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멈출 권리에서 기준 정할 권리로: 기후재난 시기 노동자 현장통제권
조건희
기후위기가 심각하게 그리고 불평등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굳이 설명할 필요조차 없는 현실이다. 전세계 곳곳에서 기후위기가 초래한 재난·위험으로 인해 일터와 일상이 위협받는 사례를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한국의 경우에도 폭염으로 인해 2025년에만 29명이 사망했고 4460명의 온열질환자가 발생했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2026년 7월 현재까지 폭염으로 인한 추정사망자는 9명, 온열질환자는 1482명이다.
2025년 7월, 고용노동부는 33도 이상 폭염 작업 시 2시간마다 20분 이상의 휴식 시간을 보장하도록 하는 내용을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에 포함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일터의 노동자들은 기후재난 한가운데서 작업을 강행한다. 비정규직이라서, 작업 중단이 곧 수익 단절이라서, 관리자나 고객의 눈치가 보여서 등 여러 이유가 그 아래 놓여 있다.
기후위기 시대이기에 더더욱 노동자 스스로 노동과정을 통제할 수 있는 권리, 천천히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권리 확보가 필요하다. 이를 구체화하기 위한 현장활동이 다양하게 기획되어야 한다. 앞으로 더 많아지고 예측 불가능해질 기후위기로 인한 위험상황에 노동자가 즉각 작업을 멈추고 대피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사업장 안전보건에 관한 집단적·개별적 노동자 참여의 권리로서 이야기되고 있는 ‘작업중지권’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위험상황에서 즉각적인 대응을 위한 것이든 예방을 위한 작업 중지든 현장노동자들의 판단 그 자체를 존중하는 일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현상 논의를 넘어선 현장활동이 필요하다
폭염, 한파, 낙뢰, 폭우 등 기후위기로 인한 재난은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을 위협하는 일터 위험요인으로 자리잡았다. 이에 대응하는 현장활동이 시급하다. 갈수록 심화하고 예측 불가능해지는 요인들이 각 현장에 끼치는 구체적인 양상을 파악하는 것, 발생 가능한 사고·질환을 예측하고 예방을 위한 조치를 마련하는 것, 피해발생 시 해당 노동자에게 충분한 치료와 휴식을 보장하는 것 등의 활동이다. 이러한 활동은 현상 대응 수준을 넘어 ‘노동자의 현장통제권 확보 원칙’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현장의 위험을 가장 잘 아는 주체, 위험작업을 거부하며 현장을 개선해온 주체가 현장노동자들이라는 점에서 더욱이 그렇다. 사업주에게 사업장별 특징에 맞는 관리책임을 지우는 것 역시 중요하다. 현장의 온·습도 등 환경을 실시간으로 관리하고, 온열질환 등의 예방을 위한 자체 규정을 만들고, 노동자들의 작업중지권을 보장하도록 하는 의무를 수행하도록 해야 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현장노동자의 의견을 적용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렇기에 기후재해의 ‘현상’에만 초점을 둔 논의 그 자체를 경계해야 한다. 폭염이나 한파는 기후위기의 ‘극적인 결과’일 뿐이기에, 이러한 현상에만 집중하는 흐름은 여러 업종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안전보건 이슈에 대한 실태 파악이 필요하다는 점을 가리기 때문이다. 일례로 현장노동자가 느끼는 사업장 체감온도는 기상청 온도나 사업장 온도처럼 단순 수치로 결정되지 않는다. 영국의 산업안전보건청(HSE)은 열 스트레스(heat-stress) 위험성을 평가하는 체크리스트를 제공한다. 체크리스트는 기온, 복사열, 환기 수준, 습도, 작업복, 노동강도, 개인보호구 등의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으며, 이를 점수화해서 평가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다. 또한 해당 체크리스트는 온열질환 요인이 현장노동자에게 잘 안내되는지, 노동자가 실제로 어떻게 느끼는지를 주되게 평가해야 하며 시급한 개선사항은 무엇인지 파악하는 데 초점을 두어야 한다고 명시한다. 이렇게 다양한 요인을 고려하라는 것은, 천차만별인 작업환경에 대해 ‘온도’라는 일률적인 기준을 적용하는 건 크게 의미가 없으며 위험한 상황에서 노동자들이 주체적 판단으로 작업을 멈추고 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영국 산업안전보건청의 열 스트레스 체크리스트(ⓒHSE)
위험할 땐 멈춰! 기후위기에 맞서는 작업중지권
작업중지권은 ‘(중대재해가 아닌) 산업재해가 발생할 위험’ 이전에 발휘될 수 있는, 사전적·예방적 권리다. 작업중지권은 그동안 작업안전 문제를 포함해 높은 노동강도에 대한 항의의 의미로도, 위험작업 거부의 의미로도 활용되어왔다. 회사가 라인 속도를 높인 것에 대항해 라인을 멈췄던 제조업 노동조합의 사례, 강풍이 불거나 현장 안전통로가 제대로 확보되지 않는 등의 위험상황에서 작업을 거부했던 건설업 노동조합의 사례가 그 예시다.
그럼에도 아직까지는 작업중지권이 노동자의 보편적 권리로 작동하고 있지는 않다. 라인을 멈추면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 해고하겠다는 식의 위협을 가하는 기업은 여전히 많다. 위험하면 작업을 멈추고 쉴 수 있다는 점 자체를 안내받지 못하는 이주노동자의 사례 역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골프장 캐디들은 폭염이나 폭우 같은 상황에서도 고객이 멈추기 전까지는 일을 마칠 수 없다. 건당 수수료 등 작업의 중단이 곧 수익 손실로 이어지는 구조에 놓인 노동자들은 안전과 수익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작업 중지가 징계, 해고나 손해배상 청구 등의 불이익과 연동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또한 권리 발휘 요건과 사례를 더욱 확대해가야 한다. 예를 들어 가속화되는 폭염 속에서 자의적으로 업무를 중단하고 쉬는 것을 ‘산업재해 발생의 급박한 위험으로 인한 휴식’으로 충분히 해석할 수 있다. 해외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확인되고 있다. 야외노동을 하는 독일의 지붕 수공업자들은 단체협약으로 작업중지권을 보장받았다. 노동자는 기후상황에 따라 작업을 멈출 수 있고, 시간당 임금의 75%를 보전하는 휴무수당도 지급된다(「폭염에도 안전하게 일할 권리 보장받을 수는 없나」, 경남도민일보 2023.8.23). 이처럼 폭염이나 혹한 등 ‘정말로’ 재난 직전을 마주하는 상황을 포함해, 일터의 위험을 미리 통제하고 현장의 기준들을 이윤이 아닌 노동자의 몸과 삶에 맞출 수 있는 매개체로서의 작업중지권이라는 폭넓은 권리 발휘가 필요하다. 자본이 설정한 속도·시간·작업환경 등을 노동자의 몸과 마음을 중심으로 재조직하는 시도이기도 하다.
기후재난이 심화되는 속도에 대비해 안전하고 건강한 일터 구축이라는 과제는 여전히 요원해 보인다. 그럼에도 이를 구체화·실물화할 수 있는 건 노동자들의 조직적 힘이라는 점을 다시금 되새긴다. 더 많은 사례를 발굴하고 정착해가는 움직임을 함께 만들어나가자.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조건희 /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
2026.7.29. ⓒ창비주간논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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