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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4] 지속가능한 개방전략을 모색하자

이남주 | 성공회대 교수, 정치학

올해 초 한국과 미국이 공식협상의 개시를 선언한 한미FTA(자유무역협정)가 우리 사회의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민중진영은 신자유주의의 확산과 양극화의 심화를 초래할 것이라며 한미FTA 반대전선으로 결집하고 있고, 한미FTA 추진세력들은 개방과 쇄국의 이분법을 내세우며 이를 몰아붙이고 있다. 한미FTA는 국민들에게 양자택일적 판단을 요구하는 기호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대립구도는 적어도 일차적 협상시한이라고 할 수 있는 내년 봄까지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지구화가 진행되면서 개방은 항상 논쟁과 갈등을 불러왔다. 한국경제가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지위가 10위권에 이르고, 이 성과가 세계경제에 대한 적극적인 참여를 통해 이뤄진 것이라는 점에서, 개방 자체를 거부하는 것은 설득력을 갖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방이 정책 논쟁의 차원을 넘어 극단적인 대립과 분열로 이어지는 퇴행적인 상황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사태에 대한 일차적인 책임은 정부에 있다. 한미FTA가 우리 사회 전반에 미칠 심각한 구조적 영향에도 불구하고, 국민적 합의가 결여된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협상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상황대로 간다면, 경제적으로 한미FTA의 체결은 미국식 표준의 수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정부도 써비스산업의 발전에 한국경제의 활로가 있으며, 이를 위해서는 이 분야에서 가장 경쟁력있는 미국과의 FTA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외교적으로 한미FTA는 한미동맹이 경제동맹으로 확장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미국측에서는 한미동맹을 북한의 위협에 대한 대응에서 지구적 파트너십으로 발전시키는 계기로 평가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지속적인 경제적 혁신의 필요성은 인정하더라도, 혁신의 방향이 미국식 모델의 무분별한 수용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유럽식, 일본식 그리고 또다른 성장 및 개방 모델이 가능하며, 미국식 모델은 오히려 예외적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한미관계의 안정적 발전은 중요하지만, 현재 상황에서 한미동맹의 강화만을 강조하는 것에도 동의할 수 없다. 이는 다른 동북아국가들과의 관계를 긴장국면으로 몰고 갈 것이며, 현실이 웅변하듯이 부시행정부와의 ‘지구적 파트너십’이란 결국 미국이 필요로 하는 전쟁에서의 동맹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참여정부는 사회통합적인 경제발전, 미국과의 수평적 관계, 균형있는 대외관계를 원하는 국민들의 지지를 받고 등장했다. 이러한 참여정부가 국민과의 소통을 결여한 사명감과 근거가 불충분한 주장들로 한미FTA를 무리하게 추진한다면 이는 곧 민주주의의 위기이기도 하다. 공식협상이 곧 진행되겠지만, 정부는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없는 상황에서 협상의 타결을 서둘러서는 안된다.

또한 한미FTA 반대투쟁에서 진보개혁진영이 전투에 이기고 전쟁에 지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각종 여론조사들을 보면 다수 국민은 개방에는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지만 한미FTA에는 신중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국민들은 특히 농업 및 영화시장 등에 한미FTA가 미칠 단기적 충격과 경제씨스템 변화에 따른 불확실성을 우려하지만, 개방이 한국사회의 발전에 도움이 되었으며 앞으로도 계속 지향해야 할 방향으로 인식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FTA 반대투쟁이 개방반대 담론의 틀에 갇히게 되면 국민들의 지속적인 지지를 획득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미래지향적 발전모델을 둘러싼 싸움에서도 패배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기 때문에 진보개혁세력은 최소한 한미FTA 협상이 내년 초라는 시한 내에 서둘러 마무리되는 것을 막기 위해 힘을 모으는 동시에, 개방에 대한 진보적 대안을 만들기 위해서도 노력해야 한다. 그 노력의 출발점으로 다음 세 가지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국내적으로 개방은 복지정책 정비 및 사회안전망 구축과 함께 추진되어야 한다. 이는 단순히 개방 후유증에 대한 보상 차원이 아니라 사회발전의 기본방향으로 설정되어야 한다. 둘째, 남북 경제통합의 진전을 고려하고 이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개방이어야 한다. 남북 경제통합은 내부시장의 활성화와 동북아 차원의 지역적 협력을 기초로 개방과 국내개혁의 선순환구조를 만들어낼 가능성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셋째, 국제적으로 개방과 경제통합은 다양한 지역협력체에 의해 관리되고 점진적인 방식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이러한 개방전략이 비현실적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인 것처럼 보이는 개방의 선택도 적절한 복지와 사회적 합의가 전제되지 않는다면 훨씬 많은 문제를 초래하게 된다. 개방에 대한 저항이 증가할 뿐만 아니라 통제하기 어려운 사회적 갈등과 혼란을 불러올 수도 있다. 걸음이 다소 더디더라도, 장기적으로 복지, 민주주의, 지역협력과 평화에 기여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개방전략이, 진정한 의미에서 ‘현실적인’ 방도일 것이다. 우리 사회는 외부의 충격이 아니라 내부의 토론과 합의를 통해 미래를 선택할 권리와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개방문제 역시 예외가 아니다.

- 계간 [창작과비평] 2006년 여름호, 머리말 중에서

2006.05.23 ⓒ 이남주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