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다문화 장병, ‘외국인’으로서만 인식되는 ‘우리’ 군인
방혜린
지난 4월, 육군 모 부대 생활관에서 제3국 출생(중국) 탈북민 장병이 투신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중국 태생으로 중국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그는 한국어 의사소통능력이 상당히 떨어졌지만 포병부대에서 무전병 임무를 수행하도록 배치되었다고 한다. 간부들은 한국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임무를 숙달하기 어려운 피해자에게 윽박지르기 바빴고, 동료 장병들은 “짱개” “짭코리아”와 같은 혐오표현을 일삼았다. 벼랑 끝에 몰린 피해자는 어느날 창문을 향해 냅다 도망치다가 2층에서 떨어졌고, 결국 추락 후유증으로 등에 철심을 박은 채 의병제대하였다. 소속 부대 관계자들은 감찰조사에서 피해자가 이 지경이 된 것이 자신들의 책임이 아니라고 답변했고, 그들의 변명은 그대로 감찰 결과에 인용됐다.
피해병사는 한국군에서 말하는 ‘다문화 장병’이다. ‘다문화 장병’이라는 것은 언제, 어떻게 명명되고 존재하게 된 것일까. 규정상 이 용어가 등장한 것은 1984년 개정 병역법 시행령부터이다. 현역 면제의 대상 중 하나로 ‘외관상 식별이 명백한 혼혈아’라는 규정이 홀연히 등장했다. 10년 뒤 개정된 1994년 병역법 시행령에서는 ‘외관상 식별이 명백한 혼혈아 및 부(父)의 가(家)에서 성장하지 아니한 혼혈아’로 확대되었다. 당시엔 면제의 대상이었던 이들이 복무 가능한 방향으로 변화한 것은 2005년부터이다. 이때부터는 ‘외관상 식별이 명백한 혼혈인’이 복무를 원하는 경우엔 현역 판정이 가능하도록 했다. 그러다 2007년에는 병역의무 및 지원에 있어 인종이나 피부색 등으로 차별하지 않도록 하되 병역 수행에 심각한 영향이 있는 경우에만 예외를 인정하는 것으로 했으며, 2010년 한번 더 개정을 거쳐 마침내 혼혈남성들도 신체건강상 특별한 사유가 없다면 현역으로 입대하도록 했다. 2015년에는 「부대관리훈령」에 ‘다문화 장병의 복무’ 관련 규정을 신설해 오늘의 ‘다문화 장병’ 제도에 이르렀다.
과거 국방부가 외관상 명백한 혼혈인 자들에 대해 병역을 면제시키고자 했던 사유는 ‘군대 내 사고 발생의 우려’ 때문이었다. 현재 한국의 병역판정 규정상 ‘외관상’의 이유로 면제될 수 있는 조건은 신체변형의 장애가 있는 경우에 한해서다. 다시 말해 2010년 전까지는, 우리 사회가 혼혈인의 존재를 장애인과 비슷한 맥락으로 이해했다는 것이다. 혼혈인과 장애인 그 어느 쪽에 초점을 둬도 문제겠지만,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전투 수행훈련을 받고 전시에는 직접 전투에 종사하는 사람이 군인이라는 사전적 정의를 고려한다면, 같은 신체능력을 가졌음에도 단지 피부색이 다르고 경험한 문화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누군가를 ‘정상적’ 임무 수행이 불가한 경우로 규정하는 사회란 얼마나 폭력적인가.
다문화 장병을 입대시키기 위해 병역법을 활발히 뜯어고칠 때쯤 발표된 한 연구(정민화의 「미군의 인종차별 사례와 한국군의 다문화 군대 전환 위한 시사점」, 『평화학연구』 2010)에서는 이 시기 한국사회가 다문화 청소년에 대해서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는지를 엿볼 수 있다. 부모 중 한 사람이 외국인일 때 자녀가 집단따돌림을 경험한 비율은 17.6%에 달했고, 사유는 별다른 것도 없이 “엄마가 외국인이기 때문에”라고 답한 비율이 가장 높았다(34.1%). 연구는 또래집단에서부터 배타적 경험에 노출된 다문화 청소년들의 적응문제가 군입영 시에도 동일하게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하다가도, 갑자기 군대를 “병사들의 전우애와 단결심을 촉진하여 극한 상황하에 승리할 수 있는 전투전문가를 육성하는 곳”이라고 설명하며 “부대원과의 공동체 의식이 높아야 임무를 완수할 수 있”다고 말한다. “다문화 가정 자녀들의 폭력 성향”이 “선진화 군대를 지향하고 있는 한국군의 부대 정서엔 부합하지 않는다”며 문제의 원인을 돌려버린 것이다. 연구는 “이러한 폭력 성향을 지닌 다문화 가정 자녀가 군에 입대하게 되면” 부대 관리나 운영, 군 전투력 유지 면에서 “많은 어려움이 발생할 것”이라며 인종적 특성이 성격을 정한다는 황당한 주장에 근거해 결론을 낸다.
2000년대 이르러 한국 징병제도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바로 병력 수급에 관한 부분이었다. 핵가족화를 넘어 결혼과 육아에 참여하는 시민의 인구가 점차 줄어듦에 따라 자연스레 징집 가용인원도 줄게 된 것이다. 그러나 사회주의 진영이 해체되어도 남과 북은 통일되지 못했고, 철책 너머 ‘주적’ 북한이 존재하는 한 우리 사회가 반공이데올로기 시대를 넘어가기엔 불가능에 가까웠다. 결국 반공과 안보의 논리 앞에 한국 군대는 조직을 개편하지도, 병력의 수를 줄이지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혹은 하지 않는) 상황이 됐다. 결국 한국 군대는 비겁하면서도 손쉬운 방법을 선택하게 된다. 바로 과거엔 적극적으로 배제했던 자원을 징집 가능자원으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다문화 청소년만큼이나 2000년대 대대적 제도 신설과 변화를 겪게 된 이들 중 하나가 ‘게이 군인’이라는 점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그때보다 청소년은 더욱 줄어들었고, 최근에도 한국군은 매년 징집인원의 수에 따라 자의적으로 신체검사 기준을 조정하여 그 한계까지 징집하고 있다. 여성징병제 얘기가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니다.
과거와 달리, 현대의 국민국가(nation state)를 설명할 때 국민(nation)을 더이상 단일한 민족 또는 인종적 일치를 가진 공동체라고 정의하지 않는다. 그보다 같은 영토에 거주하는 구성원이 공통된 정체성을 토대로 스스로를 ‘국민’이라는 하나의 집단으로 자각한 상태를 국민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만일 이들이 외관상 보여지는 외모로 인해서, 엄마의 국적으로 인해서, 공동체가 사용하는 언어에 다소 서투름이 있어서 배제된다면, 그리고 그 배제가 당연한 것으로 간주된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정치의 책임이다. ‘다문화 장병’이라는 존재를 명명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한국군은 우리 사회가 보다 평등하고 다양하며 다원화된 집단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를 고민하기보단 일단 사람이 모자라니 뽑고, 조직에 동화될 의무와 책임을 다문화 장병 본인에게 전가하는 편리한 방식을 택하게 됐다. 그러니 항상 다문화 장병은 ‘관리’되어야 하는 존재다. 이들은 ‘사고유발자’이기 때문이다. 국방부가 다문화 장병 우수사례로 꼽는 여러 예시를 보라. 적응을 잘한, ‘토종’ 한국인과 융화가 잘된, 김치를 잘 먹는, 활달하고 리더십 있는, 결국 그래서 사고가 없는. 여전히 한국 군대에서 다문화 장병은 병역의 의무를 지고 들어온 국민 중 한명이 아니라, 국민에게 인정받아야 하는 외국인으로서 존재한다.
전장에서의 불평등과 민주주의 문제를 연구하는 제이슨 라이얼(Jason Lyall) 다트머스대학 교수는, 다양한 구성원 개인이 온전한 시민권을 누리는 사회의 군대일수록 전투력이 강한 군대가 된다고 설명한다. 어찌 보면 당연한 얘기다. 불평등한 군대일수록 출신·인종·종교·성정체성과 같은 개인이 가진 특성과 다양한 가치관을 ‘군기’와 ‘규율’이라는 명목으로 무시하고, 이들을 강제로 통합시키려는 과정에서 위협이나 폭력을 가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국방부는 2016년 이후 공식적으로 다문화 장병 통계를 집계하지 않는다. 식별행위 자체가 차별이라는 이유에서다. 굳이 물어 구별하지 않기 때문에 차별은 아니라는 편한 셈법 뒤편에, 여전히 적응하기 싫으면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는 혐오와 폭력에 고스란히 노출된 ‘우리’ 군대의 ‘외국인’이 있다. 군대에 왔으면 다 같은 한국군이니 규칙과 명령에 따르라고 윽박지르기 전에, 과연 우리 군이 다문화 장병을 ‘다 같은’ 존재라고 여기는 것이긴 한지, 평등하고 다양한 ‘강한 군대’로 나아가는 중인 것인지 자문해보길 바란다.
방혜린 / 군인권센터 국방감시팀장
2025.9.16. ⓒ창비주간논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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