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벼멸구 들판에 서서 정치를 생각하다
벼멸구가 수확기의 벼들을 삽시간에 초토화시켰다. 9월 초만 해도 푸른 잎 위로 탐스러운 이삭이 너울거리던 들판이 융단폭격이라도 당한 듯 동시다발로 주저앉았다. 벼들이 멍석처럼 둥글게 타들어가는 모양새가 거대한 원형탈모 또는 운석구덩이처럼 보인다. 쪼그려 앉아 벼포기를 들여다보니 밑동에 벼멸구 수십마리가 다닥다닥 붙어 즙을 빨고 있다. 겉으론 괜찮아 보이는 벼들도 밑동은 이미 멸구가 장악한 상태다. 귀농한 지 십수년에 이런 광경 처음 본다. 재난 영화 한복판에 서 있는 기분이다.
벼멸구는 따뜻한 동남아와 중국 남부에서 날아오는 비래(飛來) 해충이다. 5월에 동남아의 벼 수확이 끝나면 멸구는 저기압을 타고 우리나라로 날아온다. 6~7월에 한반도에 당도해 번식하기 좋은 논을 찾아 자리를 잡고 한마리당 300여개의 알을 낳는다. 이 알들이 깨어나 벼멸구 1세대를 이룬다. 7월 하순쯤엔 벼멸구 1, 2세대가 혼재하는데 농민들은 이 시기에 1차 방제를 하여 멸구의 개체 수를 줄이고 번식을 지연시킨다. 8월 초 2차 방제를 하고, 상태를 보아 9월 초 3차 방제까지 하고 나면 기온이 서늘해지면서 멸구의 세력이 약화된다. 10월이면 추수가 시작되고 추위에 약한 벼멸구는 월동하지 못하고 사라진다. 대체로 그러했다.
올해는 상황이 다르다. 뜨겁고 긴 여름이 9월까지 이어지면서 3세대 알과 약충이 출현했고 2, 3세대 개체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벼포기를 한순간에 주저앉혔다. 뒤늦게 4차, 5차 방제를 해봐도 한계가 있다. 드론으로 안개 분사한 약은 위쪽의 볏잎과 이삭을 적실 뿐이고, 경운기에 약통을 싣고 논에 호스를 끌고 들어가 약을 뿌리는 일은 70, 80대 고령의 농부들에게 너무 힘든 일이다. 농약은 수확 전 15일 이전까지 뿌리는 게 원칙이다. 수확에 임박해 약을 뿌렸다가는 추수한 벼에서 잔류농약이 검출돼 수매도 못하고 벼를 폐기하게 된다. 그럴 바엔 차라리 조기수확을 하는 게 낫다.
조기수확을 한들 쌀이 성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벼멸구가 수액을 빨아 먹은 벼의 이삭은 겉보기엔 괜찮아 보여도 건조와 도정 과정에서 부서져 날아가거나 상당량이 싸라기가 된다. 콤바인 비용과 건조비, 도정비 등을 제하면 남는 게 없다. 농림축산식품부가 미적거리다 농업재해로 인정하긴 했지만 한정된 예산 범위 내 지원액은 정상 소출 수익의 반이나 될까 싶다. 게다가 재해 지원 대상에겐 기준치 이상의 피해율, 호우 피해면적 제외, 방제 노력 증빙 등등 여러 요건이 까다롭게 붙는다.
벼멸구 대폭발의 배후에는 과학자와 환경운동가들의 간절한 경고에도 대다수가 당장 도래하지 않을 것처럼 외면해온 기후위기가 도사리고 있다. 날씨와 기온과 다양한 생물들의 순리에 기대어 살 수밖에 없는 농민들은 이상기후의 빠른 감지자이자 그 직격탄의 희생자가 된다. 문제는 이 이상기후가 일회성으로 끝날 리 없다는 것이다. 해를 거듭할수록 재해는 일상화되고 피해양상도 예측이 어렵고 규모도 점점 커질 것이다. 기온이 점점 오르고 겨울이 짧아지면 월동 못하던 해충들도 우리나라에서 겨울을 날지 모른다. 동남아에 살던 벼멸구가 한반도에 정착하게 된다면 농업은 또 어떻게 변할까.
언론에서는 전혀 주목하지 않았지만 눈여겨볼 현상이 하나 있다. 벼멸구가 급속도로 확산되던 9월 하순, 남편은 매일같이 아홉배미 논을 돌며 벼멸구 피해가 있나 없나 눈을 부릅뜨고 살폈다. 주변 논들이 동시다발로 시커멓게 주저앉는 와중에도 논둑 하나를 사이에 둔 우리 논 아홉배미는 각각 모두 무탈했다. 무사한 건 우리 논만이 아니었다. 친환경단지 내의 논들도 모두 멀쩡했다. 유기농 농사를 짓는 지인들에게 전화를 돌려 “멸구 피해 없느냐?” 물으니 하나같이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우리 논엔 멸구 안 왔어.” 이쯤 되면 우연이랄 수 없다.
“왜 유기농 논에 멸구가 안 오죠?” 만나는 사람마다 붙잡고 물었다. 다양한 대답들이 나온다. “친환경 논에는 거미가 많아서 그래. 거미는 멸구 천적이니까.” “유기농 토양엔 미생물이 살아 있어서 벼의 면역력이 좋거든.” 정미소 앞에서 마주친 농부는 한마디로 정리하신다. “요소 비료 때문이야!” 요소 비료는 대부분의 관행농에서 사용하는 질소질 화학비료다. 질소질은 작물을 빨리 키우고 잎을 부드럽고 왕성하게 만들어 열매를 많이 맺히게 한다. 부드러운 줄기와 잎은 벌레들에게 손쉬운 먹잇감이다. “유기농 벼는 볏대가 단단해. 멸구가 안 먹어.”
전라남도농업기술원에 전화해 이 세가지 의견(거미, 미생물, 질소질)의 타당성을 물었더니 시원한 답이 돌아왔다. “셋 다 맞습니다. 유기농 논을 벼멸구가 회피하는 현상에는 확실한 근거가 있어요. 실험으로 검증된 사실입니다. 특히 질소질 비료를 많이 쓴 벼는 잎집이 무르고 전분이 많아서 당이 많아요. 벼멸구는 단맛을 좋아합니다. 유기질 퇴비에는 질소질이 적어서 벼 줄기가 뻣뻣하고 단맛이 없어요. 다만, 유기재배도 퇴비를 과하게 써서 무성하게 재배하면 충해를 입고 일반재배도 질소질 비료를 억제하면 벼멸구 피해를 줄일 수 있습니다.”
유기농 논을 벼멸구가 피해갔다는 사실에서 나는 기후위기 시대 농업의 작은 피난처를 본 듯하다.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고 땅과 벼가 서로 힘을 북돋는 농사를 모색하는 일은 닥쳐올 위기의 폭풍을 견딜 자가면역의 닻이 될 수 있을까. 하지만 현재로선 섬처럼 외로운 이야기다. 우리나라 친환경 농지 면적은 4.8%다.
결국 문제를 풀어야 할 영역은 정치다. 농림축산식품부는 농민들에게 이른바 ‘탄소중립’ 농법으로 농축산 분야의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라 한다. 우리나라에서 농업 부문이 배출하는 온실가스는 국가 전체 배출량의 3.2%다(그외 에너지 86.9%, 산업공정 7.6%, 폐기물 2.4%). 농경지 경운 시 배출되는 탄소는 지적하면서 엄청난 양의 수입 농산물 수송, 가공, 유통 등으로 배출되는 온실가스는 언급하지 않고(우리나라 곡물 자급률은 18.5%다) 축산에서 배출하는 메탄과 아산화질소가 문제라면서 매끼니 대량의 고기를 소비하는 식문화는 문제 삼지 않는다. 다수의 농민이 화학비료와 살충제를 쓰면서 농사짓는 이유는 빛깔 좋고 탐스럽고 벌레 구멍 없는 농산물을 소비자들이 원하기 때문이다. 비료와 농약, 동물 사료 생산에도 온실가스가 배출된다. 사회는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고 농민은 외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근본적인 전환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는데 그 일을 해야 할 정부 관료들은 이런 문제에 관심이나 있는지 모르겠다.
인류는 지구를 망가뜨리는 방향으로 질주해왔고 파국이 눈앞에 보이는데도 브레이크를 밟지 않는다. 가장 약한 고리부터 희생시키며 어디까지 달리려는 것일까. 이런 이야기조차 누굴 향해서 해야 할지 몰라 허탈하고 막막하다. 당장 내 일신상에 고통이 닥치지 않으면 지금까지 누려온 편한 관성에 얹혀 살아간다. 점점 뜨거워지는 냄비 속 개구리처럼, 두려움을 무시하며 그런대로 태평하게. 자연의 경고가 시작된 지 이미 오래이나 우리는 눈앞에 재앙이 닥쳐야만 비로소 발을 구른다. 과연 우리는 스스로 멈출 수 있을까?
김혜형 / 작가
2024.10.29. ⓒ창비주간논평
사진: 김혜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