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4‧15총선, 누구를 어떻게 심판할까
제21대 국회가 어떤 모습일지는 예단하기 힘들지만 이번 총선이 한국정치의 부끄러운 진면목을 보여주며 출발하는 것만은 분명하다. 무엇보다 양대 정당이 비례대표용 위성정당 만들기 꼼수경쟁을 벌인 탓이다. 이에 언론매체와 지식인 논객들 사이에는 양당의 행태를 준열하게 꾸짖으면서 총선에서 ‘유권자의 심판’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드높다. 하지만 도대체 누구를 어떻게 심판하라는 말씀인지 국민들 입장에서는 답답하고 허탈하기조차 하다.
총선에서 국민에게 주어진 심판수단은 유권자 한 사람당 두표뿐이다. 그나마 그중 한표는 자기 사는 지역구에 각 정당이 내보낸 후보 중 유력한 두명, 많아야 세명 가운데 하나를 찍을 때나 ‘심판’ 효과를 낼 수 있다. 물론 기권을 하거나 투표장에 안 나가는 선택지도 있기는 하다. 어쨌든 이번처럼 복잡하고 심란한 상황에서 적절한 심판을 수행하기에는 유권자에게 주어진 권한이 턱없이 한정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도 한표밖에 없던 시절, 나아가 한표마저 거의 무의미하던 독재시대를 기억할 때, 이 정도의 선택권이나마 갖게 된 것이 감사한 일이다. 이만큼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민들이 다치고 눈물을 흘려야 했던가!
두어달 전만 해도 심판의 구도가 비교적 간명했다. 20대 국회의 4년 내내, 특히 촛불항쟁으로 정권교체가 된 후로는, 시민들의 개혁요구를 사사건건 가로막으며 ‘식물국회’를 만들었다가 한정된 개혁입법이나마 신속처리법안(패스트트랙)으로 오르자 ‘동물국회’의 재연을 마다 않은 세력을 심판해야 하는 과제가 뚜렷했다. 이는 선거전략이나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의 건강한 상식에 속했다. 다른 한편으로 ‘촛불’ 이전, 나아가 87년 민주항쟁 이전의 세상을 그리워하며 ‘주사파 청와대’라느니 ‘좌파독재 정부’라는 거짓뉴스를 적극적으로 전파하는 소수세력에도 심판의 구도는 명백했다. 이 대결에서 상식이 승리할 때 ‘촛불국회’도 기대볼 수 있다는 생각을 나 자신 피력한 바 있다.
이 구도를 흔들어놓은 것이 개정선거법의 무력화를 노린 거대양당의 위성정당 놀음이다. 먼저 시작한 것은 물론 미래통합당(미통당)이었다. 그러나 애초에 미통당의 꼼수를 비난하던 더불어민주당(민주당)이 저들의 작태를 거의 그대로 답습하면서 완전한 난장판이 되었고, 민심비례성의 강화를 기대하던 소수정당들은 오히려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처지에 놓였다. 양당의 행각과 그간의 세세한 경위를 여기서 되짚어볼 필요는 없다. 한정된 선거제도개혁조차 기득권세력에 얼마나 큰 위협인지를 역설적으로 실감케 해준 셈이지만, 유권자로서는 누구를 어떻게 심판할지 곤혹스러워지고 환멸과 혐오감으로 심판의 의욕마저 상실할 법도 하다.
민주당에 우호적이던 인사들이 그렇다고 미통당을 찍는 일은 극히 드물 것이다. 반면에 투표불참 쪽으로 돌아설 가능성은 무시하기 어렵다. 그런데, 어느 정도의 환멸은 당연하고 나도 민주당이 이렇게까지 나올 줄은 미처 예상 못했지만, 민주당 또한 우리 사회 기득권구조의 일부임을 전혀 모르고 살았다면 그것도 문제다. 2016년 가을 촛불항쟁의 초기에 민주당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서 탄핵을 선창한 것은 일개 기초단체장이었고 서울시장이 시위군중의 안전과 편의를 적극 돌봐주었을 뿐, 당 지도부 대부분은 촛불시민의 요구에 냉담하거나 역행하려 하지 않았던가. 지난번 선거법개정 때도 민주당은 마지못해 끌려오는 형국이었고, 최종안 마련에서는 결과적으로 자유한국당의 입지를 넓혀주는 방향으로 소수당을 압박하지 않았는가. 양당 기득권구조를 지키려는 행태가 최근에 도를 넘고 더욱 적나라해졌을 뿐, 민주당이 갑자기 변질했다고 분개할 일은 아닌 것이다.
나 자신은 ‘지역구선거에서 민주당의 선전과 비례대표선거에서 개혁적 소수정당의 약진을 목표로 하는 전략적 분할투표’를 제안한 바 있는데(페이스북 2020.2.29 및 3.18), 괘씸하고 분한 마음이 들더라도 그 원칙을 고수하고 싶다. 입법부 내 반촛불세력의 응징이라는 기본구도는 여전히 살아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코로나19 감염병 사태로 이 땅 주민들의 고통이 길어지고 심해지면서 불행 중 다행으로 희생과 헌신, 창의성과 연대라는 촛불시민의 미덕이 다시 표면화되고 있다. 이런 선한 기운을 북돋우는 것이야말로 정치의 본업일 텐데, 직업정치인들이 직무를 유기한다고 해서 참여하는 시민마저 그럴 수는 없는 것이다. 최근의 언론보도를 보면 국민들 사이에도 21대 총선의 이런 기본구도가 서서히 되살아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렇다 해도 전략투표만으로 속 시원한 심판을 이룰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촛불’이 아직 여기까지밖에 못 온 것이 현실이라면, 일거에 속 시원해지기를 기대하기보다는 우리 자신의 한계를 겸허히 인정하면서 이번 선거에서 가능한 최선의 심판을 하고 선거 이후에도 다각적인 분투를 지속하리라 다짐해야 할 것이다. 아니, 투표 이전에도 민주당을 일깨우고 다그칠 일이 있다.
지금 식으로 해서는 설혹 민주당이 제1당이 된다 해도 21대 국회가 20대보다 나아질 가능성이 희박한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심지어 민주당과 문재인정부가 종전보다 더 기막힌 ‘고난의 행군’을 해야 할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대통령 임기 4년차인 데다, 20대 국회에서 그나마 선거법개정과 검찰개혁에 시동을 걸 수 있게 해준 ‘4+1’(현재의 3개당) 연대를 민주당이 배신하고 국민신뢰라는 정치자본을 너무 많이 까먹었기 때문에 그 운신의 폭이 더욱 좁아지기 쉬운 것이다. (국회 200석 이상이 필요한 대통령 탄핵이나 180석이 넘어야 결행할 수 있는 공수처법 폐지 등은 애당초 야당의 뻥치기와 여당의 공포마케팅이 합작한 망상이었으므로 그걸 막았다고 자축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렇다면 개혁의 전진을 바라는 시민들이 민주당에 촉구할 일은 무엇인가?
사실 뭐 그리 대단한 일도 아니다. 예컨대 민주당이 국민들과 ‘패트’ 연대의 우군이었던 민생당과 정의당을 향해, 이번에 상황에 밀려 그렇게 결정했지만 정말 죄송하다고 진솔하게 사과하고, 이번 선거에 한정된 일회성이니까 더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함께 노력하자고 제의하는 것이 그토록 어려운 일일까? 이해찬 대표는 비례위성정당 참여를 처음 발표하면서 국민들에게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 송구스럽다’고 다소 두루뭉술하게나마 이미 사과한 바 있다. 준연동형제 적용에 30석의 ‘캡’을 씌운 것이 일회성이라는 것은 ‘4+1’의 합의사항이기도 하다. 그때보다 한결 더 부끄러운 모습을 드러낸 뒤의 사과는 한결 더 분명해야 한다. 그리고 사과의 진솔함을 보여주려면 선거법의 추가개정은 물론, 국회법·정당법 개정, 여야의원 148인의 발의로 3월 6일부터 계류 중인 국민의 헌법개정의 발의권을 보장하는 ‘원포인트’ 개헌안의 조속한 통과, 기타 각종 개혁조치를 위한 협력체제 구축을 제안해야 할 것이다. 그럴 때 비로소, 민주당도 크게 보아 기득권세력의 일부이긴 하지만 미래통합당과 똑같은 적폐세력은 아니며 근자의 꼼수정치도 똑같은 내용은 아니라고 국민을 설득할 수 있을 것이다.
민생당이나 정의당이 이에 호응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나의 개인적 판단이다. 민생당은 애초부터 호남지역 민심을 고려해 위성정당에 참여할 의욕이 큰 편이었고, 정의당도 이제까지 어렵사리 고수해온 위성정당에 대한 원칙적 비판을 철회하라는 것이 아니라면 민주당 및 민주당 지지자들과 지나치게 각을 세우는 길을 고집할 이유가 없다. 그렇게 3당의 일정한 화해가 이루어지면 이번 지역구선거에서 선별적 연대조차 가능해질지 모른다.
그럴 때 유권자는 유권자대로 자신에게 주어진 두표의 심판권을 한결 편한 마음으로 행사할 수 있을 것이며, 꽤나 의미있는 심판결과가 나올 가능성도 커질 것이다.
백낙청 / 서울대 명예교수, 『창작과비평』 명예편집인
2020.4.1.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