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중국은 왜 로봇에 진심인가
지만수
중국은 요즘 로봇과 인공지능(AI)에 진심이다. 그 둘을 결합해 더 사람처럼 만든 휴머노이드 기술을 개발하고 자랑하기에 바쁘다. 4월에는 마라톤 풀코스를 뛰게 하더니, 8월에는 로봇올림픽을 열어 로봇들끼리 온갖 경기를 시켰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중국은 14억 인구 대국이다. 청년(16~24세) 실업률은 지난 8월 18.9%로 사상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사람이 넘쳐나고 청년 일자리는 부족한 나라가 왜 사람을 대체하는 로봇 기술과 산업에 이렇게 진심인 것일까?
그 이유는 양극단의 인구정책을 번갈아 경험한 중국 노동시장의 독특한 상황과, 노동집약산업과 첨단산업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중국 산업구조의 특징 때문이다. 중국이 인구 대국이라지만 정작 일할 사람은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생산가능인구(15세~59세)는 2011년 9.4억명에서 2025년 8.6억명으로 8천만명이나 줄었다. 다산(多産)이 애국으로 취급되던 마오 쩌둥 시대에 태어난 세대가 노동시장에서 은퇴하고, 엄격한 ‘한자녀 낳기’ 시대에 태어난 세대가 새로 진입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가령 1965년에는 한해에 2717만명이 태어났는데(60세 해당), 2005년(20세 해당)에는 1616만명, 2024년에는 954만명이 태어났다. 앞으로 10년 동안 중국에서는 2.3억에 달하는 50대 인구가 순차적으로 은퇴한다. 그런데 이 2.3억이 떠나는 일자리는 지금의 10대와 20대가 채워줄 수 없다. 애초에 숫자가 부족할 뿐 아니라 일자리에 대한 기준도 높다. 올해에도 1222만명이 대학을 졸업했다지만, 이들은 저학력 육체노동자들이 떠난 자리에는 관심이 없다. 차라리 그냥 쉰다. 중국은 앞으로 10년간 노동시장을 떠나게 될 2.3억의 50대 인구를 대체할 새로운 노동력을 어디선가 만들어내야 한다.
또한 중국은 로봇을 도입했을 때 기대되는 경제적 이익이 가장 큰 산업구조를 가지고 있다. 만일 로봇이 사람을 대체한다면 이미 자동화가 많이 진행된 자동차나 반도체 같은 업종보다는, 수천명이 한지붕 아래 모여 일하는 노동집약적 업종에서 훨씬 더 큰 변화가 일어난다. 생산성을 개선하는 효과도 그런 업종에서 가장 크다. 지금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큰 노동집약산업을 보유하고 있다. 중국은 세계시장에서 팔리는 완구의 70%, 신발의 60%, 가구의 45%, 의류의 30%를 만들고 있다. 섬유 및 의류 산업에서만 지금도 천만명이 넘는 노동자가 일하고 있다. 즉 중국이야말로 사람을 대체하는 로봇의 ‘쓸모’가 가장 빛을 볼 수 있는 산업구조를 갖고 있다.
나아가 이렇듯 앞서서 로봇을 개발하고 사용하다보면, 결국 중국은 유망한 성장산업의 공급망을 또 하나 장악하게 된다. 즉 로봇을 국내에서 활용할 뿐 아니라 해외에 판매하는 수출산업으로도 육성할 수 있는 것이다. 이미 중국은 국내에서 먼저 새로운 문물에 대한 수요를 키워 이를 바탕으로 산업을 육성한 다음, 이를 수출산업으로 성장시켜 세계시장까지 장악하는 패턴을 만들어왔다. 지금 중국이 세계 공급망을 장악하고 있는 전기차·배터리·태양광·풍력터빈 산업이 모두 그런 패턴으로 성장했다. 이를 로봇과 휴머노이드에서도 재연시킨다면 중국은 역사적으로 형성된 인구학적 난제를 해결함과 동시에 미래 글로벌시장도 장악하는 두마리 토끼를 잡게 된다.
더구나 중국은 아예 기존 로봇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꿔버릴 수도 있는 나라다. 지금까지 휴머노이드는 로봇기술의 발전수준을 보여주는 기술실증용으로 주로 활용되었다. 인공지능을 활용한 모방학습이라는 새로운 기술 덕분에 휴머노이드들은 예전에 상상하지 못했던 수준으로 사람과 비슷하게 동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노동현장에서 사람이 보여주는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그 범용성이다. 재단하고 운반하고 망치질하고 안마하고 커피 타는 사람이 각각 따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적당한 훈련을 통해 다양한 일을 할 수 있다. 특정한 일만 반복하는 기계와 달리, 모방학습으로 사람의 동작을 훈련받을 수 있게 된 휴머노이드는 바로 그 범용성을 획득한다. 이 범용성은 결국 대량생산 가능성으로 연결된다. 하나의 하드웨어를 다양한 용도로 쓸 수 있다면 같은 모델을 한번에 많이 만들어도 된다. 생산의 규모가 커질수록 생산단가는 줄어든다. 알리·테무 등을 통해 과시해온 중국의 놀라운 원가절감 능력을 로봇에서도 발휘할 수 있게 된다는 얘기다. 백년전 고가의 사치재였던 승용차가 포드가 도입한 T형 모델과 대량생산방식 덕분에 대중적인 필수품으로 변화했던 것과 같은 스토리다.
중국의 공장들은 이미 특정 작업을 하는 데 특화된 고가의 산업용 로봇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다. 2024년 전세계에 새로 장착된 52.4만대의 산업용 로봇 가운데 29.5만대, 전체의 56.3%를 중국이 설치하였다. 여기에 더해 중국은 이제 휴머노이드에 대한 집중투자를 통해, 범용의 저가 휴머노이드를 생산 현장에 본격 투입하는 혁명적 변화를 선도할 가능성도 생겼다. 벌써부터 중국에는 다양한 현장에 활용할 수 있는 산업용 휴머노이드를 생산·판매·임대하겠다는 회사들이 나타나고 있다. 이제 중국의 기업인들은 1,000명의 노동자를 쓰는 기존의 방식이나 고가의 산업용 로봇 10대를 배치하는 전통적인 자동화방식에 더해서, 100대의 저렴한 휴머노이드를 임대하는 제3의 선택지를 갖게 된다.
범용성에 기초한 대량생산의 효과는 가정에서도 발휘될 수 있다. 여기에서도 거대하고 절실한 수요가 대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한국 다음으로 고령화 속도가 빠른 나라이다. 2035년이 되면 중국은 초고령사회에 진입해 3.4억의 노인인구를 부양해야 한다. 인류가 아직 경험한 적 없는 대규모의 사회적 과제다. 어쩌면 중국은 이 난제에 대해서도 노인들의 생활·정서·간병을 보조하는 가정용 휴머노이드를 대량공급함으로써 해결책을 제시하게 될지 모른다.
세계 최대의 단순노동자 집단과 세계 최고 수준의 인공지능 및 휴머노이드 기술이라는 비(非)동시대적인 요소들을 동시에 갖게 된 중국은 그 둘을 섞어 뭔가 새로운 판을 만들고 있다. 한동안 우리는 중국에서는 자전거가 트럭을 싣고 다니더라는 풍문을 즐겼다. 우리 산업을 빠르게 따라잡는 중국에 위협을 느끼기도 했다. 이제는 중국에서 산업과 사회의 미래, 일터와 돌봄의 미래를 가늠해야 하는 시대가 오고 있다.
지만수 /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2025.11.4. ⓒ창비주간논평
커버이미지: 중국 유니트리의 휴머노이드 로봇 G1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