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총성 없는 파괴, 전쟁만큼 지독한 미국의 경제제재
임승수
지난 6월 24일 베네수엘라 북부를 강타한 초대형 지진으로 도시가 무자비하게 파괴되고 수많은 이들이 사망했다. 지진 피해의 회복과 치유는 오랜 시간이 걸릴 일이다. 회복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고, 이루어질 수 있을까. 베네수엘라는 이미 오랜 기간 미국의 경제제재와 장기화된 빈곤이라는 고난 속에 처해 있었다. 그러나 우리의 편향적이고 부족한 국제적 관심은 베네수엘라 민중을 고통에 빠뜨려온 경제제재 문제를 제대로 볼 수 없게끔 장막을 드리웠다.
침공에 앞선 끈질긴 돈줄 끊기
알려져 있다시피 베네수엘라는 올해 미국의 군사공격을 받았다. 하지만 이 국가는 훨씬 전부터 포연 없는 전장 속에서 고통받아왔는데, 바로 미국의 경제제재다. 제재는 단순한 외교 수단이 아니라 ‘비군사적 전쟁’이다. 폭격 없이 기반 시설을 파괴하고, 점령 없이 사회를 붕괴시켜온 것이다. 막대한 지진 피해까지 겹친 베네수엘라의 회복을 위해 미국의 경제제재와 개입 문제에도 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
시작은 이러하다. 2014년 ‘베네수엘라 인권 및 시민사회 보호법’이 미국 의회에서 통과된 뒤, 이듬해 3월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행정명령 13692호에 서명한다. 베네수엘라의 상황이 미국의 국가안보와 외교정책에 대한 ‘이례적이고 특별한 위협’(unusual and extraordinary threat)이라며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한 것이다. 마두로 정부가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인권 탄압을 자행하며 부정부패했다는 것을 명분으로 삼아, 베네수엘라 몇몇 정부 관리의 미국 내 자산을 동결하고 입국을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후 미국은 2015년의 비상사태 선포를 매년 연장하면서 제재를 유지해왔다. 2017년 1월에 출범한 트럼프 1기 행정부는 오바마 시기의 ‘특정 인물 제재’ 수준을 넘어 제재를 전면 확장했다. 대표적으로 2019년 1월 베네수엘라 국영 석유회사의 미국 내 자산을 동결했고, 미국 정유사의 원유 구매대금이 베네수엘라 정부 계좌로 흘러가지 못하게 차단했다. 미국이 베네수엘라 원유의 핵심시장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이는 석유 수익의 회수를 막으며 외화 조달 자체를 어렵게 한 것이다. 이어서 같은 해 8월에는 이른바 ‘2차 제재’를 통해 베네수엘라 정부와 ‘중대한 거래’를 수행하는 제3자를 제재할 수 있게 조치했다. 국제은행이 미국 금융망에 의존하고 세계무역 대부분이 달러로 결제되는 상황에서 이러한 제재는 사실상 베네수엘라의 돈줄 자체를 끊어버리는 효과가 있었다. 베네수엘라 석유생산량은 2017년 하루 190만 배럴 수준에서 2020년에는 35~50만 배럴 수준까지 크게 낮아졌다.
가장 크게 고통받는 건 민중
제재로 가장 크게 고통받아온 사람들은 위정자들이 아니라 가난한 서민이다. 미국정부는 베네수엘라에 대한 제재가 ‘문제가 있는 정권과 그 주변 인물’을 겨냥한 것이며, 식량과 의약품 같은 인도적 물자는 제재 대상이 아니라고 말해왔다. 공식문서에 인도적 예외 조항이 존재함을 반복해서 강조하기도 했다. 하지만 미국이 베네수엘라를 불량국가로 낙인찍자 국제금융계에서는 베네수엘라와의 거래에 부담을 느꼈고, 금융기관의 거래 거부 및 결제 지연으로 인해 베네수엘라 내부의 식량과 의약품 공급이 지연되었다. 그 부담은 가격 상승과 품질 저하라는 형태로 베네수엘라의 소비자에게 전가되어 빈곤을 심화했다.
2019년 경제정책연구센터(CEPR)의 경제학자 마크 와이스브롯(Mark Weisbrot)과 제프리 삭스(Jeffrey Sachs)는 미국의 제재로 인한 의약품 수입 감소와 의료접근성 악화를 지적하며, 이 문제가 2017~18년 사이 약 4만명의 베네수엘라 초과사망(excess death)과 연관되어 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유엔인권이사회 특별보고관 알레나 두한(Alena Douhan)은 더 구체적인 현장 상황을 전했는데, 2015년 이후 기본 의약품 부족이 심화되고 수십만명의 환자가 치료 중단 위험에 놓여 있다고 밝혔다. 병원 장비의 상당수가 작동하지 않았고, 마취제와 항생제 부족으로 수술 건수가 줄어들었다는 점도 지적했다.
결국 경제제재는 총과 미사일만 안 쏠 뿐이지 사실상 대량학살이나 다름없다. 유엔 인권체계에서는 안보리의 승인 없이 가해지는 경제제재를 ‘일방적 강압 조치’라고 개념화한다. 2023년 4월 유엔인권이사회는 일방적 강압 조치가 국제인권법에 위배될 수 있다는 점을 재확인하며, 이를 규탄하고 즉각적인 철회를 촉구했다. 제네바협약과 헤이그규칙에서 금지한 집단적 처벌이라는 것이다.
미국은 이러한 경제제재 끝에 결국 2026년 1월 베네수엘라를 침공해 반미 사회주의자인 마두로 대통령을 전격 납치했다. 마두로 압송 이후 미국은 추가 무력 사용 가능성과 제재 완화 가능성을 동시에 내세우며, 델시 로드리게스 임시 대통령이 이끄는 베네수엘라 정부의 정책 방향과 석유 수익 구조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 일부 제재 완화는 이루어졌지만, 베네수엘라의 경제 운용에 여전히 미국이 깊숙이 관여하고 있는 형국이다.
우리와 멀지 않은 일, 더 많은 이해가 필요하다
베네수엘라, 이란, 꾸바, 북한 등은 미국의 경제제재로 오랫동안 큰 어려움을 겪어왔다. 현재 진행 중인 이란과 미국의 종전 과정에서도 미국의 대이란 제재 해제는 복잡한 협상 과제이다. 수십년간 이어져온 이란에 대한 미국의 경제제재는 2015년 이란핵합의(JCPOA) 체결을 통해 잠시 완화되었지만, 2018년 트럼프 1기 행정부가 핵합의 탈퇴 및 ‘최대 압박’(maximum Pressure) 정책을 택하며 이란 경제는 치명타를 입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직접적인 전쟁이나 침공이 일어나지 않는 한, 경제제재로 인한 어려움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기 쉽다. 특히 미국 중심적 이해 속에서 해당 나라의 위정자들이 잘못된 정책으로 경제를 망치고 있다고만 여기기도 한다. 역지사지를 해보면 어떨까. 트럼프 대통령이 이재명정부가 ‘말을 안 듣는다’며 경제제재를 가한다면? 은행들이 국제금융망에서 차단되고, 달러 결제가 막히고, 해외에서 원자재를 들여오려 해도 결제가 지연되거나 거부된다면? 반도체를 수출해도 대금이 들어오지 않고 정유사가 원유를 수입하지 못하게 되면, 그때도 우리는 ‘정부가 경제정책을 잘못 운용해서 그렇다’고 쉽게 말할 수 있을까.
미국의 경제제재가 우리와도 동떨어진 문제가 아니며, 우리 경제에도 타격을 입힌다는 점 역시 고려해볼 법하다. 트럼프 1기 행정부의 이란 경제제재로 한국 정유·석유화학 업계는 이란산 원유와 콘덴세이트 수입을 중단하거나 대체 공급처를 찾아야 했고, 자동차부품·합성수지 등 대이란 수출기업들도 거래 중단과 결제 차질을 겪었다. 특히 한국은행에 예치되어 있던 이란산 원유 수입대금 수십억 달러가 미국 제재로 장기간 동결되면서, 한국은 이란과의 외교관계에서도 상당한 부담을 떠안았다. 하물며 지금 이 순간 미국의 이란 침공으로 인해 발생하는 한국의 경제적 난맥상은 자세히 언급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우리는 흔히 ‘전쟁’이라고 하면 하늘을 뒤덮는 폭격기와 땅을 울리는 탱크를 떠올린다. 하지만 현대의 전쟁은 총성 없이도 누군가의 생명줄을 조인다. ‘이례적이고 특별한 위협’이라는 명분 아래 휘둘러진 경제제재는, 정작 그들이 겨냥했다는 권력자가 아니라 베네수엘라의 아픈 환자들과 굶주린 아이들의 삶을 무너뜨리고 있다. 특정 국가를 국제금융망에서 지워버리는 것, 그것은 어쩌면 미사일보다 더 잔인한 ‘디지털 봉쇄’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제 지진까지 겹친 베네수엘라의 고난 앞에서 우리는 그 잔인한 봉쇄의 결과를 너무 쉽게, 그 나라 내부의 실패로만 설명해왔던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임승수 / 인문·사회 작가(『오십에 읽는 자본론』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등)
2026.7.1. ⓒ창비주간논평
커버이미지: ⓒ연합뉴스(차베스와 마두로를 그린 벽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