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예방 없는 안전, 선언만 반복될 뿐이다
최명기
예측과 예방 없는 제도, 사고 이후의 수습만 반복
대한민국에서 대형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반복되는 장면이 있다. 장관이 현장에 달려가 고개를 숙이고 대책위원회가 꾸려지며 재발방지를 위한 제도개선안이 발표된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다. 다음 사고가 날 때까지. 성수대교 붕괴, 삼풍백화점 붕괴, 광주 화정동 아파트 붕괴, 분당 정자교 붕괴, 서소문 고가 붕괴가 그 사례다. 매번 전문가들이 원인을 분석했고 정부는 제도를 보완했으며 언론은 책임을 물었다. 그러나 사고는 반복됐다. 이 반복의 구조 속에서 우리가 놓치는 것은 사고 이후의 대응이 아니라 사고 이전의 예방이다. 예측하고 예방하며 대응하는 체계를 만드는 일이야말로 핵심이다.
예방 없는 안전, 선언만 반복될 뿐이다
안전은 사고 후의 수습이 아닌 사고 전의 예방에서 완성된다. 예방은 선언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실행할 사람이 있어야 하고 그 사람이 일할 수 있는 예산이 뒷받침되어야 하며 현장의 위험을 실질적으로 발견하는 점검이 이루어져야 한다. 위험을 알아볼 수 있는 교육이 선행되어야 하고 그 모든 정보가 관계자들 사이에 막힘없이 흐르는 소통이 작동해야 한다. 이 다섯가지가 갖추어지지 않은 곳에서 안전은 구호에 불과하다. 최근 발생한 서소문 고가 해체공사 붕괴사고와 GTX-A 삼성역 철근 누락 사태는 우리 사회의 안전관리 체계가 얼마나 허술하게 작동하고 있는지 보여준다. 두 사건은 일선 현장의 부주의가 아니라 오랜 시간 쌓여온 제도적 무능과 관리부실이 터져나온 구조적 인재다.
건설현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사고 유형은 다양하다. 구조물 붕괴, 인접 시설물 피해, 노동자 안전사고, 보행자 사고, 건설기계 사고, 화재·폭발 등이 대표적이다. 이 가운데 구조물 붕괴는 단일 사건으로 가장 많은 인명피해를 낸다. 발생 국면에 따라 시공 중 붕괴, 해체 중 붕괴, 유지관리 중 노후구조물 붕괴로 나눌 수 있다.
시공 과정에서 구조물이 설계 하중을 버티지 못해 파괴되는 사고가 발생한다. 대표적으로 광주 화정동 아파트 붕괴, 인천 검단 지하주차장 붕괴와 같이 본 구조물이 붕괴되거나 거푸집·동바리, 흙막이, 비계 붕괴가 있다. 인천 검단 지하주차장 붕괴사고는 무량판 구조의 전단보강근 누락이 원인이었다. 슬래브와 기둥 접합부에 전단력이 집중되는데 전단보강근 보강이 부실하면 슬래브가 기둥을 뚫고 내려앉는 ‘펀칭 전단 파괴’가 발생한다. 설계와 시공의 복합적 실패가 붕괴를 불러온 것이다.
해체 중 붕괴의 전형적 사례는 서소문 고가 붕괴사고이다. 슬라브 절단 전 지지대를 설치하지 않았고 크레인 고정 없이 절단을 진행했다. 이상 징후가 발견됐음에도 지지대 없이 점검 인원이 진입하다 참사가 발생했다. 해체공사는 시공보다 구조 거동 예측이 어렵다. 부재를 제거할 때마다 하중 경로가 바뀌고 새로운 취약점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해체공사는 오랫동안 일반 시공과 동일한 수준의 안전 체계 안에서 관리되어왔다. 서소문 고가 붕괴사고는 그 구조적 공백이 빚어낸 필연적 결과다. 설계 단계에서 위험 지적이 반영되지 않았고, 시공 단계에서 안전관리계획서가 형식적으로만 승인되었으며, 현장에서는 절단 순서가 지켜지지 않았다. 세단계의 연쇄 실패가 하나의 붕괴를 만든 것이다.
노후구조물 붕괴의 대표적 사례는 성남 분당 정자교다. 2023년 4월, 매일 많은 시민들이 오가던 교량이 예고 없이 무너져 사망·중상 등 인명피해를 초래했다. 30년 된 교량이 무너진 이 사건은 전국의 수많은 노후시설물이 언제든 같은 방식으로 붕괴할 수 있다는 경고였다. 노후구조물 붕괴의 원인은 단지 노후화에 있지 않다. 노후화는 피할 수 없는 자연현상이다. 문제는 노후화를 제때 인식하고 적절히 보수하며 필요하다면 사용을 제한하는 관리체계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특히 GTX-A 삼성역에서는 지하 5층 기둥에서 설계 철근의 절반에 달하는 2570개가 누락된 채 시공이 진행됐다. 시공 중인 지금은 괜찮더라도 잠재적 구조 안전성에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있어 유지관리 단계에서 붕괴 등 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다.
일할 직원은 부족하고 공기(工期)와 공사비는 압박된다
반복되는 붕괴사고는 단순히 현장 실수의 결과가 아니다. 그 근본에는 이윤 창출을 최우선으로 하는 건설산업 구조와 시공관리 인력의 부족, 발주자의 공사기간과 공사비 압박, 그리고 민원으로 인한 작업 제약 등이 복합적으로 자리하고 있다.
현행 법령은 안전관리자와 품질관리자의 배치와 수를 의무화한다. 그러나 시공을 담당하는 건설회사 관리자의 배치와 수에 대해서는 규정하고 있지 않다. 이에 건설업체 경영책임자는 건설현장에 시공관리자를 최소한으로 배치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실제 현장에서는 현장을 관리할 인원이 턱없이 부족하다. 법적으로 배치된 안전관리자와 품질관리자가 형식적으로 운영되거나 타업무를 겸직하는 경우도 많아 실질적인 안전 확보가 어려운 실정이다.
적정 공기와 안전비용, 발주자의 책임에서 출발한다
여기에 발주자의 요구와 민원으로 인한 공사기간 단축 압박이 더해지면서 안전 절차는 생략되고 무리한 작업이 강행된다. 발주자는 무엇보다 적정 공기를 부여해야 하며 이를 무리하게 단축해서는 안 된다. 공사기간은 단순히 일정 관리의 문제가 아니라 안전 확보의 핵심요소다. 발주자가 안전을 최우선 가치로 삼아 적정 공기를 보장할 때 현장은 비로소 안전을 담보할 수 있다. 또한 안전비용 의무화 제도를 통해 공사비 산정 시 안전 관련 비용을 별도 항목으로 책정하고 삭감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 안전은 비용과 시간을 희생해야만 얻을 수 있는 현실적 가치다. 이를 제도적으로 보장하지 않는 한 사고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민원에 밀려난 안전, 불편을 감수하지 않는 사회
따라서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제도적 개선과 사회적 인식 변화가 동시에 필요하다. 무엇보다 현장이나 감리원들에게 서소문 고가처럼 위험한 사고 발생이 우려될 경우에는 도로·대중교통 긴급통제권을 부여하여 위험을 감지하는 즉시 공사를 중단하고 사고를 예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금처럼 발주자의 승인 없이는 중단이 불가능한 구조에서는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 또한 국민 역시 안전을 위해 일정 기간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교통 통제, 소음, 지연은 안전 확보의 필수 조건이다. 이를 받아들이는 문화가 정착되어야 한다.
최명기 /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단 교수
2026.6.24. ⓒ창비주간논평
커버이미지: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