으로 기존 시민단체에 포괄되지 않는 기후위기행동, 미투행동 등 다양한 시도들이 생겨나는 어마어마한 변화가 있습니다. 그야말로 리더십의 전환입니다. 원로들만이 아니라 이 사람들이 시국회의를 열 수 있는가 하면 저는 의문이에요. 그 과도기 속에 내년 총선이 있고요. 제가 동의할 수 있는 지점은 어쨌든 촛불혁명 이후 만들어진 전환의 요구를 마무리하지 못한 채 지금 상태에 이르렀다는 겁니다. 시대적 한계가 있었건 역량이 부족했건 그런 상태에서 백래시가 일어난 것이고요. 전환과 연합이라는 두가지 숙제가 있습니다. 우리가 이 둘을 이루어내는 데 그리 성공하지 못해왔음을 인정하면서 판을 짜야 합니다. 연합의 전망도 전환의 전망도 또렷하지 않은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좀더 섬세하게 각각의 이슈에 관한 연대부터 시작해 그 수준을 키워나가야 합니다. 왜 당장 다 같이 모이지 않느냐는 좀더 나중 문제예요.

 

이남주 당장 모두 거리로 나오라고만 외칠 일은 아니지만 모여야 한다는 데 대한 공감은 분명 필요해 보여요. 그런 방향을 더 적극적으로 모색해야겠습니다. 사실 이러한 힘만 만들어지면 한국사회가 윤석열정부의 퇴행을 그대로 바라보고만 있지는 않으리라는, 역사적 경험이 주는 믿음도 있습니다. 조금 막연해 보일지 몰라도 우리 현대사에는 이러한 문제를 창조적으로 해결해온 사례들이 풍부하지요.

 

진정한 공론장, 새로운 연합을

고민해야 할 때

이남주 지금은 다른 어떤 때보다도 각 의제들이 모두 결합되는 시기인 것 같습니다. 기후위기가 민생과 연관성이 있다는 의식이 증가하고 있고 외교, 안보가 글로벌 경제 문제와 긴밀하게 관련되기도 하고요. 전환을 위한 연합의 객관적 조건 역시 어느 때보다 성숙해 있다는 측면도 있습니다.

 

서복경 저는 이념 문제는 외피에 불과하고 중요한 건 시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건설업계의 이해관계, 레거시미디어의 이해구조, 원전 마피아 같은 부분은 손대기 싫었거나 손댈 능력이 부족하죠. 정치권이 전통적 시장의 산업 기득 이익을 제대로 손본 적이 없어요. 그러니 어떤 정부가 언제 들어서든 간에 과연 이 이권 카르텔에 손댈 수 있겠느냐 하는 의심이 듭니다. 현 정부가 반공전체주의 같은 이념을 외치고 있지만 그건 알리바이에 불과하다고 생각해요. 실체는 검찰, 건설, 원전, 레거시미디어 등 시장 이해관계자들과 연계하는 이권 카르텔을 장악하겠다는 거죠. 은폐전술을 전혀 쓰지 않고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 다를 뿐입니다. 이런 오래된 이권 카르텔이 표면화된 지금, 기후든 에너지든 산업의 구조적 전환이든 인구감소 문제 해결이든 이 모든 것이 단순히 검찰권력을 축소해서 이루어지는 건 아니라는 거예요. 한국사회 자체를 완전히 재건해야 하는 상황이죠. 이 재건을 어느 정도 규모로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전망은 아무것도 없어요. 엄청난 지구적 변화나 생태계적 전환 앞에서 모든 인류의 생존을 걸어야 하는 절체절명의 상황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기존 시스템을 어떻게 해체하고 새로 만들어낼 것인가. 이제까지 한번도 당면해보지 못한 가장 거대한 수준의 담론 논쟁을 해야 할 겁니다. 제가 말하는 공론장이란 옛날의 경험으로 얘기하면 만민공동회 같은 건데요. 민주당 역시 그 판 안에서 같이 논쟁하고 그들만의 콘텐츠를 만들어야 합니다. 선거법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그런 여유를 부릴 시간이 없다는 거죠.

 

이태호 서복경 선생님 말씀에 대체로 동의합니다. 분단체제 기득권이라고 묘사하든 시장특권연합으로 묘사하든 이 구조의 전환이 절실하고요. 전쟁정치로 묘사하든 정치적 진영화로 묘사하든 현 정치구조를 다양성이 반영될 수 있도록 바꾸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선거제도가 바뀌지 않더라도 유권자들은 늘 그랬듯이 현명한 판단을 할 거예요. 유권자 스스로 선택적 투표를 통해 어느정도 연합의 효과를 만들어내리라 믿습니다. 한국 시민사회가 주기적으로 촛불을 일으킨 것처럼 본능적으로 체득하고 있는 정치적 감각이 있다고 보기에 신뢰를 보내게 돼요. 한편 만민공동회 같은 제안이 고려될 수도 있습니다만 제 의견이 조금 다른 지점이 있는데요. 다 같이 모여 정책적 전환의 방향을 토론하자는 제안은 시민단체가 가장 많이 해온 일입니다. 그런데 그걸로 충분하지 않았어요. 촛불 이후 정당은 상당히 자립화되었습니다. 당원도 많고요. 시민사회단체가 ‘연합해라, 개혁해라’해도 과거처럼 쉽게 반응하지 않습니다. 우리도 우리 분수를 잘 알아요.(웃음) 하지만 상황이 이렇기에 시민들에게도 ‘미워도 다시 한번’ 같은 전략이 잘 통하지가 않습니다. 일단 시민단체의 젊은 활동가들에게 통하지가 않아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계속 대항연합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합니다. 사람들이 희망을 잃었을 때 희망의 연합을 만들어내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해요. 과거의 관성으로는 만들어질 수 없기에 매우 세심하게 작업해야 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 점에서 가장 곤란한 처지에 놓여 있으면서도 가장 큰 힘이 되어야 하는 민주당이 총선을 앞두고 스스로 어떻게 전환할 것인지 보여줘야 한다는 거죠. 공론장을 복원하고 저항전선을 형성해 모두가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만 총선을 앞둔 지금 상황에서는 정부의 구조적 퇴행을 저지할 정치적 전망을 여는 것이 사회운동과 정치권의 가장 크고 주요한 숙제입니다. 거기서 민주당이 역할을 해야 하고요.

 

이남주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는 지금 굉장히 절박한 상황에 있고 이런 상황에서는 민주노총의 역할이 점점 더 중요해질 것 같아요. 사실 노동운동의 기초 없이는 전환을 위한 연합을 형성해가기 대단히 어렵거든요. 그러기 위해서는 노동운동의 정치적 지평도 더 넓어질 필요가 있고요.

 

양경수 한국사회 구조상 시민사회 영역이나 진보정치 영역이 노동계에 위탁되는 경향이 있는 게 현실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노동운동이 노동운동 고유의 영역을 발전시키기 어려운 조건이죠. 민주노총의 역시 이런 고민에서 자유롭지 못한데요. 그동안 민주노총은 머리보다는 손발의 역할을 많이 해왔어요. 거리투쟁의 지휘부로서 역할했지만 담론을 생산하는 힘은 빈약했습니다. 그렇다고 민주노총이 더이상 그런 책임과 역할이 버겁다고 나자빠져 있을 순 없죠. 내후년이면 민주노총 창립 30주년이 됩니다. 이제 민주노총이 대대적인 조직적 토론을 해야 하는 시점인 것 같습니다. 향후 10년 정도의 전망을 그리며 사회 전반의 문제, 노동뿐 아니라 인권, 환경, 기후 등 여러 영역을 함께 담는 담론적 논의가 필요해요. 연합 역시 필요한데, 저는 가치연합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현재 존재하는 구조적 연합의 형태가 아니라 지향하는 가치에 대한 동의를 바탕으로 함께할지 말지 판단해야 한다고 봅니다. 물리적으로 무조건 민주당과 연합해야 정권교체할 수 있는 것 아니냐 하는 말은 이미 설득력을 잃었어요. 가치를 형성하는 것이 총선을 준비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고, 사회적 담론이나 공론장을 만드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우리 지향점 역시 명확해야 하며 내부적으로도 결속되어 있어야 합니다. 단순히 ‘민주노총이 다음 총선에서 민주당과 연합할 것인가’ 하는 질문은 단편적이고 무망하게 느껴져요.

 

위기 이후, 전환을 준비하며

이남주 전환을 실현하기 위해 전환 주체의 혁신이 필요하다는 점도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습니다. 사실 윤석열정부를 비판하는 것은 쉽지만 이러한 퇴행을 어떻게 끝내고 전환을 실현하는가는 여러모로 공부가 많이 필요한 과제입니다. 이와 관련한 중요한 현안이나 가능한 실천들을 한두가지씩 언급해주시면서 오늘 대화를 마무리했으면 합니다.

 

이태호 지금은 전쟁의 시대입니다. 국내에서는 정치가 내전화되고 있고 안보 이슈나 보호주의 경제정책 등 서로 적을 만들어 공격하는 방식이 계속되며 연대가 깨졌습니다. 앞으로 이야기해야 하는 전환의 내러티브는 결국 살림 혹은 돌봄이 될 겁니다. 이번 총선에서 반윤석열 얘기만 나와서는 안 되고, 살림과 돌봄을 화두로 세상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 논의해야 합니다. 시민사회에서도 정치권에서도 또 공론장에서도 이와 관련한 진지한 비전이 이야기되지 않으면 결국 공허하고 성마른 외침이 될 뿐이라고 생각해요. 여기서 전진할 전망이 보이지 않으면 사람들은 계속 모이지 않을 겁니다. 예를 들어 2018년 미국 중간선거에서 망해가며 궁지에 몰린 민주당을 살린 것은 ‘썬라이즈 운동’(Sunrise Movement)과 ‘그린뉴딜’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를 보면 민주당에 그런 이니셔티브가 없어요. ‘정의로운 전환’ 혹은 ‘공존을 위한 전환과 연대’같이 뭔가를 내걸 필요가 있습니다. 살림은 사람과 지구를 함께 살리자는 것이니 기후위기 의제와 다른 사회개혁의 연결고리가 되고, 돌봄은 페미니즘을 사회개혁과 연결하는 의제입니다. 살림과 돌봄을 모두 연결하여 복합위기의 해결책으로 제시할 수도 있고요. 한반도평화 문제에 관해서는 왜 민주당이 반국가세력으로 몰리면서도 평화 이니셔티브를 계속 외면하고 뭉개는지 이해가 안 갑니다. 무엇보다도 이런 구호를 내걸고 진보정당들에 삼고초려 하며 정책연합이든 정치연합이든 호소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노력을 하면서 시민들에게 윤석열 심판을 호소해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지금은 너무 밋밋하고 뻣뻣하고 무능합니다.

 

서복경 저는 공론장을 변방에서부터 마련해보면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지 않을까 합니다. 기후운동, 청소년인권운동 같은, 아직 시민사회의 변방에 있지만 구체적인 의제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새로운 멤버들을 초대해 채널을 열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각 분야의 참신한 목소리가 시민사회 내부에서 논의될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 젊은 세대는 정당 안팎을 넘나드는 데 거부감이 없고, 중앙의 정치인들과 앉아서 떠드는 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어요. 그러니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우리가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어디로 나아갈 것인가 논의를 시작해보면 좋겠습니다. 거리나 광장에 대한 전통적 생각에서 벗어나 시야를 확장해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보면 어떨까요.

 

양경수 결국 의제와 동력을 어떻게 형성할 것인가 하는 문제인 것 같네요. 한국사회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의제를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낼지, 그리고 그 동력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가 중요합니다. 민주노총 역시 특수고용 노동자나 플랫폼 노동자, 비정규·여성 노동자, 최근 콜센터 노동자들까지 근래 가장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이들과의 연대와 투쟁에 집중하고 있는데요. 이런 식으로 대중적 요구가 분출되는 상황이 자연스레 의제를 만드는 것 같습니다. 호주 노동조합총연맹 같은 경우 온라인노조를 만들었고 조합원이 수백만명에 이릅니다. 민주노총 역시 과거의 틀을 과감히 깨고 새로운 실험을 고민하고 있어요. 새로운 광장에 나가려면 젊은 세대에 다가갈 수 있는 조직을 만들고 멤버십을 쇄신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민주당과의 관계 역시 민주당이 이해관계에 매몰된 행보를 계속 보인다면 연합이 어렵겠다는 생각은 명확해요. 앞으로의 연대는 가치지향적으로, 그들이 가진 새로운 사회에 대한 전망과 진정성에 교감하는 방식으로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이남주 오늘 많은 말씀 나눠주셔서 고맙습니다. 위기를 이야기하기 시작해서 결국 전환까지 닿았던 것 같아요. 우리가 새롭게 출발할 지점들에 대한 언급도 많았습니다. 『창작과비평』에서도 계속 논의를 진전시키고, 필요하면 또 도움을 요청드리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2023.10.24. 창비서교빌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