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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범도 장군 흉상, 과연 육사에서 옮겨야 하나?

장세윤

작년 8월 말 이래 육군사관학교(이하 육사) 구내에 설치된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을 둘러싼 논란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국방부와 육사는 2018년 육사 구내 충무관 앞에 설치했던 독립운동가 5인(김좌진 이범석 이회영 지청천 홍범도)의 흉상을 작년 8월 29일과 31일에 육사 밖으로 이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독립운동 관련 단체와 상당수 야당 의원, 다수 국민, 언론 등의 거센 반발에 직면한 바 있다. 국회에서도 무려 181명의 의원이 육사 내 독립유공자 흉상 존치와 충무관 내 독립전쟁영웅실 철거 중단을 촉구하는 내용의 국회 결의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육사 구내 홍장군의 흉상 이전 방침에는 별다른 변동이 없었다. 특히 육사 충무관 내 ‘독립전쟁 영웅실’은 작년 11월 30일 이미 철거 완료됐다.


한편 지난 4월 30일 강정애 국가보훈부장관은 제4차 사회관계장관회의에서 홍장군 흉상 이전 추진 의사를 밝혔다. 또 강장관은 5월 27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지난해 여론을 달궜던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에 대해서는 “소관 기관인 육군사관학교에서 요청이 온다면 협업을 통해 가장 좋은 방안을 찾아보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처음 이 문제를 제기한 것으로 알려진 신원식 국방부장관은 5월 7일의 기자회견에서 홍장군 흉상 이전 문제는 육사 당국이 알아서 할 문제라는 입장을 밝혔다. 종래 철거를 주장하던 강경한 입장을 바꾼 것이다. 최근 육사 당국은 교외로 철거하겠다는 방침을 변경하여 육사 구내의 육군박물관으로 이전하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서도 광복회와 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 등은 물론, 제22대 국회에서 새로 국회의장에 선출된 우원식 의원 등은 여전히 흉상 이전 문제를 백지화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우원식 국회의장은 현충일인 6월 6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글을 통해 육사에 있는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문제를 두고 “정부가 독립 영웅 흉상의 철거 계획을 고수하는 것은 매우 안타깝고 유감스러운 일”이라며 “지금이라도 이 계획을 전면 백지화할 것을 정부 당국과 윤대통령에게 요청한다”고 밝혔다. 또 그는 6월 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봉오동전투 전승 104주년 기념식’에 참석하여 같은 입장을 밝혔으며, 6월 10일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을 만나서도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을 재고하라고 촉구했다.


지난 4월 총선에서 압도적 다수를 차지한 더불어민주당 출신의 신임 국회의장이 대통령과 정부에 육사 구내 홍장군 흉상의 이전 배치를 중단하라고 요구한 사실 자체가 매우 주목되는 일이며, 이례적인 경우다. 이러한 국회의장의 요청에 윤대통령과 국방부, 육사 당국의 반응이나 후속 조치가 주목되지 않을 수 없다.


한편 작년 8월 15일 제78주년 광복절 기념행사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후 두번째 ‘8·15 경축사’에서 “독립운동은 자유와 인권, 법치가 존중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만드는 건국 운동이었다”고 말했다. 이 논리대로라면 독립전쟁의 영웅 홍범도 장군은 자유와 인권을 지향하는 ‘건국 영웅’으로 추앙되고, 오히려 육사에 한정된 곳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심장부, 중심지에 기념물을 설치하여 온 국민 누구나 보고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오히려 반대이다. 왜 이러한 현상이 초래되었을까?


이러한 사태의 배경으로 현 정권의 이른바 ‘문재인정권 흔적 지우기’라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고, 현 대통령의 ‘편 가르기식’ 언설이 영향을 끼쳤다고 보기도 한다. 실제로 윤대통령은 위의 ‘8·15 경축사’에서 ‘자유민주주의’ 이념을 강조하면서 ‘자유민주주의 세력’과 반대 세력(공산전체주의 세력)으로 구분하여 반대세력을 비판하기도 했다. 또 그는 한미동맹과 일본과의 협력(한미일 안보협력)을 강조하였다. 윤석열정부 출범 초기의 이러한 분위기가 홍범도 장군 등 독립영웅 흉상 이전 문제로 표출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작년 8월 말 이후 윤석열정부(국방부)나 여당, 극우파 인사들의 일방적 주장에 의해 홍범도 장군은 ‘민족(독립전쟁)의 영웅’에서 북한 정권과 관련된 공산주의자(소련공산당에 입당한 열성 공산주의자)로 낙인찍히고 말았다. 당초 국방부와 육사는 홍범도의 소련공산당 입당 전력을 크게 문제 삼았다. 그런데 그게 정말 그렇게 문제가 되는 것일까?


그러나 이러한 인식과 주장은 당시 실상과 거리가 먼 것이다. 특히 ‘소련공산당원’이라서 부적절하다는 주장은 1930, 40년대 전반기 국제정세와 당시 소련 상황, 국제관계 등을 고려하면 무리한 것이다. 홍범도가 1927년 소련공산당에 입당했으니, 겉으로 보면 공산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정말 그가 공산주의 이념을 철저히 신봉하고 적극적으로 이를 전파, 실천하려 했는지는 의문이다. 또 그가 정말 열성 당원이었다고 해도 그의 입당은 해방 이후 북한정권의 수립에 기여하거나 대한민국의 수립과 발전에 유해한 영향을 끼친 사실이 전혀 없다. 따라서 별 문제될 것이 없다.


이왕 육사에 홍범도 등 독립운동가 5위의 흉상을 설치했으면, 잘 관리하고 활용하여 육사 생도들이 늘 가까이서 보고, 그들의 애국애족사상과 구국을 위한 희생과 헌신, 공동체를 향한 봉사정신을 느낄 수 있도록 했으면 한다. 더욱이 홍범도 장군의 흉상만을 따로 교외로 옮기겠다고 했다가, 이제 궁여지책으로 구내 박물관으로 옮기겠다는 발상은 의병-독립군-한국광복군-국군으로 계승되는 군 자신의 정체성과 정통성마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왜곡된 현실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애초에 흉상을 이전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독립운동이나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경시를 뜻하는 것이고, 독립정신과 참된 주체성, 자유의지의 발현이라는 독립운동 가치와 이를 헌법 전문에 명시한 대한민국의 헌법가치에 어긋나는 것이다. 더욱이 자유민주주의를 지향한다는 현 대한민국 정부에서 민족의 영웅, 독립전쟁의 영웅 홍범도를 오히려 ‘공산주의자’라고 배제, 매도하는 현실은 정말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사회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북한 당국과 북한의 김일성 전 주석은 물론, 중국공산당도 그를 공산주의자라고 평가하거나 매도하는 사례가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북한의 김일성은 그의 회고록에서 “쏘련의 원동지방을 무대로 한동안 정열적인 독립운동을 전개해온 홍범도, 리동휘, 려운형 등은 민족해방운동에 대한 지지를 얻기 위해 레닌과도 상봉하였다. 연해주지방에서 조선독립운동자들이 벌린 활동은 (…) 우리나라 민족해방운동 선상에서 무시할 수 없는 흔적을 남기었다고 말할 수 있다”고 서술했다. 홍범도가 독립운동을 위해 레닌을 만났다고 본 것이다. 역시 1935년 8월에 중국공산당은 한인들의 항일투쟁을 고양시키기 위해 “독립군 민족영웅(예를 들면 안중근, 홍범도 등)으로 그들의 민족영웅 사상을 불러일으켜 그들을 추동하고 지도하여 일제와 주구(走狗)를 반대하게 함으로써, 일제와 주구를 고립시켜야 한다”라고 할 정도로 홍범도를 ‘민족영웅’으로 규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일부 논자들은 중국공산당이나 북한에서 민족영웅이라고 하면 오히려 ‘빨갱이’가 아니냐고 오해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홍범도에 대한 이들의 인식은 공산주의자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항일투쟁가, 독립운동가로서의 면모를 주목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 주요 한국독립운동 세력의 정강(政綱)이나 국가건설론 등의 핵심적 내용은 자유민주주의국가 건설이 아닌 사회민주주의국가, 혹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이념과 체제를 절충한 형태였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자유민주주의’ 이념과 시각보다는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건국강령(1941년 11월 공포)과 그 핵심적 개념인 정치·경제·교육 균등 사상을 대한민국의 헌법 가치로 보다 중시해야 할 것이다. 또한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문제도 홍범도를 ‘공산주의자’라고 매도하기보다는 오히려 중장기적으로 남북한과 해외 교민, 동포사회를 아우를 수 있는 통합과 지혜, 포용의 계기로 수용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본다.


장세윤 /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역사연구소 수석연구원

2024.6.11.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