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동동 안동산불, 7일간의 전쟁
안상학
나는 안동의 북부 끄트머리 산골짝 화전민의 아들로 태어나 두살 때 안동 시내로 나와서 줄곧 살았다. 성장해서는 여러 타지를 넘나들기도 했지만 뿌리는 줄곧 안동에 대고 있었다. 환갑을 넘기고도 몇년을 살았지만 이번 산불만큼 충격적인 사례는 전무했다. 아직도 생각만 하면 살이 떨린다.
물론 전조는 있었다. 피해지역이 방대했던 2020년 4월에 발생한 안동산불은 오롯이 안동에서 일어나고 안동에서 스러졌다. 올해 발생한 산불에 비하면 양반이었다. 아닌 을사년 봄날에 안동을 비롯한 경북 북부지역에서 발생한 산불의 명칭도 ‘안동산불’이다. 명칭이 무색하게 발화지역인 의성을 비롯해 청송, 영양, 영덕까지 초토로 만들었다. 모든 산불 기록을 갈아치웠다. 인간의 소방 진화력은 그렇게 혼쭐이 나고도 이번 산불마저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인간의 힘으로는 중과부적(衆寡不敵). 저번에는 역풍을 만나 잠재울 수 있었고, 이번에는 단비를 만나 진정시킬 수 있었다. 하늘이 하는 일에 그저 경배할 수밖에. 두번의 대형 산불은 우리 안동의 이미지에 적잖은 타격을 주었다. 그뿐만 아니라 2021년에도 제법 큰 산불이 있었으니 안동 출신 이육사의 시로 패러디하자면 ‘내 고장 봄날은 산불이 일어나는 시절’쯤으로 해도 무방할 지경이다. 끔찍하다. 이번 산불은 산림은 물론이고 다수의 아까운 목숨까지 희생되었다. 게다가 애지중지 삶터와 일터까지 크게 소실되었다.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번 산불이 난 날은 3월 22일, 발화지점은 의성군 안평면 괴산리 산61번지. 정확히 이 지역은 내가 1986년 봄부터 몇달 동안 아르바이트로 사방사업소 일을 한 곳이다. 민둥산에 조림을 하는 현장의 서기로 있으면서 인부를 관리했다. 아까시나무, 오리나무, 리기다소나무 등을 식재하는 현장을 오르내렸다. 이후 근 사십년 조성된 그 울창한 숲이 이번 산불의 불쏘시개 역할을 한 것이다. 비감하다.
인연 지어서 아픈 사연이 하나 더 있다. 그 발화지점의 동편 산록에 있던 천년사찰 운람사가 전소된 것이다. 십수년 인연 중 어느 한때는 내가 요양을 하며 머물기도 하던 곳이었다. 아름드리 솔숲이 병풍처럼 둘러선 아름다운 절이었다. 내 마음의 시를 쓰기도 했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생각해보면 그 아름다운 솔숲은 잠재적 불구덩이였다. 그 품안에 있었으니 오죽했겠는가.
발화 후 나흘째 되는 날이었다. 시나브로 불이 몇 고개 넘어 의성군 단촌면까지 도달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지인들의 집이 자꾸만 떠올라 이래저래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길을 나섰다. 아직 멀쩡한 김용락 시인의 집이 있는 면소재지를 지나 이영광 시인의 어린 시절이 묻어있는 병방으로 갔다. 심상찮았다. 주민들은 마을회관에 대피중이었다. 소방차가 시인의 고향집 언저리에 진을 치고 있었다. 소방 인력들이 바삐 움직였다. 산 너머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었다. 아직 집이 괜찮은 것을 확인하고는 방해가 될까 싶어 황급히 돌아나왔다.
진정한 사달은 그때부터였다. 오후에 접어들면서 돌풍이 불기 시작했다. 태풍급이었다. 북진하는 바람이었다. 불은 가속도를 붙여 삽시간에 안동 시내로 진격해 들어왔다. 단촌과 인접한 안동시 일직면 권정생 선생 살던 집 마을도 이미 화마가 휩쓸고 지나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권정생 동화나라’도 중요한 것을 정리해서 옮기고 있다는 다급한 소식에 다시 길을 나섰다. 이미 도로는 통제. 안동 시내를 뒤덮어오는 시커먼 동시다발 버섯구름 연기, 매캐한 냄새에 발만 동동 구르며 서 있을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천우신조인가. 저녁 7시쯤 되자 서서히 연기가 동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안동 시내로 봐서는 다행이랄까.
전쟁도 아닌데 대피령이 떨어졌다. 매캐한 연기를 뚫고 집으로 돌아와서 한동안 넋을 놓았다. 무엇을 챙겨서 어디로 길을 나서나. 아무리 돌아봐도 별로 들고 나갈 게 없었다. 노트북, 외장하드에 텀블러 하나, 담배 두갑이 전부다. 나머지는 다 소용없는 것만 같았다.
딱히 갈 곳도 없어 단골 식당으로 갔다. 도시는 온통 연기로 가득하다. 몇몇이 모여 늦은 저녁 겸 한숨 섞인 술 한잔. 바람은 더욱 거세게 불었다. 어느 한쪽이 다행이면 다른 한쪽은 필연코 불행. 불은 동진하는 미친바람을 타고 청송, 영양을 거쳐 끝내는 영덕까지 삽시간에 집어삼켰다. 기어코 동해바다에 떠 있는 몇몇 어선들까지 끝장내고서야 잦아들었다.
7일간의 전쟁이었다. 정작 적은 없는데 사람이 죽고 삶터가 박살나는 전쟁과도 같은 전쟁이었다. 혼이 빠진다는 말을 제대로 경험한 날들이었다. 직접 피해를 보지는 않은 나도 이런데 사람 잃고 집 잃고 사과나무 잃고 공장 잃은 사람들은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을 겪고 있을 것이다. 평생을, 누대를 살아온 고향을 송두리째 잃은 사람들의 심정은 또 말해서 무엇하랴. 원상복구가 가당키나 한 일인가. 애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산불은 필연코 산간마을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아니래도 사람 살기 어려운 곳인데 엎친 데 덮친 형국. 인구소멸 예상지역이 삽시간에 소멸지역으로 변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너무도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한두마디 말을 보탠다고 해서 무슨 소용 있겠냐마는 무엇보다도 공동체 회복에 너나없이 나서야 한다. 사회적 재난이다. 강원지역 산불 피해주민들은 지금 어떠한가. 아직 완전치유 불능상태다. 타산지석 삼아 사회적 공동의 책임을 져야 한다.
안동 사는 죄로 타지의 지인들로부터 안부전화를 많이 받았다. 똑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을 싫어하는 나이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그때마다 나는 무슨 지침서가 있는 것처럼 반복해서 상세하게 설명했다. 다 고마운 일이다.
그중에서도 최원식 선생 이야기 한토막. 가라사대, 가만있으려니 마음이 불편하다며 도울 만한 데 쓰라고, 정 쓸 데 없으면 벗들끼리 술이나 한잔하라며 적지 않은 금일봉을 보내주었다.
용처를 찾았다. 권정생 선생의 고향 마을이자 안동 권씨 시중공파 집성촌인 일직면 광연마을도 불에 탔다. 그 마을에는 권정생의 일가붙이인 해방둥이 권영숙 시인이 있다. 재작년에 집에 불이 나서 어찌어찌 자그마한 거처를 마련하여 홀로 살고 있다. 다행히도 그 집은 살아남았지만 이웃의 여러 집이 소실되었다. 두번의 화재로 마음고생이 자심한 권시인의 손을 거쳐 마을에 최선생의 마음을 전했다.
산불이 났습니다.
산에는 꽃이 피고 새들이 노래하고 봄이 한창인데 산불이 난 것입니다.
꽃샘바람이 불어치며
산불이 이리저리 번져 나갔습니다.
권정생의 그림동화 『엄마 까투리』(김세현 그림, 낮은산 2008)의 도입부다. 딱이다. 을사년 봄날 발생한 안동산불의 자초지종을 설명하려 들자면 꼭 이와 같은 운을 뗄 법하다. 이 동화는 불길을 피해 날아오르지 못하는 꺼병이 새끼들을 두고는 차마 떠나지 못하는, 새끼들을 품에 품은 채 타죽은, 기어코 새끼들은 살려낸 까투리의 모성을 다룬 이야기다. 그런 마음이 절실한 때다.
권정생 선생 살던 집은 용케도 살아남았다. 동네는 산은 물론이고 몇몇 가옥이 소실되었다. 집 뒤에 있는 빌뱅이언덕도 화마를 피할 수 없었다. 선생의 유해가 뿌려진 무덤이나 다름없는 곳. 암반 박토에 힘겹게 생존하고 있는 토종대추나무들이 검게 그을렸다. 살아남기 힘들 것이다. 유난히도 범부채꽃이 많은 언덕. 만약 뿌리가 다치지 않았다면 그들만큼은 올여름에도 한 철 환하게 피어 낮고 다정한 언덕을 수놓을 것이리라 믿는다.
벌써부터 어느 테이블에서는 산림복구에 주판알을 튕기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산림도 산림이지만 삶터 복구가 우선이다. 사소한 마음씀씀이 하나도 아끼지 말고 낼 일이다.
최근 사업을 하는 친구로부터 ‘2025 KOREA BUSINESS EXPO ANDONG’ 참석차 안동에 온다는 연락을 받았다. 대회 차원에서 산불 성금도 냈다고 한다. 그가 보내준 웹포스터에는 붉은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이번 대회는 안동지역 산불피해로 인해 부득이하게 개막식 공연 및 주류 제공이 생략됨을 안내드리오니, 너그러이 양해 부탁드립니다.”
고마운 일이다. 초상집 같은 곳에서 잔치까지는 아니더라도 대회 자체를 취소할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관광할 계획도 마찬가지다. 신영복 서화에서처럼 비를 맞고 선 사람과 함께 할 수 있는 진정한 길은 우산을 접고 함께 비를 맞는 것이다. 산불 피해지역에 남은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는 길은 우선 그 잿더미 위에 함께 서는 일이다.
안상학 / 시인
2025.4.29. ⓒ창비주간논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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