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역사기관 바로잡기, 인사 시스템의 개선이 시급하다
오제연
지난 윤석열정권 3년간 시민들이 받은 답답함과 스트레스, 그리고 고통은 상당했다. 역사학자들 또한 언론에 보도되는 소식 이상의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역사 관련 문제들이 끊임없이 발생했다. 언론의 외면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역사학자들이 각 학회를 중심으로 연합하여 성명서를 발표한 경우도 여러차례 있었다.
최근 민족문제연구소가 제작하여 온라인으로 무료 배포한 『윤석열 정권 3년, 역사쿠데타 기록보고서』는 지난 3년간 발생한 수많은 역사 관련 문제들을 상세하게 잘 정리했다. 아래 제시한 보고서의 목차만 봐도 윤석열정권하에서 우리 사회가 얼마나 혼란하고 심각한 역사전쟁을 치러왔는지 새삼 상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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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강제동원 없었다: 윤석열 정권, 사도광산 세계문화유산 등재 동의
국가폭력 사건의 편파 판정: 진실화해위원회가 진실규명 방해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한 3년이라는 시간 동안에도 정말 많은 문제가 발생했다. 문제의 근원에는 무엇보다 윤석열정권이 역사기관장 혹은 임원을 임명하면서 생긴 논란과 후유증이 자리하고 있다. 흔히 역사 관련 3대 정부기관으로 한국학중앙연구원, 동북아역사재단, 국사편찬위원회를 꼽는다. 그리고 독립기념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한국 근현대사 관련 주요기관이다. 한시적 기구지만 제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원회)도 있다.
윤석열정권이 역사기관장 및 임원을 임명할 때마다, 그들의 전력은 물론 기관 정체성에 반하는 역사부정 행태들이 학계와 시민사회의 거센 반발을 불러왔다. 일제강점기 한국인의 국적이 ‘일본’이라고 주장하고, 오랫동안 친일 행위자로 공인되어온 인사들의 명예회복에 앞장서겠다고 공언하는 사람을 학계와 독립운동단체의 반대를 무시한 채 독립기념관장에 임명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렇게 임명된 역사기관장들은 임명 이후에도 크고 작은 문제를 계속 일으켰다. 진실화해위원회 위원장이 “전시에는 재판 없이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며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을 합리화하는가 하면 그 후임 위원장 역시 국회에서 ‘5·18 북한군 개입설’을 사실상 용인하는 태도를 보여 많은 이들의 공분을 샀다. 그밖에도 여러 역사기관이 세부적인 정책 수립이나 예산 집행 과정에서 상부의 독단으로 갈등과 파행을 경험했다.
더 큰 문제는 대상자들의 전력이나 정치적 성향 이전에 그들이 학문적으로도 해당 기관에 적합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학문적 수준이 높지 않거나 분야가 다른 인사, 심지어 해당 학문과 전혀 관계없는 인사가 대부분이었다. 큰 논란을 일으킨 사람들일수록 전문성이 결여되어 있었다.
지난 12·3 계엄 및 내란 사태 이후 윤석열 탄핵과 파면, 그리고 이재명의 대통령 당선으로 세상이 바뀌었다. 하지만 새 정부 출범 이후에도 역사기관장이나 임원은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 임명 당시의 논란 및 이후의 각종 파행에도 ‘임기 보장’이라는 방패를 앞세우며 모두 자리를 지키고 있다. 주지하듯 이는 비단 역사기관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인권위원회, 방송통신위원회 등 국가기관 상당수의 공통된 문제다.
새 정부에서 윤석열정권의 퇴행적인 역사부정 시도를 극복하고 민주적이고 전향적인 역사정책을 수립, 추진하기 위해서는 우선 역사기관의 인적 쇄신이 선행되어야 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역사기관장이나 임원이 스스로 성찰하고 책임을 지는 일이지만, 사실상 기대하기 어렵다. 그 대신 기관 내부에서 그동안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 자체적으로 점검하고 외부적으로 평가하는 작업을 속히 진행할 필요가 있다.
궁극적으로 역사기관장 혹은 임원 선출의 인사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인적 문제가 확인된다면, 정부뿐 아니라 학계와 시민사회 역시 당사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어야 한다. 역사기관은 학술기관이지만 시민들의 역사인식에 영향을 미치는 공공기관이기도 하다. 따라서 인선과정에서 학계와 시민사회의 목소리를 반영할 수 있는 시스템을 함께 구축해야 한다. 이러한 인사 시스템 정비와 인적 쇄신을 통해 인사혁신을 이루어낼 필요가 있다.
뉴라이트 전력과 같은 논란이 있거나, 기관 정체성에 반하는 역사부정 세력이 기관을 장악하는 일을 막기 위해서라도, 학계와 시민사회의 신망을 받는 사람이 역사기관을 책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권력의 언론장악을 막아내기 위해서 공영방송 인사 시스템에 언론계와 시민사회의 제도적 참여를 보장하려는 ‘방송3법’ 추진과 같은 맥락이다. 구체적으로 정치권의 영향력을 배제한 상황에서 주요 학회나 역사 관련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역사기관 인사추천위원회 혹은 검증위원회 같은 것을 만들어 운영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
역사기관의 인적 쇄신과 인사 시스템 정비는 새 정부의 역사기관 바로잡기의 핵심이 될 수밖에 없다. 이제 막 새 정부가 출발한 것처럼 역사기관 바로잡기도 지금부터 시작이다. 갈 길이 멀다. 윤석열의 재구속에도 아직 내란은 완전히 종식되지 않았다. 역사전쟁도 마찬가지다. 최근 폭로된 ‘리박스쿨’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역사부정 세력의 움직임은 은밀하고 광범하다. 무엇보다 이번 계엄 및 내란 사태를 통해 극명하게 드러난 것처럼 역사부정에 기초한 극우세력의 뿌리는 깊고 단단하다. 역사기관이 이들에게 장악되거나 악용되지 않도록, 궁극적으로 역사기관이 권력의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각자 본연의 역할에 충실할 수 있도록 새 정부가 적극 나서기를 기대해본다.
오제연 / 성균관대 사학과 교수, 『역사비평』 편집주간
2025.7.15. ⓒ창비주간논평
커버 이미지: 한겨레21, 우원식 페이스북 갈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