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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화호는 ‘낭만’이 아니라 현실적 대안이다

김현우

최근 국정감사에서 국토교통위 송석준 의원이 코레일로부터 받은 연도별 일반열차 운행횟수 자료를 공개했는데, 이에 따르면 2017년부터 올해 8월까지 경부선, 호남선, 중앙선 전체 편성의 36%에 달하는 주중 44편, 주말 50편의 무궁화호 열차 운행이 줄어들었다고 한다. 예전에서는 서울에서 진주까지, 용산에서 순천까지 무궁화호를 타고 갈 수 있었는데, 이제는 동대구나 익산까지 KTX를 타고 가서 갈아타거나 운행이 줄어든 만큼 열차 이동을 포기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진 것이다. 물론 그 이유는 승객이 적고 요금도 저렴한 무궁화호 운행이 코레일에 돈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고속철도에서 벌어들인 수익으로 지방 노선 운행 적자를 보전해왔지만, SRT와 분리 운영되면서 알짜 노선을 잃게 되었고 공기업도 수익 경영의 압박을 받다보니 공공성은 뒤로 밀리게 되는 것이다.

 

지방의 승객이 적으니 역을 폐쇄하고 편성을 줄이는 방법을 택한다. 이렇게 지방선과 간이역은 시나브로 줄어들었고, 정차역과 열차가 적어지니 지방은 더욱 고립되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이 과정에 이용자들의 여론을 수렴하는 단계는 없었다. 코레일은 앞으로도 무궁화호를 축소 개편해서 ITX-새마을과 신형 EMU-150 열차로 대체한다는 계획인데, 수익성 논리가 우선시되는 한 안 그래도 빈약한 철도망 거미줄의 끝은 더 많이 잘리고 운행은 더욱 듬성듬성해질 것임을 예상할 수 있다. 그런데 코레일이 무궁화호 14개 노선 폐지로 아낀 비용이 겨우 39억원이라고 하니, 이 수익성도 참 알량하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이렇게 없어지는 노선뿐 아니라, 있어야 했는데 없는 노선도 생각해봐야 한다. 예를 들어 부산과 목포 사이, 광주와 울산 사이를 이동하려는 여행객에게 열차는 가능한 선택지가 아니다. 경전선은 여객 수송 기능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고, 무주 진안 장수처럼 아예 철로가 닿지 않는 시군도 수두룩하다. 기차가 원래 없었거나 편성이 사라진 지 오래되니 불편하거나 이상하다고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열차 편성을 줄이거나 새로 만드는 이들에게는 구간 단위의 경제성이 가장 중요한 기준이다. 그러나 철도의 효과는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을 잇는 데에 그치지 않는다. 얼마 전 티브이에서 방영한 프로그램 「손현주의 간이역」은 무궁화호와 정차역이 지방 도시에서 갖는 의미를 여실히 보여준다. 사실 이런 도시들 다수는 일제시대에 철도역이 생기면서 형성된 곳들이기도 하다. 이 지역의 사람들은 수십년간 철도에 의지해서 바깥과 소통하고 삶을 꾸려왔다. 최근 개봉한 이장훈 감독의 영화 「기적」의 이야기는 어떤가? 철도 말고는 이동수단이 없는 마을에서 주민들은 매일매일 목숨을 건 여정에 나서다가 스스로 간이역을 만들기에 이른다. 이렇게 만들어진 봉화군의 양원역은 폐역의 위기를 이겨내고 지금도 지역의 작지만 큰 활력이 되고 있다고 한다.

 

지방 소멸은 지금 한국에서 가장 큰 우려 중 하나다. 그런데 지도를 주의 깊게 들여다보면, 인구 감소로 인한 지방 소멸 우려 지역과 지선 철도망이 없는 지역이 거의 일치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충분히 검증된 가설은 아니지만 철도가 서지 않는 지역의 청년 인구가 더 빨리 줄거나, 그나마 철도역이 있는 도시의 경제·문화 활동이 유지되고 있다고 짐작할 수 있다. 반면에, 국토균형발전이라는 명목으로 그렇게 많은 혁신도시와 기업도시가 생겨났지만, 철도망이 없이 자동차로만 오갈 수 있는 신도시들은 그 인구도 옮겨오는 기관의 직원 수만큼만 늘어났을 뿐이다. 세종시 같은 경우 BRT(간선급행버스체계)라는 수단이 있기는 하지만, 오송역-세종시 간 연결과 세종시 내부의 교통 순환을 고려하면 내외부 철도망이 부재한 게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다. 만약 세종시와 대전 권역을 아우르는 지역철도망이 조밀하게 구축된다면 공주 천안 청주 등 주변 도시들의 활력도 배가되고 승용차 이용도 훨씬 줄어들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실은 이것이 ‘모달 시프트’(modal shift)의 기본 개념이기도 하다. 승용차 이용을 다른 교통수단으로 대체 또는 전환하여 환경적 부담을 줄이고 긍정적 효과들을 최대화하자는 것이다. 수송 부문의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서도 전기차와 수소차 보급을 늘리는 것보다 중요한 게 철도 수송분담률을 늘리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의 수송 부문 온실가스 감축 정책에는 이런 요소가 전혀 반영되어 있지 않고, 연료 대체와 운영 효율화에만 신경 쓰고 있다. 철도망 확충이 슬금슬금 이루어지기는 했지만 예산과 의지 부족으로 기존 계획 달성은 늘 부진했고 있는 노선도 폐지하는 마당이니 철도 수송분담률이 늘어나기 힘든 게 당연하다.

 

한편, 지방소멸을 막을 대안을 줄기차게 이야기해온 마강래 교수는 권역별 ‘압축도시’를 주장한다. 가덕도 신공항 논란을 계기로 ‘메가시티’, 나아가서 ‘메가리전’(mega-region) 논의도 등장하고 있다. 이런 구상들은 한반도와 지역의 맥락에서 어떻게 실현되어야 할지 더 구체적인 토론이 필요하다. 철도는 이런 논의에서도 가장 효과적인 수단으로 포함되어야 할 요소다.

 

대선이 코앞으로 다가오고 있다. 관성적이고 무책임한 지역개발 공약이 또 양산되고 있지만 철도에 대한 진지하고 과감한 접근은 보이지 않는다. 2007년 정동영 대선후보의 제1공약이 남북축 내륙철도, 수도권 급행철도, 영호남 화합철도, 강원도 성장철도, 지역별 연계철도를 내용으로 하는 ‘대한반도 철도 구상’이었다는 것을 기억하는 이는 드물 것이다. 당시 이 공약에 대한 평가는 야박했다. 철도의 만성적인 적자 구조를 고려할 때 낙후지역 성장 촉진을 위한 수단으로 경제성 낮은 지방 철도를 포함하는 것은 부적합하며 재원 마련의 실효성에도 의문이 제기된다는 것이었다. 근시안적이고 단편적인 평가였다.

 

이제 철도 정책은 구간별, 사업별 수익성 논리를 넘어서야 한다. 면 단위까지 이어지는 철도망 확충은 기후위기와 인구절벽 모두에 대처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사업이며, 유일하게 할 만한 그린뉴딜 토건 사업이다. 코레일-SR 통합 요구에 열심히 나서고 있는 철도 노동조합과 시민사회도 운동의 스케일을 키워야 한다. ‘낭만’의 무궁화호, ‘느림의 미학’ 같은 표현들은 철도의 엄청난 잠재력을 오히려 삭감한다. 양원역의 ‘기적’은 기적이 아닌 현실로 전국화되어야 한다.

 

 


김현우 /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기획위원, 탈성장과대안연구소 소장

2021.10.13.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