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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주간논평

신뢰받는 연금개혁이 이루어지려면



정대영

꽤 오래전부터 한국경제에 대한 고민이나 걱정이 사라지고, 대안 논의도 별로 없는 듯하다. 과거에는 경제민주화, 창조경제, 녹색성장, 소득주도성장 등에 대해 활발한 논쟁이 있었다. 지금 한국경제가 평안하고 문제가 없어서일까? 그렇지 않은 것 같다. 한국경제의 주춤거림, 미래 불안 등이 농축되어 나타난 것이 출생률 저하일 것이다. 한국의 출생률은 낮은 쪽으로 세계신기록을 갱신하고 있다. 일부는 국가 소멸까지 이야기한다.


한국경제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일까? 보는 시각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대표적인 특징은 힘있는 계층은 특혜와 과한 보수를 받고, 소득이 낮은 계층은 과도한 시장원리에 내몰리고 있다는 것이다. 국회의원과 지방자치단체장, 대기업 소유자나 경영진, 의사 등 전문직과 교수, 공무원과 공기업의 고위직원 등은 혜택이 넉넉하다. 반면 중소기업 노동자, 영세 소상공인, 비정규직 등은 지원이 턱없이 부족하고 경쟁도 심하다. 두 계층간 격차가 과도하고 불공정하다. 또 특혜를 받는 계층의 보수는 한국경제의 지급능력에 비해 너무 많아 지속가능하지 못하고 다른 부분에 부담을 준다. 특권적 기득권층이 과한 보수를 받으면, 힘들고 어려운 계층이 가져갈 몫이 줄어든다.


이와 같은 불공정과 지속가능성에 대한 의문은 한국경제의 여러 부분에 걸쳐 있다. 대표적인 것이 연금제도일 것이다. 한국의 공적연금은 기초연금, 국민연금, 특수직연금(공무원연금, 사학연금, 군인연금 등) 세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기초연금은 65세 이상 인구 중 소득 하위 70% 정도를 대상으로 월 약 33.5만원을 지급한다. 생계의 기초로서는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또한 소득 하위 70%에 들기 위해 불필요한 노력과 편법이 등장하고, 이를 골라내기 위해 행정력 낭비도 상당하다.


2023년 기준 65세 이상 인구의 50%가 월 60만원 정도를 국민연금으로 수령한다. 국민연금이라는 말과 달리 국민의 절반은 혜택을 받지 못하고, 평균 수령금액도 넉넉지 않다. 특히 국민연금 수령액이 높으면 기초연금이 감액되는 연계제도가 실시됨에 따라 어렵게 보험료를 내고 국민연금을 조금 받느니 기초연금만을 받겠다는 사람이 늘고 있다. 국민연금의 사각지대가 커지는 이유 중 하나이다. 공무원연금의 2022년 수급자는 60만명, 평균 월 260만원을 받는다. 사학연금은 수급자는 적지만 수령액은 더 많다. 다른 연금이나 국민경제 능력에 비해 과도하다. 여기에다 공무원연금은 기금 재원이 바닥나 재정으로 보전하고 있으며, 사학연금도 머지않아 기금 고갈이 예상된다. 한국의 공적연금은 2007년과 2015년 개혁이 있었지만 근본적이지 못했다.


2015년의 공무원연금 개혁 사례를 살펴보자. 당시 공무원연금은 조금 더 내고 조금 덜 받는 방향으로 개혁되어 과도한 혜택은 조금 줄었다. 그러나 소급적용이 어렵다는 이유로 개혁은 대부분 젊은 공무원에게만 적용되었다. 공무원연금을 받고 있거나 곧 받을 사람은 2015년 개혁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다. 게다가 공무원연금이나 국민연금도 종합과세 대상이기는 하나 이는 2002년 이후 발생한 연금에만 해당한다. 마찬가지로 소급적용의 어려움 때문이다. 젊은 공무원들은 앞으로 연금도 조금 받겠지만 세금까지 많이 내야 할 것이다. 엄청난 세대간 불공정이다.


윤석열정부는 오랫동안 연금개혁을 이야기했다. 지난 8월 30일에는 대통령이 직접 기본 원칙을 발표했으며, 며칠 후 몇가지 구체적 방안이 제시되었다. 의지는 강해 보였으나 방향이 잘못된 듯하다. 기초연금과 국민연금만을 개혁하고, 문제가 많은 공무원연금 등 특수직연금은 개혁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공무원연금이나 사학연금처럼 국민연금 지급을 정부가 보장하겠다고 했다. 해야 할 일이지만 실질적인 의미가 없다. 국민연금에 대한 정부의 지급보장이 법에 명시되지 않았다고 해서 국민연금 재정이 고갈되었을 때 지급이 중단될까? 이는 쉽지 않은 일이다. 다만 유럽 재정위기 시 그리스 등의 사례를 보건대 정부의 지급능력마저 없을 때가 문제이다. 아마 이때는 정부의 지급보장 의무가 있는 특수직연금도 지급이 어려울 것이다.


이외에 나이별 보험료 차등 인상, 경제상황 변화 시 국민연금 수령액 감액 근거 마련, 국민연금 납입기간 연장 등이 개혁 방안이다. 일부 수긍이 가는 부분도 있으나, 공정성과 지속가능성 문제가 더 심각한 공무원연금과 사학연금 등 특수직연금이 빠져 미봉책에 불과하다. 2007년 노무현정부의 국민연금 개혁과 별 차이가 없을 것이다. 공무원연금까지 포함하여 연금개혁의 폭을 넓혀야 하지만 현장에서 일하는 공무원들의 밥그릇에 손대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국가 백년대계를 생각한다면 지금이야말로 이루어야 할 때다.


바람직한 개혁 방향을 살펴보자. 공적연금은 나라의 수준에 맞게 가능한 한 다수의 국민에 최저생계비를 보장해야 한다. 현재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의 평균 수령액은 너무 적고, 공무원연금 등 특수직연금은 과도하다. 물론 특수직연금 수령자는 연금보험료를 많이 부담했지만 그보다 혜택이 훨씬 크다. 어떤 직업에 종사했느냐에 따라 공적연금 수령액이 과하게 달라져서는 안 된다. 공적연금은 최종적으로는 모두 재정부담으로 귀속되기 때문이다. 기초연금, 국민연금, 특수직연금을 묶어 연금제도를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한다. 각각의 연금제도를 도입할 때와는 경제상황이 크게 달라졌다. 모든 국민이 기초연금을 받게 하고, 다른 공적연금과 합하여 기초생계비를 넘는 경우 조금씩이라도 연금재정으로 다시 환수하는 것이 기본 방향일 듯하다.


이 방안에 따르면 공적연금을 많이 받고 있는 사람들의 반발이 아주 거셀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진정 젊은 세대에 신뢰를 주는 개혁이고, 연금 기득권층이 자신의 특혜를 내려놓는 길이다. 어렵더라도 해야 한다. 이번에 연금개혁에 실패하면 한국경제는 안녕과 거리가 더 멀어질 것이다.


정대영 / 송현경제연구소장

2024.9.10. ⓒ창비주간논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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