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참교육’은 우리 교육을 구원할 것인가: 지위재가 아닌 삶의 토대가 되는 교육
유성상
넷플릭스 드라마 「참교육」(2026)을 본 적이 있는가? 열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이 드라마에는 다음 인물들이 등장한다. 정치인 부모 믿고 나대는 학교폭력 주동 학생, 학교를 점령한 조직폭력배, 허위 사실을 유포해 교사를 극단으로 내몬 인플루언서 학생, 성적 조작에 앞장선 교사, 악성민원을 제기하는 학부형, 통제되지 않는 촉법소년, 도박에 빠진 청소년 등. 이들의 이야기는 그간 수없이 들어온 학교현장의 문제를 옮겨놓은 듯하다. 얼핏 뻔한 이야기를 다룬 것 같지만, 드라마는 그 문제들을 하나하나 시원하게 그리고 신박하게 해결하며 한국을 넘어서 세계적 인기를 끌고 있다.
내용의 현실성을 떠나 사람들이 주목하는 것은 학교문제 해결의 수단으로 등장한 ‘교권보호국’이다. 교권보호국은 교권침해현장에 대한 감독·계도를 목적으로 설립된 기관으로, 현장지도 및 사건조사를 위한 모든 행위는 타 기관과 법령으로부터 제약받지 않는다는 넓은 재량권을 행사하는 조직이다. 교권보호국의 해결 방식을 두고 ‘사이다’라는 호평이 이어지는가 하면, 폭력의 정당화라거나 교육의 이름을 단 포르노라는 비난도 있다.
드라마가 일종의 ‘상상’이라는 점은 간과된 채 현실적 문제로 이야기되는 것이다. 콘텐츠 상의 가상 조직임에도 교권보호국이 풀어내는 교육문제 해법의 효용성을 둘러싸고 현실에서 여러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참교육」이 공개된 시기는 우연히도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치러지는 때였고, 드라마가 불러온 논쟁은 17개 시·도 교육감 선거에도 적잖은 영향을 끼쳤다. 교권보호국을 현실제도로 운영하겠다는 후보들이 등장했고 일부는 당선되었다. 실제로 2026년 7월 13일 경기도교육감 직속 조직 ‘교권보호단’이 출범하기도 했다. 현실 속에 등장한 교권보호국은 드라마처럼 고질적인 학교 안팎의 문제들을 모두 해결해낼 수 있을까?
안타깝지만 그럴 가능성은 낮다. 교권보호국이 생긴다고 해도 강력한 권한을 행사하는 기관이 되지는 못할 것이다. 교육문제가 심각하다는 목소리가 높지만, 이를 해결하기 위한 실질적 교육계의 권한은 늘 솜방망이 정도였다. 한때 교육부장관은 사회부총리로서 사회정책을 관장하며 영향력을 펼치기도 했지만, 교육부서는 사회분야 전반을 아울러 정책을 조율할 수 있는 권한도 영향력도 없었다. 더욱이 정부 차원에서도 드라마와 같은 형태의 교권보호국을 설치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추락하는 교권만이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기본적 권리를 존중받지 못하는 교육 주체는 여럿이고, 교권 추락은 복잡하게 얽힌 교육문제가 곪아터진 여러 증상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런데 만약, 교권보호국이 현실화된다면 우리 교육은 어떻게 되겠는가? 몇몇 문제에 있어 ‘시원한’ 해결 장면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국가 차원의 강압적 정책수단을 동원하더라도, 한국사회를 꿰뚫고 있는 명징한 교육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을 것이다. 바로 능력주의라는 이데올로기 속 ‘지위재’로 자리매김한 교육의 양상이 그것이다. 지위재로서의 교육은, 교육이 사회적 지위를 쟁취하기 위한 매개로써만 기능하며, ‘더불어 사는 힘’과 같은 관계적 연결을 강조하는 교육 본연의 가치와 실천은 뒷전으로 밀어놓는다. 이때 교육은 상품화되어 사회적 지위에 따라 서열이 정해지고, 욕망·소비·지출의 대상으로 자리할 수밖에 없다.
지위재로서의 교육 양상이 나아질 가망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인공지능을 앞세운 글로벌 경쟁력을 국가의 미래 전략으로 내세우는 우리 사회는 교육의 가치가 무엇이고, 이를 어떻게 구현할 것인지에 대해 그다지 관심이 없다. 정부는 AI강국을 위한 인재를 양성하는 것을 교육의 최대 과업으로 강조한다. 윤석열정부의 국가인공지능위원회는 ‘2027년까지 AI 3대 강국으로 도약하고 2030년까지 AI인재 20만명을 육성’하겠다고 했고, 이재명정부의 교육부는 ‘인공지능 세계 3강 도약을 견인하는 혁신인재, 융합인재 등 다층적 인공지능 인재양성’을 제시했다. 반도체·인공지능·피지컬AI·우주항공산업을 미래 먹거리 분야로 선정하고 이를 위한 이른바 ‘메가 투자’ 이뤄질 예정이다. 향후 한국사회의 교육은 거대한 산업체제의 도구로 기능할 가능성이 더 높아진 셈이다. 1970~80년대 강압적으로 작동하던 한국의 발전국가 모습과 별로 달라질 것 없는 모습으로 말이다.
교육현장의 문제는 교권보호국 같은 한두개 조직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교육문제는 사회구성원들의 구체적인 욕망과 밀접히 얽혀 있다. 따라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교육체제를 넘어선 사회 전반의 정치·경제·문화의 변화가 동반되어야 한다. 교육에 대한 사회구성원 각자의 구체적인 행동과 기대가 공개적으로 논의되며 폭넓은 쟁론이 이어져야 한다.
이런 점에서 교육은 단순히 제도화된 학교교육, 특정 학교나 학과를 통해 사회적 지위를 쟁취하기 위한 수단·매개로 환원된 채 시끄럽지 않게 관리되는 수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우리가 문제로 인식하는 교육의 단면들은, 한 사회의 욕망이 분출되는 방식과 그 실현 전략, 그리고 무엇이 효과가 있었고 또 없었는지에 대한 구성원들의 직관적 판단이 축적된 결과다. 따라서 교육은 한국사회를 진단하는 주요한 지표로 여겨져야 한다. 여러 영역의 사회정책들이 교육다운 교육을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협력해야 한다. 중증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종합적인 진단을 받아 근본적인 처치를 해야 한다. 같은 증상이 재발되지 않도록 말이다. 교육문제를 대하는 방식 역시 이런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 우리 사회의 교육문제들 가진 병적 원인에 대한 사회의 종합적 진단이 필요하다. 그리고 올바른 처치가 뒤따라야 한다.
교육을 일종의 서비스 항목으로 여기며, 외부적 목표를 구현하는 일종의 도구적 기능으로 환원하는 것은 아주 잘못된 접근이다. 1995년 발표·시행된 「5·31 교육개혁방안」은 지난 30여년 동안 이러한 잘못된 접근을 극단적으로 옹호하며, 한국사회의 교육을 욕망 실현의 도구로 기능하게끔 밀어붙였다. 유감스럽게도 최근 논의되는 ‘기본사회’ 청사진에서도 교육을 서비스로 여기는 태도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기본사회가 담고 있는 교육실천은 ‘기본교육’으로 설명되는데, 기본교육은 인간의 기본권 향유를 위한 교육서비스로 규정하면서, 기존 교육체제 내의 특정 정책을 통해 교육의 기회를 보장하겠다는 목표를 내세우고 있다. 우리가 조형해내야 할 교육다운 교육은 적어도 이런 목표를 훨씬 넘어서는 것이다.
교육은 개개인의 실질적 자유를 확장하는 매개적 작동기제이자 그 속에서 작동하는 구체적인 기회 및 자원이어야 한다. 누구나 자신의 꿈을 위한 토대로서의 기회·자원에 불공정한 대우를 받아서는 안 된다. 교육은 사회구성원 개개인이 하고 싶은 바를 할 수 있도록 또 되고 싶은 바를 실현해 낼 수 있도록 개인의 성장 욕구와 사회의 토대를 구체적으로 매개하고, 그 관계에서 힘을 발휘해야 한다. 단일한 품종으로 구성한 인공숲은 오래 살아남지 못한다. 오랜 시간 변화무쌍한 자연조건 속에 적응하며 서로 다르면서도 조화를 이룬 정글의 모습이 우리 삶을 영속해 낼 수 있는 힘과 에너지를 뿜어낸다. 그것도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말이다.
교육이 자기 자신만의 사회적 지위재로 기능하기보다 지속가능한 삶의 토대이자 에너지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교육을 일종의 커먼즈 개념으로 정착시켜나가야 한다. 유네스코는 「함께 그려보는 우리의 미래」(2022)를 통해 커먼즈로서의 교육을 상상하고, 이를 위해 새로운 사회계약을 맺고, 또 실천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교육이 커먼즈로 작동하는 사회에서는 인간이 인간 그 자체로 존중받고 다름이 다름으로 이해·수용되며, 유약한 인간 존재성을 서로 보듬어 든든한 협력적 연결을 만들어갈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될 것이다. 인공지능으로 대표되는 첨단기술과 이를 통해 경제자본의 논리가 득세하더라도 그러한 단단한 토대에 기반을 둔 사회에서는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만은 잃게 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믿는다. 간절하게……
유성상 /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
2026.7.15. ⓒ창비주간논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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