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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칼럼] ‘변혁적 중도’의 때가 왔다



백낙청

백낙청TV 시청자 여러분, 창비주간논평 독자 여러분, 나라의 주인인 시민 여러분. 새해 인사를 드립니다. 희망을 가득 안고 다가오는 2025년에 복 많이 받고 많이 지으시기 바랍니다.


변칙적 사태의 엽기적 종말


윤석열정권이라는 변칙적 사태가 엽기적인 종말을 고하고 있습니다. 물론 아직 완전히 끝나지는 않았습니다. 내란의 우두머리가 탄핵으로 직무정지는 되었으나 여전히 대통령 자리에 있습니다. 어떻게든 버티면서 빠져나갈 꼼수를 궁리하고 있지요. 하지만 저는 대세가 바뀌리라는 염려는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윤석열의 돌발적 망동에 반대해 궐기한 것만이 아니고 촛불혁명의 힘찬 재출범을 목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애당초 윤석열의 집권은 촛불혁명 이전 87년체제가 정상적인 작동을 하는 가운데 이루어진 정권교체와는 질적으로 다른 사건이었지요. 87년체제가 실질적으로 수명을 다했지만 촛불시민들의 요구에 부응할 새로운 체제가 난산을 겪는 와중에 벌어진 일시적 일탈이었던 것입니다. 이런 일탈을 국민들이 5년 내내 감수했다면, 촛불혁명은 실패로 끝나고 87년체제보다 더 나쁜 체제를 향한 저들의 숙원이 달성되었겠지요.


하지만 우리 국민이 어떤 국민입니까. 깨어 있는 시민들이 다시 들고일어선 이상 저들의 도전은 누구 말처럼 ‘중과부적(衆寡不敵)’입니다. 게다가 오늘의 시위군중은 숫자만 많은 군중이 아닙니다. 그들이 이재명이든 그 누구든 특정인의 지휘를 따르는 건 아니지만, 정치권이 바닥의 외침과 에너지를 차단하던 2016~17년 대항쟁기와 달리 시민들의 외침이 국정운영에 반영될 길이 활짝 열린 상태입니다.


‘촛불’의 진화와 전진


‘변칙적 사태’를 겪는 동안에도 촛불혁명은 진행 중이었고 진화하기조차 했음이 바야흐로 입증되고 있습니다. 12·3 이래의 폭발적 시민행동은 대항쟁의 연장선에 있으면서도 단순한 ‘리바이벌’은 결코 아닙니다. 규모와 열기는 그때와 방불하지만 주력부대가 오히려 102030세대로 바뀌었고, K팝 응원봉의 대거 등장이 보여주듯이 시위방식에도 의미심장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항의집회를 곧 축제의 현장으로 만드는 것이 2000년대 이래 우리가 발전시켜온 시위문화인데, 이번에는 K팝과 「임을 위한 행진곡」이 함께 울려퍼졌습니다. 농민들의 트랙터 상경투쟁을 가로막는 경찰의 차벽을 시민들이 달려가 무너뜨린 ‘남태령 대첩’에서는 「농민가」와 아이돌의 노래들이 번갈아 불러졌습니다. 노벨상 수상작가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를 들고 나온 시민들도 있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걱정해온 세대간·계층간 단절이 상당부분 치유됨과 동시에 K팝과 K문학, K민주주의의 자연스러운 결합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윤석열의 기괴함은 제가 여러차례 강조해온 분단체제의 괴물성을 너무나 역력하게 집약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괴물스러움이 윤석열 부부 또는 그 일당만의 것은 아닙니다. 분단체제 속에 오래 살아온 우리 각자의 마음속에 크고 작은 괴물 하나씩이 도사리고 있었기에 그런 폭주가 가능했던 것이지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저들의 탐욕과 독단성, 자기중심적 망상이 우리시대 많은 사람들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지 않았다면 애당초 윤석열이 당선되지 않았을 테고 일당의 완전 퇴치가 이토록 힘들지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내란 일당에 대한 처벌도 우리 자신을 바꾸는 과정을 겸해야겠습니다. ‘우리 모두가 죄인인데 누가 감히 먼저 돌을 던지랴’는 가당찮은 논리가 아니라, 사람을 미워함이 없이 그의 불의한 행위를 철저히 다스리는 기술—이라기보다 심법(心法)—을 훈련해야 하는 것입니다.


원불교의 창시자 소태산 박중빈 선생의 언행록인 『대종경』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선한 사람은 선으로 세상을 가르치고, 악한 사람은 악으로 세상을 깨우쳐서, 세상을 가르치고 깨우치는 데에는 그 공이 서로 같으나, 선한 사람은 자신이 복을 얻으면서 세상 일을 하게 되고, 악한 사람은 자신이 죄를 지으면서 세상 일을 하게 되므로, 악한 사람을 미워하지 말고 불쌍히 여겨야 하나니라.”(요훈품 34장) 그렇습니다. 미워함과 성냄에서 벗어난 마음으로 사람이 아닌 그의 행위를 엄정히 처벌하는 것이야말로 새 시대의 공부법입니다. 그것은 또한 상처받은 내 마음을 치유하는 가장 효과적인 길이기도 하지요. 공부가 부실한 집권자들이 마음공부와 무관한 정치검사들에게 ‘적폐청산’을 맡긴 것이 문재인정부 실패의 시작이자 오늘의 환란을 초래한 원인이었습니다.


변혁과 중도를 다시 말할 때


그런데 개인의 심법 훈련을 넘어 우리는 촛불혁명의 놀라운 전진에 부응할 정치를 고민할 일에 직면했습니다. 개인들의 각성을 묶어 새세상을 만들어갈 이념과 사상을 공유할 필요가 절실해진 것입니다. 돌이켜보건대 우리 시민들의 영웅적 투쟁과 엄연한 역사적 성취에도 불구하고 6월항쟁 이후 퇴행과 좌절을 거듭 맛보던 끝에 드디어 윤석열 집권이라는 재앙까지 겪은 것이 우리 현대사입니다. 저는 이런 역사에 우리 사회의 사상적 빈곤이 적지 않게 기여했다고 판단합니다.


6월항쟁 직후에 제가 주문한 것도 바로 새로워진 시대에 부응할 새로운 노선의 정립이었습니다. 「통일운동과 문학」이라는 글의 제4절 ‘유월 이후를 보는 시각’(『창작과비평』 1989년 봄호)에서는 항쟁을 이끌어온 세개의 주요노선, 곧 당시 표현으로 ‘부르주아민주주의(BD)’ ‘민족해방(NL)’ ‘민중민주주의(PD)’ 들이 그 어느 것도 새시대의 국정운영을 감당할 만한 것이 못된다는 인식을 피력했습니다. 쉽게 말해, 군사독재 이전의 문민통치를 회복하는 것에 만족하는 자유민주주의, 통일열망은 뜨겁지만 분단현실의 실상을 통찰하지 못하는 비현실적 통일론, 그리고 남한사회만의 민중혁명을 꿈꾸는 또 하나의 단순논리가 민주화를 일단 성취한 시대에는 하나같이 안 맞고 각자가 환골탈태하면서 3자의 창조적 결합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었지요. 당시는 저 자신 ‘변혁적 중도주의’라는 개념에 착안하기 전이었습니다. 그걸 정면으로 내건 것은 한참 뒤의 일이지요(졸저 『한반도식 통일, 현재진행형』, 창비 2006, 제4장 ‘덧글: 변혁적 중도주의와 한국 민주주의’). 이후 『어디가 중도며 어째서 변혁인가』(창비 2009)라는 저서를 냈고 최근에는 이 책을 갖고 백낙청TV에서 토론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요컨대 ‘창조적인 3결합’이 이루어진 변혁적 중도주의가 아니고서는 시대적 과제를 담당할 수 없다는 주장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담론지형이 그사이 많이 변하고 다양해졌지만 변혁적 중도에 미달하는 담론들이 여전히 판을 주름잡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변혁적 중도주의는 나름으로 엄격한 개념입니다. 그럴듯한 두 낱말을 그냥 연결시킨 거라면 일종의 자가당착일 수 있지요. 그러나 ‘변혁’은 한반도체제의 변혁이고 ‘중도’는 이를 달성하기 위해 국내의 온갖 단순논리를 넘어서는 중도세력을 확장하자는 것이기에, 변혁과 중도가 상충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다만 대중적인 정치구호가 되기에는 생소한 표현임을 자인하면서 그 대중적 전파나 활용에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작심하고 그 문제를 제기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6월항쟁을 이끈 운동권 인사들이 정치에 입문하면서 87년체제를 더 나은 체제로 신속히 바꿔놓지 못한 것도 변혁적 중도 공부에 무심했던 탓 아닐까요? 예외가 있었다면 오히려 구세대의 정치인인 김대중 대통령이었지 싶습니다. 그는 자유민주주의에 사민주의를 일정하게 가미하는 동시에 남북의 화해협력을 통해 일찍이 우리가 못 가본 새 길을 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변혁적 중도를 정면으로 제기하고 이행하기에는 당시의 정치지형이 워낙 불리했고 스스로 집요한 색깔론 공세에 줄곧 시달리는 처지였습니다. 


새로워진 대중의 욕구


2016~17년의 촛불대항쟁 때도 변혁적 중도가 별로 논의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현장에서 드러난 대중의 욕구는 분명히 종전과 달랐지요. 1980년대 이래의 낡은 언어는 촛불군중의 냉대에 마주치기 일쑤였고, 시위현장에서 대중이 내놓은 갖가지 창의적이고 곧잘 익살이 넘치는 구호들은 새로운 감수성의 대두를 알리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후 촛불정부를 자임한 대통령이나 주변 인사들은 여전히 변혁적 중도론에 무심했습니다. 저는 문재인정권의 실패가 그 주체세력의 사상적 빈곤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윤석열의 내란을 진압하고 나선 2024년의 시위에서는 대중의 변화된 정서와 욕구가 더욱 두드러집니다. 스스로 역사의 주인이며 항쟁의 주력부대임을 자처하는 젊은이들의 ‘나라다운 나라’를 향한 애타는 열망을 이제 종래의 어떤 고정된 이념으로도 충족할 수 없음이 분명합니다. 어떤 걸출한 정치지도자나 저보다 성능이 좋은 스피커를 가진 논객이 나서서, ‘그대들이 열어가고 있는 길이 바로 변혁적 중도다, 우리 함께 걸어서 그 길을 넓히자’라고 조리있게 설명해준다면 ‘아 그렇지, 맞아! 그럽시다!’라고 호응할 대중이 도래해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종래와 다른 언어는 어느 특정 지도자나 개인이 아니라 학자, 예술가, 언론인, 활동가 들이 함께 연마할 과제입니다. 이는 각 개인과 집단의 진지한 자기성찰을 요합니다. 저 자신 오랫동안 시민운동에 직접 몸담거나 응원해온 사람으로서 시민사회단체의 활동가들도 반성할 것이 많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각기 맡은 분야에서 이 사회의 온갖 비리와 싸우는 과정에서 활동가 나름의 타성에 젖어든 면이 있는 것 같아요. 이재명 대표가 바꾸어놓은 민주당을 또 하나의 ‘보수정당’에 불과한 것으로 치부함으로써 자신의 ‘진보성’을 과시한다거나, 시민단체 회원들보다 민주당의 권리당원이 훨씬 많아진 상황에서 여전히 시민사회단체 활동만을 시민운동이라고 고집하는 경향도 있습니다. 촛불혁명이 그간의 온갖 분파주의를 넘어 ‘변혁적 중도’로 힘을 모으는 판국임에도 자신들만의 의제와 기준에 집착하여 기운을 빼는 사례도 없지 않습니다. 


촛불혁명에 불리한 주변상황과 세계정세


우리는 촛불혁명이 세계에서 드물게 만나보는 민주혁명이요 평화혁명이라고 자랑합니다. 과연 자랑할 만하지요. 그러나 바꿔 말하면, 이 혁명은 오늘의 세계에서 다분히 고립된 현상이라는 이야기가 됩니다. 적대적인 세력과 불리한 여건으로 둘러싸였다는 뜻이지요.


남북관계는 최악의 상태입니다. 변혁적 중도의 ‘변혁’은 한반도 분단체제의 해소이기에 이 핵심적 과업에 진전이 없으면 국내 개혁도 큰 진도를 내기 어렵습니다. 물론 남북관계의 개선과 국내의 개혁작업이 맞물려 있다고 해서 양자가 항상 발맞추어 진행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느 부분에서든 가능하고 시급한 문제부터 먼저 풀어나가면서 한반도의 점진적·단계적·창의적 재통합을 추진할 일입니다. 그러나 어쨌든 지금처럼 남북대결과 긴장이 극에 달하고 북측 당국이 대한민국을 주적(主敵)으로 간주하는 상황이 지속된다면 분단기득권 세력에 반격의 빌미를 줄 수 있습니다. 12·3 내란의 주동자들이 어떻게 해서든 남북간 충돌, 심지어 전쟁을 일으켜보려고 얼마나 치떨리게 노력했습니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당과 인민의 빈틈없는 일치를 신봉하는 체제이기 때문에 그들이 말하는 ‘대한민국것들’과 자신들을 그토록 적대시해온 윤석열 일당을 동일시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남쪽 시민들의 분발로 윤석열이 퇴출당하는 역사가 이루어지면 한국민에 대한 적개심이 한결 누그러질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평양당국이 남북관계를 ‘국가 대 국가’ 관계로 전환하겠다는 방침이 쉽게 바뀌지는 않겠지요. 그러나 제가 한평아카데미 강의와 후속 기고문에서 주장했듯이 국가연합을 우선과제로 설정해온 우리 남쪽의 입장에서 이는 오히려 환영할 대목입니다(백낙청TV ‘초청강연 002’ 「분단체제극복과 한반도식 나라만들기」, 2024.5.; 졸고 「한반도정세의 새 국면과 분단체제」,  『창작과비평』 2024년 가을호). 왜냐하면 남북연합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국가 대 국가의 연합이기 때문이죠. 그렇더라도 평양당국이 우리의 변혁적 중도 노선에 합류하기를 기대하는 건 무리지요. 다만 분단체제극복이라는 우리의 노력은 훨씬 안전한 상황에서 한층 유연하고 풍성한 방식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열릴 것입니다.


세계정세로 말하면 그간 미국을 비롯해서 민주주의 선진국으로 알려진 대다수 국가들에서는 민주적 제도들이 거의 회복불능 상태로 훼손되었고 대중의 정치참여는 ‘우파 포퓰리즘’의 형태를 띠기 일쑤입니다.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중국 같은 나라도 세계 민중에게 사상적인 지표가 되기 힘든 형국입니다. 경제적 환경 또한 2017년 촛불대항쟁기와 비교하여 몹시 열악합니다. 윤석열정부가 망가뜨린 경제와 민생을 되살리는 것이 누가 집권하든 급선무인데 세계적으로 경기가 8년 전보다 훨씬 저조할뿐더러 미·중 갈등의 격화로 한국의 입지는 날로 좁아지고 있습니다. 촛불혁명의 고립이 실감되는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고립에는 선구자의 고립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정부당국이나 기득권층이 아닌 대중에 대한 촛불혁명의 전염력은 이미 만만찮아서 그 선구적 위상을 인정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최근의 시위군중이 K팝 응원봉을 들고 나옴으로써 그 전염력은 극도에 달했다고 봐야지요. 전세계 한류 팬들의 동류의식을 촉발함과 동시에, ‘잘 놀며 잘 싸우는 게 진짜 잘사는 길이구나’ 하는 각성마저 안겨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명심할 일이 또 하나 있습니다. 한국의 촛불시위는 21세기 들어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동학의 혁명적 가르침도 본질은 평화주의였고 동학도들이 벌인 교조신원(敎祖伸冤) 운동은 평화적인 대중항쟁의 선구적 사례였습니다. 3·1혁명 역시 비폭력이 원칙이었음은 알려진 사실입니다. 물론 민중이 아무리 평화혁명을 하려 해도 갑오년의 동학농민전쟁이 그랬고 3·1도 일부 그랬듯이 정권의 야만적 탄압에 뒤따르는 무력충돌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동학혁명과 3·1운동에서 흘린 피와 이후의 독립운동, 민중운동 들의 값진 희생이 쌓여, 적어도 87년 이후의 한국에서는 평화적 항쟁을 정부가 함부로 짓밟기 힘들어졌고 오늘날 우리의 촛불혁명이 전세계 민중의 가슴을 울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희망 가득한 2025년은 결코 빈말이 아닙니다. 모두들 건강하시고 열려오는 새세상의 온전한 주인이 되십시다. 




백낙청 / 서울대 명예교수, 『창작과비평』 명예편집인

2024.12.30.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