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두 국가론 이후, 한반도의 안정이 가장 중요하다
북한이 예고한 대로 지난 7일 제14기 제11차 최고인민회의를 열어 헌법을 개정했다. 그러나 관심을 모았던 영토조항 신설이 반영됐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해 말 남북관계를 교전 중인 ‘적대적 두 국가’로 정의한 뒤, 올해 1월 헌법개정을 통해 통일, 민족과 같은 표현을 삭제하고 영토·영해·영공을 규정하는 조항을 만들 것을 지시한 바 있다. 즉 김정은 위원장이 밝힌 ‘두 국가론’을 헌법적 차원에서 제도화하기 위해 통일 문구 삭제, 영토조항 신설 등이 있을 것으로 예상됐던 것이다. 관련 개헌이 이루어졌으나 단지 공개를 하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민감한 영토조항 개헌을 미 대선 이후인 내년 초로 미룬 것인지는 좀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 중요한 건 영토조항 신설 이후 남북관계의 안정적 관리 문제다. NLL(북방한계선)과 상충되는 서해 경계선이 선포될 경우 남북간 군사적 긴장 고조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근래 들어 한반도 전쟁위기론이 계속 제기되고 있다. 1990년대 초 북핵 1차위기 당시 북미협상의 미국 대표였던 로버트 갈루치 박사는 2024년 북한발 핵전쟁의 가능성을 경고했고, 북한 핵문제 전문가 로버트 칼린과 시그프리드 헤커 박사는 김정은이 “전쟁에 나설 전략적 결정을 내렸다”는 주장을 편 바 있다. 글로벌 진영화라는 국제정세를 활용해 김정은이 “1950년에 할아버지가 그랬듯이” 한반도 문제에 대한 군사적 해결을 결심했다는 것이다. 또한 미국 외교 전문 저널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최신판은 북한이 한미 군사훈련을 빌미로 서북 도서 포격 및 상륙 이후 전술핵무기를 사용한다는 시나리오까지 제시하고 있다. 북한이 밝힌 적대적 두 국가론을 남한에 대한 핵사용 문턱 낮추기로 보는 해석도 있다. 더이상 동족이 아닌 교전 중인 타국으로 규정해야 유사시 핵무기 사용이 용이해진다는 것이다.
현재 한반도 상황이 암울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상황이 좋지 않을수록 위기의 본질을 바로 알 필요가 있다. 잘못된 안보담론은 위기를 더욱 조장하고 충돌을 촉발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ICBM(대륙간 탄도미사일)은 물론 전술핵 개발을 통해 실전적 핵전쟁 수행능력을 높여가고 있는 건 분명한 위협이다. 여기에 선제 핵사용 독트린까지 공언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군사적 합리성의 관점에서 보면 북한의 핵 독트린은 억제논리에 부합한다. 재래식 전력의 열세에 처해 있는 북한으로서는 전술핵 선제 사용 역량을 갖춰야 억제의 신뢰성을 확보할 수 있고 유사시 대응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비슷한 조건인 파키스탄도 선제 핵사용 독트린을 채택하고 있고, 냉전시대 나토(NATO)도 그랬으며, 현재의 러시아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핵전쟁 수행능력 추구나 선제 핵 독트린만을 놓고 북한의 전략적 의도가 현상타파라고 단정하는 것은 섣부른 판단이다.
한국전쟁의 트라우마로 인해 우리는 아직도 ‘억제의 실패’ 패러다임에 사로잡혀 있는 듯하다. ‘우리의 억제력이 약해 북한이 밀고 내려오지 않을까’ 걱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1950년과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한반도는 오래전부터 쌍방 억제가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어 전면전을 감행하기 어려운 구조로 변해 있다. 북한에는 핵과 미사일이, 남한에는 우월한 재래식 군사력과 한미동맹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주의해야 할 한반도 전쟁위험의 본질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의도하지 않은 확전’이다. 의도된 침략이 아니라 상호 두려움에 사로잡혀 위기를 통제하지 못해 터져버린 제1차 세계대전과 같은 상황에 유의해야 한다는 뜻이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에서는 미래에 대한 비관적 전망과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정치·군사 지도자들을 지배했다. 그러면서 힘으로 상대를 굴복시키겠다는 억제력 경쟁에 몰두했고, 끝내 사라예보 사건이라는 촉발사건이 발생하자 어처구니없는 비극으로 번져갔던 것이다. 히틀러도 없었고 무솔리니도 없었는데 터져버린 대전, 그래서 1차대전은 침략자 없는 전쟁으로 불리기도 한다. 현재 한반도 상황은 1914년 여름의 유럽과 비슷한 측면이 있다. 남북한의 억제력 경쟁이 군사적 실효성은 없이 안보 딜레마만 가중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북한이 두 국가론을 들고 나왔다. 현재 한반도의 현실을 그대로 지적했다는 점에서는 북한의 주장이 맞다. 그리고 상대의 존재를 인정한다는 점에서 남북관계의 안정화에 도움이 되는 측면도 있다. 문제는 ‘적대적’ 두 국가 관계가 아니라 ‘평화적’ 공존관계가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또한 영구분단과 통일 포기는 우리의 노선이 될 수 없다. 그리고 통일로 향하는 과정은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이 규정한 대로 화해 협력이 그 출발이 되어야 한다. 자유통일이 목표라고 평시부터 흡수통일을 외치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독일 통일도 사실상 관여정책의 산물이다. 역사적 순간에 그 기회를 낚아챈 것은 기독민주당(CDU) 콜 총리였으나, 실상 그 토대가 된 것은 사회민주당(SPD) 빌리 브란트 총리 이래 꾸준하게 추진되어온 동방정책(Ostpolitik)이었던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동독의 존재를 인정하며 ‘접촉을 통한 변화’를 추구했던 관여정책이 마지막에 가서 동독정부를 압박하고 동독국민을 움직이는 지렛대가 되었던 것이다.
현재 한반도는 그 반대로 가고 있다. 대북전단 살포와 오물풍선 맞교환이 계속되더니 급기야 평양 상공 무인기 논란까지 벌어지고 있다. 우리 정부는 사실관계를 확인해줄 수 없다고 하고, 북한은 재발 시 참변이 일어날 거라며 반발하고 있다. 이 무슨 위험한 불장난인가? 1차대전 당시 유럽의 지도자들이 특별히 사악하거나 어리석어서 전쟁이 벌어진 것이 아니다. 그들은 어느 순간 상황에 내몰려 참화 속으로 빨려들어갔던 것이다. 유사한 비극이 또 발생해서는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반도의 군사적 현실에 대한 각성이 절실하고, 남북 모두 무모한 기싸움과 억제력 경쟁을 멈춰야 한다. 지금은 무엇보다 남북관계의 적대성을 낮추는 일에 집중해야 할 때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북전단 살포나 무인기 침투와 같은 도발적 행동부터 멈춰야 한다. 현상변경 의도를 노골화하는 자유통일 담론도 바람직하지 않다. 북핵 위협에 대한 실효적 억제와 함께 위기안정성도 도모해야 하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이중과제임을 명심하는 것이 두 국가론 이후 한반도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출발이다.
김정섭 /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2024.10.15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