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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유 공급망과 나프타의 위기, 전환을 위한 개혁이 필요하다



김기흥


얼마 전 집을 정리하다가 10여년 전 영국에서 가져온 플라스틱 쇼핑백을 발견했다. 세월 때문인지 쇼핑백은 힘없이 바스러졌다. 시간에 따라 자연스럽게 분해된 것처럼 보였다. 이내 그 옆에 있던 시커먼 플라스틱 비닐봉지가 눈에 들어왔다. 이것이 완전히 분해되기까지는 도대체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까. 일반 비닐봉지의 분해 기간만 대략 20년에서 500년 사이로 알려져 있기에, 우리의 평범한 일상생활 속에도 플라스틱에 대한 이러한 의문과 공포가 스며 있을 수밖에 없다.


최근 중동에서 벌어진 미국과 이란 사이의 전쟁은 플라스틱 비닐봉지의 원료가 어디에서 오는지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된다. 호르무즈해협의 봉쇄는 세계경제의 핵심동력인 원유의 이동을 제한하면서 공급망 위기를 불러온다. 이 과정에서 이목이 집중된 것이 바로 ‘나프타’이다.


나프타는 원유를 정제할 때 생산되는 경질 석유제품이다. 원유는 정유 과정에서 증류탑을 거치며 끓는점의 차이에 따라 LPG·나프타·등유·경유·중유 등으로 분리된다. 나프타는 다시 석유화학 공장의 분해시설을 통해 에틸렌, 프로필렌, 부타디엔, 벤젠·톨루엔·자일렌(BTX)과 같은 기초 석유화학 원료로 전환된다. 이들 원료는 플라스틱 수지, 포장재, 섬유, 자동차 부품, 전자제품, 의료용품 등으로 가공되면서 현대 산업 생산체계의 기반원료로 기능한다.


플라스틱은 복잡한 국제적 생산 네트워크의 산물이다. 한국은 바로 이 네트워크의 한가운데에 서 있다. 한국은 원유 생산국이 아니면서도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정유 및 석유화학 가공 역량을 바탕으로 원유를 고부가가치 생산품으로 전환하여 수출하는 역설적인 지위에 있다. 2025년 기준 한국의 나프타 수입량은 2670만 톤이었고, 그중 77%가 중동산이었다. 


미국과 이란의 군사충돌로 인한 지정학적 위기는 해상운송의 병목현상을 일으키고, 원유와 나프타 가격 상승, 정유산업의 원료 조달 비용 증가, 처리시설의 가동률 하락, 에틸렌·프로필렌·BTX 공급 축소, 합성수지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는 연쇄적 도미노 효과를 일으킨다. 그 결과 일상 소비재 가격 상승과 생산 지연은 전체 사회의 불안정을 심화한다. 이처럼 복잡한 공급·생산 네트워크가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우리는 일상생활 깊숙이 스며든 화석연료의 영향력이 얼마나 강력한가 인식하게 되었다. 동시에 중동에서 생산되는 원유에 대한 의존이 지속불가능한 것임도 확인할 수 있었다. 2024년 기준 한국의 원유 의존도는 OECD 37개국 중 1위로, 지정학적 위험에 사실상 무방비하게 노출되어 있다. 따라서 이 지속불가능한 구조적 한계를 돌파하기 위한 급진적 대안 모색이 절실하다.


사실 중동 지역의 정치적 불안에 따른 원유 공급망 혼란은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는 일이었으며, 이에 대한 정책적 대응은 사전에 마련되어 있어야 했다. 그럼에도 이란전쟁과 호르무즈해협 봉쇄라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된 후에야 비로소 정부는 원유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계획을 발표했다.


2026년 4월 28일 정부가 발표한 플라스틱 없는 순환경제 전환 추진계획은 나프타 위기와 플라스틱 감축을 연결한 정책이다. 이 계획은 수입자원에 의존하는 선형경제의 구조적 취약성을 줄이기 위해, 2030년까지 나프타 유래 플라스틱 원료 사용을 30% 감축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2030년 폐플라스틱 발생 전망치는 약 1000만 톤이다. 정부는 원천 감량을 통해 100만 톤을 줄이고, 재생원료 사용을 통해 200만 톤을 추가로 줄임으로써 나프타 기반 플라스틱에서 발생하는 폐플라스틱 규모를 700만 톤 수준으로 낮추는 계획을 설계했다. 수입 나프타를 국내 자원순환체계로 대체함으로써 신규 나프타 수입량을 줄이려는 전략이다.


정책적 전환의 필요성은 한국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중동 원유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동아시아 국가들은 이른바 나프타 쇼크로 인해 포장재 수급 차질과 공장 가동 중단 위기를 경험하면서, 나프타-플라스틱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일본의 몇몇 기업들은 나프타 공급의 어려움에 대응하기 위해 포장지 인쇄를 흑백으로 전환했고, 식품 용기와 덮개를 플라스틱 대신 랩이나 종이로 대체하는 등 대체 소재 및 포장 방식을 고민하고 있다. 일본은 이미 2022년에 플라스틱 자원순환 촉진법을 법제화하여, 제품의 생애주기 전반에서 플라스틱 감량, 재사용·재생가능 원료 사용을 촉진하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두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 동아시아 국가에서 나프타와 같은 원료물질의 사용을 줄이고, 이를 통해 플라스틱 소비를 감축하려는 정부의 정책적 대응은 여전히 소극적 차원에 머문다. 그 핵심에는 원료 사용 네트워크의 축소가 경제활동을 둔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자리한다. 때문에 정부는 강력한 절약 캠페인을 전개하는 데 주저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위기의 순간은 새로운 혁신체계를 구축하고 제도를 개혁하는 데 가장 적절한 기회이기도 했다. 1952년 런던은 석탄 연소에서 나온 매연과 황산화물로 인해 악명 높은 ‘런던 스모그’를 겪고 있었다. 4000명의 초과사망(excess death)이 공식 보고되면서 가정과 공장, 발전소에서 태우는 석탄과 이에 따른 공기의 질의 변화에 대한 국가의 개입이 절실하게 요구됐다. 이후 1956년 국가 차원에서 대기의 질에 대한 조절·통제 조치를 할 수 있는 권한을 다루는 청정대기법(Clean Air Act)이 제정되면서 대기오염이 단순히 불편한 도시문제를 넘어 공중보건, 도시계획, 에너지 전환의 문제로 다루어지는 개혁의 출발점이 되었다. 이렇듯 개혁은 총체적 위기로부터 시작된다. 현재의 이란전쟁으로 인한 원유 공급망의 붕괴 역시 정치적·경제적으로 중대한 위기임은 자명하다. 그러나 동시에 이는 에너지·환경 문제의 구조적 질서를 재편할 수 있는 개혁의 기회이기도 하다.


한국은 원유 자원의 공급망에서 중요한 교차점에 위치한다. 국제교역 시스템에서 한국의 지위는 전체 질서를 재편할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자원순환을 강화하려는 순환경제 전략과 대규모 나프타 분해시설을 운영하는 석유화학산업 사이에는 긴장관계가 존재한다. 또한 국내에서는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는 정책을 추진하면서도, 동시에 석유화학 중간재 수출을 유지하여 교역 과정에서의 이익 창출을 지속하려는 이중구조의 모순적 상황이 나타날 수 있다. 이는 한국의 산업정책과 환경정책 사이에 존재하는 구조적 모순을 보여준다. 구조적 문제와 위기 상황이 결합하면 전체 에너지·환경 정책의 밑그림을 완전히 다시 그릴 수 있는 개혁의 모멘텀이 될 수 있다. 


한국은 전략적으로 핵심적 지위에 있으면서도 장기적·구조적 개혁에는 여전히 소극적이다. 탄소 기반 생산시스템의 장기적 개혁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나프타 기반 플라스틱 생산을 줄이기 위한 법적 구속력을 지닌 목표를 설정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재생원료 시장의 안정적 구축 방안, 기업에 대한 의무 부과 수준, 기존 석유화학산업의 전환경로에 관한 정기적이고 구체적인 개혁 계획이 필요하다. 한국에서 에너지·환경정책의 탈탄소로의 전환은 국제교역 시스템에도 강력한 영향을 줄 수 있다. 역사가 보여주듯, 위기의 순간은 구조적 개혁을 위한 가장 중요한 계기이다. 


김기흥 / 포항공대 인문사회학부 교수


2026.6.10. ⓒ창비주간논평
커버이미지: ⓒ연합뉴스 (쌓여 있는 폐플라스틱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