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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코로나바이러스, 끝이 아닌 이유

강양구

강양구

2003년 2월 21일, 중국 광둥성 광저우의 한 의사가 친척 결혼식에 참석하고자 홍콩을 방문했다. 며칠 전부터 독감 비슷한 증상이 있던 그 의사는 홍콩의 호텔에서 상태가 급격하게 나빠졌다. 아내와 함께 묵던 호텔 9층 911호뿐만 아니라 복도나 엘리베이터에서 심한 기침을 해댔을 것이다.

 

그로부터 닷새가 지난 2월 26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한 사업가가 괴질로 쓰러졌다. 곧이어 3월 1일에는 싱가포르에서 한 항공기 승무원이 사망했고, 사흘 뒤에는 캐나다 토론토의 78세 할머니가 사망했다. 그 의사와 같은 호텔 9층에 묵었던 투숙객 9명이 이렇게 세계 곳곳에서 영문도 모른 채 쓰러졌다.

 

21세기에 들어서자마자 전세계에 유행한 사스(SARS, 중증 급성 호흡기 증후군)의 비극은 이렇게 시작했다. 약 9개월간의 대유행 동안 8273명이 감염되었고, 775명이 바이러스 때문에 사망했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가 중국을 비롯한 전세계를 위협하는 상황에서 17년 전의 기억을 끄집어내는 일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사스는 세가지 점에서 지금의 상황을 예고했다.

 

첫째, 인수 공통 전염병(감염병).

 

최초 발생 시점 기준으로 2002년 사스, 2009년 신종플루, 2012년 메르스(MERS, 중동 호흡기 증후군), 2019년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은 모두 동물에게서 유래한 바이러스가 병원체다. 박쥐, 돼지, 낙타 등에서 기생하던 바이러스가 어느 순간에 숙주를 동물에게 사람으로 옮긴 것이다.

 

충분히 예상 가능한 일이다. 바이러스가 오랫동안 숙주로 삼아온 동물의 사정은 최악이다. 열대우림 파괴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생태계 파괴로 서식지가 계속해서 줄면서 동물의 개체 수가 눈에 띄게 줄고 있다. 예를 들어, 전체 포유동물 가운데 소·돼지 같은 가축과 인간을 제외한 야생동물의 비중은 4퍼센트뿐이다. 닭·오리는 전체 조류의 70퍼센트를 차지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기후변화는 이런 상황을 더욱더 가속화한다. 오랫동안 추운 지구에 적응하며 진화해온 지금의 동물은 산업화 이전의 약 14도와 비교했을 때 1도(현재), 2도, 3도씩 상승하는 더워진 지구 기후를 견뎌내기 어렵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동물이 소리소문 없이 사라지고 있다.

 

오랫동안 동물에게 의탁해온 바이러스도 이런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숙주 없이 생존할 수 없는 바이러스에 동물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인간 또 그에 딸린 소·돼지·닭 등은 아주 매력적인 대상이다. 개체 수가 많고, 한곳에 모여 살기 때문에 일단 자리만 잡으면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사스, 신종플루, 메르스 그리고 신종코로나바이러스는 바로 이런 적응의 결과다.

 

둘째, 비행기를 탄 바이러스.

 

홍콩의 한 호텔에서 바이러스는 세계 각국 여러 사람의 몸에 자리를 잡았다. 그러고 나서, 바이러스는 며칠 안에 하노이, 싱가포르, 토론토로 비행기를 타고 이동했다. 토론토로 간 바이러스가 여러 사람을 희생시키며 자리를 잡은 사람 가운데는 간병인으로 일하던 46세의 필리핀 여성도 있었다. 그가 고향을 방문하면서 이 바이러스는 불과 6주 만에 지구를 한바퀴 돌았다.

 

새로운 숙주(인간)에 침입하려는 바이러스의 시도는 과거에도 여러차례 있었다. 하지만 그런 시도는 번번이 절반의 성공이었다. 왜냐하면 여러차례의 돌연변이 끝에 운이 좋게 인간에게 감염이 되더라도 그 파장이 제한적이었기 때문이다. 동남아시아나 아프리카 오지에 살아가는 작은 마을 주민 몇 사람을 희생시키는 정도였다.

 

하지만 배, 기차, 비행기 등으로 세계가 갈수록 압축되면서 바이러스는 새로운 기회를 맞았다. 정말 운만 좋다면 사스 바이러스처럼 비행기를 수없이 환승하면서 지구를 불과 6주 만에 한바퀴 돌 수 있게 되었다. 일단 자신을 비행기에 태워줄 수 있는 적절한 숙주와 연결만 된다면, 그 변종 바이러스는 순식간에 대유행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중동을 벗어나지 못했던 메르스 바이러스가 2015년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이동해서 몸부림을 친 것도 비슷한 사정 때문이다. 2020년 신종코로나바이러스는 인구 1000만명이 넘는 중국 우한에 자리를 잡고 나서, 열차나 비행기를 타고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다.

 

셋째, 탐욕의 시장.

 

이 대목에서 21세기 들어서 인간과 동물의 거리가 급격하게 가까워진 또다른 이유를 말해야겠다. 사스가 유래한 광둥성은 특이한 야생동물 요리로 유명하다. 하지만 (칼 타로 그린필드 같은 이들의 날카로운 관찰에 따르면) 이런 특이한 야생동물 요리는 지역의 오랜 전통이라기보다는 중국의 시장경제가 팽창하고 돈이 돌면서 나타난 “과시적 소비 성향”의 결과다.

 

평소 먹던 요리와 다른 것을 먹어보려는 돈 있는 사람의 수요는 야생동물을 사냥하고, 사육하고, 유통하는 새로운 산업을 팽창시켰다. 과거에는 열대우림의 동굴이나 늪지대에서 서식하던 야생동물이 도시 외곽에서 사육되고, 수많은 사람이 오가는 시장에서 우리에 갇힌 채 몸부림치는 신세가 된 것이다.

 

물론 그런 신세로 전락한 야생동물 안에는 신세계(새로운 숙주)를 눈앞에 둔 수많은 바이러스가 똬리를 틀고, 계속해서 변이를 일으키고 있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로는 코로나바이러스도 마찬가지다. 돈을 주고 ‘야생의 맛’을 추구하려는 인간의 욕망이 우한의 왁자지껄한 시장에서 바이러스에 날개를 달아준 것이다.

 

775명이 생명을 잃었지만, 17년 전에는 운이 좋았다. 폭발적인 전파력과 상당히 높은 치사율(약 10%)에도 불구하고 사스 바이러스는 9개월 만에 사그라졌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는 어떨까? 이번에도 운이 좋을 수 있을까? 다음은 또 어떤가? 앞에서 살펴본 세 조건이 맞물려서 더 센 놈이 계속 올 텐데, 인류는 계속 운이 좋을 수 있을까?

 

강양구 / 『과학의 품격』 저자

2020.2.5.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