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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하다: 무안참사와 새만금신공항 취소소송 승리

황윤


도요새, 저어새, 검은머리물떼새 모자를 쓴 사람들이 한여름 폭염을 뚫고 8월 12일 전주에서 출발해 서울까지 한달 동안 걸었다. 행진의 맨 앞은 큰뒷부리도요가 이끌었다. 법원의 새만금신공항 취소판결을 촉구하는 ‘새, 사람 행진이었다. 수라갯벌을 지키기 위해 누구는 월차를 내고, 누구는 가게 문을 닫고 행진에 참여했다. 자기 몸 하나 챙기기 어려운 무더운 날씨에 함께 마실 물을 몇 리터씩 챙겨오는 이도 있었고, 자기 먹을 도시락 하나 싸기도 어려운 이른 시각에 다른 사람들 먹을 것까지 준비해오는 이도 있었다.


22년 전인 2003년, 새만금간척사업으로부터 갯벌을 지키기 위해 네명의 성직자가 부안에서 서울까지 65일간 목숨을 건 삼보일배를 했다. 그 숭고한 정신이 2025년 ‘새, 사람 행진으로 부활했다. 아니, 부활이라는 말은 틀렸다. 그 정신은 죽은 적이 없으므로. 2003년의 삼보일배는 자기희생과 숭고함이 주된 정신이었다면, 2025년에는 그 정신을 그대로 이어받으면서도 흥겨움과 발랄함을 더했다. ‘새, 사람 행진 내내 사람들은 춤추고 노래했고, 새 모자를 쓰고 걸으며 점점 새를 닮아갔다. 알래스카에서 뉴질랜드까지 장거리비행을 하는 큰뒷부리도요처럼 강인해졌고, 새들의 날개뼈가 진화를 통해 무게를 줄이고 가벼워졌듯 행진이 계속될수록 참여자들의 어깨뼈는 가벼워지고 새 깃처럼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땀 흘리면서도 웃는 얼굴들을 카메라 렌즈 너머로 보면서, 순간순간 울컥하고 감동했다.


큰뒷부리도요를 모시고 전주에서 서울까지 걷는 새, 사람 행진단 


행진을 이끈 평화바람 활동가 딸기가 말했다. “저는 큰뒷부리도요를 지키는 행진이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큰뒷부리도요를 살리는 일이 저를 살리는 일이었어요. 저 살자고 걷는 행진이었더라고요.” 큰뒷부리도요를 자전거에 싣고(아니, 모시고) 25일을 달려온 신혜정씨는 행진이 끝나가는 게 너무 아쉽다고 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무더위에 한달 내내 걸으며 지쳐 쓰러질 법도 한데 사람들은 오히려 더 강해졌고 땀에 젖은 옷은 빛이 났다. 행진은 축제였고 기도였으며, 구원이고 마법이었다. 


3년 전 수라갯벌을 살리고자 국민 1,308명이 원고가 되어 국토교통부를 상대로 새만금신공항 취소소송을 걸었다. 법적 다툼은 3년이었지만, 문규현 신부와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 오동필 단장을 비롯해 갯벌을 지키기 위해 헌신한 사람들의 시간은 20년이 넘는다. 역사적인 소송이었다. 


드디어 판결일. 초조한 마음으로 법원 밖에서 피켓을 든 사람들을 촬영하며 기다리는데 “이겼다!”는 외침이 들렸다. 믿기지 않는 소리에 놀라며 사람들은 서로 얼싸안고 오열했다. 법원 앞은 감격과 기쁨의 눈물바다가 되었다. 가슴에서 발원한 뜨끈한 강물 같은 눈물이 나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내 평생 처음 경험하는 강렬한 순간이었다. 이런 승리를 언제 경험했던가. 서울행정법원은 새만금신공항이 “기본계획에 중대한 하자가 있다”는 이유로 원고 승소판결을 내렸다. 



새만금신공항 취소소송에서 승소 후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문정현·문규현 신부



새만금신공항 취소소송 승소 기자회견


재판부 판결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첫째, 조류충돌로 인한 항공사고 위험성이다. 재판부는 국토교통부가 신공항 입지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조류충돌 위험성을 제대로 평가하지 않고 고의적으로 위험도를 축소한 것을 “안전을 위협하는 중대한 문제”로 보았고 사업의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실제 새만금신공항의 조류충돌 위험이 무안공항에 비해 무려 650배가 높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더욱이 이는 신공항을 추진하려는 국토교통부의 연구결과이다. 수라갯벌 상공으로 하루에 가마우지 2만여마리가 매일 날아다니고, 그외에도 오리와 기러기 등 중대형 조류가 서식한다. 영화 「수라」(2023)  촬영 당시, 수라갯벌에서 미군전투기가 가마우지떼와 충돌하는 순간을 카메라에 포착한 적도 있다. 제주항공 여객기가 가마우지 무리 사이로 아슬아슬하게 비행하는 장면도 활동가의 카메라에 포착됐다. 


판결의 또다른 핵심은 수라갯벌의 생태적 중요성이다. 수라갯벌은 저어새, 황새, 흰꼬리수리, 금개구리, 흰발농게 등 무려 64종의 법정보호종과 멸종위기종이 살아가는 서식지이다. 신공항 부지가 아니라 보호구역으로 지정해야 한다. 또한 수라갯벌은 인근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서천갯벌과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는데, 이번 판결에서 그 중요성이 인정됐다. 재판부는 “사업부지의 개발은 인접지역에 분포한 법정보호종 조류 등에게 서식지 축소, 개체수 감소 등의 영향을 미칠뿐더러 그와 연결된 서천갯벌의 자연환경 및 조류의 서식환경에도 회복하기 어려운 악영향을 미치게 될 우려가 있다고 보인다”고 했다. 


셋째, 경제성이 떨어지는 공항이라는 점도 중요한 이유였다. 국토부가 새만금신공항에 매년 2백억원 상당의 적자가 발생할 것이라는 한국공항공사의 보고를 받고도 검토를 소홀히 한 사실이 감사원의 감사결과 드러났다. 이미 존재하는 군산공항도 연간 58억원의 적자를 보고 있는 형국이다. 결론적으로 재판부는 “이 사건 기본계획은 이익형량에 하자가 있어 위법해 취소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사업추진으로 얻을 수 있는 이익보다 생태계파괴 및 안전문제 등으로 인한 피해가 크다고 본 것이다. 이 얼마나 상식적이고 당연한 판결인가. 


그런데 새만금신공항 뒤에 도사린 또다른 그림자가 있다. 바로 미군기지다. 새만금신공항이 지어지면 그 관제탑을 미군이 갖게 된다. 또한 새만금신공항과 미군기지 내 군산공항을 연결하는 도로를 만들려는 계획이 전략환경평가서에 나와 있다. 미군이 새만금신공항을 자신들의 제2활주로로 이용하려는 것이 아니라면 왜 두개의 공항을 연결하는 도로가 필요할까? 새만금신공항이 미군기지의 확장이라는 의혹이 강하게 제기되는 이유이다. 세계 곳곳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가운데 군산 미군기지는 주민들을 내쫓으며 점점 확대되고 있고, 무시무시한 무기들이 우리 땅에 배치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전쟁이 발생하면 가장 먼저 불바다가 될 곳은 군산이다. 군산에 사는 주민의 한 사람으로서 나는 진심으로 미군기지 확장이 두렵고 걱정된다. 수라갯벌을 지키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한반도가 미중전쟁의 화약고가 되는 것을 막고 우리 모두의 생명과 평화를 지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또 몇명의 희생자와 수천명의 유가족이 생겨야 멈추시겠습니까? 무안공항참사 유가족은 바랍니다. 다시는 어떠한 공항에서도 이런 끔찍한 참사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서울행정법원 판결 사흘 전 열린 기자회견에서 무안공항참사로 어머니와 아버지를 떠나보낸 고재승님이 이렇게 발언했다. 무안공항보다 조류충돌 위험이 650배 높다는 것이 새만금신공항의 무리한 추진에 제동을 걸었다. 죽은 자가 산 자를 살린 것이다.


국토교통부는 1심 판결에 불복하고 항소했다. 이는 헌법을 위배하는 행위가 아닌가. 대한민국 헌법에서 국가의 가장 근본적인 의무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는 것이며,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조류충돌이 원인이 된 무안공항참사를 겪고도, 어떻게 정부는 대참사가 예고된 새만금신공항을 강행하려 하는가. 국토교통부는 항소를 취하해야 한다. 국가는 죽은 자들의 말을 들으라. 


새만금간척사업에서 살아남은 마지막 갯벌인 수라에 관한 다큐멘터리 영화 「수라」를 7년 반에 걸쳐 만들면서, 나는 힘들 때마다 도요새를 떠올렸다. 먹지도 쉬지도 못하고 수만 킬로미터를 날아가는 도요새들의 여정을 생각하며 힘을 내곤 했다. 그런데 이 마음이 그대로 전달됐는지 시사회에서 한 초등학생 관객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도요새가 머나먼 여정을 날아가는 것을 보니까 우리도 도요새처럼 먼 길과 험한 길도 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다른 상영회에서 대화가 끝나고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 극장 밖으로 나가는데 한 어린이 관객이 무대 앞으로 나오더니 꺼진 마이크를 켜고 이렇게 말했다. “이 영화를 보고 제가 얻은 것이 있어요. 포기하지 않는 힘이에요.” 


2003년의 삼보일배에도 새만금간척사업은 강행됐지만, 삼보일배 정신은 진 것이 아니었다. 생명을 살리려는 그 간절한 마음을 이어받아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은 20년 넘게 갯벌을 포기하지 않고 기록했다. “아름다움을 본 죄”로 그 아름다움을 지키고자 기꺼이 청춘을 바친 오동필 단장과 조사단의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 내게 영감을 주었고, 그것이 「수라」로 완성됐다. 영화를 본 관객들은 또다른 이들에게 아름다움을 전하는 메신저가 된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아름다운 것들을 사랑하고 돌보는 기쁨을. 아름다운 것들과 함께 살아갈 권리를. 죽은 자의 목소리를 듣는 정의로운 세상을. 그리고 생명을.  



영화 「수라」 스틸컷 
*「수라」는 관객들의 배급운동으로 커다란 반향을 일으키며 지금까지 상영이 계속되고 있다.

 




황윤 / 영화감독

2025.9.30. ⓒ창비주간논평

본문 사진 · 커버 이미지: ⓒ신유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