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메가 프로젝트 열풍을 진단한다 ②] 반도체산업으로 만들어지는 일자리는 좋은 일자리인가?
이종란
최근 이재명정부가 기후위기나 생태적 한계에 대한 고려 없이 반도체 산업단지와 AI데이터센터를 확장하는 ‘메가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정부는 막대한 공공재원 투자를 약속하며 위험천만한 ‘속도전’을 주문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막대한 물과 전기를 소비하는 거대 화학산업의 이면, 그리고 과거 삼성반도체 노동자들이 겪었던 집단 백혈병과 같은 직업병의 교훈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오히려 연내 통과를 앞둔 ‘메가특구특별법’에는 주 52시간 상한제 예외, 파견 업종 확대 등 노동권과 생명권, 건강권을 후퇴시키는 조항들만 포함된다고 한다.
무엇보다 우려되는 것은 현장 노동자들의 목숨과 건강이다. 반도체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수백, 수천종의 치명적인 화학물질이 사용된다. 반도체산업은 모든 산업을 통틀어 취급하는 화학물질의 종류가 가장 많고 신규 물질 도입도 잦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기본적인 안전보건 정보마저 알 권리가 제약된다.
기업들은 ‘영업 비밀’이라며 어떤 화학물질을 쓰는지 투명하게 밝히지 않는다. 심지어 최근에는 ‘국가 핵심 기술’을 핑계로, 노동자가 산업재해를 입증하는 데 필수적인 ‘작업환경측정 결과’마저도 비공개로 하고 있다. 생태계와 노동자의 생명까지 희생하면서 만들어내는 일자리가 과연 우리가 진정으로 바라는 미래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반도체산업에서 끊임없는 기술변화를 통해 경쟁력을 확보한다는 말은 새로운 공정과 설비를 투입한다는 의미인데, 이는 곧 새로운 위험의 등장이기도 하다. 유해성 검증의 시간을 자본은 허락하지 않는다. 더욱이 반도체 생산과정에서는 고온의 열·UV·플라즈마·방사선 등 고에너지원을 이용해 화학반응을 일으키는데, 이 과정에서 제2의 물질(부산물)을 만들어낸다. 예컨대 감광제(photoresist)에 UV를 조사하면 백혈병 유발 물질인 벤젠과 포름알데히드가 발생한다.
현장 노동자가 병에 걸리더라도 화학반응 부산물 등 알려지지 않은 위험요소가 많아 산재 여부 규명이 어렵다. 국가는 그 책임을 노동자에게 전가하곤 한다. 산재 인정이 어려우니 예방대책도 허술하다. 그나마 삼성반도체, SK하이닉스의 경우 피해노동자와 유가족의 끈질긴 투쟁으로 설비의 밀폐력을 높이고, 일부 고독성 물질 사용을 금지했으며, 유지보수 작업 중에 호흡용 보호구를 착용하도록 개선되었다. 하지만 보호구만으로는 막을 수 없는 위험이 있고, 보호구는 호흡곤란을 유발해 장시간 착용이 어렵다. 그러니 원청은 저렴한 비용으로 책임도 피할 수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쓴다. 위험의 외주화다. 실상이 이러한데도 반도체산업을 더 속도감 있게 확장하는 것이 타당한가.
‘반올림’은 2007년 삼성반도체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사망한 황유미씨의 산재 인정 투쟁을 계기로 만들어졌다. 지난 19년 동안 반올림은 수많은 반도체 노동자들의 직업병 고통을 보아왔다. 백혈병, 뇌종양, 유방암, 그외 각종 희귀암, 자가면역계 질환, 유산, 불임, 그리고 선천성 기형과 2세 질환 피해까지, 유해화학물질 노출로 인해 너무 많은 노동자가 고통을 겪었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발표한 「반도체 제조업 근로자 역학조사 결과」(2019)에 따르면 반도체 노동자들은 전체 근로자에 비해 혈액암 발생 및 사망 위험이 2배 이상 높았다. 구체적으로 백혈병은 전체 노동자 대비 약 2.3배가 높았고, 악성림프종 사망위험은 전체 노동자 대비 최대 3.68배 높았다. 그외에도 위암, 유방암, 뇌 및 중추신경계암, 신장암 등이 일반 인구 대비 유의미하게 높게 나타났다. 해당 역학조사는 이것이 ‘클린룸’ 작업환경 영향일 것으로 분석했다.
방사선 노출 위험도 상당하다. 2019년 서울반도체 현장실습생 피폭 사고에 이어 2024년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에서 엔지니어 2명이 방사선에 고농도로 피폭되는 중대재해가 발생했다. 조사 결과 같은 공장에 694대의 방사선 설비가 가동되고 있었음에도 방사선안전관리자는 고작 2명뿐이었다는 참담한 실태가 드러나기도 했다. 교대근무 문제는 또 어떤가. 1년 365일 돌아가는 반도체공장에서 노동자들은 야간 교대근무로 인해 수면장애, 뇌심혈관계 질환은 물론, 호르몬 교란으로 생기는 유방암, 대장암, 전립선암 등 암 발병의 고통을 겪고 있다. 그런데도 비정규직을 더 확대한다니, 아예 목소리조차 내지 못하게 입을 막겠다는 것인가.
삼성을 비롯한 대기업은 공정 자동화·무인화 시스템을 갖추어 위험을 줄였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실제 현장의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일을 하고 있다. 이들은 유지보수, 물류, 세정, 청소, 화학물질 공급, 폐기물 처리 등 위험업무를 담당하며, 최저임금을 받고 주야 2교대로 일한다.
전국 곳곳에 들어서는 반도체고등학교 역시 큰 문제다. 인천, 충북, 경남, 충남, 서울, 대구, 부산, 경주, 용인 등 각지에 반도체고등학교가 이미 설립되었거나 추진 중인데, 교육과정을 살펴보면 ‘반도체 제조’ 및 ‘장비 유지보수’가 포함되어 있다. 특히 장비 및 설비 유지보수 업무는 반도체 생산공정 중에서도 고위험 직무에 속한다. 그런데 이런 업무를 가르치겠다며 고등학교 내에 화학물질을 다루는 클린룸 시설까지 짓고, 심지어 방사선 검사 설비를 갖추려는 곳도 있다. 10대 청소년들이 학교 실습실에서 유해화학물질과 방사선에 노출되는 것이 말이 되는가? 반도체고등학교 설립 및 학교 내 클린룸 시설 도입 정책은 전면 재검토되어야 한다.
한편, 반도체산업은 소재·부품·장비 업체가 공급망을 이뤄 함께 만드는 구조다. 문제는 이마저도 1차, 2차, N차 하청까지 다단계 하도급 구조로 수직계열화 되어 있는데, 정부는 이 산업 구조는 물론 노동환경의 실태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의 부실한 관리망 속에 노동자들의 건강권 확보는 요원해 보인다. 하청구조에 놓여 불안한 고용상태에서는 노동자가 목소리를 낼 수 없다. 정부는 정규직 인력부터 늘려야 한다. 이제라도 후퇴해가는 정책을 바로잡고, 생명안전과 건강을 우선하는 기업문화, 나아가 노동자의 알 권리, 피할 권리, 작업을 멈출 권리와 같은 기본권이 지켜질 수 있도록 힘써야 한다.
반올림에는 지금도 반도체 노동자들의 각종 암 피해 제보가 끊이지 않고 있다. 그동안 반복되어온 직업병 피해의 고통이다. 단지 직업성 암만의 문제도 아니다. 삼성반도체 신입연구원 김치엽씨는 극심한 성과 압박 속 업무스트레스로 우울증과 수면장애로 고통받다가, 2025년 3월 26일 서른살의 나이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그럼에도 메가특구법은 연구개발 분야의 주 52시간 상한제마저 없애려 하고 있다. 연구개발 노동자도 사람이다. 이미 극심한 스트레스 속에서 알하고 있는데, 장시간 노동까지 더해진다면 건강권이 심하게 훼손될 것이 자명하다.
노동자는 소모품이 아니다. 노동자도 똑같이 사람이다. 생명과 건강을 소모해가며 이룩할 국가경쟁력 따위는 없다. 그래서 치열하게 더 싸울 수밖에 없다. 이재명정부는 노동권을 후퇴시키는 메가 프로젝트와 메가특구법 폭주를 지금 당장 멈춰라!
이종란 / 노무사, 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 상임활동가
* 창비주간논평에서는 기획연재 ‘메가 프로젝트 열풍을 진단한다’를 통해 우리 사회를 관통하고 있는 메가 프로젝트 열풍의 배경과 실태를 짚어보고자 합니다. 기획연재는 약 두달간 이어집니다.
2026.8.12. ⓒ창비주간논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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