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망국적 정경유착의 적폐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미르’ 사건
미르와 K-Sports 재단에 재벌기업들이 774억원에 달하는 거액을 출연한 사실을 놓고 국회와 언론이 뜨겁다. 무엇보다도 재벌들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걸려 있는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청와대 경제수석이 모금에 관여했다는 사실부터가 통상적인 재단설립 행위와는 다르다는 것을 보여준다. 문화재단 설립이 청와대까지 나설 큰 문제도 아닐 뿐만 아니라, 필요하다면 문화수석이 나서야 할 사안이다. 재단설립 허가에는 평균 한달 정도 걸리는데, 창립총회 회의록 등 서류 검토 없이 다음날 현판식에 맞추어 단 하루 만에 전광석화같이 허가가 났다는 점도 놀랍다.
조선일보 보도에 의하면, 2015년 10월 26일 문화체육관광부 주무관이 세종청사에서 서울로 출장 와 오후 5시쯤 전경련(전국경제인연합회)으로부터 재단설립 서류 접수, 8시 문체부 서울사무소에 신청서류를 등록, 등록 즉시 담당 사무관과 과장 결재, 다음날 27일 오전 9시반 담당실장 전결 허가…… 마치 군사작전을 방불케 했다.
미르 재단을 둘러싼 초법적 현상들
전경련은 두 재단을 해산하고 통합재단을 만든다고 일방적으로 선언하였다. 그러나 재단법인은 공익목적을 실현하는 공익재단으로서 출연자의 사유물이 아니므로, 전경련의 지시에 의하여 일사천리로 해산할 수 없다. 재단법인은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경우에 이사회 특별결의 후 감독관청의 허가를 거쳐야만 해산할 수 있다. 전경련은 이사들이 사임하기 전에 이사들의 동의를 받아둔 것처럼 주장하는데, 그렇더라도 ‘목적달성’을 할 수 없는 것이 아니어서 해산의 정당성이 인정되기도 어렵다. 감독관청이 아니라 재단설립 실무자로 전락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는 문체부가 해산과 통합재단으로의 재산이전 과정에서도 들러리 역할만 할지 의문이다.
해산 발표 후 설립과정에서 만들어진 서류와 자금모집에 관련한 금융자료 등을 폐기한다는 소리도 들린다. 해산과 함께 관련 자료와 재산을 바로 소멸시켜야 하는 것도 아닌데, 그야말로 증거인멸의 시도라는 의심을 자초하고 있다. 청산절차를 거치며 관련 자료와 재산을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 귀속시키거나 감독관청의 허가를 거쳐 동일 목적의 다른 재단에 이전해야 한다. 해산 논의에서도 ‘법의 준수’나 감독관청인 문체부의 허가는 고려대상이 아니라는 태도이다. 이러한 설립과 해산에서 보이는 초법적인 현상이 ‘미르 사건’의 성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자발적 성금’이냐 ‘강제적 모금’이냐
전경련은 한류와 태권도 등 국위선양을 하는 공익사업을 위해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출연해 공익재단을 만들었는데 뭐가 문제냐고 한다. 하지만 자신들이 운영하는 공익재단에는 약정한 출연금도 내지 않던 재벌들이 미르재단에는 불과 두달 만에 486억원을 신속히 모금했다니, ‘자발성’을 의심하게 만든다. 국정감사에 제출된 녹취록에 따르면 어느 재벌기업 임원은 보험 성격으로 울며 겨자 먹기로 모금에 참여했다고도 한다.
‘미르’는 용(龍)의 옛말이다. 미르재단 사건은 전두환 대통령의 호를 따서 만든 ‘일해’재단 사건과 여러모로 유사하다. 1988년 5공비리 축소판이었던 일해재단 청문회에서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내라고 하니까 내는 게 마음 편할 것 같아서 냈다…… 그다음부터는 내기가 힘들어졌으나 그렇다고 안 낼 수 없었다”라고 한 말이 떠오른다. 당시에는 지금의 경제수석 역할을 장세동 경호실장이 했는데, 그때도 청문회에서 강제모금은 있을 수도 없고 있을 필요도 없었다며 재벌들 스스로 협의해서 결정했다고 ‘자발성’을 강변해서 빈축을 샀었다.
재벌들의 부정한(?) 청탁과의 관련은 정말 없었나
언뜻 생각하면 재벌들이 서슬 퍼런 권력(?) 앞에서 어쩔 수 없이 돈을 낸 사건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미르재단이 만들어지던 2016년 10월경에 전경련은 ‘쉬운 해고’, 비정규직 양산 등 재벌 입장의 노동개혁 5법과, 구조조정을 위한 인수·합병 시 독점규제 등을 ‘원샷’으로 완화해주는 소위 ‘원샷법’(기업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 의료․유통 등 재벌들이 진출하고자 하는 서비스산업에 대한 규제완화와 지원을 포함하는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등의 추진을 정부에 요구하고 있었다. 앞서 감옥에 있던 SK, CJ 등 재벌총수들의 사면을 위해 전경련이 앞장서 뛰고 있었고, 롯데와 한진 그룹은 검찰과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를 받고 있었다.
이러한 구체적인 정책로비가 없었더라도 뇌물죄는 성립할 수 있다. 전두환, 노태우 정권이 재벌들에게서 성금 명목으로 소위 ‘통치자금’을 거두었던 사건에서 대법원은, 정부는 기업활동에 관한 정책 등의 수립, 금융지원, 세무조사 등의 사항에 대해 직접, 간접의 권한을 행사함으로써 기업체들의 활동에 있어 직무상 또는 사실상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지위에 있으므로 대통령이 실제로 영향력을 행사하였는지 여부에 상관없이 뇌물죄가 성립한다는, 소위 ‘포괄적 뇌물죄’의 법리를 정립한 바 있다. 검찰이나 공정거래위원회, 국세청 등의 조사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으려고, 보험 든다는 생각으로 정권에 돈을 냈다고 하더라도 포괄적 뇌물죄는 성립한다. 청와대가 직접 수뢰주체가 아니고 제3자인 미르재단에 돈을 출연하도록 재벌들에게 요구한 것이라면 제3자 뇌물공여죄가 성립한다. 재벌총수들은 자기 개인 돈이 아니라 회사 돈을 뇌물의 인식을 가지고 제공한 것이므로 업무상 배임죄가 성립하게 된다. 이와 같이 재벌에서 정권으로 정경유착의 ‘지하수로’를 따라 흘러가는 돈은 부패범죄를 처벌하는 정의의 칼날 위를 아슬아슬하게 지나가고 있는 것이다.
구시대적 정경유착의 전말, 철저히 밝혀야
‘정경유착(政經癒着)’은 국민의 공공복리와 안전, 공정한 사회·경제질서의 유지를 위해 복무해야 할 국가권력이 특정 기업을 위해 특혜적으로 사용되고, 경제력 집중이나 불공정행위의 만연, 탈세, 부정부패 등을 낳을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망국적인 것이다. 재벌들이 제기하는 민원이 국민 모두의 행복을 위한 것이 아님은 명백하다. 재벌들이 투자활성화라는 이름으로 포장하여 ‘원샷’으로 규제 폐지를 요구하고 세금감면 등 각종 특혜를 받는 것은 경제적 약자인 비정규직 노동자, 골목상권, 중소기업 등의 보호나, 독점과 경제력집중 등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방지, 국민의 생명과 건강, 환경 등의 확보 같은 공익적 목적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이러한 규제완화나 특혜지원은 국민국회에서의 공개된 논의와 국민여론을 통해 승인받아야지 정경유착의 은밀한 고리를 통해 거래되어서는 안된다. 예산으로 행정비용을 마련하고 정치자금을 통제하는 등 국가의 행정과 정치에 소용되는 돈의 흐름과 양을 공개하여 법률로 통제해야 한다는 것은 민주주의를 최선의 정치 형태로 발견한 인간의 이성이 명하는 바이다. 일감 몰아주기, 순환출자, ‘거수기’ 이사회 등 총수일가의 전횡과 사익편취로부터 재벌기업을 보호하여 건실한 국민경제를 발전시키고자 하는 재벌개혁과, 불공정행위를 근절하고 공평한 과세 및 공정한 거래질서를 확립하는 경제민주화는 대다수 국민이 염원하는 시대적 과제가 되어 있다. 재벌총수들의 범법행위를 엄단해 법의 정의를 세워야 한다는 요구도 어느 때보다 높다. 정경유착과 친재벌정책은 이러한 시대적 과제에 역행한다.
한편 이제 막 설립된 미르재단과 K-Sports재단이 다른 한식문화단체나 국기원 등을 제치고 대통령 해외순방에 동행해 한식 시사회나 태권도 시범공연을 주최하는 등 활동에 많은 특혜를 받았다는 점도 지적되고 있다. 이번 사건은 재단의 설립이나 모금 과정뿐 아니라, 이러한 활동의 특혜지원은 물론 문제가 불거지자 황급히 초법적으로 해산하는 등 여러 면에서 권력형 비리사건으로 비화될 수 있는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국회에서의 한점 의심 없는 진상조사와 검찰의 철저한 수사를 기대한다.
김남근 / 변호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부회장
2016.10.5 ⓒ 창비주간논평