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창작과비평

창비주간논평

산불 키우는 산림청, 숲에서 답을 보라



홍석환

지난 1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지구 역사상 가장 큰 재산 피해를 불러온 대형 화재가 발생했다. 산불 발생 5일 만에 여의도 면적(290헥타르)의 약 35배가 불탔고, 8일째에 16,000헥타르가량의 면적이 초토화되었으며, 우리나라 1년 정부 예산의 3분의 1에 달하는 재산 피해를 가져온 재난이었다. 무려 1만채 이상의 건축물이 불탔으며 인명피해 또한 심각했다. 그간 사례로 비추어 예상컨대 산림청은 LA 산불을 추가 예시로 들며 기존과 똑같이 예산을 청구할 것이다.


“LA가 불탔으니, 우리도 불탈 수 있다. 예산이 많이 들더라도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기후변화는 이제 먼 나라의 얘기가 아니다. 그러니 우리에게 사전 예방을 위해 예산을 달라”


산림청이 청구하는 항목들은 언뜻 보면 그럴싸하다. 그러나 그 청구서에 적시한 대안에는 ‘검증’이 빠져 있다. 전형적인 ‘공포 마케팅’일 뿐이다. 막대한 세금은 허공으로 사라지고 재난 위험은 더욱 커지게 된다. 이 과정에서 언론, 중앙행정기관 및 지방정부, 국회의 달콤한 합작이 일어난다. 예산만이 재난을 타개할 유일한 방법인 양, 사업의 타당성이나 과학적 검증은 없이 오직 막대한 세금 투입을 일사천리로 제안·의결·집행한다.


LA와 유사한 사례가 불과 2년 전에 우리나라에도 있었다. 2023년 강릉에서 발생한 대형 화재가 가장 최근에 발생한 유사 사례인데, 대규모 화재가 마을 인근 야산과 경작지, 골프장 등을 지나면서 주변 주택지와 펜션가를 불태웠다. 불행 중 다행히도 바람이 동쪽으로 불어 빠르게 이동하던 화마가 동해바다를 만나 더이상 전진할 수 없었고, 때마침 내려준 단비가 천운이 되었을 뿐이다. 만약 바람이 남쪽으로 향했다면 그 결과는 끔찍한 수준으로 펼쳐졌을 것이다.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는 그런 불이었다.


반복되는 이런 대형 화재 이후에는 늘 정부 예산이 폭탄처럼 쏟아진다. 기후위기 시대에 대형 화재는 언제든 발생할 수 있으니 미리 대비해야 한다? 좋다. 하지만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화재는 예산 투입 이후에 더욱 커지고 있다. 게다가 우리를 둘러싼 일본과 중국, 북한은 최근 들어 산불이 급감하고 있다. 그냥 감소가 아닌 말 그대로 ‘급감’이다. 그런데 왜 그 가운데에 위치한 우리나라만 산불이 급증하고 대형화될까? 이들 나라는 우리와 달리 산림에 세금을 쏟아붓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우리나라 산불의 대형화 원인이 기후변화 때문이라는 주장은, 신이 유독 대한민국만 미워해서 기후위기라는 형벌을 주변국을 제외한 우리에게만 내린다는 주장과 같다. 여기서 살펴봐야 할 점은 명백해 보인다. 왜 예산을 쓰면 쓸수록, 대비를 하면 할수록 화재는 더욱 커지는가에 대한 의문이다.


불을 가장 잘 알고, 가장 잘 끄는 기관은 소방청이다. 그런데 유독 우리나라에서는 대형 화재가 발생하면 불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산림청이 소방청을 지휘한다. 화재 이후에도 모든 예산은 산림청에 집중되고, 산림청의 산불예방 대책은 앵무새처럼 반복된다. 대형 헬기의 도입, 특수진화차량의 도입, 임도 조성, 숲가꾸기가 대표적인 대책이자 전부다. 어느 하나 검증된 것이 없는데도 그들은 이 대책을 고수한다. 대규모 예산을 확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 생각하는 모양새다.


효과가 있었을까? 하나하나 상식적으로 들여다보자. 우선 헬기의 확대에 대해 살펴보자. 산불의 확산은 강풍과 직결된다. 바람이 조금이라도 강하면 헬기를 운용하지 못한다. 실제 2023년 강릉 산불 당시에도 헬기는 뜨지 못했다. 강풍이 불지 않을 땐 소용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다. 헬기가 출동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아무리 짧게 잡아도 최소 한시간 이상이다. 한시간이면 수십대, 아니 수백대의 헬기가 동시에 출동해도 불을 끌 수 없는 상황으로 번질 만큼 충분한 시간이기에 초동 대응은 이미 물 건너간 상태다. 진화를 위해 가용한 헬기가 산림면적 대비 우리의 6분의 1도 안 되는 일본에서 최근 대형 산불이 거의 사라졌다는 것은, 헬기가 대안이 되지 않는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둘째, 임도 조성과 특수진화차량 문제다. 산불이 발생하면 뜨거운 곳은 무려 온도가 1,000℃ 가까이 올라간다. 여기에 차량이 들어간다고? 불가능한 일이다. 실제로도 산불이 발생하면 임도로 차량이 가지 않는다. 이미 불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나 잔불 정리차 들어갈 뿐이다. 초동 진화하고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즉 막대한 예산으로 임도를 늘려 진화차량을 투입하고자 해도, 그것이 산불 방어선 역할을 하리라는 주장은 신뢰하기 어렵다. 믿지 못하겠다면 2023년 강릉 산불지역의 도로현황을 살펴보길 바란다. 임도도 아닌, 포장도로가 그물망처럼 놓여 있다. 이곳의 도로 밀도는 산림청이 2030년 목표로 하는 임도 밀도보다 이미 30배나 높다. 도로에 의해 조각난 곳으로, 산림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할 정도로 파편화된 모습이다.


셋째, 숲가꾸기 문제다. 숲가꾸기란 탈 것을 줄이면 산불이 작아진다는 논리로 나무를 솎아베기하고 어린 식생을 베어내 숲의 밀도를 낮추고 인공조림을 하는 정책이다. 그런데 살아 있는 활엽수는 아무리 강한 불이 발생한다고 해도 불타지 않는다. 고로쇠나무의 수액을 채취하는 시즌이 우리나라 대형 산불 시즌과 겹치는 것을 보면 된다. 물에 젖은 종이도 타지 않는데, 하물며 흠뻑 젖은 나무가 잘 탄다? 믿을 수 없는 말이다. 그래서 우리 숲에 살아 있는 활엽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불이 커지지 않고 되려 작아진다. 물을 충분히 머금은 활엽수가 화마의 방패 역할을 하기 때문에 그렇다.


산림청 연구보고서는 우리 숲이 어떻게 발달할 것인지 ‘과학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우리나라 기후대는 강수량이 많은 온대지역에 속하기 때문에 전국 모든 지역에서 활엽수림이 발달한다는 것이다. 인간 간섭이 빠르게 사라진 지금 과학적 예측처럼 우리 숲은 활엽수림으로 급속히 전환되고 있다. 활엽수림 확산이라 할 일인데, 달리 말하면 일명 소나무림 고사가 된다. 그런데 산림청은 지금까지 숲의 변화에 대해 후자의 용어(소나무림 고사)를 강조해 사용하면서, 산불에 취약한 소나무림 유지를 위해 노력해왔다. 자연의 힘으로 확산되는 활엽수림을 수십년간 베어온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 모든 대형 산불 지역에서 확인할 수 있는 공통점이 있다. 소나무림 우점지역이면서, 활엽수 어린나무들을 베어낸 소위 ‘숲가꾸기’ 사업이 진행된 숲이라는 점이다. 대형 산불은 모두 자연의 흐름을 역행하며 세금이 투입된 지역에서 발생했다. 결국 대형 산불은 자연재해가 아니라 세금의 투입으로 인해 발생한, 산림청의 잘못된 정책에 의한 인재에 다름 아니다. 자본주의사회에서 돈만큼 어찌할 수 없는 게 있겠냐마는, 과학적 관점에서의 해결방법은 너무나 간단하다. 숲가꾸기를 멈추고, 숲의 발달을 자연의 흐름에 맡기면 된다. 세금을 아끼면 된다. 이보다 더 쉬운 방법이 대체 어디 있는가?


‘1.5’. 이 숫자는 2015년 유엔기후변화협약총회에서 전세계 195개국이 서명한, 지구 평균온도 상승 억제 목표(1.5℃)이다. 인류의 존폐를 위협하는 숫자인 것이다. 그런데 2024년에 1.55℃가 상승하면서 협정 목표가 무너졌다. 온도 급상승이 현 추세를 이탈해 완화될 가능성은 앞으로 없어 보이고, 올해도 역시나 작년과 같이 ‘불덩이 여름’을 맞이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그렇기에 1.55℃라는 수치는 심각하지 않을 수 없다. 소리 없이 조용히, 그리고 빠르게 이뤄진 온도 상승과는 달리, ‘재난’은 거대하고 요란하게 밀려와 온 세상을 근심에 휩싸이게 한다. 극단적 가뭄과 폭우, 폭염과 한파가 몰아치면서 대형 화재와 홍수, 산사태가 매년 반복되고 있다. 모든 것이 어쩔 수 없는 자연발생적 재난이라 외면하려 하지만, 현실은 우리 스스로 행동한 것들의 반작용일 뿐이다.


홍석환 / 부산대 조경학과 교수

2025.3.11. ⓒ창비주간논평

커버 이미지: 한겨레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