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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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주간논평

한반도 핵무장과 한반도 비핵화 사이에서



서재정

한국에서 사람들이 안전하고 평화롭게 살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오래된 질문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오랫동안 금기시되었던 답안들이 여기저기서 분출하고 있다. 독자적으로 핵무기를 보유해야 한다거나, 그것이 당장 힘들면 잠재력이라도 확보해야 한다는 주장이 정부 안팎에서 대두된다. 미국 에너지부가 한국을 ‘민감국가’로 지정했다는 뉴스는 핵무장 논란을 오히려 정쟁화시키고 있기도 하다. 과연 이러한 답안들이 정답일까?



조선이 핵탄두와 다양한 투발수단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제 아무도 부인할 수 없다.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라는 질문만이 남아 있다. 지금까지의 모범답안은 미국의 확장억제였다. 혹시라도 조선이 한국에 핵무기를 사용한다면 동맹국인 미국이 핵무기로 보복할 것이라는 위협이다. 즉 조선이 핵무기 사용으로 얻을 이익이 무엇이든 미국의 핵보복으로 완전한 파멸을 맞을 테니 수지가 맞지 않는 장사라는 것이다. 미국이 제공하는 ‘확증파괴’의 위협으로 한국의 ‘확증파괴’를 사전에 방지한다는 논리다.



그런데 그 논리가 흔들리고 있다. 단순한 동맹을 넘어선 ‘피의 동맹’, 혈맹 미국이 우리를 이렇게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이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을 지켜주려다가 괜히 뉴욕이나 워싱턴이 조선의 핵공격을 받을 수도 있으니, 그런 ‘확증파괴’ 위험을 감수하겠느냐는 의문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힘을 통한 평화’를 내세운 윤석열정부에서 독자 핵무장론이 터져나오기 시작하더니,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며 당장 미국에 떨어질 이익만을 추구하는 트럼프정부 2.0이 출범한 이후 유사한 주장들이 도처에서 튀어나오고 있다.



“트럼프가 국제질서를 난폭하게 해체하면서 핵확산의 위험이 커지고 있다.” 기드온 로즈(Gideon Rose)가 3월 초 『포린 어페어즈』(Foreign Affairs)에서 진단한 대로다. 그는 핵확산이 서방 진영이 ‘불량국가’로 지목해온 나라들이나 ‘테러집단’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동맹’에 의해 일어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대한민국을 염두에 둔 것이었을까?



사실 윤석열정부는 트럼프정부 출범 이전부터 독자 핵무장론을 유포하고 있었다. 그 발원은 윤석열 대통령 본인이었다. 그는 2023년 1월 국방부·외교부 업무보고에서 “북핵 문제가 심각해지면 전술핵 배치나, 자체 핵을 보유할 수도 있다. 우리 기술로는 이른 시일 내에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발언이 파문을 일으키자 윤대통령은 4월 26일 워싱턴선언에서 “핵확산금지조약(NPT)상 의무에 대한 한국의 오랜 공약 및 대한민국 정부와 미합중국 정부간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에 관한 협력 협정 준수를 재확인”하며 한국 독자 핵무장에서 발을 빼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그 이틀 뒤 하바드대에서 “한국은 핵무장을 하겠다고 마음먹으면 빠른 시일 내에, 심지어는 1년 이내에도 핵무장을 할 수 있는 기술 기반을 갖고 있다”고 다시 핵무장론을 끄집어냈다.



미국 바이든정부는 그해 8·18 캠프 데이비드 한미일 3국 정상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입을 확실히 봉인했다. 3국의 선언에서 “핵비확산조약 당사국으로서 비확산에 대한 우리의 공약을 지킬 것을 서약”한 것이다. 이후 윤석열 대통령 자신은 핵무장 발언을 삼갔지만, 여당인 국민의힘 중심으로 한국의 핵무장론은 오히려 확산해왔다. 특히 여권의 차기 주자로 분류되는 주요 정치인들이 핵무장론에 적극적이다. 김기현과 나경원 의원, 홍준표 대구시장이 독자적 핵무장을 내세우고 있다면, 오세훈 서울시장과 한동훈 전 대표는 핵보유는 아닐지라도 핵잠재력 확보까지는 나서야 한다는 입장이다.



지난 2월 26일 조태열 외교장관은 국회 외교통일위 전체회의에서 자체 핵무장을 검토해야 한다는 김기현 국민의힘 의원의 질의에, 미국의 동의를 전제로 하면서도 “아직은 시기상조인 측면이 있지만 ‘오프 더 테이블(논외)’은 아니다”라고 답했다. 정부의 입이 캠프 데이비드 선언으로 봉해지기는 했지만 여당 국민의힘이 그 속내를 대변해주기도 하고 속내를 드러낼 공간을 열어주기도 하는 모습이다.



이런 상황에서 야당 일부도 핵무장 논의에 부화뇌동하고 있다. 본격적인 핵무장론과는 선을 긋고 있지만 핵무장으로 가는 길은 열어야 한다는 논의가 야권에서도 공론화되기 시작했다. 지난 2월 국회한반도평화포럼에서 주최한 토론회에서 독자 핵무장론의 정치경제안보적 비용을 지적하며 ‘핵잠재력’ 또는 ‘평화적 핵주권’을 대안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도 한 칼럼에서 ‘잠재적 핵능력’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이것이 ‘원자력 평화적 이용범위 확대’와 동전의 양면과 같다고 강조했다(「원자력의 평화적 이용과 핵 잠재력」, 경향신문 2025.3.4).



그러나 핵무장론은 비현실적일 뿐만 아니라 자해적이기까지 하다. 당장 한국에는 핵무기를 만들 원료도 없고, 그 원료를 만들 시설도 없다. 우라늄 농축시설이나 재처리시설을 구축하기 시작하면 핵확산금지조약 위반이 된다. ‘거래주의자’인 트럼프정부와 잘 협상하면 타협을 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희망적 사고를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한국의 핵무장이 미국에 이익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영악한 거래주의자들은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설령 트럼프정부가 눈을 감아준다고 해도, 중국과 러시아, 영국, 프랑스는 어떻게 할 것인가. 국제사회가 제재를 가한다면 한국경제는 순식간에 무너질 것이다. 대한민국은 조선이 아니다. 원자력 능력을 확대하다가 국제사회의 경제 제재를 받아 침체의 늪에 빠진 이란과 비교할 바도 아니다.



핵무장론의 아류인 핵잠재력론 또는 평화적 이용권론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현 상황에서 핵무장은 너무 비용이 크므로 핵무장 능력만을 추구하자고 한다. 하지만 조선은 이미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고, 미국의 핵공약은 믿기 어려운데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능력만 보유하겠다고 하면 국민들이 안심할까? 당장 핵무기를 만들겠다고 하면 핵농축도 재처리도 미국이 허락하지 않을 테니, 평화적 목적으로만 농축도 하고 재처리도 하겠다고 하면 미국이 이를 믿어줄까? 공연히 국민의 불안과 미국의 불신만 키우고 말지도 모른다.



지금 핵무장 논의는 세계의 흐름에도 역행하고 있다. 핵확산금지조약은 1970년 발효된 이후 현재 190개국이 서명했다. 2021년에는 핵무기금지조약이 발효되어 94개국이 서명한 상태다. 핵무기의 확산뿐만 아니라 개발과 생산, 사용과 사용 위협은 국제법상 불법행위가 된 것이다. 현 상황에서 한국이 핵무기 개발을 추진한다면 국제적 ‘불법국가’가 되겠다고 스스로 나서는 꼴이다.



무엇보다도, 작금의 핵무장 논의는 비현실적이어서 위험하다. 객관적 현실은 한국의 군사력이 조선을 압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 국무부의 평가로도 2019년 이미 한국의 국방비는 조선을 10배 이상 압도했다. 국가별 군사력을 평가하는 2025년 글로벌파이어지수에서 한국은 세계 5위, 조선은 34위다. 게다가 한국의 방위산업은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지 않은가. 한국은 압도적인 국방비로 첨단의 군사력을 구비하고도 3축체계 등 더 강화된 군사력을 추진하고 있다.



이 군사력 불균형이 핵위기의 핵심이다. 통상 군사력에 뒤진 조선이 이 불안감을 ‘한방’에 만회하겠다고 핵으로 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무장 논란은 이 객관적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 ‘북핵’만을 강조하여 불안감을 조장하고 있다. 그 불안을 해소하려면 ‘한국핵’이, 그것을 만들 능력이 필요하다고 목청을 높이고 있다.



지금 한국과 조선에 공히 필요한 조치는 더 강한 힘이 아니다. 이미 보유한 힘으로도 서로는 서로를 불안하게 만들기에 충분하지 않은가. 더 센 힘은 더 큰 불안을 초래한다. 상대가 안전하게 느껴야 우리 자신도 불안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핵무장이 아니라, 한반도를 ‘불안 공동체’에서 ‘안전 공동체’로 전환시킬 담대한 비전이다.


서재정 / 일본 국제기독교대 정치·국제관계학과 교수

2025.4.1. ⓒ창비주간논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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