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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 높은 말기돌봄, 의사조력자살 논의에 앞서 해야 할 이야기들

김호성

“어제는 죽을 만큼 아팠고 고통스러웠어요. 하루라도 빨리 나를 죽여줬으면 좋겠어요.” 이 환자는 한달여 전 상급종합병원에서 항암치료를 끝내며 담당의로부터 ‘아무것도 해줄 것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실망한 환자는 집에서 통증으로 고생하다 호스피스 완화병동에 이제 막 입원한 참이다. 보호자들은 환자의 끝을 알기 힘든 통증과 두려움, 우울 호소를 돌보고 때론 견디다보니 정서적으로 심하게 소진됐다. 환자와 보호자는 그런 고통과 패배감에 싸여 호스피스 완화병동을 찾았다.


성루카호스피스병원은 말기 환자라 하더라도 고통을 겪는 것은 당연하지 않고, 한 인간으로서 마지막까지 삶의 질이 유지되어야 한다는 시슬리 손더스(Cicely Saunders)의 20세기 초 현대 호스피스운동 정신에 입각하여 천주교 수원교구에서 설립한 곳이다. 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 종교인, 자원봉사자들로 이루어진 우리 호스피스 완화병동의 다학제팀은 환자에게 해주어야 할 것이 ‘너무도’ 많다. 다학제 회의를 통해 환자의 통증을 포함한 총체적 고통을 평가하고 접근 시기와 방법을 고민했다. 며칠이 지나자 환자의 신체적 통증이 많이 경감되어 일상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배액관이 꽂혀 있어 제대로 씻기조차 어려웠던 무겁고 땀 냄새 나는 몸은 자원봉사자들의 목욕 봉사 덕분에 청결하고 상쾌해졌다. 환자는 이후 편안한 얼굴로 음악요법을 받으며 본인이 힘들었던 이전 이야기를 나누고, 일상의 감각과 감정을 느끼며, 본인 주도로 삶의 계획을 다시 세울 수 있었다. 삶의 질이 좋아진 것이다. 이렇듯 호스피스 완화의료는 다학제팀의 총체적 접근을 통해 말기 환자의 신체적·심리적·사회적·영적 고통을 완화시키고 마지막까지 우리 사회의 구성원임을 느끼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호스피스 완화의료는 말기 암환자만 입원 서비스를 받을 수 있으며 그나마도 말기 암환자 10명 중 3명 정도만 받고 있는 상황이다. 더 나아가 중증 치매, 중증 뇌졸중환자 등의 비(非)암성 질환 환자들은 그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으며 이런 서비스가 있는지조차 모른다.


그로 인해 말기 환자는 마지막까지 끝도 없는 연명치료를 받고, 보호자는 정서적으로 소진되며, 더 나아가 사회적 비용이 소모되고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개인의 고통과 보호자의 어려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심지어 오랫동안 말기 상황이 지속되는 비암성 질환 환자 같은 경우에는 간병으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까지 결부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간병살인’ ‘안락사’ 이야기들이 나오는 것은 어찌 보면 우리나라의 돌봄현실에서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지난 7월 5일 더불어민주당 안규백 의원은 말기 환자에게 의사조력자살을 허용하자는 법안을 발의하였다. 2022년 6월에 연명의료결정법 일부개정안 형태로 발의되었으나 제21대 국회 임기 만료와 함께 폐기되었던 것을 이번에 다시 발의한 것이다. 이전 법안은 수용하기 어려운 고통을 겪는 말기 환자들이 의사의 조력을 받아 자신의 삶을 스스로 종결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더불어 조력자살을 도운 의료진에 대해 형법상 자살방조죄 적용을 배제하는 의료진 보호 조항도 포함되었다. 이 제정안은 의사조력자살을 희망하는 사람은 심사위원회에 신청하고, 이를 심의·결정하기 위해 보건복지부장관 소속 심사위원회를 설치하는 내용을 새로 담고 있다. 더불어 헌법재판소에서도 국내 의사조력자살 허용에 대한 헌법소원 재판을 진행하고 있다. 척수염으로 인한 하반신 마비 환자가 지난해 말 의사조력자살에 대한 헌법소원 심판 청구서를 제출한 것이다. 즉 우리나라도 의사조력자살에 대한 사회적 공론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셈이다.


사실 외국에서의 의사조력자살은 호스피스 완화의료가 사회제도로 잘 정착된 환경에서 회복하기 어려운 환자가 본인의 자기 결정권을 주장하며 공적인 담론화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사뭇 다르다. 비참한 말기돌봄현장에서의 고통과 고민의 탈출구로서 의사조력자살이 불쑥 나온 것이다. 이는 그 배경이 되는 호스피스 제도, 간병 시스템, 노인빈곤율 등 사회적 상황을 눈여겨봐야 한다는 뜻이다. 간병의 어려움과 환자의 고통으로 보호자와 동반자살을 했다는 소식이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에서 노인빈곤율과 자살률이 가장 높은 편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의사조력자살’을 통해 개인의 존엄한 죽음을 논한다면 의사조력자살 제도를 원하는 이들의 애초 예상과는 다른 사회적 결과가 나오리라는 것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선명하다. 


대부분 이들에게 ‘고통이 없는 삶’은 살고 싶고 영위하고 싶은 것 그 자체이다. 고통이 없으면 누구도 그냥 죽고 싶어하지 않는다. 하지만 고통을 어떻게 정의해야 할지,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누구와 이야기를 나누고 대처해야 할지에 대한 사회적 담론은 아직 활발하게 논의되지 않는다. 과학과 의학기술의 발달, 성과와 자본주의 발달에 따른 편의성 속에 개개인의 고통은 의학적 담론 아래로 숨어버렸다. 개개인의 고통을 나누어 짊어지던 공동체의 역할도 사라진 지 오래다. 


이러한 사회 배경에서도 말기돌봄현장을 조금씩 개선하려는 노력은 있다. 다학제팀이 있는 호스피스 완화의료 기관의 질과 수를 늘리고 보호자 돌봄을 대신하는 간병인력제도인 호스피스 보조인력제도를 개선하는 시도가 지속되고 있다. 이는 더 많은 말기 암환자들이 호스피스 완화의료의 혜택을 받으며 삶의 질을 유지한 채 ‘존엄한 죽음’이 아닌 존엄한 ‘삶’을 사는 것을 지지하기 위해서이다. 더불어 말기 암환자들을 주로 보는 호스피스 완화의료 기관뿐 아니라 비암성 질환 환자들의 말기돌봄을 위해서도 크지는 않지만 조그마한 변화들이 생기고 있다. 일정 규모 이상의 병원에 임종실을 의무화하며, 연명의료결정법의 틀 안에 많은 요양병원이 속하게 하여 더 많은 비암성 질환 환자들이 적절한 시기에 연명의료결정을 하게끔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지역사회에서는 재택의료센터가 만들어져 방문 진료를 통해 환자가 살던 집에서 마지막을 보낼 수 있는 여건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사실 의사조력자살 담론은 흔히 이야기하는 개인의 자기 결정권의 보장을 넘어, 늙고 병든 사람들을 한 사회 내에서 어떤 존재로 생각하는지, 어떻게 대우하는지에 대한 ‘성원권’(membership)에 대한 이야기이다. 개인의 실존적 고통을 각 인격의 소멸로 쉽게 해결할지, 아니면 사회 구성원들의 연대를 통해 개인의 고통을 사회 구성원들이 끝까지 함께 나누어 질지에 대한 시민사회의 철학과 사회적 연대의 시험대가 이제 곧 도래할 것이다.


김호성 / 동백성루카병원 진료과장

2024.8.13.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